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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자들 1~2 (완)

 

독라의 이름은 메론이었다.

이름이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메론은 원래 사육실장 출신이었다. 만약 자를 낳지 않았다면, 낳았다 하더라도 눈앞에서 자들이 처분당하는 현실을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아직까지도 메론은 여전히 실장푸드와 사육복을 누리는 생활을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들의 죽음에 눈이 돌아간 나머지 주인의 발목을 물어뜯은 대가는 참혹했다. 최후의 자비로 골판지 박스는 남겨놓고 간 주인이지만, 사육실장을 독라 상태로 공원에 방생한다는 건 사실상 직접 손대지만 않았을 뿐이지 사형선고 판결이나 마찬가지라는 건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기껏해야 하루 이틀 버티고 끝장날 거라 주인은 생각했다.

그 예측은 틀렸다.

[마마는 먹을 것을 구하러 가는 데스우. 자들은 마마가 올 때까지 밖으로 나오지 마는 데스.]

[하이 테치. 오늘도 맛난 거 잔뜩 가져오는 텟츄웅!]

[마마 와따치도 맛난 거 먹고 싶은 레치!]

[레후? 우지챠도 먹는 레후? 그럼 프니프니 안 하고 가도 괜찮은 레후.]

골판지를 나서는 메론을 자들이 배웅했다. 자실장이 둘, 엄지가 셋. 게다가 웬만하면 비상식 취급받을 저실장도 하나 있었다. 공원의 독라가 키운다곤 생각지 못할 대가족. 애초에 독라로 버려진 지 1년을 넘겼는데도 화장실 노예가 아니라 골판지 하우스의 주인 노릇을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만... 메론은 해냈다.

운이 죽여주게 좋아서? 글쎄. 들실장의 세계에서 운이란 믿을 게 못 된다. 아침 때 불행을 넘기더라도 저녁 때 죽음의 운명이 내려치는 게 놈들의 일상이다. 이 모든 건 오로지 메론 자신의 수완 덕분인 것이다.

위이이이이잉-

[데에에에....]

어디선가 울리는 소음에 메론은 발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언젠가부터 계속 들려오는, 고막을 자극하는 불쾌한 울림. 마치 집 근처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에 등골이 싸하기도 하지만 저건 아무래도 어쩔 수 없다. 그보다 먹을 걸 구하는 게 더 급하다. 오늘 당장 먹을 것과 저장식을 해결해야 한다. 아직 그럭저럭 남아 있긴 하지만 들생활에서 앞날이란 알 길이 없는 것. ㅁ슨 수를 써서든 최대한 확보해놓는 게 좋다.

마침 메론에겐 좋은 계획이 있었다. 독라 사육실장이란 죽음의 패널티를 넘기게 해준 실장석 나름의 수완이, 구체적으로는 메론의 팔에 들린 비닐봉지 안의 무언가가 오늘도 그 위력을 발휘할 참이었다.

***

[마마, 저기 보는 테치! 왠 못생긴 아줌마가 독라로 있는 테치!]

[데프픗, 그런 데스. 참으로 꼴불견인 독라인 데스. 대낮에 나돌아 다니다니 죽음을 자청하는 모양인 데스.]

[마마, 죽게 놔두긴 너무 불쌍하니 세레브한 와타치가 노예로 삼게 해주는 테츄!]

[오마에는 너무 착해서 탈인 데스. 그럼 가서 저 독라를 노예 삼아 화장실에 처박도록 하는 데스우~]

먹이를 구하러 나온 듯한 친실장과 자실장이 메론에게로 다가왔다. 외적인 미를 중요시하는 실장석에게 있어 한눈에 알아보기 쉬운 옷과 머리카락은 곧 미의 상징이자 지위의 표식이다. 자연히 그걸 잃은 실장석은 하등 개체, 노예로 취급되어 부려 먹히거나 포식당해 삶을 마감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실장과 친실장이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메론에게 다가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메론의 발밑까지 다가온 장녀는 곧 팬티를 내리고는 뿌직 하는 소리와 함께 운치를 한껏 싸질렀다. 그리고는 그걸 한 움큼 퍼서 메론의 발에다 발랐다. 노예로 삼겠다는 마킹이었다.

성체인 메론과 자실장의 체격 차이는 두 배를 웃돈다. 그러나 동족간의 포식이 만연한 실장석임에도 자실장에겐 두려워하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등 뒤에 버티고 선 친실장을 믿는 걸까.

[노예! 오마에는 세레브한 와타치의 노예로 임명된 테치! 어서 도게자를 한 뒤 와타치의 총구를 핥는 테치! 그러면 와타치가 마마에게 일러 화장실에 살게 하는 자비를 베푸는 테츄! 말을 듣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독라로 만드는 테챠앗!]

[데프프, 장녀는 역시 영특한 데스.]

메론은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다만 친실장을 눈여겨볼 뿐이었다. 마치 무언가를 가늠하는 듯한 눈빛. 그러나 친실장은 장녀를 응원하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메론이 비닐봉지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등 뒤에 감추는 것도 보지 못했다. 비닐봉지를 손에서 놓는 건 그저 곧 도게자를 하기 위함이라 생각했다.

