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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처분상자

 

가을.
공원에는 실장석들이 독립의 계절을 맞고있다.
무더운 여름을 살아서 넘긴 자실장들은, 친실장과도 거의 체격의 차이가 없다.
(체력・내구력에 있어서는, 친실장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할수있을지도 모른다)
9월의 소리가 들릴 즈음에는, 그런 자실장들이 독립하여 홀로 서는데 있어 최후의 시련인, 먹이 수확의 훈련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게된다.

그런데 그러한 먹이 수확에 따라오지 못하는 개체도 개중에는 있다.
체력적으로 무리라든가 하는것은 아니다.
그저 실장석 가운데에서도 실장석답게, 타자의존이 특출난 개체, 라는것 뿐이다.
친실장은 여름 동안, 골판지하우스에서 가만히 더위를 버티는 자실장을 「인내심이 강한 똑똑한 개체」라고 착각해버리기 때문에, 가끔씩 그런 개체가 나온다.
사실은 그냥 귀찮아하고 있을 뿐이고,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도 할 수 없는 실장석일 뿐이다.
더위에 내성이 있는 개체가 아니면 여름을 넘기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더위를 그저 받아들이며 불평만 늘어놓는 개체가 생존에 적합한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그것은 또한 다른 이야기.

어떻게든 더위를 피하려 발버둥치는 노력과 좌절은, 실은 공원에서 살아가는 실장석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경험이라 할수있다.
노력하는 것으로 상황이 개선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좌절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알게된다.
그러한 경험이 없이는, 실장석은 자신을 둘러싼 가혹한 현실과 맞설수가 없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고 전지전능한 존재라고 믿어버리게되는 실장석에게, 이런 좌절의 경험 유무는 상당히 크다.
이것으로 안이하게 행복회로로 도망쳐버리는 버릇을 억제하고,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을 몸에 익힌다.
물론 좌절에 의해 위석이 깨지는 개체도 적지 않으니까, 움직이지 않는것도 정답이라면 정답일지도 모른다.

친실장에게 골판지하우스에서 내쫓기지만 않는다면.

먹이를 수확하는 방법도 모른 채 친실장에게 강제적으로 독립을 맞게된 밥벌레 자실장은 어떻게 되는가?
대부분의 경우, 이미 체격적으로는 친실장을 넘어서게 된 밥벌레 자실장이 폭력으로 친실장을 지배해버린다는 결말을 맞게된다.

독립의 실패이다.

하지만 가끔씩, 다수의 개체가 살아남은 실장가족의 경우, 밥벌레 자실장이 친실장과 자매들에 의해 강제적으로 독립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매일의 양식을 얻을 재주도 없이 내던져진 밥벌레 자실장은 어떤 장소에 모이게 된다.

거기에 가면 먹이를 얻을수있다, 그렇게 꼬드김을 당한 밥벌레 자실장들이 몰려든다.

쓰레기통 가까이에 있는 크고 튼튼한 플라스틱 하우스.
그곳이 나태한 자실장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집에 머물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이를 찾을 방법도 모르는 들실장 밥벌레들은, 이 플라스틱제 하우스에서 매일 던져지는 동족의 사체를 먹으며 살아간다.

플라스틱제 하우스의 정면에는 「실장처분상자」라고 쓰여있다.

실장석 처리상자의 옆면, 발벌레들이 들어가는 입구에는 일방통행로가 달려있어, 한 번 들어간 밥벌레가 나오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밥벌레 들실장은, 이 처분상자 안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위의 투입구에서 떨어져내리는 동족의 사체(가끔은 살아있는 것이 섞이기도 하지만)를 주식으로 삼고, 그것으로도 모자라면 동족식을 하거나 똥을 먹거나……

실장석 가운데에서도 가장 밑바닥의 생활일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행복하다.
여기에서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똥은 다른 누군가가 먹어준다.
남의 똥을 먹는다 해도, 그것이 똥이 아니라고 인식하면 문제없다.
혹시 먹거리가 적어지면 굶게될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은 그 때에 생각하면 된다.

닫혀진 낙원에서 밥벌레 들실장들은 오늘도 자그마한 행복을 만끽한다.
공원에서 살아가는데 급급한 실장석들을 흘겨보며, 오늘도 입을 벌린채 천정의 처분상자 투입구를 올려다보는 밥벌레들.

공원의 진짜 승리자들은, 어쩌면 그들일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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