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의 삶 - 추자의 봄 (망조)

 

따스한 햇살이 기분좋게 내려쬐는 초여름.

지금의 훈훈한 봄 공기가 무색하게 올해 겨울은 유독 추웠고, 봄 또한 그러했다.

지구 온난화 타령이 무색할 정도로 여느 해보다 매서웠던 강추위를 몰고 왔던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오려던 차,

이대로 겨울을 보내주기에는 아쉽다는 듯이 봄의 꽃샘추위는 동장군의 옷자락 끝을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두꺼운 외투 없이는 외출조차 힘들었던 겨울과도 같던 봄이 간신히 지나가고 찾아온 초여름.

세상 모든 만물들은 그동안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봄의 따스함을 이제서야 한껏 만끽하기 시작한다.

원래 같았으면 한참 전에 꽃봉오리와 잎사귀를 터뜨리고 만개하였을 새 순과 꽃망울들은

추위가 가신 지금 와서야 갈색의 나무가죽 속에서 빼꼼 내밀고 있던 연록색 잎사귀들을 한껏 밀어낸다.

동물들도 질세라 동면에서 일어나 봄을 즐길 채비를 한다.

개구리도, 다람쥐도, 뱀도 겨우내 웅크려 자느라 뻣뻣해진 몸을 힘찬 기지개로 털어내고

봄의 햇빛과 촉촉한 흙내음을 만끽하는 이 날.

공원의 들참피들도 봄을 만끽할 준비를 시작한다.

얼마나 가혹한가.

실장생은 서러워야 제 맛이라는 누군가의 말이 있었듯이

들의 삶이란 무엇 하나 편하고 즐거운 것이 없다.

먹이를 구하고 물을 구하고, 신문지를 구하고 골판지를 구하는 모든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행위 하나하나가 고되고 위험한 데다가 그 벌이 또한 신통치 않아 허탕을 치기 일쑤.

청결과 위생에 대한 개념이 있는 것 자체가 저주와도 같은 불행이다.

콧물 진물 눈물 온갖 분비물이 덕지덕지 붙어,

똥 오줌 시큼한 음식 쓰레기 국물에 찌들어,

먼지와 기름때에 절어버린 옷은 이미 녹색이라 부를 수 없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이런 너저분한 들참피의 모습을 본 인간들은

‘저것들은 위생 관념이라곤 없는 모양이구나, 하하’  하며 참피들의 불결함에 대한 내성에 감탄하지만 이는 큰 오산,

들참피가 길러실장이 되자마자(또는 되었다고 착각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요구하는 것 중에 깔끔깔끔한 거품 목욕이 항상 포함되어 있다는 점과,

길러실장들이 시시때때로 청소와 목욕을 원한다는 것에서 이들의 깔끔함에 대한 기준은 인간보다 더욱 높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들의 삶에서 묻어나오는 온갖 더러움과 때와 기름과 똥으로 점철된 자신들의 더러운 몰골에 

인간보다도 더 큰 불쾌감을 느끼는 것이 참피이거늘

씻고 치울 손가락도 손재주도 없기에 포기하고 살아갈 뿐.

먹을 물조차 모자라는 들의 삶에서 목욕과 빨래는 평생 한 두 번이라도 하면 다행인 현실이기에

그들은 오늘도 더러운 집에서 더러운 옷을 입고 더러운 몸으로 살아간다.

너무나도 가혹한 삶이다.

하위 소득 계층의 사람들이 비만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는가?

상류층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날고기, 야채 등의 신선한 재료로 소량 조리된 음식을 먹는 반면

하류층은 튀긴 음식을 위시한 대량 조리된 정크 푸드를 주로 먹어 비만이 되기 쉽다는 연구다.

어찌 보면 잔혹한 연구 결과지만,

다른 시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하위 계층일지언정 달고 짜고 기름진 정크 푸드는 양껏 먹어 식도락 정도는 즐길 수 있다는 말 아니겠는가?

허나 들의 삶에는 먹는 낙조차 없다.

평생을 허기를 느끼며 살아가며

태어나서 배부름이라는 감정을 단 한번도 느끼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들실장의 삶이다.

우리네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경험.

