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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키


 

* 직스주의


철웅은 언제나 같은 삶을 살고 있었다. 강의에 출석해서 수업을 듣는다. 지루하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거나, 잠을 자기도 한다. 2시간에 달하는 수업을 다 들으면 누군가와 이야기도 하지 않고 집에 가거나, 강의가 남으면 점심을 먹으러 간다.


오늘의 점심은 참치김밥. 거의 항상 이런걸로 때우고, 입 안에 느껴지는 상큼한 참치의 맛을 음미한다. 저렴한 편의점표 김밥이지만 불평을 하진 않는다. 5분도 걸리지 않은 채 다 먹어버리고는 다음 수업을 들을 준비를 한다. 강의실에 30분 일찍 도착해 아무 응답도 없는 카톡앱을 연다. 뉴스를 대충 보다가 예습하는 척을 한다.


철웅은 말을 딱히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친구도 없다. 여자애들이 와서 각자 즐거운 얘기를 나누며 웃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괜히 목이 타서 물만 마신다. 당연하지만 여친도 없고, 교수에게 사랑을 받지도 않는다. 그는 뒷자리에서 설렁설렁 수업을 듣는 편이였고, 성적도 B 혹은 B+ 정도의 성적을 받는, 평범한 학생이다.


철웅은 1학년이 끝나자마자 마치 도망치듯 군대를 다녀왔고, 복학해서 26살에 졸업하고 운이 좋게도 중견기업에 바로 취직했다. 회사에서도 철웅은 말수가 적은 편이였다. 할 말 제외, 입을 거의 열지 않았었다. 그런 철웅에게 말을 거는 동기는 실장석을 좋아하는 인물이였다.


"실장석?"


철웅은 실장석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그가 대학생일 때는 기숙사에 살았기에 실장석의 침입도 볼 수 없었다. 캠퍼스 내에서는 실장석을 볼 일이 거의 없었고, 딱히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었다. 동기는 자신이 키우는 실장석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뚱뚱한 것이 딱히 예쁘지는 않았다.


"집에 오면 날 반겨주는게 귀여워"


그 말에 철웅은 약간 고민하다 실장석을 샀다. 집에 누군가가 있으면 말을 많이 하게 될 것 같았다. 실장석의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어차피 그는 돈을 쓸 일이 없었기에 돈은 꽤 충분했다. 저렴한 실장푸드를 샀고 넓지 않은 수조를 샀다. 실장석과 세트로 용품들이 도착했다. 실장석은 박스에 넣어져 있었고, 활성제를 넣어서 깨우는 방식인듯 했다.


철웅은 수조에 폭신한 담요를 깔아주었다. 화장실을 설치하고 밥그릇과 물그릇을 놓아주었다. 침대까지 놓아주니 그럴싸한 집처럼 보였다. 실장푸드와 물을 채워주고 침대에 실장석을 들어 눕혔다. 부드러운 살이 손에 닿았다. 이상한 기분이였다.


"테치..?"


작은 생물이 꼬물꼬물 일어난다. 동기가 자실장이 제일 귀엽다고 하여 성장억제제가 들어간 것으로 주문했다. 실장석은 주위를 잠시 둘러보다가 고개를 들어 철웅을 발견했다. 철웅은 어색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걸 본 실장석이 양손을 배꼽에다 대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주인사마, 안녕하신 테치"


그 실장석은 예의범절이 발랐다. 훈육을 하지 않아도 배변을 가렸고 저가의 실장푸드에도 투정부리지 않았다. 콘페이토나 스테이크를 달라고 울지도 않았다. 초록색 옷이 예쁘지 않았기에 그는 분홍색 옷으로 갈아입혀주었다.


"이름은, 핑키로 하자."


단순히 그 아이가 분홍색 옷을 입었기에 지은 이름이였다. 핑키는 이름을 받은 것이 기쁜지 빙글빙글 돌았다. 귀여운 아이였다. 철웅이 야근을 하는 날에도 핑키는 군말없이 잘 놀고, 잘 잤다. 사료를 한가득 주고 가도 조절해서 먹는 착한 양충이다.


"핑키.."


그 날 철웅은 술을 한가득 마시고 들어왔다. 최근에 계속 상사에게 혼났기 때문이다. 그 상사는 자신의 라인만 챙기는 사람인데, 딱히 연을 쌓지 않으려는 철웅이 달갑지 않은 듯 했다. 계속 혼나고 야근을 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힘내는 테츄..주인사마.."


핑키는 술 냄새를 참고 철웅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실장석의 조그마한 손으로는 쓰다듬어진다는 기분은 안 들지만, 핑키는 진심으로 철웅을 위로하고 있다.


몇주 후, 철웅은 회사를 그만 두었다. 그 망할 상사 때문이다. 정확히는 잘렸다 보는게 맞을 것이다. 정리해고인가 뭔가라고 한다. 돌아온 철웅은 핑키를 보자마자 울었다. 너무 서럽게 울어서 핑키는 당황했다.


