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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행복


실장생이란, 근본적으로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모든 실장석들은, 대부분의 생물도 매한가지겠지만 그저 살기 위해서, 또는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고 있다. 만일 자신 스스로가 행복에 대한 갈망을 느끼지 않는 때가 온다면, 실장석은 자신의 존재 의의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실장석은 자신의 행복만을 바라지 아니하고서는 삶을 이어나갈 수가 없는 가엾은 존재다. 그녀들에게서 삶이란 자신만의 행복을 바라고, 그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람의 경우에는 개체 차가 있을지언정 일부라도 타인이나 각각의 타 가치관 모두를 생명으로서, 대등히 대할 대상으로 인식하지만, 실장석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서만, 자기 자신 속의 수많은 “나” 를 통해서만 생명을 인식하고 의식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실장석에게 있어서 우선 바라게 되는 행복의 본질이란 것은 오로지 자신만이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하게 된다. 그녀들에게는 살아있는 것이란, 사실상 자기 혼자만의 행복만을 누리는 것이 된다. 거기엔 타인의 행복따윈 눈꼽만큼도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참생이란, 살아있는 것은, 혼자서 행복을 독식하는 것이며, 남의 삶은 그저 계란 껍데기만도 못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실장석은 혼자 외로이 지내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것이 태생적인 이유인지, 후천적인 이유인지는 어느 누구도 모를 것이다. 허나 실장석은 혼자서 도 닦듯 버틸 재간은 전혀 없는 생물이다. 그렇기에 실장석은 항상 다른 존재의 생활을 관찰하고 관심을 가지려 한다. 그리고 그 관찰은 그저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아는 것을 지각하는 데에 불과하다. 다른 존재의 삶에 대해서는 다른 존재에 대해 생각하려고 할 때에나 가끔 대충 떠올려지는 잡생각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행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자신의 행복에 방해가 될 경우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욕구가 커지게 되어 잠시라도 그 의식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실장석에게 있어서 참된 생명으로서 자신의 실생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의 행복뿐이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존재의 행복은 그녀에게는 다만 자신의 행복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뿐이다. 만일 실장석이 남의 불행을 원치 않는다면 그것은 단지 남이 괴로워하는 모습이 자신의 행복을 훼방놓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남의 행복을 원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자신에게 행복을 바라는 경우와는 전혀 같지 않다. 즉 남의 행복을 원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상대를 위해 행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의 행복이 자기자신의 행복을 증가시켜 주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실장석에게 있어서 소중하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의 본질이란, 자기 자신만의 것이라고 느끼는 자신의 삶. 그리고 그 삶에 있어 필요 불가결한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즉, 자기 한 몸만의 행복인 셈이다.



하지만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더라도,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실장석의 행복이라는 것은 항상 다른 존재에 의존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모든 다른 존재를 관찰하고 이용하고자 할 때에도 사람도, 동물도, 동족조차도 생명과 삶에 대해서만큼은 정말로 자신과 같은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싫어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이들 존재의 하나하나는 자신과 매한가지로 자신과 똑같이 자신의 생명이나 자신의 삶의 행복만을 의식하고 자기자신만의 삶을 더 중요하고 참된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다른 모든 존재의 삶은 그저 자신의 개인적인 행복의 수단이자 이용대상으로 여기리라 생각할 것이다.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작은 행복을 위해서라면 보다 큰 남의 행복을 희생시키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생명까지도 서슴지 않고 빼앗으면서도 후회할 줄 모를 만한 각오를 한다는 것도 알게 되는 성체 실장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다음과 같은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즉, 만일 그것이---- 그렇다면, 틀림없이 그러리라고 알게 된다면, 아니 믿는다면 단지 한 개나 혹은 수십개의 존재 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온갖 무수한 존재는 각자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기 하나의 생명과 행복만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있는 자신을 빼앗으려고 한다고 상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되면, 그에게 있어서 삶을 이해하는데 유일한 열쇠이자 키워드인 자신만의 행복이 그저 손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오히려 쉽게 빼앗기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지 아니할 수가 없다.



실장석이 자를 번식시켜 분가해 보내면서 오래 삶을 이어나갈수록 이 판단은 경험에 의해 확인되게 마련이다. 그리고 서로 헐뜯고 침해하려는 다른 존재들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삶이란 자기 자신에게는 행복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큰 불행이 되리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다. 만약 자신 스스로가 매우 바람직한 여건에 놓여 있어 항상 행복할 수 있고 자기 자신 외에 감히 그 누구도 두려울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실장석이라면 당연히 갖고 있게 마련인 행복회로와 살아 오면서 거쳤던 숱한 시행착오에 의한 경험이 자신에게 항상 속삭이곤 한다는 것이다. 즉 실장석 자신이 개인의 쾌락을 추구함으로서 실생으로부터 누리는 이러한 행복의 유사품은 결코 참된 행복이 아니라 쾌락에 따르는 고뇌를 한층 더 강하게 느끼기 위해 부여된 행복의 견본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실장석은 오래 살면 살수록, 혹은 오래 행복을 느끼면 느낄수록 쾌락을 느끼는 기준점이 점점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권태와 포만, 그리고 노고와 번뇌가 계속 늘어남을 의미한다. 게다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늘어나던 힘은 어느 순간부터 정점에 이르러 점점 노쇠해져 약해지고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다른 동족의 질병이나 노쇠, 혹은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 지금까지 참되고 충실한 행복의 거처로 여기고 있던 자기 자신의 존재마저도 하루하루 쇠약과 노쇠와 죽음의 길로 가까이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삶이 다른 존재에 의해 파괴될 수많은 사건과 맞서게 되거나 고통을 더욱 많이 당할 뿐만 아니라 삶의 본질에 의해 언제나 죽음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는 사실과 자신의 삶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어떠한 행복의 가능성마저도 모두 부서져 없어질 것이란 생각에 하루하루 고통스러워 하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실장석은 자를 가지고 싶어한다. 자신의 자로 세상을 가득 채운다는 발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딱히 분충이라서가 아니라, 현명해지고 경험을 거듭하여 삶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수록 필연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실장석이라는 종 자체의 진리에 가깝다. 본디 번식이란, 생물로서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자 포기할 수 없는 필연적인 행위이지만, 실장석에게 있어서, 특히나 나이 들고 원숙해진 경험많은 실장석일수록 자를 갖고 싶다는 욕구는 자신의 자를 널리 퍼뜨리고 싶다는 것으로 바뀔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실장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며, 자기 자신의 행복의 확산에 그 의의가 존재한다. 이것이 실장석의 번식행위에서 정상적인 수컷과의 번식이 기피되는 주 원인이기도 하다. 그녀들로서는 자기 자신이 노쇠해 죽기 전에, 자신과 똑 닮은 클론을 번식을 통해 세상에 뿌림으로서, 행복의 무한한 영원성을 획득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마치 고대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헤매었듯이, 오롯이 자기 자신의 행복을 영원토록 유지하고 싶어하는 바램이 성체가 되면 하나같이 자를 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가장 명확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단성 생식. 즉 자신의 클론에 가까운 것을 생산함으로서, 자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자기자신을 무한히 복제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러한 자들을 가짐으로서 자기자신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되며, 그 여럿의 제각각의 행복 추구는 곧 자기자신의 행복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낳은 자들이 항상 자신과 100% 동일할 수는 없다. 하지만 비슷할 수는 있다. 그리고 어미된 자로서 솎아내기를 통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완벽한 개체를 남길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실장석이 항상 같은 결론을 내는 것은 아니다. 실장석 역시 자아를 지닌 개체이며, 생명이기에, 수많은 역경과 경험에 대한 결론은 항상 같을 수는 없다. 물론 그 숫자는 전체 실장석의 숫자로 보면 지극히 한 줌밖에 되지 않는 극소수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



7월의 뙤약볕 아래를 터덜터덜 걸어가는 한마리의 노실장이 바로 그러한 극소수 중 하나에 속하는 개체라고 할 수 있었다. 햇수로는 7년. 들실장 기준으로는 엄청나게 오래 산 축에 속했다. 물론 학계에서 기록된 가장 장수한 실장석의 공식 기록으로는 19년까지 살았던 프라시노라는 개체가 있긴 하지만, 그 기록은 사육실장. 그것도 상당히 특수한 환경에서 키워진 사례이고, 일반적인 들실장 개체 기준에서는 3년만 버텨도 장수했다고 보기에 7년이나 살아남은 이 노실장은 정말 드문 개체였다. 하지만, 이 개체는 대부분의 실장석이 도달하게 마련인 진리인 ‘자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뎃’ 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가 첫번째 자를 낳았던 때부터 몇 년간은 그런 생각을 안해 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자신의 실생에 걸쳐 보았던 경험들은 그런 생각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첫번째 자들을 낳았을 때, 그녀는 세상을 다 가진듯이 느껴졌다. 자신과 똑 같은 자들을, 자신과 똑닮은 자들이 노닐며 마마 마마 하고 외치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가득참을 느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매서운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모두 죽었다. 근본적으로는 어리광쟁이 분충이었던 장녀를 솎아내지 못했던 탓이 컸지만, 그래도 그때는 희망이 있었다.