화단의 방울만한 꽃사과나, 오밀조밀 잔뜩 모여 주황색 석류알 같은 자태를 뽐내는 피라칸다 열매 같은 정원수 열매의 알록달록한 색깔에 반해

그 열매를 입에 넣어보고서는 아름다운 총천연의 색과는 달리 단 맛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시큼하고 쓴 맛에 놀란 적이 있지 않은가?

정원용 관상수의 열매 맛은 들풀이나 잡초의 맛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뱉어냈던 맛대가리 하나 없는 관상용 정원수의 과실조차 들에게는 진미이며 얻기 힘든 귀중한 식료가 된다.

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진미는, 단맛 하나 없는 풀즙만 나오는 나무열매나 곤충 시체 같은 무미건조한 無맛의 씹을거리들인 것이다.

그 이유는 나무열매나 곤충 시체에서는 들의 주식인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는 역하고 메스꺼운 맛은 없기 때문이다.

들의 주식인 음식물 쓰레기가 인간의 집에서 쓰레기장을 거쳐 들의 추레한 골판지로 오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과정을 거친다.

이미 냉장고 안에서 한껏 상해 곰팡이가 피고 시큼해진 음식이 인간의 집 안 쓰레기통에 담기고,

그 쓰레기 봉지가 꽉 찰 때까지 몇 일간에 걸쳐 쓰레기통에서 쉬어버린 음식물 쓰레기가

쓰레기장까지 나와 들실장의 분류 작업을 거쳐 들의 둥지에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그 때쯤 음식물은 이미 원래의 맛을 식감을 완전히 상실하고 쓰레기통에서 스까지고 발효되어 시큼한 냄새와 역한 맛의 엑기스가 된다.

그렇게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 버린 것을, 들은 주식으로 삼아 살아간다.

들의 삶이란 그런 것들을 먹으며 살아가는 것.

그런 녹록치 않은 것이 없는 들의 삶 속에 유독 인간들이 간과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겨울나기.

준비를 실패하여 초겨울에 얼어 죽는 놈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영리하고 성실한 친을 두어 잘 솎아내진 자들 두어마리를 가진 성공적인 겨울나기가 보장된 일가의 겨울은 어떨까?

비닐과 신문지, 낙엽으로 보온된 따뜻한 골판지 안에서,

겨우내 모아 두었던 보존식을 먹으며

어미 참피의 옛날 이야기, 마마의 마마 이야기,

분충은 벌을 받고 착한 자는 길러 실장이 되는 나름의 권선 징악 이야기에

어린 자들은 때로는 테에에... 하며 겁에 질리다가도

길러 실장이 되는 행복한 이야기의 끝에 눈자위에 감동의 눈물을 맺는 자들.

친실장의 이야기 속에 하나하나 잠드는 자충들과

그렇게 모두 잠든 자충들을 애정 어린 손길로 어루만지고서는 마지막으로 잠드는 친.

그렇게 여름, 가을 내 일하고 살아가느라 못 해왔던 이야기를 나누고,

못 먹었던 먹거리들을 즐기며 때로는 따뜻한 골판지에서 나와

싸늘한 겨울 바람의 시원함을 즐기며 배변을 하고서는

시린 엉덩이를 추스르고 몸을 떨며 따뜻한 골판지 집으로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런 나날.

겨울나기란 준비를 마친 영리한 참피 일가에게는 한때의 휴식이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허나,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다들 알겠다시피,

겨울은커녕 봄이나 가을만 해도 저녁이 되면 제법 추워지고,

해가 지고 어두워지고 나면 기온은 한 자리 수를 넘나든다.

혹한기 훈련이나, 강원도 최전방 고지대의 추위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훈련소의 숙영 기억을 되새겨보자.

방산비리와 오랜 세월로 맛이 가버린 침낭과 A형 텐트지만

참피의 골판지와 낙엽 나부랭이와는 차원이 다른 물건.

거기에 더불어 셋이 합쳐 200kg즘 되는 성인 남자 셋이 같이 자는데서 나오는 인간의 열은 텐트 안에 따뜻한 공기의 단열층을 만들어낸다.

허나, 그래도 춥다.

