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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 타로 1~3 (완)

 

'오로롱, 주인님... 와타시를 놔두고 어디로 가신 데스우... 곧 어두워지는 데스우... 빨리 와주는 데스우...'

미도리는 낯선 공원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주인을 찾고 있었다. 늘 하던 즐거운 산책 후 목욕하고 꿀잠을 청하는 행복한 하루였을 터이다. 오늘따라 다른 가본 적 없는 공원으로 이끄는 주인을 의심하지 않고 순수하게 새로움과 신기함을 만끽한 미도리였다. 실장석의 능력으로 집을 혼자서 찾아가는 것은 무리인만큼 갑자기 사라진 주인이 오지 않는다면 미도리의 운명은 뻔했다.

해가 졌고 공원에도 어둠이 깔렸다. 인간의 출입이 잦아든 밤의 공원은 낮의 공원과는 딴판의 풍경이 펼쳐진다. 인간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낮에는 사이좋고 예의바른 실장을 연기하던 실장들의 민낯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도리처럼 막 버려진 사육실장이 맞이할 결말은 정해져 있었지만, 미도리는 좀 달랐다. 눈물을 닦고 결연하게 일어서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주인님이 늘 말씀하시던 '운명'일지 모르는 데스. 기필코 살아서 주인님을 다시 만나고 마는 데스.'

사실 마음의 병이 깊어진 주인은 나쁜 선택을 하기 전 미도리를 제 손으로 처리하지 않고 버림으로써 마지막 인사를 한 것이라는 사실을,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운명도 미도리를 막을 수 없었다.


거짓말처럼 미도리는 공원 생활에 잘 적응해나갔다. 운좋게 집도 구하고, 노예를 빼앗아 굴에도 처박았다. 자를 아직 가지지 못한 것이 유일한 흠이었지만 여러모로 성공적인 들실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먹이는 아닌 기묘한 물건을 가지고 있는 이웃을 만나며 미도리의 실생은 다시 급변을 맞이한다.

'이웃상, 그것은 카드가 아닌 데스?'
'아, 미도리상. 카드라고 부르는 것인 데스우? 뭔지는 모르지만 예뻐서 가져온 데스.'

카드에 그려진 그림은 미도리가 아는 것이었다.

'아, 이건 '힘'이라고 하는 카드인 데스. 예쁜 여자닌겐상이 무서운 어흥씨를 안고 있는 게 보이는 데스? 이 닌겐상은 어흥씨를 두려워하지 않고 어흥씨도 닌겐상을 공격하지 않는 데스. 곧 용기있고 힘있는 닌겐상이라는 말인 데스.'

이웃 실장은 눈이 휘둥그레해져서 미도리를 쳐다보았다.

'어쩜 그렇게 잘 아는 데스우?'
'주인님이 항상 이런 카드를 보고 점을 치셨던 데스우. 옆에서 보다보니 배운 데스...'
'점이 무엇인 데스?'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아는 것인 데스우.'
'미도리상도 그걸 할 수 있는 데스?'
'데에...?'

미도리는 이웃의 눈을 다시 쳐다보았다. 기대감과 간절함에 찬 반짝거리는 눈. 주인과 있을 때 주인을 찾아오는 인간들에게서 자주 보던 눈빛이 이런 거였나 생각했다.

'데에.. 볼 수는 있지만, 점을 치는 닌겐상들은 '복채'라고 해서 꼭 대가를 받는 데스. 공짜로 봐주면 와타시에게 나쁜 일이 생기는 데스.'
'그럼 주는 데스! 이거면 되겠는 데스우?'

이웃은 옷을 뒤져 꼭꼭 숨겨둔 콘페이토 한알을 꺼냈다.

'데... 그럼 안 될 건 없는 데스. 지금 있는 '힘' 카드로 보면 아마 힘을 쓸 일이 생길 것인 데스. 동족이나 야옹씨의 공격일지도 모르는 데스. 하지만 이웃상은 힘이 세니 걱정할 게 없는 데스우.'
'신기한 데스우! 고마운 데스 미도리상!'