때문에.

[테, 테? 테찌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자, 장녀어어어어어어어어어?!]

그 독라가 갑자기 자를 잡아들어 다리를 물어뜯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마맛! 마마앗! 살려주는 테츄! 노예가 미친 테치! 미친 독라인 테챠아아아아앗!]

[데겍! 당장 장녀를 놓는 데스, 미친 분충! 당장 자판기로 만들어버리는 데샤아아아앗!]

장녀의 오른다리를 다 뜯어먹은 메론은 친실장이 달려드는데도 느긋하게 서 있었다. 다만 코에 주먹이 면상에 처박히기 직전에 등 뒤에 숨겼던 무언가를 앞으로 뻗었을 뿐이다.

[데겍...!]

다름 아닌 꼬챙이였다. 공원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파는 닭꼬치를 꿰던 것이다. 어느 몰지각한 시민이 먹고 버린 것을 메론이 주워서 일종의 단창처럼 다듬었고, 그 회심의 무기는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종종 요긴하게 쓰이곤 했다. 이번 희생양인 친실장은 구멍 난 목을 부여잡은 채 바닥에 뒹굴었다. 피가 목구멍을 막아 입을 열 때마다 꺽꺽거리는 소리만 났다.

동족이 험한 꼴을 당하면 보통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조롱하는 게 들실장의 본성이다. 그러나 메론의 얼굴엔 아무 표정도 없었다. 숨이 막혀오는 친실장에게 그 무표정은 오히려 린치를 가하는 가학심 가득한 동족의 얼굴보다 더 끔찍한 것이었다.

[테치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메론은 뒤이어 장녀의 왼팔을 뜯어먹은 뒤 그대로 등 뒤로 던져버렸다. 그러고선 나지막이 물었다.

[오마에, 아까 와타시를 어떻게 하겠다 지껄인 데스?]

친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메론도 별다른 대답을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지 말을 거두었지만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

친실장은 왼쪽 눈두덩이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메론이 꼬챙이 끝으로 그어버린 것이다. 본능적으로 메론의 속셈을 눈치채버린 친실장이 그만두라 외치려 했지만 목소리는 피에 잠겨 나오지 않았고, 다만 뱃속이 부글거리며 불운한 탄생을 예고하는 중이었다.

‘안 되는 데스, 지금은 안 되는 데스! 이 미친 독라 앞에선 안 되는 데샤아아아앗...!’

[텟테레~]

소리 없는 절규를 무시한 채 친실장의 몸은 출산신호를 받아들였다. 곧 몸의 영양분을 짜내어 만들어진 저실장들이 차례차례 쏟아져 나왔고, 메론은 그것들을 하나씩 봉지에 주워 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뒤늦은 후회 사이로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예감이 스며 나오자 친실장의 뇌는 위석붕괴를 막기 위해 맹렬히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아닌 데스... 모든 건 꿈인 데스... 모두 나쁜 꿈인 데스우...

봉지가 제법 묵직해지고 친실장이 눈에 띄게 해쓱해지자 메론은 친실장의 눈에 묻은 피를 닦아냈다. 자비를 베풀 생각인가? 아니, 뭔가 더 있다. 그러나 행복회로로 고통을 막는 것도 급급한 친실장이 그걸 깨달을 리는 만무했다. 어차피 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호흡도 제대로 안 될 뿐더러 사지는 온전하더라도 강제출산으로 힘이 다 빠졌으니.

[와타시는 가보는 데스. 남은 건 오마에들끼리 알아서 하는 데스.]

이 말만을 남긴 채 메론은 짐을 챙기곤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이윽고 행복회로가 막 끝난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공짜 고기에 굶주린 동족들의 핏발 서린 눈들이었다. 자기처럼 독라를 노렸을 놈들은 메론과 친실장의 대결을 보고는 좀 더 쉬운 쪽으로 목표를 바꾼 것이다.

아무렴, 어디 구멍 날 위험이 있는 고기보단 좀 적더라도 손쉬운 고기가 낫지.

‘데, 뎃스웅...’

공포에 질려 아첨의 자세를 취하려던 친실장은 그대로 날아든 발길질과 주먹질에 넝마가 되어버렸다. 다음엔 머리카락과 옷을 뜯겨 독라가 되고, 곧이어 배를 물어 뜯겨 내장과 분대가 끌려나오고, 이리저리 당겨진 끝에 수십 조각으로 나누어져, 나중에는 그저 적록의 얼룩만이 바닥에 남았을 뿐이었다.

[테히이이이이이이이이...]

한편 보지는 못했어도 대강 친실장의 운명을 짐작했는지 장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버둥거렸다. 적어도 팔만 뜯어먹었다면, 차라리 다리만 다 뜯어먹었다면 비틀거리든 기어가든 움직일 수 있었을 테지만, 팔다리 하나씩이 없는 몸은 그 자리에서 비적거릴 뿐이었다.

누군가가 자기를 들어 올리는 느낌에 장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 미친 독라였다. 자신의 팔다리를 질겅거리느라 입과 이빨이 온통 적록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극심한 공포에 장녀는 성대하게 빵콘했다.


