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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이야기 1~3 (완)

 

"데슷! 데슷! 데스...!"

성체실장 한마리가 땀을 비오듯 흘리며 뛰고 있었다. 무언가 쫓기는 마냥 필사적으로 뛰는 모습은 긴박감마저 흘러 내렸다. 얼마나 뛴 것일까. 가쁜 숨 사이로 근육이 터져 피멍이 붉으스름하게 맺혀 있었고 휘청휘청 거리는 다리는 엿가락처럼 휘면서도 용케 달리고 있었다.

"데헥...!데헥..!!"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안면이 푸르스름하게 남색빛이 살짝 도는, 치아노제에도 불구하고 성체실장은 눈물과 똥을 멈추지 않은채 걷는것이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로 애처롭게 뛰고있었다. 아니, 더이상 뛰는걸 포기하였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보며 어째서 자신이 이런 엄청난 대장정을 해야하는지 천천히 기억을 되돌리고 있었다.


두루마리 공원 외각 수풀지대.
인간의 손길이 반년넘게 닿지 않는, 고속도로와 인접한 이 수풀지대는 그야말로 천연 방벽이였다. 다만 차소음만 견딘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엄청난 양의 수풀은 곤충들의 서식지임과 동시에 수풀지대 뒷쪽, 고속도로 사이에 존재하는 개울은 공원내 실장석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풍족함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도랑이 얉고 수량이 풍부한 이곳은 여름엔 시원한 기온과 물놀이를, 겨울엔 약간의 따스한 기온을 만들어 주었다. 다만 먹이수급이 곤란하지만 개울넘어 고속도로 밑에 광활하게 펼쳐진 초지는 그야말로 보물밭, 천연의 먹이 저장고 였다. 그곳엔 탈피한 곤충껍질, 겨울이 오기전 죽은 시체, 각종 열매는 오히려 겨울나기에 최적화된 곳이였다. 약 15m가량 만들어진 이 수풀지대는 그야말로 공원 실장석들에게 꿈의 공간이며 불굴의 부동산이였다.

연초가 되면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해 거의 공원 전역에서 들실장들이 모여 토너먼트를 벌인다. 오직 승리한 최상위 8마리만이 거주할수 있는 선택받은 구역. 이곳을 가르켜 들실장들은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지, 혹은 은혜의 땅이라 불리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곳은 공원 구제시 하얀악마를 피해 소중한 자들을 대피시키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개울넘어의 초지는 하얀악마도 오지못하는 절대구역. 친실장들이 목숨을 걸고 하얀악마들을 유인하거나 시간을 끌 동안 보스실장은 자실장들을 이끌고 대피시킨다. 그렇게 살아남은 자실장들은 다시 구제가 끝나면 공원으로 오고 자라서 자신들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전해준다.

"마마 이쪽인 테치?"
"그런 데스. 오마에는 잘 기억하는 데스. 하얀악마들이 오면 이 곳으로 도망치는 데스. 자매나 마마나 신경쓰지말고 무조건 이곳으로 도망치는 데스."
"그런건 너무 슬픈 테치이...."
"장녀는 영리하니 마마의 말을 잘 알아들을꺼라 믿는 데스. 무조건 기억하는 데스. 마마의 마마도 이렇게 살아남은 데스."
"네 테츄...!"

슬픈 표정의 친실장을 보며 자실장은 괜스레 그런 친실장의 표정을 보기 싫어 일부러 환하게 웃었다. 살아남는다. 대를 이어 종을 유지한다. 모든 생명의 궁극적 목표이자 목적. 이 곳을 아는 실장석들은 자실장이 어느정도 크게되면 이곳을 찾아와 알려준다.

***

"아휴, 네. 네네. 그럼 일주일 뒤에 연합구제실시하겠습니다. 어휴 걱정하지마세요. 이번에 신형 위석서치를 도입했으니 확실합니다."

전화기를 붙들고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굽신거리는 남성은 전화가 끊기자 한차례 욕설을 퍼붓고는 거칠게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지만 어쩔수 없다. 상대는 두루마리 공원이 있는 D시의 시장이였으니. 2주전 부터 두루마리공원의 들실장 개체수 증가로 각종 민원이 쇄도하고 동물보호협회와 애호파들이 보호비를 얻기위해 한 브리더에게 신분사칭및 무단침입, 영장없이 가택조사, 임의구금, 악의적 편집 동영상을 유포하여 한 브리더의 인생을 파멸시킬뻔 했다. 한 기자의 추적으로 진실이 들어나고 한국이 한바탕 뒤집어졌다. 그후 이례적으로 브리더 사태 한달만에 실장석을 애완동물이 아닌 유해조수로 강등시키고 동물보호협회와 애호파연합에 검찰조사를 통해 철저하게 뿌리를 뽑아버렸다.

사람들은 애호파들이 부유한 재력가가 많다고 착각하지만 학대파 중에서도 재력가는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이라면 절대로 손댈수 없는 정부를 넘어선 힘을 가진 기업인 s사의 회장이 학대파인게 결정적이였다.

아무튼 D시 두루마리 공원은 민원에 의한 시장의 의뢰에 전국 12곳의 구제업체중 8곳이 연합한 구제인원만 240명의 유례없는 대규모 구제가 실시될 예정이였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구제에 맞춰 D시에 구제일이 시 홈페이지에 공지되었고 구제일이 2일 앞으로 다가왔다.

"뎃데레~ 오늘은 운이 몹시 좋았던 데스."

최근들어 두루마리 공원에 변화가 생겼다. 꽤나 오래전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오던 애호파 인간이나 사육실장이 보이지 않는 것이였다. 덕분에 식량사정은 나빠졌고 그에따라 약탈및 탁아, 인간을 향한 투분등이 증가하였다. 공원밖으로 나오는 들실장이 많아질수록 그에 비례해서 민원은 증가하였고 결국 구제가 실시된 것이였다.

사실은 실장석이 유해조수로 되어 사육실장은 모든 권리를 박탈당했고 거기엔 보호받을 권리도 포함되어있었다. 고의로 사육실장을 죽여도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육실장이 밖으로 나갈수 없게 되었고 사육실장을 기른다는 것이 불법이 되어 사육주들은 은밀하게 키울수 밖에 없었다. 행여나 소리가 밖으로 나갈세라 관리가 들어가자 사육실장은 미쳐날뛰고 사육주들도 아무리 다그쳐도 들을생각도 없고 못알아 쳐먹는 사육실장의 행태에 참다 참다 폭발하였다. 애호파와 학대파는 종이한장의 차이다. 애호파가 학대파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애호파가 보이지 않는 것에 쇄기를 박는 것이 바로 실장석 애호에 관한 법률로 모든 애호행위는 불법으로 벌금형이 아닌 실형이 선고 되는 것이였다. 흔히 말하는 이름에 빨간줄이 그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애호파와 자존심을 뽐내기 위해 공원 산책하는 사육실장이 사라진 것이였다.

"간만에 밥을 잔뜩 구한 데스. 이 정도면 내일 하루쯤은 쉬어도 좋은 데스...?"

친실장은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놀거나 산책을 했는지 기억을 해볼려고 해도 잘 기억이 나지않았다. 막연히 까마득하게 느껴지기에 친실장은 자신이 요즘 너무 아이들에게 소홀히 한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 살짝 침울해졌다. 밥과 물을 구하는건 하루라도 쉰다면 타격이 크다못해 일가실각의 길이 열린다. 가을이 다가올수록 아이들의 식탐은 점점 커진다. 거기다가 겨울나기를 대비하여 추자마저 낳아야 하기에 하루라도 허투루 쓸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일 하루정도는?

"괜찮은 데스. 내일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스."

고개를 주억거리며 내일 하루쯤은 생각하는 친실장은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친실장의 집은 화단 주목나무 뒷편에 위치했다. 작고 빽빽하게 자라는 가지와 나뭇잎을 가진 주목나무는 천연 방어막이자 가림막이였다. 물론 진입하기도 힘들고 재수없으면 머리카락, 옷, 심지어 봉투가 가지에 걸려 찢어지는 대형참사가 일어날수 있지만 그만큼 안전성은 더없이 훌륭했다.

"데에, 조, 조심하는 데스우..."

자실장들이면 쉽사리 들어갈수 있지만 중실장부터는 꽤나 힘들다. 빽빽하고 단단한 가지를 꺽고 구멍을 내는것부터 어지간히 인내심있고 영리한 녀석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큰일난 데스...!! 밥을 너무 담은 데스."

평소보다 2배는 많은 양의 밥에 봉투가 너무 빵빵했다. 이대로 들어간다면 봉투는 반드시 찢어지고 밥이 흘러나온다. 안절부절 못하는 친실장은 고민을 하던중 머리를 땡 하고 치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것은 투분과 탁아로 단련된 투척기술. 봉투를 양 다리 사이에 놓고 돌돌 돌리기 시작했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편의점에서 아이들 6마리를 죽게 만든 인간의 사악하고 비열한 수법이였다. 밖에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은 안에서도 나오지 못한다는 것. 친실장의 행동은 효과적이였고 내용물이 흘러나오지 않고 주목나무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다. 끙끙거리며 주목나무 사이를 빠져나오자 집앞에 놓인 봉투를 보며 희희낙낙거리며 친실장은 집안으로 향했다.

"마마 온 테치?"
"오늘은 조금 늦은 테치!"
"마마 무사한 테치?"
"그런 데스. 밥을 많이 구해서 늦은 데스. 마마는 무사한 데스."

자신을 반기는 아이들을 보며 친실장은 준비했던 말을 꺼냈다. 비록 봉투에 시선이 더 많이가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한창 자랄때의 아이들인지라 어쩔수 없었다. 당장 자신이 자실장일때도 지금 이 아이들과 별반 다를바가 없었다.

"오늘 밥을 이렇게 많이 구한 데스. 내일 하루쯤은 쉬고 오마에들과 함께 하는 데스."
"진짜인 테치?!"
"정말 테치? 거짓말은 나쁜 테치!"
"마마랑 함께하는 테치~"

밥보다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친실장은 그동안 자신이 신경써주지 못한게 안쓰러웠다. 아침에 나가 밤에 올때까지 얼마나 외로웠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려왔다.