떠나가는 이웃과 손에 남겨진 콘페이토. 미도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음날 아침, 미도리는 누군가 하우스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어제의 그 이웃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도리상, 대단한 데스!! 어제 노예가 반항해서 죽을 뻔했지만 잔뜩 두들겨패준 데스우! 보답인 데스!'

그 독라의 것임이 분명한 다리토막을 미도리에게 주고 이웃은 떠나갔다.

'와타시도 혹시...?'

항상 미래를 자신감있게 예언하는 주인의 모습을 동경하던 미도리였다. 옆에서 일하는 것을 보면서 주인이 쓰는 카드들의 의미도 대충 다 알고 있었다. 인간의 일이라면 모르지만, 실장들 사이 일이라면 자신도 점을 칠 수 있지 않을까.

결심이 들자 실행은 빨랐다. 적당한 크기의 종이조각을 모으고, 연필을 구해 유치하지만 실장석도 알아볼 수 있는 상징을 그려나갔다. 실장석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의 카드들은 생략하고, 펜타클은 콘페이토로, 소드는 못 보검으로 하는 식으로 실장석에게 맞는 내용으로 바꾸었다. 며칠간 노력한 끝에 미도리만의 실장 카드덱이 완성되었다.

'끝난 데스우... 이제 와타시도 주인님처럼 점을 쳐보이는 데스.'

첫 손님은 미도리 자신. 떨리는 손으로 '카드'들을 섞고, 펼치고, 뽑았다. 첫번째 질문은 이 일이 잘 될는지였다. '매지컬 테치카'와 '9 콘페이토'가 뽑혔다. 자신의 능력으로 크게 성장할 것이라고 해석하고 미도리는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데프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데스? 나쁘지 않은 데스우... 좋은 점괘인 데스..'

이런 표정을 가끔 주인도 지은 듯하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였다.



"다음 분, 들어오는 데스."
"안녕한 데스 미도리상."
"아, 또 온 데스. 오늘은 뭐가 궁금해서 온 데스?"
"오늘 하루 운세가 보고 싶은 데스우. 여기 복채인 데스.. 도토리로 괜찮은 데스?"
"문제없는 데스. 잠시만 기다리는 데스."

".....안 좋은 데스, 오마에 혹시 자가 있는 데스?"
"그런 데스... 무슨 일인 데스우?"
"막대기 다섯개가 나온 데스. 이건 싸움을 뜻하는 데스, 자들 중에 말썽을 피우거나 다투는 자가 있는 데스우?"
"차녀가 장녀에게 반항하고 동생들을 괴롭히긴 하는 데스... 그 자가 문제인 데스?"
"그럴 지도 모르는 데스, 정 문제라면 솎아내는 것도 방법인 데스우."
"데에.... 알겠는 데스우. 감사한 데스 미도리상."


미도리의 '점집'은 대성황이었다. 처음 미도리가 점을 본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그 개념부터 이해하기 어려웠던 실장들은 의심하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점차 미도리의 점괘가 효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실장들이 늘고 목소리가 커지면서 공원 거의 전부가 미도리의 고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사실 두루뭉술하게 끼워맞춘 말이 어떻게 맞은 것이든, 아예 반대로 일어난 것을 기억 왜곡으로 맞다고 믿게 되었든 단순하고 속기 쉬운 실장석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컸다.

미도리도 점을 보면서 나름대로 노하우를 익혀나갔다. 아무리 간소화시킨 타로 덱이라고 해도 인간 사회에 비하면 훨씬 단순하고 유치한 실장석의 삶이니만큼 정확한 대입은 힘들기 마련. 점을 보러온 실장의 표정과 말, 행동을 보고 상황을 짜맞추어 그럴 듯한 점괘를 들려주는 데 능숙해졌다. 실장석의 입장에서는 말해주지도 않은 것같은 사실들을 전부 아는 듯이 늘어놓는 미도리가 그렇게 신비해보일 수 없었다. 현실의 인간을 방불케하는 기술로 미도리는 이번의 친실장이 얼굴이 퀭하고 피곤한 기색이 역력함으로 보아 자들을 여럿 기르느라 힘에 부친다는 것을 진작 눈치챘다. 이렇게 넌지시 암시를 주면, 이 친실장은 집에 돌아가 차녀가 별반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입을 줄일 겸 솎아내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도 미도리는 용하다고 칭송받는 것이다.


