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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

 

보슬보슬 비가 내린다.

거세지는 않지만 갈색 낙엽을 떨어뜨리기에는 충분한 굵기의 가을비는 A공원을 적시고 있었다.

공원 앞의 어떤 이는 가로등의 불빛이 빗 속에 번져 환하게 보이는 초저녁의 공원을 보며 감상에 젖고 있었고, 그녀의 옆으로는 오랜만에 내리는 가을비를 반기며 마치 런던의 신사가 된 듯한 기분으로 한껏 콧노래를 부르는 퇴근길의 직장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서정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A공원의 중앙 광장에서는 인간이 듣기에는 다소 시끄러우면서도 거북한, 성체 실장석이 울부짖는 소리가 비오는 날의 정취를 망치고 있었다.

"데쟈아아아아아아! 데쟈아아아아아아아!"

그 실장석은 비가 오는 줄도 모른 채 무언가를 양 손에 고이 모셔들고 빗속을 연신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참을 뛰어다녔는지 온 몸은 젖어있었다. 더러운 진녹색 옷에서는 땟국물이 줄줄 흘렀고, 끝이 말린 너저분한 두 뒷머리는 모두 곱슬기가 풀어진 채 물에 묻은 기름때를 질질 떨어뜨리고 있었다. 실장석의 입에서는 추위를 느끼고 있는 지 이빨을 딱딱거리는 소리도 났다.

“데즈우우우우우우! 데쟈아아아아앗!”

그러나 그 실장석은 계속 비오는 공원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다른 실장석들은 늦은 시간에 내리는 비를 피하러 다들 제 집으로 돌아간 모양이지만, 이 실장석은 집으로 돌아가려하지 않았다. 아니, 당최 집으로 갈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저 때때로는 보슬보슬한 비가 내리는 하늘을 바라보며, 혹은 공원 주위의 사방팔방을 바라보며 이리저리 쏘다닐 뿐이었다.



불과 오늘 아침만 해도 이 녀석은 여느 공원의 들실장들처럼, 자신이 낳은 새끼와 함께 알콩달콩 살아가는 평범한 개체였다.

“테치~! 테치테치!”

“데스데스데스웃! 데프프픗.”

장녀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하나 뿐인 자. 이 귀여운 자가 아침에 먹이를 구하러 나서는 친실장을 배웅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안개비가 공원을 시나브로 덮어가고 있었다. 매일매일이 힘든 공원의 거친 삶이었지만,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자를 위해서 친실장은 오늘도 공원을 나섰다.

올 가을 초에 독립한 친실장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독립의 기쁨을 만끽할 새도 없이 월동 준비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신문지를 모으고, 수건을 줍고, 저장할 먹이를 바쁘게 모으는 와중에도 친실장은 공원 한 구석에 피어있는 하얀 코스모스를 가져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주일 후, 양 눈이 붉게 변한 친실장은 공원의 화장실로 달려갔다. 곧 출산이 임박했다. 서두르지 않으면 중간에 자를 말 그대로 ‘싸버리게’ 될 것이다. 이미 공원 화장실은 이 시기에 추자를 낳으려 한 다른 들실장들로 뒤덮여 있었다.

“데즈우우우웃! 데즈우우우우우!”

이미 남녀 화장실 대변칸은 먼저 온 공원의 실장석들이 점령하고 있었기에 친실장은 발만 동동 구르며 다른 실장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뱃속의 자들은 이미 나오기 위해 아우성을 치고 있는 상황.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안에 있는 녀석들은 여전히 나올 생각이 없는 지, 칸막이 저 편에서 산고의 비명, 출산의 탄성, 자를 핥는 소리 등이 들릴 뿐, 문은 미동도 없었다.

“데에.. 데에... 데에엣!”

자들은 이미 총배설구 바로 앞까지 밀려와 있었으며, 빨리 나가게 해달라고, 어서 자신을 뱃속에서 내보내 달라고 보채는 지 친실장의 배를 더욱 아프게 했다. 이제는 한계였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극심한 산고를 견디지 못한 친실장은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속옷을 내리고 그대로 배의 힘을 풀어버렸다.

“데에...! 데에에엣! 데갸아아아아아아아악!”

“텟테레삐아아아아앗!”
“텟테레삐아아아아앗!”
“텟테레삐아아아아앗!”
“텟테레삐아아아아앗!”

세상에 태어난 기쁨. 소중한 생명을 가지게 된 기쁨.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기대에 젖은 기쁨.