겨울조차 아닌 가을이나 봄 날씨에도 인간의 텐트와 침낭을 사용해도 추위에 잠을 설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그렇게 자연이란 것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들의 겨울나기는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도 서럽고 고된 들의 삶의 연장선.

그 두께를 다 합쳐 봐야 침낭은 커녕 모포 한겹의 두께만도 안 될 신문지와 낙엽 비닐 나부랭이,

그 얇아빠진 실장복은 시골 노인네가 십년 입어 닳아빠진 런닝 샤쓰보다 얇다.

보온은커녕 밀폐조차 안 된 골판지는 따뜻한 공기를 잡아둘 수 없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스런 한기 속에서 가만히 있는 것 외 그 어떤 행동도 자살 행위나 다름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들참피 일가는 한파 속에서 덜덜 떨며 그저 겨울이 가기를 바라며 그 긴 겨울을 지샌다.

겨울이 시작되고

인간들이 구들장과 이불의 따스함을 즐기며 귤을 까먹고

차 한잔 곁들여 TV를 보며 겨울의 풍취를 즐길 때

수많은 공원의 참피들은 각자의 골판지 속에서 다물수조차 없는 아가리를 달그락대고 이를 부딪히며 한기의 고문을 견디고 또 견딘다.

죽음만을 면한 채 오들거리며 버틸 뿐이다.

그것이 바로 들의 겨울나기, 너무도 잔인한 들의 삶의 일부인 것이다.

악의에 가득한 학대파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무심한 자연의 압도적인 가혹함 앞에 들실장석들은 너무나 무력하기 그지없고

들의 삶이란 하루하루 그 가혹함을 맛보며 하루하루 연명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겨울을, 올해 들어 더욱 길었던 겨울을 견뎌내고 

공원의 들실장들은 하나 둘 골판지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있어 이번 초여름의 따스함은 너무나도 감격적인 것이었다.

특히나 이 턱받침이 없는 친실장의 세마리 자들에게 있어

처음 느껴보는 봄의 따스함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과도 같은 감동과 같다.

뜻하지 않은 늦가을에 추자로 태어난 세 자충은

여타 다른 골판지의 추자처럼 노예처럼 부려지다 비상식이 되어 죽을 운명이었다.

성체 실장조차도 버거워하는 중노동인 굴파기는

갓 태어나 엄지 보다 조금 더 클뿐인 추자 자충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힘든 것이 당연하다.

자충들은 그저 구덩이를 다 파서 굴이 완성되는 날이 오면 그동안의 수고에 대한 대가로 친실장이 약속한 만찬과

게으름 부리는 자는 마마의 자가 아닌 데스, 솎아내고 독라로 만드는 데스, 하는 엄포 두 당근과 채찍 때문에

구덩이 파기라는 힘든 일을 견뎌올 수 있었던 것이다. 

봄에 태어난 언니 벌레들은 친충을 따라 먹이터 위치를 배우고, 나무 열매 구분법을 배우러 나다니는 동안

태어난 직후 매일같이 그래왔듯이 추자들은 구덩이를 파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겨울 준비를 마치기 직전, 공원 바깥의 먹이터를 알려주기 위한 마지막 수업의 일환인 사회 견학을 위해

친충은 언니 자충들을 모두 이끌고 공원 밖으로 나섰다.

겨울 준비를 얼추 마친걸로 알 수 있듯이 친실장은 분충은 아니었다.

당연히 모든 자들을 데리고 공원 바깥을 한나절 돌고 무사히 귀가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던 친충은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값진 수업료로, 어느정도의 희생은 각오했다.

하지만 그 재앙은 너무나도 빠르고 거대하게 닥쳐왔던 것이다.

테치테치이, 조잘대며 걸어가는 자충들.

고작 공원 정문을 나서 공원가의 인도를 따라 걷는 것이지만

그 풍경은 자충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다.

모든 것이 지금까지 봐왔던 공원의 풍경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자충들이 지금까지 봐 온 화장실과 매점의 1층짜리 건물에 비해 너무나도 거대한 인간의 건물들,

끝이 보이지 않는 넓고 긴 도로와

화려하고 현란한 색색의 간판 등

자충들에게는 인간의 모든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놀랍게 느껴졌던 것이다.