"그럼 다음분."
"처음 뵙겠는 데스 미도리상, 와타시는 미란이라고 하는 데스."
"반가운 데스 미란이상, 무엇이 궁금한 데스?"
"와타시는 이 공원에 온 지 세 밤 지난 데스. 주인님이 기다리라고 하고 안 온 지 세 밤인 데스."
"안 된 일인 데스.."
"주인님이 와타시를 버린 건 아는 데스, 그래도 후회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데스..."
"문제없는 데스우. 오마에의 주인님이 지금 어떻게 사는지 보면 되는 데스?"
"그런 데스우! 여기 마지막 남은 콘페이토인 데스."

"..... 푸드 세개인 데스.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는 데스?"
"데에... 모르는 데스."
"푸드는 먹을것인 데스. 하나는 미란이상의 몫, 하나는 주인님의 몫. 나머지 하나는 뭐겠는 데스?"
"데에에....?"
"오마에의 주인님은, 다른 실장을 기르고 있다는 말인 데스."
"데에에에에!!! 그럴 리 없는 데샤아아아!! 주인님은 항상 와타시가 마지막 실장이라고 했던 데샤아아!!!!"
"오마에!!! 난동피울 거면 꺼지는 데샷!"

하우스 밖을 지키고 서 있던 실장 두엇이 냉큼 들어와 미란이라는 전 사육실장을 끌고 나갔다. 미도리는 한숨을 내쉰다.


미도리가 공원에서 명성을 얻어감에 따라 미도리를 추종하는 무리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개중에 미도리로 인해 삶이 바뀌었다고 진지하게 믿는 부류였다. 집과 가족을 버리고 미도리의 집 옆에서 기거하는 그들은 미도리를 의심하거나 점이 잘못되었다고 난동피우는 실장으로부터 미도리를 보호하고, 복채로 받은 음식들을 나눠먹고 운치굴을 대신 관리하며 미도리의 집을 넓히고 고치는 등 자질구레한 일들을 도맡았다. 미도리는 다른 어떤 일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게 놔두지도 않았다. 보스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공원에서 미도리는 보스와 같은 영향력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도리에게 가장 자주 점을 보러 오고 가장 문제를 일으키는 부류는 바로 미란이같이 공원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전 사육실장들이었다.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인에 대한 미련을 놔주지 못한 채 점에만 매달리는 그들에게 미도리는 연민을 느끼면서도 마지막까지 남은 재산을 털어먹었다. 경험이 부족한 전 사육실장들에게 공원은 하루종일 주인을 기다리면서 살아남을만큼 녹록한 곳이 아니다. 저 미란이란 녀석도 다시 미도리에게 점을 볼 공물을 구하느라 식량과 집을 얻기는커녕 서서히 굶어죽거나 제발로 공원을 뛰쳐나가 객사할 운명일 게 뻔하므로.


"오늘은 더이상 없는 데스?"
"복채가 없는데 점을 보겠다고 우기는 실장이 있는 데스."
"무슨 일인지 들어보는 데스. 들여보내는 데스."

역시 꾀죄죄해졌기는 하지만 핑크색 프릴 달린 옷을 입은 꼴이 전 사육실장이다.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은 자실장 한마리가 새끼인 듯 손을 잡고 있었다.

