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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충 버리기

 


사실 나는 원래 사람을 만날 때도, 동물을 키울 때도… 아니다 싶을 때는 빨리 마음이 식는 사람이다.  




"이딴 쓰레기는 똥닌겐 오마에나 먹는테챠!"

자실장 '그린' 이 녀석에 대한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바쁜 직장 탓에 평소 잘 돌봐주지도, 훈육도 제대로 못했더니 결국 이 집에 온지 불과 한달도 채 되지 않아 이런 지독한 분충이 되어버렸다. 기껏 내가 먹을 프라임급 스테이크의 한 귀퉁이를 잘라서 줬더니 그것을 던져버린 것이다.

"그렇군. 나에게만 맛있는 것인지도"

나는 묵묵히 내 접시 위의 스테이크를 다 먹은 뒤, 작은 방 장농 위에서 큼지막한, 접어놓은 골판지 상자 하나를 꺼내어 박스로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위에 신문 한 장을 깔고, 수조에서 녀석을 꺼내어 그 위에 올려놀았다.

"테에?"

갑작스런 나의 행동에 순간 무언가 잘못되어감을 느낀 것인지, 그린 녀석은 "무슨 일인테치이?" 하고 조금은 경계 어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너를 버릴 것이다"
"데에?"

그린의 눈은 터질 듯이 커졌고, 나의 말에 놀라 그만 빵콘까지 해버렸다. 

"내가 너를 데려올 때 말을 했을텐데. 분충이 되어버리면 곧바로 버린다고. 음식 갖고 투정 부리면 그것은 분충이다"
"아닌테치, 아, 아닌테치!"

사실 이 녀석은 근본까지 썩어버린 분충은 아니다. 애초에 죽어버린 친실장 곁을 지키며, 내가 던져준 빵 부스러기를 죽은 친실장의 입에 밀어넣던 녀석이 아니던가. 나같은 관찰파를 감동시킬 수 있을 정도의 실장석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실장석은 실장석. 실장푸드는 물론, 종종 내가 먹는 음식을 잘라서 조금씩 먹여주었더니 슬금슬금 입맛이 고급화 되더니 지난 주 이래로 실장푸드에는 입도 대지 않고 급기야 오늘은 스테이크 조각을 던져버리는 분충성을 드러내 보였다. 

나는 곧바로 녀석을 골판지 상자에 담아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버려진다', '다시 들실장이 된다', '사육실장으로서의 삶을 잃게 된다' 라는 공포가, 1월의 찬 바람이 되어 혹독하게 녀석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아닌테치 아닌테치! 착한 자가 되는테치! 미안한 테치! 잘못한 테치!"

이 정도면 정말 똑똑한 개체가 아닐 수 없다. 버려진다는 것의 공포를 확실하게 느끼고, 반성의 눈물까지 흘리고 있는 것이다. 색깔 있는 눈물이 그것을 증명했다. 아니 뭐, 원래 친실장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게 원 사육실장 출신이라서 '버려진다'는 것의 혹독함을 잘 아는 것이겠지만. 

"흠"
"정말 잘못한테치, 주인님, 다시는 안 그러는테치, 착한 자가 되는테치!"

1층까지 내려왔다. 확실히 날이 무척 차다. 아마 이대로 내놓았다가는 이 녀석은 반 나절 안으로 죽어버릴 것이다. 나는 확실하게 다짐을 받아두기로 했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마. 또다시 분충성을 드러낸다면, 그때는 정말로 널 버릴 것이다"
"알겠는테치, 잘못한테치"



그린은 확실히 똑똑한 놈이다. 훈육 한번 없었음에도 딱 한번, 치명적인 분충성을 드러내보이자마자 버려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는 다시 처음의, 아니 그 이상의 착한 자실장이 되었다.

나에게 어떻게든 잘 보이려 노력하는 모습이 좋았다. 이제는 싸구려 실장푸드를 줘도, 그것이 맛있다며 정신없이 먹곤 했다. 정신을 차린 것인지도. 


