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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마등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이상한 풍경이었다.
평범한 공원, 중앙의 분수대에 실장석들이 우글우글 몰려있다.
여기까지는 평범하다. 
실장석이 드글거리지 않으면 왠지 공원같지가 않다는 사람도 있으니까.
게다가 식수를 구하기 편하고 인간과 접촉하기도 좋은 중앙 분수대 근처는 항상 실장석들의 좋은
집합처가 되는 곳이다.

하지만 그 곳에 영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 있다.
키가 크다. 라기보다 곰이야 사람이야. 라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로 우락부락하게 튀어나온 근육.
얼마나 단련했는지 차돌처럼 안쪽으로 쭉 말려 들어가 거의 완전한 원형을 가지는 주먹.
누구라도 어디서라도 시비붙을 일은 좀처럼 없을 것 같은 평화주의적인 모습의 남자였다.

그리고 그런 남자를 둘러싸고 있는 실장석들은 하나같이 데스데스테치테치거리며 무언가를 그 남자
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물론, 실장석이 사람에게 뭔가를 요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도 사람보는 눈은 있다.
어린이들은 천적이나 다름없으니 무조건 회피, 머리짧은 닝겐은 손에 뭘 들었는지, 복장은 양복인지
편안한 츄리닝인지 확인하고 접근. 머리 긴 닝겐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니 안심하고 접근.
당연히도 지금 저 남자처럼 딱 봐도 맨손으로 백만실장쯤은 다져서 햄버그로 만들어버릴 것 같은 
사람은 아무리 지능이 떨어지는 실장석들이라도 좀처럼 접근하지 않는 대상이었다.

그렇다고 이 공원의 조건이 나빠 당장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접근하는 것도 
아닐 터였다.
애호파들이 자주 오는 이 공원은 여러모로 실장석들에게 살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한참 실장석들이 떠드는 소리를 듣던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맨 앞의 성체 실장 하나를 들어
분수대 옆의 장식용 기둥 위에 올려둔다.
무언가 잔뜩 기대한 것인지 귀를 파닥이고 콧김을 흥흥 내뿜으며 팔을 붕쯔붕쯔 휘두르는 실장석.
A자 모양으로 벌어진 입에서는 통제되지 않는 침이 슬슬 흘러내린다.

남자는 기둥 위에 올려둔 실장석과의 거리를 두어번 가늠해보더니 뒤로 두어걸음 물러났다.
그 기묘한 대치를 본 한 애호파 여성이 남자와 실장석들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지금 뭐하시는거...꺄아아아아아악!"

여성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고 손에 들고 있던 콘페이토 봉투도 떨어뜨렸다. 
남자는 기둥 위에 올려둔 실장석을 향해서 그 무시무시하게 큰 주먹을 냅다 휘두른 것이다.
어느 정도 거리가 있음에도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건한 흉터가 훈장처럼 아로세겨진 그 주먹이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다.
여성은 드디어 이 공원에도 대낮부터 학대파가 활동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 것인지 비명을 
내질렀다.

"하, 학대파다!"
"뭐?"
"아니, 대체 왜 한낮부터..."
"특별히 분충성있는 아이들은 없었는데. 대체 어떤 정신나간 놈이 멋대로 설치는거야?"

여성의 고함소리에 주변에 있던 애호파들이 하나 둘 분수대 주변으로 모여든다.
아직 특별한 분충성이 발현되지도 않은 공원에 대낮부터 찾아온 학대파를 망신줄 생각으로 모여
들었겠지만 남자의 덩치와 인상을 보고는 누구 하나 섣부르게 다가설 수 없었다.
간신히 용기를 낸 한 사람이 남자에게 다가갔다.

"다, 당신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대낮부터 학대라니. 여기는 아직 아무 문제 없는 공원이라구요!"

맞아 맞아 하는 호응이 뒤에서 들려온다.
그제서야 자신을 바라보는 애호파 회원들을 인식한 남자가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순박한 표정으로
뒷통수를 긁적인다.

"아, 무슨 생각하지는지는 알겠는데. 저..그런게 아닙니다."
"아니긴! 이 아가씨가 다 봤는데!"

남자가 생각보다 약하게 나오자 자신감이 올라간 것인지 애호파 인원들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남자는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다시 말했다.

"저는 학대파가 아닙니다. 이 애들을 위해서 이걸 해주는거라구요."

