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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참피 만화








4월의 실장사육











막내의 의지



두루마리 시민공원.
여느 공원들이 다 그러하듯 이 공원 또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아이들이 뛰놀던 분수대는 실장석들의 배설과 빨래로
인해 녹색물을 뿜어내고 있었고, 아름다운 꽃밭은 더 이상 꽃밭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이리저리 파헤쳐져
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한 줌의 꽃들도 발정난 실장석의 손에 낚아채져 질척한 총구에 박혀 있었다. 관목과 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는 보기 흉한 토굴과 골판지 하우스가 홍콩의 구룡섬을 연상케 할 만큼 마구잡이로 난립해 있었다.
부득이 하게 이곳을 지나치는 시민들은 피어오르는 악취에 코를 막으며 한마디씩 내뱉는다.

‘이거 원...실장석들 천국이구먼....’

확실히 아무도 제재하지 않는 생태계 속에서 완전히 공원을 점령한 실장석 무리들을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말로 천국일까? 실제 그 안에서 살고 있는 개개의 실장석들의 입장에서 이 공원은 끔찍했다.

분수대는 완전히 오염되어 그곳에서 아무리 씻어봐야 악취만 더 뿜어낼 뿐이다. 다만 하지 않는 것보단 낫기에 목욕과
빨래를 하고 있긴 하다. 식수는 화장실의 화변기에 고인 물을 핥아먹으며 연명을 하지만 이 공원의 모든 실장석들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였다. 화장실은 언제나 바글거렸으며 덕분에 화장실에서 자를 낳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만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식량문제는 더더욱 심했다. 요령을 터득한 실장석들이 쓰레기통을 매번 넘어뜨리는 통에 주변에
그물을 치거나 아예 벽 안쪽으로 쓰레기통을 집어넣었다가 수거쯤 돼서 내놓는 방책을 내놓았다. 덕분에 실장석들은
비교적 정기적이고 손쉬운 먹거리 대신 힘겹게 채집과 사냥을 해야만 했다.

‘데에......’

한숨을 푹 내쉬는 친실장. 이번 봄에 독립을 한 녀석이다. 골판지 틈으로 세어드는 한기에 자매들은 사정없이 떨고
또 떨었다. 등에 들러붙다 시피한 배는 한시도 쉬지 않고 꾸르륵거렸지만 먹을 것은 없었다. 친실장의 어미는 얼어
죽은 자들의 사체를 먹으며 버텼다. 이것이 잘못 됐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허기에 잠식당한 뇌는 침묵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임시방편. 자들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어갔지만 겨울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당시 장녀였던
친실장은 거의 성체급으로 커져, 어미는 위험을 무릅쓰고 원정을 나갔지만 신통치 않았다.

여느 날과 같이 친실장의 어미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곰팡이가 난 수건을 뒤집어쓰고 바들바들 떨고 있던 친실장은
자신의 마마의 눈매에 이채를 눈치 챘다. 그것은 살기. 입을 벌리고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동시에 반응하였다. 기습의
이점을 빼앗긴 어미는 손쉽게 제압당했다. 친실장은 물었다.

대체 왜 그러냐고. 그러자 어미는 대답하였다. 살기위해선 어쩔 수 없다. 자는 또 낳을 수 있다. 죽어간 자들의 몫까지
행복해져야한다. 완연히 성체로 성장한 친실장 밑에 깔린 어미는 종국엔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꽥꽥 질러대며
자신이라도 살아남아 자신의 자들로 이 공원을 가득 채워야한다고 했다. 더 이상 들을 수 없던 친실장은 어미의 목을
물어뜯었다. 입안에 가득 퍼지는 고기의 풍미. 바싹 마른입을 적시는 핏물. 너무나 감미로웠다. 우물거리는 입놀림은
점점 빨라졌다.

그렇게 친실장은 겨울을 견디어 내었다. 하지만 여태껏 따라준 운은 자신을 떠난 듯하다.

‘데스우.....’

손을 내려 보면 텅 빈 자신의 비닐봉지. 해는 저물고 있다. 더 이상 채집활동에 의미가 없다. 조금 있으면 집을 제대로
찾아가지도 못 할 것이다. 할 수 없이 귀가길을 서두르는 친실장.









‘데스우.....’
‘테츄? 테치테치이~!’
‘테츄우~♪ 테츄우우~♪’
‘렛츙~렛츙~♪’

위장도 방수도 신경 쓰지 않은 허름한 골판지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면 3마리의 자실장과 1마리의 엄지실장이
달려 나온다. 얼굴은 기대만발. 눈은 초롱초롱 코는 피식피식. 오늘은 마마가 맛있는 것을 들고 왔을 거라 확신을
하며 달콤한 목소리로 애교를 부려온다. 친실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구석에 쭈그리고 앉는다.

‘테에에.....’

바닥에 떨어뜨린 텅 빈 비닐봉지는 나풀거리며 굴러간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씩 들여다봤지만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혹시로 시작해서 역시로 끝나는 하루. 이것이 일가의 일상이 돼버렸다.

‘렛츙~♪렛츙~~♪’

텅 빈 비닐봉지가 뭘 뜻하는지 모르는 막내 엄지실장은 어미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공복을 호소한다.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을 한 친실장은 할 수 없다는 듯, 옷을 젖혀 올리고 엄지에게 젖을 물린다. 영양이 충분치 않아 젖은
흉하게 늘어져 있었다. 자신의 영양분을 빼내어 엄지에게 건네주는 그야말로 제살깍아먹기이다.

‘데스데스우.....’

콧김을 내뿜으며 두 볼을 빨갛게 만들며 젖을 빠는 엄지실장의 얼굴을 약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자실장들.
그런 자들에게 해줄 수 없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친실장은 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

‘텟츄~테치이~’

역으로 위로를 받아버렸다.

마마는 언제나 최고의 마마인 테치~엄지짱은 아가야라서 아직 많이 먹어야하는 텟츄~
와타시들은 언제나 튼튼 테칫! 언제나 믿고 맡기는 텟츄!

씩씩하게 대답을 하는 일동.

‘뎃승....뎃승......’
대견스러운 자들인 데스.....마마가 무능해서 미안한 데스....

훌쩍거리는 어미 곁으로, 자실장들은 달려가 꼭 안아준다. 그리고 같이 흐느낀다. 아무리 위로받아도 힘든 것은
힘든 것이다. 적록색 눈물을 흘리는 자매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엄지인 4녀는 트림을 시원하게 하고
낮잠을 청한다. 배가 고파 잠이 안 오는 자실장들을 위해, 친실장은 행복의 노래를 불러준다.





뎃데로게~♪ 애호파 닝겐은 와타시들의 주인님~♪ 세상에는 슬픈일도 많지만~♪ 행복과 행운도 있는 데스웅~♪
모두가 착한 자로 지내면 사육실장이 되는 데스~♪ 콘페이토! 푸드! 모두가 가득가득인 데스우~♪
예쁜 옷을 입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행복을 누리는 데스우우~♪


새벽.
모두가 깊이 잠든 시간. 친실장은 조용히 일어난다. 낮에 비해 선선해진 공기를 음미하며 곰곰이 생각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정말 쾌적한 곳이었다. 동족과 천적은 드물었고, 모든 것이 풍부했다. 동족들의
숫자는 너무 많아져, 이젠 자들을 집에 두고 떠날 때마다 불안했다.

어떠하면 좋은 데스....마마.....

자신이 죽인 마마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의 별을 바라본다. 다시 일어섰을 때, 굳은 결심이 두 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자들을 깨운다. 아직 깜깜한 주변을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들.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일찍 깨웠다. 일어났어도 여전히 잠이 깨지 않아 꾸벅거리는 자들에게 선언한다.

이 공원을 떠나는 데스.

그 말에 자실장들은 화들짝 놀라 눈을 끔뻑거린다. 이 공원을 떠난다니...그렇다면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비록 살기
힘들지만, 이곳은 집이다. 집을 떠나 대체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그리고 집을 떠나는 순간 죽음이라고 누누이 가르친
것은 마마 아니던가. 자실장들의 표정으로 생각을 읽은 친실장은 이어서 말한다.

다른 공원으로 이주를 할 것이라고. 자신의 마마와 함께 이 공원에 처음 올 때도 굉장히 살기 좋았었다. 따라서 다른
공원으로 이주를 하면 그곳은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일 것이다.

근거 없는 전제조건의 오류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자실장들은 흥분에 겨워 테치테치 소란스러워진다.

콘페이토도 있는 테치? 달콤한 꿀도 듬뿍 있는 테치? 시원한 물도 있는 테치?
전부 있는 데스~착하게 마마를 따라오면 그곳은 분명 낙원인 데스~

‘테햐아아아....!’

맹렬히 돌아가는 행복회로 속에서 마음껏 만찬을 즐기는 자실장들의 입에는 어느새 침이 고여 뚝뚝 흘러내린다.
친실장은 그런 자들을 재촉하며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짐이라 해봐야 아직도 잠들어있는 엄지를 등에 업고, 조그마한
물병과 수건이 전부다. 힘이 없어 제대로 놀지도 못하던 자실장들이었지만, 낙원을 약속받아 들뜬 마음에 기운이 펄펄
솟는다. 그곳에 가면 뭘 할지에 대해 재잘거리는 자실장들은 부모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서둘러 앞서 나간다.

‘데스우.....’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집을 돌아본다. 자신이 자실장이던 시절부터 살아온 집. 여기저기 헤어지고 쓰러져가는 갈색
쓰레기더미에 가까웠지만 그간 피난처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조용히 안녕이라 중얼거리고 친실장은 저만치 가는
자들을 따라잡기 위해 발걸음을 서두른다.







‘데에....데에에.....데에.....’
‘치이.....’

해가 중천에 떠오른 정오. 기온은 점점 올라가 일가의 체온을 덥히고 있었다. 등에 업힌 막내는 깨어나 울다 지쳐
도로 잠드는 것을 몇 번씩 반복하고 있었고, 자실장들은 기운을 잃고 말없이 땅만 바라보고 걷고 있었다.

‘데스데스우’

휴식을 선언한 어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닥에 주저앉는다. 작열하는 태양빛에 달궈진 콘크리트바닥은 연약한
자실장들의 피부에 약한 화상을 입히지만, 지칠 대로 지친 자실장들은 멍하니 자리에 주저앉는다. 열기가 거슬린
막내는 도로 깨어나 칭얼거렸고, 친실장은 그런 막내를 품에 안고 가볍게 흔들어주고 있었다.

‘데에에.....’

이대로는 곤란하다. 목표를 잡은 것도 아니고, 방향을 아는 것도 아니고,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본능에
따라 막연히 걷고 있지만 이대로는 도착하기도 전에 탈진해 죽을 것이다.

‘데스우’

조금만 마시는 데스....

어미가 내민 물병에 입을 대고 허겁지겁 마시는 자매. A자 입과 자실장들 체구에 비해 큰 병 입구 때문에 바닥에
아까운 물이 흘러내린다. 텅 빈 페트병을 내던지고 다시 휴식을 취하는 자실장들. 친실장은 별 수 없이 자들이 흘린
물을 할짝거린다.

[끼익-! 쾅!]

갑작스럽게 들려온 굉음. 일가가 모두 움찔한다. 아이들에게 꼼짝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피기
위해 나선다. 소리의 근원지에는 천천히 걸어 나가는 인간.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 인간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심한다.
막 돌아서는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다.

희미하게 열리는 문이었다.

인간들의 집들은 언제나 굳게 닫혀있었다. 게다가 위험을 감수하고 접근한다 해도 불쑥 튀어나와 고함을 지르며 발을
휘두르는 인간에 의해 죽어나간 실장석들은 수도 없이 봐왔다. 하지만...지금 상황이 달랐다. 문이 열려있다. 그리고
인간은 집을 나섰다. 인간의 집이 무방비 상태로 열려있는 것이다.

섣불리 들어갔다가 인간이 들어온다면? 안에 작은 인간들이 있다면?

아무리 문이 열려있다 하여도 위험요소는 너무나 많았다. 늘 인간을 경계하라 교육받았고, 실제로 그러해야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터득한 친실장은 지금껏 인간과 관계되는 것을 적극 피해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의 신념이
흔들린다. 뒤를 돌아보면, 힘없이 늘어져 있는 자실장들. 몸과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있고 숨만 조그맣게 내쉬고
있었다. 불확실한 죽음과 확실한 죽음. 친실장은 불확실한 죽음 쪽에 판돈을 건다.

‘데스데스....데스....’

인간의 집으로 들어간다고 고하자, 새끼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는다. 인간은 무서운 것. 다가가면
죽음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이 잠시 나간 데스. 조금이라도 그곳에서 쉬고 가는 데스. 기운을 회복하면 얼른 떠나는 데스....





시원한 인간의 집을 상상하며 자실장들은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인다. 좌우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집안에 들어선다. 기압 차이로 인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일가는 약간의 기운을 회복한다. 혼적을 남기지 않고
몰래 들어갔다가 나온다는 계획도 무색하게, 더러운 발자국과 똥줄기를 흘리며 일가는 집안에 들어선다.

‘데에에에...!’
‘테츄우....’

다 쓰러져가는 골판지 하우스에게 살던 일가에게 인간의 집은 그야말로 궁전이었다. 높은 천장, 튼튼한 벽, 쾌적한
공기, 은은하게 흩날리는 방향제. 용도를 전혀 모르겠는 물건들이 빼곡히 들어선 벽....모든 것이 새로웠다. 낯선
환경에 잔뜩 어깨를 움츠리고, 마치 서울에 상경한 시골촌놈마냥 두리번거리는 추레한 실장석 일가.

‘쿤...쿤쿤...쿤....’

열린 문으로 흘러가는 바람 사이에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섞여있었다. 주변을 구경하는 것을 멈추고 코를 벌름
거린다. 어미의 뒤로는 3마리의 자들이 피로도 잊고 쫄래쫄래 따라가고 있었다.

‘데에에엣...!’

친실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탁자 위에 놓인 과자들. 마치 그녀들을 위해 준비해놓은 것인 듯 떡하니 거실 한 가운데
놓여있었다. 탁자의 높이 또한 별로 높지 않아 충분히 손이 닿는 높이였다.

‘테치이잇! 테치테치이잇!’

아이들은 대흥분. 미처 제지하기도 전에 탁자로 달려가 다리를 톡톡 친다. 아무리 점프를 해도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곤 황급히 어미에게 과자를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어미의 얼굴에는 당혹의 기색이 역력하다.

이것은 인간의 음식. 자신들은 인간의 집에 몰래 들어온 상태다. 잠시 기운을 회복하고 인간이 눈치 채지 못 하게 바로
떠날 것인데, 음식을 훔쳐 먹으면 어떻겠는가? 자신이라도 쫓아갈 것이다. 귀한 음식을 되찾고 도둑을 응징하기 위해.

‘데스우...데스데스....’

이것은 인간의 것인 데스....안타깝지만 먹을 수 없는 데스...‘

어미의 설명에 자실장들은 할말을 잃은 채 입을 뻐끔거리고, 이내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쓰러진다. 낙원에 대한
희망이 무너지며 그녀들을 지탱하고 있던 힘이 빠진 것이다. 가장 굳세었던 장녀를 시작으로 울음이 전염되었다.

‘테에에엥...! 테에에엥....테에에엥...!’

배고픈 테치....불행한 테치...힘든 테치.....왜 인간들은 모든 것을 가지는 테치이이.....이제 싫은 테치이.....

한마디 불평을 하지 않았던 기특한 자들이었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가 찾아왔다. 먹을 것을 코앞에
두고도 먹지 못 하는 상황.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상황. 아직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엄지는 조심스럽게 묻는다.

여기에 머무르면 어떠는 테치? 닝겐상을 메로메로 시켜서 애호파로 만들면 되지 않는 테치?