"마마...와타치 괜찮은 테치. 와타치 이모토챠들이 있는 테치. 마마가 무리하지 않았으면 하는 테치."
"...그런 테치. 마마랑 함께하면 최고로 즐겁지만 밥 굶는건 싫은 테치."
"차녀 오네챠 그런말 하면 안되는 테치. 마마도 밥 구하느라 힘들텐데 내일은 와타치들끼리 조용히 있는 테치. 마마도 매일 일하는 테치. 하루쯤은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쉬어야 하는 테치."

친실장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자신을 이렇게 생각해주는 아이들이다. 예쁘지 않을리 없다. 자랑스럽지 않을리 없다. 사랑스럽지 않을리 없다. 그저 아이들이라고 생각했거늘 이렇게 번듯하게 자라다니 그저 기쁘고 행복했다. 한마리씩 꼬옥 껴앉아주며 봉투를 펼친 친실장은 오늘 만큼은 보존식 분류를 하지 않고 반을 꺼내서 골고루 나눠주었다.

"많이 먹는 데스. 마마는 괜찮으니 내일 마마와 함께 힘껏 노는 데스."
"테챱...네 테치~!"
"테챱테챱! 테끄윽. 안 테츄!"
"...챱. 테치이~~"

실장석에게 두번의 거절은 미덕이 아니다. 사실 무려 한번씩이나 거절을 한다는것 자체가 사육실장이나 들실장을 떠나서 굉장히 우수한 개체임을 증명하지만 아쉽게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고 봐줄 사람도 없다. 그리고 우수하던 분충이던 구제앞에선 모두 평등한 죽음만이 기다린다.

***

"입구 모두 판막이 설치해주시고요."

두루마리 공원은 들실장으로 인해 2번이나 대대적인 공사를 시행하여 동서남북 4개의 게이트만 막으면 외부의 침입과 내부의 탈출을 막도록 설계되었다. 또한 언제든지 자동화 기기로 단수를 할수 있으며 화장실 문도 개폐의 여부마저 원격으로 관리가 가능하며 화장실 천장과 벽에 설치된 노즐에서 도로리 용액을 살포시켜 화장실 안의 실장석들을 한줌의 액체로 모조리 만들어버릴수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애완동물보호협회나 애호파들에 의해 만들어놓고 한번도 쓰지 못했지만 이번부터는 다르다. 그렇게 들실장들이 공원의 이상기류를 눈치챈 것은 구제업자들이 각 게이트를 막고나서였다.

"큰일난 데스! 물이 안나오는 데스!"
"데엑! 땅이 왠지 흔들리지 않는 데스...까?"

그 말이 기폭제가 되어 새하얗게 안색이 변한 들실장 수십마리 수돗가에서 뛰쳐나가며 소리를 지른다. 공포는 전염이 되고 혼란은 더욱더 커지며 들실장들을 잡아먹었다. 자그마한 이성이 사라지며 공원 전체의 들실장들이 집단패닉에 빠져들기까지 앞으로 2시간.

공원구제, 즉 하얀악마가 오는 징조는 들실장들도 알고있다. 우선 물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가만히 조용히 있으면 어딘가에서 잔떨림이 느껴진다. 그리고 독한 약품의 냄새가 난다.

"장녀, 벌써 일어난 데스까? 좀더 자는 데스. 오마에같은 아이들은 먹고 많이 자야 무럭무럭 크는 데스."
"아닌 테치! 어제 일찍 자서 충분한 테치! 그러니 마마도 더 자는 테치! 마마와 노는건 햇님이 더 위로 가도 괜찮은 테치."
"장녀는 어쩜 이리 말도 예쁘게 하는지 마마가 잘 울지 않는데 눈물이 나올것 같은 데스. 장녀는 이리오는 데스. 특별히 마마가 안고자는 데스."

친실장 품에 안겨자는 것은 엄지나 구더기 혹은 막내가 하는 것이라 다 컸다고 생각하는 장녀는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우물쭈물 하고 있었다. 마마의 품은 따끈따끈 포근포근 하다. 하지만 자신은 이제 마마의 품에서 잘 시기가 지났다. 그렇지만 마마의 품에선 자고 싶다. 친실장은 장녀가 왜 그러는지 알아차리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뭘 부끄러워 하는 데스. 마마의 품에서 자는건 당연한 데스. 오히려 자주 해주지 못해서 마마가 미안한 데스. 그러니 장녀는 이리 오는 데스."

고개를 푹 숙이고 달려온 장녀는 친실장의 품에 폭 하고 안겼다. 친실장은 왠지 감개가 무량해졌다. 화장실 변기에서 점막에 쌓여 태어난게 어제 같은데 벌써 제법 묵직한 무게나 느껴질 정도로 컸다. 품에 안겨 도리도리하는 장녀는 왠지 온 몸이 흐물흐물 거리며 운치처럼 녹아흐르는 것 같은 기분에 빠졌다. 친실장의 냄새는 결코 좋은건 아니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안정되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잘먹은 친실장의 두툼한 뱃살에 푹 파인 자실장은 그 어느때보다 기분좋게 잠이 들었다. 친실장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하나뿐인 수건을 목 아래까지 끌어올리고 자리에 조심스럽게 누워 눈을 감았다.

'배가 묵직한게 임신했던게 생각나는 데스우.'

출산은 기쁨과 동시에 자격이 있는지 시험을 하는 시험대다. 솎아내기, 분충판별, 고아퇴치, 동족식 개체에게 벗어나기, 집까지 무사히 이끌고 오기. 그 외에도 여러변수가 있지만 어느 하나 소홀히 하다간 하무하리만치 일가실각이다. 출산후 급격히 약해지는 신체. 갓 태어난 뽀송하고 연한 아이들은 맛좋은 고기덩어리다. 뼈도 아물지 않았고 근육도 미숙하다. 집까지 걸어가는 것도 엄청난 일이고 고아들은 호시탐탐 바꿔치기를 시도한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면 집에가기도 전에 동족식 개체들에게 붙잡혀 다같이 죽는다. 너무 자신만 신경쓰면 집까지 도착하는 아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녀와 오녀는 낙원에서 잘 살고있는 데스까...'

말할수 없는 가슴속에 꽁꽁 숨겨두어야했던 사녀와 오녀의 기억. 자실장 3마리, 엄지하나. 이 친실장이 과거 낳았던 숫자였다. 하지만 엄지는 화장실 입구에서 보스실장의 밑에서 일하는 관리실장에게 보호비로 줘야 했고 사녀는 그냥 분충이라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사라졌다. 물론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분충 사녀가 알아서 사라져줘서 고맙기도 하고 스스로 솎아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어서 좋았다.

'일단 장녀와 함께 좀더 자는 데스. 이 시간 이후로 잠자는게 대체 얼마인......스으....'

친실장과 차녀, 삼녀의 코고는 소리가 박스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

"보스! 하얀악마들이 온것 같은 데스. 공원 입구로 정찰나간 30마리중 단 한 마리도 돌아오지 않는 데스우!"

눈물을 흘리며 애꾸실장앞에 조아린 짝귀 성체 한마리가 몸을 부들거렸다. 입에 담을수 없는 그것-, 하얀악마. 오로지 죽고 죽이기 위해 태어난 그들은 그 어떤 자비도 용서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죽어서 벗어나는 것. 보스실장도 하얀악마라는 말에 심장이 쿵쿵거리며 다리에 힘이 풀려 볼쌍사납게 넘어질뻔 하였다. 가까스로 참은뒤 보스실장은 재빠르게 명령을 하였다.

"남은 관리실장은 몇마리인 데스?"
"이제 남은건 10마리도 안되는 데스!"
"10마리 모두 사용해서 '그곳'으로 아이들을 대피시키라고 명령하는 데스."

고개를 꾸벅이는 짝귀는 밖으로 나갔다. 보스실장은 슬슬 그동안 받아먹은 값을 할 때라 느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기분이 나뻤다. 예감이, 느낌이 불길했다. 간혹가다 지나치게 예감이 좋을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 날인것 같았다. 그것도 안좋은 쪽으로. 후다닥 그 어느때보다 민첩하게 밖으로 도망치는 짝귀를 보며 보스실장은 양 뺨을 손으로 문지르며 얼굴을 풀었다. 이제 자신이 나서야할 때다.

"아이들은 공원의 보배인 데스. 아이들만 무사하면 와타시들은 다시금 공원을 지배하는 데스."

비장한 표정으로 박스 6개를 이어붙여 개조한 거대한 성을 나서는 보스실장의 모습은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의 모습처럼 비장했다.

보스실장은 공원내 중자실장 80마리를 입구측으로 밀어넣고 잠깐의 시간을 벌었다. 그사이 친실장들을 규합, 자실장들만 따로 관리실장에게 보내 '그곳'으로 향하게 하였다.

"잘듣는 데스! 하얀악마들이 침입한 데스! 오늘 우리는 모두 죽는 데스! 하지만, 와타시의 말을 따르면 반드시 아이들만은 살릴수 있는 데스!"
"보스, 그게 사실인 데스까...?"
"확실한 데스! 장담하는 데스! 비록 우리들은 죽지만 이 공원의 보배인 아이들은 살아남아 오마에들의 뒤를 이어 다시 공원에서 살게되는 데스! 그러니 와타시의 말을 따라서 하는 데스!"

함성이 울려퍼진다. 보스실장의 말은 하얀악마에 의해 꺾인 들실장들의 의지를 다시금 타오르게 만들었다. 체고 30cm, 체중 1.0kg. 근력 1.8kg의 작은 소인 실장석. 비록 무가치하고 무쓸모하지만 그들은 보스실장의 연설로 분충성을 투쟁심으로 바꿔 구제역사상 최초로 인간에게 대항할려고 하였다.

국내외 실장석 사례중 처음이자 마지막인 희귀사례로 '두루마리 공원 실장 봉기'의 시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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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빨리 움직이는 데샤아! 오마에들 하얀악마에게 모조리 죽고싶은 데스까!"
"마마-! 오네챠! 마마!"
"밀지마는 테치이!"
"와, 와타치 넘어진 레츄! 밟지 마는 레쨔아! 오네챠! 구해주 레짓!"
"이모토챠, 와타시 손을 놓지마는 테치....?? 이, 이모토챠아아!"
"치푸푸. 이모토챠인 렛츄~. 와타치는 절대로 손을 안놓으니 걱정 마는 레츄! 새 오네챠는 착해보여서 절대 안심안심 레챠아! 챠아! 때리는건 나쁜 레치! 때리지 마는 레찌!"

