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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실장의 겨울나기 1~6




겨울이 다 된 12월 초순의 어느 날.
 한무리의 실장석 가족이 덤불 사이에 은밀하게 숨겨진 골판지 하우스로 스며든다.
 벌써 하늘은 어두컴컴해진지 오래지만, 한마리의 친실장과 여섯마리의 자실장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친실장은 치맛자락에 도토리와 은행, 밤, 백동나무열매 등 여러 과실들을 한껏 담아 움직였고, 조그만 자실장들도 각자 들 수 있는 만큼의 열매나 신문지조각, 비닐조각, 낙엽뭉치 등을 들고 있다. 입가에는 연신 하얀 김이 뿜어져나오고, 옷 사이로 흐르는 더러운 땀 때문에 전신이 흠뻑 젖었지만 추위를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다 하나둘씩 골판지 하우스로 들어가고, 친실장이 주변을 한바퀴 돌며 마지막 탐색을 끝마친 후에 친실장도 집안으로 사라진다.

 [모두 수고한데스우~]

 [테에에 마마~ 오늘은 모두들 정말 열심히 일한테치!]

 [그런테치! 땀으로 흠뻑 젖은테치!]

 [테치테치! 마마 땀때문에 끈적끈적해진 테치...]

 [자 모두 옷을 벗는데스~ 마마가 핥짝핥짝하고 닦아주는 데스우~]

 [텟츄우우웅~~ 할짝할짝은 너무 좋은테츄우~]

 [마마~ 와타치부터 해주는테치이~]

 [아닌테치 나부터인테치~]

 서로 먼저 핥짝핥짝을 하겠다고 나서는 자실장들을 장녀부터 순서대로 구석구석 핥아준 다음 헌 신문지조각으로 꼼꼼히 닦아준다. 씻는 것 만큼이야 못하겠지만, 자들도 한결 개운해진 얼굴이다. 마지막 6녀의 몸을 다 닦았을 무렵에는 몇몇 자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친실장은 그런 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오늘은 마마가 너희들에게 매우 고마운데스. 오늘로 월동준비는 모두 잘 끝난데스우. 이제 우리는 충분히 겨울을 날 수 있는데스우우~]


 자들은 감격에 겨운듯 서로 돌아보며 테치테치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지난 여름때부터 지금까지 겨울을 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이다.

 [장녀는 가장 오네챠답게 열심히 일해준데스. 장녀가 가을부터 냄새나는 똥열매를 열심히 주워다 모은 것은 정말 훌륭한데스]

 [테에에... 마마...]

 장녀는 실장석들도 냄새가 난다고 기피하는 은행나무 열매를 일일이 다 주워서 과육을 벗겨내고, 차가운 물에다 씻어 몇십번이나 집까지 날랐다. 뭉툭한 손이 다 벗겨지고, 푸르딩딩하게 부어오르면서까지 열심히 일해준 덕에 겨울을 날 수 있는 훌륭한 보존식량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장녀가 주운 은행은 잘 마른채로 검은봉지에 넣어져 골판지 상자 구석에 잘 쌓여있었다.

 [차녀는 동생들을 잘 돌봐준데스. 차녀는 여러 번 동생들을 구해냈고 장녀를 도운데스]

 [테.... 아닌 테치....]

 배짱 좋고 싸움도 잘 하는 차녀는 주로 동생들을 돌보고, 주변을 살피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동생들이나 장녀는 물론이고, 다른 들실장들의 자실장까지도 싸움으로는 져본 적이 없는 차녀였다.
 그런 당돌한 차녀 덕에 동생들과 장녀는 몇 번이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장녀를 따라다니며 열심히 도토리와 은행을 주운 3녀.
 마마를 따라다니며 음식물 쓰레기를 주로 옮긴 4녀.
 물떠오는 담당으로 수고해준 5녀.
 집을 지키고 똥그릇을 비우는 6녀까지 친실장은 하나하나 칭찬을 해주었다.

 불행한 사고를 당한 7녀와 8녀가 떠올랐지만, 친실장은 마음속으로 삼켰다.
 슬픈 일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이제 겨울만 나면 어엿한 성체실장이 되어 독립할 자들이 6명이나 남은 것이다.
 이는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보통의 실장석은 봄부터 겨울전까지 4마리나 지키면 잘 지켰다고 하고, 대부분 2~3마리밖에 남지 않는데, 친실장의 가족은 6마리나 지켜낸 것이다.


 [이제 우리 가족은 걱정이 없는데스. 추워서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날이 생겨도 식량이 충분해서 괜찮은데스.
  똥열매, 도토리만해도 한 봉지나 있는데스. 다른 딱딱한 열매도 한 봉지 더 있는데스.
  그리고도 말린 잔반도 있고, 말려 놓은 잡초도 아주 많이 있는데스.

  낙엽도 충분히 쌓인데스. 신문지도 많이 깐 데스우.
  수건도 3개나 구해놓은데스. 이제 우리는 겨울을 지낼 수 있는데스.]


 친실장은 감격스러운 눈으로 골판지 상자 안을 둘러본다.
 벽면에 줄줄이 늘어선 검은봉지를 보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반대편에는 바삭바삭 잘 마른 낙엽이 자실장들 허리만큼 쌓여있고, 군데군데 잘게 짜른 신문지조각도 있다. 
 그리고 가장 위에는 역시 바짝 말린 수건이 놓여있다. 군데군데 구멍이 있지만, 친실장과 자실장 전부가 덮기에는 충분하다.

 식량은 조금 부족한 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몇번 정도 밖에 나가서 구하면 괜찮다.
 그리고 자들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몰래 숨겨둔 말린 구더기 고기도 다섯마리나 있다. 이건 자들에게 보일 수 없어 땅속에 파묻어뒀지만, 그 위치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자, 오늘은 모두 피곤할테니 일찍 자는데스.]

 [테에... 마마... 우리들 아직 밥을 먹지 않은테치이...]

 [오늘 저녁은 없는데스! 이제 겨울이니 밥을 아껴야하는데스. 저녁을 못 먹는다고 잠을 못자는건 아닌데스.]

 [테... 테에에??]

 자들이 웅성웅성 테치테치거리면서 서로 돌아본다.
 저녁이 없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는 눈이다.
 차녀가 한발 앞으로 나와서 묻는다.

 [마, 마마! 와타치랑 다른 자매들 모두 열심히 일해 배가 많이많이 고픈테치. 조금이라도 먹는 테치.]

 [안 되는 데슷!]

 [테에에.. 마마.. 오늘 너무 열심히 일해 피곤한테치.. 배도 고프고 힘든테치...]

 [잘 말한데스 장녀. 모두 일해 피곤한데스우. 그러니 잠 드는데도 문제가 없는 데스웅~]

 [텟?!]

 [자 모두 눕는데스. 그리고 당연히 그럴리 없겠지만, 몰래 식량을 탐하는 분충은 우리 가족이 아닌데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친실장은 눕는다.
 식량이 있는 쪽으로 등을 바짝 붙이고 잔다.
 이 상태로는 누구도 친실장을 건드리지 않고는 식량에 손도 대지 못한다.

 자들도 나지막하게 테치테치거리면서 할 수 없다는듯 각자의 자리에 눕고 낙엽 사이에 파묻힌다.
 그리고 서로 껴안은 다음 수건을 끌어당겨 머리 위를 덮는다.

 그래도 여전히 추운 밤이다.





 다음날 새벽.
 자들은 일찍부터 눈을 떴다.
 평소라면 조금이라도 더 자려고 수건 속에 파묻히던 자들이었지만, 어제 오후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기에 배가 너무 고파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같이 새벽부터 뜬눈으로 지내면서 마마의 기상소리와 함께 바로 일어났다.

 친실장도 그런 자들의 생각을 꿰뚫어 본듯이 푸짐한 아침식사를 준비한다.
 보통 아침식사는 저녁의 그것보다 훨씬 푸짐하다.
 저녁을 먹이지 않는다고 해서 잠을 못 자는 건 아니지만, 아침을 먹이지 않으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 오늘 아침은 맛있는 야채와 식빵껍질인데스!]

 [테에에엣! 식빵인 테츄우우웅~]

 [마마! 와타치 매우 매우 배고픈테치 어서 아마아마하고픈 테치잉!]

 [와타치도! 와타치도 배고픈테치!]

 [데기... 그럼 어서 자리에 앉고 식기를 꺼내는데스. 이렇게 보채기만 하면 아무도 못먹는 데스]


 친실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구랄 것도 없이 방구석에서 각자의 식기를 꺼낸다.
 식기라고 해봐야 플라스틱 깨진 조각, 어디선가 주운 병뚜껑, 찢어진 골판지 조각과 비닐조각, 넓적한 돌 따위가 전부였지만.
 번개처럼 각자의 앞에 식기를 놓은 자들에게 친실장은 음식을 나눠준다.

 식빵껍질은 한마리당 반 개, 야채찌꺼기는 당근껍질과 우엉껍질 등이 뒤섞인 것을 한줌씩 놓아준다.
 평소보다 약간 적은 양이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이고 그것보다 배가 너무나 고팠기에 자들은 아무런 불만도 가지지 않고 우걱우걱 먹어간다. 보통 때라면 테치테치 테찌테찌 서로 떠들며 먹었을테지만, 오늘은 아무런 말 없이 허겁지겁 먹기 바쁘다. 늘 음식을 깨작거려 친실장의 걱정을 사게했던 5녀도 아주 잘 먹는다. 친실장은 그런 자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않는다.


