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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의 지옥

 

'실장석'이라고 불리는 녹색 소인족이 알려진 것은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인간과는 전혀 다른 문명과 문화, 그리고 습성을 지닌 이 녹색 소인족들은 금새 연구의 대상임과 동시에 애호의 대상이 되었다. 작고 앙증맞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지성이 있고 언어가 있다. 사람과 말이 통한다. 반려동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메리트다. 심지어 실장석은 조건만 맞는다면 금방 번식을 해 수를 불리기에, 전국의 펫샵에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한국에 실장석이 들어온 것은 일본에서부터 실장석을 수입해오던 보따리장수들을 통해서였다. 곧 한국에서도 로젠코리아라는 로젠 사(실장석의 유통을 담당하는 회사다)의 지사가 설립되었고 보따리상들이 몇십만원에 팔던 실장석들을 단 몇만원에 살 수 있게 되었다. 햄스터, 고양이, 심지어 개보다도 저렴하고 훨씬 좋은 애완동물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한국에서도 실장석 붐이 일었다.

"뚜뚜야, 밥먹자." 여자는 자신의 엄지실장 '뚜뚜'를 부르며 유리수조를 두드렸다. 뚜뚜는 소스라치게 놀라 깨더니 주변을 둘러본다.
"테츄우..." 여자는 손에 든 스마트폰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그래, 잘 잤니 뚜뚜?" 스마트폰에는 '안녕하세요 인간님' 이라는 글자가 고딕체로 선명하게 표시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실장석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번역한다는 '링걸'이다.


"테츄우! 츄와아앗! 츄왓!!!" (저는 인간님을 좋아해요)
"그래, 그래. 금방 줄게 기다려." 여자는 상냥하게 웃으며 뚜뚜의 밥그릇에 푸드를 가득 부어준다. 하지만 뚜뚜는 그 쪽을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다시 큰 소리로 떠든다.


"테츄우! 츄와아앗! 츄왓!!!" (저는 인간님을 좋아해요)
"응. 빨리 먹으렴. 배고프지?"
"테챠아아아! 테츄! 테츄우!!!" (잘 다녀오세요)
"잘 다녀와? 오늘은 딱히 어디 안 가는데?"



여자가 깔깔거리며 손가락으로 뚜뚜의 머리를 쓰다듬을때도 뚜뚜는 움츠러들거나 도망다니며 소리를 질러댄다.

"츄와아! 츄와아!" (배가 고파요)
"그래. 그럼 언니도 밥먹어야 하니까 이따보자." 여자의 손가락이 사라진 것을 깨달은 '뚜뚜'는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유리벽을 몇번 콩콩 두드리더니 힘없이 주저앉는다. 살기 위해 푸드 한 알을 힘없이 갉아먹는다. 링걸에 표시된 문자와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뚜뚜의 행동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중국어 방' 이라는 이야기를 아는가? 어느 방에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을 넣고, 중국어로 된 질문과 답변이 적힌 목록을 준다. 그 다음 밖에 있는 사람이 방 안에 중국어로 된 질문이 적힌 쪽지를 넣으면 안에 있는 사람은 질문을 보고 거기에 맞는 답을 써서 제출할 수 있다. 그러면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사실 중국어를 전혀 할 수 없음에도, 밖에 있는 사람은 안에 있는 사람이 중국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다.

실장석과 인간의 의사소통에 있어 링걸이란 바로 이 중국어 방과 같은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링걸이 '정말로' 실장석의 말을 번역해 출력하는 것인지, 아니면 왜곡된 어떤 악의적인 소프트웨어인지 판단할 방법은 전혀 없다. 애초에 실장석의 언어가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상에 '완벽한 번역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끼리 쓰는 말조차도 서로 100% 호환이 안 된다. 그런데도 인간과는 전혀 다른 종족의 언어를 완벽하게 번역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왜냐면 실장석은 귀여우니까.

"츄우... 테에..."

뚜뚜는 적당히 밥을 먹고 수조 구석에 시체처럼 쓰러져 잔다. '공장' 에서 생산출하된 뚜뚜는 어미가 누군지도 모른다. 저실장일 때부터 인큐베이터에서 지내며 단기간에 자실장이 되었고, 생후 3주가 지나자 바로 샵에 팔려나갔다. 뚜뚜는 주인을 '인간 마마'라고 부르라고 교육받았다. 하지만 인간은 마마가 아니다. 뚜뚜는 지금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인간이 마마라고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물론 여자는 학대파는 아니지만.