모든게 신기한 자충들은 무엇 하나를 볼 때마다 텟치! 텟츄와! 하며 자매들과 그 놀라움과 신기함을 나누며 재잘댔고

친충 또한 그런 자충들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작은 훈계를 덧붙이며 걸음을 계속했다.

일가는 인적 없는 골목길을 무사히 지나 코너를 돌았고,

그 순간,

참피들은 갑자기 나타난 자전거와 마주쳤다.

다가온 자전거와 마주친 참피들이 놀랄 새도 없이

자전거 운전자 또한 바퀴 밑에서 갑자기 나타난 참피 일가에 화들짝 놀라 휘청거렸다.

운전자는 학대는 물론이고 참피 자체에 관심이 없는 평범한 학생.

그에게 참피란 해외에서 들어와 갑자기 증식해버린 신기한 동물일 뿐이었다.

놀라 넘어질 뻔했지만 참피들에게 해꼬지할 생각이 없던 학생은 페달을 밟던 한 발을 땅에 딛어 균형을 잡고서는

이내 다시 양발로 페달을 밟으며 나아갔다.

학생은 참피들이 이렇게 도로 한복판을 당당히 걷다 인간이나 자전거에 치여 죽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주의를 주고자 자전거 경적을 수차례 울리며 사라져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일가는 모두 화들짝 놀랐다.

눈 앞에 거대하고 빠른 것이 휘청거리며 자신들을 밟아버릴것처럼 나타나질 않나,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날카롭고 큰 소리가 귀청을 울리지 않나.

어린 자충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쇼크였다.

대번에 모두 빵콘한 자충들은 각자 낙엽 무더기에 대가리를 처박고 벌벌 떨거나

울며불며 사방팔방 흩어져 달리거나 놀라 날뛰었다.

이정도의 일은 근 1년을 살아남는데 성공한 성체실장에게는 다른 무수한 목숨을 위협하는 재앙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에

자충들이 하나같이 빵콘하여 날뛰는 것에 비하여 친충은 놀랍게도 금새 정신을 추스르고 자들을 한데 모을 수 있었다.

자들이 진정되자 데에 하고 한숨 돌린 친실장은

잔뜩 빵콘해 가랑이 사이에 녹색 덩어리를 질질 끄는 9마리의 자충을 데리고

다시 한번 걸음을 재촉했다.

인도에 선명한 아홉 줄의 녹색 줄을 남기는 무리의 행진.

자충들이 질질 끌고가는 빵콘 덩어리에서 녹색 액체가 새어나와 도로에 자국을 남긴다.

친충이 오늘 가고자 하는 장소는 자그마치 네 곳.

쓰레기장, 재활용품을 얻을 수 있는 곳, 나무열매를 얻을 수 있는 두 곳.

아직 공원 바깥을 벗어나지도 못한 사회 견학은 아직 시작에 불과했지만

이 여정은 곧 종말을 맞게 된다.

자전거와 마주쳐 놀랐던 일은 없었던 마냥 자충들은 다시 한번 조잘대며 친의 뒤를 따른다,

그런 일가와 인간 하나가 마주쳤고,

인간은 그런 일가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이 손에 든것에 시선을 집중한 채 지나갔다.

인간과 마주쳐 내심 긴장한 친충도, 

대부분의 인간들이 자신들을 그저 경멸의 눈길로 더럽다는 듯이 쳐다볼 뿐 무시하고 지나쳐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핸드폰에 집중한 남자도 그런 수많은 인간 중 하나겠거니 하고 친충도 무심하게 지나쳐간다.

그런 남자가 바닥에 이어진 아홉 개의 녹색 줄을 눈치 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호기심에, 그 얕은 더러운 냄새의 근원을 따라 눈길을 돌린 남자는

그 기묘한 아홉개 녹색 줄이 무엇인지, 어디서 나온 것인지 금방 알게 되었다.

텟츄텟치, 뒤뚱거리며 똥자국을 남기는 녹색 덩어리의 행렬.

참피 일가의 뒷모습을 노려보는 남자의 마음속에서는 귀찮음과 정의감이 싸우고 있었다.