 [오늘부터는 지금 새벽만 나가는데스우~ 이후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은 뎃승~]

 좋은 일은 맛있는 아침뿐만이 아니었다.
 친실장은 아침부터 해가 떨어질때까지 쉴새없이 해야 되던 일마저 하지 않아도 좋다고 했다.
 자들은 언뜻 듣기에는 너무 좋은 일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처음 일어나는 일에 불안감도 느끼고 있었다.

 [테찌이이.. 마마... 일 안해도 좋은테찌...?]

 [그런 데스. 이젠 추위가 심해지는데스. 잘못하면 얼어죽는데스우. 이제부턴 닌겐이 거의 없는 지금만 나가고 햇님이 나오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데스. 그리고 쭈욱 마마와 함께 지내는데스]

 [테... 테.... 그럼 마마도 일을 나가지 않는 테치이?!]

 [그런 데스우~]

 [테엥! 텡! 너무너무 좋은테치이이이!!]

 [최고인 테찌! 마마 최고인 테찌이이이이!]

 [와타치 너무 기뻐 눈물이 나는 테찌! 마마!]


 자들은 친실장에게 와-하고 달려 들어 안긴다.
 늘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하느라 자들과는 전혀 놀 시간이 없었던 마마.
 마마가 없을 때는 위험하기 때문에 집밖에도 제대로 나가지 못했고, 마마가 돌아와도 너무 지쳐 있어 자들은 아주 잠깐 놀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항상 마마와 함께 있을 수 있다. 마마가 있으면 실컷 놀아도 전혀 문제가 없다. 사랑하는 마마와 함께 있을 수 있다. 자들은 진정으로 기뻐했다.


 [이제부터 똥그릇을 버리는 일과 물을 뜨는 일은 햇님이 나오기 전에 다 마쳐야하는데스우. 알겠는데스?]

 [네! 테치!]


 자들은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큰 소리로 대답한다.



 [테에에에.... 추, 추운 테챠아아아....]

 [테츄우우우... ㅁ, 모, 몸이 떨리는... 테츄우...]

 [정말 추운테찌... 이게 겨울인 테찌?]


 기세 좋게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자실장들이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몹시 차가워진 새벽 날씨가 그들을 감싼다.
 가슴에 뛰던 흥분도 차갑게 식어가고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실장옷을 한껏 여며보지만, 얇은 실장옷으로는 차가운 공기와 세찬 바람을 조금도 막아내지 못한다.


 [빨리 똥그릇을 버리고 오는테치... 너무 추워 위험한 테치..]

 장녀가 서둘러 5녀와 6녀를 재촉한다.
 오늘부터 자들이 음식을 구하러 나가는 일은 없기에 집안일을 나누어 맡기로 했다.
 원래는 6녀 혼자만이 똥그릇을 몇 번이고 나눠서 버리고 오지만, 오늘은 셋이 힘을 합쳐 한 번에 버리기로 했다.
 똥그릇은 작은 플라스틱 그릇인데, 깊이가 있어 하루 정도는 6자매들의 똥을 담기에 충분하다. 마마는 따로 밖에서 볼일을 보기 때문에 이 그릇은 쓰지 않는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플라스틱 그릇을 기울여 전용의 종이컵에 담고, 6녀가 홀로 이것을 집 뒷쪽 덤불 안에 숨겨진 구멍에 붓고 와야하지만, 오늘은 셋이 동시에 플라스틱 그릇을 들고 구멍으로 간다.
 무겁지만 셋이라면 못 들 정도는 아니다. 다만 보조를 확실히 맞추지 않으면 그야말로 똥벼락을 맞기 때문에 움직임이 조심스럽다.

 [자아 이제 다 온 테치. 살살 붓는 테치이....]

 주륵 주르르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초록색 분뇨가 구멍 안으로 사라져 간다.
 한참을 조심스럽게 붓고, 가장자리를 6녀가 나뭇잎으로 닦는다. 그리고 구멍 안을 살펴본다.

 [테에에... 벌써 반 넘게 찬 테찌이...]


 구멍은 친실장이 오랫동안에 걸쳐 판 것이다.
 배설물을 숨기는 것은 동물의 본능이지만, 실장석은 그 냄새가 지독하기 짝이 없어 인간들이 매우 싫어한다. 때문에 들실장들은 누구나 배설물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기려 한다. 오랫동안 대를 거듭하면서 유전자에 새겨진 일종의 천형인 것이다.
 친실장도 이를 알았기에 먹고 자는 시간을 쪼개 오랫동안 구멍을 파왔다. 구멍 안에 똥을 넣고 가득 차면 메워버린다. 이 방법으로 배설물 냄새를 많이 잡을 순 있었지만, 문제는 힘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또 다시 새로운 구멍을 팔 생각을 하니 장녀와 5녀, 6녀 모두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한편 친실장은 오늘도 비닐봉투를 들고 쓰레기장으로 향한다.
 식량을 저장해뒀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상식량이고, 구할 수 있을 때는 구해야한다.
 하지만 이젠 지금처럼 무리는 하지 않는다.
 미리 생각해둔 몇 군데만 둘러보고, 양이 적든 아예 없든 간에 돌아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던 지난 철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모험을 할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어느 정도 기반이 안정된 때에는 무리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어찌됐든 친실장도 벌써 3번째 겨울을 맞는 베테랑인 것이다.


 아직 해도 제대로 뜨지 않아 어슴푸레한 어두움이 남아있는 주택가를 친실장 혼자 묵묵히 가로지른다.
 다른 실장석들은 물론이고, 인간들조차 눈을 뜨지 않은 이런 이른 시간부터 일한 성실함이 지금까지 친실장을 살린 일등공신이었다. 
 친실장은 자신의 마마가 마마의 마마의 마마때부터 배웠다는 이 성실함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다른 것과 달리 이 성실함은 항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상당히 자주 알맞은 보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하루를 살면 많은 것이 주어진다. 식량, 더 나은 잠자리, 더 안전한 생활, 드물지만 가끔 비추는 행복... 이런 많은 것들을 친실장은 직접 느껴왔고, 그럴수록 더욱더 마마로부터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했다. 물론 자들에게도 끊임없이 가르치고 숙지시켰다.


 [뎃슨~~♪]

 친실장은 쓰레기장에 도착하자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렸다.
 흰색 비닐봉투도 붉은색 비닐봉투도 아주 많이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붉은색 비닐봉투 안에는 아주 맛있는 음식들이 들어있다. 흰색 비닐봉투에는 닌겐들이 쓰다 버린 여러 물건들이 들어있다. 물론 가끔 맛난 것들이 흰색 봉투에서 나올 때도 있다.

 일단 친실장은 재빨리 주변을 돌아본다.
 닌겐은 물론이고, 고양이씨도 굉장히 위험하다. 몇 번이고 주변을 힐끗거리며 돌아본 결과 아무도 없다.
 친실장은 재빨리 쓰레기장으로 들어가서 빨간 봉투에 달려든다.


 [데, 데에.... 정말 많은 데스우우우~~]


 첫번째 붉은 봉투는 시덥잖은 야채조각 몇 개가 고작이었지만, 두번째 붉은 봉투를 열자 생선조각이 쏟아져 나온다.
 아직 흰색 살덩이가 꽤 많이 붙어있다. 코를 대고 킁카킁카 맡아보면 아무래도 불로 구운 것 같다. 친실장은 불에 구운 고기 맛을 머릿 속에서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데-하는 멍청한 소리를 내뱉고 말았다.

 [정신차리는데스.. 지금은 먹으면 안되는데스...]

 친실장은 재빨리 생선 조각을 살점부터 뼈까지 비닐봉투에 쑤셔 넣는다.
 생선 조각 밑으로는 약간 쿰쿰한 냄새가 나긴하지만 밥도 있다. 물론 한톨도 빠짐없이 봉지에 담는다.

 세번째 봉투에서는 빵조각이 많이 나왔다.
 달콤폭신한 빵은 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거기다가 울긋불긋한 고기조각도 보인다.
 친실장은 허둥대면서 고기조각을 꺼내 유심히 살펴보다 한입 입에 넣는다.

 [데기! 펫! 펫! 이건 못 먹는데스....]

 처음 꺼낼때부터 너무 시커먼 모양이라 주저했지만, 맛을 보니 확실하다. 
 이건 너무 썩어서 먹을 수 없다.
 아직도 입에서 시큼하고 저릿한 맛이 남는다. 어린 자들이 먹으면 분명히 배탈 날 것이다.

 [데에... 아쉬운데스...]

 친실장은 내버린 고기에 미련이 남는듯 쳐다본다.


 한참 후 서서히 햇빛이 내려오는 것을 느낀 친실장은 더이상의 쓰레기봉투 여는 것을 그만둔다.
 너무 욕심 내지 말 것.
 이것 역시 마마에게서 배운 내용이다.
 분수를 모르고, 자신의 한계를 모르고 욕심만 내면 반드시 죽음을 맞는다.
 역시 자신의 마마에서 배웠고,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기도 했다.
 아직 봉투는 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지만, 친실장은 미련없이 짐을 꾸린다.

