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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

 

10월이 되면서, 아침날씨도 쌀쌀해졌다.
A시 공원에서 자실장 3마리와 골판지에 살고 있는 친실장도 역시 그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쌀쌀해진 것이 날씨뿐만은 아니었다. 
요즘 친실장의 기분도 나날이 지날 수록 축 처지고 있었다.

왜 이런 것인가?

친실장은 공원에서 3년을 지낸 베테랑 실장이었다.
올해 봄에 미친 닌겐의 소행으로 인해 머리를 약간 다쳤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살아남아서 자들을 낳는 것에 성공했고, 폭염 속에서도 3마리의 자실장을 키워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장녀는 중실장까지 성장했고, 곧 있으면 독립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들실장의 기준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친실장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축 처지고 있었다.



골판지 상자 안에서 잠에 깬 친실장은 일어나자 마자,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우울감에 미칠 것 같았다. 

골판지 상자를 휘휘 둘러보니, 먼저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자실장 3마리가 보인다.
그러나 자실장을 쳐다보는 친실장의 눈에 더 이상 애정은 없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자리에서 상쾌하게 일어났을 때, 눈에 들어온 자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정말로 귀엽게 생긴 자들이었고, 마땅히 닌겐들에게 사육실장으로 모셔져야 될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자들은 친실장에게 답답함과 무력감,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녀석들이었다.
만약 친실장에게 의욕이 남아있었다면, 지금 자들을 모조리 쳐 죽여도 모자랄 판이었겠지만, 친실장은 그 마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우울감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짜증나는 자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골판지 하우스 안을 둘러보니, 친실장은 더 우울해졌다.

비만 한 번 왔다하면, 순식간에 녹아내리는 골판지 하우스 안에, 이미 썩어서 악취를 풍기고 있는 작은 종이상자 안의 보존식, 그리고 바닥에 뚫린 구멍에서 나오는 운치냄새와 구멍 속 운치굴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저실장과 엄지의 울음소리는 친실장의 기분을 더욱 회색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친실장은 당장 이 거지같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친실장은 자들을 깨우지 않고, 조용히 골판지 하우스 밖으로 나섰다.

골판지 하우스 밖으로 나오자, 얼음장같은 바람이 친실장의 몸을 한 번 훑고 지나간다.
예전같았다면, 그 얼음장같은 바람에 기겁해서, 바로 따뜻한 골판지 하우스 안으로 기어들어갔을 친실장이지만, 지금은 차라리 그 바람이 자기 몸을 찢어 갈기기를 원하게 되었다.

찬 아침바람에 남아있던 잠기운도 사라진 친실장은 무작정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아침식사로 먹을 음식을 구하러 음식물쓰레기장으로 향하는 것인가?
아니다.

요즘 친실장의 식욕은 많이 감퇴했다.
실장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보면 놀랄 일이지만, 식탐의 화신이라는 실장석 답지 않게 친실장은 목숨만 간신히 유지할 정도로만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단순히 공복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먹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 한다는 본능으로 인해 돌덩이를 삼키듯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지금 친실장에게 움직일 정도의 기운은 남아있었다.
그래서 따로 먹을 것을 구하러 가지 않고, 그냥 시선이 닿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따로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골판지 하우스에서 풍겨오는 우울한 악취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어디든 좋을 것 같았다.


시선이 닿는 대로 가다보니, 친실장은 음식물쓰레기장에 오게 되었다.
딱히 오고싶은 곳도 아니었지만, 친실장은 쓰레기통에서 멀찍히 떨어져서, 텅 빈 눈으로 쓰레기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쓰레기장에는 이미 대 여섯마리의 성체실장들이 쓰레기통을 넘어뜨리고, 바닥에 흥건하게 널부러진 음식물쓰레기를 추잡하게 갉아먹거나, 까만 봉지 안에 열심히 담고 있었다.

같은 실장석이고, 자신도 한 때 저 무리 안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집에서 풍겨오는 우울한 악취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우울한 광경은 성체실장 한 마리가 자신의 자로 보이는 자실장에게 열심히 웃으면서 음식물쓰레기를 쳐먹이고, 자실장은 옷이 빨간 국물로 더럽혀지는 것에도 신경쓰지 않고, 입으로 “꺼억-”이라는 트림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친실장은 동족에 대한 혐오감이라기 보다는, 우울함이 섞인 불쾌감으로 얼굴을 징끄렸다.


공허한 눈으로 쓰레기장과 실장석 무리를 쳐다보고 있던, 친실장은 그러다가 우연히 도로 너머에 있는 인간들을 보게 되었다.
도로 너머의 한 빵집에서는 한 여자가 커피와 빵을 탁상에 놓고 우아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친실장은 인간과 자신의 거리가 도로 하나보다 더 넓다라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데챱- 데챱-”이라는 소리를 내면서, 추잡스럽게 쓰레기를 먹고 있는 동족을 보니, 다시 한번 우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분명 예전같았다면, “똥닌겐들은 비겁한 데스! 마땅히 와타시가 가져가야 할 우마우마한 것을 감히 지들이 쳐먹고 있는 데스!”라는 소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마음 속에서 도저히 그런 뜨거운 감정이 일어나지 않고, 그저 회색빛의 우울감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있었다.

골판지 하우스에서 느껴진 급격한 우울감이 다가오자, 친실장은 쓰레기장에서 벗어났다. 
허겁지겁 음식물쓰레기를 처먹는 동족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운치굴에 떨어지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친실장은 그저 공원을 하염없이 걷기만 하였다. 
목적이 있는 걸음이 아니라서, 느릿느릿하기는 했지만, 예전에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면서 걷는 속도와 다를 건 없었다.