자는 또 낳으면 되는데스- 하는 희망 말이다.



그렇게 그녀는 매번, 자를 잃을 때마다 새로운 자를, 새로운 자기 자신을 낳았다. 해가 거듭되어 감에 따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위기를 넘긴 그녀는 햇수로 3년째 되는 때에 처음으로 자신의 자를 독립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의 자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것은 요원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2년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하얀 사신들과, 사신들이 휩쓸고 지나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핫-하 하는 괴상한 울음을 짖는 인간들. 그리고 겨울이 올때까지 그 괴상한 울음을 짓는 인간들이 계속해서 자신들을 사냥하는 나날이 반복되곤 했다. 노실장은 오랜 경험과 여러 차례 반복 주입된 시행착오 덕분에 매번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만, 자신의 자들은 아니었다. 독립시킨 자들 중 살아남은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찌어찌 살아남아 자를 가졌다 해도, 자신처럼 무사히 또 다른 자들을 독립시킨 아이들은 한번도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자를 계속해서 또 낳아도, 그 자들이 자신과 완벽하게 똑 같은 자신이 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성격이나 정신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할 수도 있었겠지만, 노실장이 실생 평생에 걸쳐 이룩한 수백개의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수많은 경험들은 아무리 노실장이 노력해도 전수해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를 낳고 자를 잃는 생활이 반복되던 노실장은 문득 자신이 생각했던 행복이 과연 행복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보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7년이나 살아남은 노실장의 경험은 그것에 대해 곧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7년째 되는 해, 첫 봄이 올 무렵 노실장은 꽃을 찾으러 다니지 않았다. 아직 그녀의 분대는 생식 기능이 살아 있었지만, 다른 실장석들이 꽃을 비비며 자를 낳는다고 부산을 떨어도, 노실장은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다만, 동족들이 자를 낳기 위해 물가나 화장실을 찾을 때에는 조심스레 뒤를 밞아 출산의 과정을 눈에 담았다.



모든 실장석들에게 있어서 출산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무한히 퍼뜨리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기에 실장석들은 자신의 자가 첫 세상을 보는 그 순간부터 냉혹한 심사의 대상으로 은연중에 가치를 판단하기 마련이었다. 당장은 자신의 자를 낳았다는 기쁨에 북받쳐 점막을 핥기 바쁘더라도, 점막을 다 핥은 후의 자들에 대해서는 냉혹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들이대기 일쑤였다. 가장 먼저 걸러지는 것은 엄지였다. 엄지는 우지챠보다는 성숙된 개체이지만, 기본적으론 발육 부진상태의 자였다. 그렇기에 처음 자를 얻은 친실장이 아니고서는 엄지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버려지기 일쑤였다. 물론 우지챠를 비상식으로 쓴다면 엄지를 운치굴 노예나 자들의 정서관리를 위한 장난감으로 쓰기 위해 데려갈 수도 있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자를 낳을 때의 이야기였다. 우지챠는 비상식으로서 가치가 높긴 하지만, 봄에는 비상식을 굳이 가질 이유도 없을 뿐더러, 봄에 낳은 우지챠가 겨울이 되기 전까지 고치를 틀지 않을 확률은 매우 낮았기에, 봄철에 자를 낳는 곳에는 항상 버려진 엄지와 우지챠가 마마를 찾아 울어대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노실장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 고아 엄지와 우지챠였다. 친실장 몇몇이 떠난 후, 노실장은 천천히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화장실 안에는 여러마리의 엄지실장이 울부짖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그녀들은 정말로 세상이 끝난것마냥 큰 소리로 울어제끼고 있었다. 하지만 노실장은 바로 엄지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문틈으로 그것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엄지실장에 대한 견해는 대동소이하다. 쓸모 없고, 분충 많고, 자기밖에 모르며,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라는 것이다. 물론 우지챠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긴 하지만 그저 그것뿐인 하찮은 존재라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노실장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그런 엄지실장들도 개체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은 답이 없는 욕심쟁이에 어리광쟁이지만, 드물게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는 개체도 있기 마련이었다. 노실장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자실장이나 엄지나 분충성이 개화하는 것은 갑자기 좋은 환경에 들어갈 때라는 것이 흔한 통념이지만, 정말로 가장 확실하게 분충성이 드러나는 것은 최악의 환경을 접할 때였다. 겨울에 몇일을 굶을 때라던지, 자매나 마마가 다쳐 일가실각의 위기가 올 때야말로 분충성이 개화하는 방아쇠라는 것을 노실장은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눈 앞에서 보여져 드러나기 시작했다.



“똥마마! 세레브한 자를 알아보지 못하는 레챠!!”

“이렇게 된 이상 똥닝겐을 메로메로시켜 사육실장이 되는 레츄!”

“우지챠 우마우마 레치~극상의 맛인 레츄우!”



화변기 안의 엄지실장들은 금새 두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지고 있었다. 괴롭히는 자와 괴롭힘을 당하는 자였다. 괴롭히는 자들은 하나같이 똥닝겐 똥마마 소리를 외치면서 행복회로를 돌리고, 일부는 우지챠를 뜯어먹고 있었다. 반면, 괴롭혀지는 엄지들은 우지챠를 감싸안고 그저 덜덜 떨면서 울기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난장판이 되어가는 것을 무심히 지켜보던 노실장은, 문을 열고 들어가서 자신이 눈여겨 보았던 고아 엄지들을 하나하나 화변기 밖으로 꺼내기 시작했다. 괴롭힘을 당하던 그룹의 엄지 세마리와 우지챠 한마리를 모두 꺼내자마자, 화변기 안에 남아있던 엄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 웃으며 자신도 데려가 달라며 아첨을 하기 시작했다.



“새 마마인 레치? 세레브한 와타시를 데려가는 레치!”

“아직 작고 어린 와타시인레츄! 행복을 주는 레츄웅~”



하지만, 노실장은 그저 답하지 않고, 무심하게 화변기 옆의 레버를 체중을 실어 기댔다. 철컥 하고 레버가 기울어지자마자, 화변기 안에서 레츄 레치 거리던 소음은 금세 물살에 휩쓸려 사라졌다. 화변기 안의 모든 것이 깨끗이 쓸려 나간 것을 확인한 노실장은, 여전히 울면서 떨고 있는 엄지 세마리와 한마리의 우지챠를 끌어다 안고, 그곳을 떠났다.



노실장이 자신의 거처를 향해 걸음을 바삐 움직이는 동안, 세마리의 엄지실장들은 자신들을 안고 가는 성체실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기저기 해진 옷이며 바래지고 튼 피부. 여기저기 남아있는 자잘한 흉터들은 아닌말로 예쁘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들을 안아준 성체의 크고 따듯한 체온은 금새 작은 엄지들의 버림받음으로서 마음 속 깊이 아로새겨진 상처를 보듬어주고 있었다. 자신들을 버리고 가버린 마마. 그런 자신들을 거두어준 또 다른 마마. 엄지 세마리는 그 따듯한 온기에 취해 훌쩍거림을 멈추고 서로서로의 뺨을 부비며 살풋 잠이 들었다.



한참을 걸어 자신의 거처에 도착한 노실장은, 어느새 품 속에서 세상 모르고 잠든 엄지들과 우지챠를 내려다보면서 살풋 작은 미소를 지었다. 조심스레 깨어날까 저어하며 엄지 세마리와 한마리의 우지챠를 자신의 침소에 누인 노실장은, 바닥에 앉아 잠든 아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잠기었다.





