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경계선

 

4월의 두루마리 공원, 오전 1시.

“데뎃, 데베베벱-”

성체실장 하나가 화변기에 퍼질러 누운 채 총구에 힘을 주고 있다. 붉게 물든 두 눈이 출산이 임박했음을 알렸고, 벌려진 총구 안쪽에서는 묽은 배설물과 함께 점막 덩어리가 나올락 말락 하고 있었다.

이 개체는 제법 영리한 축에 드는 듯하다. 대부분의 실장석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수면을 취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녀석은 다른 동족들이 곯아떨어지기를 기다린 뒤 일부러 한밤중에 출산을 시도하고 있었다. 예민한 후각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역시 낮보다는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운데도. 그 이유는 아마 다른 동족들의 습격이라는 위험 요소를 배제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동족식에 별다른 터부를 갖지 않는 실장석에게 있어 막 출산을 끝내어 힘이 빠진 친실장과 갓 태어나 연약한 자충들은 말 그대로 한 끼 식사로의 정중한 초대장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걸 알기에 서너 마리씩 임시 무리를 짓거나 출산 이후 최소한의 조치만 한 뒤 바로 싸들고 집으로 튀는 식의 예방책을 세우긴 하지만… 그런 수고를 들여도 꼭 한두 마리씩은 배고픈 동족의 간식거리로 전락하기 마련이다.

“데교오오옥!”
“텟테레~”

그러나 이 개체는 일부러 밤잠을 설치는 노고를 들인 덕에 아무런 걱정 없는 출산의 기회를 얻었다. 운좋게도 화장실엔 불까지 켜져 있었다. 노력의 대가라고 해야 할까. 일단 한 마리가 총구를 비집고 나오자 둑이 터진 듯 점막에 쌓인 자충들이 쉴 새 없이 산성(産聲)을 토하며 쏟아져 내렸다. 큰 놈은 중지 정도의 크기, 작은 놈은 새끼손가락만 하다. 꼬물대는 구더기 같은 것들이 그렇게 11마리 태어났다.

숨을 몰아쉬던 성체는 자들의 수를 헤아려보고는 꽤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짓는다. 허나 안심하긴 이르다. 변기에 고인 물이 시간을 최대한 늦춰주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다간 몇 분도 안 되어 점막이 말라붙어 저실장으로 변할 터이다. 일단 제일 큰 놈을 하나 골라 혀로 점막을 핥는다.

과학의 힘으로도 채 해명되지 않은 경이로운 순간이다.

점막이 제거되어 공기와 접촉하자 구더기 같던 몸에 변화가 일어난다. 돌기가 길어져 사지를 이루고 포대기는 분리되고 벌어져 두건과 원피스 형태의 옷을 이룬다. 곧 뒷머리와 턱받이가 돋고 팬티가 생긴다. 인간은 이 변이에 대해 그저 경악밖에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실장석에게도 충분히 신비스러운 시간이다.

“텟츙~”

친실장에게 자실장은 애교를 떤다. 건강한 우량아다. 키울 만한 가치가 있다. 친실장은 순식간에 판정을 끝내고는 변기 바닥에 자실장을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위석으로 각인되었는지 가장 가까운 점막 덩이에 달라붙어 물어뜯고 핥아댄다. 친실장 또한 다음 자충을 집어 들어 점막을 취한다.

“레치치칫!”

점막이 사라지고 변이가 끝난 자충이 엄지 특유의 미성숙한 웃음소리를 냈다. 순간 친실장의 얼굴이 굳는다. 들생활에 있어 응석받이 성향이 강한 엄지는 애정 깊은 개체가 아니고서야 그다지 반갑잖은 존재다. 그러나 일일이 신경 쓰고 대응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맏이가 알아서 처리하도록 곁에 내려놓고는 다시 작업에 임한다.

다행히 두 마리 모두 별 탈 없이 친의 점막 제거를 돕는다. 속도는 점점 빨라진다.

