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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에서 시작되는 행복한 실장석의 삶 (참피네버엔딩)


"테챠아아악!!!"

자실장들이 비명을 지르며 핏덩이로 변해 굴러가는 걸 보며, 그녀는 무너지듯 쓰러져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어째서인데스... 분명히 계획은 완벽했던데스... 어째서 실패한데스...."

색색의 눈물을 흘리며, 오로롱 오로롱 울지도 못하고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리는 그녀의 앞에 짙은 초록색의 장화가 불쑥 나타났다.
이곳,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야산에서 무리를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실장 콜로니를 수 분만에 박살내고 방금 전까지 살아남은 실장들을 자루에 쓸어담고 있던 증오스런 인간의 신발이다.
그것을 떠올린 그녀는 이를 악물로 고개를 치켜들며 일어섰다.

"어째서인데스! 싸움도 없이 모두가 단결한데스! 야옹씨도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단결한데스! 까악씨도 물러날 정도로 단결한데스! 우리는 하나로 뭉친데스! 우리는 무수히 많았던데스! 그런데 어째서 닌겐 한 명에게 이길 수 없는데스...?"

마지막에 가서는 흐느끼듯 말을 흐리고, 그녀는 오열하며 주저앉았다.

"오로로로롱... 분명히 쫓아낸데스... 분명히 닌겐에게도 이겼던데스... 오로로롱"

그녀의 말을 듣고, 남자는 입가를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슬쩍 들어올리고 링갈을 가동했다.
이 실장석이 하는 말을, 그 뒷사정을 그는 모두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말하는 [어째서]에 대답할 수 있었다.

"너희와 인간에게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없는데스... 와타시타치와 닌겐들은 다르지 않은데스... 힘없고 무력한데스... 혼자서는 할 수 있는게 없기에 단결하는데스... 배운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데스... 도구도 사용할 줄 아는데스... 힘들 때는 놀면서 힘든 것을 잊는데수우... 우리들은 다르지 않은데수우... 오로로롱"

그녀의 말을 듣고,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실장석은 하나만 알고,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존재의 특성에 대한 것을 듣고, 인간을 모방해 군집을 이루면 인간만큼 성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모양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그녀들은 인간과 같이 천적을 구축해내지 못했고, 인간과 같이 문명을 이루지 못했고, 인간과 같이 발전을 구가하지 못했다.
확실히 이 콜로니의 보스로 군림하며 그녀가 세운 계획-단결하고, 모두가 따르는 강력한 규칙을 제정해 지키게 만들어 인간과 같이 발전을 꾀한다는 계획은 겉으로 보면 가능성이 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다. 문제의 원인을 탐색하고, 그것의 해결방법을 모색한다. 그렇게 얻은 문제해결의 지식을 후대에게 교육으로 전달한다. 이 실장석들은 고양이와 까마귀를 쫓아내는 방법, 인간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방법,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문제 해결방법을 발견하고 교육으로 후대에게 전달했다. 그녀들의 교육이 완전하지 않다고 할 지도 모르지만, 그녀들은 착실하게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후대로 전달하며 다음 세대의 실장석들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인간 하나하나는 자연 앞에서 대단하지 않다. 하지만 사회를 이루고, 무리를 이룬 인간은 자연현상을 뒤틀 정도로 강력해졌다. 물론, 그렇더라도 아직 자연의 폭력에 무력하다는 것은 변하지 않지만. 이 실장석들도 무리를 이루었다.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는 고양이나 까마귀는 물론이고 학대파 인간들도 그들이 싫어할만한 요소(주로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운치구덩이)를 이용해 물리쳤다. 확실히 그들은 강하게 단결하고 뭉쳐 있었다.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사회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장석들은 확실한 계급체계에 입각하여 견고한 사회구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최하층의 독라들부터 최상층의 보스까지 흔들리지 않는 수직형의 피라미드 구조는 인간사회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단단한 결속력을 자랑한다.