실장석에게 있어서 실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항상 그렇지만 자기 자신만의 행복이다. 곧잘 수많은 실장석들이 자를 아주 소중하게 여기면서도, 정작 자신의 목숨이 위험하면 대부분의 어미들이 “자는 또 낳으면 되는데수!” 하면서 자들을 내버리고 도망가는 것도 바로 여기에 기인하는 행동이다. 애당초 자를 낳아 세상에 가득 채운다는 생각 자체부터가 자기 자신의 복제를 세상에 퍼뜨려 행복의 영원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것이니만치, 어찌보면 가장 당연한 진리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자기 개인을 위한 행복, 자기 자신만이 행복해지는 그런 것 따위는 있을 수도 없고, 존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노실장은 오랜 세월에 걸친 시행착오를 통해 깨달은 지 오래였다. 설사 실생에 무언가 자신만이 행복해지는 비슷한 게 다가온다고 하더라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복이 가능한 실생이란 것은 결국 고뇌와 해악으로 가득찬 지옥의 구렁텅이로 빠져버릴 뿐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사물을 제대로 보고 판단할 수 있다면, 돌씨가 내뱉는 감언이설에 놀아나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엄지실장이던, 성체실장이던 누구나 다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분명하고 명료한 일이었다. 그렇다. 스스로가 분별이 있고, 돌씨가 말하는 것에 매달리지 않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생각할 수만 있다면 심지어 엄지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끌어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실장석에게는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행복회로와 위석이라는 내적 모순덩어리가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내적 모순에서 벗어나려면 외부던 내부던 강한 충격이 필요했다. 노실장의 경우에는 7년 동안의 목숨을 건 숱한 시행착오가 그 계기가 되었다. 위석는 자신만의 행복을 위한 가이드를 자처했고, 행복회로는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밝은 미래를 약속했다. 하지만 7년간의 피폐한 실생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것을, 허황된 망상일 뿐임을, 사물의 본질을 흘리는 악마라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수년간 확고하게 자리잡았던 내적 모순을 벗어난 순간, 노실장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 공간에 내던져졌다. 실생의 대부분을 그녀는 위석이 말하는 목적에 부합되게 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 목적이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목적이 사라져 버렸다. 실생의 목적이 사라지는 것은, 삶의 의미도 사라지는 것이었다. 평생을 가이드에 의존해서 여행을 즐기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가이드 없이 혼자 외국에 덩그라니 놓인다고 상상해 보라.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 허둥거리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노실장은 실생 처음으로, 위석이라는 가이드 없이 자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고자 자신의 행복을, 참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고 많은 생각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답이 바로 자신의 눈 앞에서 울다 지친 모습으로 잠든 세마리의 고아 엄지와 한마리의 고아 우지챠였다.



자신의 자가 아닌, 다른 이의 자들. 그것도 태어나자마자 존재를 부정당하고 버려진 아이들이었다.



노실장이 7번이나 겨울을 무사히 보내는 동안, 자신의 자들 중 일부만이 성공적으로 독립했지만, 그 숫자는 노실장이 감히 헤아리기조차 벅찰 정도로 많았다. 가장 현명하고, 가장 많은 경험을 가진 가장 오래 살아남은 존재였으니 그런 가르침을 이어받은 자신의 자들도 살아남아 자들을 퍼뜨릴 수 있었어야 마땅했으리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 아이들은, 자신과 닮았으되, 똑 같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꽃을 부벼 태어난 자신의 복제품이라고 해도, 그 정신과 생각은 제각각이었고, 결정적으로 자신과 같은 여건에서 자라난 자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자들은 누군가에게 배신당해 본 적도 없었거니와, 자신의 마마에게 불필요한 짐짝 취급을 받은 적도 없었다.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끝없이 고심을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솎아낸 자들을 제외하고는 태어나자마자 확고하게 자로서 인정 받고, 무한한 사랑과 예쁨을 받으며 자라나 독립한 자들이었다. 그러나 정작 친실장인 노실장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실생을 보냈었다. 그녀는 태어나 점막을 취해지자마자 친실장으로부터 짜증섞인 목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버림받지는 않았지만 가장 먼저 태어났음에도 장녀는 고사하고 막내 취급조차 받지 못했었다. 그저 눈치없는 객식구마냥 천대받고, 자매들의 놀림감이 되었을 뿐. 몇번인가 울면서 마마에게 통사정도 해보았지만 그때마다 날아오는 것은 일방적인 폭력과 자매들만 편드는 절망적인 결과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대접이 한순간에 바뀌었던 것은, 겨울이 막 시작되기 전의 늦가을쯤의 일이었다. 핫-하 하는 이상한 소리를 내는 생물이 냅다 그녀들이 사는 집을 걷어차 날렸고, 그 서슬에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났을 때는 이미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수많은 자매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마마는 한쪽 머리가 푹 패이고 한쪽 눈이 망가진 채로 바닥에 널린 적록의 무언가를 쓸어담으면서 오로롱 오로롱 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부터였을 것이었다. 자신에 대한 대우가 하루아침에 바뀐 것이.



간신히 울음을 멈춘 마마가 처음으로 내뱉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노실장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만큼, 그때의 감동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태어나 단 한번도 젖은 고사하고 쓰다듬 한번 받지 못했던 그녀에게, 마마는 울음을 멈추고 주변을 정리하자마자 곧바로 “너라도 살아서 정말 다행인데스! 역시 나의 자인 데스요~!” 라며 자신을 꼭 안고는 울먹일 때,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마마라고 외치며 마마의 품속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녀의 생활은 확연하게 달라졌다. 단 한번도 자로 여기지 않았던 마마가, 자신을 귀여운 자라며 보듬어주고, 우마우마한 것을 주고, 잠들때까지 조곤조곤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그녀는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녀는 항상 모든 것에 의문을 갖곤 했다. 언제 또 다시 버림받을지, 이 따듯한 상황이 언제 또 바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생각했다. 한번 버림받았던 그녀에게 행복이란 결코 저절로 당연하게 오는 그런 것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었다.



노실장 스스로가 얻어낸 답 역시 이것과 비슷했다.



자신의 자들은 자신과 닮았지만, 똑같지는 않았다. 자신과 똑 같은 기억을 공유하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기억과 시행착오에 의한 경험을 가르치려는 노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태어나서 사랑받는 것이, 귀여움받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 당연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자들로서는 어미의 가르침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질 턱이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낳은 자들은 내적 모순덩어리에 대한 면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도 문제였다. 애초에 수년간 고난을 겪은 것도 아닌 새파란 자실장들이 자아 성찰을 스스로 깨달을 리도 없거니와 도리어 자신들은 선택 받은 자라며 선민사상에 물들어 있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현명한 노실장의 수많은 시행착오에 기반한 노하우는 자들에게는 다른 동족과는 차별될 정도로 풍요롭고 우월한 마법 그 자체였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노실장은 한번 세상에서 쓸모 없다고 버려진 경험을 얻은 자들을 원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자가 아닌, 남의 아이들이어야만 했다. 자신의 혈육이라는, 이른바 선택된 자라는 생각 자체를 원천적으로 차단해야만 했다.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고, 이를 항시 경계하며, 스스로의 존재가치에 항상 의문을 가지는 자들만이 살아남을 것이었다. 위석은 자기 자신만을 위한 행복이 진리라고 외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이미 7년동안 반복된 실패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데려온 이 아이들이 자신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몰랐다. 그러나 그것은 그때마다 솎아내면 될 일이다. 어차피 자신의 마마에게서조차 버림받은 아이들이다. 두번 다시 같은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도 스스로의 가치는 스스로 보이려고 노력할 것이 뻔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같은 경험을 한 아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할 것이다.



노실장은 자리에 누워, 천사처럼 다소곳이 잠든 세마리. 아니 네마리의 아이들 옆에 조심스레 몸을 뉘여 한쪽 팔로 아이들의 몸을 토닥토닥 쓰다듬고는,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이번만큼은, 정말로 모두가 행복해지길,

머릿속으로 꿈꾸면서 말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더 흘렀다. 엄지실장들은 처음에 가졌던 불안감의 상당수는 사라져 있었다. 자신의 친마마가 아닌 전혀 다른 오바상이 자신들을 자로 받아들여 준 것은 그녀들로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물며 자신이 낳은 것도 아닌 버려진 자신들을 보살펴 주는 것은 아직 어린 그녀들로서도 상상도 못할 일임에 틀림없었다. 물론 이런 일이 알려진다면 근처의 다른 실장석에게 놀림을 받거나, 심하면 약탈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노실장의 거처는 처음부터 그런 것쯤은 충분히 고려해서 지어져 있었다.