혼돈의 도가니였다. 짝귀 실장은 인상을 쓰며 북적거리며 수백마리가 양떼처럼 득실거리는 '그곳'으로 향하는 루트중 한개인 화장실 근처에 있었다. 과연 이중 얼마나 살아남을지 걱정이였지만 쓸데없는 것이였다. 살놈은 살아남는다. 죽을놈은 뭔 짓을 해도 죽는다. 그동안 몇번의 하얀악마의 습격에서 얻은 값진 경험이였다.

대규모 무리이동은 필연적으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나약한 녀석은 알아서 낙오된다. 맺고 끊음이 확실하지 않는 어설픈 온정이 있는 녀석도 마찬가지. 그만큼 험난하고 고된 길이였다.

특수한 지리적 요건이 하나 있을 뿐인데 두루마리 공원의 들실장들은 기타 다른 공원의 들실장과 패턴이 달랐다. 마치 엑소더스 처럼 짝귀 실장을 필두로 생명을 건 대장정에 나서는 실장석들의 표정은 사뭇 어두웠다. 기약없는 탈주. 마마없는 고아생활. 정든 고향, 정든 땅을 떠난다는게 심적인 부담이 컸다. 스스로 떠나는게 아닌 외압으로 쫓겨난다는 사실도.

테챠아아아! 가지마는 테치!
어딜가냐 레샤아! 와타치를 꺼내주고 가라는 테치이!
도망가지 마는 테치! 같이 가는 테치!

대물저격총마저 견디는 초고강도 방탄유리다. 실장석들이 수억마리가 있어도 절대로 깨지거나 흠집조차 나지않는다. 원격장치로 화장실 안에 갇힌 수십마리의 들실장들이 울부짖으며 문을 콩콩 거리고 있었다. 한쌍의 적록색 동그라미가 총총히 묻어나는 화장실 안의 들실장들은 점점 서서히 움직이는 무리를 보며 필사적으로 울부짖었다. 운치를 던져도 유리벽에 부딫쳐 흘러내린다. 어깨를 들이 박으면 어깨가 부서지고 달려서 몸을 부딫지차 펑 하고 전신이 포탄에 맞은 것 마냥 산산조각 나서 살점과 피가 후드득 떨어진다. 벗어날수없다. 물도, 먹을것도 없다. 그저 여기에 갇혀 하얀악마들이 올때까지 있어야 한다.

너무하는 테치이이이이!! 와타시도 공원의 실장인 테치!
버리지 마라 테샤아아!! 당장 돌아오라 테치!
문씨 와타치의 귀여운 춤을 보고 열어주는 렛치

춤을 춘다. 노래를 부른다. 이마를 타일에 대고 고개를 조아린다.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자비와 구원을 바라지만 무생물은 답이없었다.

-푸쉭....피시이-. 피이이이...

그 순간 하늘에서 기묘한 소리가 들려온다. 얼굴을 들어 알수없는 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는 실장석들. 곧이여 그 소리는 벽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삐-, 삐-, 삐이이이

삐소리가 불길하다. 처음 겪는 사태지만 이 곳의 실장석들은 알수없는 불길함에 표정을 굳혔다. 가늘고 긴 소리는 실장석들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파아아아

몇몇 놈들은 하늘과 벽에서 마마를 따라 수돗가에 간 기억을 떠올렸다. 이것은 마치 물을 틀때와 비슷하지 않는가. 그리고 가늘고 뿌연 물방울이 분무기 처럼 분사되기 시작했다. 사각지대는 없다. 틈과 틈 사이에 숨은 저실장 한마리라도 철저하게 없앤다는 듯 분사되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인...테챠아!
레지이이!
와, 와타시의 머리카락! 옷! 몸이 녹아내리는 테치이!!
레에엥! 우지챠 죽으면 안되는 레치!
손님과 발님이 사라지는 테치!

분무기처럼 분사된 도로리 용액으로 화장실 안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변하고 있었다. 유리벽 넘어 이주무리 맨 마지막 부근의 자실장들은 조용해진 화장실에 하얗게 변하자 침을 삼키며 보고있었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열린 화장실. 자실장 3마리가 신중히 접근하지만 텅 빈 화장실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카락, 피, 똥, 옷조각 한개마저도. 깨끗이 변한 화장실의 모습에 의아하는 자실장 3마리의 뒤를 이어 엄지나 자실장 30마리가 슬금슬금 접근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간 테치?"
"모르겠는 레치이..."
"...??테! 테챠! 낙원인 테치! 낙원으로 간 테치!"

낙원. 하얀악마의 습격시기에 낙원이라니. 낙원이라는 말에 마지막 이주무리의 반인 120마리나 되는 실장석들이 우르르 화장실 안으로 우겨들어가기 시작했다. 시장바닥보다 시끄러운 화장실. 엄지 한마리가 도도도 거리며 뛰어가지만 문이 덜커덩 닫혀버렸다. 낙원행에 참가하지 못한 엄지를 보며 화장실 안의 실장석들은 비웃었지만 30초뒤 밖의 엄지를 미친듯이 부러워 하며 녹아 흘러내렸다.

"레...레챠아아! 함정이였던 레치이!!"

유리문 넘어로 녹아흐르는 동족들을 보며 빵콘한채 뒤로 넘어진 엄지는 그제서야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보지만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텅 빈 공간에 홀로 남은 엄지는 닫힌 문 앞에서 주저앉아 그저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

"오마에!"
"데스!"
"오마에!"
"데스!"
"오마에 들은 아직 공원에 하얀악마가 왔다는걸 모르는 녀석들에게 알려주러 가는 데스!"
"데스!"

지목 받은 두마리는 함차게 하얀악마가 왔다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다. 여기서 소리를 지르는 멍청한 녀석들의 행동에 보스실장은 골이 아파왔지만 지금은 저런 머저리들의 손 한개라도 아쉬울 때였다. 그저 잘하면 좋고 못하면 어쩔수 없다고 받아들이며 습격조와 유인조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체력이 그나마 좋은 녀석들을 유인조로, 자신은 습격조로 편성했다. 유인조는 자신이 받은 공물과 근처 집에서 약탈한 보존식을 마구 먹이고 똥도 충분히 싸게 만들었다.

"잘듣는 데스. 관리실장 한마리를 붙여주는 데스. 그녀석의 말에 따라 인간들을 최대한 유인하면서 아이들이 도망칠 시간을 버는게 목적인 데스. 유인조와 와타시가 함께할 습격조가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이 공원 실장석의 운명이 정해지는 데스."
"와타시만 믿는 데스! 햇님이 사라질때까지 인간들을 유인하는 데스!"

가슴을 탕탕 치며 자신감에 가득찬 호기롭게 말하는 유인조 관리실장을 보며 어깨를 두드리며 출발시켰다. 보스실장은 멀뚱하니 서있는 성체 한마리에게 유인조와 멀리 떨어져서 관찰을 시켰다. 보스실장은 왠지 오늘 느낌이 너무나 불안해서 혹시나 유인조가 생각보다 빨리 전멸할 경우를 생각해냈다.

"자, 이리오는 데스. 와타시가 모으고 모은 보물들을 주는 데스."

습격조 조장 보스실장은 6개중 가장 오른쪽 집을 열고 보물들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못, 연필, 철사, 샤프, 커터날, 부러진 쇠심...30마리가 무장을 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보스실장을 선두로 공원 중앙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힐끔 뒤를 보는 보스실장은 사나운 눈초리로 무장한 30여 마리의 성체실장들을 보며 어딘가 든든해지는 것을 느꼈다. 무시무시한 보물들을 든 30마리 성체들. 그 기세도 제법 사나워 도망치는 공원 들실장 조차 넋을 잃고 바라보거나 빵콘할 정도였다.

'하얀악마들은 보통 10명인 데스. 이 넓은 공원에서 적당히 치고 빠지면 충분한 데스.'

"오늘이야 말로 이 공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데스!"
"데샤아!!"
"데-갸-!!"

***

"하얀악마가 오는 데스우! 모두 도망치는 데스!"

보스실장의 명령에 헐떡거리며 공원을 질주하는 한마리 들실장. 뛰는건 결국 포기하고 걸으며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방향으로 목표를 잡았다. 도망치는 동족들 사이에서 목에 핏대가 올라서며 피가 목구멍 밖으로 나올때까지 소리를 지르는 들실장.

친실장은 멀리서 들리는 희미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무언가 긴박한 외침이였다. 멍한 머리와 흐릿한 눈을 부비며 잠시 주저앉아 뱃살에 파묻힌 장녀를 끄집어 내 바닥에 놓았다. 제법 정신이 돌아오자 막연히 멀리서 들리던 소리가 조금씩 귀에 들어오가 시작했다.

-도...치는...하..마..!

"데에. 무슨 소란인 데스까. 분충이 죽고싶어 날뛰는것 같는 데스."

-도망치....데스! 하얀..악...나타난 데스!

고개를 갸웃거리며 간만에 푹 쉬어 피로도 많이 사라졌고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슬슬 아이들을 깨울려는 차에 다시금 소리가 들려왔다.

-도망치는 데스우!! 하얀악마가 나타난 데스!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손을 뻣은 친실장의 몸이 덜커덕 굳어버렸다.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인가. 하얀악마라니 농담도 이정도면 더이상 장난으로 치부할수가 없다. 친실장은 화를 참으며 집 문을 연 순간 우르르 도망치는 들실장과 어미잃은 고아들의 울음소리, 밟아죽어가는 엄지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퍼지는 것을 느꼈다. 귀를 기울이면 공원 중앙쪽에서 희미하게 고통에 울부짖는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데뎃?!"

정신이 번쩍든다. 과거 애호파에게 콘페이토를 받기위해 쟁탈전에 뛰어들었다가 팔 한짝 뜯겨져 간신히 목숨만 부지했던 그 때 처럼 전신이 싸한 기운이 감돌았다. 하얀악마! 친실장은 집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마구 깨우기 시작했다.

