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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신발!

 

"아악! 늦었어! 완전 쳐늦었어!"

여고생인 은지는 패닉에 빠져있었다. 그녀가 다니는 J여고의 등교시간은 7시 55분까지. 다행히 집과 가까운 곳이라
열심히 걸어가면 15분 거리. 하지만 잔혹하게도 시계는 7시 43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어쩌지?! 어쩌지??"

손으로는 쉴세없이 가방을 꾸리며 은지는 그 어느 때보다 맹렬하게 두뇌를 회전시키고 있었다. 만약 지각하면 벌점은
둘째치고 히스테리 허리케인이라는 별명의 학생주임 선생님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릴게 분명했다. 어떻게든 지각을
피해야한다. 버스나 택시나 주택가인 이 곳에서 잡아타고 가려고 해봤자 무계획적인 이 동네의 특성상 빙빙 돌아서
학교에 도착하면 어차피 지각 확정. 도저히 방법이 없다...방법이....

"응?!너 왜 아직 학교 안 갔냐."

그 순간, 그녀에게 구원이 내려왔다.

"아...쪽은 좀 팔려도....영혼하고 엉덩이가 같이 탈곡되는거보다는 나은 선택이지 뭐."

아까까지만해도 지각의 위기에 몸부림치던 가여운 영혼은 없었다. 사뭇 여유롭게 콧노래까지 부르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 그렇게 보기에는 그녀의 표정에는 여유가 넘친다. 그리고 그녀는 평소라면 절대로 
발을 들여 놓지 않을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후..냄새..."

시립 J공원, 2010년부터 정부가 일본에서 식량,의료,노동자원 수입계약으로 들여온 실장석이라는 민폐생물에 
의해 점거당한 공원 중 하나. 분명히 잦은 구제활동이 잇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처럼 자라난 그것들이 
뿌리내린 장소. 

평소라면 절대로 이곳을 통해 학교를 향하지 않는다. 비록 공원을 통해가면 15분 거리가 5분 거리로 단축된다지만 
그럼 뭐하는가. 교복이 온통 실장석들의 더럽고 냄새나는 똥이나 침으로 범벅이 되버릴텐데. 하지만 오늘의 은지는 
굉장히 여유롭게 공원을 걸어 통과하고 있었다. 사람만 보이면 우르르 달려들어 온갖 잡다한 것을 요구하며 
귀찮게구는 실장석들은 숨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잠깐 전, 은지가 공원에 발을 막 들인 그 순간.

"닝겐! 닝겐이 온 데스!"

"콘페이토를 내놓는 데샷!!"

평소처럼 실장석들은 간만의 공원 방문객에 흥분하여 달려들 기세였다. 하지만 은지가 신고 있는 신발이 보이는
그 위치, 딱 그곳까지 간 순간 실장석들은 모두

"데...와타시는 바쁜 일이 있어서 돌아가야할거 같은데스."

"와타시도 자들이 집에서 기다리는데스."

"와타시는 원래 콘페이토같은거 안 좋아하는데스."

바람처럼 흩어져 자신의 집으로 달아나 자들과 함께 덜덜 떨고 있었다. 은지가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은 바로
예비군인 오빠가 내준 전투화. 비록 발크기 차이가 심각해 안에 휴지를 한뭉탱이씩 넣고 걸어야하지만 그녀에게 
지금 그것은 구원이었다.

"와...진짜로 실장석들이 근처에도 못 오네."

한국에 실장석이 도입되고 사회문제가 되기까지 1년이 채 걸리지 않았고 급박하게 커진 실장석 문제에 
성남이나 서울 정도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대응할만한 메뉴얼도, 예산도 없었다. 그리고 항상 이럴 
때 만만한게 군대요 예비군인 법. 일당 6천원으로 향방작계에서는 6시간씩 
일년에 두 번, 동원훈련에서는 하루 8시간씩 3일을 부려먹을 수 있는 인력이라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래서 일본에서 수입된 이 실장석들은 그녀들을 괴롭히던 공포의 '하얀 악마' 대신, '얼룩덜룩 악마' 를 맞이하게 
되었고 구형 전투복과 혼용된 복장에 혼란을 느낀 단순한 실장석들은 하얀 악마에 비해서 확 눈에 띄는 차이점, 
즉 검은 신발을 새로운 악마의 특성으로 기억하고 위석에 새겨 후손에게 물려주게 되었던 것이다.