인간은 유희적 존재다. 스트레스에 취약하지만, 그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즐거운 일에 몰두할 수 있다. 노래하고 춤추고, 오락을 즐기며 힘든 일을 잊고 자신의 한계보다 더 너머에 있는 것들을 이루어낸다. 이 실장석들도 유희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풀고, 대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로 파킨하지 않도록 나름대로의 체계를 갖춘 놀이문화를 이루었다. 인간들의 관점에서는 원시적이고 볼품없을지 몰라도 그네들의 관점에서 그 유희들은 확실히 즐겁고 스트레스를 줄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윤리적 존재다. 본능의 욕구를 이겨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에 당당히 맞서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내는 존재다. 이 실장석들도 사육실장의 꿈을 접고 인간을 천적으로 인식하며 철저하게 자신들의 사회구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윤리라는 것은 상대적이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소속된 사회의 구조를 뒤흔들어 혼란을 초래하지 않고 평온을 유지해준다면 그것은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실장석들은 그들만의 규칙에 충실하여 불필요한 혼란에 흔들리지 않았고 끝이 없는 식욕과 새끼들을 낳겠다는 번식욕을 억누르고 무리의 존속을 위해 자신을 제어할 줄 알았다. 그 모습은 확실히 윤리적인 존재라 하기 부족함이 없다.

인간은 도구적 존재다. 인간의 맨몸은 자연을 앞에두고 무력하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인간은 도구를 사용했다. 자신의 힘보다 더 큰 힘을 내기 위한 도구들을 사용했다. 이 실장석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돌을 이용해 딱딱한 열매를 깨서 먹었고, 높은 곳에 있는 열매를 따기 위해 긴 나뭇가지를 이용했으며, 천적을 물리치기 위해 썩은 냄새가 풍기는 똥을 던지고 그 사이사이에 돌을 섞어 천적을 물리쳤다. 그 모습을 보면 평범한 이들은 꽤나 도구를 잘 사용하는구나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보스 실장석은 결정적인 차이를 놓치고 있었다.

"다르다. 너희와 인간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뭐인 데스! 우리는 도구를 쓴 데스! 규칙도 지킨데스! 뭉친데스! 스트레스도 푼 데스! 교육도 잘 한 데스! 인간과 똑같은 데샤아아악!!!"

발작적으로 소리지르는 실장에게 남자는 손에 든 정글칼을 들어보이며 담담하게 그 실장석이 착각하고 있는 것을 말해주었다.

"너희는 도구를 쓴다. 하지만 도구를 만들지 않는다. 인간은 도구를 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좋은, 더 많은 도구를 만든다. 너희에게는 결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동]이 결여되어 있다. 사회를 이루고 인간을 흉내낸다고 한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노동하는 존재]라는 본질을 꿰뚫지 못하면 인간과 같은 발전을 얻을 수는 없다"

"데...."

원숭이도 도구를 쓴다. 개미굴에 나뭇가지를 찔러넣어 딸려나온 개미를 핥아먹는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도구를 만들지 않는다. 그저 그곳에 있는 자연의 은혜를 이용할 뿐.
이 실장석들도 도구를 쓴다. 고양이를 퇴치하기 위해 돌을 줍고, 열매를 깨기 위해 돌을 챙기고, 나무열매를 따기 위해 긴 나뭇가지를 찾아 주워서 쓴다. 하지만 새로운 도구를 만들지는 않는다.
인간은 돌을 손으로 던지고 휘두르는 것보다 나무에 달아서 쓰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아 돌도끼를 만들었다. 돌을 그냥 쓰는 것보다 갈아서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아 돌을 가공했다.
인간의 본질, 도구적 존재는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를 말하는게 아니다.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다.

"자연이 너희에게 준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너희는, 자연을 [필요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사용하는 인간과 같을 수 없다. 너희는 잘 따라가봐야 원숭이다. 심지어 신체조건도 나쁘니 그 이하라고 해야겠군"

"그런....데갸아아악!!!"

