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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ㅇㅇ(113.60))

 

부모님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돌아가신지 6개월. 세상에 혈연이라고는 부모님 뿐이던 남자는 아직도 뻥 뚫린 마음을 매꾸지 못한 채로 아직도 방황하고 있었다.

일도 그만두고 무기력하게 집에 처박혀 있다가 배고프면 편의점에 나가 음식을 사다 먹고, 배를 채우면 또 다시 무기력하게 늘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런 그를 다독여주고 혼내서 일으켜줄 사람들은 이제 세상에 없다.



이 날도 평소와 똑같은 그저 그런 날이었다. 씻지도 않은 채 편의점에 온 남자에게 알바가 얼굴을 찌푸리긴 했지만 별다른 말 없이 계산을 마쳤다. 탁아를 대비해서 봉투를 묶어주라는 매뉴얼을 무시하고 그냥 보내는 걸로 봐선 역시 본심은 그가 얼른 떠났으면 하는 모양이다.

남자는 신경쓰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편의점 봉투를 열었을 때, 엄지 실장이 열심히 도시락 포장을 뜯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봐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레챠앗! 똥비닐은 어서 뜯어지는 레샤아아악!!"

남자는 엄지를 무시하고 도시락을 들었다. 봉투에서 나온 엄지가 레치레치 시끄러웠지만 무시하고 도시락을 먹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통통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약속된 전개로 친실장 일가가 온 것이다. 친실장과 자실장 두마리다.

"데프픗, 닌겐이 와타시의 카와이~ 엄지를 납치한 걸 알고 있는 데스! 냉큼 우리도 키우는 데스!"
"......"

당연한 듯이 집에 들어온 실장석 일가를 봐도 역시 남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데뎃? 집 꼬라지가 이게 뭐인 데스?"
"옛날에 살던 골판지의 운치굴보다 더 더러운 테치..."
"닌겐은 인분충인 테치?"

실장석들의 말처럼 남자의 집은 쓰레기 굴이었다. 들실장의 눈에도 더러워 보일 정도면 심각하다.

"마마, 이런 운치굴에서 사는 테치? 더 멀쩡한 노예를 찾는게 좋을 것 같은 테치."

장녀의 말에 차녀가 끄덕였다. 자실장들이 봐도 여기는 살만한 곳이 아니다. 그들이 오기 전부터 집이 이 모양이라면 저기 있는 닌겐은 그들의 노예로 부적합하다. 그들을 위해 움직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친실장은 눈 앞의 상황보다 더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이 닌겐은 학대파가 아니다. 무관심파와도 느낌이 좀 다르다. 닌겐이란 아무리 무관심파라도 실장석이 자기 영역에 들어오면 어떤 행동을 보이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 닌겐에게는 그러한 낌새가 없다. 즉 저 닌겐은 자신들이 여기서 살아도 무심할 가능성이 높다. 괜히 어설프게 다른 닌겐을 찾았다가 학대파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아닌 데스. 우리는 여기서 사는 데스."
"테에? 너무 더러운 테챠!"
"청소하면 되는 데스."
"어이 닌겐! 얼른 노예답게 청소하라는 레치!"

어느새 마마의 곁으로 온 엄지가 기세등등하게 소리쳤지만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남자의 성향을 파악한 친실장과 자실장과 달리 미숙하다.

"저 닌겐은 노예가 아닌 데스. 그냥 같이 사는 닌겐일 뿐인 데스. 그러니 이 집의 관리는 우리가 하는 데스."
"귀찮은 테치..."
"일하지 않는 자는 내쫓는 데스!!"

마마의 엄포에 자실장과 엄지는 어쩔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친실장도 움직였으나 고작 실장석이 몇 시간 청소한다고 해서 될 쓰레기의 양이 아니었다. 업체를 불러도 이틀은 꼬박 잡아먹을 양이다. 현관이 겨우 제모습을 찾은 정도였다.

놀랍게도 실장석 일가는 이후로도 포기하지 않고 집을 청소했다.

청소 노동은 힘들었지만 들에서 위험과 마주치며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행히 이 집은 먹을 것도 부족하지 않았다. 남자가 먹고 남은 음식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안전한 집, 부족하지 않은 먹이. 좀 고되긴 해도 이런 환경을 포기하기엔 아깝다.

"닌겐상! 닌겐상!"

친실장이 남자를 불렀다. 텅 빈 눈이 아래로 향할 뿐 말은 없다.

"모아둔 쓰레기를 밖에 버려줬으면 하는 데스."
"......"