몇 분 뒤, 11마리 모두의 점막 제거가 끝났다. 결과는 자실장 네 마리, 엄지 세 마리, 저실장 네 마리. 자식욕이 강한 개체라면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친실장에겐 그럭저럭 합격점이다. 갖가지 울음소리로 적막을 깨는 자들을 내버려둔 채 친실장은 잠시 주위를 살핀다.

인기척도, 불길한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분간은 괜찮을 듯하다.

마음을 정한 듯 친실장은 옷을 걷는다. 적록색의 젖꼭지가 드러난다.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혐오스러워하는 기이한 신체. 그러나 여기서부터 실장석의 출산 그 두 번째 신비가 펼쳐지는 것이다.

친실장은 우선 자실장 두 마리를 집어 들어 가슴팍에 묻는다. 순간적으로 숨이 막혀 버둥대던 두 놈은, 곧 위석에 각인된 기억에 따라 꼼지락대며 젖꼭지를 찾아 움직인다. 그렇게 어미의 젖을 찾아내어 물고 빤 지 몇 초 지나지 않아, 신비의 정체가 직접 그 몸으로 드러난다.

중지 비슷한 크기의 작달만한 몸이 몇 배속 영상처럼 순식간에 자라난다.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두 마리는 어지간한 손바닥 정도의 크기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자실장의 몸집으로 자라났다. 물리법칙이 실종된 듯한 광경. 그러나 그 본질은 의외로 평범하다.

꿀벌의 애벌레가 로얄젤리를 먹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여왕벌과 일벌로 갈리듯, 실장석의 초유는 자충을 ‘진정한 새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다. 비록 자실장과 엄지가 갓 태어날 땐 비슷한 크기더라도 곧 몸집과 건강 상태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이가 나는 건 바로 이 초유의 영향 탓이다. 제 머리만 한 새끼를 십 수 마리씩 뱃속에 넣고 다닐 필요가 없는 것 또한 초유의 힘 덕분이다.

물론 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개체는 한정되어 있다. 비상식량 취급인 저실장은 당연히 제외된다. 엄지 또한 마찬가지다. 신체 대부분은 비슷하게 발달해도 아직 머리 부분이 미성숙한 탓에 초유의 폭발적인 성장력이 잘 듣지 않는 탓이다.

불운한 추자들도 초유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늦가을엔 노동력을 제공하고 겨울엔 몸을 비상식으로 제공할 놈들에게 초유를 나눠준다는 건 아까운 일이니까. 자를 비상식으로 여기거나, 번식욕과 권력욕을 동일시해 다산하는 개체의 경우엔 아예 초유를 먹이는 것 자체를 꺼리기도 한다. 소모품에게 영양분을 제공하는 건 과분한 일이니까.

아무튼, 순식간에 몸이 불어난 언니들을 보며 변기 바닥에서 자충들은 신기해한다. 대단하다, 멋지다, 부럽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작디작은 몸으로 아우성쳐보지만 친실장은 냉정하게 테치테치 우는 자충들만 들어다 젖을 먹인다.

저실장들이야 지능이 떨어지니 곧 흥미를 잃고 프니프니를 요구하지만, 엄지들은 슬슬 떼를 쓰기 시작한다. 왜 저 녀석들만 먹이는 거냐! 나도 먹고 싶다! 먹고 커지고프다! 그러나 친실장은 무시한다. 이미 격이 달라진 자실장들 또한 자기네들끼리 떠들기 바쁘다.

곧 한 마리가 폭발하는 분충성을 이기지 못하고 친실장을 매도하기 시작한다. 당장 내게도 젖을 먹여라, 똥애미! 독라로 만들어버린다! 위석에 각인된 기억은 이미 그들에게 독라는 노예라는 철칙까지 가르쳐준 듯하다.

이윽고 초유를 다 먹인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쓰다듬으며 엄지들을 관찰한다. 엄지들은 떼를 쓰고 악을 지르고 구르고 욕을 한다. 얼음장 같은 적록색 눈에 곧 남다른 한 마리가 들어온다. 다른 자매들을 보며 어쩔 줄 모르는 엄지. 이러면 안 된다, 이건 아니다 하는 말을 해보지만 자매들이 듣지 않아 난처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감식은 순식간에 끝났다.