[치이이이이이이이이잇?!]

다리 끝에 걸린 팬티가 운치의 무게를 못 이겨 바닥으로 떨어진 것도 모를 정도였다. 장녀는 남은 한쪽 팔을 얼굴에 갖다 대며 떨리는 목소리로 [텟츄웅~♡]하고 아첨을 떨었다. 바로 머리부터 뜯어 먹혀도 할 말 없는 행동이었지만 독라는 그러는 대신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장녀는 생각했다. 세레브한 와타치의 매력이 전해져서 메로메로된 테치?

[오마에, 살고 싶은 데스?]

그 한마디에 행복회로가 급격히 돌아갔다. 장녀는 미친 듯이 외쳤다.

[그런 테치! 살려주는 테치! 운치 묻혀서 미안한 테치! 다신 나쁜 짓 하지 않는 테치! 제발 목숨만 살려주는 테치 아줌마아아아앗!]

[좋은 데스. 오마에는 살려주는 데스.]

통했다! 살 길이 보인다! 이 모든 게 세레브한 자신의 매력 덕분이라 생각하며 장녀는 행복회로의 안락함에 빠져들었다. 이제 자신의 세레브한 매력에 굴복한 독라는 곧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도게자를 하며 노예로 들여 달라 청할 것이다. 그럼 제일 먼저 더러워진 총구를 핥아서 깨끗이 하는 영광을 누리게 해줘야지...

그러나 힘이 들어간 손아귀가 장녀의 허리를 짓눌러 그 망상을 깨뜨리고 덤으로 뼈와 내장을 상하게 했다.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는 장녀에게 독라실장은, 메론은 속삭였다. 마치 악마가 달콤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유혹하는 듯한 말이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는 데스우.]

***

[테갸아아아아아아아악!]

[레에에에에엥! 레에에에에엥!]

[레후? 프니프니후?... 레뺫!]

골판지 박스 한 곳에서 비명 섞인 피바람이 불고 있었다.

골판지 한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자실장. 팔다리 한쪽씩을 잃은 장녀였다. 이곳은 원래 그녀의 집이었지만, 오늘부터는 아니다. 그저 적록색 얼룩이 묻은 쓰레기만 자리에 남을 것이다. 다름 아니라 바로 그녀 자신 때문에.

[똥오네챠가 우릴 팔아치운 테챠아아아악! 저주하는 테치 똥분충!... 치벳-]

[아줌마 살려주는 렛츙~ 와따치는 착한 자인.. 레챠아아아아악!]

[레훼에에에엥- 우지챠 엄지 오네챠에게로 보내주는 레후-]

친실장은 평범한 들실장이었다. 말인즉슨 지금처럼 온화한 계절이면 절제 없이 자를 싸지르는 족속이란 것이다. 때문에 메론이 장녀의 안내에 따라 골판지 박스를 방문했을 때, 거기엔 자실장만 7마리에 엄지 11마리, 그리고 운치구덩이에서 원래 엄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독라노예와 구더기 십 수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메론이 원하던 것이었고, 한편으론 한 일가의 실각을 뜻하기도 했다.

[오마에는 기다리는 데스.]라며 장녀를 골판지 구석에 처박은 메론은 즉시 문을 닫아건 채 살육에 임했다. 물어뜯고, 짓밟고, 찌르고, 도망치는 놈은 잡아채서 처박아 뭉개고, 벌벌 떠는 놈은 머리를 으스러뜨리고, 기타 등등.

그 다음엔 하나하나 꼬챙이로 찔러서 확실하게 파킨사시킨 뒤 모조리 봉지에 쓸어 담았다. 고깃덩이에 깔리며 안에 있던 저실장 몇몇이 레뺫 하고 압사했지만 메론은 별 신경도 쓰지 않은 채 화장실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갔다.

[오마에는 먼저 보내주는 데스.]

거의 말라죽기 직전인 운치노예를 두 입에 베어 삼킨 뒤 메론은 아직도 떨고 있던 장녀를 집어 들었다. 자매들을 팔아넘겼단 죄책감과 살육의 현장을 코앞에서 목격한 충격 때문에 장녀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오마에 덕분에 수확이 컸던 데스. 고마운 데스우.]

[테... 테히...]

[그럼 약속대로 오마에는 살려주는 데스... 단.]

와그작.

[@#$%&...!!!!]

이젠 말로조차 표현할 수 없는 비명을 장녀는 목이 터져라 질렀다. 나머지 한쪽다리마저 뜯어 먹힌 탓이다. 흐르는 피를 손으로 쓱 닦으며 메론은 무정히 말했다.

[가족을 팔아넘기는 오마에 같은 분충을 바깥으로 보낼 순 없는 데스. 이젠 우리 집 화장실 노예로 평생 사는 데스야.]