 음식 봉투를 다 챙기자 친실장은 근처의 흰봉투에서 꺼낸 종이조각을 양손에 들고 땅바닥의 흘린 찌꺼기들을 한데 모아나간다.
 나름대로의 정리를 하는 것이다.
 쓰레기장은 닌겐상이 쓰는 곳이다.
 여기를 너무 더럽게하면 찢겨죽는다.
 지금은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냥 가도 될 것 같지만, 이런 것이 몇 번이고 쌓이면 결국 죽게 되는 것이다.
 친실장 역시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지금까지 음식을 얻은 시간만큼 공을 들여서 쓰레기장을 정리한다.

 뭉툭한 손과 변변찮은 청소도구라 잘 되지 않지만, 그래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리 모으고 저리 치운다.
 음식물 찌꺼기를 말끔히 모으고 그걸 다시 붉은 봉투에 넣는다. 썼던 종이도 다시 다 봉투에 담고, 마지막으로 뭉툭한 손을 이리저리 놀려 봉투의 매듭을 지으려고 애쓴다.
 인간의 매듭이 아닌 그저 교차시켜놓은 정도지만, 친실장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쓰레기장을 한 번 쭈욱 돌아본 다음, 친실장은 음식 봉투를 들고 다시 귀가한다.




 아침이 밝아오고 주변에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닌겐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가족들이 있는 곳은 주택가의 공원 중에서도 가장 외진 구석이지만, 닌겐들이 다니는 소음에서 완전히 격리된 곳은 아니다.
 부르르릉하며 굉음을 내고 지나가는 괴물, 가족보다 훨씬 많은 수의 닌겐들이 한 번에 달려가는 모습 등을 보고 있으며 저절로 식은땀이 나고, 두려운 감정이 샘솟는다.
 보통 때였으면 각자의 일을 하다가 조금의 낌새라도 나타나면 바로 주변의 그늘이나 풀숲에 숨어 조마조마하게 버텼지만 오늘은 다르다.

 모두 아침에 얼마 안 되는 각자의 일을 끝마치고, 일찌감치 다시 자리에 누워 느긋함을 보내고 있다.
 비록 밖에 나가 놀지는 못하지만, 한창 열심히, 그리고 힘들게 일할 시간에 포근한 낙엽과 따끈한 수건에 둘러싸여 자매들과 테찌테찌하며 놀 수 있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기쁨이다.
 거기다 오늘은 마마도 함께 있다.
 비가 오면 이렇게 자들이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경우는 몇 번 있었으나, 그 때에도 대부분 마마는 일을 하러 나간다.
 그럴 때면 일은 하지 않아 몸은 편하지만, 마마가 없다는 두려움과 밖에 나간 마마에 대한 걱정 때문에 편히 쉬지도 못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둘 다 아니다.
 자매들도 모두 있고, 마마도 여기에 함께 있는 것이다.


 [테엥~ 마마! 와타치는 매우매우 행복한테찌!]

 [그런테치! 와타치도테치! 마마도 있고 모두 함께 쉬니 정말 좋은테치!]

 [낙엽 포근포근해서 좋은테찌! 수건도 따뜻하고 아와아와한테찌! 배도 부른 테찌이~]

 [그런테치! 우리들은 행복한 테치! 이게 전부 마마 덕분인 테치!]

 자들은 모두 낙엽 속에서 얼굴만 내밀고 테찌테찌 떠든다.
 하나같이 즐거워 견딜 수 없는 표정이다.
 친실장도 정말 오랜만에 가져보는 휴식과 행복에 절로 미소가 걸린다.

 그렇게 가족들은 모두 정말 오랜만의 늦잠을 잤다.


 [테... 잔뜩 잔 테치!]

 [장녀쨩 벌써 일어난 데스웅? 조금 더 자도 되는 데스]

 [아닌 테치. 가득 찬 테치! 테에... 마마 뭐하는 테치?]

 [잠깐 밖에 나갔다 오는 데스. 동생쨩들을 잘 돌보고 있는데스]

 [텟? 마마 오늘은 나가지 않는 다고 한 테치!]

 [잠깐 둘러보고 오는 데스. 금방 갔다 올테니 동생들을 잘 돌봐주는데스]


 친실장은 갑작스러운 외출 소식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장녀의 앞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한다.
 장녀는 '오늘은 안 나간다고 한 테츄...'라며 볼을 잔뜩 부풀린채 투덜거렸지만 마마의 마음도 이해했기에 떼를 쓰지 않았다.

 마마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골판지 문을 열고 나가고, 장녀는 골판지 문 앞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동생들은 낙엽 속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테에.. 테치... 하며 고롱고롱 잠에 빠져 있다.


 친실장이 밖에 나온 것은 쓸만한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평생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해온 친실장으로서는 그냥 쉬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다.
 이렇게 뭐라도 일을 찾아 하는 것이 더 속 편하고, 결국에는 더 남는 일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오늘처럼 특별한 목적없이. 즉, 식량확보라던가 꼭 필요한 물건을 구하는게 아니라 그저 반쯤 구경삼아 나오는 일은 위험도 별로 없다. 굳이 모험을 할 필요도 없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냥 돌아오면 되기 때문이다. 자들을 집에 남겨두는게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장녀와 차녀는 다른 자매들과 달리 봄에 낳은 자식이라 거의 중실장까지 자랐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중실장 둘이라면 성체실장 하나쯤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데에... 별로 눈에 띄는게 없는 데스...]


 친실장은 공원 쓰레기장과 자판기, 벤치들이 모인 곳을 둘러봤지만 별로 눈에 띄는 것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곧 본격적인 겨울이다.
 모든 실장석들이 월동을 위해 필사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인 만큼 낙엽 하나, 신문지 조각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는다. 먹을 수 있는 게 떨어져있다면 한바탕 싸움도 감수해야하는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친실장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구할 필요는 없었기에 여유있게 공원을 마치 산책하듯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각오를 했다고는 하더라도 하나도 못 가져가서는 마마의 체면이 서지 않는다.


 (이럴때는... 조금 위험하지만 밖으로 나가보는데스)

 친실장은 공원의 덤불이 많이 쌓인 곳을 조심스럽게 헤쳐 나간다.
 덤불이 너무 조밀하게 있어 이곳은 실장석도 살지 못한다. 
 그런 수풀을 힘겹게 헤쳐나가 친실장이 도착한 곳은 작은 개구멍이었다.

 친실장은 한참동안 개구멍에서 버둥거린 끝에 간신히 구멍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살찐 배와 짧은 다리 때문에 쉽사리 못 나온 탓에 옷은 흙투성이가 되어 있다.

  
 [데~ 잔뜩 더러워진데수...]


 친실장은 짧은 팔로 옷의 먼지를 털어가며 바깥쪽 쓰레기장으로 가본다.
 벌써 점심이 다 되가는 지금 가봐야 음식 같은 건 아무 것도 없겠지만, 닌겐들은 시간대에 관계 없이 여러 물건을 버리기도 하니 어쩌면 괜찮은 행운이 걸릴 수도 있다. 친실장은 그걸 기대하고 가보는 것이다.


 [데....?]

 별 기대없이 타박타박 걸음을 옮기던 친실장의 눈이 둥그렇게 떠졌다.
 쓰레기장 한 구석에 마련된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재활용품 보관소에 그것이 있었다.


 [데.... 이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붙잡은 것은 골판지 상자였다.
 골판지를 움켜쥐자마자 친실장은 주변을 홱홱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

 그녀는 누가 보지도 않는데 부들부들 떨면서 재활용품 보관소 앞에 쌓인 엄청난 수의 골판지를 하나하나 골라냈다.


 [데에!!!]

 친실장이 눈을 크게 뜨고 탄성을 내뱉았다.


 [아주 단단한 골판지인데스! 굉장한 데수우!!!]


 그녀의 손에 들린 것은 아주 귀한 골판지였다. 
 인간이라면 그것을 이삿짐포장용상자라고 했을 그것은, 친실장이 마마로부터, 다른 들실장에게서 들어온 최고급 세레브 골판지로 불리는 것임을 알았다. 이런 골판지는 아주 튼튼해서 비나 눈에도 젖지 않고, 바람에도 끄떡 없는 것이다. 이걸로 지은 집은 다른 골판지 집보다 열배나 더 가치있는 것이다.


 [데데데!! 데데데데데!! 데스우우우우!!!]

 친실장은 연일 괴성을 지르며 골판지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두 눈을 끔뻑끔뻑거리면서, 몇번이나 재질을 쓸어보고, 접어보고, 들어본다.


 [데스우우우우!! 세레브 골판지인데스우우우!!!!]


***************

 친실장은 다른 실장석의 눈을 피해 덤불과 작은 가시나무숲, 진흙밭과 같은 한적한 곳만을 골라 집에 도착했다.
 마음같아서는 전부 가져오고 싶었지만, 무게와 부피때문에 3개를 가져온 것이 고작이었다. 더 욕심이 나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친실장은 마마의 가르침을 생각하며 꾹 참았다. 이 3개만 해도 지금의 생활보다 훨씬훨씬 윤택하게 만드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친실장은 겨우겨우 집에 도착한 다음 큰소리로 자들을 부른다.

 [모두 나오는데스우! 마마가 굉장한 것을 찾은 데스우우!!]