아이다운 발상. 하지만 친실장은 분명히 알고 있다. 자신도 들었던 태교노래에는 언제나 애호파와 그에 받아들여진
사육실장생활에 대한 희망과 찬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친실장은 성체였다. 그런 터무니없는 것은 희망하지
않는 쪽이 살아가는데 이롭다. 어렸을 때는 몰라도, 가족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그런 무책임한 도박을 또 다시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굶주린 이 자들만큼은 불쌍해 견딜 수가 없었다.

불쌍한 데스....와타시의 자로 태어나 한 번도 배불리 먹은 적이 없는 데스.....

친실장의 마음은 조금씩 움직인다. 어차피 몰래 들어왔다. 인간은 전혀 눈치 채지 못 할 것이다. 이렇게나 많다면
조금만 없어진 것은 전혀 눈치 채지 못 할 것이다. 자들이 너무나 굶주리고 있다. 어차피 길을 떠나기 위해선
어떻게든 배를 채워야한다. 인간을 위해서라도 그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제멋대로인 생각으로 합리화를 마친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조금...아주 조금뿐인 데스....조금만 먹는 다면 닝겐은 눈치 채지 못 할 것인 데스.....

축 쳐진 아기들의 귀가 발딱 일어선다. 친실장은 가까이에 있던 감자칩에 손을 뻗는다. 내용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통에서 약간 쏟아낸다. 바닥에 입을 대고 쏟아진 과자부스러기들을 입에 넣는 자실장들. 짭짤한 소금과
바삭한 감자맛, 그리고 새콤달콤한 바비큐 양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맛에 자실장들은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자신의 실장생이 원망스러워 질 정도로 극치의 맛이었다.

평소였다면 어미에게 먼저 권했을지 모르겠지만, 너무나 굶주렸고 너무나 맛있는 과자의 맛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먹기 바빴다. 마지막으로 떨어져 있던 부스러기를 차녀가 날름 집어먹은 것으로 끝으로 자실장들은 감질 나는 식사를
마쳤다. 허나 공북에 먹은 약간의 과자들은 오히려 허기를 부추길 뿐이었다.

배고픈 테치...더 고파진 테치이....너무 적은 테치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애원하는 자들의 모습에 친실장의 마음은 약해졌다. 그래 조금만이다 조금만 더.

어쩔 수 없는 데스...조금...조금만 더 인 데스....

친실장은 아까보단 많은 양을 쏟아낸다. 고소하면서도 톡 쏘는 향기가 친실장의 코를 간지럽힌다. 정신없이
먹고 있는 자들의 모습에 조금 호기심이 동한다. 대체 어떻기에.....호기심을 이기지 못 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순간 눈앞에 별이 보일 정도로 아찔한 맛이었다. 너무나 맛있다. 쓰디쓴 잡초와 시큼한 음식물 쓰레기를 먹어온
친실장의 세상은 새로운 색으로 물든다. 자신 또한 한 번도 먹어보지 못 한 맛이었다. 콘페이토가 있다면 아마
이런 맛일까? 아니다 이것보다 맛있을 리가 없을 터.

우마우마 데스! 우마우마 데스우!

친실장은 통 안에 있는 과자를 모조리 쏟아내고 자들과 경쟁적으로 입에 쑤셔 넣는다. 사방에 침과 부스러기들을
튀기며 달려드는 일가.

‘레에...레츄우우....’

잠결에 들려오는 아삭거리는 소리. 그리고 맛있는 냄새가 막내를 깨웠다. 이내 녀석이 한 일은 울며 자신의 몫을
요구하는 것. 친실장은 부드럽게 막내를 내려놓는다.

‘레햐아아아....!’

[조금만]이라는 당부는 더 이상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은 일가. 입 주변에 잔뜩 기름과 양념을 묻히고 입을 놀린다.
행여나 자신의 몫을 빼앗길까봐 눈을 디룩디룩 굴리며 다음 과자조각을 탐색하고, 입안을 가득 메운 음식물을 채
넘기기도 전에 다음 조각을 쑤셔 넣는다.






우마우마한 테츄!
살아있어서 다행인 테치잇!

찍찍거리는 탄성을 내뱉는다. 두 눈에는 기쁨의 눈물, 가랑이에는 새롭게 들어온 음식물의 향이 스며있는 똥이 쏟아
진다. 온 신경과 두 손을 놀리는 언니들 사이로 엄지 또한 뛰어들어 신기하게 생긴 조각을 입에 넣는다.

‘레츄우우웃!!’

수도 없이 물똥이 스며들었다 말랐다를 반복해 딱딱해진 녀석의 팬티는 순식간에 촉촉해졌다. 너무나 맛있다 이것은.
왜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아왔는가. 인간의 먹을 것이니 조금만 먹어야 한다는 친실장의 당부를 전혀 듣지 않고
맹렬한 기세로 입에 쑤셔 넣는다.

‘레엑...! 레엣!’

이리저리 부서져 끝이 뾰족하게 된 과자조각에 입술과 입안이 베인다. 상처 사이로는 양념이 스며들어 고통을 준다.
응석받이에다 아주 작은 고통이라도 과민반응하는 막내 엄지였지만, 오늘만큼은 다르다. 고통을 참는다 라는, 들실장
치곤 드믄 행동을 보이며 꾸역꾸역 입을 놀린다.

‘테치잇!! 테치테치이잇!!’

더! 더 주는 테치~! 너무 맛있는 테치! 환상의 맛인 테치!!

남아있는 부스러기가 아까워, 바닥에 붙은 조각과 양념을 핥는 막내 뒤로는 자실장 언니들이 폴짝폴짝 뛰며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감미로운 맛에 친실장 또한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가없었고, 탁자위에 있던 과자들을
모조리 바닥에 쓸어내린다.

‘텟..! 테에에엣!! 테치잇! 테치테치이잇!’

우마우마 테치! 우마우마 테치!

얼마동안을 굶었는가. 얼마동안 헤매었는가. 그 각고의 노력을 보상받아내려는 듯 치열하게 먹는 가족들. 식사에
열중한 이들은 밖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를 전혀 듣지 못 했다. 문을 닫는 요란한 굉음이 들려서야 오직 친실장
만이 뒤를 돌아보았다.

‘데에.....’

그곳엔 인간이 서 있었다.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비닐봉지를 들고서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내지르는 고함.

‘어....? 어어어!’
‘데샤앗! 데스데스우우웃!!’

잊고 있었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자신의 부주의함과 방만함을 자책하며, 자들을 안아 올린다. 하지만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 한 자들은 자신을 잡아당기는 친실장의 손을 거칠게 뿌리치고 과자 더미에 입을 파묻기 바빴다.

‘잠깐! 거기....으앗! 냄새!’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 그제야 자실장들은 남자의 존재를 인지하였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인간은 처음인
녀석들은 눈을 희동그랗게 뜨고 거인을 올려본다. 거인은 맹렬히 돌격해오는 듯 싶더니면 코를 움켜잡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데스우웃!! 데스우웃!!’

달아나는 데스! 도망가는 데스!!

부풀어 오른 팬티, 산만해진 배로 인해 일가는 뒤뚱거리며 들어왔던 문의 반대방향으로 냅다 달아난다. 따로 퇴로를
봐둔 것은 아니다. 그저 인간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본능대로 반대쪽으로 뛰는 것일 뿐. 허나 그녀들에게
약간의 운은 있었는지, 보조주방 방향으로 쪽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데스우웃! 데스데수우웃!!’
도망가는 데스! 달리는 데스!!

바닥에 녹색선을 질질 흘리며 달아난다. 공포로 인해 총구 주변의 근육은 더더욱 이완되었고, 쓸데없는 부피를 늘린다.
흘러내리는 팬티를 고집스럽게 입기를 고집하며 달리는 일가. 인간은 아직도 창고에서 뭔가를 찾는 모양인지 우당탕
거리기만 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아니 가능하다.

전신을 부딪쳐서 문을 밀어낸다. 열어진 틈으로 빠져나가는 자실장들. 한 마리, 두 마리 , 세 마리...세 마리?

‘데에...데에....데에.....데에엣?!’

한 마리가 부족하다! 거친 숨을 헐떡이며 어서 가자고 재촉하는 자실장들을 다시 한 번 세어보지만 숫자는 확실하다.
막내가 보이지 않는다!

‘테칫!’

장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돌아보면, 막내가 있었다. 너무나 행복한 표정으로 입에 과자를 쓸어 담고 있었다. 뒤로는
과자색깔이 섞인 똥을 그대로 싸재끼며 쉴 새 없이 먹어대고 있었다. 그야말로 과자를 삽입하면 똥을 배출하는 기계와
같이 엄청난 기세로 먹고 있었다.

‘데숫! 데스데숫!’

막내에게 어서 오라고 소리쳐본다. 하지만 생애 첫 감미로운 음식에 완전히 정신이 나간 막내에게 닿지 않는다.
친실장은 고민한다. 그냥 막내를 두고 도망쳐야 하는가.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는 친실장의 표정을 읽은 장녀는
울음을 터트리며 애원한다.

막내짱은 아기인 테치! 아직 보살핌이 필요한 테치! 막내짱이 없으면 많이많이 슬퍼슬퍼한 테치!

다른 자매들도 어미의 스커트를 붙잡고 애원한다.

막내짱을 구해주는 테치! 가족은 함께인 테치!

애정이 깊고, 어리석은 가족이었다. 생존을 생각했다면 엄지따윈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답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그러지 못 했다. 엄지짱은 소중한 막내였다. 다른 가족이었다면 스트레스 해소 내지는 비상식량으로 취급받았겠지만
그녀들은 달랐다. 가장 작았기에 가장 귀여움을 듬뿍 받았다.

친실장은 다짐한다.

걱정마는 데스! 와타시들은 언제나 함께인 데스!

결의를 다지려는 듯 꼭 안아주고 폭발적인 기세로 막내에게 달려간다. 눈으로는 쉴 새 없이 주변 장애물과 인간이 사라진
방향을 힐끔거리며 달렸다. 대체 무엇이 인간을 그렇게 지체시키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잘 된 일이다.

친실장은 막내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그대로 번쩍 들어올린다.

‘레엣...?! 레에에엣!’

입 주변엔 벌건 양념과 녹은 초콜릿으로 범벅이 되어있었고, 완전히 반죽이 된 음식물들이 들어있던 입을 크게
벌리고 꽥꽥 소리를 지른다. 어미는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인간이 왔으므로 도망쳐야 한다고 타이르지만, 모든
생각이 만찬에 쏠려있는 녀석에겐 마이동풍.

‘레에엥!!(우물우물) 레에에에엥(챱챱)!!!’

울기 위해 입을 버렸다가, 행여나 음식물이 쏟아질까 황급히 입을 다물고 우물거리는 짓을 반복하는 막내 엄지.
친실장은 인간의 동향을 확인하며 문으로 달려간다. 자실장들은 영웅적인 엄마의 활약에 박수를 치고 맹렬히 손을
흔들어댄다.

해냈다. 해냈다.

승리를 확신하며 달려가는 그 순간, 손에 격한 통증이 느껴진다.

‘데엣!’

뇌를 찌르는 듯 한 고통. 손을 움켜잡으며 바닥에 구른다. 동시에 벌어진 팔의 틈 사이로 뭔가 빠져나가는 느낌.

‘데에....’

멀어져 가는 막내의 뒷모습. 아연실색한 자실장들의 얼굴.
4녀는 어미의 손을 깨물어 버리고 과자더미로 달려가는 것이다. 손의 통증도 잠시, 최악의 시나리오가 닥쳤다.

‘잠깐! 멈추라고!’

인간이 나온 것이다. 투명하고 부석거리는 뭔가를 손에 끼곤 달려오고 있었다. 반대쪽 손에는 커다란 케이지를 들고
있었다.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허벅지가 케이지에 부딪치며 내는 굉음은 실장석 입장에선 너무나 기괴스러웠다.

숨을 헐떡이며 과자더미로 질주하는 막내는 고개를 돌려 인간을 발견한다. ‘렛!’하고 짧은 비명을 내지른 막내는...
더욱 속도를 높이기만 할뿐, 방향을 바꾸진 않는다. 작은 뇌로 고작 생각해낸 방책은 인간보다 빠르게 과자더미로
달려가 먼저 먹어치운다...라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데에에...데스우우...데스우우우....!!’

억울하고도 속이 타는 심정이 친실장은 바닥을 팡팡 두들긴다. 뒤를 돌아보면 사랑스러운 자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가족은 하나다. 헤어져선 안 된다. 그렇게 가르친 것은 자신이었다. 이를 악물고, 친실장은 지금껏 뛰어본 적이
없는 속도로 달려 나간다. 막내를 구한다. 구해내야만 한다.

과자 더미로 도착해 막 과자를 집어든 막내에게 손을 뻗는 순간, 그녀는 자신이 너무 늦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레챠아앗!! 레챠아아앗!!’

인간에게 잡혔다는 충격일까. 과자를 먹지 못 한다는 충격일까.
실장석마저도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발광하는 막내를 낚아올리곤, 케이지 안에 가둬넣는다. 비통한
울음소리가 메아리 치는 케이지.

‘데스우웃!’
아가야를 돌려주는 데스우웃!

용감하게도, 허나 동시에 멍청하게도 친실장은 인간에게 전속력으로 돌진한다. 필승을 담은 일격에 인간은 간단히
옆으로 살짝 피해버렸다. 추진력이 붙은 친실장의 몸은 그대로 테이블로 처박힌다.

‘데갹!’

또그륵 굴러가는 이빨, 쏟아지는 코피. 황망한 그녀만큼이나 당황한 인간의 얼굴은 점점 일그러진다.

‘어...어어...?’
[쾅! 쿠직!]

잠시 모두가 정지해버린다. 문밖에서 응원을 하던 자실장들도, 손을 뻗으려는 자세로 굳어버린 인간도.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머리가 으깨진 친실장의 몸뚱이로. 테이블은 그대로 친실장 위로 쓰러져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으깨버린 것이다. 부들부들 하는 경련도 멈추고, 다리 사이로는 엄청난 양의 대변이 꾸역꾸역 밀려나왔다.

‘레에에엥...! 레에에엥...!’

케이지 안에서 아직도 과자를 달라며 울고 있는 막내의 울음소리를 제외하곤 잠시간 정적이 방을 지배했다.
마마가 죽었다. 언제나 머리를 빗어주고, 몸을 닦아주고, 밥을 주던 마마가 죽었다. 엉엉 울고 있는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주던 밤, 특별히 하루 종일 놀아주던 봄날의 기억, 밤하늘을 올려보며 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밤의 기억이
스쳐간다. 입을 벌린 채 굳어 있던 자실장들의 볼 위로 적록색 눈물줄기가 소리없이 흘러내린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을
때에는 분노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테챠아아아앗--!!’

장녀를 필두로 세 마리의 자실장들은 원수를 향해 돌진한다. 본인도 적잖아 놀란 듯 어벙하게 서있는 인간의 바지를
물어뜯고 발등 위로 올라가 콩콩 뛴다.

왜인 테치! 왜 죽인 테치! 상냥한 마마였던 테치!
마마를 살려내는 테치잇!! 마마를 살려내는 테치이잇!!

다리 밑에서 소용없는 짓을 하며 발광하는 자매들을 내려 본 남자는 말없이 그녀들을 모두 케이지에 넣는다.

‘테엣!’ ‘텟텟!’

이리저리 퉁기며 바닥에 콩 하고 처박히는 자매들. 바닥을 두들기며 울고 있던 엄지와 뜻하지 않게 재회한다.

‘레에에엥!! 레에에엥!!’
‘텟승...텟승....’

아직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막내는 과자를 먹고 싶다고 조르며 언니들에게 안긴다. 불쌍한 막내. 불쌍한
마마. 장녀는 자신의 가슴을 팡팡 쳐대는 막내를 꼭 안아준다.

마마가 죽어버린 테챠아....닝겐이 마마를 죽인 테치이이......