확실히, 살려준다고만 했지 어떻게 살려주는지는 말하지 않은 것이다. 나름 약속을 지켰다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새로운 운치노예와 한 봉지 가득한 고기를 얻은 메론은 집으로 돌아왔다. 자들은 어미의 금의환향에 방방 뛰며 좋아했고, 그런 자들을 메론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푸근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장녀는 곧바로 화장실 바닥에 처박혔다. [저 분충에게 해야 할 일을 가르쳐주는 데스.] 메론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메론의 자들은 화장실에 모여 장녀의 머리 위에 운치를 쌌다. 축축한 감촉과 끔찍한 냄새가 장녀의 세계를 부숴나갔다. 어째서 파킨하지 않는 테치...? 묘하게 튼튼한 자신의 위석을 원망하는 장녀였다.

한편 메론은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살아있는 저실장은 모조리 화장실로, 죽은 저실장과 실장석 시체들은 비상식으로 저장, 죽은 놈들 중 가장 큰 건 오늘의 만찬. 원래는 차녀였지만 이젠 허리가 물어 뜯겨 두 토막이 난 고깃덩이를 메론과 자들은 맛있게 나눠먹었다.

[많이많이 먹는 데스야.]

[마마 고마운 테치! 맛있게 먹는 텟츄웅♡]

[레프픗, 분충의 고기라 그런지 한결 더 맛난 레치.]

[레후? 고기 맛있는 레후! 운치보다 맛난 레훗!]

자들이 고기에 달라붙어 물어뜯는 걸 바라보며 메론은 머리 부분을 들어올렸다. 눈은 이미 탁한 회색빛으로 물들었지만, 절규와 증오가 뒤섞인 표정은 아직도 살아있는 듯했다. 아까 죽으면서 저주를 퍼붓던 놈이었던가. 메론은 잠시 기억을 더듬다가 귀찮다는 듯 이내 머리를 입에 넣고 우적거렸다. 아직 덜 발달된 두개골과 푸석푸석한 뇌가 곤죽이 되어 뒤섞였다.

메론은 생각했다. 멍청한 놈들이라고.

옷과 머리카락이 그나마 서로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이기에 들실장들은 독라가 보인다 싶으면 무조건 달려들고 본다. 주인과 산책할 적에 그런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물론 일반적인 경우에야 들실장이 독라가 될 정도면 그렇게 뜯길 정도로 약하다는 증거니 당연히 표적이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메론의 경우는 달랐다.

주인은 몰랐지만, 메론은 사실 실장석 가운데선 꽤 영리한 축에 드는 개체였다. 주인과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그녀는 여러 가지 지식을 습득했다. 그 중엔 도구를 쓰는 법과 마련하는 법은 물론 포식자가 사냥을 할 때 어떤 속임수를 쓰는지, 혹은 자기보다 강한 상대를 상대할 때 어떻게 하는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메론의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도맡아했다.

사육실장일 적에 푸짐히 공급받은 영양도 한몫했다. 들실장 성체가 보통 30cm에 겨우 닿는 데 비해 메론은 40cm 가까이 자란 상태였다. 실장석끼리의 싸움이야 인간 입장에서는 그냥 토닥거리는 걸로 보일 정도로 부실한 것이지만, 이 정도까지 체격 차이가 나면 완력이든 치악력이든 무시할 게 못 된다. 거기다 도구까지 사용하니 웬만한 들실장은 함부로 덤볐다간 말 그대로 뼈도 못 추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메론은 절대 정을 베풀지 않았다. 버려진 사육실장은 습격이나 린치도 문제지만, 혹독한 들생활의 실상을 모르는 게 부지기수라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 넘어가 명을 달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메론은 버려진 이후로 오로지 이기적으로 행동했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해주었다. 덕분에 주인이 마련해준 골판지를 아직까지도 유용하게 쓰고 있는 것이고.

오늘의 약탈도 성공적이었다. 메론도 웬만하면 빼앗은 옷을 걸치고는 평범한 들실장인 양 먹을 것을 구하지만, 정기적으로 독라인 자신을 미끼로 약탈에 나선다. 약탈에서 얻은 고기는 귀중한 먹이거리다. 잘 말리면 저장식이 되고 영양도 비교적 풍부하다. 자들에게 먹이면 다른 들실장의 자에 비해 훨씬 튼튼하고 강하게 자란다.

동족식은 분충도가 높아지는 원인이지만, 엄격한 솎아내기를 통해 아직까진 눈에 띄지 않는 정도로 유지되고 있었다. 사실 메론 자신이 어느 정도 방임한 점도 있었다. 들생활에선 사육실장일 때의 순종적이고 유순한 성향보다는 조금은 난폭하고 교활한 면모가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익힌 것이다.

메론은 이렇게 키운 자들이 테스 하고 울게 되면, 곧장 약탈에 동행시켜서 사냥 방법을 전수해주리라 마음먹었다. 자들을 성공적인 포식자로 만들어 독립시키는 것이다. 강한 자들은 보다 수월하게 번성할 테고, 그렇게 자들로 공원이 가득해진다면 주인의 손에 죽은 첫 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은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오마에들은 와타시의 보배인 데스우. 얼른 먹고 자라는 데스.]

진수성찬에 배가 봉긋 솟아오른 자들을 메론은 껴안았다. 자들도 따스한 어미의 품에 안겨 재잘거렸다. 그리고 모녀들의 행복한 시간 사이에서, 운치투성이가 된 장녀는 피눈물을 흘리며 빌었다.