 친실장과 자실장이 모두 힘을 합친 결과, 밤이 되기 전에 새로운 집이 완성되었다.
 이전의 낡은 갈색 골판지 하우스가 아닌 미끈하고 단단한 흰색의 골판지가 그 거대한 위용을 뽐내며 높이 솟구쳐 있었다. 이전의 골판지 하우스는 친실장의 코까지 오는 높이여서 들어갈때는 허리를 한껏 숙였어야했지만, 새로 지은 집은 친실장이 허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들어가도 전혀 문제없을만큼 높았다. 그리고 예전의 낡은 골판지 하우스를 새로 지은 흰색 하우스 안에 잘 넣어두었다. 즉, 집 안에 집을 둔 것이다.

 바닥에도 단단한 흰색 골판지를 깔았다. 이제 땅밑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냉기와 눅눅한 습기와도 안녕이다. 
 마지막으로 남은 흰색 골판지는 지붕위에다 올렸다.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지만, 돌조각을 모아 발판을 만들고, 몸무게가 가벼운 5녀와 6녀를 지붕위에 올려 말그대로 목숨을 건 공사 끝에 겨우 완성시킬 수 있었다. 이전에는 비만 오면 행여나 바닥이 젖을까 집앞에다 물길을 파고, 지붕이 젖을까 온갖 비닐과 낙엽, 나뭇잎 등등을 올려놨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다.

 친실장과 자들은 한참동안이나 새로 지은 집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울었다.
 서로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

 [테에! 정말 따뜻한테치! 바람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 테칫!]

 [테츄우~ 하나도 안 추운 테츙~★ 잠이 솔솔오는 테치이이이~]

 [멋진테찌! 정말 멋진테찌!]


 자들은 모두 이리저리 집안을 뛰어다니며 누워보고 만져보고 타박타박 뛰어본다.
 집은 이제 이전에 비해 굉장히 거대해져서 하얀색 단단한 골판지 안에 작고 낡은 이전의 갈색 골판지 집이 있다. 덕분에 바람을 이중으로 막아줘서 하나도 춥지 않다. 거기다 예전의 집에 깔아둔 낙엽에 파묻히면 더더욱 따뜻하다. 예전의 집은 친실장이 눕고 중실장인 장녀와 차녀가 누우면 나머지 네자매는 좁은 틈에 끼어자거나 마마의 배위에서 한두마리가 자야했지만, 이제 그럴 일도 없다. 공놀이도 집안에서 할 수 있을 정도다. 지금도 5녀와 6녀는 찌그러진 탁구공을 가지고 테찌테찌하며 놀고 있다. 먼지가 풀썩풀썩 일어나지만 친실장은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장녀는 바닥을 꾹꾹 눌러보며 놀랍다는듯 테치테치거리다가 친실장에게 묻는다.

 [마마 바닥이 하나도 안 차가운테치!]

 [그런데스우. 바닥에 골판지를 깔면 춥지 않게 되는 데스. 비가 와도 젖지 않는데스]

 [테에...]

 [하지만 바닥에 깔 만큼의 골판지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데스우. 마마는 너희들이 모두 착하게 있어 얻을 수 있게 된 뎃슨~]


 친실장은 장녀의 머리를 토닥토닥 두들겨준다.
 장녀는 얼굴이 빨개져 아닌테치..하고 중얼거렸지만, 마마의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젠 어느덧 중실장이 되어 이번 겨울만 나가면 독립하게될 장녀와 차녀.
 둘을 보는 친실장의 눈에는 그윽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봄에 낳은 열마리의 자식들 중에 살아남은 건 겨우 두마리. 자를 여덟 마리나 잃게 된 것은 처음 겨울을 넘겨본 친실장이 충분히 기운을 회복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자를 낳은 탓이 컸다. 굶주림과 추위에 지칠대로 지쳤으면서도 자식을 가지고 싶다는 욕심에 금방 핀 봄꽃으로 수분을 했고, 결국 낳은 것은 네 마리의 자실장과 두 마리의 엄지실장, 네 마리의 구더기쨩이었다. 출산 직후 자를 노린 독라실장에게 자실장 하나를 잃었고, 여름을 맞기 전에 철모르는 자실장 하나가 함부로 집 밖에 나갔다가 고양이에게 물려가버렸다. 무더운 여름 태양빛에 구더기쨩 두마리가 타죽었으며 나머지 두마리는 비가 많이 내리는 날 떠내려가버렸다. 나머지 엄지실장 두마리와 친실장 하나는 갑자기 나타난 무서운 닌겐때문에 골판지 하우스와 함께 곤죽이 되어버렸다. 이후 친실장은 겨우 남은 두 자매만 데리고, 닌겐이 들어오지 않는 공원의 외진 곳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풀숲에 숨은 것이다. 그리고 여름이 끝나기 전에 낳은 것이 지금의 3녀부터 6녀 4마리였다.

 집을 다 짓고나자 새로운 집에 감격하여 테테테테- 거리며 뛰어다니고 뒹굴고 하는 동생들과는 달리 장녀와 차녀는 아까 전에 집을 만들던 과정을 생각해보고, 집의 구조 이곳저곳을 만져보고 머릿 속에 깊이 새겨두느라 여념이 없었다. 특히 차녀는 자식들 중 가장 힘이 세서 오늘 집을 짓는데 친실장과 함께 가장 큰 공헌을 했다. 골판지로 새로운 집을 짓고, 이전의 집을 옮기고, 지붕을 올리는 일을 거의 둘이서 다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차녀는 아까 전에 이미 깊이 곯아떨어져 있었다. 장녀는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떻게 짓는지, 재료는 어디서 얻는지 마마에게 꼼꼼히 물었다. 친실장은 그런 장녀를 대견하다는듯 쓰다듬으며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지식을 모두 가르쳐주었다. 

 그러는 사이 3녀와 4녀, 5녀, 6녀도 실컷 놀았는지 하나둘씩 낙엽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이내 잠이 들어버렸다.


 친실장은 마지막으로 바깥을 둘러보며 정리를 하고, 집으로 들어와 나뭇가지 두 개를 엇갈려 놓아 문단속을 했다. 안쪽 갈색 하우스의 문도 단단히 잠긴 것을 확인하고는 자들이 깰 새라 살금살금 걸어 새근새근 자고 있는 자실장들에게로 간다.


 [테... 테....]

 [테츄........]

 자들은 숨소리를 내며 귀엽게 자고 있다.
 고로롱고로롱 코를 고는 자도 있다. 아마 4녀일 것이다.
 친실장은 조심조심 낙엽에 파묻힌 자들을 부드럽게 껴안으면서 자리에 눕는다.


 [테.. 마마 지금 오신 테치?]

 [...깨버린 데스? 얼른 다시 자는데스]

 [......아직 안 잔 테치]

 [.........]

 [마마 궁금한 것이 있는테치]

 [무엇인데스 장녀?]

 [...겨울이 지나면 와타치는 이제 집에서 나가는테치.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테치. ...그런데 조금 무서운테치]

 [데에......장녀쨩...]

 [...와타치도 두려운테치]


 아까 잠들었던 차녀도 일어나 대화에 끼어든다.
 확실히 이제 둘은 이번 겨울을 넘기면 친실장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가정을 꾸리게 된다.
 1년 넘게 살면서 이제 중실장이 되어 봄이 되면 반드시 성체실장으로 자랄테지만,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은 늘 두려운 것이다.
 친실장은 그런 장녀와 차녀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속삭인다.


 [그럴 것인데스. 마마도 그랬던데스우~ 하지만 너희들은 이제 마마보다 더욱 훌륭해진 데스. 와타시보다 더 많이 아는데스. 그러니 너희들은 반드시 잘 해낼 것인데스우. 마마도 했으니 장녀쨩과 차녀쨩도 분명히 해낼 수 있는데스.]

 [[........]]

 [분명 힘든 일도 있을 것인데스. 하지만 마마에게서, 마마의 마마에게서 배운 것들을 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는데스. 너희들이 하는 걸 멀리 있지만, 마마도, 그리고 마마의 마마도 모두 지켜봐주는데스]

 [[....알겠는테치...]]


 친실장은 눈에 뿌연 습기가 차오르는 걸 느끼며 장녀와 차녀의 앞이마를 토닥여준다.


 [.....언젠가 너희들의 자에게도 이 얘기를 들려줬으면 하는데스]



 *********


 다음날 아침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부슬부슬 떨리고, 이빨이 딱딱 부딪혔지만, 오늘은 아침에도 후끈후끈 땀이 날 정도다.
 항상 눈은 일찍 뜨지만, 추워서 일어나기 싫어 꾸물거렸던 5녀가 달라진 공기에 기쁨을 느끼며 낙엽 사이로 머리를 쏙 내밀었다. 자신을 껴안은 채로 테츄~ 테츄~ 거리며 잠을 자고 있는 4녀 언니를 간신히 떼어놓고, 큰언니의 배를 살짝 타고 넘는다.

 [테찟!]

 멋지게 바닥에 착지한 5녀는 조심스럽게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열어본다.


 [데에... 벌써 일어난데스우? 조금 더 자도 되는 데스]


 벌써 친실장은 일어나서 바깥쪽 하우스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닌테찌. 가득 잔 테찌]


 그리고 5녀는 친실장이 식량 주머니에서 도토리를 꺼내는 것을 돕는다.
 친실장이 식기에 도토리와 마른풀, 조그만 벌레 몇 마리를 놓으면 5녀가 그걸 들고 바닥에 적당한 간격으로 옮겨놓는다.
 아침 식사가 맛있는 도토리쨩이란 것도 좋았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5녀는 오늘 밥을 따뜻한 집안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예전에는 집이 좁아서 문을 반쯤 열어놓고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먹었던 것이다.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작았을 때는 모두 집안에서 둘러 앉아 먹을 수 있었지만, 어른이 다 된 두 언니때문에 둘러앉기가 버거웠기 때문이었다.