공원 외곽의 담벼락 아래엔 작은 둔덕이 있다. 본래는 가스관이 묻힌 곳이었지만, 공원에 인접한 상가들이 철거되면서 본래의 용도를 잃은 채, 그대로 공원에 편입된 후미진 장소였다. 이곳은 인접한 단지도 없는데다 담벼락 너머로는 산업도로가 펼쳐져 있어, 사람은 물론이고 실장석도 좀처럼 오가지 않는 곳이었다. 물도 구하기 어렵고, 먹이터가 될만한 쓰레기장도 멀리 있었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거의 최고의 위치였다. 바로 그런 곳에 노실장의 거처가 있었다. 낡아서 이젠 회색이 다 되어 가는 골판지 박스 앞에서, 한마리의 늙은 실장이 먹이를 구하러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마마 안녕히 다녀 오시란 레치!”

“마마 조심히 다녀 오는 레츄!”



아마도 그녀의 자로 보이는 세마리의 아기실장이 길을 떠나는 어미를 전송하는 듯해 보였다. 어미가 모습을 감추자, 세마리의 아기실장은 오도카니 그 뒷자취를 보다가, 이내 골판지 입구를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박스 안에는 우지챠 하나가 오네챠를 맞이했고, 세 자매는 서로서로 번갈아 가면서 우지챠를 얼르고, 달래고, 프니프니를 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가족은 어딘가 일반적인 들실장 가족 구성과는 조금 달랐다. 우선 이 세 자매들은 자실장이 아니었다. 모두 엄지실장이라는 특이한 구성이었다. 보통 엄지실장들이 태어나자마자 버림받거나, 버림받지 않더라도 자로서 취급받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특이한 가족구성인 셈이었다. 게다가 이 가족은 같은 품종조차도 아니었다. 어미로 보이는 노실장은 로하스 품종인데, 자로 보여지는 엄지들은 보틀 품종이었다. 게다가 우지챠는 아예 통근 품종. 누가 보면 가족은 커녕 보존식으로 만들기 위해 납치한 거라고 여기기 딱이었다. 하지만 보존식은 커녕, 이 가족은 제법 끈끈한 유대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당장 같은 품종도 아닌, 자신의 친자매도 아닌 우지챠를 서로 귀여워하며 돌봐주는 것만으로도 일반적인 들실장 가족과는 많이 달랐다. 우선 그녀들부터가 친어미도, 친자매도 아니었다. 그녀들은 엄지로 태어난 시점에서, 자신의 친어미로부터 버려졌고, 자신의 친자매로부터 조롱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버려진 채 변기 속에서 울고 있던 그녀들을 주워다 자로 삼아주고 인정해준 것은 다름 아닌 생전 처음 보는 자신들과는 생김새부터가 전혀 다른 성체 실장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럽기도 하고,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자신들을 보호해주고 자로서 받아들여준 노실장에게 마음을 열은 작은 아이들은 금새 친해지기 시작했다. 서로 친자매가 아니란 사실은 그녀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이미 친자매로부터 같은 자매가 아니라며 놀림당했고, 자신을 낳은 마마로부터는 자가 아니라며 멸시당했기에, 자신과 똑 같은 경험을 공유했던 같은 처지의 엄지 세마리는 금새 친자매처럼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우지챠는 애초에 아직 생각이란게 없다보니 자연스럽게 막내가 되어 엄지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노실장에게 거두어진지 13일째 되던 날, 그녀들은 처음으로 순서를 배정받았다. 같은 엄지이지만, 크기는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었기에, 몸이 큰 순서대로 장녀, 차녀, 삼녀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세마리의 엄지는 새로운 마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마리의 엄지의 생각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몸이 컸던 장녀 엄지는 다른 두 엄지와 다르게, 단순히 버려지는 차원의 경험이 아닌, 정말 끔찍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자로 취급받지 않은 것은 둘째 치고, 모든 자들의 점막을 핥은 자신의 마마가, 그녀를 잡아먹으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마마 뱃속에 있을 때는 모든 자들은 귀여운 나의 자인 데스~ 라고 들어왔던 그녀에겐 정말 엄청난 쇼크였지만, 자신을 낳은 마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엄지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분충이라며 입을 벌리는 마마에게 놀란 그녀는 그저 테- 하는 울음만을 겨우 짖으며 빵콘을 거하게 쏟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이제 막 출산을 한 직후라 비위가 약한 친실장의 후각을 건드려, 그녀는 가까스로 먹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 대신에 화변기의 고인물에 그대로 내동댕이 쳐졌지만 말이다. 그런 끔찍한 과거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장녀는 항상 지금의 새 마마를 완전히 믿고 있지는 않았다. 언제 태도가 돌변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것에 가까웠다. 더구나 자신을 낳은 마마가 잡아먹으려고 자신을 들어올릴 때, 했던 말들은 정말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엄지는 자가 아니고, 그저 먹히기 위한 존재일 뿐이며, 끽해봐야 운치굴에서 비상식량 관리나 하는 무가치한 존재라는 그 가차없는 소리가 장녀에게는 주박과도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차녀와 삼녀가 새 마마를 얻었다며, 자로 받아들여 주었다며 기뻐할 때조차 장녀는 그저 묵묵히 자신의 새 마마인 노실장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언제고 태도가 돌변해 자신들을 비상식으로 먹어치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반면에 차녀는 그런 끔찍한 말을 듣지는 않았다. 자신을 낳은 친실장이 보여준 것은 완벽한 멸시로 가득찬 무시였다. 뭐라 짖든 애초에 거기 존재조차 아니했다는 듯이 차녀를 외면했다. 낳자마자 벌어진 잔혹한 외면에 목이 쉬도록 울부짖었지만, 친실장은 나머지 자들을 모두 햝을 때까지 그녀에게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끝내 일어서는 친실장의 다리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그녀에게, 친실장이 남긴 한마디는 간단했다.

“꺼지는데스. 세레브하지 않은 자는 자가 아닌데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차녀 엄지에게 박힌 주박이었다. 세레브가 뭔지, 이제 막 태어난 엄지가 알 턱이 없었지만, 차녀는 항상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도 계속 세레브 라는 단어에 집착하곤 했다. 밥을 먹을때도 항상 세레브한 맛인레치! 라고 중얼거리거나, 프니프니를 해줄 때조차도 세레브한 프니프니인레치? 라고 항상 우지챠에게 묻곤 했다. 물론 장녀나 삼녀가 세레브가 뭐인레치? 하고 물어보지만, 자신도 모르는 것을 설명해 줄 턱이 없었다. 그저, 차녀는 세레브란 것을 막연히 좋은 것으로 여길 뿐이었다. 그러다 한번은 새 마마에게 세레브의 뜻을 물어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장녀가 단호하게 외친 한마디에 그런 분위기는 금새 쑥 하고 내려갔다.

“이모토챠들… 낳아주신 마마가 우리에게 뭐라 했던지 생각해보는 레치…”



장녀로서는 함부로 행동해서 철없이 굴면 언제라도 새 마마가 태도를 바꾸어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한 것이었지만, 차녀에게는 자신이 버려질 당시의 상황이 오버랩되어 보여지는 꼴이었다. 세레브하지 않아서 버려진다는, 세레브하지 않아서 자가 아니라는 자신의 슬프고 무서운 기억이 되살려지자, 차녀는 세레브가 무슨 뜻인지 묻는 것이 너무나도 두렵게 느껴졌다. 만약 그것을 물어본다면, 차녀로서는 자신이 세레브하냐고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차녀 엄지로서는 새 마마가 자신을 자로 인정해준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세레브하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면, 그것은 정말 너무나도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레브하지 않다는 말의 의미는, 차녀로서는 버림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 아니 같은 말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한번 버림받았다가, 다시 한번 자로서 인정받고 행복을 누리는 마당에, 또다시 시험에 드는 것은 정말 죽기보다 싫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차녀 엄지는 장녀 엄지의 한마디에 세레브한게 무엇인지 알기를 포기했다. 그저, 세레브하다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여길 뿐.