"주인사마! 괜찮은 테치 주인사마에겐 와타치가 있는 테치.."


핑키는 철웅을 위로했다. 한참을 더 울던 철웅은 눈물을 슥 닦았다. 동기가 한 말을 알 것 같았다. 나만 봐주는 생물, 나를 반겨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생물이 집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행복인가?


"그래..나 힘낼게, 핑키야"


철웅은 그 후 일자리를 구하려고 했지만 빈번히 떨어지거나, 붙어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나와버렸다. 그와 동시에 핑키에게 쓰는 돈은 많아졌다. 그는 핑키와 떨어져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에 핑키를 데려와 잘리기도 했었다. 그는 핑키에게 더더욱 의존하기 시작했다.


-


1년이 흘렀다. 그 동안 철웅이 관둔 일만 2자리수 가까이 되었고 넣은 이력서는 3자리수에 달했다. 아무것도 이루어진게 없었다. 자신의 형은 건실한 직장에 들어가 한 자리를 제데로 꿰차고 있다. 그런데 자신은 뭔가? 영원히 자실장으로 남는 핑키만 있을 뿐이였다.


"주인사마, 와타치가 있는 테치!"
"그래..난 너만 있으면 돼.."


철웅은 심해 속으로 가라앉듯 핑키에게 빠져들었다. 핑키는 어느 순간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였지만 철웅에겐 그것이 잘 먹혔다. 핑키는 여전히 양충이였다. 옷은 조금 더 프릴이 달렸고 먹이는 아마큐브로 바뀌었다. 그거 이외에는 거의 바뀐게 없었다. 세레브한 성도 없었지만 핑키는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


핑키는 성장억제제가 듬뿍 첨가된 아마큐브를 먹었다. 비싼 실장푸드이기에 먹이는 한끼에 2알로 제한되었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이다. 콘페이토 서너개를 한 입에 넣고 우물거리는 느낌의 단맛. 몸서리칠 정도로 달지만 영양소는 균등하게 잡혀있다.


철웅이 백수가 되고 난 뒤로는 부모님께 생활비를 받아썼다. 한달에 100만원 정도. 월세를 내고 이것저것 하면 충분히 남는 돈이라 모으고 있었다. 철웅은 하루종일 핑키와 붙어 있었다. 아마큐브를 양 손으로 잡고 테찹테찹 하며 먹는게 귀엽다. 아마큐브는 1kg에 7만원 정도 하는 고급품이다. 이 생활비는 제 형이 보내주는 거지만, 철웅은 죽을때까지 이 돈은 부모님이 보내주시는 거라고 알고 있었다.


"아..밥.."


철웅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에 가끔씩 말을 할때마다 목소리가 쉬어선 갈라졌다. 그의 밥은 거의 샌드위치, 삼각김밥, 라면을 벗어나지 않았다. 건강은 빠르게 망가졌지만 그는 핑키가 먹는 모습을 보면 배가 불렀다.


"주인사마, 청소라도 하시는게 어떤 테치?"
"안돼. 그럼 그 시간동안 널 못보잖아"


그는 핑키말고 다른 것은 잘 보지 않았다. 방과 거실에는 쓰레기들이 쌓여갔다. 아주 심각하게, 걷기도 힘들 정도로 쌓여야만 대충 집어넣어 버리는 정도였다. 그 후 반년이 지나고, 철웅은 완전히 망가진채 집으로 돌아왔다. 친척들에게 강제로 끌려와 설교를 들었기 때문이다.


"너 이제 곧 32이야, 정신을 차려야지!"
"여자도 만나고 취직도 하고 그래야 할거아냐!"
"그 실장석인가 뭔가..그냥 벌레잖냐. 그거에 시간을 왜 바치냐?"


친척들은 몇 시간 동안 철웅을 쪼았다. 돈도 직장도 주지 않으면서 주는건 잔소리 뿐이라고 철웅은 불평했다. 머리속에 남는 말은 없었다. 그저 한쪽 귀로 흘러넘길 뿐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핑키를 보았다.


"핑키야, 너는 여자지?"
"그런테치. 왜 그러시는 테치?"


철웅은 이미 자신이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핑키는 여자아이인 것이다. 마라가 달린 남자가 아니라!!


그걸 깨달은 철웅은 한참을 웃더니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애호파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그는 이것 저것을 검색해 보다가, 실장석을 실장인스럽게 만드는 방법을 찾았다.


"후흐..흐.."


그는 방법을 찾아보다가 웃었다. 수염은 며칠째 깎지 않아 자라나고 머리도 손질하지 않아 앞머리를 가렸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며칠 후, 그는 핑키에게 네무리를 먹여서 재웠다. 그 후 전문 브리더에게 핑키를 넘겨준다. 며칠만 기다리면 된대서 그는 망부석처럼 기다렸다.


"주인사마..?"


다시 온 핑키는 매우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몸이 길어져 시야가 달라진 것이다. 걷는게 조심스러워졌고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무언가가 생겼다. 가슴이라고 하는 듯 했다. 철웅은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찍어댔다.


