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 테치이..."
어느 겨울 날, 집문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 열어보니 얼어죽어가는 자실장 한 마리가 있었다. 대체 자실장이 혼자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건지는 모르겠다. 보통 탁아할 때는 친실장이 함께 오지 않나?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자실장 뿐이었고, 친실장의 시체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발자국 역시 자실장의 것 뿐이다. 아마도 어미 잃은 자실장이 집의 열기와 빛에 끌려 온 걸지도 모르겠다.
보통 실장석과 엮이는 짓은 하지 말라고들 한다. 나도 실장석에 딱히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이 겨울날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 왠지 딱해보여, 조금 온정을 베풀어주기로 했다. 더운 물을 받아 씻기면서 몸을 녹이고, 옷을 깨끗이 세탁해주고, 집에 있는 남은 반찬들을 먹이며 지냈다.
"테! 테치! 테츄우! 테!"
실장석은 은인인 나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는지, 날 볼 때마다 양 손을 번쩍 들고 흔들며 웃었고, 나도 이 녀석이 썩 싫진 않았다. 다음 날 가게에서 링걸이라는 기계를 구입해 이 녀석과 대화를 해 봤다. 꽤 귀여운 말투로 "인간님은 생명의 은인인테치! 와타치는 잊지 않는테츄!" 라면서 즐거워하길래 기분이 좋았다. 외출하기 힘든 겨울 동안 말벗도 되어주고, 혼자 지내는 집 안이 다소 시끌시끌해진 느낌이었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 날이 꽤 풀리자, 실장석은 나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지금까지 보살펴주셔서 감사한테츄. 이제 이 집을 떠나야 하는테츄."
"더 있어도 되는데?"
"안되는테츄. 인간님에게 더 폐를 끼치면 안되는테츄." 공손한 녀석이다.
"그래, 그럼... 뭐 필요한 건 없어?"
그러가 갑자기 이 녀석은 이상한 소릴 했다. "사실 와타치는 평범한 실장석이 아닌테츄."
"그럼 뭔데?"
"와타치는 생명의 은인인 인간님의 소원을 들어주는 실장석인테츄. 앞으로 한 가지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인테츄."
...무슨 흥부 놀부 이야기인가.
마지막에 꺼낸 말이 다소 황당하긴 했지만, 그렇게 겨울 동안 집에서 지낸 실장석은 나에게 받은 별사탕 한 봉지를 들고 공손히 인사하며 집을 떠났다. 흠, 다소 쓸쓸해지겠는데. 이왕이면 함께 지낼 누구라도 있으면 좋겠다. 뭐, 여자친구라던가... 참, 무슨 소릴...
그 때,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렸다. "네?"
"아, 저기, 안녕하세요." 현관 앞에는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에에... 안녕하세요. 누구신지?"
"윗집 사는 사람인데요, 실장석을 기르시던 것 같은데, 맞나요?"
"에, 기르긴 했지만... 이 집에서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나가버렸는데요."
이 윗집 사는 여자는 실장석을 세 마리나 기르고 있다 한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짐승이기에 실장석 사육이라는 취미를 공유할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실장석을 데리고 외출하는 것을 우연히 본 모양이다. 여자는 붙임성있고 밝은 성격이라 금방 친해졌고, 곧 여자친구라고까지 할 만한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잠깐... 이게 그 실장석이 말한 '소원을 들어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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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 테치이..."