방치된 편의점 봉투들에 쓰레기를 넣어두긴 했지만 그마저도 잔뜩 쌓인 상태다. 사실 친실장은 남자가 움직일 거라고 기대는 안 했지만 일단 말이라도 꺼내봤다.

남자는 주방으로 향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사둔 종량제 봉투가 어딘가 있을 터다. 음식을 사러 밖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절대 움직이지 않던 남자의 의외의 행동에 놀란 친실장은 멍하니 입을 벌리고 데에...소리를 냈다.

친실장의 부탁을 들어준 남자는 다시 무기력 상태로 돌아갔다. 움직인 남자를 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실장들이 테치테치 레치레치 남자의 발치에서 시끄러웠지만 남자는 관심도 주지 않았다. 친실장은 자들을 불러서 다시 청소 작업에 들어갔다.

한달에 걸친 대청소 끝에, 집은 어머니가 관리하던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깨끗한 모습을 되찾았다.

"닌겐상! 다 먹었으면 제대로 치우는 데샤앗! 어지럽히는 닌겐이 있고 치우는 실장석이 따로 있는게 아니란 데스우!!"

여태까지 하던 대로 먹은 도시락 쓰레기를 내버려둔 남자에게 친실장이 한 마디 했다. 남자의 눈이 약간 커졌다.

실장석 일가가 이 집에 들어온 뒤로 그들은 서로 소 닭 보듯 살았었다. 남자는 실장석 일가를 내쫓지 않았고, 실장석 일가는 쓰레기 봉투를 버려달라는 부탁 외에는 남자의 생활에 참견하지 않았었다.

자신의 행동에 참견하는 상대를, 남자는 몇 개월만에 마주했다.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던 때가 생각났다.

"...그래. 미안하다."
"데뎃!?"

열심히 청소한 집에 또 더럽히는 남자에게 한 마디 하긴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무시만 돌아올 거라 생각한 친실장은 놀랐다. 그리고 등골이 서늘해졌다. 들에서 인간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일 때는 항상 안 좋은 일이 벌어졌었다.

"니, 닌겐상. 잘못한 데스. 다시는 닌겐상에게 참견하지 않는 데스. 쫓아내지 말아주는 데스."
"괜찮아. 나야말로 잘못했다."

옛날 기억을 떠올린 친실장이 바로 납작 엎드렸지만 남자는 조용히 넘어갔다.

그리고 이날부터, 무언가 변하기 시작했다.

쓰레기가 줄어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실장석의 손이 닿는 범위여서 집은 청결하다고는 말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하지만 남자가 청소하기 시작하자 금세 깨끗해졌다. 실장석 일가는 자기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던 걸 단번에 해내는 남자를 보고 경외심을 느꼈다. 덕분에 자기 손으로 직접 노동을 하면서 철이 든 자실장들은 남자를 노예나 인분충으로 생각하지 않게 됐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들 사이에 있던 벽도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집청소를 하느라 꼬질꼬질해진 일가에게 목욕을 하게 해줬다.

남자가 먹고 남긴 음식찌꺼기를 먹던 일가에게 음식을 나눠주게 되었다. 처음에는 음식만 받고 멀리 떨어져서 먹던 일가였지만 조금씩 거리가 가까워지더니 옆에서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실장석 일가가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했던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해줬다. 굶주린 동족에게 습격받아 엄지와 구더기들을 잃고 골판지도 부숴졌었다. 정처없이 헤매다가 마지막 발버둥으로 남자에게 탁아한 것이다.

"...닌겐상은 어쩌다 그렇게 살게 된 데스까?"

친실장이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줬다.

부모님의 죽음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상실감을 털어놓는 것은 처음이었다.

"닌겐상도 가족을 잃었던 데스네..."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행위로 가슴 속을 짓누르고 있던 무거운 덩어리가 가벼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닌겐상, 와타시타치가 닌겐상의 가족이 되는 데스."
"뭐?"
"꼭 가족이라 생각 안 해도 좋은 데스우. 실장석은 절대 닌겐처럼 될 순 없는 데스. 하지만 닌겐상이 와타시타치에게 살 곳을 준 것처럼, 닌겐상의 힘이 되고 싶은 데스. 무기력 인분충 시절보다 지금의 닌겐상이 훨씬 빛나는 데스요. 닌겐상의 친도 분명 이렇게 생각할 거라 믿는 데스."

친실장은 말했다.

"......"

새로운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다시 한 번 일어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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