가던 길을 갈 것인지, 길바닥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심정으로 거리를 어지럽히는 것들을 청소할 것인지

남자는 고민했다.

잠깐의 고민 끝에, 길거리의 휴지를 줍는 마음과 비슷한 마음가짐을 가진 채 남자는 일가에게 신속하게 다가갔다.

텍!

테보앗!

테챳!

테짓!

짓!

테갹!

테햣!

지깃!

갹!

아홉 개의 비명이 연달아 들려온 후, 친실장이 뒤를 돌아보자 자충들은 온데간데 없었다.

“야 이 똥벌레야, 나다니는건 좋은데 길을 더럽히면 쓰나. 똥덩어리들 데리고 당장 꺼져!”

소리친 남자는 사고가 정지되 어리둥절해있는 친실장에게 발길질을 한 방 먹이고는 제 갈길을 갔다.

정신을 차린 친실장은 허둥지둥 자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남자의 거친 발길이 지나간 곳에서 적록색의 얼룩을 찾던 친실장이었지만

인도에는 적록의 얼룩은 온데간데 없고 그저 자들의 똥자루가 남긴 녹색 흔적밖에 없었다.

학대파와 지벳 테벳 하는 소리에는 자연히 적록의 얼룩이 뒤따르는 것을 무수한 직,간접적 경험으로 알고 있는 친실장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리둥절한 채 멍하니 서있는 친실장은

도로 옆 도랑에서 치이이... 작은 비명을 듣더니 그제서야 화들짝 놀라 도랑을 향해 달려갔다.

아까의 무관심파 학생과도 같이, 남자 또한 참피를 악의를 가지고 괴롭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남자는 일가를 죽이려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길가를 더럽히는 자충들을 치우고자 한 것이었다.

자충들을 밟아 죽일 생각은 전혀 없었던 남자는 벌레들을 밟아 길거리를 얼룩으로 더럽히기보다는 

발로 차 도랑에 넣고, 그러면 친실장이 놀란 자들을 데리고 도랑을 따라 공원으로 돌아가길 바랬던 것이었다.

참피에 무관심한 남자는 몰랐으리라, 슬쩍 밀어 내버리는 정도의 발길질에도 부스러져 죽어가는 것이 참피라는 것을.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도랑 속에서 죽어가는 자들을 본 친실장은

처음에는 자들을 구하고자 안절부절했지만 이내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포기해버리고 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동안에도 늘상 해 왔듯이 굴을 파고 있던 추자들은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보며 친충이 돌아오기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린다.

먹거리를 구해 온 친충의 귀가는 노동의 종료임과 동시에 식사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이기에

추자들은 구덩이를 파며 친충의 귀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이다.

허나 그날의 친실장은 평소의 모습과는 달랐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가을의 풍부한 먹거리를 봉투 가득 가져오는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데쟈아아아아~~~

울부짖으며 걸어온다.

평소대로라면 친충의 손을, 치맛자락을 붙잡고 미소지으며 조잘대며 걸어와야 할 언니 벌레들의 모습도 없다.

피눈물을 흘리며 울어대는 친충 혼자만이 터덜터덜 골판지를 향해 걸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친충들은 거짓말로 추자들을 속인다.

겨울나기 준비가 모두 끝나면 보존식을 꺼내 잔치를 할 거라고,

추자도 춘자도 다 같이 겨우내 모은 따스한 낙엽 속에서 겨울을 보낼 거라고.

그런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추자들은

겨울나기 준비를 마친 기념 잔치의 식재료가 된다.

겨울나기를 마치고 약속된 잔칫날이 오면

추자들은 언니 벌레들과 둘러앉아 친충이 그동안 모아둔 먹거리를 한껏 가져오길 기다린다.

그간 잡초나 똥, 가장 질 떨어지는 쓰레기를 식사로 삼아온 추자들은

한껏 미소지으며 태어나서 처음 하는 제대로된 식사를 기다린다.

춘자 언니 벌레들도 추자 동생들처럼 입가에 미소를 띈 채 식사를 기다리지만,

춘자들의 미소도, 춘자들이 기다리는 식사도, 추자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친실장에게서 추자 다루는 법에 대해 이미 배운 춘자들은

추자들에게 어떤 거짓말을 해서 부려먹어야 하는지, 그 마무리는 어떻게 되는지 다 알고 있기에

춘자들은 치뿌뿌 거리며 추자들을 비웃는다.