하지만, 삼녀 엄지만큼 가장 큰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이는 없었다. 삼녀 엄지의 경우엔 친마마 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친자매들에게 조차도 버림받고 멸시를 받아야만 했다. 그나마 장녀나 차녀는 직접적인 폭력은 없었고, 장녀조차도 친마마에게 잡아먹힐 뻔 한 미수에 그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삼녀 엄지는 태어나 점막을 핥자마자 바닥에 처박히고, 걷어차여야 했다. 분노한 친실장이 이딴 불량품이 나오다니 분충데스! 라고 외치며 엄지에 불과한 갓 태어난 자신을 마구 때렸던 것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이제 막 출산을 하던 와중이라 친실장의 기력이 딸려 힘이 덜해진 덕에 태어나자마자 맞아 죽는 끔찍한 일만은 면할 수 있었지만, 삼녀 엄지에게 그것은 악몽의 시작이었다. 자신의 뒤를 이어 계속해서 태어난 친자매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쓰러져 드러누운 자신을 살펴보았지만, 이내 마마의 말에 기세등등해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게 장난치듯 쓰러진 자신을 이리치고 저리 치며 갖고 놀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아직 친자매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그녀에게, 마치 쓰레기를 대하는 것마냥 대하는 자매들의 폭력은 삼녀의 정신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랬기에 삼녀는 유독 자매간의 정이랄지 우애에 거의 매달리시피 하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새마마가 보여준 웃음. 새 자매들이 보여준 미소, 우지챠가 꼬리를 살랑살랑 거리며 프니프니를 원하는 그 모든 것들이 삼녀에겐 유일한 것이고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것들이었다. 마마에게도, 자매에게도 두번다시 버림받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만이 남은 삼녀는 세마리의 엄지들 중에서도 가장 소심하고 관심을 갈구하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기에, 오늘도 골판지 박스 안에서 장녀와 차녀가 설전 아닌 설전을 벌이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장녀는 항상 새 마마가 먹을것을 구하러 떠나면, 이곳을 일단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할 때가 많았다. 반면에 차녀는, 버림받는 것이 세레브하지 않아서라는 자신을 낳은 마마가 내뱉은 그 단어에 집착했기에, 또다시 그런 상황에 처하는 것을 꺼려했다. 그렇게 둘이서 한참을 싸우다 보면, 언제나 그렇듯이 조용히 지켜보던 삼녀에게 화살이 날아왔다.



누구 말이 맞는 거 같냐는 화살.



삼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마법의 화살이었다. 그리고 그럴때마다, 조용히 뒹굴거리던 우지챠에게 달려가 프니프니를 해준다는 핑계로 그 자리를 피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삼녀로서는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를 편들면 반드시 한쪽은 실망하거나 슬퍼할 것인데, 그것은 자신으로서는 가장 용납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태생부터 어미에게도 자매에게도 모두 버림받은 것도 모자라 폭행까지 당한 삼녀로서는 모처럼 얻은 이 행복을 무너뜨리는 행동은 어떻게든 용납이 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투닥투닥 보내고 나면, 새 마마가 가져온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느덧 봄이 가고, 여름이 찾아올 때쯤, 부지런히 노실장이 먹이를 구해온 탓에, 충분한 영양을 받은 탓일까, 세마리의 엄지실장은 어느덧 자라 자실장이 되어 있었다. 물론 여전히 평균적인 자실장보다는 한참 작지만, 그래도 엄지실장이 자실장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일 것이었다. 하지만, 자실장으로 성장한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삼녀에게는 그랬다.



왜냐하면, 여태까지 균형이 잡혀 있던 세마리의 설전이 자실장으로 변화하고 난 이후부터는 두마리와 한마리의 설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장녀는 여전히 새 마마를 완전히 믿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 삼녀로서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당장 주변의 다른 동족들이 엄지를 대하는 태도나, 고아 자실장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들 스스로가 골판지 밖으로 나가 본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위치상 둔덕이라는 고지대에 있었던 탓에, 골판지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다른 동족들의 행태가 간간히 눈동냥 삼아 보여지긴 했기 때문이었다. 고아라는 이유로 식량 취급 당하는 건 예사고, 엄지라는 이유로 무조건 죄를 덮어씌우는건 기본에, 밥을 먹는것 자체조차도 분충이라는 소릴 듣는 것을 보았던 삼녀로서는 장녀의 의견에 어느정도 공감은 하고 있었다. 사실 삼녀로서도 노실장인 새 마마가 왜 자신들을 자로 거두어준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삼녀는 그것을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랄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또 다시 버림받는 상황을 겪는 것 자체가 끔찍해서였다. 그렇기에 장녀의 “새마마가 맘이 바뀌기 전에 여길 떠나야 한다” 는 주장에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것을 실행할 용기가 없고 차녀와 반목하기 싫었기 때문일 뿐. 하지만 그것도 최근엔 사정이 바뀌었다.



자실장이 된지 얼마 안됬을 무렵, 차녀 역시 밖으로 나가는 것에 어느정도 동의를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차녀는 새마마의 곁을 떠날 생각은 1도 없었다. 그저 우연히 삼녀와 밖을 골판지에 뚫린 구멍으로 구경하면서 바깥의 화사하고 찬란한 모습이 예쁘다고 생각한 것이 화근이었다. 차녀는 과거에 친실장이 했던 말 때문인지, 항상 좋은 것이 세레브한 거라고 막연히 여기는 습관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화려하고 밝은 바깥을 본 차녀는 저렇게 세레브한 바깥이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것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딱히 분충이라서가 아니라, 버려졌던 과거에서 비롯된 주박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차녀에겐 좋았다. 어둡고 냄새나고 퀴퀴한 골판지 안보다, 바깥이 더 아름답고 예쁘게 보였다는 것이 중요했다. 세레브하지 않아서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차녀에게는, 세레브함. 즉 좋아보이는 것에 가까워질수록 버림받지 않는다는 절대 명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결국, 삼녀로서도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로서는 새마마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 마마를 떠나는 것에 반대한다면 자매들로부터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기에, 긍정도, 부정도 아닌 어정쩡한 답변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행의 날이 왔다.



폭염이 지나가고 다소 서늘해진 시기, 아직 여름이 다 지나지 않은 8월 초에, 노실장이 물을 길으러 간 틈을 타서 세마리의 자실장들이 골판지 문을 열고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지금이 기회인 테치! 어서들 나가보는 테치!”

장녀가 그렇게 외치며 문을 열고 걸음을 내딛자, 바닥에서 밥을 막 먹고 벌러덩 누워 있던 막내우지챠가 고개를 들고 입을 열었다.

“어디가는 레후? 야외 프니프니인 레후? 레후? 야외가 뭐인 레후? 우지챠 그런거 모르는 레후. 프니프니는 좋은 레후.”



그리고, 못내 그 상황을 어쩌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던 삼녀는, 우지챠를 들고 얼르며 달랬다.

“우지챠 조용히 하는 테치. 와타치가 프니프니 해주는 테치.”

“프니프니후-“

“해주면 뭐라 했던 테치?”

“프니프….우지챠 입 꼭 닫는 레후. 알겟 레후”



그리고, 장녀의 뒤를 좇으며 차녀 역시 조용히 말을 내뱉었다.

“테에.. 밖은 세레브한 와타치에게 어울릴게 틀림없는 테치.”



그렇게 세마리의 자실장은 태어나 처음으로, 골판지 밖으로 발을 디뎠다. 그리고, 망막에 비치는 현란한 색과 더불어, 골판지 상자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온갖 향기와 다양한 소리에 세마리는 본래 생각했던 목적마저 잠시 잊고 멍하니 서서 따사로운 햇볕을 온몸 가득히 받아내었다. 잠시 동안 감동의 격류를 느낀 그녀들은 제각각의 목표를 위해 영광스런 첫 걸음을 떼었다. 아니 떼려고 했다. 자신들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후비기 전까지는 말이다.



“자들. 마마의 말이 말같지 않는 데스? 멋대로 골판지 박스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었을 터인 데스!!”



그와 동시에, 깜짝 놀란 세마리의 엄지, 아니 이제는 자실장들은 팔짝 튀어오르는 듯한 모션을 취하다가 제풀에 바닥에 엎어지고는 허둥지둥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거기에는 얼굴 가득히 짜증을 가득 채운 늙은 실장이 있었다. 자신들의 새마마인 노실장이 노란색과 파랑색 물감이 여기저기 잔뜩 묻은 채로 골판지 뒤에 서 있었다. 세마리의 자실장은 새마마의 달라진 모습과 더불어 들켰다는 낭패감에 사로잡혀 그저 벌벌 떨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긋이 보던 노실장은 보다 큰 소리로 일갈했다.



“주모자는 누구인데스!! 좋은 말로 할 때 나오면 심하게 다루지는 않는데스. 누구인데스!”



그러자, 장녀가 비틀비틀 일어나 입을 열었다.

“와타시인테치…”



그것을 들은 노실장은 더 한층 엄격한 표정을 짓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왜인데스? 이유가 있을 거 아닌데스.”