그 말을 들은 엄지는 그대로 굳어버린다. 마마가 죽었다? 거짓말! 마마는 강하다. 마마는 언제나 곁에 있다. 똥닝겐
따위 마마한테는 한방이다!

‘레츄우~레츄우우우~~~레프프픗’

거짓말인 레치~분명 와타시의 과자를 독차지 하려는 속셈인 렛츙~♪ 마마는 절대 안 죽는 레치이~

그 순간, 케이지는 바닥에 내려졌다. 쇠창살 사이로 보이는 인간은 중얼거리며 비닐봉지를 가져온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담는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실루엣. 마마다. 하지만....머리가 없다.

‘레에에...? 레치이? 레치이?’
마마? 마마? 와타시인 레치. 대답하는 레챠

악취를 풍기는 고깃덩이로 변한 친실장은 차례차례 비닐봉지에 담겨졌고, 인간은 그것을 들고 나가버렸다. 그 모습을
본 엄지는 바닥에 주저앉는다. 현실부정을 하는 듯 두 귀를 꼭 막고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다.

‘레에에....레에에에.....’

아닌 레치...마마는 살아있는 레치....마마는 강한 레치이......
막내짱....
싫은 레치이....싫은 레치이....싫은 레치이.....
막내짱!

장녀의 고함에 엄지는 퍼뜩 고개를 든다.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고, 언제나 쾌활하게 서있던 귀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강인하던 언니마저도 너무나 무력해보였다. 무섭다. 사방이 막혀있는 감옥에 갇혀있다. 싫다.
또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엄지의 어깨를 꽉 붙잡고 장녀는 말한다.

마마는 죽었다. 이제 우리들끼리 살아나가야 한다.

어미가 없는 것을 상상할 수 도 없는 엄지는 고개를 휘휘 내젓는다.

‘레챠아앗!! 레챠아아앗!!’
싫은 레치! 마마를 살리는 레치잇!

장녀는 엄지와 눈을 맞추고 계속 말한다.

엄지짱은 가족의 보배인 테치! 오마에게 희망인 테치잇! 막내짱이라도 살아남아 이 세상에 자들을 잔뜩잔뜩 낳아야하는
테칫! 죽은 마마의 몫까지, 와타시들의 몫까지 행복해져야하는 의무가 있는 테치!

멍하니 자신을 올려보는 엄지에게, 장녀는 계획을 설명한다.

확실히 케이지의 3면은 완전히 막혀있었다. 허나 인간이 열었다 닫았다 하는 문은 쇠창살로 되어있었고, 그 간격은
엄지실장이라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는 크기였다. 보통 개나 고양이를 운반할 때 쓰는 케이지로서 쇠창살의 간격이
제법 넓었다.

‘레에엣...!’

나갈 수 있다. 이 무서운 곳에서 나갈 수 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엄지는 토테토테 쇠창살로 다가간다. 두려움 반 희망
반으로 섞인 심정으로 몸을 구겨 넣더니, 쏙 하고 빠져나간다. 성공이다.

‘렛츄!’

기쁨에 박수를 치며, 창살 뒤에 있는 언니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어서 같이 이곳을 빠져나가자고. 하지만 자실장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그녀들에 지나가기엔 비좁았다. 도저히 시도할 것도 없이 확실한 사실.

‘레챠아앗! 레치이이잇!!’
오네챠들이 가지 않으면 와타시도 가지 않는 레치! 언제나 함께인 레치잇!

장녀, 차녀, 삼녀는 창살 사이로 손을 뻗어 응석받이 막내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비록 엄지짱은 혼자지만 혼자가 아닌 테치. 착한 실장석은 죽으면 별이 되는 테치. 이미 별이 된 마마, 그리고 조만간
따라갈 와타시들이 엄지짱을 지켜줄 것인 테치

싫다....마마가 죽고 이젠 언니들과 헤어진다니 싫다.....레챠레챠 울먹이는 엄지. 과보호를 받아 언제나 응석받이였던
녀석. 그런 녀석에게 가족과 떨어지라 하는 것은 너무한 처사다. 하지만 인간이 돌아온다면 자신들은 죽을 것이다.
확실하게 죽을 것이다. 인간의 집에 몰래 들어와 먹을 것을 훔쳐 먹고, 집까지 더럽혔다. 하지만 막내까지 죽을
필요는 없다.

‘테츄테츄우!’
엄지짱 어서 도망치는 테치!

실장석 답지 않게 비장한 표정을 짓는 언니들.

‘레에엥...레에엥....’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엄지는 문으로 달려 나간다. 그리고 조금씩 속도를 붙여 전속력으로 달린다. 한번도
뛰어본 적도 없이, 나비씨를 쫓아갈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뛰고 또 뛴다. 달려가는 막내 뒤로는 언니들의
응원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힘내는 테치! 할 수 있는 테치!
막내짱은 일가의 보배인 테치!
와타시들의 몫까지 행복해져야 하는 테치!

‘레에엥...! 레에에에엥...!!’
흘러내리는 눈물로 바닥을 더럽히며 막내는 달리고 또 달렸다. 뒤에서는 인간의 고함이 들리는 듯 한 느낌이 들었을
땐 옆에 있는 수풀로 뛰어들었다.


타박타박 걷고 있는 작은 녹색 생명체. 너무 작아 손가락으로 가리켜도 한참을 찾아봐야할 정도로 작은 녀석이
길을 걷고 있었다. 얼핏 보면 멈춰있는 것처럼 느린 속도로 꼬물거리고 있는 물체.

가까스로 지옥에서 빠져나온 막내는 무작정 걷고 또 걸었다. 짜고 단 것을 잔뜩 먹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격렬하게
달린 녀석을 엄습한 것은 극심한 갈증.

‘레에에.....’

마마를 부르려던 막내는 멈칫한다. 더 이상 마마는 없다. 오네챠들도 없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어중간한 시간대였기에 막내는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다. 퇴근 혹은 하교시간이었다면, 그녀는 인파에
휩쓸려 바닥에 널려있는 적록색 얼룩 중 하나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의도치 않은 행운에 무지한 채 계속 걷는 그녀의
앞에 뭔가가 눈에 띈다. 쓰레기 봉투였다.

‘레치이.....’

고양이들이 물어뜯어놓은 모양인지, 튿어진 구멍 사이로 길게 국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맹렬한 기세로
달려가 행복에 겨운 미소를 띈 채 쭉쭉 빨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과자를 먹은 이상 그녀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
때까진 쉽지 않을 것이다. 실장석의 입맛이라는 것은 실로 간사하여, 높아지긴 한 순간이지만 내려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허나 타는 듯한 갈증에 굴복한 막내는 조심스럽게 혀를 내밀어 음식물 쓰레기 국물을 핥아본다.

‘레엣! 페! 페페펫!’

끔찍한 맛에 깜짝 놀라 황급히 헛구역질을 한다. 너무하다. 분명 이것은 맛있는 것이었을 터인데. 뭔가 착각이 있던
것으로 치부하고 다시 한 번 입을 갖다 대보지만 결과는 같았다. 이것은 못 먹는 것.

‘레에에......레츄우우.....’

올라갔던 어깨에 힘이 빠진다. 또 다시 정처 없이 길을 걷는다. 이따금씩 멀리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으로 몇 분 동안이나 위협을 가하다 다시 길을 걷거니 한다. 작은 막내는 적어도 왔던 길로 되돌아
간다고 생각했지만, 조그마한 보폭으론 고작 인간의 집 근처를 간신히 벗어났을 뿐이었다.

‘레츄우?’

생각보다 다른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거려보지만, 변하는 건 없다. 지칠 대로 지친 엄지는 잔디밭에 들어가 풀썩
주저앉는다. 몸을 쉬게 하니 머리가 움직인다. 죽어버린 마마. 끔찍한 모습으로 움직이지 않는 그 무시무시한
모습. 갇혀버린 자매들.

‘레에에에엥....레에에에엥.....’

쿨쩍거리는 소리는 점차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흐느낌은 통곡으로 바뀐다.

얼마간 울었을까.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는 꺼져 등가죽에 눌어붙을 정도였다. 배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가 들려서야
자신이 얼마나 배가 고픈지 깨달았다. 주변을 보면 꽃과 열매들이 떨어져 있었다. 허나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강렬한 인간의 화학조미료를 맛 본 이상 막내의 입맛이 내려오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레치이.....’

코를 벌름거리며 어딘가 인간이 흘린 맛난 것이 있을 거라 믿으며 조금씩 전진한다. 하지만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테치이?’
‘레에...?’

눈을 감고 후각에 의존하던 엄지는 뭔가에 부딪쳤다. 그녀를 돌아본 것은 멍청한 표정의 들자실장.

‘테츄우?’
‘테치이?’

무슨 일인 테치?
마마가 벌써 돌아온 테치?

뒤로는 저 마다 한 마디씩하며 나오는 일가. 엄지는 다른 동족에게 전혀 면역이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눈앞의
자실장들은 자신을 도와주러온 천사였다.

‘레치이잇!! 레치이이이....레치레치이이!’
오네챠! 와타시의 오네챠들이 잡혀간 레치! 그리고 배도 고픈 레치! 달콤달콤하고 새콤새콤한 것을 주는 레치!

지금 이 순간이 도망갈 때라는 것을 모르는 엄지는 서러운 점을 쏟아내었다. 듣는 입장에서도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엉터리 요구사항들이 쏟아진다. 단순히 사라진 가족들을 찾아달라는 요구부터 맛난 것을 달라는 요구, 슬프니깐 꼭
안아달라는 요구....종국에는 처음 부딪친 자실장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엉엉 우는 엄지였다.

‘테츄우??’
‘테치테치잇!’
‘테프프프.....’

그러나 들실장들의 반응은 시큰둥하였다. 그도 그럴 것. 들실장의 생태계는 철저한 약육강식. 동정과 연민은 실장석의
본능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러운 행색에 체구도 작은 엄지는 바로 놀림의 대상이 되었다. 비참한 실장생이지만
조금이라도 남보다 우월감을 느끼는 분야가 있다면 바로 얕잡아보는 것이 이들의 생태다. 엄지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멸시와....놀이의 대상.






‘테칫-!’
‘레챳!’

이제 막 콘페이토 동산에 데려가 달라고 재잘거리던 엄지는 뒤로 확 밀쳐진다. 뒷통수에 전해지는 아픔과 자신이
밀쳐졌다는 충격으로 울기 전에, 다음 타격이 들어왔다. 뒤에서 구경하던 자실장들이 공격에 합세하여 린치를 가하기
시작한 것.

‘레챳-! 레엣-! 치에엣-!’
‘치프프...치프프.....텟츄웅~♪’

꽃을 들고 아장아장 걸어 다닌다거나 공을 집고 놀기 좋아하는 이미지는 애호파에 의해 의도적으로 알려진 모습이다.
실장석들이 가장 즐기는 스포츠는 동족학대. 어찌 보면 인간에 잡혀 학대당하는 실장석보다 다른 실장석에 잡혀
학대당하는 녀석들이 더 많을 정도로 녀석들은 자신보다 못 한 녀석들을 경멸한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무자비하게 주먹질을 가한다.

이빨은 빠지고 얼굴은 거의 2배로 퉁퉁 부어오르는 막내. 살아생전 체벌은커녕 꾸중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마에게
전폭적인 사랑을 받고 언니들의 보살핌을 받아온 엄지에겐 아픔 이전에 당혹감이 가슴을 메웠다.

어째서인 레치....와타시는 사랑받는 레치이....어째서 때리는 레치....아픈 레치이....마마...오네챠...!!

‘레챠아앗!! 레챠아아앗--!’

기세좋게 외치던 호통은 수그러드는 부탁으로 바뀌고 그것이 절박한 애원으로 바뀌기까지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간만에 반응이 좋은 장난감을 얻게 되어 기쁨을 감추지 않고 환호성을 지르며 팔을 잡아당기고 옷을 강제로 벗긴다.

‘츄아아앗--! 츄아아앗!!’
‘테에? 테칫! 테치테치잇!’

강제로 벗겨지는 옷을 보곤 경악을 하는 막내. 머리카락 다음으로 소중한 옷이다. 안돼! 라고 외치며 손을 뻗어보지만
눈 앞에 별이 보이며 뒤로 발라당 자빠진다.

‘치프프프’
흉한 테치 이딴 놈은 버려진 테치. 오마에의 가족들은 다 죽은 테치!
아닌 레치! 아닌 레치!!

머리를 휘저으며 항변하지만 막내의 가슴속에는 점점 부정적인 생각으로 물들어간다. 가족들은 죽었을 것이다. 오네챠
들도 이미 각오를 하고 자신을 탈출시킨 것이 아닌가. 퉁퉁 부은 눈으로 인해 시야가 흐리다. 흐릿한 배경으로 치켜든
주먹을 보곤 눈을 꼭 감지만 충격이 오지 않는다. 두 눈을 꼭 감고 기다리던 막내가 이상함을 느끼고 실눈을 떳을 땐
커다란 성체실장의 얼굴이 보였다. 기쁜 얼굴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성체실장의 모습에 엄지는 약간 희망을 갖는다.

자실장들은 아래서 재잘거리며 자신들이 잡아온 엄지에 대해 자랑스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혹시나 잡아먹히는 것은
아닐까....아픈 것을 싫다. 자신은 살아남아 행복해져야 한다 약속했다.

‘치이이....치이.....’

희번덕거리는 눈길이 무섭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려 했지만 뼈가 부러졌는지 말을 듣지 않는다. 무거운 눈꺼풀을
꼭 닫고 그저 이것이 지나가기를 빈다. 분명 눈을 떳을 때는 상냥한 마마와 오네챠가 달콤한 간식을 준비해놓았을
것이다. 스스로 만든 행복회로에 잠식되기 직전, 귀쪽에 격한 통증을 느끼며 화들짝 눈을 뜬다.

‘레챠아앗--!’
‘뎃스웅~♪’

성체실장이 막내의 귀 끝머리를 물어뜯은 것이다. 아픔을 못 이기고 뼈가 박살난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막내.

성체실장은 그녀의 건강상태를 확인한 것이다. 맛도 좋고 튼튼한 것을 보니 운치굴에서 비상식량으로 키우기 적당하다.
이런 귀한 식량을 잡아온 것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 친실장. 방금 전까지 사나웠던 얼굴은 어디 갔는지 귀여운
포즈로 애교를 부리며 친실장에게 안기는 자실장들.

‘레에엣--!’

운치굴로 집어던져진 엄지는 온몸을 뒤흔드는 격통에 한 번도 고함을 지른다. 고통을 모르고 자랐던 궁중 규수나 다름
없던 몸으로 하루 동안 얼마나 고초를 겪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막내의 시야는 점멸하다가 어두워진다.


‘.....후.....레후.......레후.....’
‘치이.....’

얼굴 표면에 느껴지는 까슬까슬한 감촉. 그리고 동시에 촉촉한 느낌. 누군가가 자신을 핥고 있음이라. 어쩌면 오네챠들이
살아 돌아와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일까?

오네챠! 오네챠! 사랑하는 레치! 역시 돌아와준 레치!

부어오른 눈꺼풀을 어렵사리 들어 올려 눈을 떴을 때, 거기에 있던 것은 오네챠들이 아니었다.

‘레후?’

구더기짱. 처음 보는 구더기짱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은 한 번 더 레후~하고 울더니 막내의 얼굴을 마저
핥아주었다. 가족 중에 구더기는 없었고, 구더기를 데리고 같이 돌아다니는 실장석도 없는지라, 이것은 막내에게
있어 첫 조우. 그러나 유전자 깊숙이 새겨진 각인마저 감추진 못 했다.

‘레츄우웃-! 레추우웃!’
‘레에에...레후웅~♪’

구더기가 호흡곤란을 호소할 정도로 꼭 껴안는다. 너무나 사랑스럽다.