"검은 신발! 검은 신발이 온데스!"

"마마, 무서운테치!!!"

"프니프니해주는레후?"

"레에에엥! 검은 신발이 와버린레치!"

"빨리 숨는데스!"

은지가 신고온 전투화 덕분에 공원은 일대 혼란, 그럼에도 은지가 가는 길은 평온했다. 아무리 실장석들이라도 
구두나 다른 신발과는 확연히 차이를 보이는 전투화와 그 발소리는 명확히 알고 있었기에 감히 그 방향을 바라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거기에 추가로 은지의 오빠는 3일 전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고 아직 전투화에서는 실장석의 피냄새도 완전히
빠지지 않았던 것이다. 실장석들에게 지금 은지는 동족의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다가오는 '검은 신발의 악마' 
그 자체였다.

"이쪽으로 오지마는 테챠! 오지마는테챠아아아아아아!"

"왜 이리오는테치! 마마! 싫은테치! 와타치는 살아야하는테치! 살아서 콘페이토도 스시도 스테이크도 
먹어야하는테치이!"

파킨! 

"오로롱~어째서 우리 자가 이런 죽음을 맞이한데스까...오로롱~"

간혹 멘탈이 약한 실장석들은 은지가 학교로 걸어가는 방향에 하필 재수없게 집이 있었던 관계로 조용한 
파킨사를 맞이하기도 했으며,

"죽기 전에 배나 실컷 불리는데스! 장녀,차녀,삼녀,사녀,엄지에 구더기! 자들은 모두 이리와서 마마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즐기는데스!"

"마마!"

"먹어도 괜찮은레치?"

"이건 전부 겨울을 위한 보존식인테스!"

"상관없는데스, 어차피 저 검은신발 악마가 온 이상 살아남기는 글러먹은데스. 자들, 지금까지 못난 마마 밑에서 
고생 많았던데스. 마지막으로 배불리 먹고 모두 실장석의 천국에서 다시 만나는데스."

"마마! 테에에엥~"

"레후? 구더기도 밥 먹는레후? 먹고나서 프니프니해주는레후?"

대뜸 눈물의 잔치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휴, 다행히다. 지각 안 하고 통과했네."

막 교문을 통과한 은지는 미리 가져온 비닐가방에 오빠의 전투화를 벗어 밀어넣고 챙겨온 자기 신발로 갈아 신었다. 
정말이지 오늘은 오빠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나이차가 좀 많이 나서 약간 어려운 감이 있었는데 이번 주말에는 고마움의 표시로 치킨이라도 한 마리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교실로 향했다.

한편 공원에서는

"데..? 뭐인데스. 검은 신발이 그냥 지나간데스까?"

"왜 그냥 간 데스? 어째서인데스? 왜 나의 자들은 죽어야했던데스?"

"데샤아앗! 그만 처먹는데스! 이 분충들!"

"마마가 먹으래서 먹은테챠! 그런데 왜 때리는테치! 이 똥마마!"

"데프프프프, 검은 신발 악마도 와타시의 위엄에 놀라 달아난게 분명한 데스!"


"그런데스! 우리가 검은 신발 악마를 물리친데스!"

"이제 검은 신발 악마를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진데스! 전부 우리가 물리치는데스!"

데스데스하며 왁짜지껄한 소란이 일어났다. 두달 뒤, 이번에는 향방작계로 J공원에 구제작전을 나간 예비군들이 
어째서인지 예전처럼 달아나지도 숨지도 않고 덤벼오는 실장석들 덕분에 전원 1시간내 목표량 달성 후 조기 퇴소라는 
신기록을 달성한 것은 아직 조금 뒤에 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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