장녀는 그 말을 듣자마자, 정말로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마마. 정말로 모르는테치? 우리들은 마마의 자이지만 자가 아닌테치. 한배에 태어난 자매들도 아닌테치! 심지어 엄지였던 테치! 엄지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분충인테챠!! 그런 우리들을 어째서 자로 받아들여 준 거인 테츄!! 다른 오바상들처럼 자판기로 만들 생각이 아니냔 테챠!! 결국 겨울이 오면 또다시 버림받을 게 아니냔 테치!! 정말 우리들은 마마의 자인 테츄?”



장녀는 마치 지금이라는 듯이 쏟아내듯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뒤늦게 새마마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닫고는 그저 새마마가 내릴 선고를 상상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여태 그런 고민같지도 않은 헛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인 데스? 자판기라니, 어떤 분충이 그런거 해먹자고 엄지를 자로 받는다는 데스? 헛지랄도 정도껏 하는데스.”



그러나 새마마가 내뱉은 말은 선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는, 아직 철이 덜 든 자식을 훈계하는 그것이 더 가까웠기에, 장녀의 머릿속은 일순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마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엄지도, 우지챠도, 각각 다른 마마가 배아파 낳은 자식인데스. 그건 틀림이 없는데스. 허나 너희들은 나의 사랑스런 자들임엔 틀림이 없는데스. 하지만 그렇게만 말해본들 장녀가 납득할 것 같진 않은데스. 그러니 묻는데스. 장녀는 행복이란게 무엇인 거 같은데스?”



“마마…”



“화내는 거 아닌데스.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데스. 행복이란게 뭐일거 같은 데스?”



장녀는 잠시, 새마마의 말에 머뭇거리다가, 떠듬떠듬 내뱉듯이 대답했다.



“마마에게 사랑을 받고 자라서, 독립해서 자신의 자를 낳는 것인테치. 아마도 그게 맞을것인 테츄.”

“그것은 누가 가르쳐준 것인데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몸속의 돌씨가 가르쳐주는 거 아닌테치?”

“자를 낳아서 세상에 자신의 자로 가득차게 한다는 것 말인데스?”

“맞는테치. 독립해서 자신의 가족을 꾸리는게 가장 큰 행복인테치.”



그러자 그것을 들은 노실장은 살풋 웃음을 짓고는 단호하게 끊듯이 말했다.



“그건 돌씨의 희망인데스. 그런것은 행복이 아닌데스.”

“그렇지 않은테치! 자를 가져서 가족을 갖는 것은 행복이 맞는 테츄!”

“그것 자체가 행복이라면, 어째서 장녀는 행복하지 않았던 데스?”

“…….”

“독립해서 어느정도 기반을 닦으면, 자를 낳는데스. 그런데 장녀는 태어나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있는데스?”

“그…그건 와타시가 엄지라서….데…데에에엥”



과거의 설움을 떠올린 장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래도 장녀의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의문이 가득차 있었다. 마마의 말은 틀리지 않다.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라면, 자신은 불행할 이유 따윈 없어야 했다. 엄지를 낳았던 친마마가 불행하다며 말해서는 안되었다. 하지만 그랬다. 장녀는 그 모순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훌쩍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새마마는 장녀를 얼르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엄지라는 것이 장녀가 원해서 된 것인데스? 그건 아닐것인 데스. 그렇다면 장녀를 낳은 마마가 잘못인데스? 그것도 아닌데스. 엄지를 낳고 싶어서 낳는 마마는 어디에도 없는데스. 잘못은 바로 돌씨에게 있는데스.”



“돌씨가 하는 말. 돌씨가 가르쳐주는 것들, 그리고 돌씨가 보여주는 행복한 미래에 대한 환상. 이 모든 것이 잘못인데스. 물론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아닌데스. 언제고 계속해서 살아가다보면 좋은일이 있을 수도 있는데스. 어쩌면 돌씨가 말하는 꿈 같은 행복이 있을지도 모르는데스.”



“하지만 그것은 실생이 무엇인지, 실생의 진정한 행복이 뭔지도 모르는 멍청한 분충이나 될거라고 믿는 것인데스. 실생 7년인 내가 산 증인인데스. 돌씨가 말하는 행복은 행복이 아닌데스.”



노실장은 잠시 훅 하고 과거를 회상하듯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그것은 물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는 아무런 방향조차 잡지 않은 나무토막에 올라탄 자가 자기로서는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간다고 믿는 것과 같은 것인데스. 여기 태어나기 전 마마의 뱃속에서 꿈을 꾸는 자실장이 있는데스. 이 자실장이 사육실장의 마마나 들실장의 마마로부터 태어난다고 상상해 보라는 데스. 이 어린 자실장에게는 아직 실생의 고난은 커녕, 돌씨가 말해주는 것의 모순조차도 느껴본 적이 없을 것인 데스. 마마의 사랑이 당연하고, 보살핌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여길 때이니 더더욱 실생의 문제에 대해 알리가 없는데스. 다만 그저 주변에서 생활하고 있는 자신의 마마를 보면서 그것을 본보기로 삼아 살아가고 배울 것인데스.”



“그런데 이 본보기라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찾는 것에서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데스. 왜 인줄 아는데스? 돌씨에 대한 말을 믿고 돌씨가 보여주는 미래의 행복의 광경을 믿는 분충들이 보여주는 것이라곤 자신의 자의 행복이 아니라 그저 자기자신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움직이기 때문인데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마마의 가르침이라며 자신의 자에게 주입하는 데스. 사육실장의 자라면 자신의 마마로부터 주인에게 복종하고 운치를 가리고 주인을 웃음짓게 만들라고 가르칠 것인데스. 들실장의 자라면 행복이란 자를 많이낳아서 자신의 자로 가득채우라고 할 것인데스. 하지만 이건 틀린 가르침인데스.”



“실생은 앞날이 어찌될지 한치도 예상할 수 없는 바람과도 같은 것인데스. 사육실장이던 자들도 하루아침에 공원에 버려질수도 있는데스. 들실장은 더한데스. 어느날 마마를 잃을 수도 있는데스. 집이 하루아침에 없어질수도 있는데스. 아예 자는 고사하고 제 한목숨 건사하기도 바쁜 날이 닥칠수도 있는데스. 돌씨가 말해주는 것들은 그저 자기자신이 가장 이상적으로 행복해지는 모습만을 말해주는 것인데스. 거기엔 자신의 자의 행복따윈 안중에도 없는데스. 그래서 자들이 친마마에게서 버림받은 것인데스.”



“그..그럼 마마는 왜 우릴 자로 받아들여 준 거인테치?”

새마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었던 삼녀가 불쑥 속으로 삼키고 있었던 질문을 꺼냈다. 그러자 새마마는 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인데스.”

노실장은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자실장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진짜 행복이란 것은 그리 어려운게 아닌데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솔직하게 모른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인데스. 반면에 가짜 행복이란 아는 것을 모른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안다고 믿는 것인데스.”



그러자, 차녀가 머리를 싸쥐는 듯한 표현을 하면서 말했다.

“너무 어려운 테치…어려운거 잘 모르는 테츄…”



“그럼 좀더 알기쉽게 말해주는 데스. 차녀. 세레브가 뭐인데스? 그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는데스? 항상 차녀는 뭔가 좋은 것을 보거나, 우마우마한것을 먹으면 세레브한 것이라고 말하곤 하는데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뜻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고 말하는 데스?”



“잘 알지는 못하는 테치…그냥 좋은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테츄…”



노실장은 그 대답을 듣자마자, 곧바로 이어서 단정하듯 말했다.

“바로 그거인데스. 차녀는 세레브가 무엇인지 스스로가 명확하게 알지 못하는 데스. 즉 잘 모르는 것인데스. 그러나 차녀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쓰는데스.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좋은 것이라고 치부하면서, 타성적으로, 습관적으로 세레브를 외치고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막연히 믿는데스. 그것이 바로 가짜 행복인데스. 진짜 행복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고, 아는 것은 안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데스.”



“그…그럼 세레브가 나쁜 것인테치?”

“그것은 차녀가 직접 보고 배우고 알아보면서 스스로가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것인데스.. 그리고 장녀도 마찬가지인 데스. 장녀는 스스로 품었던 그 의문을 직접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던 데스. 그저 몸속의 돌씨가 말하는 대로, 돌씨가 가르쳐주는 대로만 믿고 따랐을 뿐인데스. 돌씨가 말하는 행복이 자를 낳는 것 만이라면, 어째서 장녀는 태어나자마자 불행했던 데스? 장녀를 낳은 마마가 장녀가 엄지라는 걸 깨달았을 때 왜 행복해하지 않았던 것인데스? 그것은 돌씨가 말하는 내용이 가짜 행복이어서인 데스. 돌씨는 항상 형편좋은 말만 해주는데스.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광경만 보여줄 뿐인데스요. 돌씨가 말해준 것들 중 어느것 하나 장녀가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있는데스? 모르는데도 안다고 믿어버리고, 알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들. 버림받은 장녀를 거두어주고 자로 받아들여주고 귀여워해주었던 마마를 믿지 않고 모르는 것인 양 버려둔 것. 그것이 바로 거짓된 행복인데스.”