구더기짱! 구더기짱! 사랑하는 레치! 구더기짱 좋아하는 레치!
레후? 레후우우? 레후레후~

태어나자마자 운치굴로 버려진 녀석들이다.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고 멍청한 웃음을 방긋방긋 짓기만 할 뿐.
하지만 막내에겐 상관없다. 불행으로 점철된 24시간 중에 최초로 찾아온 행복이다. 구더기짱은 대체 뭘 먹었는지
냄새가 역하였다. 조금 씻어야할 필요가 있다.

‘레에...레에...레에.....’
‘레프프...레프프....’

정성껏 혀로 핥아주는 감촉이 기분 좋은지 구더기는 물똥을 찍찍 갈기며 기뻐한다.

‘레치레치...레치! 렛츄웅~♪’
구더기짱은 영원히 함께인 레치~음...와타시가 오늘부터 구더기짱의 오네챠인 레치~♪

구더기의 순진무구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다짐한다. 하지만 그 순간 커다란 손이 쑥 내려와 구더기를 낚아챈다.

‘레에에?! 레에에엣?! 레챠아앗 레챠아아앗--!’

위를 보면 어제 보았던 무서운 아줌마. 주변으론 자신을 때리던 자실장들이 군침을 흘리며 키득거리고 있었다.
구더기짱을 돌려달라 팔딱팔딱 뛰어보지만 엄지실장의 신장으로는 어림도 없는 깊이.

‘레후웅~♪’

부양감이 흥분된 구더기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자신은 관계없다는 듯 방긋거린다. 다급하게 손을 뻗는 막내에게
꼬리를 흔들며 기쁨을 표시한다. 이렇게 즐거운데 왜 엄지 오네챠는 우는 걸까?


구멍 너머로 구더기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풀석 주저앉는다. 지키지 못 했다. 가져가 버렸다.

‘레에에엥...! 레에에엥....!!’

그 순간 밖에 들려오는 끔직한 비명소리

‘레뺘아아앗--! 레뺘아아아앗--! [파킨!]’

그들의 목적은 비상식량. 구더기는 오늘 자신이 태어난 목적을 달성한 것뿐이었다. 짧은 비명 뒤에는 정다운 가족 간
대화를 하며 구더기 고기를 먹는다. 입에 피갑 칠을 하고, 자신의 미성숙 자매를 먹어치운 자실장들은 애교 넘치는
얼굴로 어미에게 사랑을 속삭인다.

운치굴 안에서 엄지는 이 모든 것이 악몽이길 빌며 눈을 질끈 감는다.
그 순간 또 다시 들려오는 울음소리.

‘레후~레후레후우~’

어두운 구석에서 번득이는 적록색 눈동자 한 쌍.

‘치이? 레치이잇-!’
구더기짱이다! 구더기짱이 또 있는 레치! 이젠 놓지 않는 레치! 구더기짱은 반드시 지키는 레치!

‘레후웅~레후웅~’

멍청한 표정으로 처음 보는 엄지의 얼굴을 올려보는 구더기를 안아들고 다짐한다.


‘햣햐--! 얏호! 뒈져라!’
‘...데갸아악....!’
‘치벳!’
‘테챠아아아앗!!’

소란에 졸린 눈을 끔뻑끔뻑 떠본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막내는 더 이상 악취에 코를 찡그리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조금 버겁지만 똥도 그럭저럭 먹으며 버티게 되었다. 다리를 가슴팍에 끌어 모으고 구덩이 입구 쪽을 바라본다.
오늘 운치가 떨어지는 것일까? 왜 이리 소란스러운 걸까?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는 운치굴 안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운치굴 입구를 관찰하는 것. 언젠가 또 다시 손이 내려오면 자신의 차례라는 것도 모르는 녀석은 팔자 좋게
구멍을 응시한다.

[후드드득..]

이날은 아무것도 내려오지 않았다. 단지 토사가 무너지며 완만한 언덕이 만들어졌을 뿐.

‘레에에.....’
‘레후?’

토사의 언덕으로 꼬물거리며 가는 구더기를 얼른 안아들고 조심스럽게 한발한발 내딛어본다. 아무런 고함도 주먹도
날아오지 않는다. 다 어디론가 가 버린 걸까?

‘레에엣!’

운치굴 밖으로 나오자 비극의 참상을 온전히 목격할 수 있었다. 그 무시무시하던 아줌마와 자실장들은 모두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있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더 이상 무서운 것은 싫다. 아픈 것은
싫다. 재빨리 등을 돌린다.

‘레츄웃!’

똥이 찔끔 나올 정도로 깜짝 놀란다. 품에 안긴 구더기가 깜짝 놀라 딸꾹질을 할 정도로 큰 소리. 무리도 아니었다.
무너진 식량창고와 잡동사니 무더기 사이로는 제각각 사이즈의 옷들이 널려있었다. 그 동안 먹은 엄지실장과 구더기들
로부터 빼앗은 옷들을 바닥보온재로 쓰고 있던 것. 꿈에도 그리던 옷. 구더기를 내던지고 달려가 허겁지겁 손발을
쑤셔넣는다. 자신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사이즈가 맞는 것을 찾아 헤매는 사이, 구더기는 처참한 몰골의 자실장의
사체를 뜯어먹는다. 옷을 막 입고 그 광경을 본 막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구더기를 떼어낸다.

‘레엣! 레츄! 레츄레츄우웃!’
동족을 먹는 것은 분충인 레치!

맛있는 것을 먹는데 왜 방해 하냐는 듯 반항스럽게 울어대는 구더기. 고집스럽게도 입안에 물고 있는 것을 기어코
꿀꺽 삼킨다.

‘렛후우웅~♪’

멍청한 웃음을 지으며 물똥을 지린다. 더 달라는 듯 입을 짝 벌린다. 동족을 먹는 것은 분충이다! 절대 안 된다!
이미 운치굴에서 게걸스럽게 똥을 먹는 주제 뭐가 더 추락할 것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만큼은 막내의 긍지였다.

구석을 살펴보면 쓸모 있는 것이 많았다. 무엇보다 구석에 반쯤 부서져 있는 먹이창고. 그곳에는 익숙한 음식들이
보였다. 꽃망울, 말린 벌레, 나무열매, 잡초페이스트....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탄성을 내지르며 달려간 막내는
꽃망울을 집어 들어 잘 씹은 다음 구더기 입에 넣어주었다.

‘레후웃!’

너무나 맛있다는 듯 울어대며 기뻐한다. 막내 자신도 배를 채운다.


‘렛테로게로게~렛테로게에~’

잠시 후 엄지와 구더기라는 흔한 조합의 가족은 무너져 내린 골판지 하우스 안쪽에 앉아 행복의 노래를 부른다.
마마로부터 배운 노래.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맛난 것을 잔뜩 먹고, 자를 가져 온 세상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행복의 노래. 노랫소리에 흥이 난 구더기는 콧김을 내뿜으며 애교를 부린다.

‘레프프픗....’

그 보다 동떨어진 현실에 살며 끊임없이 환상을 바라는 두 자매의 밤은 깊어만 갔다.


[콰과광-! 쏴아아---!]

막내의 다짐은 몇 시간도 가지 못 했다. 폭풍우가 휘몰아치자 허물어져가는 골판지는 금방 무너져 두 의자매 위로
물벼락을 쏟아 부었다. 구더기는 심하게 기침을 하였다. 거기에 몸은 심하게 덜덜 떨었다.

‘레에에...레에에에......’

거센 빗줄기는 마치 채찍과도 같이 가녀린 몸을 후려갈기지만 막내의 정신은 오로지 구더기짱에게 쏠려있었다.
구더기짱이 아프다. 온 몸이 차가웠다. 누그러진 골판지 무더기 사이로 최대한 몸을 구겨보아도 소용없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웅덩이가 만들어져 사방에 물방울을 튀기고 있었다. 막내와 구더기는 흙탕물로 뒤집어 써 녹색
부분은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레챠아아앗--! 레챠아아앗---!’
마마아-! 도와주는 레치! 도와주는 레치이!
누구라도 좋으니 도와주는 레치이잇!!
구더기짱이 아픈 레치! 살려주는 레치잇!

[콰과과광-!]
‘레햐아아앗...!’

우렁찬 천둥소리에 몸을 금방 움츠려든다. 도움은 왜 오지 않은 것일까. 마마가 보고 싶다. 오네챠들이 보고 싶다.

‘레에에엥...레에에에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에 떨며, 최대한 몸을 웅크려 구더기짱을 감싼다. 구더기의 호흡은 아주 희미해
졌고, 이젠 떨림조차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이것을 사태가 진정되고 있다고 받아들인 막내는 천천히 쏟아지는
졸음에 몸을 내맡긴다.








‘레에....레에에......’

간밤의 폭우로 온 동네가 엉망진창. 완전히 무너져 내려 더 이상 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쓰레기 뭉치. 그 귀퉁이
한 구석이 들썩이더니 조그맣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레에엥...레에에엥......’

서럽게 울어대는 엄지실장의 목소리. 기운도 없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흐느끼고 있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우리의 막내. 마마와 오네챠들의 목숨을 바쳐가며 구한 목숨. 죽어간 가족들의 몫까지 행복해지겠다고 당당히
선언한 그녀. 구더기짱의 새로운 오네챠. 그런 막내는 서럽게 울어대고 있었다. 세상이 끝났다는 듯 울어대는
그 목소리는 거슬려, 출근 중인 직장인마저 발걸음을 돌려 짓밟아버리고 싶을 정도.

‘레에에엥....레에에에엥.....’
어째서인 레치....왜 움직이지 않는 레치이이.....무서운 것은 끝난 레치이......

혀를 내밀고, 두 눈은 허옇게 된 구더기를 껴안고 우는 막내는 정신 나간 듯 중얼거린다.

세상에는 맛난 것이 잔뜩잔뜩인 레치....행복한 것이 잔뜩잔뜩인 레치이......움직이지 않으면 못 노는 레츄우?

부드럽게 흔들어보아도 축 늘어진 꼬리와 혓바닥만 힘없이 흐느적거렸다.

어째서 일까. 어째서 마마가 죽어야만 했는가. 어째서 오네챠들이 죽어야만 하는가. 어째서....구더기짱까지 죽는 걸까.
세상은 행복한 일이 가득이라고 마마가 말했다. 언젠가 애호파에게 사육실장으로 받아들여져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상엔 무서운 사람들도 많지만, 그만큼 착한 인간도 많다고 했다. 그런데...그런데 왜 그 인간은
마마를 죽인건가. 왜 오네챠들을 죽인건가. 과자를 먹은 것이 그렇게 잘못 된 것이가?

‘레샤아앗--! 레샤아아아앗--!’

밀려오는 부조리함에 사방에 소리를 질러본다. 청명한 아침공기는 고작 엄지실장 따위가 내는 가녀린 소리에 영향
받지 않고 평소처럼 흘러간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살다보면 행복도 찾아오고 행운도 찾아온다고 했다.

그런거....거짓말인 레치이.....
사육실장 같은거.....거짓말인 레치이......

막내의 두 눈은 점차 회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파킨...!]하는 건조한 음과 함께 축 늘어진다.

...







오픈드 노트



(1)
그 노트는 부엌의 싱크대 아래에 놓여있었다.
전의 입주자가 놓고간것인가 생각했지만, 입주 전에 청소할 때 업자가 눈치챌 수 있을만한 것이었다.
여자는 의아해하면서 A5 사이즈의 일기장을 집어들었다.

「뭐지?」






일기장을 펼치니 거기에는 알몸의 자실장이 이쪽을 올려다보는 사진.

『처음 하는 목욕. 기분좋은테츄ー웅』 하고 둥근 글씨로 캡션이 붙어있다

「아하하, 뭐야 이건? 귀엽네」

그녀는 뺨의 근육을 누그러뜨리고 페이지를 넘긴다

『오늘, 집 앞에서 버려진 자실장을 주웠다. 사육실장이었던 모양이다.
막 태어난 모양으로, 작고 연약한 존재이다. 내버려두면 확실히 죽을거 같았다』
그렇게 일기에 적혀있었다.

그 다음을 읽고싶은 충동을 억누르면서, 여자는 이삿짐 정리를 재개했다.



(2/17)
여자가 한숨을 돌린 것은 밤이 절반이나 지나간 다음이었다.
힘쓰는 일로 흘린 땀을 샤워로 흘려보내고, 이사를 축하하기위해 캔맥주를 열었다.
가구를 옮겨준 남성친구들도, 이사를 축하해준 연인도, 지금은 가고 없다.
젖은 머리털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으면서 맥주를 한 손에 들고 일기를 연다.

(실장석의 사육일기를 훔쳐읽는것 정도는 괜찮겠지)






『처음 먹는 밥. 아직 이빨도 나지 않았기에 푸드를 우유로 불려서.
맛있게 먹는다. 나에게도 나누어주려고 하는거 같다. 귀엽다』
입가를 먹이로 더럽히면서도, 한 손에 든 먹이를 내미는 웃는 얼굴의 자실장의 사진.






『화장실 훈육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다』
요강에 걸터앉아 자랑스러워 하는 얼굴의 자실장의 사진.

실장석을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이 맨션이 애완동물 금지라는 것을 떠올린다.
「실장 알레르기가 있는 입주민이 있으니까 절대로 키우지 말것」이라고 계약 전에 부동산에서 들었었다.



(3/17)
다음날부터 새로운 직장에서의 일이 시작되었다.
원래부터 잔업이 많은 직종이었기도 하고, 새로운 직장에 빨리 익숙해지자고 열심히 한 결과, 막차를 타고 돌아오는 날이 계속되었다.
피곤한 그녀의 심신을 달래주는 것이 그 일기장이었다.






작은 스폰지공을 양손으로 안은 자실장.

『공놀이를 좋아한다. 내버려두면 언제까지나 공을 굴리며 놀고있다.
내가 직장에서 돌아오면 공 던져달라고 조른다』

『네코쟈라시(강아지풀)도 좋아한다. 수건 아래에 네코쟈라시를 숨기고 잠시 얼굴을 훔쳐보곤 다시 숨긴다.
  다음에 어디에서 네코쟈라시가 나올지, 자실장이 수건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예상하지않은 장소에서 나오면 놀라서 펄쩍 뛴다.』







자실장이 샴푸로 머리를 감는 사진.
『샴푸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직장에서 돌아와 이 아이의 미소를 보면 마음이 놓인다』

나도 마찬가지야, 여자는 마음 속에서 중얼거렸다.



(4/17)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한 후 일기장을 읽는 것은 여자의 일과가 되어있다.
일기를 통해 자실장을 키우는 가상체험을 하고있는 것이다.
그래서 단번에 읽어버리거나 하지 않고, 하루에 하루치만 읽기로 정했다.
전 입주민이 몰래 키우고있었던 듯한 자실장은, 어지간히 똑똑한 모양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어리광을 받아주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기고만장해하는 모습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르침 받은것은 확실히 지키고, 그녀가 직장에 가있는 동안 얌전히 있었다.
안닌두부(푸딩 비슷한 단 디저트)를 좋아해서 「안」이라고 이름붙여졌다.
안은 그림책을 읽어주는 것을 좋아했다.
전단지의 뒤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육주와 함꼐 있는 것을 좋아했다.

(분명히 애완동물 사육이 허가되는 맨션으로 옮긴거겠지)

여자는 그렇게 생각했다.



(5/17)
『부동산에서 와서 실장석을 키우는거 아닌가 하고 조사를 했다.
  옆 방에 최근 실장석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이사를 왔는데 재채기가 멈추질 않는다나.
  그것 이외에는 조사를 받을 이유가 없다. 쓸데없이 소리지르는 아이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다.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서 안은 싱크대 아래에 숨겨둔다. 어두운 데라서 미안해』

그렇군, 그래서 이 일기가 싱크대 아래에 있는건가.

