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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사육실장의 하루


 

 올해로 2살 먹은 미도리는 아주 점잖고 착한 실장석이었다.
 혈통서가 따로 나오지 않는 중저가형 실장석 출신이었지만, 성품 자체가 조용하고 상냥했기 때문에 브리더의 전문교육도 순조롭게 통과했다. 비록 정식 자격증을 가지지 않은 펫샵 주인의 지도였지만 기본적인 생활과 인간에 대한 예절은 충분히 배웠다.

 하지만 둥그스름한 외모에 별 특징 없는 생김새 때문에 인기는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6800엔의 개념 자실장으로 가게 유리창 앞에 디스플레이 되었지만, 두 달만에 테찌소리가 테치로 바뀌면서 안쪽의 매대로 옮겨졌다. 가격도 3000엔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눈여겨 보는 사람은 적었다. 몇 명이 관심을 가지기는 했지만, 특별한 재주도 없고 조용한 성품때문에 이내 고개를 돌려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그러는 사이 가격은 1200엔까지 내려갔다.

 점주가 처음부터 그 조용한 성미를 높게 보지 않았다면 진작에 가게 뒷편의 분쇄기에 갈려 실장푸드가 되었겠지만, 간만에 보는 괜찮은 개체라고 생각했기에 매대 맨 아랫쪽에 놔두면서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시 2주일 후, 드디어 미도리는 어느 남자에게 팔렸다.
 조용한 성격의 실장석을 찾는다는 말에 점주는 미도리를 보여줬고, 몇 번의 대화와 자가테스트 끝에 1000엔이라는 가격에 팔리게 되었다.

 감격스러운 첫 만남에서 미도리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드디어 시작된 사육실장의 삶.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테에에엥거리는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후로 미도리의 생활은 순조로웠다.
 남자는 독신으로 살면서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한 애완동물이 필요했고, 미도리는 이를 훌륭히 수행해냈다.
 애초에 분충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미도리는 음식이 됐든 옷이 됐든 간에 무엇이든 요구하는 적이 없었다. 오히려 주인이 너무나 바라는 것이 없는 미도리를 신기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주인님이 어쩌다 주는 선물이나 칭찬에는 반드시 감사의 인사를했고, 더없이 정중했다. 대변이나 자신의 하우스 청소, 옷 정리 같은 것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만 과도하게 주인에게 붙어 있으려는 태도를 보이기는 했지만, 주인은 애완동물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되도록 티를 내지 않으면서 주인 역시 미도리를 잘 챙겨줬다. 산책도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1년 반이 지나 미도리는 2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중 미도리에게 가장 큰 일은 역시 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욕구를 잘 참아내는 미도리였지만, 역시 실장석의 본능이자 가장 큰 욕망인 자에 대한 것은 제대로 참을 수 없었다.
 노골적으로 싫다고 주인이 말했지만, 몇 번의 간곡한 설득 끝에 여름의 어느 날 허락을 받았다.

 그리고 미도리는 5마리의 자를 낳았다.
 풍부한 영양상태와 건강한 신체, 주인님이 정성껏 준비해준 따스한 물 덕분인지 5마리 모두 건강한 자실장이었다.
 그 날 미도리는 처음 남자의 집에 왔던 것처럼 기쁨의 눈물을 밤새 흘렸다.

 처음에는 반대했던 남자지만, 테찌테찌거리며 뛰어노니는 자실장을 보니 얼굴에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숨길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귀여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의 사육실장 2세에서 흔히 나타난다는 분충기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미도리의 엄한 교육도 교육이었지만, '세레브 실장의 핏줄을 받은 개체라구요.' 하던 가게주인의 말이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실장들은 똑똑했고 착했다. 겨우 4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이미 화장실을 모두 가릴줄 알고, 먹이를 받을 때나 선물을 받을 때나 주인님께 항상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 날도 저녁 늦게 돌아온 주인을 맞아 인사를 드리고, 함께 거실에서 노는 중이었다.


 [테에에~ 마마! 공놀이하는 테찌!]

 [공놀이는 재밌는테츄~ 4녀쨩 나도 같이하는 테치!]

 [마마! 마마! 주인님이랑 같이 놀자고 물어봐도 되는 테치?]

 [데에... 차녀쨩 그런 말은 실례인데스. 주인님이 놀자고 하실때까지 물어봐선 안되는 데스.]

 [테에....]


 남자의 눈에는 누가 누군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이 생겼지만, 자신들끼리는 다 구분이 가는가보다.
 그런 대화를 듣던 그는 골판지 하우스의 문 옆에 놓여진 탁구공을 집어든다.


 [자, 그럼 공놀이를 할까?]

 [테에에! 주인님이 공놀이를 해주시는 테츄우웅~]

 [테찌! 주인님 감사한테찌이~]

 [테치! 와타치도 하는테치이~ 와타치도 하는테치!]


 그런 자실장들을 보며 남자는 탁구공을 벽면으로 가볍게 던진다.
 빠르게 날아들며 이리저리 튀는 탁구공을 5마리의 자실장이 열심히 쫓아다닌다.
 팔다리는 짧고, 머리는 커서 재빠른 탁구공을 제대로 쫓아가지도 못한다. 이러저리 뒹굴고 넘어지며 머리를 콩!하고 박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테찌테찌거리며 웃고 떠들기 바쁘다. 미도리는 그런 자들을 보며 가슴에 벅차오르는 감동과 감사를 느낀다.