제발 누군가가 자신을 최대한 빨리 죽여주길.

혹은 저들을 자기 가족과 똑같은 꼴로 만들길.

***

[마마는 오늘도 먹을 걸 구하러 가보는 데스. 집을 잘 지키고 있어야 착한 자인 데스야.]

[마마, 오늘은 안 가면 안 되는 테치? 아직 먹을 게 많은 테츄.]

[바보 같은 소리 마는 데스. 저장식을 많이 쌓아둬야 겨울을 버틸 수 있는 데스.]

[테에에... 오늘은 기분이 이상한 테치. 마마가 없으면 안 될 거 같은 테치.]

[차녀 오마에는 다 좋은데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탈인 데스. 그러면 마마도 밥만 구하고 바로 올 테니 그때까지만 참는 데스.]

[알겠는 레치! 다녀오는 레치 마마!]

[레후! 다녀와서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며칠 전의 수확도 아쉽다는 듯 메론은 골판지를 나섰다. 물론 이번엔 제대로 옷을 걸친 채였다. 다른 동족들과 부대끼며 음식물 쓰레기를 모으는 건 확실히 고된 일이다. 그러나 그만둘 순 없었다.

지금껏 약탈에 실패한 적도 없고 그때마다 풍부한 식량이 손에 들어왔지만 너무 자주 시도했다간 끝이 안 좋은 법이다. 자신과 비슷한 식으로, 그러나 훨씬 자주 설치던 어느 분충이 빈틈을 보이자마자 집단 린치를 당해 골판지채로 작살이 나는 걸 메론은 본 적이 있었다. 게다가 아무리 동족이 넘쳐난다 해도 무한한 건 아니다.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면 자연히 경계도가 높아지고 의심의 눈초리도 많아질 것이다.

그 사실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메론은 그 어떤 세레브 사육실장보다도 현명하다 할 수 있었다.

위이이이이이잉-

그러나 아무리 현명하다 해도 해결할 수 없는 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저 소름끼치는 소음. 머리 위에서 들리는 걸로 보아 분명 집 근처 나무가 근원일 테지만 실장석의 팔다리로는 거기까지 기어올라서 확인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집을 옮기면 될 일이지만 그러기엔 이미 재어놓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 소릴 내는 놈을 찾아다 박살내고 싶지만... 메론은 그저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걸어갈 뿐이다.

소음이 며칠 전보다 더 심해졌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꿈에도 모르는 채.

***

[렛츄웅~ 공놀이 재밌는 레치!]

[하지만 바깥에 못 나가서 답답한 레치...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집안에만 있어야 하는 레츄아...]

[어두컴컴한 데만 있어야 하니 속 터질 거 같은 레치!]

[4녀 이모토챠, 얼마 전에 함부로 혼자 나가 놀다가 산 채로 찢겨져서 먹힌 분충을 못 본 테치? 마마 말대로 집안에 있는 게 상책인 테챠.]

[프니프니해주면 좋은 레후! 프니프니 언제 받아도 기분 좋은 레후!]

메론이 나간 동안 메론의 자들은 다른 집에서 강탈한 공을 가지고 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기적인 약탈 덕분에 가지고 놀 전리품은 많았지만 역시 어린 나이라 햇빛 아래서 뛰노는 것보단 못했다. 엄격한 훈육 덕에 마마의 보호 없이 나가는 건 금물이란 걸 알고 있었지만, 지식과 욕구 사이의 골은 쉽게 메우기 힘들었다.

[렛챠아아아앗! 이렇게 된 이상 노예를 괴롭혀서 노는 레치!]

[3녀 오네챠 똑똑한 레치! 똥노예를 패면 기분이 풀릴 게 분명한 레츄웅♡]

[너무 괴롭히지 마는 테치. 노예가 죽어버리면 화장실의 우지챠를 프니프니해줄 수 없는 테치.]

교대로 수상한 놈이 다가오는지 감시하는 메론의 1녀와 2녀, 공놀이에 푹 빠진 5녀 엄지를 제외한 둘은 그 넘치는 활동성을 분출하기 위해 화장실로 다가갔다. 거기엔 팔 하나만 남은 채 테에 하고 우는 자실장이 있었다. 일가실각한 장녀였다. 운치 반 저실장 반인 화장실 구덩이 안에서 장녀는 반쯤 죽은 눈을 한 채 거의 무의식적으로 저실장들의 배를 누르고 있었다. 프니프니라고 할 수도 없는 엉성한 손길에 화장실 안은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참이었다.

[이 독라 오네챠 프니프니 시원찮은 레훼에에엥-]

[뭐하는 레후! 얼른 꾹꾹 누르는 레후 똥노예!]

[테... 테히...]

죄책감과 공포, 고통과 절망이 뒤섞여 눈가에 검은 얼룩을 남겼다. 파킨하지 않는 게 이상한 상태에서 사지도 온전치 않은 지라 장녀는 엄지실장 둘이 끌어당기는 것만으로도 수월하게 화장실로부터 끌려나왔다. 체중이 급격히 빠진 데다 별다른 저항도 없었던 탓이다.