아직 점막에 싸여 구더기처럼 보이는 자들이 가진 기쁨은 차가운 타일 위에서 터져버린 이들의 몸뚱아리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친실장의 총배설구에서 나오며 탄생의 외침을 지르던 이들이 본 것은 시원한 물이 아닌 딱딱한 바닥과 그 위에 있는 자매들의 시체. 아직 무른 그들의 몸은 이미 터져버린 자매들 위에서 터지고, 터지고, 또 터져버렸다.

친실장에게서 태어난 7마리의 자매는 그렇게 모조리 화장실 바닥의 곤죽이 되어버렸다.

“데헤엑... 데헤엑.... 데헤엑...”

정신이 든 친실장이 자신이 한 짓을 깨닫고 황급히 내려다 봤을 때에는 이미 자신의 자식이었던 것들이 운치와 범벅이 되어 화장실 바닥과 자신의 하반신 여기저기에 피를 튀기며 묻어있을 뿐이었다.

“데에......데에에에에...! 데챠아아아아아아!”

“데프프프픗.”

“데프프프픗.”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주변의 다른 출산을 기다리는 실장석들이 비웃는 것도 모른 채, 친실장은 그저 양 눈에서 빨간 눈물을 흘리며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뿐이었다. 양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친실장은 화장실에 있는 이들을 모두 원망했다. 자신이 문을 필사적으로 두드렸을 때는 나오지도 않던 들실장들이 이제야 하나 둘 씩 대여섯의 자들과 함께 하하호호 웃으며 나왔고, 그 자리에 자신보다 늦게 온 녀석들이 이때다 싶어 들어가 버린다. 자신은 그저 아파서 참지 못했을 뿐인데.. 너무나 아팠을 뿐인데.. 자들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도 그랬지만, 자들 역시 조금만 참았다면 태어나자마자 죽지 않았을 텐데.. 조금만 자신의 총배설구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배를 차지 않았다면.. 마마가 참을 수 있었는데... 지금 배에 있는 녀석처럼....

“데에?”

“텟테레이~”

친실장이 아직 자신의 출산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아챔과 동시에 8번째 자가 튀어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친실장이 있는 곳은 이미 태어난 자들의 고기로 피투성이가 된 화장실 바닥.

“데갸아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아아!”
이 자도 똑같은 운명을 겪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자는 이미 총배설구에서 나와 버렸고,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친실장은 자신이 출산 중이었음을 망각했던 것을 원망했다. 더 이상 배에서 자들이 꿈틀거리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철벅.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이 자도... 마지막로 태어난 이 자도.. 언니들을 따라 죽는 건가.. 친실장은 울었다. 8마리의 자를 모두 잃어버렸다는 슬픔에, 기대했던 초산이 처참히 실패로 끝났다는 비정한 현실에.

“레후! 레후우우웃!”

“데에에에엥...히끅... 데에에에엣!”

들렸다. 새끼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째서? 이 자 역시 물이 없는 딱딱한 바닥에 터져 죽어버렸을 텐데? 친실장은 뒤돌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공교롭게도, 수북하게 쌓인 언니들의 시체 무덤 한가운데로 떨어진 그 자는 언니들의 체액이 흠뻑 담긴 부서진 몸뚱아리 조각들이 쿠션 역할을 해주었던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7마리 언니들의 죽음을 대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친실장은 황급히 이 자를 들어서 자신의 혀로 핥아주었다.

“테...테치! 테치테치! 테츄웅~”

건강한 자실장이었다. 비록 하나밖에 살릴 수 없었지만, 친실장은 이 자를 만날 수 있음에 감사했다. 화장실 바닥에서 모든 자를 죽일 뻔 했지만 이 자는 언니들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반드시 성체로 키워보일 것이라고, 번듯하게 키워 자신의 대를 잇게 할 것이라고 친실장은 다짐했다.

호기심이 많은 것인지 자꾸만 주변의 출산에 임박한, 혹은 출산을 마치고 나오는 다른 들실장을 두리번두리번 쳐다보는 이 자를 주워서 친실장은 부리나케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데스우... 데스데스?”

잠시 장녀를 만났을 때를 회상하던 친실장은 빗방울이 점차 굵어짐을 느꼈다. 기본적으로 옷을 입고 있는 들실장들은 젖은 옷이 자신들의 체온을 빼앗아간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비를 피하려는 습성이 있다. 친실장 역시 오늘은 다소 먹이를 모으지 못했지만, 아쉬움을 뒤로 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데스데스데승...데스데승..”