『그로부터 클레임은 없어졌다. 안은 낮시간 동안 얌전히 싱크대 안에서 참고있는 모양이다.
  내가 직장에서 돌아와보면 항상 자신의 새로운 방에서 자고있다.
  일어나서 내 얼굴을 보면 정말 기쁜듯한 웃음을 보여준다.
  모처럼 공놀이, 그림책, 그림그리기로 풀코스로 놀아주다보니 옆방에서 커다란 재채기가.
  나는 안과 눈을 마주치고 작은 소리로 같이 웃었다』

그 광경을 떠올리면서 여자도 웃음을 띄웠다.



(6/17)
집으로 돌아와서 이변을 눈치챘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초콜렛 과자가 없어져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신이 먹고 잊어버렸나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막 발매된 물건이고,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하는것도 있을수 없다.

「설마」
그렇게 생각하고 일기장을 발견한 싱크대 아래의 장을 열어보았지만, 거기는 자신이 넣어둔 간장과 조미료, 요리기구들이 늘어서 있을 뿐이었다

「안쨩, 있니?」
말을 꺼내어보지만 반응은 없다.
방은 여전히 조용하다.
그래도 혹시나 싶기에 다음날, 과자빵을 바닥에 놓고 나갔다.
심야에 집으로 돌아와보니 과자빵은 없어져있었다.



(7/17)
이 방의 어딘가에 자실장이, 안쨩이 있는거구나──여자는 그렇게 확신했다.
그렇다면 어째서 안쨩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것인가?
나를 무서워하나? 아니, 그 외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가 있는건가?

(이 방에서 뭔가 있었는지도 몰라)
등골에 서늘한 것이 지나간다.

(그, 그렇지. 일기장. 뭔가 써있는지도 몰라)
팔락팔락 페이지를 넘긴다.
일기장의 어딘가에 지금 느낀 공포에서 해방시켜줄 비밀의 주문이 적혀있기라도 한것처럼.
여자는 세심하게 쓰여있는 글자를 쫓았다.



(8/17)





안닌두부 앞에서, 두 손을 올리고 기뻐하는 자실장의 사진.
『푸딩도 좋아하지만 역시 가장 좋아하는건 안닌두부』라고 캡션.

거기까지 매일 적혀있던 일기가 약간 텀을 두고있다.

『짜잔ー 오늘은 중대발표가 있겠습니다. 무려, 드디어 저에게도 봄이 왔습니다』
실장석과는 관계없는 서술.
개인사에 관한것이기에 읽는걸 주저했지만, 읽지않을수는 없었다.

『친구가 미팅에 불러서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는데 지금은 감사×2입니다』
『처음으로 외박을 했습니다』
『내일은 그이와 온천여행!』
간결한 서술이지만 「그녀」의 「그이」에 대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보다 자실장의 서술이 적어졌다는데에 여자는 초조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9/17)
그로부터 며칠 후, 드디어 자실장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아무래도 안은 그이가 마음에 들지않는 모양이다. 내가 그이의 이야기를 하면 기분이 나빠져있다.
  사진을 보여주니 똥을 던지더라. 최악.
  그이도 아무래도 실장석을 좋아하진 않는 모양이다. 사육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위험해 위험해』

그로부터 다음 일기까지 십수일의 간격이 있었다.

『그이가 잠시 맨션에 있기로 했다. 꿈같은 시간! 회사는 땡땡이치고……
  그이가 있는 동안, 안은 싱크대 아래에서 얌전히 있었다. 배가 고파서 움직일수 없었던걸까? 미안해』

『그이는 어릴때에 실장석을 학대하며 놀았던 모양이다. 듣자하니 실장석을 담배불로 지졌다나.
  안은 내 얼굴을 볼때마다 어리광을 부리는데, 왠지 귀찮아졌다.
  담배불을 손발에 대어보았지만 그래도 어리광을 부린다. 이 아이는 사실 바보인지도 모르겠다』

『그이가 커다란 사업에 손을 대려고 하고있다. 함께 지내지 않겠냐고 물어봐주었다.
  약간은 저축도 있다. 그이의 사업을 돕고싶어!』



(10/17)
그리고 전 입주민은 「그이」의 말을 따랐다.
「그녀」는 맨션을 나가면서 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내가 돌아올때까지 여기에 숨어있어. 반드시 돌아올테니까. 그리고 안닌두부를 먹자.
  쓸쓸해지만 이거라도 보고 옛날 생각이라도 하렴」

그렇게 말하고 일기장을 넘겨주었다. 안은 「그녀」의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였다.
싱크대 아래의 장은 「그녀」가 이중벽을 세워 놓았다.
벽에서 10cm 정도의 위치에 판자를 세우고, 그 작은 틈이 안의 은신처였던 것이다.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장소에 안을 남겨두고 나갔는지는, 아마도 본인도 알지 못했을 듯하다.
어쩌면 진짜로 언젠가 자실장을 데리러 올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이」가 원했던것은 「그녀」의 저금이었고, 그 시점에서 직장을 다니고있던 「그녀」의 사회적 입장이었다.
「그이」는 새로운 집과 대출의 보증인을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11/17)
(이런 경박해보이는 남자의 어디가 그렇게 좋았던건지)
두 사람의 사진은 떼어져있었지만 겨우 한장, 스티커사진이 남아있었다.

(안쨩, 역시 남겨져있었던거였구나)
여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방에서 자실장이 괴롭힘당해 죽고, 유령이 되어 떠돌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생각한 것이다.
역시 안쨩은 배를 곯으며 이 방의 어딘가에 있다.
「그녀」의 마지막 서술이 끝나고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고 할때, 등 뒤에서 소리가 들렸다.

(안쨩이구나)

여자는 눈치채지 못한척을 하였다.
갑자기 돌아보면 놀랄테고, 또 어딘가 도망쳐버릴테니.
소리를 내지않도록, 경계되지 않도록,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종이봉지에서 귀가길에 편의점에서 산 안닌두부를 꺼내들려고 했다.



(12/17)
그 손이 등 뒤에서 갑자기 붙잡혔다.
여자가 비명을 지르려고 하자 이번에는 입이 틀어막혔다.
스티커사진에 찍혀있던 그 남자였다.
여자는 몸부림치며 남자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남자의 두 팔은 바이스처럼 죄어들었다.

「난 운이 좋구만, 이 방에 이런 귀여운 년이 들어오다니」

어제 남자는 전의 여자가 살고있던 맨션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부재중인 것을 확인하고, 아직 가지고있던 열쇠를 시험삼아 써봤더니 간단히 열려버렸다.
원래라면 교환했어야하는 자물쇠이지만, 그대로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테이블 위에 있던 초콜렛 과자를 슬쩍했다.
이걸로 자물쇠를 교환한다면 포기해야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꽤나 가드가 느슨하다는 것이다.
반면 여자는 이것을 자실장의 짓이라고 생각했고, 외부의 침입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오늘, 과자빵을 우물거리면서 여자가 돌아올때까지 어디에서 시간을 죽일까하고 남자는 생각했던 것이다.



(13/17)
남자는 준비한 덕트테이프를 여자의 입에 감았다.

「이봐, 바둥거려도 소용없어. 전에 여기서 살던 여자도 목소리가 컸거든.
  헉헉 앙앙거려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

다음으로 두 팔을 뒤로 돌리더니 익숙한 손놀림으로 양 손목에 테이프를 감는다.
그리고는 여자를 부엌 바닥에 굴리더니 힘으로 블라우스를 좌우로 잡아뜯었다.
두 가슴이 부끄러운듯이 튕겨나온다.
남자의 시야에 여자가 봉지에서 꺼내려고 한 안닌두부가 들어왔다.
남자는 안닌두부를 손에 잡더니 그것을 여자의 얼굴에, 입에, 가슴에 발랐다.
금방 달콤한 댐새가 부엌에 가득찬다.
남자는 안닌두부를 로션이나 윤활유 대신으로 쓸 생각이다.
여자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면서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14/17)





초콜렛과자와 과자빵을 먹은 범인은 아니었지만, 여자의 예상 대로 안은 이 방에 있었다.
어두운 은신처 안에서 계속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






일기장의 사진은 마음의 안식처였다.
낮에 은신처에서 살짝 나와서 싱크대 아래의 문을 약간 열고 그 빛으로 사진을 본다.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한다.

며칠인가 고요가 계속된더니 갑자기 떠들썩한 날이 찾아왔다.
그 때에는 간신히 은신처에 숨는게 고작이었고, 일기장은 벽 너머에 놓고갈수 밖에 없었다.
다음 날, 일기장은 어디론가 사라져있었다.
그로부터 그저 어둠 속에서 절망의 나날이 계속되면서, 안의 위석의 반짝임은 없어지려고 하고있었다.
그 때, 그리운 향기가, 안닌두부의 달콤한 향기가 흘러왔다.

『마마인테츄, 마마가 돌아온테츄!』

안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은신처를 뛰쳐나왔다.



(15/17)

『마마앗ー!』

싱크대 아래의 문에서 안이 뛰쳐나온다.
그 눈에 비친 것은 여자의 위를 덮치고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남자가 마마를 이렇게 「괴롭히면」 마마는 반드시 자신을 쌀쌀맞게 대했다.
그 때, 자신은 그저 보고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그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 다음에 마마는 변해버렸기 떄문이다.
마마를 도와주지않으면!

『데쟈아ー앗!』





안은 뱃속 깊은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남자에게 맞섰다.
남자는 갑작스런 난입자에 놀라고있다.
여자는 눈을 크게뜨고 뭔가 호소하고있다.
그러자 옆 방에서 커다란 재채기가 연속으로 터져나왔다.



(16/17)
여자는 담요를 두르고 여자경찰에게 사정을 듣고있다.
수갑을 찬 남자는 이미 경찰차로 실려가버렸다.
몰래 실장석을 키우고있다는데에 격노한 옆집 남자가 난동을 부리자 다른 입주민이 경찰을 부른 것이다.
남자는 자실장을 잡으려고 필사적이었지만 가구의 틈을 누비며 도망치는 자실장을 잡지 못했고, 결국 목적을 이루기 전에 경찰이 도착했다.
여자의 가슴팍에는 안닌두부의 달콤한 향기와 함꼐 자실장이 자고있다.
쇠약해있었던데다가 전력으로 뛰어다녔기때문에 마치 죽은것 같았지만, 실장석의 생명력은 강했다.
「마마를 다시 만났다」라는 생각이 안을 살려두고 있는 것이었다.
일기장은 증거로 압수당했지만, 여자는 아직 보지않았던 마지막 몇 페이지를 몰래 뜯어내었다.






거기에는 사육주의 손에 의해 그 이상 쓰여지지 않았던 일기가, 자실장의 크레용 그림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자실장과 「그녀」의 늘어선 얼굴이 몇페이지나 이어져 그려져있었다.



(17/17)
「이 다음은 같이 그리자꾸나」
여자가 자실장의 뺨을 찌르자 안은 가슴에 안겨서 몸을 뒤척였다.






(끝)

















거울 속의 그 녀석 (하수)



"그 새로운 알바생이 또 열 받지 뭐야. 도움도 안 되는 주제에 건방지기만 하다니까?"

패밀리 레스토랑.
나는 친구의 푸념을 끊임없이 들어주고 있었다.

"그래? 힘들겠네."

"점장도 사원한테는 굽신굽신 아양 떨어대면서
우리한테는 대단한 것처럼 군다니까. 어차피 망해가는 낡은 체인점 점장 주제에."

"흠... 맞다, 「」. 재미있는 실장석을 구했는데 안 볼래?"





푸념에 넌더리가 나기 시작한 나는 「」가 좋아하는 실장석 이야기를 꺼낸 뒤 가게를 나온다.
전면 거울로 된 벽에 비친 나는 지쳐서 새우등이 될 지경이었다.
이러면 안 되지 하면서 등을 곧게 세우고 가슴을 편다.


・・・・・・


"재미있는 실장석이란 게 이거야? 그냥 독라... 그것도 완전히 분충이잖아."

내 방에 들어와서 실장 링갈을 보지도 않고 「」는 한눈에 간파했다.
역시 학대의 「」.
수조 안의 실장석은 감자칩을 지저분하게 탐하면서
데스데스하며 나에게 불평을 하고 있다.





수조는 내가 매일 청소하고 있어서 깨끗하다.

"언제쯤 스테이크랑 스시를 갖다 주는 데스!! 왜 이런 쓸모없는 하인에게 길러지고만 데스... 와타시는 불행한 데스우...."

적당히 먹이를 던져넣는다.
편의점 주먹밥과 콘페이토. 들실장이 죽자사자 달려드는 인간의 음식이다.

"보고 있어 봐."

수조 바깥쪽에는 큰 거울 한 장이 붙어있어서 실장석이 비친다.

안전한 수조에서 인간의 음식을 먹으면서 문득 거울을 보는 독라.

"데쟈아아아아아아앗!!! 오마에 뭘 맛있어 보이는 걸 먹고 있는 데스!!!"

맹렬하게 거울에 다가서서 항의한다.

"독라 주제에 건방진 데스!! 그것을 내놓는 데스!! 키이이이이이이익!! 그 태도는 뭐인 데스!!! 화낼 쪽은 와타시인 데스!!"





"...이 녀석은...."

"응, 이게 거울이라는 걸 이해하질 못해. 거울이라고 몇 번이나 설명해줬는데도.
그게 자기 모습인 것을 도저히 모르는 모양이야."

" '영문 모를 소리 하지 마는 데스. 얼마나 바보인 데스, 이 하인!!!'이래."

"야... 아무리 실장석이라도 보통의 지능이 있으면 금방 알아채는데? 바보도 말해주면 알아차릴 텐데...."

"응. 그렇지."

"실장석 중에서도 정말 맨 밑바닥인 녀석인가. 이 정도로 멍청한 건 신기하네...."





"쓰레기!! 쓰레기 데스!! 오마에는 쓰레기 데스!! 이제 분노를 넘어서 불쌍하기까지 한 데스!!!
자기 자신을 보는 데스!!! 그 추악한 몸으로 고귀한 와타시에게 잘도 그런 말을 했겠다 데스!!
분수를 아는 데스 이 분충 독라!!!
테쟈아아아앗!!! 태도를 고치라고 몇 번 말해야 아는 데스!!
도대체 어디까지!! 어디까지 바보인 것인 데스 오마에!!!"

거울을 향해 있는 대로 욕을 퍼부어대는 독라.

"우와... 뭐야 이거 재밌다."

"그렇지? 매일 질리지도 않고 끊임없이 그런다니까."

"너 학대짓 그만뒀잖아? 이거 나한테 안 줄래?"

"안 돼. 이놈은 거울이니까."

"거울?"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그랬어... 다른 사람은 거울이다. 남의 행동을 보고 자기 버릇을 고치라고.
나는 이놈을 보고 이놈 같은 짓을 안 하도록 조심하고 있는 거야."

"흠... 너 가끔 구닥다리 같은 소릴 하네. 이놈하고 좀 놀아도 될까?"

"상관없어."

거울 뒤로 돌아 들어가서 실장 링갈을 써서 독라를 매도하며 놀기 시작하는 「」.

"이 분충이 기어오르지 말라고 놀고먹는 주제에."

"데쟈아아아아앗!! 놀고 먹는 건 오마에 데스!!!"

"작작 좀 알아차리라고ㅋㅋㅋ 그거 거울이거든ㅋㅋㅋ."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데스우!! 어차피 분충 데스우ㅋㅋ 더러운 자기 얼굴을 잘 보는 데...
데쟈아아아아앗!! 뭘 웃고 있는 데스!!!"

"하하하하하ㅋㅋㅋㅋ 쩔어! 이놈 진짜 쩔어!!!"

"......"

갑자기 피로가 생겨서 한숨을 쉬었다.

(...설명했잖냐 「」.... '그것'은....)

"데쟈아아앗 데쟈아아아아앗!"

"데쟈ㅡ가 아니지. 분충 분충 분충!!!
언제쯤 알아차릴래? 그건 거울이랬잖아?
그건 거ㅡ울ㅡ이ㅡ야!  거! 울!
네가 남이라고 생각하는 그건 너 자신의 모습이야!!"