뭔가를 더 말하려는 보스 실장을 정글칼로 내리쳐 팔을 뭉개고 더 떠들지 못하게 한 후 자루에 담고, 남자는 숨을 고르며 머리를 젖혀 피냄새가 가득한 공기에 진저리쳤다. 실장석의 피냄새에 짙게 뒤섞인 분변의 악취에 머리가 울리는 것 같다.
나름대로 영리한 실장석 콜로니인 것 같지만, 자신들의 무리가 다른 무리에게 주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패착이었다. 이들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불쾌함을 느낄 정도로 소란을 피우고 악취를 풍겼기에 결국 이렇게 구제가 시행되었다.
처음 그들을 찾은 구청 구제요원들을 영리하게 피해 거의 구제되지 않았기에, 구청에서는 전문 구제사에게 의뢰를 넣어 이들을 구제하기로 했다. 그 결과 찾아온 것이 이 남자. 영리한 실장콜로니 전문 구제업자 겸 실장석 납품업자다.
개인 사업자이기에 소득 대부분을 은밀하게 탈세하고 있다는 것은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이지만, 관청에서의 의뢰에 무상으로 응하기에 곤란한 세무조사는 나름대로 잘 피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수많은 실장콜로니들, 그것도 영리한 콜로니들만 박살내다보면 듣는 레퍼토리는 늘 비슷하다.
"우리도 닌겐들과 같다"
"우리도 생명이다"
"우리는 조용히 있었다"
"우리는 살아갈 권리가 있다"
등등
요는 [너는 뭔데 날 죽이냐]를 포장해서 말하는 것일 뿐이다. 영리하고 똑똑한 척 하지만 자연계의 가장 기초적인 법칙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녀석들이다.
이번에 걸린 녀석들도 예외없이 판에 박힌 말만 해대는 실장석들뿐. 애호파거나 하다못해 무관심한 사람이었다면 나름대로 놈들의 말을 듣고 감탄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을 구제하며 학살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말들이다.

실장석들이 소란을 피우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실장석들이 민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왔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실장석들이 조용히 숨죽여 살아왔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실장석들이 개념을 갖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교섭. 거래라는 것은 양자가 적어도 대등한 힘을 갖고 있거나, 한쪽의 부족한 힘을 제 3자가 채워줄 수 있을 때나 성립하는 것이다.
국가가 감시하는 사회체제 안에서의 거래가 그러하고, 국제기구가 감시하는 국가간의 거래가 그러하다.
만약 국가의 감시가 없다면 자신보다 힘-어떤 종류라도-이 약한 이들과 거래를 할 사람은 없다. 빼앗으면 그만이니까.
만약 국제기구의 감시가 없다면 자신들보다 약한 국가와 조약을 체결할 국가는 없다. 약탈하면 그만이니까.
초기 상인, 바이킹들이 그러했고 마적들이 그러했고 서구 개척민들이 그러했다.
실장석들이 어떻게 살아왔건, 어떻게 살아가건, 어떤 마음을 가졌건, 인간들에게 목숨을 구걸하려면 힘을 가져야 한다.
인간들과 대등한 테이블에 앉을 수 없는 상태인 실장석들이 인간의 행동을 상대로 이유를 묻고,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자연계에서 맹수가 초식동물의 말을 듣고 물러나 주는가? 어림없는 소리.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보면, 사실 실장석이라는 종은 분충들이 똑똑하고 영리한 놈들은 멍청하고 생각해야 한다.
분충들은 적어도 [강한 힘을 가졌으니까 마음대로 한다]는 생명의 법칙은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약한 독라를 서슴없이 괴롭히고 쓰러뜨리며, 힘이 빠진 동족을 거침없이 유린하고 필요한 것을 빼앗아간다.
영리한 놈들은 풍요로울 때는 잘 살아가지만, 힘이 빠지는 순간 먹혀버린다. 분충들을 상대로 애원하고 소리지른다고 한들 그들이 살려줄까? 힘없는 독라들을 노예로 삼지 않고 외면한다고 그 독라들이 굶주린 영리한 놈들을 먹지 않고 살려줄까?