뚜뚜의 '인간 마마'는 전자렌지를 열고, 안에서 통통하게 살이 오른 저실장으로 만든 실장 간장 조림을 꺼낸다. 밥을 퍼서 그릇에 담고 그것으로 식사를 한다. 누군가 실장석이 사실 맛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실장석은 애완용 뿐 아니라 식용으로도 널리 사육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스텔러바다소'라는 동물을 그저 '고기가 맛있다'라는 이유만으로 남획해 단 20여년만에 멸종시킨 동물이다. 하지만 실장석이 그런 운명을 맞을 리는 없다. 철저히 인간의 손에 관리되고, 게다가 새끼를 치기 쉽다는 특성 상 실장석이 부족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실장석이라는 종에 있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간장에 졸여진 짭짤한 저실장을 한 입 베어먹고 밥을 삼키며 여자는 기분좋게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뚜뚜를 보러 간다. 하지만 여자는 이내 뚜뚜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직립한 채 한 손으로 기울어진 머리를 받치는 자세. 실장석 브리더들은 이것을 '아양'이라고 하며, 귀여운 모습으로 인간에게 아양을 떨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취하려는 실장석의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 자세가 선천적으로 머리가 무거운 실장석들이 무거운 머리를 받치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말하지도 알려주지도 않았다. 애초에 실장석의 기준으로 보면 이 행동이 달리 귀엽다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 이 행동이 '귀엽다'라고 인식하는 것은 그저 인간의 기준이다.

"뚜뚜! 너!" 여자는 체벌도구인 실장채를 잡아 뚜뚜가 들어있는 수조에 휘둘러댄다.
"쥬! 쟈아! 츄우우우우우우!!!" 유리벽을 두드리는 실장채의 소리에 뚜뚜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넘어져 똥을 지린다.


인간이라도 극한의 공포를 느끼면 흔히 똥오줌을 지린다하물며 자기 몸집의 수십 배는 되는 거인이 화난 얼굴로 소리를 지르며 몽둥이(실장석의 기준에서 보자면 실장채는 몽둥이다)를 휘둘러대는 모습을 본 실장석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여자는 언짢은 얼굴로 녹색 똥을 지리는 뚜뚜를 노려본다. 뚜뚜는 공포가 가득한 눈빛으로 여자를 노려본다. 이렇게 자신보다 현저하게 약한 지적 생명체에게 고통을 주며 일종의 쾌감같은 것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그것도 실장석의 세일즈 포인트 중 하나였고, '학대파'라는 사육주들이 생기는 계기기도 했다. 물론 여자는 학대파는 아니지만.

"안 할거지?" 여자는 단호한 어조로 뚜뚜를 노려보며 말한다. "테쟈아! 쟈아아아!!!" (따뜻한 집을 줘서 고마워요)

말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며 구석에서 덜덜 떠는 뚜뚜를 보며 여자는 실장석 사육 전문가라는 고 박사의 저서를 떠올렸다. '모든 엄지실장은 선천적인 분충이며 똥만을 먹여 키워야한다.' 이 '실장석 사육 전문가' 가 나타난 것도 몇 년 전의 일이다. 발견된 지 5년도 되지 않은 신종 생물을 완벽하게 분석하고 사육할 수 있는 '전문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인간은 지구상의 무엇보다도 똑똑한 지성 생물이니 다른 생물을 정복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다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쟈아아아! 테쥬... 테츄우우우우!!!" (맛있는 밥을 줘서 고마워요)

뚜뚜는 다시 일어선다. 기우뚱거리며 일어나, 기울어진 머리를 한 손으로 받치고 바로세운다. 또 '아양'을 해버렸다. 여자는 실장채를 휘둘렀다. 뚜뚜는 또 놀라 넘어지며 똥을 지리더니 다시 일어나 '아양'을 떤다. 여자는 또 실장채를 휘두른다. 이것도 여자와 뚜뚜의 일상 중 하나였다. 여자는 뚜뚜를 데려온 몇 개월간 계속해서 뚜뚜의 '아양'을 '교정'하려 했지만 전혀 되지 않았다. 결국 뚜뚜는 일어나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드러눕는다. 여자는 뚜뚜가 싫진 않았지만, 자꾸 아양을 떤다면 '분충'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분충'이란 실장석이 인간에게 반항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똥을 던지거나, 인간을 향해 위협하는 것부터 시작해 멋대로 새끼를 가지는 등 인간의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자율적으로 저지른 실장석은 곧 분충이라 불리며 버려진다. 그냥 버려지기만 한다면 그것 나름대로 다행이지만, 대개는 행동을 교정한다는 명목 하에 학대에 가까운 훈육을 당하거나, 아니면 그냥 학대당하고 죽어간다. 은근히 자신의 실장석이 분충이 되길 바라는 인간도 적지 않다. 그것으로 학대파가 되는 명분을 마련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작은 생물이 목숨을 구걸하며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즐거운 것이다. 다들 어렸을 때 메뚜기 다리를 떼거나, 잠자리의 배를 뽑거나, 딱히 아무 이유 없이 개미굴에 물을 붓거나 하는 장난을 해 봤을 것이다. 그렇다. '장난'이다. 다만 실장석은 지능이 있기에 인간의 '장난'에 더 장단을 잘 맞춰줄 뿐이다.