"......."

나는 말 없이 방을 나갔다.
















화장실의 저실장



「레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있다가, 문득 기묘한 소리가 나는것을 알아챘다.
「……뭐야, 저실장인가」
화장실의 창에 있는 화분 안에, 그녀석이 있었다.
창문을 언제나 약간은 열어두고 있었으니, 밖에서 들어온 것일까.
「레후〜」
그녀석은 그저 짖으면서 화분 안을 돌아다녔다.
집어들기도 귀찮았던 나는 그녀석을 그대로 놔두었다.

「레후〜」
볼일을 보러 화장실에 가면, 언제나 그녀석은 거기에 있었다.
무엇을 먹는지 신기하다고 생각했지만, 서서히 줄어가는 관엽식물의 잎을 보고서야 그렇구나 하고 납득했다.
「레퍄퍄」
물을 뿌리면 그녀석이 기쁘다는 듯이 짖는다.
잎이 없어지면, 가끔씩 적당한 잎사귀를 채워주거나 했다.
「레후〜」
그러면 그녀석은 늘어지는 짖는 소리를 내고는, 잎을 먹었다.

얼마 있으니 저실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줄기 중 하나에 자그마한 고치가 생겨있었다.
검색을 해보니, 저실장은 얼마간 있으면 고치를 만들고, 약 2주 정도 있으면 자실장으로 변태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한동안은 화장실에서 그녀석이 짖는 소리를 들을 일도 없다.
나는 오랜만에 조용해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다.
소변이 변기를 때리는 소리가 왠지 크게 울렸다.



어느 날 아침.
나는 화장실의 타일바닥 위에서 뭉개져 죽어있는 자실장을 발견했다.
줄기에 있던 고치는 반쪽으로 갈라져있어, 이 자실장이 그 저실장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손과 발이 생겨서, 세상이 넓어졌다는 것이 자실장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바보구나……정말로, 바보같은 생물이야……」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자실장의 사체를 치워서 화장실에 흘려보냈다.


그 이후, 나는 화장실 창문을 닫게 되었다.
찰나의 만남과 작별이 남기는 아픔을 걸어 잠그기라도 하는 것처럼.












달콤한 꿈



일년 중 가장 초콜릿이 세상에 많이 나도는 날, 그것이 바로 발렌타인 데이.
초콜릿에는 다양한 감정이 담겨져서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퍼져 나간다.
행복한 사람, 자포자기한 사람 가릴 것 없이 초콜릿에 대해서 많이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실장석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르다.
그녀들이 발렌타인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발렌타인의 며칠 후.
그것은, 아주 아주 달콤한, 일순간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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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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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쓰레기 쓰레기

어수선하게 흩뜨려진 쓰레기 봉투의 틈에서, 자실장이 교성을 올렸다.


"있었던 테치이이이!"

“잘한 데스!”



친실장과 자실장 한 마리가 그 자리로 가면, 그 자실장은 자랑스럽게 가슴을 폈다.

쓰레기 봉투 안에는 하나로 섞인, 포장지 조각, 리본 자투리,
생크림 찌꺼기, 남은 초콜릿이 들러 붙은 일회용 틀 등이 파묻혀있다.
이것이 실장석들이 찾던 것들이었다.


(몹시 추운 시기가 되면, 닌겐타치가 두고가는 밥 봉투 속에,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아마아마가 숨겨져 있기도 하는 데스...)


이 친실장은 자신의 부모에게 그것을 배웠다.
물론 그 부모도 대대로 전해 들어온 것일 게다.

매년 이 시기의 쓰레기 채집은 구더기 이외의 가족이 총출동 하는 것으로 이 일가에게 정해져 있었다.


"그 밖에도 잘 찾아보는 데스! 커다란 갈색 아마아마 덩어리와 잘라낸 찌꺼기도 있을 것인 데스!"

"정말 테치!?"

"열심히 하는 테치!"


친실장의 목소리에 두 마리의 자실장은 크게 고조되었다.


발렌타인과 관련된 쓰레기라는 것은 역시 어딘가 부끄럽다.
눈에 닿지 않도록 한밤중에 버리고 싶다.
그런 초코릿 제작자인 소녀의 마음도, 실장석들의 이른 아침의 수확에 공헌하고 있었다.

까마귀도 해가 높이 떠오르지 않은 때에는 그다지 나오지 않는다.
고양이는 추운 아침에는 활동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일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큰 기회.

가족은 흘러나오는 군침을 억누르면서, 단맛의 광산을 발굴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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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설치한 골판지 하우스로 돌아와, 수확물을 대충 음미한 후에도, 해야할 일이 있다.


"마마, 좋은 닌겐상이 온 테치!"
"데! 오마에타치, 입가를 잘 닦은 다음 전원 나가는 데스!"
“테찌!” “라져 테찌” "레후!"

실장석 가족은 각자 몸단장을 끝마치자, 출격하는 것처럼 광장으로 나아간다.


"자아~ 실장짱들의 초콜릿이에요―"
"뎃스 ♪"

"자자~ 아직 더 있으니까요―"
"텟치이 ♪"


흩뿌려진 초콜릿, 좌우로 뛰어다니는 들실장 무리.
애호파 아줌마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날짜를 지나서 가격이 떨어진 초콜릿.
반값조차 되지 않는 가격으로 판매되는 재고를 헐값에 사들여서 대량으로 뿌리고 있는 것이다.

하트 모양 초콜릿이 본래의 의미를 허무하게 잃고 공중에서 춤춘다.
계속 뿌려지는 초콜릿을 입안 가득히 넣고, 팬티 속에 챙기고, 두건 속에 숨긴 들실장들은 달린다.

흥분과 카카오 성분으로 뇌에 피가 오른 들실장 무리는 야단법석이었다.


"""오마에 그것은 와타시의 두건 왜 잡는 테치 와타시의 두건 테갸아 밟힌 테치 우지챠아아 데스우우우우우"""
(*주 : 모여있는 들실장의 소리가 섞인 것임)


이 광란 속을 정면으로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다.
현명한 친실장은 살짝 초콜릿 한 개만 훔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돌아간다.


일단락하고, 배가 불러진 들실장들이 제각기 돌아갈 무렵이 되자,
좀 전의 일가는 슬슬 애호파 아줌마 근처로 다가갔다.
흔들리는 스커트의 발밑에는 아직도 초콜릿이 담긴 봉투.
어디 까지나 일부러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실장 일가는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어머, 너희들, 무슨 일이니?"


린갈 너머로 말을 걸면 애호파 앞에서, 가족은 작은 초콜릿을 서로 나눈다.


"데에, 아마아마가 이것 밖에 구해지지 않아서, 함께 나누고 있는 데스"
"마마, 이것 굉장히 맛있는 테치!"
"마마에게도 주는 테치."

"마마는 괜찮은 데스. 이것 밖에 구하지 못했으니까, 오마에타치가 먹는 데스."

"사랑하는 마마도 먹었으면 하는 테치"
"레후― 마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레후"
"오마에타치..."


허접한 연극도 애호파가 매우 좋아하는 것.
감동의 눈물마저 흘리면서, 파우치에 들어 있는 뿌리다 남은 초콜릿을 가족 앞에 놓고는,
“앞으로도 가족이 행복해야 해.”라는 말을 남기고, 아줌마는 공원을 떠났다.


손에 쥘 수 있는 초콜릿보다, 가방에 담긴 더 많은 초콜릿.
이것을 손에 넣는 기술 또한 이 일족에게 전해진 필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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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도 마마의 자여서 다행인 테치!"
"행복한 레후―"

"오마에타치도 영리하게 살아가는 데스"
"알겠는 테치!" "레―"


달콤한 것만으로도 배가 불러져오므로 생각할 여지도 없이 행복에 휩싸인 일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한 들실장은 영리함도 체력도 발달이 빠르다.
이 일족이 생존력이 뛰어난 것은, 이러한 좋은 순환이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가 부른 친실장이 낮잠을 자기 시작하면, 자실장들은 조속히 오늘 배운 것을 복습한다.

추운 날 아침에는 맛있는 음식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날에는 많은 아마아마와, 멋진 포장지, 리본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닌겐도 많은 아마아마를 줄 지도 모른다.
걸신 들려 달려드는 것보다, 상황을 지켜보는 편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과연 마마 테치."
"그치만, 이런 날도 오늘까지인 테치?"

"그렇다면, 오늘 안에 아직 아마아마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테치."
"찾으러 가보는 테치."
"레후?"


구더기를 남겨두고, 두 마리의 자실장이 공원탐색을 위해 출발한다.



**********************************



"오네챠! 저것 좀 보는 테치!"


자실장이 가리킨 곳에는 요즈음에는 드문 철망 타입으로 설치된 쓰레기통.
그물이 찢어져 있는 그 밑바닥에는 소박하지만 시선을 끄는 포장지.
다른 실장석이라면 모르고 넘어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자매는 아침의 수확으로 포장지가 가지는 의미를 알고 있다.

저 안에는 분명 아마아마가 있다!

두 마리는 철망 틈으로, 그 작은 포장지 덩어리를 끄집어 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에너지가 충분한 자실장의 스펙은
약간의 찰과상과 맞바꾸어 짓눌리고 찌그러진 초콜릿 상자를 자실장에게 가져다 주었다.

전리품을 응시하는 두 마리.

예쁘고 본 적 없는 리본, 반짝반짝 빛나는 포장지.
그리고 코를 가까이 가져가면 알 수 있는 달콤한 향기.


"굉장한 테치."
"얼른 마마에게 보여주는 테치!"


두 마리는 전리품을 안고 부모에게 돌아갔다.



**********************************



"잘한 데스. 과연 와타시의 자 데스."

"테챠" "테에"

"오네챠, 대단한 레후―"


상자를 열어 입수한 것은 큰 물을 튕기는 종이 한 장,
짓눌리긴 했지만 아직까지는 새 것인 딱 좋은 크기의 상자,
구더기의 요로 쓰기에 좋은 사이즈의 좋은 냄새가 나는 카드,
여러 색으로 나뉘어진 감촉이 좋은 긴 리본,
그리고 큰 초콜릿 덩어리였다.
어느 것도 들생활에서는 구하기 힘든 보물이었다.


"정말 오늘은 멋진 날 테치!"


초콜릿을 발견한 포상으로 받은 리본을 두건에 단 자실장이 빙글 빙글 춤을 추었다.




**********************************




"어이, 거기 녹색."

"테치?"


그런 행복의 날로부터 3일이 지났을 때였다.
하우스 근처에서 노는 자실장 두마리를 누군가가 불렀다.


"그쪽, 그쪽의 리본단 쪽, 이쪽으로 오세요."

"테에?"


낯선 닌겐이 자매... 여동생 실장을 부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자매는 잠시 생각했다.

가까이하지 말라던 닌겐과 좋은 닌겐의 모습을 떠올린다.
가까이하지 말라던 닌겐은 한밤중에 살금살금 걷고 있었다.
며칠 전에 아마아마를 준 닌겐은 확실히...


(이 닌겐은... 팔랑팔랑 한 옷을 입고 있다.
아마... 좋은 닌겐 테치! )


치마를 입고 있기 때문에 애호파라고 판단한 자실장은,
아무런 경계도 없이 그 여성에게 접근했다.



돌연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여동생의 몸이 공중으로 잡아 올려졌다.
몸이 난폭하게 삐걱삐걱 눌러 으깨진다.


"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어어어어어어 !!!!"


닌겐의 흐려진 눈은 자실장의 리본에 쏠려 있었다.


"어째서 네가 그 리본을 달고있는거야아아아아아앗 !!!!"

"테, 테챠, 테기이이이이이이 !!!"


닌겐... 여자의 손에서 자실장이 움찔움찔 경련한다.
전신의 연골이 미세하게 균열이 가고, 조금 붙은 근육이 있을 수 없는 압력에 긴장한다.


"떼어놓는 테챠아아아! 이모우토챠가 죽는 테챠아아아아 !!!"


린갈은 없다. 말은 닿지 않는다.
그 자리에 있는 것은 그저 모두가 필사적이라는 사실뿐.


"씨발, 어째서 이 똥벌레가 그 사람에게 준 리본을 가지고거냐고오오오오 !!!"


글자가 읽을 수 있다면 리본에 살짝 쓰여진 선물을 받은 사람만 아는,
마음이 담긴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며칠 전에 휴지통에 버려져 있었던 '사실'은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어떤 하나의 사랑 이야기의 종언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여자의 눈앞에 전개되고 있었던 '현실'은

그 사람에게 전해질 것이었던 마음이 실장석에게 방해되었다는 것이다.

뒤틀린 사랑은 쉽게 광기로 변한다.
받아 들이기 힘든 사실을 외면하고, 가장 자신에게 편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 똥벌레가아아아아아아아 !!!"

"데게에에에에에에!"

"그―만―두―는― 테챠아아아아! 테에에에에엥! 테에에에에에엥!"


목에 감겨 있던 리본. 실장석의 손이라도 나름대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길이에 여유가 있었던 리본.
그 끝을 꽉 쥐고, 힘껏 힘껏 마구 잡아 당기는 여자.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혀를 내밀고, 튀어 나오기 시작한 눈에서 눈물을 흘리며 손발을 휘두르는 여동생.


"떼어놓는 테치이이! 이모우토챠! 이모토챠아아아아아아앗!"


센스가 좋지 않은 여자의 구두에 매달려 울면서 호소하는 언니.

이윽고, 여동생의 다리의 움직임이 완만해지고


"게-"


멈추었다.



"테 테치"


언니는 혼란스러워 한다.

눈앞에서 목숨이 끊어져버린 여동생.
그것을 조용히 내려다보는 닌겐.

천천히, 이쪽을 응시하는 탁해진 눈동자.
나쁜 닌겐의 눈동자.

이대로라면 자신도 위험하다.

그 자리에서 주저앉거나 당황하지 않은 것은 합격점.
그러나 집으로 도망친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마마아아아아아! 이모우토챠가 이모우토챠가아아아아아!"


달리기 시작한 자실장을 힘없이, 그러나 기묘한 열을 가지고 천천히 쫓는 여자.




**********************************



자실장이 놀러 나간 것은 친실장이 낮잠을 자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예쁜 포장지를 이불 대신으로 삼고.

자실장이 구더기실장을 걱정하지 않고 나갔던 것은 구더기 실장도 낮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쁜 카드에 누워서.


"헐"


무자비하게 찢어서 열어버린 골판지 하우스를 내려다보면서 여자는 그렇게 한마디만을 말했다.


“데, 데스...?”

"? 누구 레후? 아마아마 주는 닌겐상 레후?"

"마마, 이모우토챠가 이모우토챠가"

"데, 데에에에에 !! 저기에 매달려 있는 건 와타시의 자 데스우!?"

"살해당해버린 테치이이이이이이!!!"


혼란스러워하는 친자 앞에서 여자는 구더기 실장과 카드를 집어 든다.


"이 ●●이 당신에게 전해지기를."


중요한 말이 담긴 꽃 냄새가 나는 카드.
그 중요한 말은 구더기 실장의 똥투성이가 되어서 읽을 수 없게 되었다.


"레히이!?"

"우지챠아아아아아!?"


구더기 실장의 목을... 조금 퀭한 얼굴의 여자가 더러운 카드의 가장자리에 꽉 누른다.


"이, 분충이 내 마음에 똥칠을 한거냐아아아아아아!"

"레뿌우우우우우!"

"그만두는 데스! 그 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좋은 자인 데스! 놓아주는 데스!"


습기찬 종이 길로틴이, 가차 없이 구더기의 몸을 짓누르고 부수기 시작한다.
새 종이라면 더욱 신속하게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 자신의 배설물 때문에 습기찬 종이는, 어디까지나 완만하게, 무자비하게 구더기의 생명을 깎아 나갔다.