모여있던 애호파 회원들의 얼굴에 일제히 의문의 빛이 감돌았다.
실장석들이 맞아죽는걸 원했다고?
언제부터 실장석들에게 자살선망이나 마조히즘이 유행했다는 말인가.
영문모를 소리에 애호파 회원들이 서로를 바라보다가 다시 남자를 본다.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고 애호파 회원들에게 말한다.

"자, 이걸 잘 보세요."

그러고보니 아까 기둥 위에 올려두었던 실장석, 아직 죽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일까.
카오스 실장이나 실장씨도 아니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그냥 실장석이다. 
그런데 어떻게....아니지, 카오스 실장이나 실장씨도 저런 주먹으로 후려맞으면 죽고말 것이다.
자신들의 상식과 이성을 벗어난 사태에 애호파 회원들이 넋이 나간 사이 남자는 기둥 위에 있던
실장석을 조심스럽게 잡아 땅으로 내려두었다.

그 실장석은 행복한 표정으로 멍하니 '데에~'하는 멍청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바닥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인간이 자신을 들어올렸다가 내려놓았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고는 해도) 보통의 실장석처럼
자신이 사육실장이 되었다며 성질을 부리거나 바둥거리지도 않고 그저 앉아서 저 멀리를 멍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다른 실장석들의 반응이었다.
자신의 눈 앞에 멍청히 앉아서 넋이 나간 다른 실장석이 있음에도 공격하거나 비웃는 대신 맹렬하게
그 남자를 바라보며 '데스데스!' 하며 울 뿐이었다.

"그래, 그래 알았어. 다음은 누구지?"

남자가 당황스럽다는 듯이 웃으며 다른 실장석 하나를 들어 기둥에 올려두었다.
이번 실장석도 아까의 그 녀석과 마찬가지로 눈을 반짝이며 흥분으로 인해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링갈을 떠올린 한 애호파 회원이 링갈을 작동시켰다.

[큰 닝겐상! 빨리 해주시는데스! 와타시도 낙원을 구경하고 싶은데스!]

낙원? 이게 무슨 귀신씨나락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애호파 회원들이 대체 실장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궁금해 하고 있을 때, 남자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 자세를 잡았다.
발은 앞으로 튀어나가기 위해서 살짝 기울어지고 허벅지는 힘줄이 불끈 올라오며 찢어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올랐다.
억센 팔과 어깨 근육도 한줄기 소나무처럼 단단하게 부풀고 그 끝의 주먹은 바윗덩어리마냥 단단하게
쥐어져 그 안에 담긴 힘이 보기만해도 느껴질 정도였다.
자기 앞에 있는 실장석을 노려보는 눈은 아까 그 순박하게 웃음을 짓던 눈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차갑고도 날카롭게 빛나고 힘을 주려고 이를 악물었는지 볼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애호파 회원들도 자신도 모르게 긴장해서 그 광경을 침을 삼키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살기라고 할만한 것을 받은 실장석은 데에...데에 하며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지 바짝
굳어 다리만 조금 떨고 있었다.

하압!

남자의 기합성과 함께 아까처럼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나고 남자의 주먹은 실장석의 바로 코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주먹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던 실장석은 아예 넋이 나가
버렸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뎃데로게~ 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행복회로가 발동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남자는 그 실장석을 조심스래 들어 아까 내려둔 그 실장석 옆에 두었다.
두 녀석 모두 데에..하면서 먼 산을 아련한 행복감이 깃든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은 애호파 회원들이 남자에게 물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실제 고통을 느끼지도 않았는데 행복회로..아니, 저거 행복회로는 맞나?"
"처음보는 반응이에요. 꼭 마약이라도 한 것처럼....왜 이러는거죠?"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애호파 회원들에게 설명을 시작했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던 실장석들이 '왜 이렇게 늦는데스! 닝겐상!' 하며 항의했지만 그것들도 남자의
힘이 무시무시하다는 것은 알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그러다가 남자가 그냥 가버리는 것이 두려워서인지
투분하거나 남자를 공격하지 않고 그저 항의만 할 뿐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예전에 다른 공원에 산책을 갔을 때, 다 죽어가는 실장석 하나가 와서 도저히 
고통스러워서 못 살겠으니까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더라구요. 맘같아서는 불쌍해서 뭐라도 해주고
싶었는데 키울 수도 없고 해서. 그럼 정말로 깔끔하고 편하게 보내주자 해서 아까처럼 정권지르기로
아예 박살을 내서 깨끗하게 죽여주려고 했는데..못 죽이겠더라구요."