몇몇 인간들은 실장석에 대한 악의적인 소문을 확대생산하기도 했다. '별사탕이 주식이다(단 것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모든 동물들이 그렇다)', '인간을 하찮은 노예로 본다('학대'의 당위성을 제공해주기 위한 헛소문이다)', '스테이크, 스시, 스테이크를 달라고 요구한다(대부분의 실장석들은 스테이크, 스시, 스테이크 같은 것을 실제로 먹어볼 일도 없으며 실제로 본 적도 없다)', '행복회로라는 것이 있어 고통받으면 자기 멋대로 기분나쁜 망상을 한다더라(인간도 심한 고통을 받으면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인 엔도르핀이 분비된다)' 같은 진위여부도 불분명하고 대부분은 실장석에게 불리한 제멋대로의 소문들은 빠르게 '학대파'들 사이에서 퍼져나갔다. 아직 일반인들까지 알진 못하지만 소문이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한참을 씩씩거리던 여자는 결국 똥투성이가 된 뚜뚜를 내버려두고 소파에 앉는다. 저놈의 버릇은 도무지 고쳐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혹시 이미 '분충'이 된 것은 아닐까? 여자는 의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말도 못 알아듣고, 아양만 떨고, 똥만 지릴 리가 없다. 뚜뚜는 뚜뚜 나름대로 억울해한다. 자기가 대체 뭘 잘못해서 인간에게 고통을 받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뚜뚜의 입장에서 보면 뚜뚜는 정말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일어나려고 하면 몽둥이를 휘두르며 '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놀라 똥을 지리며 주저앉으니 온 몸이 똥으로 더럽혀져 기분나쁘다. 뚜뚜도 이런 생활을 몇 개월이나 지속해왔다. 결국 참을 수 없어진 뚜뚜는 버둥거리며 크게 울어댄다.

"테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에에에에!!!"

대체 자신은 뭘 위해 세상에 태어났고, 어째서 여기서 이렇게 고통받는 것인지, 서러움이 폭발한다. 고통받기 위해 태어난 생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어설프게 지성과 지능을 갖춘 실장석만이 느낄 수 있는 불행이다. 뚜뚜는 서러움과 고통을 몽땅 토해내듯 울부짖는다. 여자는 마침내 뚜뚜가 '분충'이 되어버렸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뚜뚜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여자는 자신이 뭘 잘못해서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뚜뚜를 분충으로 만들어버렸는지 고민했다. 고 박사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내일부터는 뚜뚜의 똥만을 먹이로 주고, 분충 버릇을 교정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하루빨리 뚜뚜가 분충 버릇을 고치고 옛날의 귀여운 엄지실장 뚜뚜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물론 여자는 학대파는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육방법으로 실장석을 기르는 평범한 사육주일 뿐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육법에 의해 내일부터 뚜뚜는 밥 대신 자신이 싼 똥만을 먹게 되겠지만, '전문가'가 추천하는 방식일 뿐이다. 여자가 잘못한 것은 하나도 없다. 지금도 많은 사육사들이 이 전문가식 사육법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테에에에에에에에엥!!! 테에에... 테... 쥬우... 테에에에...."

뚜뚜는 울다 지쳐 잠이 든다.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어미와 자매들을 떠올린다. 꿈에서조차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자신처럼 '사육사'에게 팔려가 '훈육'을 겪고 뚜뚜처럼 울다 지쳐 잠이 들었을지도 모르고, 혹은 '학대파'에게 끌려가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세상에 태어났을 때부터 행복했던 일은 단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것이 뚜뚜 자신의 의사와는 반했다. 심지어 뚜뚜라는 이름조차도 자신이 원한 이름이 아니다.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가로세로높이 30cm의 유리수조에 갇혀 지내는 삶. 차라리 지옥이 행복할지도 모르는 삶.

실장석에게는 이 세상 자체가 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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