새마마의 말을 듣고있던 장녀는 새마마의 말이 끝나자,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자신의 마마를 올려다보았다. 늙고, 볼품없고, 오늘은 어디선가 일이라도 있었던지 녹색 실장복에 청색과 노랑색의 물감이 잔뜩 묻어 있는, 초라한 노실장이 서 있었다. 하지만 장녀에게는 자신들을 위해, 고작 엄지에 불과한, 그것도 친마마에게 버려져 고아였던 자신들을 거두어준, 자로 삼아준 따듯하고 속 깊은 아름다운 마마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차녀도, 삼녀도 마찬가지였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지나가기 무섭게, 세마리의 자실장들은 진심에서 우러난 큰 목소리로 외치며 자신들의 마마에게 달라붙었다.



“마마아~ 잘못한 테치! 다신 안그러겠는 테츄!!”

“마마~! 마마~!!”



노실장은 자신에게 살갑게 달라붙으며 울먹이는 자실장들을 하나하나 쓰다듬어주었다. 불현듯, 자신의 옷에 묻은 물감을 떠올리고는 자실장들에게 묻을새라 품에서 떨어내려 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자실장들은 너나할거 없이 눈물 콧물을 쏟아내며 자신의 품에 엉겨붙기 바빴다. 그렇게 한동안 울먹거리며 달라붙던 자실장들이 간신히 감정을 가라앉히고 진정했을 때엔 셋 다 꼬락서니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장녀의 옷은 청색으로 물들었고, 삼녀와 차녀는 노랑색이 여기저기 묻어 녹색 실장복은 원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물들어 있었다. 오히려 자실장들의 눈물 콧물에 범벅이 된 노실장의 실장복은 노랑색과 청색이 뒤섞여서 마치 지금 막 태어난 자실장마냥 도리어 더 선명한 녹색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서로서로 본 세마리의 자실장과 한마리의 노실장은 그제서야 크게 데프프픗 하고 웃음을 지었다.



“데파퍗! 장녀 옷 색이 이상한테츄!”

“차녀도 남말 할 때가 아닌테치!!”

“마마만 옷이 깨끗해진테치! 선명한 녹색이 된 테치!!”



노실장은 자들이 서로서로 웃는 것을 보다가, 기왕지사 이렇게 된 것 가까운 물길로 나가서 몸을 씻으러 가야겠다고 생각하고는 비닐봉투를 새로 꺼내서 거기에 자실장을 담아 넣고, 우지챠는 다른 손에 받쳐 들고는 가까운 물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노실장은 인간과 마주치고 말았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은 실수였건만, 아이들과 웃으며 행복해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찰나의 방심이 빈틈을 노출하고 말았다. 노실장은 조심스럽게 위를 올려다보았다. 햇살에 비추어지는 새하얀 반사광.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죽음이었다. 하얀 사신. 새하얀 색으로 뒤덮여져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인간들. 그것과 맞부닥친다는 것은 실생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노실장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보았다. 그제서야 눈에 들어오는 새하얀 방벽들. 공원의 울타리를 따라 무기질적인 소리를 내며 펼쳐지는 하얀 벽들을 보자 노실장은 자신의 실생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잠시 동안, 자신의 자들을 내보이며 사정해볼까 하는 생각이 아주 조금 들었고, 그 틈을 놓칠세라 돌씨는 자들을 내던지고 달아나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봉투 안에서 그저 자신만을 믿으며, 기대와 사랑에 가득찬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귀여운 자들을 본 노실장은 마음을 굳게 먹고는 도망가지도, 아첨하지도 않은 채, 가만히 하얀 사신을 올려다보았다. 설령 실생이 여기서 끝나더라도, 이 아이들에게 다시한번 버림받게 할 수는 없었다. 이미 자신이 한번 버림받아 보았기에, 그 절망은 자기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열었지만 그래도 끝은 행복하게 끝내고 싶었다. 노실장은 자들이 든 봉투에서 자실장을 하나하나 꺼내어 양 손에 꼬옥 품고는, 곧 이어 닥칠 결과를 예상하듯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무것도 모르는 자신의 자실장들을 보호하듯 웅크려 앉았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하얀 사신이 자신들의 생을 거두어 갈 것이었다.



그러나 하얀 사신의 행동은 노실장의 예상과는 달랐다. 그저 잠시동안 지켜보더니, 손에 들고 있는 막대기를 허리춤에 대충 쑤시듯 꼽아 놓고는 어디선가 케이지를 하나 꺼내서는 자신과 자실장 모두를 조심스럽게 넣고는, 근처에 주차된 봉고차 짐칸에 올려두고 자리를 떠났다.



노실장은 그저, 영문을 모른 채로 케이지에 있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자실장들과 우지챠만이 새롭고 신기한 환경에 들떠 이리저리 테치 테치 레후 레후 거릴 뿐이었다. 그리고, 구제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서, 노실장은 자신이 있는 곳이 움직이는 것을 알았다. 부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공원 밖으로 떠나는 것을 창 밖으로 휙휙 지나는 풍경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노실장은 문득, 머릿속에서 돌씨가 외치는 수많은 외침과, 더불어 사육실장이 되어 닝겐들을 노예로 부리는 환상이 펼쳐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휴지 구기듯 머릿속에서 지워 없앴다. 이미 그런 환상에 속아넘어가기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고생하며 살아왔다. 7년이라는 세월은 한마리의 실장석이 스스로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 고찰하고, 사물을 순리 그대로 인식하고자 할 만큼 충분하다 못해 넘칠정도의 시행착오를 겪게 만들었다. 노실장은 생각했다. 진짜 행복은 자신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조금이라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모른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친 지 오래였다. 자신이 가게 될 곳이 어딘지는 알 수는 없었다. 괜히 모르는 것을 돌씨에 의존해 상상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 세상에 좋은 실생따윈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달은 노실장은 그저 가만히 앉아 케이지 안에서 처음 보는 바깥 풍경에 정신없어하는 자실장들을 그저 지긋이 바라보면서, 자신이 아는 사실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적어도,



최소한,



하얀사신에게 죽지는 않았다.

하얀사신의 호루라기 소리는 죽음을 알리는 선고.

그 선고에서 자신들은 벗어났다.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저 자신들이 도착할 곳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고통받지 않기만을 바라고 또 바랬다. 그리고, 7년의 실생 동안, 처음으로, 자신 스스로 진짜 행복의 끈을 잡은 자신 역시 그 매듭을 짓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END






(애호)(중편소설)(소재: qst123님 원작 리메이크) 참된 행복 외전

흔히 말하듯 구제 업무는 실장석을 학대하는 사람에게는 마치 천직인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은 그것과는 전혀 반대다. 실장석을 학대하며 괴롭힌다는 것 자체는 애초에 어불성설이고, 구제 업무는 말 그대로 기계적으로 신속하게 짧은 시간에 많은 숫자를 단숨에 처리하는 것만이 주 목적이다. 그것도 가능하면 적은 비용으로 말이다.



이 말인즉슨, 구제 업무 자체가 3D 업종이란 소리다.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업종 중에서도 탑클래스가 바로 실장석 구제 업무다. 아니, 정확하게는 4D 업종이 맞겠다. 왜냐고? (Discipline) 규율과 자기수양이 전제되니까 말이다. 기본적으로 다른 구제 업무보다는 얼핏 보면 쉬워 보이기는 한다. 다름 아닌 실장석을 구제하는 것이니까. 성인 남성이면 별다른 장비 없이 맨몸으로도 실장석 입장에서는 고지라 괴수 레벨이고, 사실상 초등학생조차도 성체실장석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린치하고 다닐 정도니 말 다한 거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구제를 할 때에는 몇가지 어려움이 산재한다.