남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게 바로 직전에서 주먹을 멈췄을 때, 그 다 죽어가던 실장석이 갑자기 
뎃데로게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낙원을 봤노라며 열심히 살아서 꼭 낙원에 가겠다고 닝겐상 덕분에 낙원을 알게 
되었노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 저곳 공원을 돌아다니며 실장석들에게 직전에서 주먹을 멈추는 정권지르기를 해주고
있는데 하나같이 저렇게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애호파 회원들은 경악에 물든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런 방식의 애호라니, 참으로 신기하지 않은가. 그리고 낙원이라니! 혹시 실장석들이 사후세계를 증명
하는 단서가 되는 것은 아닐까.

애호파 회원들은 남자에게 한 번 더 그 장면을 보여주기를 부탁했다.
남자는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뭘'이라며 다음 실장석을 기둥 위에 올려두었다.
이번에도 기대에 부풀어 바둥거리는 실장석, 날아가는 주먹. 행복에 가득차 멍한 표정으로 데에 하며
내려지는 실장석.
한 애호파 회원이 링갈을 들고 그 실장석에게 다가갔다.

"대체 뭘 본거니?"

실장석은 멍한 표정으로 애호파 회원을 한번 쓰윽 돌아보더니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대답했다.

[꿈같은 광경이었던데스...마마도, 이모토챠도, 오네챠들도 모두모두 있었던데스...콘페이토가
마구 굴러다니고 따끈따끈했던 데스. 더운거 아니고 따끈따근인데스. 다함께 뎃데로게 노래를
부른데스. 언젠가 죽어버렸던 사녀도, 밥을 못 구해서 굶어죽었던 차녀도 모두들 배부르게 먹고
자를 가득 가득 낳으면서 행복했던데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먼 하늘을 바라보며 멍하니 데에 하고 앉으며 한 마디를 보탠다.

[언젠가는 와타시도 그곳으로 가서 같이 행복해지는데스. 그 때까지 살아가는데스.]

애호파 회원들은 그 내용을 보며 고민에 빠졌다. 
그냥 전형적인 행복회로같다. 하지만 행복회로에 한번 들어갔던 실장석은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더욱 괴로워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몇 시간 후, 공원의 모든 실장석들이 공원 분수대 근처에 둘러앉아 데에~하며 먼 곳을 바라보는 
이상하다 못해서 괴이쩍은 광경이 펼쳐졌다. 
남자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 되어 심호흡을 하며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한 애호파 회원이 아까의 링갈 대화를 보여주며 남자에게 의견을 구했다.
남자는 또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주마등, 아닐까요?"
"주마등이요? 그 죽을 때 보인다는 그거요?"

주마등이라고 하기에 이 이야기는 실장석들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지 않은가. 남자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실장석이라는 동물은 행복회로라는 걸로 다들 저 좋을대로 생각하잖아요. 주마등도 그거랑 섞여서
비슷하게 되는거 같아요. 
살아오면서 슬펐던 일, 후회하는 일 전부 묶어서 가장 좋은 쪽으로 상상하고 보는거죠.
그런데 그건 이미 지나온 길이니까 현실은 아니라는걸 이 애들도 아는거 같아요.
그래서 그걸 낙원이라고 부르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그리고 그래서인지 가끔씩 이렇게
해주면 실장석들이 좀 얌전해진다고 해야하나. 사람한테 덤비거나 막 굴지도 않고 저들끼리 다투지도
않고 그러더라구요."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설명이라 애호파 회원은 고개를 끄덕이고 집으로 돌아갔다.
오늘은 참 신기한 일을 봤다고 생각하면서.
남자도 돌아간 공원, 모든 실장석들은 낙원과 자신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후회와 잘못, 
잡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 행복들이 모여있던 그 '낙원'을 생각하며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간다.

자신보다 약해보이는 동족들이 보이지만 서로를 공격하지도, 약탈하지도 않는다. 모두 서로가 바라본
낙원을 꿈꾸는 것을 알기에 아둥바둥 다투면서 지금의 잠시 잠깐의 즐거움을 쫒을 필요가 없다.
언젠가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굳게 믿게 된 실장석들은 덧없지만 확고한 희망과 행복을 가지고 
내일도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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