"레"




완두콩이 여물어서 터지는 정도로 가볍게 구더기의 목이 지면에 떨어진다.
넋을 놓는 친실장.

출렁하고 여자의 시선이 친실장에게 옮겨 간다.
친실장의 손에는 아까까지 쥐고 있던 이불... 포장지가 있었다.

한발 걷어찬다.


"구보오!"


조금 전까지 여동생이 울면서 매달리고 있었던 악취미인 구두가 친실장의 옆구리를 강타한다. 충격으로 날아가 근처의 나무에 부딪치면서, 반동으로 지면에 엎어진다.
그런 다음 머리에 내동댕이 쳐지는 여동생 실장의 시체.


"데게! 어째서 게에! 와타시가아! 뭔가 고보 고보 그만두는 데에!"


플래일처럼 휘둘러지는 끈이 달려 있는 자실장의 몸.
어중간한 무게가 가속화되어, 친실장에게는 불행하게도 치명상이 되지 않는 무수한 상처가 새겨진다.


그 때였다.


"그만두는 테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언니 실장... 남은 마지막 자실장이 전령을 담은 비명을 질렀다.
부모를 조지던 손을 멈추고, 광기에 흐려진 여자도 뒤돌아본다.

그것은 자실장에게 있어 비장의 카드였다.

아무리 무서운 오바상이 와도, 놓아줄 것이 분명한 비장의 카드.



"이거, 줄 테니까, 이제 그만하는 테챠아아아아아아 !!!"



자실장이 기특하게도 바쳐든 것은 초콜릿.




그날, 포장지에서 나온 초콜릿.
원래는 하트 모양을 하고 있었을 초콜릿.
지금은 절반 이상이 없어지고, 거기에 새겨진 이름의 흔적만 찾을 수 있는 초콜릿.
만일의 경우를 위해 소중하게 조금씩 먹고 있던 초콜릿.



여자의 마음이 담겨 있었을 것인 초콜릿.






"테?"



자실장에게 여자의 그림자가 덮인다.







어디에나 있는 사랑.

조금 영리했던 실장석 일가.

달콤한 꿈은 간단하게 종말을 고한 것이었다.










노실장



집에서 키우고있는 실장석은 녹차マッチャ라는 이름. 실장치고는 꽤나 노인네이다.
내가 철이 들 때 즈음에 가게에서 구입해 우리집에 온 훈육완료 애완용실장으로, 적어도 10년 이상은 살아왔다.

실장을 잘 아는 녀석들은 이렇게 오래 산 건 못 봤다며 대체로 놀라워한다.

의식주가 보장된 사육실장이라도 다양한 욕구를 억제하며 주인의 명령을 지키는 생활에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쌓이는 듯하고, 때문에 위석에 미세한 상처가 쌓이기 때문에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하는 모양이다.

설령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어리광을 받아 준다고 해도 결국은 실장. 오냐오냐 하다가 어디까지나 기어올라와 주인을 무시하고 분충화하여 사육주의 인내가 바닥나서 처분되거나, 욕망대로 불건전한 생활을 하다가 성인병의 집합체가 되어 역시 오래 살지 못한다고 한다.

녹차는 내가 어릴 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집에 있었기에 그렇게 신기한 실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오래 사는 특별한 이유도 짐작이 가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이 녀석 자신은 꽤나 덜렁대고 느긋한 성격이라 스트레스를 그렇게 느끼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성체가 되고나면 외견상의 변화는 없는 실장석이지만, 이녀석 정도로 늙으면 역시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노화가 나타나 있다.

눈꼬리와 입 가장자리에는 주름이 잡혀 있고, 턱 주변은 살거죽이 처져 있다. 뚱뚱해진 것이 아니고 피부 자체의 탄력이 없어지는 것이다. 살갗도 수분이랄까 기름기가 빠져나가 꺼칠꺼칠하다.

털도 윤기를 잃어 약해져 하늘하늘해지고, 절반 가까이 빠져나가있다.
되도록 탈모되지 않도록 샴푸로 감겨주는 것만 해도 꽤 고생이다.
옷도 녹색이 옅어지고, 군데군데 닳아 해어져 있다.

그런 외모이지만, 이 녀석 자신은 부쩍 머리가 둔해졌는지 신경쓰지 않는 모양이다.
몸에 밴 예의범절도 상당수 잊어버렸지만, 그다지 움직이지 않고 말소리를 내는 일도 적어졌기에 별로 곤란하지 않다.

총배설구는 완전히 조여지지 않게 되어 똥을 군데군데 흘리기 때문에 언제나 기저귀를 차고있지만, 배설량도 진짜 실장인가 싶을 정도로 적어져 있다.

하는 일이라고는 툇마루에서 쭉 햇볕을 쬐거나 마루에 앉아 멍ー하니 TV를 보는 것 정도뿐이라 마치 단순한 봉재인형처럼 얌전하다.

「이봐 녹차, 밥이다」

햇볕을 쬐는 녹차에게 내가 말을 걸자 천천히 이쪽을 바라보고,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더니 어기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먹이를 줄 때 뿐이다.
이런 점은 아무리 늙어도 실장석이라고 해야하나.

주는 것은 고구마사탕. 나이가 들어 취향이 바뀐건지 지금은 단맛이라고 하면 별사탕보다 이쪽을 먹기 좋아한다.

얼마 남지않았던 이빨도 죄다 고구마 사탕에 빼앗겨버린 주제에 먹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을 정도니까.
지금도 이빨이 없는 입 안에서 우물거리며 열심히 고구마사탕을 빨고 있다.

아아, 보라구, 침 흘리잖아.
닦아주지만 반응은 없다. 보통의 실장이라면 뭘 먹을 때에 입에 손을 대면 위협이라도 할텐데.

「너도 꽤나 입맛이 바뀌었구나. 젊었을때는 고기만 먹고 싶어했던 주제에」
말을 걸어도 묵묵히 입 안의 사탕을 굴릴 뿐 대답은 없다.

「연말 선물로 받았다가 잊고 있던 햄이 나왔을 때 네가 엄청 먹고 싶어했지만, 역시 유통기한이 2년이나 지나서 버렸더니 네가 쓰레기통을 뒤져서 다 먹어버렸지」
「……」 우물우물
「먹보짓하면 혼난다고 사흘동안 벽장에서 밥 안주고 갇혀있었는데」
「……」 우물우물

식사중이라서 그런건 아니고, 이녀석은 요즘 이쪽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가끔씩 데ー하고 짖는 소리가 나서 링갈을 들여다보아도, 의미가 있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를 보는지 알수 없는 눈을 보면 무심코 뭔가 말을 걸게 되는 것이다.

잠시 후 입 안의 사탕이 없어졌지만 또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식욕은 있는 모양이지만 먹는 양이 극단적으로 적어져 있다.

낮에 고구마 사탕을 한 알 먹고 아침과 저녁에는 온수에 불려서 죽처럼 만든 푸드를 밥그릇에 절반 정도.

요즘의 이 녀석의 하루 식사는 계속 이런 모양새이다.

햇볕을 다시 쬐려고 어슬렁어슬렁 느리게 툇마루로 향하는 녹차.
하지만 거실을 막 나오려고 하다가 그 움직임이 멎는다.
태엽이 끊어진 장난감처럼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있다.

처음 이렇게 되었을 때는 기겁해서는 실장병원에 데려갔지만, 진찰에 따르면 위석에서 내는 펄스가 약해진 것이라, 일정시간 펄스의 발생이 멈추는 모양이다.
몰랐더라면 저대로 죽었다고 착각해서 그대로 장사지낼 뻔 했다.

그 이후에도 프리즈 현상은 자주 일어났고, 점차 횟수와 시간도 늘어났다.
그 동안에는 쿡쿡 찔러봐도 뭘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어쨌거나 여기에 서 있으면 방해되니 안아들고 툇마루까지 옮겨준다.
…꽤나 가벼워졌구나. 옛날에는 좀 더 묵직했던 느낌이었는데.

잠시 후 렉이 풀리고 동작을 재개해서 다시 걸어나가려 하지만, 어느새 이미 툇마루까지 와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이상하다는듯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이고 그 자리에 드러누워 해가 질 때까지 거기에서 햇볕을 쬔다.

저녁식사 후에는 목욕하면서 씻어준다. 도무지 날뛰질 않으니 편하다.
옛날에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도 하고, 오랫동안 샴푸로 거품을 내면서 놀기도 하고, 데후훙데후훙 큰 소리로 음치인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노느라 손이 많이 갔는데.

머리털이 마를 즈음에 잠자리에 놓아주면 그대로 죽은듯이 잔다.
문득 잠자리 옆에 놓여있는 고무공과 블럭, 미니카 등의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기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
슬슬 처분하거나 다른 실장을 키우는 집에 주는 게 좋을까…
언제나 그렇게 생각하지만 결국 그냥 내버려 두게 된다.

노실장이 된 녹차의 하루는 대개 이런 식으로 끝난다.


그리고 언제까지나 그런 나날이 반복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녹차에게도 마지막 시간이 찾아왔다.

어느 날 프리즈한 그대로 두 번 다시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다.
자주 있는 일이라고 가족 전원이 방치해 두었지만, 정말로 죽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은 멈추고 나서 꼬박 하루가 지나서였다.

가족 전원이 떠나가는 녹차를 둘러싸고 마지막 말을 나누기로 했다.
나 스스로 어렴풋이 그리고 있던 임종과는 전혀 동 떨어진 갑작스런 종막.

나름대로 쓸쓸하긴 했지만, 왠지 그때는 그렇게까지 슬프진 않았다.

다만 며칠이 지나 녹차의 사진 앞에 놓인 유품인 위석과 머리털 뭉치를 보았을 때에 하마터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정이 복받쳤지만, 그것도 그 정도 뿐이었다.

굉장히 드문, 천수를 다한 실장석.

녹차 자신은 최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렇다고 해도 저 모습으로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죽었을지 어땠을지도 알 수 없지만.

상자에 담긴 녀석의 위석. 금 하나도 나있지 않지만, 완전히 타버린 숯처럼 새하얗게 되어 있다.

왠지 모르게, 수고했어, 하고 한 마디 건네면서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산실장의 사계



「데데엣…데엣스ーーーー웁!!」
우구욱
「테후ー♪」「테후ー!♪」「텟츄ーーー우!♪」

산 속 계곡에 흐르는 개울에, 지금 한 마리의 산실장이 출산의 때를 맞고있다.
한쪽 귀가 먹힌 모습이니, 이 개체를 짝귀ミミカケ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미 몇 마리의 자실장이 태어나, 테후테츄 하면서 태어나는 소리를 내면서 물 속에서 꿈틀거리고있다.

풍덩풍덩풍덩
「텟후ー웃♪」
풍덩「텟후ー웅♪」「텟츄ー웅!♪」「데엣…뎃스우ー…」

전부 6마리를 무사히 낳은 짝귀는 안도의 표정으로 새끼를 물에서 집어들어 핥기 시작한다.
4마리, 5마리를 핥고 나서, 마지막 6마리째를 손에 들더니…짝귀의 표정이 갑자기 흐려진다.

「테후ー테후ー, 텟치ーー♪」

녹색의 점액을 없앤 새끼의 하반신, 거기에는… 추한 고기막대가 붙어있다.
6마리 째의 새끼는 마라실장이었다.
잠시동안, 고뇌하는 표정으로 그 새끼를 바라보던 짝귀였지만…

「데엣스ーーー웃!」 휘익
「텟푸ーーーー웃」 첨벙

갑자기, 새끼마라를 개울을 향해 던져버렸다.

「텟후ー! 텟후ーー! 테후테후테치ーーーー!!」

물줄기에 따라 흘러가는 마라자실장…
잠시 첨벙첨벙 허우적거리지만, 이윽고 물 속으로 모습을 감추고…

풍덩풍덩
꼬르륵「테푸우………」

수면 아래에 물고기 비늘의 반사광이 반짝임과 동시에 가라앉아 보이지않게 되었다.

「데스…」
복잡한 표정으로 수면을 바라보던 짝귀였지만, 마음을 다잡은듯이 남은 새끼들을 돌아보았다.
「테츄테츄테치ー」「텟츄ー우♪」「테후테후테치이ー」
태어난지 몇분 만에, 자실장은 이미 일어서 걸어다니고있다.
「데엣스ーーー!」「「「「「텟츄ー우♪」」」」」
짝귀는 아이들에게 호령을 붙이며 개울을 떠났다.
막 태어난 자실장을 노리는 것은 굶주린 동족만이 아니다.
야생동물, 특히 개과의 짐승과 까마귀 등은 새끼의 맛을 들이면 몇번이고 공격해오는 천적이다.
막 태어난 새끼는 즉시 둥지에 숨기지않으면, 순식간에 전멸하지 않을수 없는 허약한 존재이다.
짝귀는 그 사실을 잘 알고있었기에, 발이 엉키는 자실장들을 서둘러 둥지로 데려갔다.
계절은 아직 쌀쌀한 봄.
산실장의 1년, 그 가혹한 사계는 아직… 시작했을 뿐이다.



실장석은 태어나서 짧으면 2개월 정도로 성체까지 성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쓰레기 등의 인간의 남긴것을 먹는 들실장의 이야기이고, 산나물과 과일 등을 주식으로 삼는 산실장은 그 정도는 아니다.
거의 필요최저한의 영양밖에 얻지 못하는 산실장의 새끼는, 성체가 되기까지 반년 넘게 필요하다.
그 긴 성장기간에 있어, 실제는 7할 가까운 자실장이 덧없이 목숨을 떨군다.
탄생에서 1개월 정도 지난 초여름, 짝귀의 새끼도 역시 수가 줄어들어있다.

우선 1주째에, 호기심이 왕성했던 나머지 둥지에서 몰래 밖으로 나간 새끼가 잡혀먹혀 죽었다.
산실장의 콜로니에는 공동생활이라 할만한 수준의 협업이 보이는 케이스가 많다.
그렇다해도 어미의 보호가 없는 새끼가 그 자리에서 다른 동족의 먹이가 되어버린다는 점에는 도시의 실장과 차이가 없지만…
하지만 짝귀의 새끼는 동족이 아닌 여러 마리의 까마귀에 공격당해 죽은 것이다.

잔뜩 쪼여서 구멍투성이인 새끼의 사체를 앞에 두고, 짝귀는 『분부를 지키지 않는 자는 이렇게 되는데수우!』하면서 다른 새끼들을 겁주었다.
「테…테츄우ー」「테츄ー웃!」「텟츄ー우!」「테…테치이이」 덜덜 부들부들
어미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또는 무시하는 자실장은 결과적으로 오래 살지 못한다. 키우면 키우는 만큼 먹이의 낭비이다.
본능적으로 그 점을 알고있는 짝귀는, 슬픔을 참으면서 다른 새끼들에게 교훈을 전하려고 했다.
4마리의 새끼 가운데에서도, 두번째로 태어난 자실장은 특히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있었다.
몸은 다른 자실장과 비해도 크고, 가르친 것을 이해하는 능력도 높다. 자매들을 돕는 상냥함도 있다.
이 자실장을 2번이라고 부르기로하자. 마찬가지로 다른 자실장을 1번・3번・4번이라고 부르자.
2번은 어째서 자매가 죽었는지, 계속 생각했다.

…저 자는 밖을 보고싶어했다…
…그래도 마마는, 밖에는 『위험』한게 잔뜩 있으니까 나가면 안된다고 했다…
…『위험』이 무엇인지, 와타시는 왠지모르게 짐작했지만…
…저 자는 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까만것에 쪼여서 먹혔다…
…『위험』을 알지못하면 안돼…

자매의 무참한 주검 앞에서, 2번은 그 교훈을 확실히 기억했다.