"감사한 데스 미도리상... 와타시는 미순이라 하는 데스."
"반가운 데스.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복채도 없이 온 데스?"
"죄송한 데스... 와타시가 이 공원에 온 지도 일곱 밤이나 된 데스. 그동안 이 자만 남고 전부 슬픈 일을 당했고, 머무를 집도 먹을 것도 없는 데스. 와타시는 주인님께 돌아가고 싶은 데스."
"... 주인님께 돌아갈 수 있을지를 보면 되는 데스우?"
"그런 데스우... 대신 이 자를 드리는 데스. 노예로 부려도 좋은 데스. 주인님을 만나면 다시 찾으러 오겠는 데스. 그때는 두배로 갚겠는 데스."
"테에... 마마..."
"장녀는 마마를 따라올 수 없는 데스. 기다리면 꼭 찾으러 올 것인 데스."
"잠깐... 프니프니할 노예는 이미 많은 데스. 게다가 이 자는 사육실장으로 태어난 데스. 힘도 약하고 쓸모없는 자를 뭘 보고 맡으라는 것인 데스?"
"면목없는 데스. 장녀는 똑똑하고 뭐든 열심히 하는 데스. 조수로라도 써주었으면 하는 데스..."
"테.. 열심히 하는 테치..."
"데에에... 일단 알겠는 데스."

".. 바퀴 카드인 데스."
"무슨 뜻인 데스...?"
"바퀴만 보면, 길에서 붕붕씨나 따릉씨에 깔리지 않게 주의하라는 말인 데스."
"데에.... 알겠는 데스.."
"닌겐들은 운명의 바퀴라고 부르기도 하는 데스, 오마에와 주인이 운명으로 맺어진 관계라고도 볼 수 있는 데스."
"운...명? 이 뭐인 데스?"
"만나기 싫어도 다시 만난다는 뜻인 데스우."
"주인님을 만날 수 있다면 좋은 말인 데스!"



미순이라는 실장을 마지막 손님으로 떠나보내고, 친실장과 헤어진 충격에 아직도 히끅거리며 울고 있는 그녀의장녀를 옆에 두고 미도리는 생각에 잠겼다. 와타시도 주인에게 돌아갈 길을 알았다면, 주인 대신 외로움을 달래줄 자들이 옆에 있었다면. 생활이 안정되고 나서 자를 가지려는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미도리도 나름대로 고급 사육실장의 재질로 태어난 개체였다. 태어나자마자 받은 불임시술은 아직 그 효과를 유지하는 중이었다. 그래서 원래라면 단호히 내쫓았을 미순이에게 점을 봐준 것일지도 몰랐다.

"오마에, 울만큼 운 데스?"
"테에?"
"사육실장이었으면 이름이 있을 것인 데스. 뭐인 데스우?"
"테.. 미영이라고 하는 테치..."

미영이를 지켜보다 미도리에게 한 생각이 스쳤다.

"오마에의 마마가 똑똑하다고 해서 받아줬으니, 앞으로 시험을 봐서 확인하는 데스. 통과하지 못하면 독라로 만들어서 운치굴에 처박는 데스."
"테에... 무슨 시험인 테치..?"
"와타시가 점을 보는 카드를 알려주는 데스. 하루에 한장씩 알려줄테니 잘 외우는 데스."
"알겠는 테치..!"


주인도 항상 누군가를 가르치곤 했다. 조금더 닮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미도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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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뭘 보는 거야?"
"자기야, 여기봐봐, 참피가 차에 또 치였어."
"아 또야? 이 동네 정말 짜증난다니까."
"근데 자기야.. 이거.. 미순이 닮지 않았어?"
"또 이상한 소리한다. 내가 걔들을 어디다 버렸는데 여기까지 와?"
"그래도 생긴 거랑 옷이 너무 똑같은데..."
"걔들 냄새나고 돈많이 든다고 갖다버리자 한 거, 오빠잖아. 그리워?"
"그건 아닌데... 어, 아직 살아있어!"
"데...에....."
"으, 징그러. 얼른 가자. 누가 치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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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분 오시는 데스."
"미도리상, 사육분충이 찾아온 데스, 괜찮은 데스우?"
"복채만 가져오면 안 될 건 없는 데스."
"알겠는 데스, 들어가는 데스."

손님인 사육실장이 신기한 표정으로 미도리의 '점집' 안을 둘러보았다. 혈색도 좋고 표정도 밝다. 무엇보다 저 양쪽 다 녹색으로 빛나는 눈과 부풀어오른 배. 임신까지 허락받은 행복한 사육실장이다. 미도리는 프로답게 질투를 내색하지 않고 응대한다.

