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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말마

 


" 레헥.. 레헥.. "

" 꼬맹이 놈 거기 서는데스! " " 잡히면 곱게 죽이지 않는데스! "

허겁지겁 달려가는 한 엄지실장의 뒤로 분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성체실장 세 마리가 바짝 추격해오고 있었다. 엄지실장의 필사적인 도주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점차 거리가 좁혀지는 것을 보니 그 끝이 멀지 않아 보였다.
이윽고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한 성체실장들은 손을 뻗으며 자신들의 일을 늘린 건방진 엄지실장을 움켜쥐려고 시도했으나, 엄지실장은 그 작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성체실장들의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도주극을 이어갔다.

이는 평범한 상식과는 거리가 먼 광경이었다. 엄지실장이 아무리 재빠르다고 해봤자 성체실장과의 보폭 차이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다. 특히 그 압도적인 덩치 차이 때문에 살기를 띠고 다가오는 성체실장의 기세에 압도되면 도주는 꿈도 못 꾸는 게 일반적이었다.
설령 몸을 움직일 수 있더라고 한들 골판지에만 얌전히 머무르는 엄지실장의 부실한 체력이 늘 분주히 돌아다니는 성체실장의 체력보다 형편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행히도 기적을 선보이고 있는 엄지실장에게 행운이 따라 줬는지 뒤를 쫓던 성체실장들도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는 성체실장들의 눈은 짜증과 분노로 가득 차 자신들을 고생하게 하는 엄지실장을 당장이라도 붙잡아 갈기갈기 찢어버릴 기세였지만 그들의 몸은 주인의 의지를 배신하고 차츰 느려지고 있었다.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었다.

달아나기 바쁜 엄지실장은 몰랐지만 엄지실장을 쫓는 추적자는 두 마리가 아닌 세 마리였다. 게거품을 물고 추격하는 성체실장 두 마리의 뒤에 가려진 성체실장 한 마리도 조용히 엄지실장을 추격하고 있었다. 
머리에 핑크빛 띠를 두르고 허리에 벨트를 찬 이 성체실장은 머리끝까지 흥분한 부하들과는 달리 침착해 보였다. 

부하 둘이 달리는 와중에 욕설로 엄지를 위협하며 쓸데없이 힘을 낭비하는 헛짓거리를 하는 동안 머리띠 실장은 열심히 머리를 굴려 엄지를 산 채로 포획할 가능성을 가늠해보고 있었다. 그러나 거듭하여 생각해봐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앞서가는 부하들은 체력이 크게 떨어져 엄지실장과의 거리가 점차 벌어지고 있었고, 비교적 체력이 온전한 자신조차도 불가사의하게 빠른 엄지를 따라잡을 자신이 없었다.

" 오마에타치, 비키는데스. "

부하들 사이로 비집고 나와 일행의 선두에 선 머리띠 실장은 허리춤으로 손을 뻗더니 벨트로 고정해 놓은 나무막대를 빼서 자신의 정면을 겨눴다. 막대의 앞부분을 감싼 플라스틱 뚜껑을 손으로 제거하니 뾰족한 침이 나타났다. 
어느새 제자리에 멈춰선 머리띠 실장은 블로우건을 도망치는 엄지실장에게 조준하며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구멍에 입을 대며 짧고 강하게 숨결을 내뱉었다. 

" 레갸아악! "

등에 자신의 손만 한 독침을 맞은 엄지실장을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쓰러졌지만, 곧바로 일어나 달려 나갔다. 멀어지는 엄지실장을 잠시 지켜보던 머리띠 실장은 허리춤에 다시 블로우건을 꽃으며 등을 돌렸다.

" 끝난데스. 돌아가는데스. "

부하실장들은 앞서서 휘적휘적 걸어가는 머리띠 실장의 뒤를 따랐다. 부하 한 마리가 머리띠 실장이 바닥에 떨어뜨린 플라스틱 뚜껑을 잊지 않고 챙겼다. 어딘가 후련해 보이는 세 성체실장들은 도망친 엄지실장에 대해 아무 미련도 없이 보였다.



" 레헥... 레헥... "

추적자들이 더는 쫓아오지 않음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라도 멈췄다간 어디선가 나타난 추적자의 손에 붙들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엄지실장은 멈추지 않았다. 이미 공원은 엄지실장에게 있어 아늑한 장소가 될 수 없기에 한시라도 빨리 공원에서 벗어나야 했다. 평생을 공원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엄지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계속 달려 나갔다. 

" 레....레히... "

공원의 출구까지 불과 10m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엄지실장은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몇 분 전부터 다리를 억지로 질질 끌며 걷는 것도 이미 한계여서 이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헥헥거리며 숨을 들이쉬던 엄지실장은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런 낌새가 없자 조금은 안도할 수 있었다. 마음을 놓으니 지금껏 억눌렀던 피로가 한 번에 풀려나오는 아득한 느낌에 머리를 휘휘 저으며 저항하던 엄지실장은 돌연 몸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열기의 근원은 등에서 느껴졌다. 아까 추적자들이 자신의 등에 쏘아 보낸 무언가를 맞은 부분이 유달리 화끈거렸다. 고개를 돌려서 확인해보려고 해도 잘 보이지 않아서 손으로 등을 더듬어 박힌 것을 빼내려고 했지만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등은 점차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를 악물고 신음을 참던 엄지실장은 이대로 있다가는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에 덜컥 겁을 먹고는 몸을 일으켜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지친 엄지실장의 눈길이 얕게 고인 물에 닿은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자신의 모습이 비친 물을 멍하니 보던 엄지실장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물에 자신의 뒷모습이 비치도록 이동하더니 물에 반사되는 모습을 통해 다시 한번 등 뒤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자신의 등에 박힌 독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색이 창백해진 엄지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 안 되는레치! 안 되는레치! "

