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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공원으로 걷기


[버려지지 않았다고 말한데스우-!]
[알겠는데스. 그래서 돌 씨는 어디에 있는데스?]

강짜를 부리던 사육실장은, 입을 앙다물었다가 떼더니 폭언을 쏟아냈다. 야만적인 새끼,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날 먹이로 삼을 셈이지, 주인님이 보여주신 다큐멘터리처럼. 자신은 현명해서 그런 것쯤 다 꿰뚫어 본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던 사육실장은, 그러나 서서히 다른 사실도 깨달았다. 자신은 막을 무력이 없었다.
쇠못을 쥐고 천천히 다가오는 들실장에게 사육실장은 똥을 던지기 시작했다. 주인님을 부르짖어 부르는 소리는 공허했다. 무기라곤 변 밖에 없는 박스에서의 공성전은 초라했다. 덧없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버려진 사육실장은 외쳤다.
[와타시의 소중한 돌씨는 주인님께 있는뎃스-! 그러니 절대로, 쉽게 죽어주지 않는데샤-!]

변을 던지는 손아귀를, 금세 다가온 들실장은 덥석 집었다. 사육실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살을 꿰뚫을 못 끄트머리를 예감한 몸뚱이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 오른손을 누군가 간지럽히는 느낌이 들 뿐.
어정쩡하게 움츠러들었던 사육실장은 당황하며 실눈을 떴다. 그리고 간질간질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들실장은 사육실장의 손을 털어주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채 운치를 던져대다 묻은 녹색 찌꺼기를.

사육실장이 황망하게 서있는 가운데, 들실장은 대충 깨끗해졌다고 생각했는지 하던 짓을 멈추었다. 그리고 사육실장의 옆에 털썩 앉았다. 아직 진한 냄새가 밴 손을 꽉 잡은 채로.

사육실장은 눈을 몇 번 깜박였다. 다른 때라면 겁에 질려 발버둥쳤을지도 모른다. 혹은 비천하고 더러운 손 놓으라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상대의 기묘한 태도가 자꾸만 할 말을 지워버렸다.

들실장은 물기 없는 푸석한 눈으로 사육실장을 돌아보았다. 고개조차 까딱하지 않았건만, 사육실장은 그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사육실장은 순순히 들실장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비천하고 더러운 손이라.
더러운 것은 비어 있던 들실장의 손인가. 운치로 젖은 자신의 손인가.

한때는 목욕할 따뜻한 물도 없는 거지들이라며 공원 실장들을 욕했었다. 지금은 빵콘을 가득 매달고 있는 자신의 악취가 더 심했다. 사육실장은 속으로 피식 미소를 지었다. 병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가 건물 숲 너머로 기울기 시작했다. 옆으로 누운 상자 하우스의 입구로 누런 빛이 파고들었다. 침묵 끝에 버려진 실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왜…]

대답은 없었다. 들실장을 추궁하는 대신 사육실장은 노을을 보았다. 일생 처음으로, 유리 너머가 아닌 맨 눈으로 보는 노을이었다. 아름다웠다.
대체 얼마만인가. 노을을 멀거니 볼 여유가 있었던 날이.

하루의 끝자락이 자아내는 빛무리를, 두 실장석은 나란히 앉아 입을 벌린 채 감상했다. 들실장이 대답한 것은, 풍경에 넋을 잃은 사육실장이 질문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잊고 있었을 때였다.

[위석이 주인에게 있다고 하지 않은데스?]
[맞는데스.]
[그래서인데스.]

조금 뒤에서야 버려진 실장은 깨달았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잡은 손이 떨려오는 것을 느낀 들실장은, 그 손을 더 꽉 잡아주었다. 그러나 그 떨림까지 멈추게 해줄 순 없었다.
들실장은 마주 잡은 팔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하지만 조금씩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결국 물에 빠진 자의 힘이 더 센 법이니까. 반대편 팔에 쥐고 있던 쇠못마저 놓은 들실장은, 슬그머니 양 손으로 사육실장의 팔을 붙잡았다.
사육실장은 남는 손으로 가슴을 쥐고 버거운 숨을 쉬려 애썼다. 코와 입에서 검은 피가 흘러나왔다. 당황한 동공이 확장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머리 속에서 느껴지는 내면의 한 구석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왜 그러냐는 듯. 정말 이렇게 될 줄 몰랐냐는 듯이.

옆을 보았다. 공원 실장은 그저 태연히 노을을 보고 있었다.
다만, 맞잡은 손에 힘을 주면서.

사육실장은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들실장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무기로 찌르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속여서 먹게 한 적은 없다. 아마도, 그저 나란히 앉아 한 두 마디 나눈 것이 전부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아름다운 풍경을 같이 봐 주면서.

울컥 하고 피가 쏟아져 나왔다. 사육실장은 들실장을 다시 흘깃 돌아보았다. 들실장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티가 많이 나지 않을 만큼 조금. 악문 채 떨리는 턱을, 굳이 사육실장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그런 세심한 배려까지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사육실장은 무언가 결심했다.
[어이.]
[듣고있는데스.]
[저기 뒤편에 있는 상자에, 주인님이 주신 푸드 있는데스. 가져가는데스.]

들실장은 고개를 떨구었다. 사육실장은 말을 이었다.