"잘 온 데스, 태어날 아이들이 궁금한 것인 데스?"
"역시 소문대로인 데스우. 정확한 데스."
"하나하나 보려면 카드를 많이 뽑아야 하는 데스. 복채는 충분한 데스?"
"문제없는 데스우."

사육실장은 가방에서 미니어처 스테이크를 꺼냈다. 퍼져가는 달콤한 향기에 하우스를 지키던 경호실장마저 움찔한다. 역시 사육실장은 다르구나, 미도리는 속으로 탄식하면서 미영이에게 눈짓을 건넸다. 미영이가 제 몸만한 통을 끌고 나와 공손하게 인사한다.

"그럼 섞겠는 테치."

미영이는 통을 껴안고 있는 힘껏 흔들었다. 통에 들어 있는 '카드'들이 이리저리 섞인다. 어차피 인간들이 쓰는 카드를 그대로 가져와도 실장석의 솜씨로는 화려한 셔플이 불가능하다. 그저 손으로 휘젓는 게 최대라면, 더 다루기 편한 골판지나 나무토막에 그림을 그려넣고 뽑는 게 퍼포먼스적으로도 실용적으로도 괜찮다. 자실장 조수를 얻은 덕에 더 극적인 연출을 꾀할 수 있는 것에 미도리는 만족했다.

"첫째로 장녀를 보겠는 테치."
"여황제인 데스."
"그게 뭐인 데스?"
"..와타시도 가장 높은 닌겐상이라고만 알고 있는 데스. 아무튼 장녀는 아주 착한 자가 될 모양인 데스. 동생을 잘 돌봐주고 그럴 힘도 있는 자인 데스."
"그럼 다행인 데스우."

"다음은 차녀인 테치."
"막대의 마라인 데스."
"데에엣!! 마라라고 한 데스우?"
"데프프프. 이름만 마라지 마라가 나온다는 말은 아닌 데스. 이 자도 좋은 데스. 급하기는 하지만 정이 많은 자인 데스."
"깜짝 놀란 데스우."

"삼녀 차례인 테치."
"별 카드인 데스."
"하늘의 별님인 데스?"
"그런 데스. 삼녀는 아주 예쁘고 밝은 자가 될 것인 데스."
"기분좋은 데스우."

"사녀까지 보겠는 테치."
"......."
"이건 뭐인 데스? 주인님이 사는 집씨처럼 생긴 데스우..."
"탑이라고 하는 데스. 잘 참지 못하고 화도 많은 자인 데스. 엄지라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이 자는 할 수 있다면 솎아내는 게 좋은 데스."
"데에...."
"오마에라면 잘 알 것인 데스우. 분충을 참아줄 상냥한 주인님은 많지 않은 데스. 그 분충이 단 한 마리라도."
"잘 알겠는 데스. 고마운 데스."

마지막 카드 결과에 심각하게 입을 다문 사육실장이 하우스를 나가고, 미도리 역시 굳게 입을 다물고 눈을 감았다. 한번에 많은 카드를 보아서 휴식이 필요하다. 결국 실장석의 자질이란 것은 어미의 태교가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 저 실장의 사녀가 정말로 분충으로 태어날지는 전적으로 어떻게 결과를 이해하고 노래를 부를지에 정해져 있다. 분충이 섞여 있다는 가능성에만 집착한다면 다른 자들마저 모체의 심리에 영향을 받아 나쁜 요소를 가지고 태어날 터. 변변찮은 새끼들만 낳은 사육실장의 미래는 뻔하다.

미영이가 분주하게 꺼낸 카드를 다시 담고 자리를 정리한다. 미도리는 그런 미영이를 보고 한번 쓰다듬어준 다음 방금 손님이 가져온 스테이크를 손짓하여 가리켰다.

"좀 쉬는 데스. 저건 가져가서 문밖의 오바상들이랑 나눠먹도록 하는 데스."
"테? 미도리상은 안 먹는 테치?"
"와타시는 괜찮은 데스. 미영이쨩이 많이 먹고 크는 데스."