"일어나는 데스! 모두 일어나는 데스우우우우!!"
"마마아...좀더 자는 테치이."
"오늘은 마마와 함께하는 날인 테치. 그러니 더 자는 테치..이.."
"마마? 무슨 일이 있는 테에..."
"빨리 일어나라는 마마의 말이 안들이는 데샤아아아!!"

친실장의 다급하고 분노에 찬 고함소리가 자실장들의 뇌를 뒤흔들었다. 역대급 고함소리에 화들짝 일어난 자실장들은 밖의 소란스러움과 비명소리에 전신이 덜컥 굳어버렸다.

"하얀악마가 온 데스! 오마에들 모두 버리고 빨리 마마를 따라 나오는 데스!"
"하얀악마 테챠!"
"큰일난 테치이!"
"도망치는 테치! 도망가는 테치!"

하얀악마라는 소리에 자실장들은 공포에 질려 친실장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소란을 피웠다. 친실장은 그런 자실장들을 보며 버럭 소리를 쳤다.

"정신 못차리냐 데스!! 지금 장난할 때가 아닌 데스! 마마를 따라 나오는 데스!"

친실장의 소리에 어느정도 진정이 된 자실장들은 꾸물거리며 두려움에 벌벌 떨며 친실장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밖의 상황은 생각보다 더 엉망이였다. 피난길에 오르는 녀석들과 그 틈을 노려 약탈을 하는 녀석, 고아들은 다른 들실장들에게 엉겨붙고 있고 고통에 찬 단말마와 비명은 점점 크고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서가는...데? 차녀 뭐하는 데스! 빨리 나오는 데스!"
"차녀챠 빨리 나오는 테치!"
"차녀 오네챠 장난치지 마는 테치! 진짜 급한 상황인 테치!"
"테에...와, 와타시는 여기 있는 테치! 밖은 무서운 테치! 집은 안전한 테치! 집을 버리고 마마를 따라서 갈수 없는 테치이! 집안엔 보존식과 물이 있는 테치! 즐거운 공씨도 있는 테치!"

친실장의 안색이 변했다. 집이 안전하다고 믿어버린 차녀는 벌벌 떨면서 집안에서 나오기 싫다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촉박하다. 더이상 지체하다간 모두 죽는다. 친실장은 살짝 분충끼가 있으며 어리광이 다른 자매들보다 심한 차녀를 포기할수밖에 없었다.

"차녀는 집에 남는 데스. 만약 살아남으면 이 공원에서 차녀가 마마의 뒤를 잇는 데스."
"마마?! 차녀챠와 함께 가야하는 테치!"
"장녀는 닥치는 데스우! 이건 일가실각이 걸린 문제인 데스! 마마와 함께 간다고 살아남는 보장이 없는 데스! 만약에 차녀가 운이 좋다면 살아남아 보존식과 물을 먹으며 성장해서 이 공원을 자들로 가득채우는 데스! 그리고 차녀가 실패해도 장녀와 삼녀가 있는 데스. 어느 한쪽에 모두 힘을 쏟지마는 데스. 차녀는 집안에서 절대로 안전하다고 느낄때까지 가만히 있는 데스. 안에 있는 마마가 모은거 모두 써도 되는 데스! 그것을 먹으며 버티는데스. 알겠는 데스까?"
"아, 아아안 테츄!"

후다닥 집안으로 들어간 차녀는 마마의 수건안으로 쏙 몸을 집어넣었다. 친실장은 열린 문을 손수 닫으며 잽싸게 멍한 장녀와 삼녀의 손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달렸을까. 들실장들이 무리를 짓고 쉬고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친실장은 표정를 굳힌채 울면서 친실장들의 품에 안긴 자실장들을 보았다. 하루아침 사이에 집과 봉투, 물을 잃어버렸다.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친실장은 불안에 떠는 장녀와 삼녀의 손을 꼭 쥐고 장녀를 붙들고 속삭였다.

"장녀, 저번에 마마가 말한곳 기억하는 데스까?"
"테, 테에..기억하는 테치"
"장한 데스우. 장녀는 지금 바로 그곳으로 뛰어가는 데스. 절대로 절대로 멈춰선 안대는 데스."
"마마?! 함께가는거 아닌 테치??"
"마마는 최후의 사태를 대비해야하는 데스. 그곳은 인간도 감히 올수 없는 곳인 데스. 오마에같은 아이들만 갈수있는 데스. 마마는 삼녀와 함께 다른 길을 찾아보는 데스. 장녀, 여태까지 했던 마마의 말을 기억하는 데스. 이제부터 장녀는 어엿한 한마리 들실장으로 이 세상에 맞서 싸워야 하는 데스! 장녀는 마마의 자랑인 데스. 마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중 가장 착하고 영리하고 영양도 충분한 데스. 그러니 마마의 말을 이해할꺼라 믿는 데스."

장녀는 흘렸다. 친실장이 무엇을 말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친실장은 하얀악마와 맞서싸워 자신이 도망칠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벌려는 것이였다. 삼녀도 영리하고 착하지만 몸이 약하다. 그렇기에 친실장과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마마의 모습을 보기 싫어 장녀는 고개를 숙이고 마마의 바램대로 뛰기 시작했다. 고개가 저절로 뒤를 향하지만 참는다. 지금 마마의 모습을 본다면 도망칠수 없기에. 생은 이어진다. 친실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장녀에게로. 장녀에게서 그 아이에게.

"테짓!"
"자, 장녀챠아아아아아아?!!"
"오네챠아아아아!!"

그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였다. 친실장의 희망을 품은 장녀는 고개를 숙이고 달리다 눈앞의 나무에 길게 튀어나온 뾰족한 나뭇가지를 보지 못했다. 서러움과 혼자 살아남는 다는 부담을 떨쳐내기 위해 있는 힘껏 뛰던 장녀는 시원스럽게 뒷통수에 나뭇가지가 튀어나온채 몸을 축 늘어뜨렸다. 뿌지직 소리와 함께 팬티가 부풀어 오르며 그 무게로 머리가 갈라지며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생명의 바통이 5초 남짓 이어가다 떨어졌다. 친실장과 삼녀는 머리가 가로로 두쪽난 장녀의 사체를 들며 울부짖었다. 탁한 눈알. 길게 늘어뜨린 혀. 부러진 것 마냥 힘없이 덜렁이는 팔다리.

"하얀악마인 데스우! 다들 도망치는 데스!!"

슬픔에 잠길 시간은 없다. 친실장은 뒷통수를 때리는 소리에 장녀의 사체를 떨어뜨리고 삼녀를 품에 안고 달렸다. 이렇게 된 이상 삼녀만이 희망이다. 기필코 삼녀만은 지킬것이다. 친실장은 무리를 짓는 들실장과 달리 옆쪽으로 새어 뛰었다. 목표는 그곳. 삼녀만이라도...

***

"데..데헤...데덱, 데덱, 데챠아?!"

유인조 감시 실장은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린것도 모른채 빵콘을 한채 부들거리며 수풀 사이에서 꼼짝도 할수가 없었다. 30m 넘어로 그 누구보다 빠르다고 자부하며 생각하던 유인조가 고작 20초 남짓한 시간만에 모조리 전멸하였다. 가장 빠른 유인조 대장실장은 인간의 세걸음만에 따라잡혀 뒷머리카락 부터 불이 붙어 전신이 활활 타오르며 수십미터를 뛰다가 쓰러져 죽었다. 다른 유인조도 마찬가지. 인간이 휘두르는 무기와 발걸음을 벗어나는 녀석이 존재하지 않았다.

"주주주, 죽는 데스우..! 절대로 죽는 데스! 이건 무조건 죽는 데스! 벗어날수 없는 데스! 그런거 가능할리 없는 데스우!!"

진실을 안 대가일까. 감시실장은 지나친 공포로 미쳐버려 수풀 밖으로 뛰쳐나가 기괴한 웃음을 내며 인간들을 향해 갔다.

휙 하는 소리와 함께 퍼석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감시실장의 대가리가 깨진 수박마냥 터져 머리없는 몸통이 차디찬 바닥에 쓰러졌다.


'늦는 데스...너무 늦는 데스!'

보스실장은 무장한 무리를 이끌며 감시실장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자 초조해졌다. 이상하다. 10명 남짓한 하얀악마 치고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곳에서도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보스, 언제까지 기다리는 데스까?"
"와타시의 이 보검만 있으면 인간따위 단숨에 죽여버리는 데스! 보스 우리들을 믿는 데스!"

보스실장은 계속해서 소중한 돌이 따끔거리는 불길한 신호와 잔뜩 기합이 들어간 무장조들을 보며 갈팡질팡 하였다. 선택의 순간이 왔다. 싸울것이냐 좀더 감시실장이 오기를 기다릴 것이냐. 보스실장의 두 눈이 반짝였다. 꽉 다문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선택이 결정되었다. 남은건 실행뿐.

"데챠아! 챠아아아!!"
"데퍄앗! 데키이이이!!"
"데게롯!"
"데짓-!"
"데츄아아!!"

보스실장과 무장조들은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인간 무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숫자는 고작 5명. 그에반해 자신들은 30마리가 넘으며 하나같이 치명적인 무기로 무장했다. 질수가 없는 싸움이라 생각하며 보스실장을 비롯한 무장조들은 잽싸게 수풀밖으로 튀어나와 수십미터 밖에 있는 하얀악마 무리로 돌진하였다.

"허, 쒸펄. 살다살다 실장석 새끼들이 돌격하는건 처음이네."
"저녀석 덩치를 보아하니 이 공원 보스같은데요?"
"기습도 아니고 멀리서 오는건 뭔 경우라냐. 설마 손에 든거 믿고 오는거야?"

두런두런 아무런 불안도 없이 말하는 구제업자들은 그럴수밖에 없다. 커터날도 실장석이 들면 얉은 티셔츠 하나 가를수도 없다. 그것이 바로 실장석. 못도 찌른다고 찌르지만 오히려 자신이 그 반발력에 꿰뚫리지 않으면 다행이였다.