골판지가 집에 젖게 되어 투덜거리며 돌아가는 친실장이 거의 집에 다다랐을 때였다.

저 멀리 자신의 집 앞에 뭔가 누워 있었다.

발걸음을 앞으로 나갈수록, 그것과 점점 더 가까워진다. 녹색의 무엇이다. 자세히 보니 자실장이다. 자실장 하나가 누워있었다.

“데스우... 데에..! 데쟈아아아아아아!”

친실장은 봉투를 내려놓고 그 자실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골판지 앞 잡초 위에 누워있던 것은 바로 장녀였던 것이다.

“테...테에....”

“데쟈아아아! 데스데스! 데스데스!”

태어난 지 보름, 장녀는 오늘 비를 처음 봤다. 아침에 친실장을 배웅했을 시기 안개비가 내렸을 때에는 비가 오는 지조차 몰랐지만, 점차 가느다란 빗줄기의 형상을 띄자 골판지 밖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물이 내려온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장녀는 옆에 놓인 물이 반 정도 들은 500ml 페트병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물이 많이 오면 자신의 키 보다도 큰 이 병을 생활 식수로 꼭꼭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마마도 더 이상 물을 길러 가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마아안큼이나 물이 많이 있으니까

“치프프프픗. 치프프프픗.”

장녀는 빨리 마마가 와서 이 하늘에서 내리는 물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하는 마마가 더 이상 물을 구할 걱정을 해도 되지 않아 기뻐하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자신의 친의 행복한 얼굴을 상상한 장녀는 너무나도 기뻐 더 이상 골판지 바닥에 앉아만 있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물을 만끽했다. 분명 열심히 살아간 자신 모녀에게 내리는 이 세상의 축복이리라. 이렇게 생각하며 기쁨의 춤을 추었다. 덩실덩실 팔짓을 하며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테햐아아~ 테퍄아아아~! 테프프프픗.”

이만큼 많은 물이 있다면 앞으로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식수도, 출산에 필요한 물도, 씻을 물도 전부 여기에 있으니까.

한 발을 들고 빙그르르 돌았다. 몸이 젖고 머리가 젖었지만, 자신의 몸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서 상쾌했다. 정말정말 행복하다. 마마가 이 광경을 어서 봐야하는데..

“테츄아아아아! 테프프...테프프프....테에... 테헤에....테에에엑...”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뜨거웠다. 이상하게도 몸이 뜨거운 데 추웠다. 정말 이상하다.

장녀는 몸을 비틀거렸다. 더 이상 서있을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다. 눈이 감겨왔다.

그대로 풀섶에 쓰러져버렸다.

여전히 장녀의 몸 위로 비가 내려와, 장녀의 체온을 앗아가고 있었다.



“데쟈아아아아아! 데쟈아아아아아!”

장녀를 껴안은 친실장은 장녀의 체온이 불구덩이 같이 타오름을 깨달았다. 친실장은 이 현상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자실장이었을 시절의 여름날, 마마가 나간 사이 페트병을 가지고 놀다가 페트병의 물을 몸에 쏟아 흠뻑 젖어버렸던 차녀 오네챠가 한번 이런 적이 있었다.

그 때 차녀 언니 역시 몸이 해님같이 뜨거웠다. 그런데도 춥다고 오들오들 떨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밥도 안 먹으려하고, 운치만 계속 싸댔었다. 마마와 자매들의 극진한 간호에도, 이튿날 차녀 언니는 죽어버리고 말았다.

어렸을 적의 기억을 떠올린 친실장은 다급하게 장녀를 자신의 품 안에 껴안았다. 최대한 따뜻하게 해야한다는 생각에 자신의 누리끼리한 앞치마로 장녀를 감쌌다. 장녀의 몸은 굉장히 뜨거웠다. 그러나 비에 젖은 친실장의 옷은 오히려 장녀의 체온을 더욱 앗아갈 뿐이었다.

“테케엑...테켁테켁....”

“데즈우우우우우! 데즈우우우우우우!”

친실장은 어쩔 줄을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그 때의 차녀언니처럼, 이 자 역시 목에서 마른 기침을 내고 있었다. 운치를 삐직삐직 싸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하나밖에 없는 이 자도 차녀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리라.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해야 이 자를 낫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 고통에 신음하지 않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장녀가 걸린 실장 감기는 보통 체력이 약한 사육실장에게 주로 걸리며, 외부 환경에 면역성이 있는 들실장은 잘 걸리지 않는 병이다. 그러나 때때로 급격한 체온 저하가 들실장에게도 실장감기를 유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공원의 들실장이 비를 피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중실장이나 성체의 경우, 실장 감기에 걸렸다 해도 하루 이틀 앓다가 다 나아버린다.