미도리가 공원 모두가 따르는 존재가 된 이후, 자신들도 눈치채지 못한 새 공원 분위기가 바뀌었다. 분충들이 매일 투쟁을 벌이는 지옥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원에는 늘 동족식을 노리거나 방문하는 인간과 사육실장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무리가 있는 법. 하지만 그런 자들까지 미도리의 신봉자가 된 이후로는 그런 행동이 깨끗이 사라졌다. 언젠가 집과 무기 등의 재산을 가지고, 자를 낳을 수 있다는 희망. 언젠가는 자신과 자들을 길러줄 인간이 나타나리라는 믿음. 미도리가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공원의 구성원들은 저마다 더 강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애호파들이 사육실장을 데리고 산책하기 안전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공원에는 더 많은 방문객이 모였고, 이들이 나눠주는 푸드와 생활용품으로 공원의 들실장들은 더욱 살기 좋아졌다. 들실장이 사육실장과 자연스럽게 섞이면서 사육실장들도 공원을 믿음으로 다스리는 미도리의 존재를 듣게 되었다. 주인의 눈을 피해 미도리에게 앞날의 길흉을 물으러 오는 사육실장이 늘어났다. 미도리는 항상 졸렸고 피곤에 찌들었다. 다른 어떤 보스들도 탐낼 부와 권력을 얻었건만 그것은 미도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항상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이 실장석이 사는 세상의 섭리였다.


"미도리상, 미도리상!! 큰일난 데스우!! 어서 도망치는 데스우!!"
"서두르지 마는 데스. 무슨 일인 데스?"
"어떤 모자란 자가 닌겐에게 이곳을 알려준 데스!! 닌겐이 곧 오는 데스!"
"도망칠 필요 없는 데스우. 어차피 닌겐이 한번 찾겠다고 맘먹으면 와타시타치는 도망쳐 봤자인 데스."
"하지만 그 닌겐이 미도리상에게 나쁜 짓을 하면.."
"괜찮은 데스우. 별일 없을 것인 데스."

방금 뽑은 카드가 나쁜 의미였다면 미도리도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미도리는 그러면서도 미영이를 부하에게 데려가게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 있습니다, 있어요!! 자 여러분, 타로점을 본다는 참피를 지금 소개합니다!"
"어서오시는 데스 닌겐상."

자신을 찍는 휴대폰 너머 인간에게 악의는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도리는 내심 안도했다. 그는 그저 화제와 조회수를 탐내 왔을 따름이었다. 인간이 쏟아내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미도리는 그새 녹슬어버린 듯한 손을 움직여 카드를 뽑고 읽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도리, 이런 점을 보는 건 어디서 배웠나요?"
"주인..님이 이걸 가지고 점을 보고 돈을 벌었던 데스. 와타시는 옆에서 보다가 저절로 배우게 된 데스."
"아, 주인에게 배웠다. 더이상은 묻지 않겠습니다, 크흠! 그러면 미도리, 스스로 생각하기에 실력은 있다고 보시나요?"
"주인님을 보고 따라하는 것 뿐인 데스. 잘 모르는 데스."
"겸손하기까지! 역시 뭐가 달라도 다른 참피입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이렇게 본 점을 믿나요?"
"믿지 않는 데스."

남자는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잠시 머뭇거렸다.

"왜 믿지 않는 거죠? 그러면 점을 보는 이유가 있나요?"

미도리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주인님은 주인님이 죽는 날까지 미도리와 함께라고 하신 데스우. 하지만 주인님은 와타시를 버렸고 와타시는 이제 늙은 데스. 그게 안 믿는 첫 번째 이유인 데스."

"어떤 닌겐과 실장들은 자기가 원하는 말을 들을 때까지 몇번씩 같은 걸 보게 하는 데스. 그런 자들에게는 제대로 봐주는 의미가 없는 데스. 그러면 와타시도 무시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데스."