어느정도 걸었을까?
친실장은 걸어다니면서, 가슴 속에 엄습하는 우울감과 무력감에 힘들어했다.
비명이건 고함이건 한 번 가슴 속에 막혀있는 것을 내뱉어주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힘조차 없었고, 몸은 움츠러드는 것만 같았다.

친실장은 걷다가 잠시 쉬기로 하였다. 
그리고 주변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공원 입구쪽 관리소에서 간식을 훔치려다가, 관리인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있는 성체실장과 자실장들이 보였지만, 친실장은 그 광경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인간의 몽둥이질이 위협적으로 보인다거나, 저 분충이 주제도 모르고 닌겐을 메로메로하려다가 죽는다고 비웃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저 그 모든 모습이 멀찍이 떨어져서, 자신과 완전히 격리된 느낌만 들었다.

친실장이 멍하게 서있는 사이에, 관리인에게 얻어맞던 성체실장은 간신히 살아서 도망가는 데에 성공했다. 
자실장들은 성체실장에게 “똥애미 뭐하는 테치? 오마에의 사랑스러운 와타시가 죽는 테치! 당장 와타시 대신에 죽으라는 테챠아아!”라며 죽었고, 성체실장은 그런 자실장들을 미끼로 삼아 도망치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이곳저곳 얻어맞아서 성한 곳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 성체실장은 관리인을 비웃으면서, 자신이 이번에는 특별히 봐준 것이고, 다음에 만나면 총구노예로 만들어주겠다며, 열심히 행복회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실장이 분충치고는 좋은 미끼였다는 비웃음도 잊지않았다.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던 친실장은 자신의 예전모습이 떠올랐다.
인간의 하우스에서 먹을 것을 훔치거나, 노예로 만들려고 침입하거나, 자들을 탁아했을 때, 친실장은 매번 실패했었다. 

그래도 자신의 목숨은 매번 운좋게 건졌지만, 닌겐에게 심각하게 얻어맞거나, 자들이 몰살당했다.

그러고나서는 항상 이번에는 “봐준 것”이고, 다음에는 무조건 성공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며, 스테이크와 스시, 분홍색 사육실장복을 떠올리며, 행복한 꿈에 젖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새로 자들을 낳고, 꾸역꾸역 쓰레기를 먹으면서, 자실장들의 생사여탈권이 자신의 손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에 도취하였다.

그러다가 자신에게 아부하는 자실장들만 남았을 때, 친실장은 그런 자실장들을 다시 한번 자신의 세레브한 생활을 위한 발판으로 삼았으며, 또 실패한 후, 같은 생활을 반복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하기 싫다”라는 의지가 생긴 것이 아니라, “의욕” 자체가 완전히 없어졌다.
친실장은 그저 “살아만 있을 뿐”이었다.



친실장은 도저히 행복회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지능이 높은 것은 아니였지만, 행복회로가 발현되지 않으니, 모든 의욕이 사라지고, 눈 앞의 냉엄한 현실이 보였다.



답답하다.
우울하다.
먹기도 싫다.
자기도 싫다.
자를 낳고 싶지도 않다.

사육실장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닌겐을 노예로 부리고 싶지도 않다.
온 세상을 흑발의 자로 가득 채우고 싶지도 않다.


모든 것이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이었다.
항상 닌겐을 바보취급했지만, 닌겐과 자신의 차이는 아침에 본 도로의 간격보다 휠씬 넓었다.
자신의 실장생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했다.
자신은 그냥 마마의 총구에서 기어나와, 쓰레기나 운치를 먹다가, 잘 풀려도 늙어 아사할 운명이었다.


친실장은 공원의 산책로에서 멍한 눈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였다.
그러다가, 자신의 기분이 답답하고, 우울한 것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친실장은 잠시 색깔있는 눈물을 흘리다가,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로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무능한 똥마마인 테챠아!!!!!”
“와타시가 배고픈데 똥애미는 혼자 뭘 쳐먹고 온 테치?”
“테프프프--- 보존식은 모두 와타시의 것인 테스~ 똥마마와 똥이모우토챠들 따위에게 건네 줄 수 없는 테스~”

친실장이 골판지 하우스로 돌아오자, 차녀와 삼녀는 돌아온 친실장을 매도하였고, 중실장인 장녀는 혼자서 상자 안의 보존식을 모조리 털어먹었다.

“귀 먹었는 테치!?! 당장 밥을 대령하는 테치! 밥! 밥! 밥! 밥!”
“오마에는 세레브한 와타시를 모시고 사는 주제에 무능한 테치! 죽으라는 테챠아아아!!!!”

친실장은 골판지 하우스 안을 공허한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차녀와 삼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친실장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리고.
“자들-”






“잘 지내는 데스-”

친실장은 자신의 자들에게 마지막 말을 하고, 등을 돌려, 하우스에서 걸어나갔다.


“돌아오라는 테챠! 밥! 밥! 밥을 내놓으라는 말이 안들리는 테챠아아아아아!!!!!!”
“무능한 오마에의 총구에서 태어나서 수치인 테치!!!! 밥이라도 내놓으라는 테챠아!!!!”
“테프프프쁫~~~~~~~~~”


친실장은 등 뒤에서 차녀,삼녀의 욕지거리와 장녀의 이기적인 비웃음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그것에 반응을 보이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그것이 친실장이 마지막으로 표현한, 자들에 대한 애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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