다급해진 엄지실장은 양손을 등 뒤로 돌려 독침을 붙잡고는 빼내려고 시도하였으나 엄지실장의 빈약한 힘, 그리고 실장석의 투박한 손길로는 손이 닿기 힘든 등에 제대로 박힌 독침을 제거하기는 무리였다. 
힘이 잔뜩 들어간 손이 독침을 잡아 빼려다가 미끄러져 옷을 훑을 때마다 들실장에게 있어 너무나 귀중한 옷에 충격이 가해져 조금씩 찢어지고 있었지만, 엄지실장은 그런 사실도 모르고 필사적으로 독침을 제거하려고 할 뿐이었다.

" 렛...레에.. "

얼마 지나지 않아 엄지실장은 힘없는 울음소리를 내더니 옆으로 고꾸라졌다. 이미 정신을 잃어 초점이 맞지 않는 눈으로 지면을 보고 있는 엄지실장의 몸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작은 엄지실장의 목숨을 건 도주극은 그렇게 종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생명의 불꽃이 서서히 꺼져가는 엄지실장의 몸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겹쳐졌다.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겨울의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긴 코트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주위를 쓱 둘러보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쓰러진 엄지실장을 손 위로 올렸다. 
엄지손가락으로 엄지실장의 등을 가볍게 누르며 다른 손의 엄지손가락과 검지로 독침을 붙잡고 가볍게 당기자 엄지실장이 그렇게나 용을 써도 뽑지 못했던 독침이 쏙 뽑혀 나왔다.   

독침을 미리 준비해온 작은 지퍼백에 수거한 남자는 손가락을 이용해 엄지실장의 배가 하늘을 향하도록 몸을 굴리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작은 메스로 엄지실장의 배를 가볍게 그었다. 깔끔하게 갈라진 배를 양 손가락이 벌리고 있는 사이에 메스가 그 틈으로 들어가 엄지실장의 내장을 휘저었다. 장기가 헤집어지고 있는 엄지실장은 그 고통에 움찔거리긴 했지만,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는 못했다.

엄지실장의 위석은 심장 바로 옆에 있었다. 메스 위에 조심스럽게 얹혀 밖으로 적출당한 그것은 어두운 녹색을 띠고 있었으며, 셀 수 없이 많은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위석의 힘을 쥐어짜서 만들어낸 기적은 반드시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여느 엄지실장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자실장들도 불가능한 기적을 일으키기 위한 대가로 이 작은 엄지실장은 생명력의 근원을 한계를 넘어서까지 끌어써야 했다. 이후에 상처를 치료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수명도 많이 줄어들었고, 남은 평생 허약하게 살 게 될 것이다.

' 물론 다음이 있다면 말이지. '

관리실장이 사용했던 블로우건의 용도는 원래 사육실장의 호신용품이었다. 실장용 스턴건은 단발로도 덤비는 들실장을 해치울 만큼 위력은 대단했지만, 사용자가 인간의 집에서만 곱게 자란 사육실장이기 때문에 싸움에 노련한 들실장에게 습격받으면 별 효과도 보지 못하고 제압당하기 일쑤였고, 때로 분충의 손에 쥐어진다면 다른 사육실장에게 피해를 주기도 했다.  
그래서 등장한 물건이 실장석 퇴치용 블로우건. 덤벼드는 들실장을 원거리에서 안전하게 퇴치하자는 개념으로 만든 물품이다. 독침에 함유된 독성분은 실장석 체내에 흐르는 피에 닿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활성화되어 실장석을 녹이는 도로리와 같은 효과를 냈다. 

하지만 블로우건은 호신용품에서 퇴출당한 지 오래였다.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다는 장점 말고는 오히려 스턴건보다도 사용에 숙련이 필요한 블로우건을 급습당한 사육실장이 제때 사용하여 자신을 지킬 확률은 낮아 실효성이 별로 없었을 뿐만 아니라, 물건의 특성상 방어보다는 공격에 유리했기 때문에 분충 사육실장들이 다른 실장석에게 피해를 주는데 이만한 물건도 없었다. 
심지어 몇몇 학대파가 의도적으로 들실장들에게 블로우건을 보급해 집단을 이룬 들실장들이 사육실장을 테러하고 다니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는 불상사까지 겹쳐 종국에는 구제실장을 쓰는 구제업체에서나 쓰이는 물건이 되었다.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당한 이후론 수요가 줄어 단가가 올라가는 바람에 지금은 구제실장을 쓰는 구제업체에서도 쓰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블로우건은 이렇게나 위험한 물건이었지만 수술만 받는다면 이 엄지실장도 살 수 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예능석 카트린느 피습사건. 과거에 벌어진 사건으로 다른 예능석과 비교하여 독보적인 인기를 누리던 카트린느를 질투하던 다른 예능석이 무대인사 중인 카트린느에게 블로우건을 쏘아 맞힌 사건이다. 
보통 예능석이 크게 다치면 은퇴라는 명목으로 폐기하던 게 당시 예능석에 대한 처우였음에도 소속사의 사장은 카트린느가 갖다줄 이익이 더 크다고 계산기를 두드렸는지 카트린느를 치료했다. 