곧바로 엄지실장들의 린치가 시작되었다.

[와따치의 세레브한 킥을 받는 레치! 영광으로 아는 레챠앗!]

[레프프, 분충은 이렇게 꾹꾹 밟아줘야 길이 드는 렛츄웅~]

차고, 짓밟고, 때리고, 매도한다. 들실장 특유의 잔학한 놀이. 사육실장의 자로 태어나고 아직 어림에도, 그 위석엔 이미 훌륭한 분충의 싹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어째서 와따시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 테치...? 장녀는 생각했다. 본인 또한 그와 별다를 바 없었다는 건 이미 머릿속에서 치워진 지 오래였다.

어째서 파킨하지 않는 테치... 차라리 빨리 죽여주는 테치...

그러나 골판지 하우스의 그 누구도 장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구더기 프니프니용으로 될 수 있는 한 살려두라는 메론의 명령 탓이었다. 게다가 아직 엄지실장의 완력으로는 죽을 만큼 괴롭히는 건 가능해도 목숨을 끊는 건 힘들었다.

[헥, 헥, 지치는 레치...]

[이 분충 아무리 때려도 비명 하나 안 지르는 레츄! 이러면 때리는 맛이 없는 렛챠아!]

[그쯤 해두고 다시 화장실에 처넣는 테치. 그러다 죽으면 마마가 한 소리 할 것인 테치.]

[레에에... 아직 충분히 못 즐긴 레치...]

슬슬 목소리가 굵어지는 게 중실장이 될 모양인 1녀가 엄히 말했지만 3녀와 4녀는 얼굴에 불만이 가득한 채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쯧 하고 혀를 차며 장녀가 일어섰다. 아무래도 노예는 자기가 직접 화장실에 처넣어야겠다. 일어선 김에 슬슬 버릇이 없어지는 엄지들도 쥐어박아주고. 그러려던 차에 새된 5녀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아챘다.

[렛! 나비씨인 레치!]

나비.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것. 햇빛 아래 알록달록한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그것들은 새끼 실장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개가 차를 쫓듯, 손에 잡힐 듯 말 듯 농락하는 듯한 날갯짓은 그야말로 마음을 잡아끄는 일종의 유혹과도 같은 것이다. 마침 심심하던 차에 나비씨 잡기 놀이를 하자는 마음이 모두에게 동했다. 1녀도 똑같은 마음이었다.

[테? 5녀챠, 나비씨 어딨는 테치?]

[여깄는 레치! 나비씨 와따치에게 얼른 와주는 렛츄웅♡]

위이이이이잉-

순간 집안에 소음이 가득 찼다. 마마가 종종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 소리. 그리고 그 근원은...

위이이이잉-

5녀 앞에 내려앉은 나비씨였다. 아니, 나비씨였나? 오래 전이지만, 1녀가 마마와 함께 봄날 나들이를 나갔을 때 본 나비씨는 커다랗고 하얀 날개를 펄럭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나비씨는 뭔가 이상하다.

몸통이 너무 크다. 그때의 나비씨는 날개를 빼면 저실장보다 작고 갸름한 몸통이었지만 이 나비씨는 엄지실장보다도 약간 큰 몸집을 가졌다. 얇고 단단해 보이는 날개에 까맣고 노란 줄무늬가 독살스러움을 내뿜는다. 한때 인간에게 길러지며 여러 가지를 배웠다는 마마는 나비씨란 보통 꽃의 꿀을 빨아먹고 산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저 두꺼운 턱은... 아무리 봐도... 뭔가를 잘근잘근 씹는 데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이, 1녀 오네챠... 저거 나비씨 맞는 테치...?]

[모르겠는 테츄... 마마는 저런 나비씨 알려준 적 없는 테치...]

왠지 모를 불길함에 몸서리치는 1녀와 2녀,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나비씨가 왔다고 환호하는 엄지들, 그 사이로 제일 먼저 나비씨에게 다가간 건 저실장이었다. 나비씨가 뭔지도 모르는 저실장이었지만 일단 처음 보는 것에는 주체 못할 흥미가 돋는 것이다.

[레후? 나비씨인 레후? 새로운 프니프니 받아볼 수 있는 레후?]

저실장이 다가온 것을 알아챘는지 나비씨가 부웅 날아서 저실장 곁에 안착했다. 그리고는 더듬이와 앞다리로 툭툭 두들겨 가며 주위를 돌았다. 뭔가를 감정하는 듯한 몸짓이었다.

[레휏! 프니프니치고는 좀 많이 엉성한 레후! 좀 더 성의 있는 프니프니 부탁하는 레후!]

그러다 턱을 벌리고는...

[레뺫?!]

[우지챠아아아아아아아?!]

나비씨가 저실장을 물어뜯었다. 커다란 턱이 등을 한 번 스치고 지나가자 거기엔 살점이 뭉텅이로 뜯겨나간 상처만이 나갔다. 저실장에 고통을 못 이겨 몸서리치자 나비씨는 다시 한 번 우악스러운 턱을 디밀었다. 이번엔 배가 뜯겨나갔다.