"정말이지... 실장석은 구제할 길이 없이 멍청하구나"

간만에 건져올린 실장석들을 가득 담은 자루를 질질 끌고 떠나며 남자는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남자가 떠난 뒤, 피냄새와 운치냄새에 뒤덮여 있던 덤불에서 성체실장 하나가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위석 감지기를 사용하는 남자였지만, 다른 동족들의 시체밑에 땅을 파고 숨어들어 신호를 운좋게 속여넘긴 성체 실장석은 남자가 입밖에 그대로 내뱉은 말들을 떠올리며 팔을 추욱 늘어뜨렸다.

"데에에... 그런데스까... 와타시타치는... 어떻게해도 멍청한 데스까...."

하지만 추욱 늘어진 팔과 힘없는 목소리와 달리 실장석의 눈에는 단호한 결의가 깃들어 있었다.

"알겠는데스. 닌겐들이 와타시타치를 멍청하다고 생각한다면, 멍청하게 살아주겠는데스. 뭘 해도 멍청이 소리를 듣는다면, 멍청이에게 어울리는 방법으로 살아주겠는데스. 잊지 않겠는데스 닌겐상. 와타시타치는 어떻게 해도 멍청이라는 그 말. 잊지 않겠는데스"

그리고 그녀는 정들었던 야산을 떠나, 끝도없이 펼쳐진 물결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 기다릴 수많은 난관과 시련. 굶주림과 목마름을 뛰어넘어, 멍청이가 살아가는 방법대로 살아가기 위해.





야산에서의 구제가 있었던 날로부터 네 달 후.
멍청이답게 살기로 작정한 실장석은 축축하게 젖은 땅을 파내고 만든, 내부는 비교적 많이 젖지 않은 굴에서 잠든 새끼들을 보며 힘없이 '데에...'하고 울었다.
밤 늦게까지 낚시하는 인간이 있어 오늘은 먹이를 구하러 가지 못했다. 하지만 달이 내려가고 하늘이 검푸르게 더 어두워질 무렵에는 분명히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 때 나가서 먹을 것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앉아 달을 보고 있으려니 잠들었던 새끼 한 마리가 추운지 움찔거리다가 부스스 일어났다.

"치이이... 칫? 마마, 안 자는테치?"

"장녀야말로 일어나버린데스까. 내일 낮에 움직이려면 피곤할 거인데스. 좀 더 자두는 데스, 장녀"

"테에에... 괜찮은테찌. 마마랑 같이 자고싶은 테찌. 마마가 자는 걸 보고 잘 거인테찌"

동생을 돌보는 것처럼 어미인 자신에게 테찌테찌 말하는 장녀를 보며, 그녀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뭇잎으로 열심히 가려놓은 틈새를 파고드는 쌀살한 바람을 맞으면서 그녀는 손을 뻗어 어둠속에 있는 장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테치치...."

"장녀는 정말로 착한데스. 너 같은 자가 있어서 마마는 마음이 든든한데스. ...모처럼이니 낮에는 가르쳐 줄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주는데스, 장녀. 이리로 오는데스"

간지러운듯 자신의 팔에 얼굴을 부비는 장녀를 불러 옆에 앉히고, 찬바람이 불어 추워할까봐 겨드랑이에 끼워 체온으로 따뜻하게 해주며 그녀는 나뭇잎 틈새로 보이는 낚시꾼을 가리켰다.

"낮에도 자주 보이는 닌겐인데스. 하지만 밤의 닌겐은 낮의 닌겐보다 무서운데스. 밤까지 있는 닌겐들은 보통 만족스럽지 않은 일을 겪은 닌겐인데스. 그런 닌겐에게 모습이 보이면 끝장인데스. ...마침 저기 보이는데스네, 잘 보는데스 장녀. 저기 들분충이 밤에 있는 위험한 닌겐에게 걸린데스."

"테치...."

장녀에게 인간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는 도중, 추위를 피하기 위해 낚시꾼이 피워둔 작은 불빛에 이끌려 온 것인지, 아니면 그가 준비하던 어설픈 매운탕 냄새에 이끌린 것인지 들실장 하나가 낚시꾼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어미실장에게 보였다. 장녀도 어미의 말을 듣고 그것을 발견했는지 숨을 죽이고 가만히 들실장의 모습을 관찰했다.