독 성분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이송될 때부터 초고급 활성제를 물 쓰듯이 퍼부으며 수술이 진행되었다. 
수술 자체는 간단했다. 독에 영향을 받은 살덩이를 전부 도려내고 손상된 신체를 활성제로 재생시키는 게 전부였다. 그러나 진통제 효과까지 있는 초고급 활성제의 값은 가볍지 않아 카트린느의 수술비는 대략 세레브 실장 세 마리 정도의 가격이 나왔다고 한다.  
대수술을 마치고 소생하여 고된 재활 훈련 끝에 복귀한 카트린느는 기존보다 더한 인기를 누리며 예능석으로는 드물게 행복하게 삶을 마쳤지만,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예능석으로서의 기량은 전보다 떨어져 다시는 원래의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실장석이라는 생물이 원체 허약한지라 카트린느 피습사건 이외에도 시답잖은 이유로 사경을 헤매다 목숨을 잃는 사육실장들을 지키기 위해 활성제를 비롯한 구호제품의 꾸준한 연구를 통해서 지금에 이르러선 코로리를 먹거나 도로리를 온몸에 흠뻑 뒤집어쓰지 않는 한 어떤 치명상도 고급활성제 한 병만으로도 잠깐 숨을 붙여놓을 수는 있다. 그러나 고작 들실장을 구하기 위해 수술을 하겠다고 하면 상사에게 호출돼서 대번에 미쳤느냐는 핀잔을 들을 게 뻔했다.

쓴웃음을 지은 남자는 또 다른 주머니를 뒤적거려 꺼낸 고급 활성제 안으로 엄지실장의 위석을 집어넣었다. 위석이 활성제에 닿기가 무섭게 거품이 뽀글뽀글 올라오며 활성제의 양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더는 거품이 올라오지 않자 남자는 병을 눈 가까이 가져가 위석의 상태를 확인해보았다. 거무튀튀하던 위석은 밝은 녹빛을 띄고 있었지만 위석에 새겨진 실금들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그래도 엄지실장의 몸 곳곳에 있던 상처들은 말끔히 사라지고 안색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남자는 또 다른 주머니에서 작은 주사기를 꺼내더니 엄지실장의 몸에 바늘을 밀어 넣었다. 이 약물이 독의 활성화를 늦춰줄 것이다. 손바닥 위에서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는 엄지실장을 잠시 내려보던 남자는 손을 살짝 움켜쥐었다. 
엄지실장은 이래서 좋다. 손을 살포시 움켜쥐기만 해도 감쪽같이 모습을 감출 수 있다. 자실장만 하더라도 양손을 포개어 운반해야 하고, 성체실장이었다면 녀석을 담을 비닐봉지와 이동 중에 녀석이 깨어나는 것을 방지할 네무리까지 필요했을 것이다.
남자는 주위를 다시 한번 휘휘 둘러보고 빠르게 공원을 벗어났다.



[ 레에... 마마, 아타치 더는 못 먹는레치.]

남자의 손에 운반되던 엄지실장은 하얀 탁자 위에 누워 있었다. 엄지실장의 키보다 높은 머그잔 하나만 달랑 놓여 있는 탁자는 테이블보 대신 비닐로 덮어져 있었다. 
온풍기에서 불어온 따뜻한 바람이 잠꼬대를 하는 엄지실장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엄지실장은 눈을 뜨고 제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게슴츠레 눈뜨고 입맛을 짭짭 다시며 멍하니 앉아있는 걸 보니 아직 완전히 잠에서 깨어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 일어났구나? "

눈을 비비며 잠을 쫓던 엄지실장은 처음 듣는 남자의 목소리에 움찔하더니 탁자 위에 놓인 머그잔 뒤로 달려가 몸을 숨겼다. 컵 뒤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빼꼼 내밀어 남자를 주시하는 엄지실장의 두 눈동자엔 경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쓸데없는 경계심을 사지 않도록 천천히 걸어와 의자에 앉은 남자는 턱을 괴고 자신을 훑어보는 엄지실장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 꾸르르르 -

둘 사이의 짧은 대치는 공복을 주장하며 요란한 소리를 내는 엄지실장의 배 때문에 깨졌다. 남자는 얼굴이 홍시같이 빨개진 엄지실장을 뒤로 하고 냉장고를 열어 원래 점심으로 먹으려고 구매한 만두를 꺼냈다. 점심을 먹으려던 찰나 공원에 미리 설치해두었던 카메라에 엄지가 성체실장들에게 쫓기는 모습을 보고 황급히 뛰쳐나갔기 때문에 만두는 아직 완전히 식지 않고 미지근했다.

" 먹어둬. "

남자는 엄지실장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양을 떼어내 엄지실장에게 건넸지만 엄지실장은 남자를 경계하며 만두를 받지 않았다.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는 떼어낸 만두를 엄지의 앞에 놓고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만두를 먹는 남자를 보며 침을 흘리던 엄지실장은 남자와 자신의 앞에 놓인 만두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침으로 탁자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며 이성과 식욕 사이에서 갈등하던 엄지실장은 남자가 또 다른 만두를 집어 한 입 먹는 모습을 보고는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자신의 몫을 집어 들어 눈을 질끈 감고 한입 먹었다.  