보스실장은 의기양양하게 기선제압을 하기 위해 인간들에게 다가갈수록 본능적인 위압감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개장수 앞의 개처럼 그동안 구제로 수만마리나 동족을 죽인 구제업자들에게 나는 무서운 분위기와 느낌,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옅은 냄새는 머릿속에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우, 우린 무적인 데샤! 보스 다같이 가는 데스! 오늘 우리들은 전설이 되는 데스!"

나름 체격이 큰 한 녀석의 말에 보스실장은 정신을 차렸다. 자신은 이 공원의 정점, 보스실장이다. 자신이 두려워 해서야 말이 안된다. 호흡을 가다듬고
최후의 스파르타인 처럼 자세를 취했다.

"모두 공격하-데엣?!"

가깝다. 너무나 가깝다. 엄청 멀리 떨어진 인간이 어느새 눈깜짝할 사이에 다가와버렸다. 보스실장은 무언가 말을 할려고 입을 다시 여는 순간 의식이 그대로 날아가버렸다. 연합구제팀은 알아서 묘자리를 찾아 온 들실장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기특한 나머지 손수 맞이하러 간 것이다. 맨 앞의 보스실장의 머리통에 호쾌한 일격. 삼단봉에 진득하게 묻은 피와 살점이 주욱 늘어져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단 일격에 보스실장이 자실장 크기로 뭉게져 죽었다. 단 일격만에 30마리의 들실장들의 전의가 사라지는데 충분했다.

가장 발이 빠르고 체력이 좋은 유인조도 10초도 버티지 못하고 죽어가는게 현실. 무기들 들었어도 반항이나 공격한번 못하고 역으로 자신들끼리 살기위해 서로를 공격하다 죽는데 1분밖게 걸리지 않았다.

구제시작 2시간이 경과하자 공원 전체에 퍼진 하연악마의 공포로 집단패닉으로 서로간에 지리멸절 하기 시작했다. 단일 팀으로 구제를 실시했다면 유인조와 습격조들은 나름 20분정도 시간을 만들수 있었겠지만 전국 8개 구제업체, 총인원 240명의 대규모 구제다. 국내최대 실장석 서식지인 두루마리 공원은 월드컵경기장 크기의 면적을 자랑하며 실장석 번식전에도 다양한 생태환경 조성으로 나름인기 있는 공원에 속했다. 그런 명성답게 대규모 구제는 보스실장이 생각하지도 못했고 자실장들과 공원의 미래를 위한 최후의 발버둥은 끝내 무의미해져 버렸다.

-삐빅
[아아, 구제연합본부에서 일시 통보를 드립니다. 현재 공원 구제율 30%로 금일 종료시인 17시까지 위석서치 사용을 허가합니다.]

무전기에서 울려퍼지는 소리에 손에 든 스마트폰 크기의 검고 네모난 기계를 키자 로젠 마스티카 서치 라는 글자가 뜨며 레이더 화면이 표시되었다. 깜빡이는 화면에 맞춰 작은 동그라미가 잔뜩 표시되고 있었고 손가락으로 확대를 하자 놀랍게도 고저가 표시되었다.

신형 위석서치. 기존 위석서치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땅속이나 나무 위 같은 고저차이를 표시해주며 주변 위석서치와 연동하여 삼각기법으로 위치 오차를 획기적으로 줄였다.

-10m전방 땅속 실장석 세마리가 감지되었습니다.

음성 네비게이션 기능으로 이어폰을 착용시 일일히 볼 필요도 없다. 이어폰을 낀 구제업자들이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마 장녀 오네챠는....죽은 테치?"
"그런 데스! 이제부터 삼녀 오마에가 장녀인 데스! 오로롱..오로롱"

구슬피 울면서 부지런히 걷는 친실장의 품에 자실장 한마리가 안겨있었다. 절대로 뺏길수 없다는 듯 강하게 안고 가는 친실장은 주변을 경계하며 신중히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동족이 죽고 있을지 상상도 안가지만 그저 자신과 하다못해 유일한 이 아이만이라도 살아남았으면 했다.

친을 잃은 고아들이 자신을 보며 반색을 하며 뛰어온다. 놓치면 죽는다. 조금이라도 상대를 해서 지체하면 일가실각이다. 어느 한쪽도 쉽사리 양보할수 없는 목숨이 걸린 일이였다. 엉겨붙는 고아실장이나 뿌리치는 친실장이나 힘들다. 하지만 고아실장은 자실장 이하의 개체. 친실장은 성체다. 무자비하고 잔인하게 자신의 치맛단을 붙잡는 녀석을 발로 찧어 빻는다. 곤죽이 되어 바닥에 스며드는 녀석과 그것을 보고 다른 곳으로 향하는 고아실장의 모습에 살짝 안도하며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공원 제일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곳'까지 갈 길은 멀고 험난하다.

도착까지 1:30분.
구제종료시 까지 1:20분.



"마마...아직 있는 테치?"

수건 밑으로 숨은 차녀는 머리를 빼꼼 내밀고 주변을 둘러본다. 모든게 그대로 있다. 보존통, 어제 먹다남은 밥이 든 봉투, 반쯤 차있는 페트병, 마마보다 더 좋아하는 장난감 공. 운치굴에서 살짝 나는 운치냄새는 평소와 다름없는 풍경이였다. 일상의 집. 하지만 마마나 자매들이 없다. 썰렁한 느낌마저 들 정도로 고요한 집밖과 집안은 차녀에게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만들어주었다.

혹시 자신만 남은게 아닐까. 혹시 마마와 장녀, 삼녀는 더 좋은 곳으로 간게 아닐까. 혹시 하얀악마라는 말로 자신이 버림받은게 아닐지.

"테에에엥! 마마 어디있는 테츄! 와타치 여기 있는 테치! 마마 수건 밑에 있던 테치! 테-흡~ 테-흡~."

수건에 밴 친실장의 냄새를 맡는다. 잠시나마 안정을 찾았지만 어디까지나 잠시일뿐. 곧바로 다시 찾아온 외로움에 몸부림을 치며 마마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냄새를 맡은게 사태를 악화시켰다. 친실장의 냄새에 더욱더 커져버린 쓸쓸함. 마치 세상에 혼자 남은 기분에 울어보기도 하고, 바닥에 누워 팔다리를 흔들며 떼를 써보기도 한다.

"마마가 안나오면 와, 와타치 바닥에 운치 싸는 테치! 이건 진짜인 테치!"

-쁘디딕. 쁘릿, 브릿

팬티가 효모에 부푼 반죽마냥 훅 부풀어 올랐다. 엄격한 친실장 밑에서 자란 자실장들의 나름 상당히 깨끗한 팬티가 천천히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와타치 운치 팬티에다가 싼 테치! 진짜인 테치! 그러니 마마는 나와서 와타치 혼내주는 테치! 마마, 운치 싼 테치이! 운치, 팬티에다 싸버린 테치!"

하지만 친실장은 오지 않고 늘 자신을 나무라던 장녀도 없다. 자신에게 걱정스런 말을 건네는 미운 삼녀도 없다. 삼녀는 스스로 해볼수 있는 모든 행위를 다 해버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 자신은 혼자다.

비로소 객관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받아들이자 물속에서 천천히 부유하는 부표처럼 친실장의 마지막 말이 한마디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마..와타치 살아남는 테치. 마마가 모은거 제대로 먹으면서 살아남아 마마처럼 훌륭한 마마가 되는 테치. 오네챠와 이모토챠들 몫은 남겨두는 테치. 혹시 집으로 돌아올수도 있는 테치. 마마처럼 커서 아이를 낳고 마마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주는 테치! 와타치의 마마는 이랬다 테치! 와타치의 마마는 자랑스럽다 테치! 마마 힘내라 테치-! 오네챠 힘내라 테치이-! 이모토챠 끝까지 살아남아라 테치이!!"

시련은 존재를 성장시킨다. 응석쟁이에 분충끼 있는 차녀는 껍질을 깨고 새롭게 태어나는 새 처럼 스스로 자신안의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났다. 실장석 수십만 마리를 갈아서 간신히 한마리 나올까 말까한 개념실장. 사육실장의 궁극의 목표였다. 학대에 가까운 훈육도 일반적인 교육이 통하지 않는 실장석에게 시련이나 고난을 인위적으로 주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바로 사육실장 브리더의 핵심 교육이다. 만약 브리더가 봤다면 수백만원의 가치를 지불해서라도 얻을 개념실장. 차녀는 기이할만큼 적막한 집밖을 이해했다. 자신의 운명을 이했다. 이 순간 만큼은 차녀의 지능은 장녀를 뛰어넘어 가진 경험으로 다져진 친실장을 초월하여 아종에 다달았다.

"힘내라 테치이-!!"
"힘내라 테치이!"

겁쟁이에 응석받이인 자신이 할수있는건 이것밖에 없다. 마마가, 오네챠가, 이모토챠가 듣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저 자신이 할수 있는 최선이라 판단한 것을 할뿐. 그저 이 어쩌면 의미없을 울부짖음이 기적적으로 닿기를.

땅이 울린다. 쿵쿵 소리가 무섭게 귀를 강타한다. 흔들림은 집이 움직이며 다리에서 전해오는 감각은 과거 무서운 개미가 자신을 타고 오르는 감각과 같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겠다. 스스로 기회를 져버리고 몸부림도 치지않으며 마마와 자매들의 기대를 저버린 자신에게 안식은 없다.

"힘내라! 힘내라 테-치-!!"
"살아남는 테치! 마마의 의지를 이어가는 테치! 절대로 굴복하지 말아라 테치!!"
"마마 힘내는 테치! 포기하지 마는 테치! 오네챠 일어서는 테치! 이모토챠 끝까지 걸어가는 테치이!!"

진동이 멈췄다. 차녀는 그럼에도 외치는걸 멈추지 않았다. 골판지 박스가 허무하게 뜯겨나갈때도. 골판지 박스안에 한 자실장이 눈물을 흘리며 신문지 조각을 흔들며 테치테치 거리며 외치고 있었다. 하얀방복을 입은 마스크를 쓴 남성은 무덤덤하게 차녀에게 크고 두껍고 단단한 군화를 가져다 대었다.