 (데에.. 정말로 상냥한 주인님인데스...)


 [장녀오네챠! 공을 이리 던지는 테찌!]

 [아닌테치! 여기로 던지는 테챠아아아!]

 [테치테치 위로 던지는테치! 아무나 받는 테치이!]



 공놀이는 자실장들 모두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계속했다.
 탁구공으로 하는 공놀이는 자실장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였기에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빠져든 것이다.
 장녀부터 5녀까지 모두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내뿜는다. 
 테에테에 하는 소리와 함께 동그란 배가 올라갔다 내려간다.

 남자는 그런 자실장들을 모두 들고 화장실로 데려간다.
 그리고 세면대에 따뜻한 물을 받고 한 마리씩 옷을 벗겨 담근다.


 [테에에에... 따뜻한 테츄우.....]

 [테찌이이이이.... 몸이 지로지로 녹아버리는 테쮸......]

 [너무 좋은 테치이... 행복한 테츄....]


 땀을 잔뜩 흘리고 따뜻한 물에 온몸을 담그는 자실장들.
 몇몇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탈분까지 했다.
 초록빛으로 물드는 물을 보며 장녀와 차녀가 똥을 지린 4녀와 5녀를 꾸짖는다.


 [뭐하는테치!!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똥을 싸면 안되는 테치!]

 [큰일난테치! 큰일난테치! 4녀쨩! 5녀쨩! 이게 무슨 짓인 테치!!]

 [테에에... 나도 몰랐던 테찌... 와타치도 몰랐는 테찌이이...]

 [테... 테....]


 남자도 초록빛 물을 보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할 수 없는 노릇이라 물을 빼고 다시 물을 채운다.
 그리고 한 마리씩 집어 비누칠을 하고 다시 헹굴때까지 남자도 자실장들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4녀! 5녀! 당장 나오는데스!!]

 친실장 이마에 핏대가 선다.
 주인님이 넌지시 일러준 4녀와 5녀의 탈분 사건을 들은 친실장은 죄송스러움과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곧바로 도게자 자세로 몇 번이고 이마를 땅에 찧으며 빌었다.
 주인님은 자실장의 교육은 미도리에게 맡겼으니까 잘하라구.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지나갔다.
 확실히 지금까지 잘해왔고 이번의 실수도 사소한 것일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미도리에게는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

 골판지 하우스에서 4녀와 5녀가 힘없이 밖으로 걸어 나온다.
 몸을 돌돌돌 떨면서 귀까지 아래로 축 쳐져있다.
 양쪽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겁에 질린 표정이라 누구도 불쌍한 마음을 가질만 했지만, 미도리는 그렇지 않았다.
 장녀와 차녀, 3녀도 창문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놓은채로 떨고 있었다.
 비웃는 일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특히 한 번 비웃었다가 아직도 뒷머리에 큰 상처가 있는 3녀는 자신도 모르게 뒷머리를 살짝 쓰다듬으며 부르르 떨었다.


 [오늘 똥을 싼 게 사실인데스?]


 미도리는 두 눈을 부라리며 4녀와 5녀의 얼굴을 노려본다.
 테에에.. 하며 결국 눈물을 흘리는 5녀.
 하지만 대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 혼나기에 간신히 둘 모두 대답을 한다.


 [사실인 테쮸....]

 [마, 맞는테찌....]


 빠직!

 미도리가 이를 가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이내 4녀와 5녀 모두 땅바닥에 엎어 놓고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한다.


 퍽! 퍽! 퍽! 퍽!

 [테에에엥!! 이따이! 이따이테찌이이이!!! 테에에엥!!]

 [테엥! 테엥! 마마! 마마! 잘못한테찌!! 그만하는 테찌이이이!!!]

 [여기인데스? 함부로 똥을 못참는 춍구멍이 여긴인데스?]


 퍽! 퍽! 퍽!

 퍽! 퍽! 퍽!


 [테에에에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아픈 테챠아아아아아!!!]

 [조용히 하는데스우우!! 시끄럽게 떠드는 자는 더 세게 때리는 데스!]

 [테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엥!!!]

 [테끅! 테끅! 테에에에엥!!]



한참 동안의 엉덩이 때리기가 끝나고, 4녀와 5녀는 벌로 집밖으로 쫓겨난다.
 잠시 후 남자가 거실의 불을 끄고 잘 자라는 인사를 하자, 자연스럽게 미도리 가족의 취침시간이 온다.
 미도리는 골판지 하우스 안의 스폰지들을 깔고, 자들을 눕힌다. 그리고 수건을 겹쳐 장녀와 차녀, 3녀에게 덮어준다.

 차녀가 걱정스러운듯 창밖을 내다보지만 어두워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내 마마의 손에 다시 눕혀진다.
 미도리는 상냥하게 장녀부터 3녀까지 머리를 쓰다듬어 준 후, 골판지 하우스 안의 실장석용 전등을 눌러 끈다. 


 4녀와 5녀는 포근한 스폰지 대신 딱딱한 바닥에서 수건 하나를 나눠 깔고 덮은 채로 부들부들 떨며 눈물만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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