애호 공원에서 푸드를 식량으로 배급받으며 살았던 엄지실장은 처음 먹는 만두가 맛있었는지 남자가 떼어준 몫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는 남자의 만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자가 그 모습을 보곤 피식 웃으며 아까의 배는 되는 양을 떼서 엄지실장의 앞에 놓자 아까와는 달리 바로 만두를 집어 들고는 입안으로 만두를 계속 밀어 넣었다. 
먼저 식사를 마친 남자는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식사에 열중인 엄지의 머리에 검지를 뻗었다. 손가락이 머리를 쓰다듬자 잠깐 몸이 굳었던 엄지실장은 얌전히 만두를 먹는 데 집중했다.

포식을 마치고 트림을 뱉으며 배를 문지르던 엄지실장은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어색한 분위기를 풍기다가 벌떡 일어나 남자의 앞으로 쪼르르 달려오더니 머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 우마우마한 밥 고마운레치. 닝겐상이 아타치를 구해준레치? ]

" 구해줬다라... 난 널 구해준 적 없다. 쓰러져있는 널 데리고 왔을 뿐이야. "

[ 하지만 다친 아타치를 치료한 건 닝겐상이 아닌레치?  ]

" 따지자면 치료해준 건 내가 맞지. "

[ 아타치를 치료해줘서 고마운레치 닝겐상. 아타치 이제 무사한레치? 아타치 이제 살 수 있는레치? ]

남자는 잠시 대답하지 않고 엄지실장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몇 번이나 해온 일이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학대파라고 떠벌리고 다니는 김 PD면 모를까 자신은 결국 번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필사적인 도주 끝에 살았다고 안도하는 실장석에게 죽음을 선고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일은 일이었다. 자신의 기분과는 상관없었다. 좀처럼 대답하지 않던 남자를 불안한 눈으로 보는 엄지실장에게 마지못해 대답해 주었다.

" 아니, 넌 죽을 거다. "

[ 레? ]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당황하던 엄지실장은 곧 씩씩거리며 화를 내었다.

[ 그럴 리 없는레치! 아타치 이제 안 아픈레치! 아타치를 쫓는 나쁜 오바상들도 없는레치! 어째서 그런 나쁜 말을 하는레치! ]

같은 처지의 인간도 이해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을 텐데 어린 실장석을 말로 이해시키려는 시도는 그야말로 시간 낭비였다. 남자는 의자에 걸쳐놓은 코트의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회수한 독침을 넣은 지퍼백을 꺼내 들었다.

" 이게 네 등에 박혀있던 독침이다. "

남자가 던진 지퍼백이 엄지실장의 정확히 발 앞에 떨어졌다. 그 안에 든 독침을 본 엄지실장은 몸을 잘게 떨었다.  

" 너도 본 적이 있지? 이 독침에는 너희 몸을 녹이는 독성 성분이 들어있단다. 독침을 맞은 순간부터 넌 죽을 운명이었어. " 

[ 하...하지만 아타치 지금은 안아픈레치? 아픈 거 다 날아가서 멀쩡한레치? 이제 다 나은 거 아닌레치? ]

" 후... 가엾은 엄지실장아, 이 독은 원래 바로 효과를 나타내는 게 아니라서 시간이 지나야 효과가 나타난단다. 내가 치료해준 건 너의 몸에 난 상처였지 독을 치료할 방법은 처음부터 없었어. "

[ 마..말도 안되는레치.... 아타치가.... 레에엥! 레에에엥! ]

비틀거리던 엄지실장은 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 작은 몸에서 나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머리가 아파질 지경이었다. 애호공원이고 자시고 간에 집 근처에 실장석이 사는 공원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주위가 빈집인 게 다행이었다.   

" 이봐, 우는 건 자유지만 이제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내 말 좀 들어줄래? "

[ 레에엥! 레에엥! 레... 레치? ]

" 방금 말했듯이 난 널 구해줄 수 없어. 하지만 너에게 있었던 불행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너에게 생긴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는 일은 해줄 수 있어. 그러면 너의 가족을 해친 원수들에게 어느 정도의 복수가 되겠지. "

" 그러니 너와 너의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어. 어때, 나를 좀 도와줄 수 있겠니? "

잠시 고민하던 엄지실장은 흐르는 눈물을 팔로 쓱쓱 닦아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자연스러운 시선 처리를 돕기 위해 카메라의 뒤에 자리 잡았다.



" 여기를 보면서 말하면 돼. "

[ 아타치는 사녀인레치. 아타치의 가족은 파파와 마마, 그리고 오네챠 셋이 함께 살고 있던레치. ]

" 응? 파파라니, 혹시 너의 마마는 사육실장이었니? "

간혹 잘 운영되던 애호공원이 몇몇 인간의 욕심에 의해 붕괴하는 사건이 있다. 
그런 경우는 보통 학대파인 사례가 많은데, 사육실장이 아닌 들실장을 학대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실장석 주제에 행복해질 권리는 없다는 악의로 가득 차 범행을 저지르는 예도 있다. 실장석이라면 죄다 죽이려는 살의에 휩싸인 학살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느 경우건 많은 사람의 노고를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짓밟았으니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고 그에 따라 처벌도 받지만, 이미 죽은 실장석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으며, 무너진 공원 시스템을 다시 구축하기 위해 들어갈 시간과 노력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다. 

