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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소원

 

공원을 걷다 풀숲에 주전자가 버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주변에서는 레후거리며 저실장 한 마리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주전자를 집으로 삼은 건가? 왠지 궁금해서 지켜보기로 했다. 저실장은 꼬물거리며 주전자로 기어가더니, 주전자 겉을 핥기 시작했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주전자에서 푸른 색 증기가 피어나더니 이내 커다란 사람의 형태로 변한 것이다.

"두 번째 소원을 말해라..." 푸른 연기로 된 사람이 저실장에게 말했다. 그러자 저실장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프니프니 바라는레후!"


...나는 한 동안 푸른 연기가 구더기의 배를 문지르는 것을 넋을 잃고 구경했다. 한참을 그러더니, 결국 만족했는지 구더기가 물똥을 내뿜으며 탈진하자 푸른 연기는 다시 주전자 속으로 들어갔다. 설마 이게 말로만 듣던 3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 아니, 주전자?
나는 링걸을 켜고 구더기에게 접근해 물었다.

"레! 인간레후! 구더기 프니프니해주러 온레후?"
"저건 뭐야?"
"주전자 공원에 버려져있던레후 구더기가 할짝할짝하니까 안에서 파란색 인간 나온레후 소원 세 가지 말하라고 한레후 그래서 프니프니 해달라고 부탁한레후 파란 사람 주전자 너무좋은레후!"


그러니까... 이 멍청한 구더기가 벌써 소원을 두 개나 썼단 말인가? 그것도 다른 것도 아닌 그저 배를 문질러 달라는 하찮은 요구로? 하지만 아직 여유가 있다. 한 가지 소원이 남은 것이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다행히, 이 이상한 주전자를 본 사람은 없던 것 같다. 재빨리 주전자를 낚아채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레삐이이이이!! 구더기 주전자 돌려주는레후! 프니프니 부탁하지 않으면 안되는레후우우우우!!!"

뒤에서 저실장의 비명이 들렸지만 알 게 뭐람. 구더기 따위가 소원을 낭비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숨가쁘게 집에 돌아온 나는 일단 주전자를 방에 두고, 천천히 고민했다. 마지막 단 한 가지 남은 소원이다. 허투루 쓸 수는 없다. 대체 어떤 소원을 빌어야 평생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돈?... 갑자기 많은 현금이 생기면 강도들에게 노려지기 쉽다.
권력? ...권력을 유지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불사? ...사는 게 갑자기 재미없어지면 어쩌지?


아무리 좋은 소원을 빌어도 위험부담이 크면 안 된다. 최대한 위험부담은 줄이고 나에게 가장 좋은 소원이 뭘까... 이걸 고민하다가 문득 일 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 슬슬 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주전자를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구더기가 했던 것처럼, 주전자 표면을 손바닥으로 쓱쓱 문지르자 푸른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이내 사람의 모양으로 변했다.

"세 번째 소원을 말해라..." 나는 흥분감과 고양감에 휩싸여 마지막 소원을 말하려 입을 열었다. 그 때,

"프니프니 해주는레후우우우우우우우!!!!"

...뒤를 돌아보니 창틀에 상처투성이 저실장이 있었다. 홀쭉한 몸뚱이에 포대기는 벗겨지고 머리카락도 뜯긴 알몸대머리, 온 몸에는 이빨자국과 잔상처가 가득한 것을 보니 성체실장들을 따돌리며 필사적으로 일 주일간 여기로 기어온 모양이다.

내가 뭐라고 할 틈도 없이, 푸른 연기는 구더기를 눕히고 배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한 차례 배 문지르기가 끝나고, 연기는 주전자 속으로 사라지는 대신 하늘로 솟구치며 소멸했다. 그와 동시에 난 '파킨' 소리. 저실장은 프니프니가 너무 만족스러웠는지, 아니면 힘이 다했는지, 그것도 아니면 둘 다인지 평온한 얼굴로 죽었다.

이후 난 몇 번이고 주전자를 문질렀지만, 거기서 다시 푸른 연기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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