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딱 한달이었다. 하기사, 요즘 내가 귀엽다고 좀 과하게 잘해주기는 했다. 싸구려이긴 해도, 실장옷도 무려 두 벌이나 사다 입혔고, 콘페이토까지 주었으니까. 

자기도 모르게 분충성이 발현된 것이리라.

"닌겐상은 게으른테치! 고귀한 와타시를 위해 최소 2시간 이상은 놀아주는게 맞는테치!"

어제 그제, 조금 피곤해서 먼저 자버렸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나에게 감히 저런 말을 던진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라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할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이렇게 분충성이 발현되었다면 곧바로 분충성이 에스컬레이션 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어이 분충"
"데에?"

녀석은 '분충'이라는 단어에 곧바로 반응했다. 그리고 떨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은 것인지 깨달은 것이다. 

"데, 아, 아닌테치. 와타치는 분충이 아닌테치…"
"응, 알았어 분충"

나는 다시 골판지 상자를 꺼내어 녀석을 넣고 정말로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왔다. 여기서 한번 더 놀랐던 것은, 일전의 경험 탓인지 녀석이 투명한 거짓 눈물을 흘려가며 "착한 자가 되는테치!"하며 자비를 구걸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허어"

나는 기가 참을 느끼며 공원으로 향했다. 쌩쌩 지나다니는 차를 보며 녀석도 슬슬 본격적으로 '버려짐'을 인식한 것인지,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은 여유있던 모습에서 다시 맨 처음 버려질 뻔했을 때처럼 크게 떨기 시작했다.

"자, 잘못한테치 닌겐...주인상, 주인님"

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충은 분충일 따름이다. 성큼성큼 공원을 향했다. 공원 입구를 지나, 그 안의 숲을 보자 그린은 본격적으로 떨기 시작했다. 

"테에엥, 잘못한테치, 진짜 잘못한테치, 버리지 마는 테치, 진짜 착한 자가 되는테치"

공원을 이정도로 두려워하는 것은 녀석의 트라우마 탓일 것이다. 친실장과 함께 죽어 널부러져 있던 그린의 자매들. '원 사육실장'이라는 질투에 의한 집단린치. 그린이 살아남은 것은 일시적 가사 상태로 죽어 나자빠진 덕분. 이번에도 역시 나에게 버려진다면 자신도 과거의 친실장 꼴이 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했다.

"흐"

나는 녀석이 담긴 골판지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녀석의 목소리는 지독히도 간절해졌다. 

"잘못한테치, 정말로 잘못한테치! 주인님, 주인님"

그 소리가 너무 애절해서 슥 고개를 돌아보니, 놀랍게도 그린은 적록색의 피눈물을 넘어 아예 붉은 핏물을 흘리고 있었다. 공포가 지나쳐 위석에도 타격이 간 모양이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후우, 좋다. 용서해주마. 정말로 이번이 마지막이다"




어느새 성체실장이 된 그린. 녀석은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는 개념 실장이었다. 실장석을 키우는 다른 사람에게 종종 그린의 이야기를 하면 "에이, 그게 말이 되나요"하며 믿지 않을 정도의 개념 실장. 나는 기뻤다. 

딱 어제까지는.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이 문제였을까. 꽃가루가 눈에 들어간 모양인지 녀석은 임신을 했다. 내가 사산시키겠다는 말을 하자 녀석은 극력 반대하더니 "죽는 것은 오마에인데샤!" 하며 나에게 투분까지 했다. 처음으로.

하기사, 친실장에 대한 정이 그토록 깊었던 녀석인만큼, 반대로 자신의 자에 대한 정 역시 일반적인 개체 이상으로 강한 것이겠지. 그리고 나는 입을 열었다.

"넌 분충이다"

그래도 과연 자를 가진 어미의 입장이라 그런 것일까. 지난 번들과는 달리, 녀석은 공원에서의 삶을 마치 납득하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골판지 상자를 들고 녀석을 태워 공원으로 향했다.