 [테츙~★ 마마 오늘 밥은 따뜻한데서 먹을 수 있어 더 좋은테찌!]


 식기를 옮기며 5녀는 싱글벙글한다.


 잠시 뒤 장녀가 부스스 일어나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대장격인 차녀가 잠에서 깨고 동생들을 깨운다. 잠꾸러기인 막내 6녀쨩은 또 엉덩이를 맞은 모양이다.
 눈물이 고인 얼굴로 엉덩이를 부여잡고 테에 테-하며 밖으로 느릿느릿 나온다.


 [[[[[[잘 먹는테치! 마마 감사한테치!]]]]]]

 여섯 자의 합창이 끝나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모두가 둘러앉아 먹는 아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특히 더이상 춥지 않은 곳에서 밥을 먹을 수 있어 모두가 기뻐하고 있다. 이전에는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미안해했기 때문에 누구도 그 일을 입에 담지 않았던 것이다.

 [이 벌레쨩은 아주 맛있는 테치!]

 [도토리쨩은 언제 먹어도 최고인테찌! 약간 쓰지만 달콤달콤테에찌~]


 떠들썩거리며 밥을 먹는 광경에 친실장도 흐뭇한 얼굴이다.
 이전까지는 덜덜 떨면서 밥을 먹느라 말을 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밖에서 무언가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곳에 상자가 있다니...]


 무서운 닌겐의 목소리였다.



 [마마!! 무슨 일인테치?]

 [무슨 큰 소리가 들린 테쮸...]

 [테텟... 텟.. 오네챠... 이 소리는...]


 3녀부터 6녀까지는 우렁우렁한 소리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던 장녀와 차녀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장녀는 자기도 모르는 새에 조금 빵콘을 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런 것은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친실장 역시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자들을 조용히 시켰다. 


 [모두... 모두... 모두 조용히하는데스. 그리고 장녀와 차녀. 마마가 말하면 그때처럼 도망가는데스....]


 장녀는 피눈물을 그렁그렁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차녀 역시 비장한 얼굴로 동생들을 껴안았다.
 그걸 본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 밖을 내다봤다.



 [이런 데 상자가 있다니 횡재했구나 오늘은.]


 역시 밖에 있는 건 거대한 닌겐이었다.
 닌겐은 왠지 기분좋은 얼굴과 목소리로 와타치와 가족의 소중한 지붕을 걷어내고 있었다.
 어제 하루종일 걸려 올려 놓은 지붕을 닌겐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번쩍 들더니 이내 차곡차곡 접어버렸다.

 갑작스러운 광경에 친실장도 데- 하며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눈으로는 보고 있지만 머리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보통이라면 도망을 가거나 아니면 닌겐에게 항의를 하거나 하겠지만, 아침 나절에, 갑작스럽게, 그것도 근 반 년 이상이나 닌겐에게 들키지 않아 안전한 곳이라 생각했던 이곳에서 닌겐을 만나게 되자 친실장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닌겐이 어제 친실장 가족이 필사적으로 올린 지붕을 가볍게 들고 접어버리는 걸 보면 더더욱.



 닌겐.
 정확히는 백발이 덥수부룩하게 자랐고, 얼굴에는 주름살과 검버섯이 잔뜩 피고 진 노인은 오늘 기분이 좋았다.
 하루종일 허탕을 치는 줄 알았는데, 방금 좋은 종이상자를 주웠기 때문이다. 이런 이삿짐 포장 상자는 무게도 많이 나가서 값도 꽤 받을 수 있다. 그런 게 서너개는 되는 것 같으니 오늘은 적어도 한끼는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남자는 미소를 머금은채 상자를 손수레에 포갠 다음, 이번에는 상자를 들어올리려고 했다.


 [응?]

 가벼운 빈 박스 인줄 알았는데 묵직해서 들리지 않는다.
 안에 뭐가 있나 싶어 문을 활짝 여는 순간.


 [데겍!]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던 친실장이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친실장은 너무도 놀라 푸데데데덱!! 하는 소리와 함께 잔뜩 빵콘을 해버렸다. 초록색 분비물이 팬티를 빵빵하게 만들고, 그러고도 기세를 잃지 않아 친실장의 짧은 다리를 타고 흘러내린다.

 놀란 것은 노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뭔가 툭 튀어나오더니 괴성을 지르자 노인은 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났다.
 그 짧은 걸음 속에 눈앞에 보이는 물건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생각했다. 고양이? 개? 호, 혹시 시체인가?


 [뭐야 실장석이구나. 이런 벌레가 놀래키다니...]

 노인은 몇 걸음 떨어진 뒤에서 초록색 물체가 꿈틀거리는 걸 보고 숨을 내쉬었다.
 잔뜩 긴장한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 주변을 둘러봤지만, 다행히 아무도 없다.
 어차피 이런 수풀 깊숙히는 자신처럼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누구라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큰일난데스! 큰일난데스! 인간이 집을 가져가는 데스우우우!!!!)

 노인이 문을 열어 바닥에 세차게 머리를 부딪힌 덕분에 친실장도 정신을 차렸다.
 한참동안이나 돌아가지 않던 머리가 그 충격으로 처리를 시작하여 친실장도 사태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집을 가져간다.

 집은 실장석의 제 1 재산이다.
 귀여운 자식만큼이나. 아니 어떤 때는 그 자식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집이었다.
 비정한 말이지만 자식은 언제라도 놓을 수 있지만, 집은 아니다.
 하나의 골판지 하우스를 지으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지 짐작조차할 수 없다. 목숨을 거는 각오가 아니면, 아니 목숨을 걸어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경우도 비일비재한 것이 바로 골판지 하우스였다.

 음식이야 닌겐의 눈을 피해 쓰레기를 뒤지거나, 몰래 열매를 주워먹거나, 꽃이나 풀을 뜯어먹을 수 있다.
 덮고 자는 물건이야 수건이 최고지만, 정 없으면 땅에 떨어진 낙엽이나 나무껍질을 모아 나름대로 푸근하게 잘 수 있다.
 그러나 집은 반드시 닌겐에게서 얻어야 하는 것이다. 대부분 버린 것을 주워오는 것이지만, 이상하게도 다른 물건들과 달리 이 골판지는 닌겐들도 잘 내주지 않는다. 훔치다가 발각되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분명히 닌겐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에 놓여진 것을 들고와도 빼앗기기 일쑤이다. 빼앗기고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고, 어떤 때는 목숨까지 내놓을 때도 있다. 

 그런데 그런 집을 지금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데, 데, 데, 데스우우웃~!!! 니, 닌겐상 그만두는 데스우우우!!!!]


 친실장은 타박타박 뛰어가서 노인의 바지춤을 붙잡았다.
 그리고 피눈물을 흘리면서 필사적으로 외쳤다.


 [집은 가져가지 말아주시는데스우!! 제발 부탁드리는 데스우! 이제 곧 겨울인데스! 자들이, 자들이 얼어죽어버리는 데스우!! 제발 우리들을 살려주시는 데스우!!]

 [닌겐상들에게 한번도 분충짓을 하지 않은 데스!! 닌겐상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모두 노력한데스!! 정말인데스! 이곳에서 우리들은 조용히 살던데스!!!!]

 [집만은 남겨주시는데스우! 떠나라면 바로 떠나는데스! 잘못한데스! 잘못한데스! 와타시가 잘못한데스! 제발 집은 놓아주는데수우우우웃!!!!!]


 하지만 노인은 그런 친실장을 가볍게 털어내버리고 상자를 기울인다.
 친실장은 노인의 가벼운 발길질에도 붕 날아가 몇바퀴나 데직 데쿳하며 데굴데굴 굴러간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자들과 온갖 살림살이, 식량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것을 보고는 다시 피눈물을 흘리며 달려간다.


 [테챠아아아!! 집이 기울어지는테챠아아아앗!!!!]

 [마마!! 마마!! 마마는 어디간 테치이이이!!!!!]

 [테찌! 테찌! 집이 뒤집어지는 테찌! 무서운테찌! 살려주는테찌! 마마아아아!!!]


 바깥쪽 하우스에 있던 식량 비닐봉투묶음부터 시작해서 수건, 플라스틱 그릇, 여러 길이의 나뭇가지, 비닐조각, 끈조각, 투명한 물컵, 커다란 물통, 끝부분이 날카로운 돌조각 등등이 우수수 떨어진다. 그리고 그 위에 안쪽 하우스에 숨죽이며 엎드려있던 장녀와 차녀, 3녀, 4녀, 5녀, 6녀가 투두둑 떨어진다.
 마지막으로는 차곡차곡 쌓여있던 낙엽이 우수수 하늘을 수놓으면 나폴거리며 바닥으로 내려온다.


 [테에... 테... 집이 날아가는테찌...]

 맨위에 배를 드러내고 테- 하고 뻗은 3녀가 힘없이 중얼거린다.
 자신과 마마와 오네챠와 동생쨩들의 집이었던 골판지 상자는 하늘에서 차곡차곡 접히더니 다시 눈앞에서 사라진다.
 무슨 일이 일어난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3녀의 눈에서는 그냥 사라진 것과 같은 광경이었다.