[콘페이토도 있는데, 먹지 마는데스. 독인데스. 모두 호신용인데스. 주인님이 주신-]
사육실장은 비명으로 말을 맺었다. 순간 팔을 놓친 들실장은 급히 옆을 돌아보았다. 사육실장이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눈에서도 흘러나오는 핏물이 마치 죄 지은 영혼 같았다.
엎드려 덜덜 떠는 것 만으론 격통을 이길 수가 없었다. 자세가 무너진 몸뚱이가 통제를 잃고 요동쳤다. 그 와중에도 두 팔은 열심히 허공을 흝었다. 갑자기 놓쳐버린 상대의 손을 찾아서. 제발, 날 버리지 말아달라는 듯이.
예고도 없이 빛이 사라졌다. 사육실장은 어둠 속에서 비명을 질렀다. 대답이라도 하듯 갑자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자신을 안았다.
[괜찮은데스, 괜찮은데스.]
떨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들실장의 목소리였다. 혹은 친구의 목소리였다.

벌벌거리는 두 팔로 사육실장은 들실장의 어께를 쥐었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머리를 가까이 하려 했다. 들실장은 속삭였다.
[이미 말하지 않은데스, 듣고 있는데스.]

안심한 듯 사육실장은 헤 웃었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 마마는 왜 못 만났는지, 샵에서 팔린 뒤로는 어떻게 살았는지.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쌕쌕거리며, 혹시나 기억이 흩날려 사라질까 필사적으로 메모하듯이.
[그랬던데스?]

그 한 마디에 사육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육체의 고통 때문이 아닌, 다른 종류의 눈물이 울걱 하고 쏟아져 나왔다. 호흡마저 힘들어진 사육실장은 필사적으로 상대에게 기대며 말했다.

[있잖은데스, 와타시 열심히 노력한데스. 샵에서도, 닌겐 하우스에서도…]
[아는데스.]
[친구들은 모두 솎아지고, 파킨해 죽어버리고, 와타시만 남았더라는데스.]
[아.]
[그러고도, 사육이 되려면 운이 좋아야 했던데스. 와타시를 주인님이 데려가고 얼마지 않아서, 샵이 없어진데스. 와타시보다 예뻤던 아이들도, 예의발랐던 아이들도, 전부 폐기됐다고 들은데스…]

미처 뱉어내지 못한 피를 씹으며 사육실장은 필사적으로 말을 토해냈다. 마지막 기회를 예감한 듯이.

[운, 운이었던데스. 아는데스. 누구보다 잘 아는데스. 그래서 더 노력한데스. 감사한 주인님께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한 데스 – 아니, 운이 아니게 하려고 노력한 것이기도 한데스… 음식 안 흘리려고 한데스. 빵콘 안 하려고 한데스. 그런데, 정말 열심히 노력했는데…]

수 없이 보아온 눈빛에 들실장은 침묵했다. 현실과 부딪혀 번민하는 저 눈. 누가 자신을 죽이고 있는지 받아들이는 것은 가혹한 일이다. 생이별한 가족처럼 사랑하는 누군가, 또는 살아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만족시키려고 했던 누군가. 자신의 배를 가르고 생명을 받아가도록 할 만큼 믿었던 그 누군가. 그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고 있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실장석에게는.
그래, 결코 만족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의 모자란 몸과 마음으로는.
[아는데스.]

들실장은 상대의 몸뚱이를 가만히 붙잡아주고 있었다. 마침내 떨림이 멈출때까지.

몸에 튄 피칠갑을 물휴지로 대충 씻어내며, 들실장은 하우스에서 나왔다. 어느새 노을빛이 시들해져 있었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산 중턱으로 돌아온 들실장은 골판지 집의 문을 활짝 열었다. 고여서 꿉꿉해진 공기가 황급히 뛰쳐나왔다. 묵은 냄새가 빠지길 기다리며 들실장은 기지개를 폈다. 조금씩 폐가 시려오는 신선한 공기가 겨울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것도.

들실장은 산 아래의 공원을 굽어보았다. 저녁의 어스름을 틈타 꿈틀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사람의 까만 그림자는 시멘트 바닥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큼지막한 그 무언가가 요동치더니 뎃뎃하는 소음이 울렸다. 주인이 황급히 무언가 읖조리자, 억양없는 어색한 목소리가 말을 옮겼다.
<조용히 하십시오 것이 좋은 아이 데스. 곧 돌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요 데스->
아마도 종이박스로 보이는 것 안에서 뎃뎃하며 힘찬 목소리가 들렸다. 실루엣은 황급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쫓기는 들실장처럼, 혹은, 들키지 않으면 된다고 굳게 믿는 자실장처럼, 어색하게 움츠러든 도둑의 자세로.

들실장은 막연히 생각했다. 저 자는 돌아가면 어떻게 할까. 
자비롭게 위석을 단번에 깨버릴까, 아니면 죽이는 일은 날씨에 맡긴 채 위석병의 존재를 잊어버릴까.
아니면 병의 내용물을 얼어붙은 길에 던져버릴지도. 아마 오늘 오후의 그 버려진 사육실장이 당했을 일처럼.

들실장은 눈을 감고 생각했다. 오늘은 너무 피곤했다. 하루에 짊어지고 싶은 감정적인 부담은 이미 한도를 넘었다.
하지만 발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결국 들실장은 나쁜 머리로 깊게 생각하느니 발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멀어져가는 실루엣을 향해 침을 탁 뱉으며. 들실장은 산 아래의 공원으로 향했다.

내리막을 걷는 걸음에 조금씩 힘이 실렸다. 
손 잡아주는 이조차 없는 죽음은 얼마나 적적할 것인가.

그 해 마지막 귀뚜라미 소리가 풍경을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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