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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방

 

언제부터였을까?
하늘에 있어야 할 달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은
밤하늘에는 약간의 별이 어슴푸레하게 빛나고, 옅은 어둠이 공간을 덮고있다

또다시 오늘도 태만과 고통에 찬 무의미한 하루가 시작된다

와타시가 눈을 뜨면 언제나 잠자리 옆에 식량과 물이 있다
와타시는 정해진 작업을 하는 것처럼 입 안에 달라붙은 불결한 점막을 물로 씻어내고, 공복을 채우기 위해 식량을 먹는다

와타시가 있는 장소에는 잠자리와 물이 든 접시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식사를 마치고나면 와타시에게는 기나긴 고독의 시간을 아무말없이 견디는 것 밖에 선택지가 없다
대체 와타시는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이젠 시간이라는 관념조차 잃어버렸다

사방이 하얀 벽에 둘러싸여 자력으로는 어디로 갈 수 조차 없다
굶주릴 일도 공격당할 일도 없지만, 와타시는 여기가 두렵다
항상 어두컴컴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장소는 과거의 와타시가 원해 마지않던 환경 그 자체인데도

와타시는 극히 평범한 자실장으로 공원에 태어났다
현명하지는 않지만 어리석지도 않은 마마와 3마리의 여동생과 함께 벤치 뒤의 덤불 안에서 나름대로 살고있었다
아침이 되면 어미와 함께 그날의 식량을 찾아나서고, 발견한 식량은 가족끼리 균등하게 나눠먹었다
썩기 직전인 음식물쓰레기밖에 없있지만, 다같이 먹으면 왠지 맛있게 느껴졌다
밤이 되면 좁은 집 안에 모여서 끌어안고 잠들었다
추운 외풍으로부터 와타시들을 지켜주는 마마의 따쓰함이 무척 기분좋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행복한 매일이었던가
3일간 식량을 얻지 못해 물을 마시며 배고픔을 달래는 일도 있었다
거만한 사육실장과 흉폭한 개에게 괴롭힘당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옆에는 언제나 가족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그 외의 모든것이 아무래도 상관없었는데, 그 때의 와타시에게는 가족이 성가셔서 참을수가 없었다

무엇이든 와타시를 간섭하는 마마
스스로는 식량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주제에 불만만 말하는 동생들
와타시에게 손해밖에 끼치지 않는 모든 남들

그 때의 와타시는 주위의 모든 것을 싫어하고 있었다

어느 날, 마마와 떨어져서 식량을 찾고있던 와타시의 앞에 닝겐 한 명이 다가왔다
「닝겐이 다가오면 절대로 마음을 놓으면 안되는데스
 닝겐 중에는 식량과 따뜻한 것을 주는 녀석도 있는데스
 하지만 와타시들을 괴롭히며 기뻐하는 녀석도 있는데스
 그러니까 닝겐 가까이에 다가가면 안되는데스」
그렇게 마마가 어릴때부터 몇번이나 당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와타시는 닝겐에 흥미를 가져버렸다

닝겐은 와타시에게 상냥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여, 안녕
 너는 혼자서 무엇을 하고있는거니?』
와타시가 마마와 함께 가족의 식량을 찾고있다고 말하자, 닝겐은
『그렇구나, 너는 가족을 사랑하는구나.
 그래도, 좀 있으면 겨울이 와버릴거야
 그렇게되면 너는 마마에게 먹혀버리는거 아닐까?』
라고 말했다

와타시는 닝겐이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수 없었다
마마가 와타시를 먹어?
갑작스런 이상한 말에 당황하는 와타시에게 닝겐이 가르쳐주었다
『그야 그렇잖아
 겨울이 되면 풀은 말라버리고 무척 추워지는데다 눈도 내린다고?
 그렇게 되면 먹을수 있는 것을 찾으러 나갈수가 없게되지
 설마, 아무것도 먹지않고 겨울을 넘길 생각이었니?

 어째서 마마가 스스로 먹이를 찾을수 있는 너를 독립시키지 않는지 생각한 적 있니?
 내가 생각하기엔, 겨울에 대비해 쌓아둘 식량은 많은 쪽이 나으니까 그런거같은데』

그럴리가 없어!!
그렇게 대답한 와타시의 목소리는 쉬어있고 무척 작았다

거짓말이다
그럴리가 없어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도, 와타시의 안에 쌓여가던 의혹이 도무지 흐려지지 않는다
그러고보면 마마는 와타시들이 성장하는 것을 무척 기뻐했다
가장 작은 동생이 감기에 걸려 죽을뻔할 때에는 밤에 잠도 자지않고 간병했다

『보라구, 의심가는 구석이 많이 있지?
  ・・・혹시, 네가 원한다면 내가 있는곳에 오지 않을래?
 마침 너 정도 크기의 실장석이 필요하거든
 구태여 마마에게 먹힐 필요는 없잖아
 너에게는 자신의 일생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어
 자, 어쩔래?』

와타시는 고민없이 닝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겨울이 되면 잡아먹힐 동생들이 약간 불쌍하긴 했지만, 어차피 와타시와 마마가 없으면 죽어버릴 운명이다
겨울까지 살아갈 수 있는것 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와타시는 마음 속으로 스스로를 달랬다

닝겐은 와타시에게 눈가리개를 하면서 말했다
『알겠니, 지금부터 네가 가는 곳은 무척 행복한 곳이야
 여름의 더위도, 겨울의 추위도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식량을 찾으러 갈 필요도 없어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을 만날 일도 없어
 정말로 행복한 곳이지
 너는 선택받은 녀석이야』

눈가리개를 하고, 푹신푹신한 상자 안에 들어간 와타시는 그 후에 어디로 데려가졌는지 알지 못한다
닝겐의 목소리로 『이젠 눈가리개를 풀어도 돼』라고 듣고 시력을 되찾았을 때에는, 와타시는 이미 이 장소에 있었다

그 때 이후로 닝겐과는 만나지 못했다
분명히 여기에 있으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은 모두 손에 넣는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살 수 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여기에는 살아가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완전히 빠져있다
어째서, 그때의 와타시는 마마의 분부를 지키지 않을걸까?
어째서, 가족을 버려버린 것일까?
그저 혼자서 살아간다고 해도 아무것도 즐거울리가 없는데도

이젠 모든것이 때늦어버렸다
오늘도 후회와 고통이 와타시를 괴롭힌다




「주임님, 오늘도 J-109가 우울해하는데요
 이대로라면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할것 같습니다」
「아아, 저 개체는 여기에 온지 오래되었으니까
 마침 적당한 크기의 들실장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약간 지나치게 커져버렸군
 ・・・슬슬 새로운 놈으로 바꿔넣을 때가 된건가」
「알겠습니다
 그러면 업자에게 새로운 실장을 발주해놓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웃기는 일이군요
 너무 성장해도 처분되고, 구매자가 나타나도 해체되고
 정말이지, 장기이식용 실장만큼 희망이 없는 녀석도 없을거에요」
「아니아니, 그렇다고만은 할 수 없네
 이녀석들이 있으니까 살아나는 생명도 있잖나
 게다가 100마리가 처분된다 해도 1마리만 구매자가 나타나면 회사로서는 충분히 이익이 나니까」
「・・・정말이지 죄가 많은 사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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