드물게는 애호파에 의해 사건이 벌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중 직스충이라고 멸시받는 사람들은 분충 실장석이나 주장할 법한 인간과 실장석간의 성행위를 실제로 행하는 사람들이다. 실장석의 이미지가 원체 안 좋은지라 수간보다도 더한 혐오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비난받지만,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직스를 통해 인간과 실장석이 이어진 것을 실제로 목격한 다른 실장석들에게 헛된 바람을 불어넣어 들실장들을 순식간에 분충으로 타락 시켜 공원의 붕괴를 초래하기 때문에 절대로 막아야 할 행동이었다. 
더욱이 학대파는 실장석에 대한 악의를 숨기지 않지만, 직스파의 경우 본인들은 순수히 사랑 때문에 그랬다고 주장하며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기 때문에 어쩌면 학대파보다도 더 질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 흑발의 실장을 말하는레치? 아닌레치. 파파는 닝겐이 아니라 마라실장인레치. ]

" 호오. "

엄지실장의 부정에 남자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록 엄지실장의 머리카락은 정상적으로 갈색이었지만 만약 친실장의 다른 새끼들이 직스를 통한 결과물이었다면 이번 취재의 목적과는 맞지 않기 때문에 인터뷰는 여기서 끝이고, 새 희생자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 너의 파파와 마마에 관한 이야기를 좀 자세히 들을 수 있을까? "

[ 파파는 여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산에서 살던 산실장이라고 말한레치. 마라인 파파는 원래는 태어나자마자 슬픈 일을 당해야 했는데 파파의 마마는 파파의 마라를 확인하고도 그 사실을 숨기고 자로 기른레치. 처음엔 마라가 작아서 잘 숨길 수 있었는데 파파가 성장하는 만큼 마라도 커져서 결국 다른 오바상들한테 들켜버린레치.]  

[ 파파는 마라답지 않게 상냥했던레치. 그래서 산의 오바상들도 파파를 굳이 죽이지 않고 무리에서 내쫓는 걸로 마무리 지은레치. 파파는 가족들과 헤어져서 슬펐지만 그래도 파파의 마마에게 배운 지식으로 혼자서 그럭저럭 살아간레치. ]

[ 그렇지만 가을에 접어들었을 때 파파는 선택해야 했던레치. 겨울을 버틸 보존식은 모았지만, 파파의 마마에게 배운 지식대로면 겨울이 되면 혼자인 파파는 얼어 죽을 수밖에 없던레치. 파파는 지금까지 모은 보존식들을 모두 바쳐서라도 무리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보초 오바상들에게 위협당해 입구에서 번번이 쫓겨난레치. 파파는 결국 생존을 위해 산을 떠난레치.]

[ 파파는 예전에 파파의 마마에게서 공원이란 곳에 대해 들었던 적이 있던레치. 산에서 내려온 파파는 공원을 찾아간레치. 첫 번째 공원에서는.. ]

" 미안하지만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아, 너의 파파와 마마가 만난 이야기부터 해줬으면 좋겠어. "

[ ... 좋은레치. 파파는 지친레치. 어느 공원에 가도 파파는 환영받지 못한레치. 파파를 이용하려 들거나 죽이려는 오바상들에게서 시달리며 정처 없이 방황하던 파파는 이 공원에 도착한레치. ]

[ 파파는 다른 공원들과 달리 닝겐이 실장석을 해치지 않고 푸드를 나눠주는 모습을 보고 놀란레치. 닝겐이 있는 시간인데도 오바상들이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돌아다녔고, 오바상의 자들이 닝겐에게 재롱을 부려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칭찬해주는 모습에 감동한 파파는 이 공원에서 평생 살고 싶었던레치. 하지만 파파는 닝겐이 마라를 아주 싫어한다는 걸 알아서 나설 수 없던레치.]

[ 파파는 공원의 실장석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그 자리에서 쓰러진레치. 파파는 사실 며칠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서 한계였던레치. 파파가 다시 눈을 뜬 장소는 낯선 골판지였던레치. 파파가 깨어나니 젊은 오바상이 파파에게 말을 건레치. 그게 마마였던레치. ]

[ 파파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은 마마는 다른 오바상이나 닝겐들에게 들키지 않는 조건으로 파파를 집에서 살게해준레치. 나중에 다른 오바상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내며 잔뜩 찾아왔을 때도 마마가 설득해서 돌려보낸레치. ] 

[ 겨울을 같이 보낸 파파와 마마는 사랑에 빠졌다고 한레치. 봄이 돼서 어른이 된 파파는 꽃을 꺾어와 마마에게 결혼하자고 한레치. 파파와 마마가 한가족이 되고 오네챠타치와 아타치가 태어난레치. 비록 파파는 항상 집에만 있어야 해서 같이 밖에 나갈 순 없었지만 아타치는 다른 오바상들이 부럽지 않았던레치. ]



엄지실장에게 말해주면 말도 안 된다고 팔짝 뛰었겠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엄지실장은 혜택을 받고 자랐다. 
본디부터 마라실장은 그 포악함 때문에 같은 동족들에게조차 배척받는 존재, 게다가 생식기인 마라가 항상 돌출될 수밖에 없다. 애호공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그런 불쾌한 몰골을 용인할 리 없다. 
그런 마라실장이 한 성체실장과 눈이 맞아 가정을 꾸리고도 무사히 지낼 수 있었던 건 마라가 온순해서 그런 게 아니라 엄지의 친실장이 관리실장들의 친혈육이었기 때문에 관리실장들이 눈감아주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에 잠겨있던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엄지실장의 말소리를 듣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주머니의 활성제 병을 꺼내보았으나 위석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엄지실장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카메라의 줌을 당겨보니 두 손을 꽉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잠시 후 엄지실장이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이를 악물고 있는 엄지실장의 두 눈에는 깃든 감정은 분노였다. 