 [무슨 짓은데스우! 심한데스!! 심한데스!! 와타시와 자들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은데스!!! 그런데 왜 집을 부수는데스? 왜 집을 가져가는데스!!!]


 친실장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아니라 이제 검은색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무나 갑작스런 사태와 급격한 스트레스, 거대한 충격으로 위석에 부담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검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친실장은 다시금 절규한다.


 [데갸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아!! 어째서인데스!! 왜 우리들의 집을 가져가는데스! 왜 너희 닌겐들은 우리들을 괴롭히는 데스우우우!!!]


 이젠 친실장도 이성을 거의 잃고 두 주먹을 굳게 쥐고 노인의 다리를 후려친다.
 혼신의 힘을 다해 후려친다. 얼마나 세게 치는지 단 세 방만에 친실장의 양쪽 손은 붉게 물든다. 피부가 찢어질 정도로 전력을 다해서 치는 것이다.

 하지만 노인은 그러거나말거나 가장 아래쪽에 깔려있던 골판지 상자까지 잘 접어 손수레에 실었다.
 노인이 대꾸를 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친실장의 말을 무시한 것이 아니었다.
 노인은 그저 오랜 세월을 살았던 탓에 귀가 거의 들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실장석들이 사는 집이었구나... 하지만 나 먹고 살기도 힘드니 어쩔 수 없지.]


 친실장의 말을 듣지 못한 노인이었지만, 안에서 튀어나온 자그마한 새끼들이나 수건과 같은 가재도구를 보고 집임을 짐작했다.
 그리고 두번째 상자 안에서 튀어나온 낡은 갈색 골판지 상자를 두고 한참이나 고민했다.

 집이란걸 알았으니 다 가져가는 건 조금 그런가...
 어차피 이렇게 낡고 작은 골판지는 몇푼 돈 되지도 않고...





 [그래도 가져가야지.]


 노인은 고민을 끝내고 갈색 골판지상자마저 접어 손수레에 실었다.


 마지막 남은 골판지마저 가져가는 닌겐을 보고 친실장은 토닥거리는 두 손을 멈추고 말았다.
 벌어진 입에서 침과 함께 데- 하는 멍청한 소리만 나온다.
 너무나 큰 충격에 친실장의 위석이 부숴지지 않도록 뇌가 사고를 정지시켜 버린 것이다. 
 친실장은 그저 바람에 흔들흔들거리면서 서있을 뿐이었다.


 노인은 그러거나말거나 골판지들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노끈으로 손수레에 꼼꼼히 묶어 매었다.
 그리고 혹시 뭐 더 떨어진 것이 없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다 뭔가 묵직한게 들어있는 비닐봉투들을 발견했다.


 [이건 뭐냐... 어디.... 아! 도토리를 이렇게나 많이...]

 호기심에 비닐봉투를 열어본 노인은 약한 탄성을 질렀다.
 크기도 그리 작지 않은 비닐봉투 안에 도토리가 꽉꽉 눌러담아져 있었다.
 대충 봐도 몇 킬로그램은 나갈 것 같다.
 거기다가 도토리의 모자부분과 뾰족한 끝부분까지 새심하게 다듬어져 있는 것도 대단히 놀라웠다.
 이대로라면 한 번 물에 씻는 것 만으로도 바로 부숴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허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구나. 그럼 이것도 가져갈까...]


 노인은 싱글벙글하며 비닐봉투를 들고 일어섰다.
 친실장은 그것도 알아채지 못한 채 데- 데- 거리며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그만두는 테치이이이이!!!]

 그때 풀숲에 숨어있던 자들 사이에서 차녀가 뛰쳐나왔다.
 집에서 굴러떨어진 후, 장녀의 인도로 근처 풀숲에 모두 대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팬티를 한껏 부풀린 채로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집이 부숴지는 광경과 마마의 통곡을 보고 듣고 있었다.
 장녀와 차녀는 자신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래도 동생들을 껴안으며 뛰쳐나가려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테챠아아아!!! 와타치의 와타치타치의 집을 훔쳐가는 테챠아아아아!!!]

 [용서할 수 없는텟챠! 마마와 함께 저 똥닌겐을 찢어죽이는텟치이이이!!!]

 [오네챠 놔주는테치! 와타치가 혼내주는테치! 모두가 덤비면 이길 수 있는 테치이!!!]


 하지만 장녀와 차녀는 그런 동생들을 온몸으로 막았다.


 [안되는테치! 안되는테치! 마마도 이길 수 없는테치! 우리들이 가면 시체만 늘어나는테치! 반드시 죽는테치!]

 [가면 안되는 테치! 닌겐은 무슨 수를 써도 이길 수 없는테치! 마마의 말을 기억하는테치!! 지금은 모두 숨어있는테치!]


 한 번 인간의 무서움을 경험한 장녀와 차녀는 동생들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 것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중실장인 장녀와 차녀가 힘을 합친 것보다도 강한 마마마저 닌겐의 가벼운 발놀림에 하늘을 붕- 날아가버렸다.
 다행히 마마가 죽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만약 닌겐이, 예전의 닌겐이 한 것처럼 마마를 밟아버린다면... 하는 무서운 생각을 떠올리자 부르르 대변이 새어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난 여름 자신들의 동생들, 3녀의 언니들이 그렇게 짓밟혀 죽은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장녀와 차녀는 자신들도 피눈물을 흘리며 비통한 신음을 씹어삼키며 필사적으로 동생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닌겐이 식량을 훔쳐가는 것을 보고 끝이 나버렸다.


 동글동글한 동글이가 가득 들어있는 거대한 식량주머니를 닌겐이 가져간다.
 가족들의 소중한 먹이. 겨울을 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를 가져가버리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 테틱!하며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뛰쳐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동생들을 막아서던 차녀였지만,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바로 괴성을 지르며 닌겐에게 달려간다.


 [놓는테치! 놓는테치! 그것만은 안되는 테체아아아아!!!!!]


 차녀는 노인의 앞에 우뚝 서서 뭉툭한 손으로 비닐봉투를 가리키며 소리지른다.


 [당장 내려놓는테치! 그건 우리 가족들의 밥인테치! 목숨인 테체아!!! 내려놓는 테치! 안 그러면 본때를 보여주는 테체아아!!!]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내려놓으라고 한 테챠아-----!!!]


 몇 번의 고성에도 노인은 꿈쩍하지 않은 채 비닐봉투가 손수레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끈을 묶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경고했던테치! 이제 끝인 테치! 네 녀석을 넘어뜨려주는테치!! 넘어뜨려 밟아주는테치! 엄지쨩과 동생쨩을 죽인 것처럼 네놈을 밟아죽여주는 테치!! 살려달라고 빌어도 절대 용서해주지 않는 테챠아아아!!!!]


 그리고 차녀는 노인의 왼쪽 다리에 붙어 그 다리를 들어올리려 힘을 준다.
 차녀가 비장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는 이 기술은 지금까지 여러 번이나 차녀에게 승리를 가져다 줬다.
 어릴때부터 힘이 세고, 싸움에 일가견이 있던 차녀는 자신을 비롯한 동족들이 다리가 짧아 균형을 무너뜨리면 쉽게 넘어진다는 것을 간파했다. 그리고 몇날 밤의 연구와 동생들을 이용한 시험끝에 다리 하나를 들어버리면 상대를 쉽게 넘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일단 한 번 넘어뜨리고 나면 그 뒤는 걷어차든 밟든 원하는대로 요리할 수 있는 것이다. 차녀는 이 기술 하나로 동생들을 휘어잡은 것은 물론이고, 길에서 마주친 다른 들실장과의 다툼에서도 항상 승리해왔다. 이번에도 이 건방진 똥닌겐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테츄아! 츄와!!]


 우렁찬 기합과 함께 차녀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얼굴이 새빨개지며 꽉 다문 이빨이 부들부들 떨린다.


 [츄와!!! 츄와와와와-------!!!!!!]


 이빨이 꽈직꽈직 갈리며 피가 팟하고 튀어나온다.
 이마의 핏대는 너무 불거져서 곧 터질 것 같다.


 차녀의 기합덕분일까 붙잡고 있던 발이 들렸다.
 발은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는가 하더니 바로 차녀의 배를 세게 걷어차버렸다.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차녀는 입과 엉덩이에서 초록색 물을 내뿜으며 달려왔던 방향으로 슁! 하고 날아갔다.
 그리고 땅바닥에 몇바퀴나 구르다가 겨우 멈췄다.
 멈춘 상태에서 몇 번이나 움찔움찔하더니 다시 한 번 입과 엉덩이에서 물을, 이번에는 빨간 물을 콸콸 쏟아냈다.

 [테.....? 테.............?]



 [테에에에에엥!!!! 차녀오네챠아아아-----!!!]

 [차녀쨔아아아앙-----!!!!]


 풀숲의 자매들이 쓰러진 차녀에게 달려든다.
 그러나 차녀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부자연스럽게 꺾여있다.
 차녀는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테- 테에- 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과 코에서 피와 똥을 게워내고 있었다.
 실장석의 신체구조를 모르는 어린 자매들이 보기에도 심각하게 보인다.
 너무나 참담한 차녀의 몸을 보게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쁘바박 성대히 빵콘을 한다.