[레뺘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픈 레후! 나비씨 프니프니 아닌 레후! 살려주는 레훼에에엥!]

[우지챠아아아아앗! 당장 우지챠한테서 떨어지는 레치 똥벌레!]

5녀가 공을 팽개치곤 나비씨에게로 달려들었다. 아니, 나비씨도 아니다. 저건 괴물이다. 작지만 흉악한, 우지챠를 괴롭히는 무서운 괴물. 엄지들이 앞 다투어 달려들고 자실장들도 질세라 합세했지만, 괴물은 잽싸게 날아 골판지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우지챠 괜찮은 레치? 많이 아픈 레치?]

[레... 레히이이...]

5녀가 저실장을 안아들었지만 등과 배가 뭉텅 베인 저실장은 신음만 흘릴 뿐이었다. 운치가 질질 흘러나오고, 상처 사이로는 내장이 보였다. 어느 정도 크고 나서는 저런 상처에도 얼마쯤 버티겠지만, 그 정도의 회복력은 저실장에겐 바랄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파-킨하고 맑은 소리가 나며 저실장의 눈이 회색으로 바랬다.

[우지챠...? 우지챠아아아아아아아?!]

[레갸아아아아악! 괴물이 우지챠를 죽인 레챠앗!]

[이게 대체 무슨 일인 테챠!]

경악하는 동생들을 앞두고 1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구더기도 가족이니 잘 보살피라던 마마의 말을 지키지 못했음은 물론, 그게 다른 동족의 침입도 아니라 난데없는 괴물의 습격 때문인 게 충격이었다. 그나마 구더기만 죽이고 도망친 게 다행이지만...

그런데 도대체 저건 어디서 온 건가?

그 속마음에 대답해주듯 소음이 집 근처로 다가왔다. 저실장의 죽음에 슬퍼하는 동생들은 느끼지 못한 모양이지만, 입구에 가장 가까웠기에 장녀는 즉시 빵콘할 정도로 겁에 질렸다. 그러나 공포와 호기심은 비례한다는 말처럼, 1녀의 어깨를 붙잡고 끌어당기듯 확인하고픈 마음이 요동쳤다. 적어도 뭐가 뭔지는 봐야 어찌할지 생각할 수 있으니.

1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후회했다.

***

[데, 오늘은 별다른 수확이 없는 데스. 여러모로 난감한 데스.]

바닥을 겨우 채운 비닐봉지를 든 채 메론은 터덜터덜 걸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수확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오늘만 이런다면 별 문제 없겠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면 약탈의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건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동족식 경험이 있는 실장석은 오로지 동족식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음식물 쓰레기보단 아무래도 나은 먹이인 데다 포식으로 인해 붙는 몸집 덕에 약탈이 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끝은 여러모로 좋지 않다. 다쳐서 운신이 힘들어졌다간 보복을 당하고, 혹여나 사육실장을 건드렸다간 하얀 악마를 부르기 십상이다. 사육실장으로 살 때 배운 지식이었다. 약탈을 하면서도 자들에게 되도록 음식물 쓰레기나 잡초를 먹였던 건 그러한 결과를 최대한 막기 위해서였지만... 이렇게 식량난이 지속된다면 이주를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기맛을 본 자들이 잘 따라줄지.

그렇게 깊은 상념에 잠겨 골판지 앞까지 온 메론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소음이 지금까지 들었던 것 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들렸고, 그 근원지는 바로 자기 골판지 하우스 안이며, 게다가 그 사이에서 미묘하게 비명 같은 게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피 냄새가 난다.

[데뎃?!]

메론은 골판지를 열어젖혔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을 목도했을 때 원사육실장으로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와타시의 자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목청이 찢어질 듯한 비명 사이에서 수십 마리의 장수말벌 무리가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잔칫상 메뉴는, 말할 것도 없이 메론의 자들이었다.

메론의 자들이 본 건 일종의 정찰대였다. 장수말벌은 한 마리가 목표지점에 다다라서 페로몬을 발산하고, 나머지 본대가 그 페로몬 표식을 따라가서 약탈을 벌이는 놈들이다. 골판지 박스 곁의 나무 위에 있던 말벌집에서 나온 한 마리가 메론의 집을 발견했고, 저실장의 살점을 뜯어서는 집으로 가져갔다. 그것이 먹을만 하다는 판단을 내린 장수말벌들은 곧장 약탈을 벌이러 내려갔고, 별다른 저항수단이 없었던 메론의 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이제서야 메론은 깨달았다. 소음의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노랗고 검은, 커다란 날벌레. 주인은 그것이 매우 무서운 곤충이며 사람 또한 쉽사리 당해낼 수 없다고, 실장석인 넌 눈에 띄는 즉시 죽을 수도 있다고 겁을 주곤 했다. 메론은 그때마다 저딴 벌레 따윈 한 손으로 해치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인간은 실장석보다 옳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언제나.

[당장 와타시의 자들에게서 물러나는 뎃샤아! 데갸아아아악!]