[ 어제였던레치. 파파와 마마는 아타치타치에게 둘이 상의할 일이 있으니 나가서 놀다 오라고 말했던레치. 오네챠타치랑 즐겁게 놀고 집에 들어오니 내일은 가족끼리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고 파파가 말한레치. ]

[ 장녀 오네챠는 걱정했지만 파파는 닝겐이 거의 오지 않는 시간에 아무도 찾지 않는 장소만 걷다 올 거니 괜찮을 거라고 말한레치. 그리고 오늘 아침에 가족끼리 산책을 나선레치. 온 가족이 함께 산책하러 나가니 정말 기뻤던레치. 파파도 즐거워했던레치. ]

[ 아직도 모르겠는레치. 마마의 오네챠라는 오바상이 알려준 정보니 거짓말일 리가 없는레치. 그런데도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을 산책하던 아타치타치는 닝겐에게 발각된레치. 닝겐은 도망치라고 외치는 파파의 머리를 가지고 있던 막대기로 내려치더니 오네챠들도 막대기로 내리쳐 순식간에 얼룩으로 만들어버린레치. 마마가 아타치를 품에 안고 도망칠 때 닝겐은 움직이지 않는 파파를 막대기로 계속 내리치고 있었던레치. ]

[ 어쩌면 마마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알았는지도 몰랐던레치. 집으로 뛰어온 마마는 이제 공원에서는 살 수 없다며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는 빠르게 공원을 벗어나려고 했던레치. 아타치타치는 가족을 잃었는데도 슬퍼하지도 못하고 달려야만 했던레치. ]

[ 하지만 아타치타치의 도주는 실패한레치. 마마와 아타치는 집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오바상들에게 포위당한레치. 마마는 아타치를 먼저 보내고 시간을 끌려고 했는데 아타치가 숨어있는 또 다른 오바상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물거품이 된레치. ]

[ 오바상들에게 붙들려 있는 마마의 앞에 나이 든 오바상이 나타난레치. 아타치를 포기한다면 마마는 어떻게라도 살리겠다는 오바상의 말에 마마는 차라리 마마가 죽을 테니 아타치는 살려달라고 했던레치. 오바상은 마마의 말을 거절한레치. ]

꽉 쥔 엄지실장의 두 손은 더이상 하얘질 수 없을 만큼 창백했다. 감정 못이겨 거친 숨을 내뱉던 엄지실장은 다시 말했다.

[ 허리에 긴 막대기를 찬 몇몇 오바상들이 마마의 앞에 서서 뚜껑을 벗기니 뾰족한 침이 나온레치. 아타치가 등에 맞은 바로 그 침인레치. 공원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분충들을 처형할 때 쓰는 창이라고 했던레치. 아타치도 예전에 마마한테 들어서 알고 있던레치. ]

[ 오바상들이 일제히 창을 마마의 몸에 꽃아 넣은레치. 마마는 입을 꾹 다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은레치. 마마는 그 순간에도 아타치에게 눈으로 말하고 있던레치 ' 어떻게든 도망쳐서 오마에는 꼭 살아남아야 한다 ' 고 말하고 있던레치. ]

[ 시간이 조금 지나니 아타치를 보고 있던 마마가 갑자기 비명을 지른레치. 마마를 붙잡고 있던 다른 오바상들이 마마를 풀어줬는데도 제자리에서 데굴데굴 뒹굴며 쉴 새 없이 비명만 지른레치. 그리고.. 그리고... 아타치는 똑똑히 보고야 만레치. 마마의 몸에서 연기가 나는 거 같더니 마마는 순식간에 녹아내린레치. 마마가 있던 자리에 마마는 없고 마마의 냄새가 나는 물만이 남은레치. ]

[ 말은 안 했지만, 주위를 둘러싼 오바상들도 마마가 끔찍하게 죽은 걸 보고 놀랐는지 가만히 있던레치. 아타치는 그 틈을 타 도망치기 시작한레치. 파파도, 마마도, 오네챠들도 다 죽었지만 아타치는 살아야 했던레치. ]

[ 아까는 오바상한테 쉽게 붙잡혔는데 이번엔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고 오바상들만큼 빨리 달린레치. 아타치는 마마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만 집중했던레치. ] 

[ 도망치던 아타치는 등에 무언갈 맞고 놔 뒹굴었지만, 다시 일어나 달린레치. 아타치는 나쁜 오바상들을 따돌리는데 성공한레치. 그리고... 그.... ]

열심히 말하던 엄지실장은 갑자기 버벅거리더니 말을 멈췄다. 방금까지 분노를 표출하며 일그러졌던 얼굴은 이제 고통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힘없이 무릎 꿇은 엄지는 탁자 위로 얼굴을 처박으며 엎어지더니 좌우로 뒹굴기 시작했다.
남자는 엄지실장의 상태를 보고 짐작이 가는 바가 있어 활성제를 급히 확인하였다. 이번에는 남자의 예상대로 활성제 병 안의 위석으로부터 이전에는 없던 거품이 위로 올라오고 있었다. 

[ 레붸에엙 ]

괴로워하며 탁자 위를 뒹글던 엄지실장은 입으로 살덩이를 뱉어냈다. 탁자에 뚝 떨어진 살덩이에서 치이익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표면에 거품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주사로 주입한 약물에 억제되던 독성분이 마침내 활성화되었다는 증거였다.
죽음으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이다.