"하지만 좋은 말을 들은 자는 기분이 좋아져서 더 씩씩해지고, 나쁜 말을 들은 자는 더 조심조심해져서 더 잘 살게 되는 데스. 와타시가 그 자들을 속였다 해도 그 자들은 와타시의 도움을 받은 것인 데스."

뜻밖의 대답에 실망한 듯 남자는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고 돌아갔다. 미도리 역시 진이 빠져서 덜렁 드러누웠다. 실로 오랜만의 인간과의 대화였다. 그 인간이 주인님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미도리는 그날 밤 내내 주인과 다시 만나는 꿈을 꾸었다.



다음 인간의 방문은 며칠이 채 지나지 않은 한밤중이었다.

"미도리상! 또 닌겐이 오는 데스!!"
"이 시간에... 예감이 좋지 않은 데스."
"다음에 오라고 하는 데스우?"
"어차피 와타시타치의 말을 들을 닌겐일 리 없는 데스우. 미영이쨩, 이 오바상이랑 잠시 나가 있는 데스."
"테... 미도리상과 같이 있고 싶은 테치."
"작은 자는 방해만 되는 데스. 어서 가는 데스."

미도리는 늘상 하던대로 카드를 무심코 뽑아보았다. 나온 그림에 순간 얼굴이 굳어졌다. 미영이도 그것을 보았다.

"미도리상? 그 카드는 분명..."
"어서 미영이쨩을 데리고 가는 데스, 썩 가는 데스!!"



잠시 뒤 미도리 앞에 나타난 남자는 그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의 인간이었다.

"안녕, 점쟁이양반?"
"아.. 안녕하신 데스."
"히히. 역시 뭔가 있긴 있네. 확 쪼는 거 보니까. 여러분! 사상 최.초. 학대신사를 한방에 알아보는 분충입니다!"
"데에에에!!!"
"뭘 그리 겁먹나. 나는 학대파지만 신사라고. 네가 진짜 용한 점쟁이인 걸 증명하면 살려준다니까? 물론 틀리면 죽을 거야~"
"데.... 알겠는 데스우.."
"마침 한장이 뽑혀 있네? 그걸로 해봐. 어우 뭘 그린 거여. 여러분 이거 알아볼 수 있겠어요?"
"주..죽음인 데스..."
"오, 말그대로 죽는다는 뜻?"
"그, 그런 데스. 실패, 파괴도 되는 데스...."
"그렇구만~ 근데 어쩌지? 이건 점쟁이양반 운명을 본거거든?"

뒷말을 내뱉을 여유도 없이 미도리는 남자의 손에 붙들려 집 밖으로 던져졌다.

조용했던 공원은 미도리의 비명소리, 때리는 소리, 발로 차는 소리로 뒤덮였다. 남자는 과연 학대신사였다. 급소를 피해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지 않으면서 미도리를 천천히, 확실하게 고통을 주고 있었다. 잠시 후 누가 불러모으기라도 한 듯 공원의 모든 실장이 달려나왔다. 닌겐은 무섭지만 남자 한명이라면 쫓아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공원의 보스인 미도리가 당하고 있다. 실장들이 남자를 에워싸자 남자는 천천히 미도리를 놓아주었다.

"똥닌겐!!! 미도리상에게 무슨 짓인 데샤아아앗!!!"
"당장 운치범벅이 되기 전에 도게자로 사과하는 데샷!!!"
"와우~ 이 공원 정말 재밌는데? 오길 잘했어, 그쵸 여러분?"

그 말을 하고 남자는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집어던졌다. 순간 모든 실장들이 얼어붙었다. 겉옷에 가려져 맡지 못했던, 그 인간의 몸과 옷에 깊이 배인 냄새. 셀 수 없이 많은 동족의 피가 응축된 학대파의 냄새였다. 압도당한 실장들이 슬금슬금 물러서자, 남자는 다른 폰을 꺼내 조작하고 어떤 영상을 틀기 시작했다.

일전의 남자가 찍어간 미도리의 영상이었다.