"테-찌잇!"

린갈이 없는 인간에게 실장석이 개념이던 분충이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불행한 것이다. 소통의 부재는 불행을 낳는다. 어쩌면 다른 생이 펼쳐질수도 있는 차녀는 군화에 짖이겨 찐득한 덩어리가 되지 않을수도 있었다. 브리더에게 약간의 훈육을 받고 수천만원에 팔려 호화스런 생활도, 살아남아 다시금 이 공원에 실장석들을 꽃피울 수도 있었던 차녀는 그렇게 죽어버렸다.

도망치던 친실장의 귀가 쫑긋 거렸다. 뛰고 걷고 집에서 지금 위치까지 약 380m. 갈 길은 지금까지 온 거리의 2배가 넘는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도저히 물리적으로 들을수 없는 거리의 집에 남겨진 차녀의 소리가 들린것 같았다. 소리는 아니다. 몸안의 소중한 돌에서 찌잉 거리는 따스하고 힘이나는 알수없는 기운이 나는것 같았다. 혹시 자신이 잘못생각한건 아닐까. 차녀를 너무 섣부르게 판단한건 아닌지, 차녀를 강제로라도 데려와야 했는지 도통 알수가 없다. 복잡해지는 머리를 느끼며 자신의 품안에 잠든 삼녀를 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하필이면 이런 때에 태어나 이 먼 거리까지 도망쳐야 했고 믿음직하고 든든한 장녀의 죽음을 봐야했다.

"마마..힘내라 테치...오네챠, 살아남아...테치...이모토...포기마는...치이..."

삼녀의 잠결에 중얼거림에 친실장의 몸이 순간 굳었다. 삼녀가 말했지만 목소리는 분명 차녀의 소리였다. 친실장은 눈물을 삼켰다. 이젠 마마로써 자신이 해야할 때다. 모든걸 하고나서 눈물을 흘려도 늦지않는다.

"차녀...오마에의 목소리 확실히 들은 데스..!!"

도착까지 1:00

***

보스실장이 실각하고 습격조가 전멸했다. 유인조도 전멸했다. 하지만 그것을 알려줄 실장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직도 공원 곳곳에 보스실장을 믿고 버티는 들실장이 수도없이 많이 산재해 있었다. 최초로 출발한 짝귀실장이 이끄는 자실장 무리는 어느덧 2/3지점에 도착한뒤 잠시 쉬고 있었다. 짝귀는 불안한 마음에 좀더 가고 싶었지만 자실장들은 완전히 퍼져 바닥에 누워 헉헉 거리고 있었다.

엄지실장들은 진작에 낙오되어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자실장도 벅차는 강행군, 엄지따위가 버틸리 없다. 짝귀는 거친 숨소리만 가득한 이곳에서 귀을 귀울이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언제어디서 하얀악마가 튀어나올지 모른다. 귀를 열고 다리는 긴장을 풀지 않는다. 최악의 사태에 몇마리 자실장만 이끌고 먼저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자실장 한두마리면 반년도 안되 이 공원을 다시 자신들의 세상으로 가득 채울 자신이 있었다.

"일어서는 데스! 다시 가는 데스!"

짝귀의 말에 어기적 거리며 일어서는 자실장들과 고개를 돌린채 휴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녀석들로 나뉘었다. 짝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은채 일어서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의지가 있는 자실장들을 모아서 무리를 만들고 이끌고 사라진다. 남겨진 자실장들은 설마 버리고 갈줄은 몰랐기에 당황하며 일어서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울기시작했다. 이런 상황, 흥분에 서로간 싸움과 동족식이 일어나며 마지막으로 쫓아갈 황금시간마저 사라졌다. 이름모를 공원 한곳에서 길잃은 자실장들이 수풀사이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보스실장은 탁아는 한 곳에 몰아 넣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알기에 짝귀를 비롯해 2마리의 성체를 시켜 총 3무리를 만들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적당히 무리를 만든 짝귀를 제외한 나머지 2무리는 욕심에 조금더 멀리, 조금더 많이 하다가 구제업자와 조우, 전멸하였다. 동서남북 사방에서 조여오는 하얀악마들.

그리고 이 순간 네 방향에서 조잡한 나뭇가지와 돌을든 성체실장 300여 마리들이 구제업자에게 반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최후의 보루, 혹은 보험이 있다는 것 하나로 두루마리 공원의 들실장들의 행태는 인간의 예상을 완전히 빗겨나가 조금씩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모두! 몸으로 때우는 데스우! 돌격 데스!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데스!!"
"돌이 없으면 운치를 던져라 데스!"
"한번 물면 머리가 뜯어져도 놓지 마는 데스!"
"동족의 시체를 밟고 넘어가는 데스!"

300마리의 들실장의 공격은 정리하는데 제법 시간이 오래걸린다. 위석서치로 대규모 무리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있지만 문제는 도구의 부족이였다. 가장 효과좋고 광범위하게 구제가 가능한 도로리 용액이 떨어졌다. 직접 도구로 잡아야 하는데 300마리가 사방에서 날뛰면 상당히 귀찮고 제법 시간이 오래걸린다.

"아오 팔아퍼 죽겠네. 이것들 뭘 잘못쳐먹었나 다른 공원이랑 완전 다르네요."
"두루마리 공원이니까 뭔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지."

봉을 휘두르며 바닥에 쓰러진 녀석들을 확인사살하며 마대자루에 담는다. 오늘안에 60%는 해야하는데 이런식이면 할수가 없었다.

-삐익
[본부에서 알립니다. 예비 인원 100명더 투입하고 차량을 이용해서 도로리 용액을 지급할테니 각자 위치에서 쉬면서 대기하도록 하세요.]

"어휴, 쓸데없이 넓어서..."
"그래도 도로리 용액이 다시 충전되면 속도가 붙겠지. 에구구, 허리야. 담배나 하나 펴야겠다."

피와 똥으로 범벅이된 공원 바닥에 재가 떨어져 치익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짝팔인 데스! 짝팔이 확실한 데스!!"

짝귀는 멀리서 소란스러움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런 것을 할수있는건 짝팔밖에 없다고. 어쩐지 오늘 보스실장이 모두 불렀는게 불참한게 이것 때문이였구나 생각이 들었다.

"와타시들을 도와주는 움직임이 있는 데스! 모두 힘내는 데스!"

짝귀의 말에 자실장들은 다시 힘을 내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선 어딘가에서 하루정도 밤을 보내야 한다. 성체도 하루만에 갈수 없는 거리를 자실장을 이끌고 돌파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짝귀는 조용히 걸으며 생각했다. 여기 어딘가에 하룻밤을 보낼 적당한 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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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테프프~ 마마 와타치가 삼녀인 테츄웅"

친실장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넝마가 된 흙과 똥 범벅의 옷을 입은 낯선 자실장을 보았다. 이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삼녀는 어디로 간 것인가. 멍하니 자신을 보는 친실장을 보며 자실장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손을 뿌리치기 위해 몸을 뒤로 뺐지만 손은 굳건하게 붙잡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놓아라 테치이이이!!"

다급해진 자실장은 눈물과 똥을 지리며 발버둥 쳤지만 오히려 단단하게 쥔 손이 아퍼왔다. 강단있는 녀석이라면 팔을 뜯거나 손이 아작나는 것을 감수하고 지금 친실장이 충격에 빠졌을때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쳤을 테지만 이 녀석은 그럴수가 없었다.

"놓아라 테치! 당장 와타치의 고귀한 손을 놓아라 테치이이이!!"

더럽고 천한 말을 하는 자실장을 보며 친실장은 천천히 현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붙잡은 손에서 빠직빠직 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친실장의 악력에 자실장의 손이 으스러지는 소리였다. 자실장은 붙잡힌 손 아래로 누워 떼를 쓰며 콧물을 질질 흘리기 시작했다. 안좋다. 절대 안좋다. 이런 상황 결코 좋지 않다.

"오마에....시간이 부족하니 자비롭게 죽여주는 데스."

누런 이빨이 일그러진 입 사이로 번뜩였다.

"테챠! 아닌 테치! 마마! 죽기싫은 테치! 마마! 마마-, 테쨔앗! 테찟!"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자실장의 머리가 친실장의 발에 깨져 부서졌다. 친실장의 무덤덤한 표정이 사라지며 울상으로 변했다. 친실장은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해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기다리는 데스! 마마가 가는 데스우!!"

***

점점 걸어갈수록 곳곳에 쉬고 있거나 치져 잠든 동족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친실장은 행여나 떨어질까 삼녀를 꼬옥 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마마 힘들지 않는 테치? 와타시도 걷는 테치"

삼녀의 말은 옳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선 아무리 친실장이 있어도 습격하여 자를 뺏어 먹는 녀석은 언제나 존재한다. 친실장은 그런 삼녀의 머리을 한번 쓰다듬고는 괜찮다고 하며 걸었다. 쉬고 있는 동족들이 멀어질수록 머리 한쪽에선 계속해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쉬고 싶은 데스!'
'위험한 데스!'
'쉬고 싶은 데스!'
'괜찮은 데스!'
'쉬고 싶은 데스!'
'버티는 데샤!'
'쉬고 싶은 데스!'
'삼녀를 걷게하면...아닌 데스!'

내적갈등이 심화될수록 친실장의 몸은 정직하게도 팔이 느슨해지며 발걸음이 뜸해졌다. 삼녀는 친실장의 느슨한 품안에서 뛰쳐 내려와 친실장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마마 너무 지친테치. 마마도 이제 쉬는 테치. 이정도 왔으면 하얀악마도 어느정도는 걱정없는 테치."

자실장의 말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폭발하여 친실장은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다리를 뻣었다. 살것같다. 평소 걷기 페이스를 수십번이나 오버하고 자실장 한마리나 안고 와서 체력소모가 극심했다. 친실장은 몇초간의 아늑함을 느끼며 곧바로 골아 떨어졌다.

"테! 마마 죽으면....자는 테치?"

고개가 푹 숙여진 친실장을 보며 삼녀는 까무러치게 놀랐지만 데로롱 거리며 코를 고는 친실장을 보며 안도하며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소리도 없고 동족의 기척도 없다. 삼녀는 아장아장 걸으며 낮선풍경에 압도당하는 한편 은근한 스트레스에 운치를 누기위해 근처에 있는 풀더미 속으로 들어갔다.