친실장은 일어났다. 엄지들은 순간 멈칫한다. 일어선 마마는 그 무엇보다도 커서 올려다보려면 목이 꺾일 지경이다. 그 커다란 마마가 곧 시커먼 무언가에다 자신들을 들어 조심스럽게 집어넣는다. 그것이 실장석의 필수품인 비닐봉투라는 건 아직 엄지들은 모른다. 이젠 알 필요도 없지만.

행여나 뭉개질까 조심조심, 엄지와 저실장들을 집어다 봉투에 넣고는 둘러멘다. 비닐봉지 안에서 엄지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치프픗 웃어댄다. 똥애미가 드디어 분수를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걸을 필요 없이 편히 들고 가 주는 것이다. 분명 콘페이토와 스시가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분충이 행복회로를 돌리는 속도는 동족들에 비견해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그러나 한 마리,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엄지만은 비닐봉투 대신 자실장들 곁에 놓아진다. 왜 자신은 다른 자매들과 함께하지 않는지 어리둥절하던 엄지에게 친실장은 말한다.

-오마에는 걷는 데스. 뒤따라오는 데스우.

그리고는 걷는다. 자실장들도 곧 그 뒤를 따른다.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있던 엄지도 황급히 뒤따라 걷는다. 엄지의 작은 보폭으론 느리게 걷는 편인 친실장을 따라잡기도 여간 고역이 아니다. 하지만 본능이 알려준다. 여기서 뒤처지면 버림받는다. 버림받으면 죽음뿐이다. 울음마저 참아가며 엄지는 친실장과 언니들을 뒤쫓는다.

앞서 말했듯이, 들생활에서 엄지는 반갑잖은 존재다. 응석은 심하고, 식탐은 강하고, 지능은 떨어지고, 분충일 가능성도 높다. 그러므로 들실장은 엄지를 자식이라기 보단 일종의 ‘여러 기능이 달린 비상식량’으로 다루곤 한다. 저실장이 파킨하지 않게 프니프니를 시키거나, 집안이 더러워지지 않게 운치를 치우거나, 자들에게 예절을 가르칠 때 교재 대신 이용하는 등. 물론 무엇을 시키든 결국은 운치노예로 쓰이다가 잡아먹히는 결말이긴 하지만.

그러나 드문 예외가 있다. 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이성을 가지고 있을 때가 그렇다. 비록 초유도 영양분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한 엄지가 제대로 성장할 기회는 드물지만, 놈들도 역시나 실장석. 저실장도 고치를 틀고 우화하듯 운만 따라준다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친실장은 눈치를 살필 줄 아는 엄지를 따로 골라낸 것이다. 만약 집까지 제대로 따라온다면 엄지는 막내로 대접받으며 자랄 것이다. 뒤처진다면… 뭐, 그땐 자신이 상관할 바 아니니 상관없고.

흙길을 밟으며 아픔을 느끼는 엄지는 봉투 안에서 떠들고 있는 자매들이 부러웠다. 봉투 안의 엄지들은 나머지 한 마리의 자매가 버려졌다며 웃고 떠드는 중이었다. 잠시 뒤엔 처지가 거꾸로 될 것이다. 처절하게. 놈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 사지를 하나씩 언니들의 첫 식사로 헌납당한 뒤 운치굴에 처박혀 프니프니노예로 여생을 보낼 것이다.

자와 노예 사이의,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선은, 그렇게 지금 막 정해졌다.

시간은 이제 오전 2시에 다다랐다. 도심의 밤하늘엔 별도 달도 없지만, 대신 가로등의 주황빛 조명이 보도를 비추고 있다. 그 빛을 친실장 하나와 자실장 네 마리와 엄지 한 마리가 가로지르며 잠시나마 길쭉한 그림자를 남겨놓았다.

그 일가의 앞날이 번영일지 실각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내딛는 걸음은 그림자만큼이나 곧았다.


-끝-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