 [너무하는데스!!! 너무하는데스우!!!! 어째서 차녀를 죽이는데스?! 왜 우리들을 괴롭히는데스? 우리들을 괴롭혀 즐겁냐 데스----!!!!]


 차녀의 비명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친실장이었다.
 양쪽 눈에서 검은 눈물을 흘리며 노인에게 항의하고 있었다.
 부들거리는 양 손과 창백하다 못해 하얀색으로 탈색한 얼굴은 지금 친실장이 받은 충격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너무 세게 찼나. 미안하구나. 그냥 쫓으려고 했는데...]


 노인은 차녀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멀리 쫓으려는 생각에 에비- 하며 툭 찼는데, 생각보다 너무 쉽게 맞아서, 그리고 너무 쉽게 날아가버려서 자신도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미처럼 보이는 것이 와서 항의를 하니 뭔가 씁쓸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이랑 먹을 걸 빼앗아갔다고 화내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또 모으면 되지 않니?]


 노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친실장에게 말했다.


 [가끔 보니 사람들이 와서 먹이도 주더구나. 그걸 먹으면 되기도 하고...]


 [아! 여기에 또 모아놨구나!]


 친실장에게 말을 하면서도 주위를 돌아보던 노인이 또 다른 비닐봉투를 찾아냈다.
 안을 열어보니 아까 전보다는 조금 작았지만, 안에는 도토리와 개암, 백편나무 열매, 야생밤, 은행 등이 알차게 들어있었다.


 [그럼 이것도 실례할까...]


 노인은 탐욕스럽게 그것도 놓치지 않고 손수레에 실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피눈물과 피거품을 흘리며 달려드는 친실장의 머리를 한 번 쓱쓱 쓰다듬어주었다.


 [오늘은 내가 신세를 졌구나. 고맙다.]


 그리고 손수레를 이끌고 왔던 방향으로 사라졌다.


 [놔두는데스! 놔두는데스----!!!!!  돌려주는 데스우우우웃---------!!!!!!!]


 친실장은 노인을 타박타박 전속력으로 쫓아가다 결국 넘어져 뒹군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미 닌겐은 사라져 있다.

 폐허 앞에서 가족들은 한참동안이나 통곡했다.
 친실장은 검은 눈물과 피눈물을 번갈아가며 흘리다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차녀는 쓰러진 풀숲에서 몸만 움찔움찔하며 피섞인 똥을 입과 춍구멍으로 토해낼 뿐이었다.
 3녀부터 막내 6녀까지는 둘 사이를 갈팡질팡 뛰어다니며 울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장녀만이 그나마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어지러진 세간살이를 주워모으고 있었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먹을게 전부 사라진테치... 겨우 이것밖에 안 남은 테치.....]

 장녀의 손에 들린 것은 바짝 마른 메뚜기와 풍뎅이, 바퀴벌레 대여섯마리 밖에 없었다.
 마지막에 봤을 때는 비누곽 상자에 가득 들어있었는데, 난리통에 비누곽 상자는 땅에 떨어져 나뒹굴었고, 때마침 불어온 바람에 벌레쨩들의 대부분이 날아가버린 것이다.
 장녀는 울먹울먹하면서 손에 든 벌레들을 다시 비누곽 상자에 넣었다. 원래의 반의 반도 안 남은 양을 보니 다시 눈물이 차오른다.
 절망감보다도 억울함이 가슴에 사무친다.

 [테에에엥.... 테에엥... 와타치타치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테치.. 그런데 왜 닌겐들은 매번 우리를 괴롭히는테치... 닌겐들이 집과 먹을걸 다 가져가버린 테치....]

 너무나 억울했다.
 새벽부터 밤까지 엑엑거리면서 들판을 뒤져봤자 모을 수 있는 식량은 적다.
 그나마 주운 식량도 그날 하루를 먹고 나면 남는 건 거의 없다. 하루에 도토리 한 알, 메뚜기 한 마리라도 저장하면 용한 것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장녀와 마마와 동생들은, 무서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서 하루에 두끼나 한끼만 먹어가면서까지 먹이를 저축해왔다. 배가 너무 고파 골판지 벽에 등을 기댄채 서로 멍한 눈빛으로 바라만 보던 때도 많았다. 떠들거나 장난을 치면 배가 고프니 눈만 뜬 채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다. 가끔 그럴 때면 '왜 세상에 태어난테치...'하며 눈물이 나올때도 많았지만, 마마의 말대로 자신의 자와 가족을 갖기 위해서 참아왔다. 이번 겨울만 지나면 자신도 마마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모두가 버틴 것이다. 하지만 이젠 모든 게 소용없게 되어버렸다.


 잠시 뒤 겨우 정신을 차린 친실장이 장녀 곁으로 기어왔다.
 그리고 장녀가 겨우 모아놓은 한줌도 안되는 식량과 엉망이 된 수건과 낙엽들을 보고 다시 한 번 왈칵 눈물을 쏟았다.
 장녀를 껴안고 한바탕 운 친실장은 깨질듯한 위석을 겨우 부여잡고 자들에게 말했다.


 [모두 잘 듣는데스... 이제 집이 없어진 데스. 마마가 다시 집을 구해보는 데스. 그동안 너희들은 땅을 파는데스]

 [테에? 땅 테치? 땅을 왜 파는테치?]

 [마마가 집을 구한다면 좋겠지만, 최악의 경우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스. 그때는 땅을 파고 들어가는데스. 그러면... 바람은 피하는데스...]


 땅을 판다는 대목에서 친실장은 다시 적록색의 눈물을 흘렸다.
 집도 구하지 못한 실장석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
 토굴생활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땅에 굴을 파고 사는 실장석은 더러 있었다.
 대개 그런 개체는 독라들이었다.
 부자 실장석들은 노예로 부리는 독라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런 노예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토굴이었다. 노예들이니 골판지 집은 상상도 할 수 없고, 그저 자기 몸만 겨우 들어갈 정도로 땅만 판 다음 낡은 종이조각이나 찢어진 골판지 한두장으로 위만 가린 것이었다. 요행스럽게 바람은 어찌저찌 막을 수 있지만, 보온이 안 되고, 특히 겨울철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기에 얼어죽는 일이 다반사였다. 들어가서 눕기만해도 온몸이 지저분한 흙투성이가 되고, 동상에 걸리기도 십상이었으므로 정상적인 실장석들은 절대 생각지도 않는 것이 바로 토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토굴을 파고 살아야만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친실장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녀부터 6녀까지 찬찬히 얼굴을 바라보고 앞머리를 쓰다듬어줬다.


 [그럼 마마는 다녀오는데스. 만약 밤이 되도 오지 않으면... 장녀가 동생쨩들을 토굴에서 재우는데스. 그리고... 아침이 밝으면... 아닌 데스. 기다리고 있으면 마마가 반드시 오는데스]


 '아침이 밝으면 어디론가 떠나는데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친실장은 간신히 삼켰다.
 자신이 돌아오면 된다.
 굳이 불길한 말을 해서 자들을 당황시킬 이유가 없다.


 [장녀쨩. 동생들을 잘 돌보는데스. 차녀쨩에게 수건을 덮어주는데스.]

 [알겠는테치. 마마... 걱정마는테치. 마마가 조심하시는 테체...]

 [걱정마는 데스우--]



 *********

 친실장이 향한 곳은 그저께 골판지를 구한 쓰레기장이었다.
 그때에 봤을 때는 골판지가 정말 많았다. 그중에서 고르고 골라 가장 좋은 것을 가지고 왔지만, 내심 몇 장 더 가져올까 싶었을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지금은 시간이 조금 지났지만, 조금이라도 남아있을지 모른다.
 이전의 그런 좋은 골판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자신과 자들이 몸만 누일 수 있는 크기면 된다. 아니, 자신은 안 들어가도 되니까 자들만 들어갈 수 있으면 된다.

 방금 전의 큰 충격으로 위석에 금이 간 몸이지만, 초조함과 조바심때문에 친실장의 몸은 과하게 서두르고 있었다.
 스스로도 위석의 변화를 잘 느끼고 있어서 무리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떠올린 친실장이었지만, 골판지를 구해야한다는 흥분감에 점점 발걸음이 빨리지고 있었다.
 타박타박거리면서 짧은 발을 놀리며 쓰레기장으로 달려간다.
 데헥! 데헥!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지고, 속이 울렁거렸지만, 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숨이 너무 차서 데페에.. 데페... 하며 잠깐 걸어보지만, '혹시 걷는 사이에 누가 골판지를 가져갈 수도 있는 데스!'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뛰기 시작한다.


 그렇게 단숨에 달려간 쓰레기장에는...



 골판지가....


 .....


 .....


 있었다!!



 [데에에에!!!! 데스우우우우!!!! 데스우우우-----!!!]


 친실장은 눈앞의 거대한 골판지 산을 보고 덩싱덩실 춤을 추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고, 얼굴에는 검은물과 적록색 체액이 덕지덕지 껴있었지만, 지금만큼은 웃고 있었다.
 몇 번이나 빙글빙글 돌며 골판지 산을 향해 눈을 반짝반짝 빛낸다.


 [데데데!!!  데수!!! 데스우우우!!!!!]