들실장은 인간에게 다가가, 멀리서는 잘 들리지 않을 정도지만 나름대로는 큰 소리로 데스데스! 소리쳤다. 그리고 순식간에 인간의 손에 붙잡혀 옷이 찢어지고 머리가 벗겨져, 낚시바늘에 머리를 꿰뚫려 파란 바께스 위에 데롱데롱 매달렸다.
인간이 끓이고 있던 매운탕 국물을 들실장에게 조금 붓는가 싶자, 들실장이 미친듯이 바둥거리며 구더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참을 구더기를 쏟아낸 들실장은 힘없이 추욱 늘어져서는 마치 미라처럼 변해버렸다.
파킨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확실하게 죽었다고 예측할 수 있는 모습으로 변한 동족을 가리키며 어미 실장이 장녀를 더 세게 꽈악 끌어안으며 나직하게 말해주었다.

"본 데스까? 닌겐은 강한데스. 그리고 무서운데스. 다가가면 안 되는데스"

"츄우우... 마마, 무서운테찌...."

들실장이 처분당하고 그 새끼인 구더기들이 낚시바늘에 꿰뚫려 밤낚시의 미끼로 사용되는 모습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는지 장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어미의 품에 파고들었다.

"괜찮은데스, 장녀. 닌겐들은 와타시타치가 자극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 와타시타치를 일부러 죽이러 오지는 않는데스. 위험한 학대파라는 닌겐들이 있는데스가, 학대파들은 바닥에 고개를 조아리고 벌벌 떨고 있으면 아주 가끔은 와타시타치를 살려주기도 하는데스. ...만약 벌벌 떠는데도 학대파가 살려주지 않는다면 체념하는데스. 와타시타치가 저항하고 발버둥친다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아닌데스. 차라리 얌전히 거기서 죽고 남은 가족들을 살리는게 좋은데스"

물론 공원에 새끼들만 남겨놓고 어미가 죽어버렸다면 가족들도 다 죽겠지만, 발버둥친다고 새끼들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구태여 그런 것을 말해서 아이를 더 겁줄 필요는 없어보였기에 어미는 나직하게 말하며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닌겐은 무서운테찌... 마마, 그런데 왜 닌겐이 자주 오는 곳에 집을 지은테찌? 닌겐이 자주 와서 여기는 위험하지 않은테찌?"

"장녀, 오마에는 영리한데스네. 머리가 좋은데스. ...닌겐은 분명히 위험하고 무서운데스가, 와타시타치가 닌겐들을 귀찮게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 가끔씩 자비를 베풀어주는데스. 오마에가 먹는 음식들은 전부 닌겐사마들이 자비를 베풀어서 남겨준 것들인데스요? 닌겐사마들은 쓸모없어진 것들을 [쓰레기]라고 부르는데스. 그 쓰레기를 치우는 것은 닌겐사마들에게도 너무너무 귀찮은 일인데스가, 와타시타치는 쓰레기를 주워서 살아갈 수 있는데스. 와타시는 닌겐사마들이 치우기 싫어하는 쓰레기를 치워주면서 닌겐사마들의 귀찮음을 덜어주고 있는데스. 그렇게하면 닌겐사마들은 와타시를 가끔 봐도 신경쓰지 않아주시는데스"

장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미는 계속해서 자신이 왜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지 설명했다.
이곳에는 바로 옆에 물이 있어 목말라 죽을 일이 잘 없다는 것. 인간들이 항상 끊이지 않고 찾아와서 식량을 구하기 쉽다는 것. 땅 아래에 굴을 파서 다른 천적에게서 몸을 숨기고, 굴의 위치 자체는 높은 곳으로 잡아 주위의 접근을 알아차리기 용이하도록 한 것 등등. 이외에도 인간을 상대할 때의 마음가짐-자만하지말고 겸손해야 한다, 무서워하되 공포로 굳어버리면 안 된다, 존경심을 갖고 경배하면 살려주는 일이 많다 등등을 말해주었다.