그러나 아직 몸이 약한 자실장 이하 개체에게 실장감기는 목숨을 위협할 수도 있는 병이다. 사육실장들처럼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이튿날에는 80%의 확률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며, 자연적으로 완치되는 개체는 5%가 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장녀를 살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실장 감기약을 먹거나 사육실장 전문 수의에게 방문하여 장녀를 진료해야만 했다.

그러나 한낱 들실장에 불과한 친실장이 이러한 것들을 알 리가 없었다.

“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데쟈아아아앗! 데챠아아아앗!”

“테켁...테켁..테에...테츄우! 테에...테에엑..”

떨고 있는 장녀를 그저 자신의 앞치마로 안아주는 것, 신음하는 장녀에게 괜찮다고, 마마가 있다고, 아프지 않게 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 그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장녀를 낫게 해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장녀가 자신의 차녀언니와 같은 말로를 걷지 않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친실장은 다급하게, 절박하게 고민했다. 간신히 남긴 단 하나의 자이다. 절대 잃을 수가 없었다.

‘인간’

갑작스레 친실장의 머릿속에 스친 단어는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은 모든 것을 해준다.

공원에 오는 애호파 인간들이 들실장들에게 먹이나 수건 따위를 주는 것을 친실장은 본 적이 있었다.

인간은 실장석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친실장은 인간들에게 자를 어필하며 자신들이 사육실장이 되길 희망했던 여러 들실장 일가를 본 적이 있었다. 비록인간의 손에 자들이 밟히고, 어미마저 구타당하는 등 일가실각 당하기도 했었지만, 들실장들은 여전히 인간의 손에 길러지기를 열망했다. 자신들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전지전능하다.

자를 키울 형편이 안 되는 들실장들이 최후의 수단으로 인간에게 탁아 하는 장면이 생각났다. 이들은 인간에게 자신의 자를 맡기면서, 자들이 인간의 손에 길러져 행복해지길 간절히 기원하고 있었다.

“.....뎃수.”

결심했다. 친실장은 장녀를 안아들고 자신의 골판지가 있는 잔디숲을 벗어났다.

인간이라면 해결해줄 것이다. 그들은 전능하니깐. 뭐든지 가지고 있고, 자신들에게 없는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으니까.

반드시 인간은 장녀를 고쳐줄 것이라 믿었다. 신음하는 장녀를 어르며, 친실장은 공원의 산책로로 나왔다. 그리고 분수대가 있는 중앙 광장 쪽으로 달려갔다. 그 곳에는 인간들이 많다. 평소라면 인간이 혹여나 자신을 해코지할까 중앙 분수 광장 쪽을 피했겠지만, 지금 친실장에게는 인간의 위험성 따위는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하나뿐인 자를 낫게 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공원의 여러 산책로가 이어진 분수 광장에 장녀를 안아든 친실장이 도착했다.

공원 바로 옆에 지하철역이 있었기 때문에, A공원은 단순한 휴식처가 아닌 사람들의 통행로 기능도 겸하고 있었다. 비오는 날의 오후 시간이라 사람들이 평소보다는 뜸했지만,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몇의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각자 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비를 맞고 있는 초췌한 들실장 따위, 신경쓰기 싫다는 듯이.

“데에....”

“테에...테츄우..”

넋 놓고 인간들을 바라볼 때가 아니었다. 비를 맞고 있어서 그런지 장녀의 열이 한층 심해졌다. 다급해진 친실장은 근처에 파란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한 남자에게 다가갔다. 걷고 있는 남자의 다리 보폭에 간신히 맞추며 친실장은 남자에게 애써 말을 걸었다. 제발 살려달라고, 자신의 자가 지금 너무나 아프다고, 하나 남은 자를 제발 살려달라고, 간절히 빈다고...

“데스! 데스데스.... 데에? 데샤아아아! 데스데스데샤아아아!”

그러나 무심하게도 남자는 걸음을 더욱 빨리하여 친실장을 따돌려버렸다. 한낯 실장석에 불과한 친실장으로서는 남자의 걸음을 따라갈 제간이 없었다. 바로 옆에 카키색 점퍼를 입은 여대생이 지나간다.

“어머?”

“데스데스데스우.. 데스데스...”