35일째에는 3번이 사라졌다. 동료에서 떨어져 혼자 있던것을 솔개가 채어간 것이다.
어느정도 자실장이 성장하여 둥지에서 나가도 괜찮게되면 무리의 친실장들은 집단으로 식량채집에 나선다.
성장한 자실장이라해도 15cm 정도이기에 아직 단독으로는 연약하다.
그렇기에 무리에서 동시기에 태어난 자실장들은 어른이 없는 동안에는 새끼들끼리 모여 군생지rookery를 형성한다.
새끼의 집단 안에 위험에 민감한 개체가 있으면, 다소 둔한 다른 개체도 위험으로부터 도망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다해도 너무 둔하면 필연적으로 적의 먹이가 되어 도태되어버린다.
3번은 기운차긴 했지만 위험에 대해 너무 둔감했다. 동료끼리 모여 둥지가 있는 산중턱 부근을 떠나려고 하지 않는 다른 자실장들을 「테프프프〜」하고 비웃고 모험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테츄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엣!!」
동료가 들은 3번의 목소리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하늘에 휘익 하고 그림자가 지나친 순간, 자실장은 날카로운 발톱에 잡혀서 하늘 높이 끌려가버렸고… 두번 다시 둥지로 돌아오지 않았다.

「데ー… 데엣스…」
돌아온 짝귀는 또다시 한 마리의 새끼를 잃었다는 것을 알았다.

…동료와 함께 있으면 위험에서 도망치기 쉽다…
…동료가 공격당해도 와타시는 그 동안 도망칠수 있으니까…
…그걸 알지못했던 그 자는, 하늘을 나는 것의 먹이가 되었다. 동료와 함께있는것은 중요…

2번은 공포로 떨면서, 그 점을 확실히 깨달았다.



자실장의 탄생에서 3개월이 경과한 6월. 짝귀의 새끼들은 신장 30cm 정도로 성장해있다.

「테츄테츄〜」「텟츄ーーーー우!테츄, 테ーー엣츄」「데엣스우ー」「테치이이이ー」

친자가 사이좋게 식사를 하고있는 저녁무렵, 산실장의 콜로니에 사건이 벌어졌다.

「뎃갸아아아아아아ーーーーー 앗스!!」「데, 데스!?」「텟츄우우ーー!! 테제에에에ー엣」

한 둥지에서 갑자기 들려온 비명. 외적의 침입인가 하여 무리 전체가 긴장했다…하지만.
2번이 본 것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움직이지 않게 된 새끼들 앞에서 주저앉아 우는 친실장.
점액투성이로 지면에 구르는 자실장들… 그 몸은 기괴하게 뒤틀려있었다.
그리고 무리의 어른들에 붙잡혀있는 한 마리의 자실장.

「텟츄우ーーーー웃! 테ーーーー엣츄!」

어째서 이런 처사를 받는지 모르겠다, 라고 외치는 그 사타구니에는 기묘한 물체가 나있었다.
마라인데스, 하고 짝귀가 중얼거리는 것을 2번은 들었다.
마라는 키우면 안된다, 그것은 이 무리의 규칙이다.
흘러들어온 마라실장이 무리를 지배하는 일은 있어도, 무리에서 태어나 자란 마라실장이라는것은 없다.
산실장의 새끼에 마라가 나있을 경우, 대부분은 짝귀가 한 것 처럼 금방 어미에 의해 죽임당한다.
성욕을 최우선으로 행동하는 마라실장은, 무리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텟츄아ーーーー앗! 테츄테츄테지이이이이이ーーーー!!」
「데엣스! 데스데스ーーー」「데쟈아아아아!!」

마라자실장은 2번도 잘 아는 놀이동무였다.
어제까지도 수상한 행동은 아무것도 하지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 앞에서 외치고있는 새끼는, 마치 다른 인격같았다.
흉폭한 무언가에게 씌인것처럼.

와타시는 나쁘지 않은데스우, 저녀석들은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게된데스우 하고 외치고있다.

아마도 갑작스럽게 마라실장의 본능이 눈을 뜬것이리라… 본능이 시키는대로 자매를 범하여 죽게한 자실장.
어른들은 무리의 장로실장 앞에 마라자실장을 끌어냈다.
슬픈 표정으로 새끼마라를 한번 쳐다본 장로실장은…

「데스…데스데에에ー…」 어쩔수 없으니… 슬픈 일로 하는데스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무리의 어른들은 손에 돌을 쥐고는 마라자실장을 향해 일제히 던졌다.

「데스ー! 데스!」「데ー엣스! 데스ー!」「데스! 데스!데에엣!!」
「테지이이이이이이ーーー잇!?테엣지야아아아아ーーーー앗!!테에에에ーーーーーーーッ」
퍼퍼퍼퍽

돌에 맞아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는 마라자실장… 필사적으로 외치지만, 멈추는 자는 아무도 없다.
2번 옆의 짝귀도 돌을 던지고있다. 그 옆얼굴은 딱딱한 무표정으로 보였다.

「테에…지이이…」
지면에 쓰러져 움찔움찔 경직하는 마라자실장에 장로실장이 다가가더니, 가슴팍에 뾰족한 돌을 대고…
「데에!」「테츄욱」 콰직
위석을 부쉈다. 그것을 마지막으로, 마라자실장은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데에아아아아ーーーーー앗! 데엣즈우우우우우우우ーーーーー!!」

새끼마라를 포함하여, 모든 새끼를 잃은 친실장은 완전히 발광하여 울음을 터트렸다.
그것을 위로하는 자도 없이, 동족들은 자신의 둥지로 돌아간다.
둥지에 돌아온 2번은 지금 벌어진 일을 생각했다.

…저 자는, 자신의 자매에게 해선 안되는 일을 했다. 그러니까 슬픈 일을 당했다.
…『마라』는 위험한 것. 무리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
…자신의 아이라 하더라도.

동족이라해도 위험한 존재라 할 수 있는것에 대해, 2번은 실감했다.
죽은 마라자실장은 누구 하나 먹는 자도 없이, 그 밤 동안 개울로 옮겨져 버려졌다.
발광한 친실장은 다음날 아침, 위석이 부서져 죽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쪽은 누군가의 위장으로 들어갔다.



약 반년이 경과한, 어느 날의 산실장 콜로니.
「데엣스ー!」「데스ー읏」「데슷」
짝귀는 두 마리의 아이들을 이끌고 식량수집에 나섰다.
살아남은 자실장, 2번과 4번은 이미 성체와 마찬가지의 사이즈까지 성장하여 짝귀의 뒤를 따라 산길을 오르고있다.
결국, 1번은 어른이 되지 못했다.
여우, 너구리, 야생동물에 잡혀먹힌 것이다.
남은 아이들은 무럭무럭 성장하였고, 짖는 소리도 새된 자실장의 그것에서 데스우 하고 확실히 울리는 소리로 되어있다.

「데ー엣…데스뎃스」「데슷」「데ー엣스」 갑자기, 짝귀가 아이들을 불러모은다.

주위에 있던 산실장들도 각자 그늘에 숨어 숨을 죽이고있다.
그 시선 끝에는…「데에ー…」 멧돼지가 있다.
코끝으로 땅을 까뒤집으며, 버섯인지 무언지를 먹고있다.

저녀석이 날뛰면 손을 댈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냥 지나치게해라.

짝귀는 작은 소리로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멧돼지는 산실장을 포식하지는 않지만, 어쩌다가 화나게라도 하면 박살나는것은 산실장 쪽이다.
다행히 멧돼지는 산실장을 눈치채지 않고 잡목림으로 달려갔다.
「데ーー엣…」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량채집을 재개하는 산실장들.
짝귀는 멧돼지가 먹다 남긴것이 없는지, 까뒤집힌 흔적을 조사하고있다.

그리고 1시간 후…
「데엣스! 데스데스!」「데엣스우ー!」
동료들이 슬슬 이 자리를 떠나려고 하고있지만, 짝귀는 집요하게 탐색을 계속하고있다.
2번은 모친에게, 여기를 떠나자고 알리지만 그녀가 움직일 기색은 없다.
4번도 그 옆에서 모친이 하는 것을 흉내내어 버섯을 두 팔로 안고있다.
「데엣스ー, 데프프☆」

위험해, 하고 2번은 생각했다.
동료들은 닝겐의 낌새가 난다고 하고있는데, 마마는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바람에 실려 들큼한 향기가 나는 연기가 떠돈다.
그것은 닝겐이 쓰는 자동차라는 물건이 내는 연기로 닝겐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증거이다.
그것을 알려준것은 마마였으면서…
2번은 안절부절 하면서 모친과 여동생을 바라보있다.

이젠 슬슬 돌아가지않으면 위험하다.
『위험』한데!

짝귀는 몇 번이나 겨울을 넘긴, 산실장으로서는 경험을 쌓은 현명한 개체였지만…
하지만 세상에는 그녀가 모르는 위험이 아직도 많이 있었다.

갑자기…「뎃갸아ーーーー악!!」 철커덕ーーーー 

마른 잎 위에 발을 들인 짝귀는, 거기에서 튀어나온 덫에 몸이 끼어 절규한다.
대나무로 된 짐승덫이 그 몸과 발을 깊숙히 파고들고, 그녀는 거기에서 도망치려고 발버둥친다.

「데에ーーーー엣! 데스우우우우ーー!?」
「뎃갸아ーーーー! 데스데스데갸아아아ーーーー앗스!!」

갑작스런 일에 놀란 4번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모친에 달려가 도우려고 하지만…

「데ー엣… 데데에에ー!?」

산실장의 힘으로는 용수철 장치의 덫을 밀어열어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
잡힌것이 몸통이어서야 잡아뜯어내고 도망칠수도 없다.
산실장 포획을 위해 만들어진, 정교한 장치이다.
지금까지 짝귀가 인간이 쓰는 덫에 대해 몰랐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가 아는 위험한 존재는 대부분이 금속제였고, 그 존재를 감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짝귀의 자유를 빼앗고있는 것은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거기에 주위의 흙을 발라 냄새 등의 조짐을 보이지않도록 공들인 물건이었다.

「데데ー엣스! 데스데스데엣스우ー!!」 오네쨩은 뭐하고있는데스, 빨리 마마를 돕는데스우!

필사적으로 덫을 떼어내려고 용을 쓰면서, 4번은 2번을 불렀다. 하지만 2번은 도우려고 하지않는다.

뭐하는거야, 저 아이는… 마마는 이젠 틀렸다는걸 어째서 모르는거야?
『위험』한데. 지금도 또한 『위험』하다. 닝겐은 벌써, 저기까지 와있는데도!

그녀는 계속 생각했다.

와타시는 이미 어른, 마마가 없어도 동료들에게 먹힌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옆 둥지의 아이는 자신의 어미에게 쫓겨났다. 그 어미에게 새로운 아이가 생겼기때문이다.
와타시도 장차, 자신의 아이를 가진다면 그렇게하겠지.
그래도 그 전에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런건 싫어! 『위험』에서 어서 도망치지않으면!!

「데엣!」「데엣스으!?」 2번은 모친과 여동생을 남기고, 쏜살같이 도망쳐갔다.

닝겐의 낌새는 이미 그녀도 확실히 알수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다.
발걸음, 냄새, 그리고 대화소리.

그리고…「오오, 걸렸네 걸렸어. 이 시기의 산실장은 통통해서 최고라니까」

「어라, 아이도 있잖은가. 이거 일석이조구먼」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2번의 귀에, 「데에에에에ーーーーーー엣!!」 여동생의 비명이 작게 와 닿았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땅도 숲도 눈에 덮여 하얗게 얼어붙고, 차갑게 잠을 잔다.
그런 얼어붙은 산에서, 「데엣스, 데엣스ー」 한 마리의 산실장이 아직도 활동을 계속하고있다…
바로 그 2번이다.
지금은 완전히 성체가 되어, 산실장의 평균보다도 큰 몸집을 자랑하고있다.
이미 무리의 동족은 겨울의 도래에 불가피하게 동면하지 않을수 없었다.
애초에 곰같이 생리적으로 동면하는 기능을 갖춘 생물과는 다르기에, 실장석은 동면이라는 관습이 없다.
재생기능은 높지만 생명유지에 소비하는 칼로리도 무척 높은 실장은, 원래는 연중 활동하는 생물이다.
실제로 도시에서 서식하는 들실장은 인간이 버리는 쓰레기를 연중 먹을수 있기에 동면하지 않는다.
산실장이 동면의 흉내를 내는것은, 순수하게 식량사정이 연중 활동을 허락치 않는것 뿐이다.
그리고 장기간 식량을 섭취하지않고, 잠자는 채로 신체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실장석에 있어 고행이다.
만약 봄의 도래가 늦으면 재생기능의 한계를 넘겨 눈뜨지 못한 채 죽음을 맞기도 한다.
무사히 겨울을 넘겨 눈을 뜰수 있을지 여부는 상당부분 운에 따른다.
눈을 떴을때 식량을 찾으러 갈 체력이 있을지 없을지도 문제가 된다.

게다가 눈을 뜨는것이 다른 개체보다 늦으면 배고픈 동족에 의해 최초의 식사가 되어버린다.

2번 역시 그 사실을 인식하고있다.
모친인 짝귀로부터 물려받은 지식과, 그것을 이해하는 능력 덕분에 그녀는 무리의 동료보다도 위험에 잘 대처할수 있었다.

이미 충분히 몸 안에 영양을 축적했지만, 아직도 불충분하다고 그녀는 느끼고있다.
눈을 떴을때에 금방 먹을수 있는 것이 있다면, 춥지 않은 시기가 왔을 때에 도움이 된다.
동료들은 눈 아래에 묻힌 먹을것을 찾지못해 포기해버렸지만 와타시는 다르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기억해두기만 하면 된다.
눈을 팔 나뭇가지도 제대로 준비하고있다.

데프프프 웃으면서 2번은 눈덮인 산의 능선을 오르고있다.
그녀는 분명히 똑똑했다.
아마도 실장석으로서는, 기대할수 있는 최고의 지능을 가지고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경험이 부족했다.
아니, 지식에 대한 겸허한 자세가 결여되어있다.

단독행동이 위험하다는 지식은, 자실장 시절에 이미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체가 되자 그 지식을 가볍게 여기고있는 것이다.

이전에 그녀가 외적으로부터 도망칠수 있었던 이유는 대신 당해주는 동족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성체가 되어 자실장과 비교해 격이 다른 체력과 행동력을 얻은 2번은 그 사실을 경시하고 단독행동을 하게되어버렸다.

결국 그것이… 그녀의 목숨을 재촉하였다.

「데엣스!뎃스스우ー♪」 산의 능선에 새의 사체를 발견하고, 2번은 무심코 발을 멈추었다.

스코프 안에서 조준이 서서히 2번의 모습에 겹쳐지고, 그리고…

「…데깃!?」 갑자기… 2번은 몸을 꿰뚫는 충격과 격통에 신음했다. 살그머니, 그 자리에 손을 대보자…
「데에엣!?」 몸통의 한가운데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다. 체액이 멈추지않고 흘러나오고, 의식이 멀어진다.

왜, 어째서? 무슨일이 일어난거야? 아파, 아파 아파! 어째서 이런 일이, 어째서!!
멀리서 타앙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2번은 그 소리와 격통의 관련을 생각할 힘이 없었다.

「데엣…갸아아아아아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악 !!」

절규와 함께… 2번은 눈이 쌓인 경사를 굴러떨어졌다…

「오오, 맞았구먼. 역시 영감은 명인이랑께」
「산탄총 35년, 라이플 20년, 산실장 쏘기는 40년이나 했응께, 경력이 다른기라」

2번을 쏘아 쓰러뜨린 사냥꾼은, 만족스러운듯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말했다.
겨울은 점점 지독함을 더하고 있다. 유례없이 쏟아져내리는 눈은 산도 들도 하얀 묵직함으로 덮어간다.
대체 몇 마리의 산실장이 얼어붙은 계절을 살아남을수 있을것인가… 그것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애호







마마 제발 받아달레후






탁아 (녹색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