"...장녀, 아까 오마에가 영리하다고 한 데스가 착각하면 안 되는데스. 오마에는 와타시타치 실장석들 사이에서만 영리한데스. 닌겐사마와 비교하면 멍청이인데스. 마마도, 마마보다 똑똑했던 마마의 대장도 모두 닌겐사마 앞에서는 멍청이였던데스. 닌겐사마의 똑똑함과 비교하면 와타시타치는 터무니없는 멍청이인데스. 그러니 절대로 착각하면 안 되는데스. 오마에는 영리하지만, 닌겐사마 앞에서는 멍청이인데스."

이야기를 듣는사이 어미의 체온에 꾸벅꾸벅 조는 장녀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며 어미는 가슴아픈 얼굴로 나직하게 말해주었다.
그 말을 장녀가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미는 부디 장녀가 그것을 듣고 이해하기를 기도했다.
자아, 장녀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사이 낚시꾼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제 굴 밖에 몰아치는 칼날같은 바람을 참아내고 먹이를 구할 시간이다.





남자의 구제작업에서 살아남아 강가로 간 실장석은 후에 거대한 콜로니의 보스. 큰어미가 되어 남자의 예상을 깨고 인간들의 편의를 봐주며 자신들의 부족함을 순순히 인정하는 특별한 실장석들을 이끌게 되었다.
신문기사와 남자가 종종 연구에 협력하는 대학의 교수로부터 그 실장석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남자는 막연히 [실장석 중에도 생각보다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 있는건가]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그 큰어미가 자신이 놓친 실장석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다.
아니, 어느 누구였어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실장석이, 다른 무엇도 아닌 실장석이. 가르친 것도 아니고 지나가듯, 생각하던 것을 중얼거렸을 뿐인 말에서 깨달음과 교훈을 얻고 그렇게 성장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어미는 끝까지 영리했다.
그녀는 남자의 말을 듣고, 자기 자신은 [새로운 도구를 만드는 노동]을 하는 법을 학습했다. 갈대에 다른 갈대를 엮어 돗자리를 모방한 거적을 만들어 굴 바닥에 깔아서 습기를 방지하고, 사람들이 버린 비닐을 엮어서 이어붙여 물이 거의 새지 않는 튼튼한 방수막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노동]에 대해서는 절대 자신의 새끼들에게도, 그 새끼의 새끼들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이런 것을 알면 와타시타치는 언젠가 [닌겐을 따라잡을 수 있는데스!]라고 소리치면서 또 멍청한 짓을 저지를 것인데스... 와타시는 멍청이답게 살기로 한데스... 멍청이답게 살면, 닌겐사마들은 와타시타치를 죽이지 않고 버려두는데스... 와타시타치는 [멍청이]로 사는게 가장 [현명한]데스... 그러니 이런 것은 알아서는 안 되는데스... 이런 것을 알면 [멍청이(영리한 놈)]가 되어버리는데스...."

자신이 만든 거적과 방수덮개를 [운 좋게 닌겐사마들이 놔두고 간 것을 주웠다]고 말하면서 굴에 넣고, 큰어미는 아무도 듣지 않게 조용히 갈대밭을 향해 중얼거렸다.

"닌겐사마의 말이 맞았던데스. 와타시타치는 [멍청이]뿐인데스. [멍청이]가 [멍청이]답게 살았기에, 와타시도 와타시의 자들도 살 수 있었던데스. 자기 본분에 맞게 살아야 하는게 맞는데스."

큰어미는 허리를 쭉펴고, 자신이 떠나온 산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한 번 주었다가, 굴 아래에서 자신을 부르는 귀여운 새끼실장들의 소리를 듣고 실장석답게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데푸푸푸 알겠는데스 손녀들. 큰마마가 지금 가는데에~수~"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실장석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낙원]. 미온강에 정착한 실장일가의 이야기.
이것을 아는 이는, 오직 미온강의 낚시꾼들과 실장석들 사이를 갈라주는 마른 갈댓잎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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