[ 레퍄퍄퍗! 그 나쁜 오바상들의 말이 맞았던레치! 쓸모 없는 아타치를 버리고 도망갔으면 마마라도 무사했던레치! ]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발작하던 엄지실장은 돌연 벌떡 일어나 광소를 터뜨렸다. 아무래도 독에 뇌가 손상입었는지도 몰랐다. 
활성제 병 안에서 거품이 격렬하게 발생하며 활성제가 눈에 띄는 속력으로 증발하고 있었다. 병 안의 위석은 찬란하게 빛을 내고 있었지만, 표면의 실금들은 오히려 서서히 갈라지고 있었다. 작은 생명체의 마지막이 도래하고 있었다.

미친듯이 발광하며 괴로워하던 엄지실장이 도로 잠잠해졌다. 핏대가 올라와 괴로워 보이던 얼굴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독은 위석의 힘을 빌린 기적으로 치료할 만큼 가볍지 않았다. 엄연히 죽기 직전의 회광반조에 가까울 것이다.
엄지실장 자신도 이제 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한결 차분한 신색으로 말을 꺼냈다.

[ 상냥한 파파와 오네챠타치는 닝겐이 죽여버린레치. 착한 마마는 마마의 자매들이라는 오바상들에게 붙잡혀 온몸이 녹은레치. ]

[ 이제 아타치도 곧 죽는레치. 가족들의 복수를 하고 싶은데 아타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레치. 아타치가 할 수 있는 건 아타치의 가족들을 죽인 원수를 미워하는 것 뿐인레치.]

[ 그렇지만 아타치 헷갈리는레치. 닝겐은 파파같이 더러운 실장석이 있는 걸 숨긴 오바상들의 잘못이라고 욕한레치. 오바상들은 닝겐들이 시킨 일이니 원망하지 말라면서 아타치타치를 붙잡아 죽이려고 했던레치. ] 

[ 알려주는레치 닝겐상. 아타치,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레치? ]

작은 엄지실장은 남자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러 떠났다. 파킨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부서진 위석은 붕괴하는 몸을 더는 지탱할 수 없었다. 비닐 위로 엎어진 엄지실장의 시체에서 거품이 일더니 빠르게 녹아내려 고기죽으로 변하였다. 




- ... 저희 제작진은 실마리를 얻기 위해 관리실장에게 접촉해 단서를 찾아봤습니다. -

-  인간이 관리하는 공원이어서 별다른 위험이 없는데도 왜 실장석의 수가 좀처럼 늘지 않는 거지? -

-  와타치타치는 자유를 좋아하는데스. 착한 실장석이건 분충이건 이건 똑같은데스. 애호파 닝겐들이 보호해주는 공원 자체는 낙원이지만 규칙을 따라야 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스. -

- 그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해 어른이 되지 못하고 죽는 자들도 제법 되는데스. 안타깝지만 공원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와타시타치간의 약속이니 어쩔 수 없는데스. -

-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많이 죽어 나가는데, 인간이 관리 안 하는 공원도 수가 늘면 늘지 현상 유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혹시 다른 사람들이 실장석을 사육실장으로 데려가는 경우가 많나? -

- 공원에 찾아오는 닝겐들은 상냥한데스. 그렇지만 실장석을 사육실장으로 데려가는 닝겐은 거의 없는데스. 집에서 기를 수 없다면서 미안해하는 닝겐들이 대다수인데스. -

- 그럼 더 말이 안 되는데. 공원의 실장석들이 죽어 나가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 아냐? 넌 관리하는 입장이니 알 거 같다만. -  

- 데히... 말하면 안되는데스. -

- 불안한 눈으로 주위를 살피며 입을 닫는 관리실장.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그 모습에 저희는 관리실장과 그 가족의 안전을 약속하며 안심시키고 나서야 어렵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 사실 공원의 실장석들이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닌데스. 닝겐들 앞에 나서도 좋다고 허락받지 못한 실장석들은 자격을 갖출 때까지 혹독하게 훈련시키는데스. 훈련에 통과하지 못한 실장석들은 이후에 본 적이 없는데스. -

- 그 외에도 공원을 관리하는 애호파 닝겐들의 눈을 거슬리는 실장석이 있다면 그 일가는 큰 곤욕을 치르거나 관리실장들에게 끌려가는데스. 와타시는 말단이라 그 이후엔 어떻게 되는지 아직 잘 모르겠는데스. -

- 단서를 얻은 저희 제작진은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인근에 잠복하며 때를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 -

" 후우... "

내일 방영될 내용을 점검 중이던 남자는 양팔을 위로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 끝이 보였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던 남자는 팔을 뻗어 머그잔에 든 커피를 마셨다.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마신 뒤 책상에 컵을 내려놓고 화면을 보던 남자는 무심코 책상에 놓은 머그잔을 보았다. 
엊그제 머그잔에 몸을 숨기고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신을 경계하던 엄지실장의 모습이 남자의 뇌리에 떠올랐다. 미처 대답해주지 못한 엄지실장의 마지막 질문도 함께. 