여자가 반응을 보이자, 친실장은 추위에 떨고 있는 자를 내밀었다. 장녀는 몸이 벌겋게 달아올라, 둔한 들실장이라도 한 눈에 실장감기에 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친실장은 장녀를 내밀며 다급하게 이야기했다. 다른 자매들은 다 죽고 하나 남은 자라고. 그러니 제발 살려 달라고. 너무 아픈 나머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 닝겐상도 보이지 않느냐고. 제발 간절히 두 손 모아 빌 테니 어떻게 좀 해달라고.

“미안. 너희를 기를 생각은 없어.”

링갈 앱조차 깐 적이 없는 여자였지만, 주위에서 실장석의 생태에 대해 귀동냥 한 것이 있어서 여자는 친실장의 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건 ‘탁아’지? 난 네 자를 받지 않을 거야. 나 말고 다른 인간을 찾아보렴.”

여자는 고개를 돌리고 단숨에 걸어갔다.

“데에에에에에에? 데쟈아아아아! 데스데스데샤아아아!”

친실장은 여자를 뒤따라가며 간절히 외쳤다.

아니라고.

지금 자기가 하는 것은 탁아 따위가 아니라고.

그저 인간의 힘으로, 그 전지전능한 힘으로 자기의 자를 낫게만 해준다면, 자신은 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탁아할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다고.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그냥 죽을 것 같은 자를 낫게만 해달라고.

그러나 여자는 점점 더 멀리 빗속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데에...데에..”

친실장은 그 이후로도 네댓 명의 인간에게 다가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아픈 장녀를 치료해주기를 간절히 빌었지만, 번번이 자신에게 오는 것은 무관심 혹은 탁아로 오인한 인간의 거절이었다.

그 와중에도 장녀의 생명의 불꽃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밖에서 계속 비를 맞았기 때문인지, 체온은 심각하게 떨어지고 열은 더욱 심해졌다. 이제 장녀는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 그저 간헐적으로 기침만 해댈 뿐이었다. 기침과 동시에 운치만 뿌직뿌직 쌀 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빗방울이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비가 거세짐에 따라, 공원을 지나는 인간들도 거의 사라져갔다.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장녀가 살아날 확률도 급격히 낮아짐을 의미한다는 것을 친실장은 알고 있었다.

간신히 낳은 자. 반드시 낫게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친실장은 인간을 찾아 공원 이곳저곳을 쏘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인간을 찾지 못한다면, 인간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면 장녀는 내일 죽어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친실장은 비에 미끌어 넘어질 뻔하고, 빗물에 신발이 미끌어 벗겨져도 모른 채, 그저 인간을 찾았다.

왼쪽의 산책로를 다 살피고 오른쪽의 산책로로 가기 위해 중앙 광장에 되돌아온 친실장의 앞에 희망이 하나 보였다.

검은 우산을 쓴 인간 하나가 빠르지 않은 평범한 걸음으로 광장을 향해 다가오고 있던 것이다.

“데에! 데챠아아아아앗!”

장녀를 치켜든 친실장은 큰 소리를 내며 인간 앞으로 다가갔다.

검은 우산과 흰 티셔츠를 입은 인간 역시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은 친실장이 자신을 향해 뭐라고 말하는 듯 소리를 치자, 우두커니 가만히 서있었다.

“데스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 데스! 데스데스데스. 데스우..”

“....”

친실장은 장녀를 잘 보라는 듯이 높이 쳐들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 인간에게 탄원했다.

자신의 단 하나 뿐인 자라고. 그 자가 지금 굉장히 아프다고. 이제는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길러달라는 것이 아니니 제발 이 자만 치료해달라고.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이 자마저 잃을 수는 없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제발...

“데스데스... 오로롱... 오로롱...”

인간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며 장녀를 고쳐줄 것이라 열심히 호소하던 친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을 흘렸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장녀, 그 장녀가 고통에 힘겨워하는 모습, 그 자를 고쳐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력함, 이런 자신의 처지를 오해하거나 무시한 인간들... 여태까지의 설움이 북받쳐 오른 지금, 친실장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울음을 터트렸다.

처음 자신의 말에 걸음을 멈춘 인간을 이제야 만났다는 안도감 때문이기도 했다. 이 인간이라면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산을 든 채 멈춰 선 인간은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켰다. 그리고 온 힘을 짜내 호소하고 있는 친실장을 흘깃 보더니,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친실장을 다시 바라보았다.

“데스데스?”

자신의 자를 품안에 내려놓고 다독거리면서 친실장은 인간을 향해 물었다. 고쳐 줄거냐고. 그리고 뜨거운 장녀를 한번 꼭 안아준 후, 다시 인간을 향해 장녀를 치켜들었다.