"믿지 않는 데스."
"주인님은 와타시를 버렸고 와타시는 이제 늙은 데스. 그게 안 믿는 첫 번째 이유인 데스."
"그런 자들에게는 제대로 봐주는 의미가 없는 데스. 그러면 와타시도 무시하고 듣기 좋은 말을 해주는 데스."



진실을 알게 된 실장들은 동요했다. 동요는 곧 분노와 의구심으로 번졌다.

"미도리상, 이게 무슨 말인 데스! 설명해 보는 데샷!!!"
"와타시타치의 점이 전부 가짜였던 데스??"
"어서 말해보는 데샷!!!"

남자는 타이밍 좋게 실장들의 혼란에 불을 지폈다.

"여기서 이 미도리의 말대로 사육실장이 돼서 떠난 동족을 본 적이 있나?"
"분충이란 말을 믿고 착한 자를 솎아낸 적은?"
"먹음직한 사육실장을 보고도 죽이지 말란 말에 참은 적은 있냔 말이다."
"이 미도리는, 점이란 수단을 이용해 너희들을 편하게 부려먹었을 뿐이란 말이야."

대부분의 실장들이 남자에게서 등을 돌려 미도리에게 달려들었다. 자리를 잡지 못한 나머지는 미도리의 집으로 돌진했다. 그 나머지는 끝까지 미도리의 편을 들려던 극소수를 린치했다. 남자는 그 아비규환을 흐뭇하게 촬영하고 있었다.

"여러분 제 손을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근데 이 점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맞았네? 자기는 죽고, 공원 지배는 실패하고, 집은 파괴당하니... 점쟁이 인정! 또 인정!"

이미 만신창이가 된데다 분노한 실장들의 공격을 받고, 급기야는 뜯어먹히면서 미도리의 의식은 점점 흐려졌다. 아직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미도리는 이것 역시 '운명'이 아닐까 생각했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것도 운명, 공원에서 살아남은 것도 운명, 이렇게 죽게 되는 것도 운명. 죽고 가는 곳에서 주인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운명이다. 미도리는 마지막으로 생전 최후의 카드의 의미를 속으로 되새겼다.

'죽음은 또한 새로운 시작인 데스....'




공원의 소란이 정리되고, 형체도 남지 않은 미도리와 추종자들의 시신, 모조리 약탈당해 폐허로 변한 집을 멀리서 바라보며 미도리의 심복들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다. 이들 역시 날이 밝아 발견당하면 똑같은 운명을 맞을 게 뻔했다. 그 중 가장 나이가 많고 똑똑한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 공원을 떠나는 데스. 옆 공원에 가는 데스."
"미도리상의 복수는 포기하는 데스?"
"방법이 없는 데스우. 미영이쨩도 있고 아무리 와타시타치라도 저 분충들을 다 이길 수 없는 데스."
"옆 공원에 가도 그쪽 동족들이 와타시타치를 받아주겠는 데스?"
"방법이 있는 데스. 와타시타치에겐 미영이쨩이 있는 데스."
"테...?"
"미영이쨩은 미도리상에게 배운 게 있지 않는 데스? 미도리상의 뜻을 다른 공원에서 잇는 것인 데스우."

미영이는 언젠가 미도리가 해주었던 이야기가 떠올렸다.

'옛날에는 떠돌아다니는 닌겐상들이 주로 점을 보았다고 한 데스.'
'그 닌겐상들은 왜 떠돌아다닌 테치?'
'미움을 받았기 때문인 데스.'
'점을 보았기 때문인 테치?'
'그것 때문만은 아닌 데스. 하지만 점을 보았기 때문에 떠돌아다닌 것일지도 모르는 데스.'
'그것은 왜인 테치?'
'점을 보면 하늘님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말이 있는 데스.'

".... 해보겠는 테치."




공원과 공원을 떠돌아다니며 점을 치고 살아가는 들실장 무리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많은 사람이 소문의 진상을 확인하려고 움직였지만 아직까지 밝혀진 바는 없다.




















댓글 1개:

  1. 오로롱 오로롱
    미영이쨩 힘내서 살아가는데스
    이런 아마아마한 스크를 만든 오바상은 우주의 보배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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