-뿌직 쁘딧 브리릿

시원한 소리와 함께 삼녀는 운치를 누며 은은한 쾌감에 얼굴을 붉힌채 부르르 몸을 한차례 떨었다. 운치를 누자 제법 정신이 안정되며 앞으로가 어떻게 될지 살짝 걱정이 들었다. 수풀 사이로 지친 몸짓으로 잠든 친실장을 보며 삼녀는 자신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에 슬픔을 느끼며 근처의 풀을 뜯어 운치를 닦고 친실장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았다.

불과 몇시간전 지옥같은 상황이 거짓말 처럼 느껴진다. 비명과 고함, 우는 소리가 아닌 짹짹거리는 새소리. 흔들리는 수풀소리. 살랑살랑 불어와 자신의 뺨을 스치는 바람. 따스한 친실장의 온기. 가물가물해지는 정신속에 실낱같은 잡음이 들려온다.

-데갸아아아!!
부르르릉!
-테찌이이이이이이!!
부릉!부릉!

삼녀의 눈이 번쩍 뜨이며 친실장의 품에 빠져나와 귀를 기울리니 알수없는 큰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하약악마!!

삼녀는 갈팡지팡 하며 다리를 동동 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친실장을 깨우기 위해 잠시 몸을 흔들었지만 전혀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삼녀는 고민 끝에 생각을 정리했다. 다부진 눈. 흔들림없는 벌어진 A자형 입. 굳은 의지로 무장된 표정. 삼녀는 친실장에게 다가가 흔들어서 옆으로 쓰러진채 자는 친실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마마...마마는 와타시들이 살아남기를 바랬지만 와타시는 마마가 살았으면 하는 테치. 와타시가 마마없이 그곳에 간다고 해도 살아나서 성장할 확률이 너무나 작은 테치. 또 마마가 살아있으면 와타시 같은 아이들은 언제든지 낳을수 있는 테치. 와타시는 마마를 위해서 시간을 끌어보는 테치. 마마 반드시 살아남아 장녀와 차녀 오네챠 몫까지 다시 아이들을 낳는 테치. 그리고 가끔 장녀와 차녀, 그리고 와타시가 마마의 아이였다는 것을 기억해주면 좋은 테치..."

삼녀는 불쑥불쑥 튀어나올려는 눈물을 삼키고 친실장이 올라왔던 방향을 역주행 하기 시작했다. 아주 잠깐 이라도 좋다. 마마가 좀더 쉬기를. 마마가 좀더 기운를 차려서 다시 더 멀리 도망갈수 있기를.

"하얀악마아!! 기다려라 테치이! 와타시는 마마의 삼녀인 테치! 와타시가 갈테니 기다려라 테치이!!"

잠든 친실장의 귀가 꿈틀거렸다.


***

"여기는....기억나는 데스!"

짝귀는 자실장들을 이끌고 일직선으로 올라가다가 방향을 틀어 북서쪽으로 향했다. 북문에 위치한 그곳에 가기위해 안전한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다행이도 이 근처엔 예전에 보스실장과 함께 공원 곳곳에 만들어둔 비상굴이 있는 곳 근처가 틀림없었다. 힘들다고 칭얼거리는 녀석들은 버린다. 제 한몸 건사하기 힘든 하얀악마의 습격속에 그저 데리고 가는 거 자체가 이 두루마리 공원 들실장이 다른 공원과 다른 점이 확연히 들어나는 것이였다.

"따라오는 데스! 와타시를 따라오지 않는 녀석은 죽는 데스! 앞으로 조금만 더 가면 안전한 땅굴이 있는 데스! 땅굴안에 보스실장과 만들어둔 보존식이 있으니 정신차리는 데스!"
"테...치이..."

다 죽어가는 음성이 들인다. 보존식이라는 말에 반응이라도 하는 녀석은 정말 얼마 없다.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의 뒤를 따르는 자실장들을 본다. 성체인 자신도 버거울 정도인데 자실장이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에 가깝다. 열량소모가 극심해 지방이 사라져 뺨이 홀쭉해진 자실장들.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짝귀의 뒤로 20마리의 자실장들이 따라가고 있었다.

10분쯤 지나자 짝귀는 수풀이 무성한 곳에서 멈춰서 땅에 코를 대고 킁킁 거리기 시작했다. 흙과 풀냄새가 너무 짙어 판단을 할수가 없다고 여긴 짝귀는 수풀을 손으로 밀며 조심스럽게 땅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팡팡! 팡팡! 팡, 딱!

몇번 두드림 끝에 다른 소리가 들리자 반색을 하며 위의 흙을 손으로 밀며 치우자 낡은 골판지 조각이 들어났다.

"여기인 데스! 오마에들 오는 데스"

말없이 묵묵히 짝귀가 걷어낸 골판지 조각 밑에 난 구멍을 보며 자실장들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짝귀는 그런 자실장들은 하나하나 들어 눈물을 훔쳐주고 땅굴안으로 내려놓았다.

"오마에들은 칭찬받아 마땅한 데스. 오마에들은 정말 훌륭한 이 공원의 진정한 아이들인 데스."

짝귀의 칭찬에 힘없이 눈물을 터트린 자실장들은 곧이여 컴컴한 땅굴안으로 들어간 짝귀가 가져온 자실장 50마리가 한달을 먹을수 있는 양의 보존식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20마리가 먹을 양이 아니지만 여기까지 오기위해 위석이 살짝 녹을 정도로 에너지를 끌어다 썼기에 미친듯이 게걸스럽게 먹곤 너나할것 없이 잠이 들었다. 파리한 안색도, 홀쭉해진 뺨도 어느새 정상적으로 돌아와 통통하게 살이 올라와 있었다. 짝귀는 입구 근처에 앉아 자신의 몫으로 남겨둔 보존식을 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밤만 버티면 되는 데스..."

구제종료시까지 00:30분.


짝귀가 자실장들을 이끌고 비상굴에 도착할때 동서남북으로 성체를 이끌고 공격한 짝팔은 차디찬 고기덩어리가 되어 마대자루에 담겨 자루채로 압착기로 피빼기를 당하고 있었다. 똥과 피가 마대자루 밑으로 스며나와 관을 타고 배수구로 향했다. 한포대 가득 담긴것이 압착이 끝나자 2/3크기로 줄어들어 벽돌처럼 단단하게 되었다. 그렇게 쌓인 블럭만 100여개. 이 실장고형블록은 꽤 비싼값에 실장직화구이 전문점에 팔린다. 이 블럭을 태워만든 불에 익힌 실장석의 맛은 지갑도둑이 된다.

"데프프...오마에들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는 데스. 와타시들은 비록 죽겠지만 '그곳'에 가는 시간은 조금이라도 번 데스. 그곳에 간 아이들이 커서 다시 이 공원을 정복하는 데스! 알겠는 데스!! 알아들은 데스까! 와타시들은 절대 패배하지 않은 데스! 데짓!"

짝팔과 함께 습격을 한 남문 습격조 조장인 앞머리카락이 없는 성체실장은 인간을 비웃으며 죽었다. 하지만 이들의 희생은 그들 생각처럼 값지고 엄청난 것은 아니였다. 오후5시가 되면 구제는 종료되기에 그저 스스로 와서 죽어준꼴 밖에 되지 않는다.

"징글징글하네요. 블록 100개는 구제 2년차인데 처음봅니다."
"꽨히 두루마리 공원이 아니지. 여기 드론으로 공중에서 위석서치로 조사 해보니까 성체실장 숫자만 1만마리가 넘는다니까."
"1만...."

상상이 가지 않아 고개를 흔들며 북적거리는 연합본부를 보았다.


***

'마마를 지키는 테치!'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던 삼녀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곳에 도착하였다. 하얀 옷을 입은 악마들이 사정없이 동족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몸이 녹아내리는 녀석, 피를 입과 총구로 쏟아내는 녀석, 으깨지고 잘리는 녀석, 몸이 납작해져 흙처럼 되는 녀석, 덜컥덜컥 몸을 흔들다 뻥 터지는 녀석.....다채로운 죽음이 가득했다. 삼녀는 기절할것 같은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시간을 끌며 도망치기 위해 화단에서 검은바닥으로 내려가 외쳤다.

"와타시를 보는 테치! 와타시가 여기있는 테치! 와타시는 자랑스런 마마의 아이인 테치이! 마마의 아이인 와타시가 여기 있으니 똥악마들은 당장 와서 잡아보라는 테샤아아아아!! 찌익!"

-부르릉...

공포와 맞서싸우며 두 다리로 서서 자신의 의지를 호기롭게 피력하던 삼녀는 검고 두꺼운 고무타이어에 휩쓸려 분쇄되 2m가량 바닥에 적록색 얼룩을 남기며 사라졌다. 타이어 무늬 사이로 박힌 살점과 머리카락, 옷조각은 20m도 가지 못한채 거친 노면에 갈려 깔끔하게 떨어졌다. 항거할수 없는 거대한 사건에 맞서 싸울려는 삼녀의 의지는 너무나 허무하리 만치 가벼웠다.

친실장은 이상한 소리에 반쯤 몽롱한 표정으로 일어나 멍하니 있었다. 정신이 차츰돌아오자 하얀악마가 근처에 있다는 것을 깨닿고 눈빛이 번뜩였다. 다급하게 주변을 더듬으며 손에 물컹이는 것이 잡히자 확인도 하지 않은채 달렸다. 테, 테 거리는 자실장의 헐떡임도 무시하고 미친듯이 달리고 달렸다. 어느정도 안전하다고 생각하며 손을 꼭 붙든 삼녀를 보자 거기엔 낮선 고아자실장이 있었다.

"데...!!"
"테프프~테찟!"
"기다리는 데스우! 마마가 가는 데스!!"

친실장은 삼녀의 냄새를 쫓아 달리기 시작했다.

-삐이
[연합본부에서 알려드립니다. 현재시 17:01분. 구제종료를 알려드립니다. 현재시 17:01분. 구제종료를 알려드립니다. 모든 연합구제원들 께서는 장비반납을 하시고 익일 오전10:00까지 두루마리 공원으로 재집결 해주시기 바랍니다.]