' 누구를 미워해야 되냐라... '

부친과 자매들의 목숨을 앗아간 인간과 모친의 목숨을 빼앗은 동족, 엄지실장에겐 어느 쪽이건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는 원수였을 것이다. 아직 어려 주관이 뚜렷하지 않아 원수들의 말에 흔들려 미워해야 할 대상도 모르고 떠난 게 엄지의 한이었다. 
그러나 길게 따지고 볼 필요도 없었다. 엄지가 미워해야 할 대상은 당연히 인간이었다. 애호공원을 유지하기 위한답시고 자신들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실장석이 나오면 분충의 낙인을 찍어 죽음으로 몰고 간 것도 인간이었고, 혹여나 직접 실장석을 처분했다가 세간의 평이 안 좋아져 후원이 줄어드는 경우를 피하고자 자신들의 말에 무조건으로 복종하도록 관리실장들을 훈련한 뒤, 그 괴뢰들을 이용하여 공원을 관리하면서도 외부에는 실장석들이 스스로 규칙을 정해 꾸려가는 자율공동체라고 포장하여 대중들의 찬사를 받은 것도 인간의 짓이었다. 

관리실장들이 친실장을 죽이고도 모자라 엄지실장까지 맹렬히 추격해서 기어코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냈다고는 하지만, 엄지에게야 친실장이 단 하나뿐인 마마이지 관리실장들의 처지에선 수많은 자매, 또는 수많은 자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겉보기엔 관리실장들에게만 일을 맡겨 설렁설렁 관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원이지만, 공원의 실장석의 수가 변동이 거의 없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으니 어설프게 친실장과 엄지실장을 숨겨주려고 했다간 관리실장들도 함께 죽었을 테니 그들에겐 애당초부터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 그들을 욕할 자격이 있을까? 
조작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기 위함이라고는 하나 굳이 쫓기던 희생자들이 독침을 맞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실장석이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여태까지 관리받는 공원의 들실장으로 살아왔다는 건 당장 솎아내야 할 분충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게다가 죽음의 문턱까지 몰렸다가 구원받은 실장석은 자신을 구원해준 남자에게 거짓 한점 없는 진실을 말할 테니 설득력은 충분할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는 약간의 수고를 더해서 제대로 된 애호공원으로 전입시켜준다면 비록 원해서 행하지는 않았으나 목숨을 걸고 애호공원의 어두운 이면을 몸소 보여준 실장석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상사의 질책까지 감내해야 할 이유가 없다던가, 한 마리의 실장석을 구하기 위하기엔 너무 큰 돈이라던가, 현실을 보아야 한다는 변명은 그만두자. 애호공원의 사람들이 후원금과 자신들의 만족감을 위해 실장석들을 이용했듯이 자신도 극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 희생된 실장석들을 이용했을 뿐이다. 
결국, 자신도 그들과 다를 건 없다.

희생자들의 한이 내일 공개된다면 엄지실장이 바라던 복수는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모습을 까맣게 몰랐던 사람들은 당연히 화를 낼 테고, 어느 정도 짐작하면서도 겉으로는 보기 좋으니 필요악이라며 좋게 넘어갔던 사람들도 대놓고 사실이 공개된다면 후원을 꺼리게 될 테니 국내 최대 규모의 애호공원이라는 타이틀은 내줘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애호공원을 관리하던 사람들을 처벌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애호공원이라는 타이틀을 놓고 보면 그들의 행위는 사기행위이며 잔혹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들을 공원의 들실장들을 가르치는 브리더라고 생각하면 상품을 내놓는 기준이 좀 엄격한 것뿐이었다. 기껏 해봤자 도의적인 책임을 물어 관리자의 자리에서 해임하는 게 고작일 것이다. 
결과가 어떻건 공원은 애호 단체가 계속 운영할 것이다.

안타깝지만 관리실장들은 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했지만, 겉으로 보기에 이 공원은 관리실장들에 의해 운영되는 자율공동체, 권력을 쥐고 휘두르다가 사고가 났으니 책임도 그들이 져야 했다. 
무엇보다도 분노한 사람들의 ' 정의로운 분노 ' 를 받아 줄 희생양이 필요했다.
지금의 관리실장을 죄다 솎아내고 새로운 관리실장을 다시 훈련하는 데는 시간과 돈이 들겠지만, 애호 단체의 사람들은 지금의 관리실장들을 잃는 것에 그다지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관리실장이야 또 교육하면 그만이니까.



씁쓸한 미소를 짓던 남자의 시선이 화면을 향했다. 막바지에 접어든 영상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 희생당한 실장석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그럴 리가 없는데스... 아까 그 말은 역시 와타시를 놀리려고 한 게 분명한데스. 닝겐상, 거짓말은 나쁜데스? ]

[ 와타치는 죽기 싫은테치! 반드시 살겠다고 마마랑 약속했던테치! 와타치는 죽어서는 안 되는테치!]

[ 와타치가 대체 뭘 잘못했던테치? 제멋대로 이유를 대고 와타치의 가족을 죽인 닝겐이야말로 분충인테치! ]

[ 닝겐상 제발 살려주는테스. 와타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테스. 와타시는 아직 자도 낳아보지 못한테스. ]

[ 결국, 이렇게 되고야 만데스. 자들... 마마도 지금 가는데스. ]

분할된 화면에서 제각기 목소리 내던 실장석들의 모습이 하나씩 페이드아웃 되어 사라졌다. 
처음부터 유일하게 검은 화면으로 남아있던 중앙 부분의 화면이 확대되더니 다른 분할화면들의 자리까지 차지하며 화면을 꽉 채웠다. 검은 장막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이틀 전에 만난 엄지실장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이미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인 엄지실장은 화면을 똑바로 바라보며 질문을 던졌다.

[ 아타치, 누구를 미워해야 하는레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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