 싱글벙글 웃음을 지으며 친실장은 골판지 산으로 가까이 다가간다.
 어떤 것을 가져갈까. 아까 전만해도 조그만 상자면 감지덕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지금 다시 이렇게 큰 산을 보고나니 욕심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일단 골판지를 한 장... 아니 두 장 가져가자. 이전처럼 이중으로 된 집은 못 짓더라도 적어도 바닥은 골판지를 깔고 살자. 갈색 골판지는 물을 잘 먹으니까 왠만하면 어제의 골판지처럼 표면이 미끈미끈한 것을 찾아보자. 크기는... 그래 크기는 욕심내지 말자. 이전 것도 너무 큰 걸 욕심내느라 닌겐에게 들킨 것일 것이다. 그러니 나와 자들만 들어갈 정도로 작은 걸 고르자.


 [데---- 이 정도면 괜찮은 데스우....]


 친실장은 골판지 산에서 조금 옆으로 튀어나온 골판지에 손을 내민다.
 표면이 미끈미끈하고 딱딱하다. 어제 그것 만큼은 아니지만, 이만하면 충분한 상급 골판지다.
 친실장은 마음을 정하고 옆으로 삐져나온 그 골판지를 힘껏 잡아당긴다.


 [데스웃-!!! 데... 데겍?]


 힘을 애매하게 준 덕분에 골판지는 빠지지 않고, 오히려 위에 쌓여진 다른 골판지들의 균형을 잃게 만든다.
 아랫쪽의 균형이 무너지자, 골판지 산은 도미노처럼 우수수 옆으로 무너진다.
 그 광경에 친실장은 너무나 당황해 데- 하며 서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실장이 서있는 반대편쪽으로 무너져서 친실장은 하나도 다치지 않았다.


 [아니 이게 무슨 일... 앗! 네놈이 한 짓이구나!]


 골판지 산이 무너지면서 앞쪽에 서있던 닌겐의 모습이 보였다.
 앞쪽에서 골판지를 모아 쌓고 있던 터라 친실장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폐지를 모으고 있던 노파는 몹시 노했다.
 겨우겨우 폐지를 모아 차곡차곡 쌓았는데, 똥벌레 한마리가 그것을 무너뜨린 것이다.
 무너진 폐지를 다시 쌓을 생각을 하니 한숨이, 아니 그 전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거기다 똥벌레는 골판지 하나를 손에 들고 멍하니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훔치려는 것이다.


 [아니 이놈이 그래도!! 당장 놓지 못해!1]


 노파는 오른손에 짚고 있던 나무 지팡이로 친실장의 머리를 겨냥해서 한방 갈겼다.


 [데겍-!!!]


 친실장의 얼빠진 비명과 함께 빠득! 거리는 섬뜩한 소리가 들린다.
 비록 노파의 몸이었지만, 기세 좋게 내려친 나무 지팡이는 친실장의 여린 두개골에 길다란 금을 내놓기에 충분한 위력이 있었다.
 친실장은 단번에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면서 뒤로 나가떨어진다.

 [데갸아아아악-!!! 와타시의 머리가아아아-!!!!]

 얻어 맞아 찌그러진 머리를 매만지려고 하지만, 짧고 뭉툭한 팔은 도저히 거기에 닿지 않는다.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땅을 뒹굴면서 데스우우우-!!! 하는 비명을 지르는게 고작이다. 
 노파는 그런 친실장을 발로 떠밀어버리고, 손에 쥔 골판지를 뺏어 다시 쌓기 시작한다.


 잠시 뒤 겨우 정신을 수습한 친실장은 골판지를 쌓고 있는 노파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는다.


 [죄송한데스우우우!!! 한 번만!! 한 번만 용서해주기를 바라는 데스우-!!!!]

 [와타시의 자가!! 와타시의 가족들이 얼어죽는데스우-!!! 골판지 한장만 부탁드리는 데스!!!]

 [아까 전의 그건 탐내지 않는 데스!! 죄송한 데스! 갈색 골판지도 상관없는데스-!!! 작은 골판지도 상관없는데스!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데스우우우-------]


 그러거나 말거나 노파는 상자를 쌓는데만 열중하고 있다.


 [제발 부탁드리는 데스-!! 이렇게 간청하는데스!! 겨울인데스! 너무 추운 겨울인데스! 자들이 얼어죽는데스우우우-----!!!!!]

 [데스웃-!! 데스! 데스!! 찢어진 골판지라도 상관없는 데스... 종이조각이라도 부탁하는데스.... 토굴에 얹을 조각이라도 좋은데스.....]


 이제는 무릎을 꿇은 채로 이마를 땅에 쿵쿵 박고 있지만, 노파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투다.
 중얼중얼 욕설을 내뱉으며 골판지를 쌓는 것만도 힘든데, 상자를 달라는 똥벌레의 이야기는 아예 웃기지도 않는다.
 그저 저러다 가겠지 싶어서. 굳이 상대해주기도 귀찮아서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데....? 허락하시는데스? 그럼... 이 조그만 골판지라도... 아니 여기 이 찢어진 골판지 조각 하나만 가져가는 데스.....]


 친실장은 멈칫멈칫하며 닌겐의 얼굴을 살피다가 그래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용기를 내어 바닥에 떨어진 골판지 조각으로 다가간다.
 정상적인 조각도 아니다. 일반 골판지의 1/4조각.
 당연히 집을 짓기에는 무리고, 토굴의 뚜껑이라도 만들기 위해 얻어가고 싶었다.
 이 정도로 작은 양이라면 닌겐도 용서해줄 것이다... 닌겐은 저렇게나 많이 가지고 있는데 이 정도쯤은...


 [아니 이놈이 누구 밥줄을 끊으려고-----!!!!!]


 골판지 조각에 손을 뻗는 친실장을 본 노파는 다시금 괴성을 지르며 지팡이를 내리쳤다.


 퍼어억!!!

 지팡이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친실장의 오른쪽 어깨죽지에 정통으로 명중했다.


 [데챠아아아악----!!!!]


 퍼억!!!


 [데깃---!!!]


 퍽!!!


 [데갸아아악---!!!]


 [이놈이! 이놈이!! 뺏을게 없어서 내 폐지를 빼았으려고! 이놈! 이놈!]


 퍽!! 퍽!! 퍽!! 퍽!!


 [데규아아악---! 데갹!! 데깃! 덱!! 덱!!]



 [그, 그만두는데스!! 와타시가.. 데객!! 잘못한데스.. 그냥 가는데스!! 살려주시... 데챳-!!! 데스...]



 **********



 [테에에... 장녀오네챠... 손이 다뭉개진테치이이....]

 4녀가 울면서 장녀에게 양손을 내보인다.
 돌조각과 단단한 흙에 긁혀 양손은 피범벅이 되어있다.
 거기다 추운 날씨에 적록색 체액이 얼어버려 간지럽다. 

 [나도인 테찌... 손이 너무 아파테찌...]

 [테햐.. 테햐... 너무 힘든 테치...]


 [...모두 잠깐 쉬는테치...]


 4녀뿐만 아니라 장녀부터 6녀까지 모두 다 손이 피범벅이다.
 차녀만이 꺾여진 허리를 부여잡고 엎드린 채 테에... 테에..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땅파기에 동원된 것이다.
  
 마마가 가고나서 조금도 쉬지 않고 나뭇조각으로, 모아놓은 돌조각으로, 플라스틱 조각으로 열심히 땅을 팠지만, 겨우 장녀 하나가 누울만한 공간밖에 파지 못했다.
 이미 나뭇조각과 플라스틱 조각은 죄다 부러져버렸고, 겨우 남은 돌조각도 끝이 다 뭉개져서 처음처럼 잘 파지지도 않는다.
 결국 뭉툭한 손끝으로 흙을 파내려가지만, 두부처럼 무른 실장석의 손은 얼어붙은 겨울의 땅을 파내려가기에는 애초부터 무리인 것이다.


 [테.... 마마가 집을 구해왔으면 좋겠는테치....]

 [그런테치. 얼어죽을것같은테치. 전의 집은 바라지도 않으니 옛날집만 되도 와타치는 감사테치.]

 [나도인테찌. 하지만 마마는 최고로 훌륭하니 반드시 집을 구해올 수 있을테찌!]

 [6녀쨩 말이 맞는테치! 마마는 반드시 해내는테치!]


 장녀 역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도 이렇게 땅을 파고 있지만, 과연 가족이 들어갈만큼 깊게 땅을 팔 수 있을까...
 그리고 판다고 치더라도 겨우 이걸로 얼어죽지 않고 잘 수 있을까...

 무서웠다.


 [테에!! 마마!! 마마가 온 테치!!!!]


 언제 마마가 올까 항상 흘끔거리던 3녀가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들어 마마가 간 방향을 쳐다봤다.
 과연 마마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마마!! 마마아아아앗-!!!]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마에게 달려갔다.


 [마마!! 와타치 좋은 자로 기다린테치!!]

 [테에! 와타찌도 그런테찌!!]

 [우리들 모두 열심히 일한테치! 테, 테에!!! 마마아아아아-----앗----!!!]


 친실장에게 안긴 4녀가 비명을 질렀다.


 마마는 오른팔이 없었다.











댓글 2개:

  1. 어리석은데스. 중실장 둘이 있으면 다른 실장석이 사는 곳을 급습하면 되는데스. 하지만 오른팔이 없어져 그것마저 할 수 없게 되버린 데스~~데프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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