"그래..넌 여자야. 여자라고. 나는 여자를 만나고 있는거야"


철웅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핑키가 실장석의 언어를 하지 않으면 완벽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후 그는 핑키가 실장석의 언어, 즉 한본어와 테치 하는 어미를 쓸 때마다 때렸다. 매우 가슴이 아팠지만 실장석은 때리지 않으면 훈육이 되지 않는다고 커뮤니티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주인님? 이제 완벽한가요?"


핑키가 말했다. 이제 실장석의 말투는 거의 사라졌다. 와타시 같은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매우 작은 인간이라고, 철웅은 생각했다. 핑키는 실장석이 아니다. 한 명의 인간이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랬다.


"핑키야, 사랑해.."
"네..?"
"결혼할까, 이제!"


핑키는 굉장히 당황스러워했다. 뒷걸음질 하는 핑키를 낚아챈 철웅은 핑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길다래진 몸과 튀어나온 가슴, 잘록해진 허리는 핑키를 이질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철웅은 핑키를 인간처럼 대했다. 그는 당장 핑키와 결혼식을 거행하고 싶었으나, 핑키를 개조하는데 돈을 많이 들여서 돈이 없었다.


"..어디다가 쓸건데"
"쓸 곳이 생겨서..히히..."


철웅은 제 형에게 빌어서 돈을 타냈다. 핑키의 웨딩드레스는 작고 수제여서 굉장히 비쌌다. 돈을 쥐어짜내고 털어서 겨우 마련한 웨딩드레스를 입은 핑키는 굉장히 아름다웠다.


머리에 쓴 티아라와 하늘거리는 면사포, 웨딩장갑을 낀 손에 펄이 들어간 웨딩드레스, 유리구두 까지 신은 핑키는 그의 눈에는 굉장히 아름다웠으리라. 그는 정신 없이 사진을 찍었고, 도배인가 싶을 정도로 커뮤니티에 올렸다. 핑키의 사진은 폐쇄적이었던 그 커뮤니티 특성상 다른 곳에 퍼지진 않았지만 그는 순식간에 네임드가 되었다.


"주인님..?"
"결혼 했잖아 우리. 이제 남편이라 불러야지"


핑키는 당황스러웠다. 자신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이런걸 요구하면 죽는다고 브리더에게 배웠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본인이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핑키는 따르기로 했다. 자신의 주인이다. 2년간 자신만을 바라봐준 주인이다.


"남편님"


핑키는 수줍게 말했다. 더 이상 철웅은 핑키를 수조에 가두지 않았다. 같이 TV를 보았고 밥도 한 식탁에서 같이 먹었다. 핑키의 몸이 작아 걸어다닐 순 없었고 쓰레기가 너무 많아서, 철웅은 같이 다니는 길만 깨끗하게 치워두었다.


핑키는 잠시 걷는걸 제외하고는 철웅의 손에 무릎을 꿇은 채로 이동했다. 아득히 높은 곳에서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항산 쓰레기밖에 없는건 슬펐지만 핑키는 죽거나 학대당하는것 보다야 낫다고 생각했다.


"핑키야"
"네, 남편님"


철웅은 남편님이라는 호칭을 즐기고 있었다. 커뮤니티에서는 흑발의 자를 볼거냐고 했다. 철웅은 그런것은 잘 몰랐지만, 인간과 실장석 사이의 아이를 흑발의 자라고 한다고 했다. 철웅은 여체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 음란물을 본 기억도 거의 없다. 커뮤에서는 실장석의 총구에다 넣어 임신 시키면 된다고 했다.


"자는 흑발인데 너만 갈색이면 이상하잖아"


철웅은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검정색 염색약을 사왔다. 핑키만 보고 있던 그는 이제 인간과 마주치는걸 꺼려했다. 형이나 부모님에게 오는 연락도 거의 씹고 있었다. 염색약을 사와 핑키를 염색시켰다. 염색약 냄새가 퍼지고 핑키는 얌전히 잘 참고 있었다. 염색약을 바르고 씻기니 검정색 물이 잘 들어 있었다. 완벽한 인간. 적어도 철웅의 생각은 그랬다.


핑키의 말투에서는 실장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외형도 오드아이인 두 눈을 제외하면 일반 자실장과 완벽히 달랐다. 그리고 핑키는 자신의 아내다. 실장석과 인간은 결혼할 수 없다. 하지만 자신과 핑키는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다. 자신이 실장석과 결혼했다는 말인가? 아니다, 자신은 인간과 결혼했다. 핑키는 인간이니까.


그 후 철웅은 애호파 커뮤니티를 나갔다. 이 커뮤니티는 실장석 애호인데, 자신은 실장석을 기르고 있지 않아서 있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전화번호도 회장의 것을 제외하면 전부 다 지웠다. 그 후 철웅은 핑키와 첫날밤을 보냈다.


자신은 실장석과 직스를 한게 아니라, 인간과 성교를 한 것 뿐이다. 철웅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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