친구가 겨울 동안 집 앞에 쓰러져있던 실장석을 우연히 주웠다가 애인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배알이 꼴렸다. 더러운 똥벌레 따위가 인연을 이어줬다는 사실도 기가 막히지만, 뭐, 소원을 들어주는 실장석? 웃기고 있다. 실장석은 더러운 똥벌레다. 괴롭히고 죽일 때 좋은 비명소리와 표정을 보여주지만 그것 외에는 아무 쓸모도 없다. 나는 화가 나서 눈 앞에서 약하게 소리내는 자실장을 칼로 마구 찍어댔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실장석 좋아하시네. 그게 진짜면 까짓거 나라고 못할 것도 없지. 나는 바로 공원으로 달려가 주변에 보이는 아무 골판지 상자나 걷어찼다. "데겍!" 하고 친실장이 굴러나왔다. 나오자마자 상황파악을 하고 새끼들을 끌어안는 건 칭찬할 만 하지만, 어차피 똥벌레는 똥벌레. 그 자리에서 친실장과 새끼 셋은 죽이고, 자실장 한 마리만 빈사 상태로 만들어 살려뒀다.
죽어가는 자실장을 집에 데려와 똥을 빼고, 실장활성제를 먹여 살려냈다. 다행히도 이 멍청이는 내가 집을 두드려 부수고 가족들을 모두 죽였다는 기억은 사라지고, '인간이 구해줬다' 라는 한 가지 기억만 남은 모양이다. 나는 학대에서 실장석을 '올리는' 요령으로 자실장을 극진히 대접했다. 자실장은 날 경계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눈치로 나에게 따랐다. 뭐, 소원을 들어주는 실장석이면 좋고, 아니어도 이렇게 극진히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맛이 있으니 더 좋다.
그리고 몇 개월 지나 날이 꽤 풀리자, 실장석은 나에게 폭탄 선언을 했다.
"지금까지 보살펴주셔서 감사한테츄. 이제 이 집을 떠날 수밖에 없는테츄."
"더 있어도 되는데?"
"안되는테츄. 인간님의 집에서 더 살면 안되는테츄." 가식적인 녀석이다.
"그래, 그럼... 뭐 필요한 건 없어?"
그러가 갑자기 이 녀석은 이상한 소릴 했다. "사실 와타치는 평범한 실장석이 아닌테츄."
"그럼 뭔데?"
"와타치는 생명의 은인인 인간님의 소원을 들어주는 실장석인테츄. 앞으로 한 가지 소원을 빌면 들어줄 것인테츄."
...설마 이게 친구가 말한 그건가?
나는 자실장을 알몸대머리로 만들어 집 밖으로 던졌다. 그래, 내보내긴 하는데 제대로 내보낸다는 말은 안 했다. 알몸대머리가 된 자실장은 내 쪽을 한번 돌아보고 피눈물을 흘리며 터덜터덜 사라졌다. 소원 제대로 빌어달라고, 소원. 내 소원은... 돈이 많으면 좋겠다. 돈이 많으면 분명 행복하겠지? 행복해지고 싶은걸.
다음 날, 아침에 방 밖이 너무 시끄러워서 깼다. 데스데스데스데스데스... 하는 실장석 울음소리가 수도 없이 들린다. 대체 뭐지? 밖으로 나가보니 경악할 광경이 펼쳐져있다. 똥벌레새끼들이 우유투입구로 새끼들을 마구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몇 마리나 되는건지 셀 수도 없다. 거실까지 꽉 차있는 것이, 공원 실장석들이 전부 이 집에 몰려온 것 같다.
"뭐, 뭐야? 이새끼들아 니들 뭐야!?"
"테치이~ 와타치는 인간님에게 행복을 전하러 온 테치!"
"와타치를 기르면 인간은 행복해지는테치~ 어서 달콤달콤을 내놓는테치!"
"인간이 공원에서 동족을 데려가는 걸 본테치. 분명 애호파가 틀림없는테츄. 와타치도 길러주길 바라는테치."
"와타치는 스테이크를 먹어야 하는테츄! 서로인 스테이크 말고는 안 먹는 고급 입맛인테츄!"
"어서 대접하는테치! 똥노예가 눈치가 없는테칫!"
그리고는 화가 났는지 일제히 사방팔방으로 똥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 아수라장에, 도저히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다. 뭐부터, 대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지?
...잠깐... 이게 그 실장석이 말한 '소원을 들어주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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