인간은 우산을 목과 어깨 사이로 낀 채, 장녀를 조심스레 양 손으로 받아들였다.

“테에...테에... 테시시싯..”

장녀 역시 인간이 자신을 고쳐줄 거란 희망에 굉장히 어지럽고 고통스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향해 배시시 웃었다. 고마워요 인간님. 마마의 말을 들어줘서. 자신 때문에 고생한 마마가 더 이상 고생하지 않게 해주어서. 그리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자신을 안 아픈 예전처럼 돌려주기로 결심해주어서.

우드득.

그것은 인간의 양 손에 잡혀있던 자실장의 목이 180도 돌아가는 소리였다.

“데에에엣???.... 데에에...”

친실장은 자신의 자의 목이 완전히 뒤돌아간 것을 보고 순간 놀랐지만, 이내 진정했다.

저렇게 하면 낫는 것인가? 인간님이 저렇게 해주면 이제 자신의 자는 아프지 않게 되는 것인가? 장녀는 다행히도 더 이상 몸을 떨지 않았다. 마치 자는 듯이 몸을 축 늘이고 있었다. 눈이 탁한 회색으로 변한 채로.

“데에에에에?”

친실장이 장녀의 상태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을 무렵, 이미 남자는 장녀를 공원의 돌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지뱃-.

성인 남성의 명치 높이에서 떨어진 장녀의 몸은 예전에 언니들이 그랬던 것처럼 차가운 바닥 위에서 푹 터져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무심하게 휘파람을 불면서 멀리 사라지고 있었다.

친실장은 순간 일어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저 남자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간신히 고개를 돌려 장녀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장녀는 말을 할 수 없었다. 머리가 박살났기 때문이었다.

“....”

“데즈우우우우우...”

믿을 수가 없었다.

“데에...데에....데쟈아아아아아아아!”

친실장은 절규했다. 비명을 질러대며 눈물을 마구 흩뿌렸다.

원망스러웠다. 대체 왜? 그저 장녀를 고쳐달라고 했을 뿐인데..

왜 무시했단 말인가? 왜 오해했단 말인가?

왜 장녀를 이 꼴로 만든 것이란 말인가?

“오로롱..오로롱...데에에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친실장은 비를 맞으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투명한 빗물이 친실장의 적록의 눈물과 섞여서 회색 돌을 적시고 있었다.

문득 검게 변해 깨진 장녀의 위석이 보였다.

친실장의 울음이 멈췄다.

비를 맞으며 장녀의 몸이었던 고기조각들을 잠시 동안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친실장은 뭔가 결심한 듯 그 쪽을 향해 갔다.

그러더니 장녀의 시체 조각을 조심스레 긁어모아, 품 안에 소중하게 싸들었다.

“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

친실장은 장녀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고기뭉치를 쓰다듬으며 자상하게 이야기했다.

이 정도로 다친 장녀를 고칠 수 있는 것은 인간밖에 없다.

조금만 참고 있어라. 아까의 학대파가 아닌, 좋은 인간님이 장녀를 원래대로 고쳐줄 것이다.

다시 살려줄 것이다. 그러니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라. 착한 나의 장녀.







그리고 친실장은 달려갔다.

저 앞에 또 다른 인간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데에에! 데쟈아아아아! 데쟈아아아아아!”

이젠 정말 인간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장녀를 원래대로 고치기 위해 친실장은 인간들에게 장녀의 고깃덩이를 내밀며 애원했다.

살려달라고, 제발 이 자를 원래대로 되돌려달라고. 좋은 자라고, 잃을 수 없다고.

그러나 자실장의 시체를 들고 자신에게 탁아를 시도하는 실장석의 울부짖음에 대꾸하는 인간이 있을 리가 없다.

사람들은 친실장을 못 본 채 하며, 다들 발걸음을 빨리하여 지나쳤다.

“데챠아아아아!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쟈아아아아! 데쟈아아아아!”

하지만 친실장은 포기할 수 없었다.

번번이 지나가는 인간에게 달려가서 장녀를 내밀었다.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자의 치료를 부탁했다. 아니, 간절히 빌었다.

필요하다면 자신이 독라노예가 되도 좋다고, 아니 자신을 평생 괴롭혀도 좋으니 이 자만큼은 살려달라고.

이번 사람이 안 되면 다음 사람에게, 또 안 되면 그 다음 사람에게..

벌써 밤이 깊어 왔는지도 모른 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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