내가 아무 말도 없이 공원 근처에 갔지만, 녀석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공원 입구를 지날 즈음에야 녀석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자, 잘못한데스"

역시 똑똑한 개체. 아무리 자에 대한 애정이 깊더라도, 결코 원 사육실장 출신의 실장석이 딸랑 골판지 하우스 하나만으로는 이 공원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자를 없애야 한다는 말에 순간 이성을 잃었지만, 어차피 이 공원에 임신한 채 버려지면 그 자들은 커녕 출산 전에 이미 다른 놈들에게 먹혀버릴 것이다. 녀석은 피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늦었다"

나의 무거운 말에 녀석은 "오로로롱, 오로로롱" 하며 후회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음 찡해지는 것도 한두번이지, 세번째는 그저 지겨울 따름이다.

골판지 하우스에 녀석을 내려놓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오로롱 오로롱 하는 그린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곧 뒤에서 탓탓탓탓 하며 녀석이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착한 자가 되는데스,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주인님을 거역하지 않는 자가 되는데슷!"

나는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그린의 목소리도 더욱 절박해졌다.

"오로로롱, 버리지 마는데스, 정말로 잘못한데스, 앞으로는, 정말로, 착한 자가, 되는, 데슷!"

뭐 이미 넌 객관적인 수순에서 착한 녀석이다. 단지 어미로서의 본능이 발광했을 따름이지. 나는 휘파람까지 불어가며 걸어간다. 뒤에서 탓탓탓탓 하며 실장석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데에에엥, 데에에엥, 잘못한데스 정말 잘못한데스, 자는 모두 죽여도 되는데스! 살려주는데스! 데에에엥, 주인님, 잘못한데스!"

하하. 참회의 피눈물을 흘리면서 간절히, 정말로 너무나 간절히 애타게 나를 찾는 저 외침은 어쩜 이리도 감미로울까. 

"데에에에엥, 잘못한테스, 정말로 잘못한데스, 진짜로 자들을 죽이는, 죽이는데스, 잘못한데스, 주인사마아아아"

공원 입구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미터 남짓한 거리를 녀석은 쉴새없이 뛰어왔다. 나는 혀를 차며 몸을 돌렸다.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린은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나의 안쓰러운 시선을 확인하고는 "미안한데슷"하며 그렇게 쓰러져버렸다.

임신한 몸으로 갑작스러운 달리기를 한데다, 버려진다는 공포의 압박이 한순간에 풀어지자 긴장이 풀려 쓰러진 것이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그린"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기절한 그린에게 저압 도돈파를 먹여 곧바로 뱃속의 자들을 사산시켰다. 적록의 핏물이 줄줄 흘렀고, 그린을 뜨신 물에 씻긴 후 그대로 재웠다. 다음 날이 되어 눈을 뜬 그린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아는 듯, 아무 말 없이, 조금은 침울한 느낌이었다.



"인사 안 하냐?"

출근을 하며 던진 말에 그린은 허둥지둥 일어나 "안녕히 다녀오시는데스, 집 잘 보고 있겠는데스" 하며 부들부들 떨며 인사를 한다. 후후. 이 절대적인 권력이 마음에 든다.

언제든지, 어느 순간이던지, 나에게 아주 작은, 요만큼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하면 나는 녀석을 곧바로 버려버릴 수 있다. 그것을 녀석도 알고, 때문에 그것을 두려워하며 절대적으로 나에게 복종한다.

그러면서도 조금은 지루해질 즈음마다 본능을 주체하지 못해 작은 반항을 하고, 나는 역시 그것에 대한 응징 퍼포먼스를 곧바로 하고, 녀석은 피눈물을 흘리며 참회한다. 

이 극도의 갑-을 관계가 나에게 안겨주는 절대적인 우월감. 그것이 내가 그린을 키우는 이유이다. 이번 주말에는 또 무언가 트집을 잡아서 또 한번의 '분충 버리기' 퍼포먼스를 시전할 계획이다.

후후.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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