현재시각 17:01분.



***

"데슷! 데슷! 데스...!"

성체실장 한마리가 땀을 비오듯 흘리며 뛰고 있었다. 무언가 쫓기는 마냥 필사적으로 뛰는 모습은 긴박감마저 흘러 내렸다. 얼마나 뛴 것일까. 가쁜 숨 사이로 근육이 터져 피멍이 붉으스름하게 맺혀 있었고 휘청휘청 거리는 다리는 엿가락처럼 휘면서도 용케 달리고 있었다.

"데헥...!데헥..!!"

숨이 턱까지 차오르며 안면이 푸르스름하게 남색빛이 살짝 도는, 치아노제에도 불구하고 성체실장은 눈물과 똥을 멈추지 않은채 걷는것이 더 빠르게 느껴질 정도로 애처롭게 뛰고있었다. 아니, 더이상 뛰는걸 포기하였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어둑어둑 해지는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삼녀...어디있는 데스까..! 삼녀! 오로롱..오로롱"

미친듯이 뛰어다녔다.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녀의 냄새가 있는 곳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조차 안된다. 대체 어디간 것이냐. 이 몹쓸 아이야. 마마의 가슴에 보검을 박고 어디로 사라진 것이냐.

"이제 그만 두는 데스...이제 그만 해주는 데스...!!"

어째서 인간이 이리 잔혹한가. 어째서 인간은 이토록 이기적이고 사악한가. 장녀가 죽었다. 차녀가 죽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남은 삼녀마저 빼앗아갔다. 마지막 희망. 마지막 남은 희망의 찌꺼기 마저 이토록 매정하고 잔인하게 빼앗아가야할 정도로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단 말인가. 그저 공원에서 작게나마 행복을 꾸리고 싶었는데.

"그저 조그마한 행복마저도 시기하고 질투해서 빼앗가는 이유가 뭐인 데스까-!!"

억울하고 원통하고 원망스러워서 말조차 하지 못하고 꺽꺽대며 눈물을 흘리던 친실장은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대로 죽고만 싶었다. 아이들이 모조리 사라진 이상 대체 무슨 낙으로, 무슨 희망으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이대로...이대로 아이들을 따라 가는 데스우..."

소중한 돌에서 틱틱거리는 소리가 느껴졌다. 심적, 육체적으로 하룻동안 받은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보통 생명체라면 이미 진작에 죽었겠지만 실장석이기에 지금까지 살아서 움직일수가 있었다. 실장석이기에 고작 위석에 금이간 정도에 그칠수 있던 것이였다.

"삼녀...."

친실장의 쓸쓸하고 메마른 잠꼬대가 저무는 노을빛에 울려퍼졌다.

-쩌억...!

"데덱!! 어, 어째서...데갸아아! 데캬아아!"

친실장에게 자그마한 휴식도 용납하지 않는다는듯 위석이 쩌억 갈라지기 시작했다. 친실장은 믿기지 않는 다는 듯 눈알을 부릅뜨고 몸이 찢기다 못해 정신이 먹먹해지는 고통에 부들거리는 다리를 일으켜 세웠다.

"와타시는, 굴복하지, 않는 데스...데챠아아!!"

먹은것도 없이 하루종일 뛰고 걷고 움직였다. 일반적인 실장석의 생리에서 벗어난 행동. 그에따른 급부일까 하룻동안 쌓이고 쌓인 데미지가 둑이 무너진듯 지금이제서야 터져나왔다. 친실장은 위석이 깨지는 고통을 이가 부서져라 악물고 참아내며 검게 물든 하늘을 향해 가슴을 피고 섰다. 이것이 실장석의 운명이란 말인가. 고통받으며 태어나 고통받으며 살다가 고통끝에 죽는게 자신들의 운명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이딴 운명. 이딴 운명따위....

"거부...데에...."

-파킨

유리깨지는 소리와 함께 독기와 총기가 서린 눈알이 순식간에 탁하게 물들었다. 벌어진 입으로 깨진 이빨이 피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부들거리는 몸은 더이상 떨지 않게되었다. 지나친 운동으로 체온조절 기능마저 사라진 뜨끈한 육신이 식어 차갑게 변했다. 누렇고 흙먼지에 변색된 팬티에 희미하게 초록색이 물감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오후 7:44분.
친실장 사망.
자실장 생존 0.


***

"보스, 짝팔...보고있는 데스까?"

짝귀는 하늘의 별을 보고있었다. 무수히 많은 별들. 오늘 죽은, 내일 죽어갈 동족들이 별이 되어 자신을 비추고 있었다.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 동족들을 생각하며 짝귀는 잠을 청했다. 무조건 일찍일어나 가야한다고 생각하며.

"모두 도망치는 데스으!"

그리고 다음날 깨어난 짝귀는 고함을 질러야했다.

밤이 찾아오자 공원은 그 어느때보다 조용해졌다. 하얀악마, 즉 구제가 찾아와 피로해진 몸과 마음과 팽팽하게 당겨지던 정신의 끈이 긴장이 풀림과 동시에 끊어졌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인 함정이 되었다.

짝귀가 일어선 시간 오전 11:00시.
공원 구제는 끝나지 않았다.

전쟁같은, 혹은 재해같은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사방에 울려퍼지는 소리는 어제보다 더욱 극심해졌다. 오늘은 예비인원을 시작부터 모조리 넣어 구제가 실시하여 어제보다 몇배는 빠른 속도를 내고 있었다.

짝귀는 고함과 함께 자실장들의 뺨을 사정없이 때려 억지로 깨웠다. 다행히 어제 배터지게 먹고 푹 잔 덕분에 몸상태는 많이 좋아져 보였다.

"하얀악마들인 데스! 모두 와타시를 따라 오는 데스!!"
"테치!"

자실장들은 넘치는 힘에 우렁차게 대답하며 짝귀의 뒤를 따라 빠르게 걷기시작했다. 중간중간에 마마를 찾거나 넘어져 우는 녀석들을 제외하곤 4시간을 쉬지않고 꼬박 걸어 '그곳'근처로 올수있었다.
아침의 쌩쌩함이 사라진채 피폐해진 몰꼴의 자실장들은 어딘가 피곤하고 지친 짝귀의 말에 묵묵히 걸었다. 자실장 조차 위석의 내구력이 깎일 정도의 강행군이다. 이미 나이를 먹은 짝귀의 위석은 바스라지기 일보직전.

"거의 다 온 데스. 아직 이곳은 하얀악마들이 안온 데스."
"..."
"오마에들, 잘 듣는 데스. 그곳은 하얀악마들도 오지못하는 이 공원의 유일한 곳인 데스. 거기엔 물과 밥이 늘 넘쳐나며 숨을 곳도 많은 데스. 하얀악마들이 완전히 사라지면 그곳에서 충분히 먹고 자고 싸서 와타시같은 어른이 되어야 하는 데스. 그리고 이 공원으로 와서 다시한번 자들로 가득채우는 데스."
"아줌마..."

짝귀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한 곳을 가르키며 쓰러졌다. 자실장들은 달려와 짝귀 주위에 서서 짝귀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귀가 없는 들실장들에겐 병신으로 노예가 되어야할 짝귀지만 자실장들은 짝귀를 병신이 아닌 친실장처럼 생각하였다. 짝귀의 발은 발이라고 부를수가 없었다. 맨 앞에서 땅을 고르며 온 짝귀. 차디찬 시체가 된 짝귀의 입에선 녹아내린 내장과 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줌마의 의지 확실히 이어받았다 테치!"

기합이 잔뜩 들어간채 비장하게 걷는 15마리의 자실장들. 얼마쯤 걸었을까. 과연 주구장창 짝귀가 이야기하던 그곳과 똑같은 곳이 보였다. 자실장들은 살았다라는 안도와 이곳에 오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며 뛰었다. 한시라도 지체없이 이 지긋지긋한 지옥같은 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슬픔과 공포가 지배하는 이 곳에서.

"테챠아아!"
"츄아아!"
"테삐이-!"

15마리가 일렬로 손을 잡고 수풀을 헤치며 한발짝 다같이 딛는 순간 전부다 몸이 아래도 쑥 꺼지며 사라졌다.

접이식 아크릴판으로 만들어진 경사진 판위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자실장들의 포즈는 제각각이였지만 결과는 동일했다.

뜨거운 열기와 빛.
불이였다.

연합구제팀은 그곳을 알고있었다. 구제에 앞서 철저한 조사로 두루마리 공원내 들실장들이 여기로 모두 몰릴것을 생각해 설치한 트랩이였다. 그리고 역시나 이 트랩의 공훈은 어마어마했다. 설치후 들실장 약 1만 마리 소각.

"낙원이라 들은 테치!!"
"모두 거짓말쟁이 였던 테챠아아아!"
"아픈 테치! 몸이 까맣게 변하는 테치이!!"
"챠아아아-!!"
"테챠! 테찌이이잇-!!"
"앞이 안보이는 테치이...손님, 발님 안움직여지는 테챳!"

불에 타서 까맣게 재가 되기까지 약 4분가량 거의 이주급 강행군을 버티고 버틴 자실장들의 움직임과 소리가 사그라들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철판엔 여기저기 들러붙어 탄화한 실장석 살점 조각들이 가득했다.

두루마리 공원 구제가 끝이 나기 시작했다. 실장블럭 총 332개. 공원 전역에서 잡은 들실장 숫자 2만 8700마리. 소모한 도로리 3.2t. 드론 70기, 구제인원 240명. 역대급 구제작전은 단 한마리도 탈출하지 못하고 훌륭하게 끝마쳤다. 얼마나 많은 들실장들이 죽었는지 이주실장이나 버려진 사육실장 조차 한동안 감히 두루마리 공원으로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미처 수거하지 못한 들실장 사체가 화단 곳곳에 썩어가고 있었고 고인 피가 웅덩이를 만들며 부패해 역한 냄새가 어디선가 계속 나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년도 두루마리 공원엔 공원조성이후 처음으로 꽃과 나무들이 푸른잎과 화려하고 선명한 꽃망울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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