그런 춘자들의 비웃음에 어리둥절해진 추자들을 충분히 비웃은 춘자들은

“먹을 것은 오마에인 테챠!” 하고 추자들에게 달려들어 옷을 벗기고 머리를 뽑는다.

그런 폭력을 당하며 추자들은 "오네챠 왜그러는 테치?" "그만두는 테챠아아아아!" 소리지르고 애걸복걸한다.

아무리 빌고 또 빌어도 멈추지 않는 자매들의 폭력,

'우마우마해져라 텟치!' 하며 날아오는 춘자들의 주먹에 두드려맞고 뻗어가는 추자들은 목높여 마마를 부른다.

미쳐버린 오네챠들에게서 자신들을 구원해줄 마마,

그런 마마가 드디어 나타나자 드디어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도와달라 살려달라 외치지만

그 마마 마저 "잘한 데스, 겨울 준비의 마무리로 추자를 먹어야 몸보신이 되는 데스" 하며 데뿌뿌 웃는다.

추자들은 한입씩 산채로 먹혀가는 그 순간에서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는 가족들과 세상을 저주하며 죽어간다.

다 같이 모은 겨우내 따스한 낙엽 속에서 겨울을 보내는 것은 춘자들 뿐.

월동준비 완료를 기념하는 잔치에서 살아남아봤자

추자들은 손재주 좋은 친실장의 손에 꼬챙이에 꿰여 육포 신세가 된 채 죽지도 못하고 원망의 눈빛을 보내다 먹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가의 추자들은

친충과 춘자들이 사회 견학을 나서다 겪은 그 사고로,

식량이 될 운명에서 벗어났다.

허울뿐인 약속, 새빨간 거짓말이었던 '마마의 자' 가 되어 겨울을 나게 된다는 일이

현실이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추자들은 살아남았다.

가을 동안 굴을 파고 먹거리를 손질하던 고생의 보답을 받으려는 듯이

마마의 품에 더욱 달라붙어 안겼다.

친실장도 죽어버린 자들에게 향할 애정을 추자들에게 주었다.

가을에 태어난지라 다른 골판지의 자들에 비해 작은 덩치를 키우려는 듯이

9마리 춘자의 몫으로 준비된 보존식을 3마리 추자들에게 양껏 먹였다.

오들오들 떨면서도 밤에는 옛날 이야기를 잊지 않았다.

“부엉이라는 것이, 우흥~ 하고 우는 데스, 그것은 무서운 사냥꾼인 데스.

우흥~ 하고 바위에서 날아와 마마 말 안듣고 밤에 함부로 돌아다니는 똥자충들을 잡아가는 데스.”

그런 친실장의 이야기에 텟 하고 놀라며 밤에 돌아다니지 않겠다는 교훈을 새기는 자충들.

자신들이 죽을 운명이었고, 새 삶의 기회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마냥

자충들은 춥고 고통스러운 겨울을 행복하게 보내고 있었다.

겨우내 채 스무번이나 여닫았으려나,

서리가 겹겹이 낀 골판지의 문을 간신히 비집고 나온 자충들은 봄의 공기를 양껏 들이마신다.

따스하면서도 차가운, 한겨울의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차가움이 아닌 시원따스한 공기.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따스한 공기를 들이마셔본 적 없었던 추자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테 햐!”

“테챠! 이상한 테챠! 숨 쉬어도 춥지 않은 테치!”

“차가웠던 테치, 골판지도 숨도 차가웠는데 이젠 아닌 테치!”

“테체! 신기한 테체아!”

심호흡을 하다 아직 서늘한 아침 공기에 켁켁데며 기침하는 자충,

봄볓에 따스해진 보드라운 흙더미에 구르는 자충과 옷이 더러워진다고 이를 말리는 장녀 벌레까지.

친실장은 봄을 한껏 만끽하는 자충들의 모습을 애정과 걱정이 담긴 눈길로 지켜본다.

추자 자충들의 삶은, 봄이 된 지금 이제야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