메론은 팔을 휘둘러 장수말벌을 쫓아내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장수말벌을 자극했는지 십여 마리가 달려들어 물어뜯고 쏘기 시작했다. 한 번 쏘면 그걸로 끝장인 꿀벌과 달리 몇 번이고 계속 찌를 수 있는 장수말벌의 침은 그야말로 킬러의 흉기나 다름없었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몸을 웅크린 메론은 자들의 몰골을 보고 오열했다.

멀리 떨어진 자그마한 얼룩은 아마 저실장일 것이다. 엄지들은 이미 반 이상 해체되었고, 그 주위로 장수말벌이 살점을 뜯어다가 경단으로 만드는 중이었다. 자실장들은 몸 여기저기가 퍼렇게 부은 채 한두 마리의 장수말벌과 함께 죽어 있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을 하다 독침에 떡이 되었겠지. 사람에게도 위협적인 독인만큼 손바닥 크기의 자실장에겐 치명타로 작용했으리라.

진작 집을 옮겼어야 했다. 소리가 났을 때부터 그래야 했는데. 메론은 피눈물을 쏟으며 후회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째서인 데스, 다들 좋은 자였던 데스. 건강하게 자라 훌륭한 약탈을 배울 자였던 데스. 무럭무럭 자라서 공원을 제패하고 닝겐의 콧대도 꺾어줄 자였던 데스! 어째서 이렇게 죽어야 했던 데스...!

메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수말벌들은 메론의 자들을 조금씩 해체해나갔다.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팔을 휘둘러봐도 잡히는 건 없고, 오히려 틈새를 노려 박아대는 벌침에 고통은 더해간다. 벌써 눈두덩이가 부풀어 올라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그러나 메론은 포기하지 않는다. 자꾸만 주인에게 죽은 첫 자들이 떠오른다. 이번만은 안 되는 데스... 뺏기지 않는 데스...! 그 집착이 오히려 죽음으로 이끄는 유혹이란 것도 모른 채.

자신은 몰랐지만, 메론의 움직임은 이미 아까에 비해 배 이상 느려졌다. 독이 서서히 몸에 퍼지는 것이다. 대략 10여 분이 지나면 한때 공원을 제압했던 약탈자는 싸늘한 시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몸은 한나절 동안 해체되어 말벌집으로 옮겨지고, 새로운 약탈자들을 키울 중요한 식량이 될 것이다.


메론은 분명 영리한 실장석이었다.

그러나 결국은 한낱 실장석일 뿐이었다. 

***

[테에에...]

장녀는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자기를 괴롭히다 말고 왜 저렇게 날뛰는 걸까. 팔다리를 흔들고, 뛰어다니고, 그러다 엎어지고, 손짓발짓을 허공에 해대다 결국엔 뻗어버린다.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어째서 이렇게 된 걸까. 자긴 그저 마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노예를 하나 얻으려 했을 뿐인데. 노예가 생기면 여러모로 좋은데. 마마에게 야단맞아 가며 총구를 깨끗이 닦거나 먹을 구더기가 없다고 불평하다 얻어맞을 일도 줄어들 텐데. 하지만 모든 게 끝장나버렸다. 마마도, 자매들도, 집도. 차라리 그때 입 다물고 집으로 돌아갔더라면.

흐릿한 시야를 헤치고 뭔가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붕붕거리는 소리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파킨 직전의 위석이 최후의 행복회로를 가동한다. 재생력은 뛰어나지만 내구력이 약한 실장석을 위해 발달된 그것은, 웬만한 생물은 즉사에 이를 고통을 환상으로 차단시켜 생명을 유지시킨다. 그리하여 장녀의 눈에 비친 건 이미 오래 전의 죽은 마마가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는 모습이었다. 온기마저 느껴지는 듯한 정교한 환상에 장녀의 눈엔 일순간 생기가 돌았다.

[마마 테치...?]

그런 데스. 그동안 고생 많았던 데스우. 얼른 안기는 데스우.

[마마......]

장녀는 남은 한 짝의 팔을 뻗었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거리. 환상과 현실의 경계일까. 그러나 실장석의 작은 뇌는 그 간격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손을 뻗으라 지시할 뿐이다. 닿으면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것처럼.

[마마가 와준 테치... 이제 모두 끝인 테츄...]

그렇게 실낱같은 행복에 지탱하여 뻗은 손이 닿았다고 생각한 순간.

와그작-

장녀 위에 올라탔던 장수말벌이 목을 물어뜯었다.

조금 탁한 파킨 소리와 함께 장녀는 숨을 거두었다. 이윽고 몇 마리의 장수말벌이 더 달라붙어 그 말라빠진 몸을 조각조각 냈다. 화장실에서 그녀가 기도했던 두 가지 소원이 모두 이루어진 것에 대해, 장녀가 기뻐할지는 의문이었지만.

***

사람들은 말한다. 자신들이 아니면 누가 실장석을 학대하고 구제할 수 있겠냐고.

그러나 경험 많은 사람들은 안다. 학대든 구제든, 사람은 자연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걸.

약탈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상 가장 악랄한 약탈자들은, 언제나 자연의 권속이었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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