그중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실장석의 사살 방법이다. 가능 한 한 내장을 쏟아내지 않고, 피나 운치를 가급적 덜 쏟아내는 방법으로 죽여야 하는데, 그러지 않을 경우 필연적으로 사후 처리가 엄청나게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장석이 평소에 싸는 운치나 피눈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착색이 용이한 색소성분이 많아서 쉽게 주변에 물을 들이기 일쑤인데, 이게 고통을 받거나 해서 짓소산이 많이 분비되면 그야말로 아예 착색이 아니라 숫제 염색이 되어 표면에 접착되는 수준이 되어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학대는 논외, 갖고 노는 것 자체부터가 용납이 안 된다. 구제인원 중 누군가가 학대파라고 해서 이렇게 갖고 놀면, 그 시점에서 업무에 공백이 뚫리는 건 기본인데다, 실장석의 공포는 빠르게 전염되기 때문에 한두명이 규율을 지키지 않으면 그 한두명 때문에 몇일 밤낮을 사포질하고 세제로 문질러야 하는 참사가 나기 마련이다. 게다가 처리를 요청하는 측에서는 최대한 빨리 일을 해결하고 재개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대부분 기한도 빡빡한 게 대다수라 애초에 학대파가 쉽게 고용될 만한 환경이 못 된다.



물론 보수는 나쁘진 않지만, 정작 이런 일을 하겠다고 오는 사람의 절반이 학대파다 보니 거의 모든 구제업소의 첫 면접은 이러한 학대파를 탈락시키는데 열을 올리곤 한다. 학대에 취해 있는 사람일수록 규율을 무시하고 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저지르거나, 몰래 구제할 실장석을 빼돌리는 일이 허다하다보니 당연스레 학대파를 걸러내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면접서류를 바라보는 김차장의 표정이 항상 심드렁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모집인원 2명에 몰린 서류가 3백장이 넘는다. 그런데 그 중 학대파로 의심되는 서류가 거의 대부분이다 보니 한숨을 쉴 만도 했다. 요새는 일손이 딸려서 사무직조차도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현장직을 맡는다. 애초에 사무직을 얻은 사람들은 현장이 싫거나, 현장 업무가 성격상 맞지 않아서였음을 고려한다면 괜히 순번제로 돌림빵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조차도 슬슬 한계였다. 사무직에서 순번으로 돌아가던 것이 어느새 차장이나 부장까지도 순번에 들어가는 마당이니 안봐도 뻔했다. 정작 자신도 오늘 이 면접 서류에서 사람을 차출하지 못하면 이번 달 휴가고 나발이고 싹 다 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뽑을 놈팽이가 있어야 뽑지? 애초에  무직에 10년간 변변한 아르바이트 하나 안 구해본 놈은 무조건 패스다. 이런 니트 기질 방구석 폐인들은 아주 드문 경우를 빼곤 거의 도움이 안 될 터였다. 이 구제업이라는게 나름 빡빡한 규율과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보니 고작 몇 달 나오고 관둘 싹수가 보이는 놈들은 애초에 제외해야 했다. 그렇다고 제정신 박히고 스펙 높은 놈들이라면 구제업 따위에 몸담을 턱이 없을 테지만…. 그냥 확 아무놈팽이나 후보로 넣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그 생각은 고이 접어 둘 수밖에 없었다. 차장 직인을 찍은 놈팽이가 한달도 안 채우고 튀어버리면 그 독박은 고스란히 내 몫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김 차장은 한숨이 곱빼기로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학대파인게 눈에 뻔히 보이는 놈들을 뽑을 순 없었다. 서류를 펼쳐보니 가관도 아닌게, 이 회사에 지망한 동기란에 적어놓은 것이랍시고 있는 것들에는 ‘실장석을 마구 죽이는 것이 삶의 기쁨’ 이라느니, ‘똥벌레를 조지는 것에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다’ 같은 것들이 잔뜩 있는 서류도 있었다. 이것도 역시 패스. 애초에 학대가 아니라 구제다. 말 그대로 기쁨이던 무엇이던 간에 별다른 감정을 부여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애초에 똥벌레라고 칭하는 시점에서 이미 탈락이겠지만 말이다.



김 차장은 애써 서류를 뒤젂이다가 겨우 합격선에 들 만해 보이는 두명을 최종적으로 뽑은 다음, 퇴근했었다. 다음 주에 얻을 휴가를 꿈꾸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건 그냥 꿈이었나 보다. 다음 주 월요일, 자신의 책상앞에 올라간 것은 휴가증이 아니라 현장 차출 순번표였다. 몇번이고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얼이 터진 김 차장은 차출되어 현장으로 가는 차량 안에서 동승해 있던 임 대리를 붙잡고 자초지종을 캐물었지만, 안 듣느니 만도 못했다. 내가 골라놓은 두명 중에 한명은 회사에서 금지된 개인 학대물품인 쇠빠루와 도돈파를 밀반입하려다 현장에서 걸려서 내쫓겼고, 다른 한명은 아예 프리젠테이션에서 우리 회사의 구제 방법에 대한 자세한 노하우를 전수받던 도중 오바이트를 거하게 때리곤 두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아마 보나마나 일을 이따위로 처리했다며 부장에게 불려가 시말서를 쓸 각이 눈에 훤했다.

“에이구. 앓느니 죽지…”

김 차장은 자신의 휴가가 깡끄리 날아갔음을 직감하고는 자신의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사실 장비래 봤자 별 것은 없었다. 밀폐 고무 부츠와 고무로 모서리가 마감된 비닐 수트 한벌. 그리고 그위에 덧씌워 입는 새하얀 후드가 포함된 고무 홑옷이 전부였다. 한여름에 이딴걸 입으면 땀에 푹 절여지다 못해 찜통이 될 테지만, 그래도 이건 정말 필요했다. 실장취와 운치의 착색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이게 유일했으니까. 그 외의 장비라곤 호루라기 2종류와 실장구제용 막대기 한 개한 다였다. 가볍고 탄력있는 회초리 같은 소재의 이 막대기는 길이가 약 1미터가 조금 넘었고, 그 끝단에 기역자로 꺾어진 작은 쇠송곳이 하나 불쑥 튀어나온 형태였다. 회사마다 조금씩 구제 방법엔 차이가 있는데, 우리 회사의 경우는 이 탄력성 좋은 막대기를 가볍게 스핀을 줘서 튕기듯 휘둘러서 실장석의 마빡에 쇠송곳을 가볍게 푹 하고 박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손에 힘도 덜 들고, 도구에 숙련이 되면 단 몇초만에 수십의 실장석을 구제하는게 가능했다. 아마 프리젠테이션에서 보고 속을 다 게워냈다는 장면이 이것일 거였다. 말이 송곳이지, 실장석 입장에서는 말뚝이 자신의 뇌수를 휘젓는 거나 다르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 방식으로 빠르고 신속하게, 그러면서도 큰 오염물 착색 없이 성체실장을 구제하는 것이 우리 회사의 방식이었다. 그리고 구제하는 것은 오직 성체 실장 뿐. 자실장이나 우지챠는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자실장 정도로는 자력으로 생존하는 것은 아주 힘들게 당연하고, 구제반이 다녀가고 나면 귀신같이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뒤이어 찾아올 게 뻔했다. 그것이 학대파던, 애호파던 우리 회사로서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남은 자실장과 우지챠는 학대파가 모조리 쓸어버릴 것이고, 그 와중에 한줌 남은 자실장은 애호파가 가져갈 테니까 말이다. 가끔 군청에서 나오는 구제반들은 주민을 통제하네 애호파나 학대파를 못오게 막네 야단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뻘짓이었다. 그냥 생존의 주체가 되는 성체만 싹 다 백치로 만들어 수거해버리면, 남은 자실장 정도로는 자력으로 살아남을래야 살아남을 수가 없다. 엄지나 우지챠 정도는 뭐 말할 건덕지도 없을 테고.



혼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장비를 체크하고 나니, 어느새 차량은 멈추어 있었다. 다른 사람은 이미 모두 내려서 각자 구역을 전달받고 지시를 체크하고 있었지만, 김 차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직급 높은 것은 때로는 정말 도움이 된다. 자신이 새파란 신입이었다면 벌써 악에 받친 경고를 들었을 테지만, 현장에서 인원이 모잘라 강제로 차출된 차장급 인원에게 함부로 소리를 높일 간 큰 사람은 거의 없다. 더구나 현장에서 가장 오래도록 닳고 닳은 인원이 마지막에 거치는 직급이 차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그의 느릿함을 탓할 사람은 현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그래도 할건 해야지. 후보자 선출 제대로 안했다고 깨질판인데, 현장에서 농뗑이 부렸다간 오늘 퇴근도 걱정해야 할 판이니…”



작업자들이 현장감독에게 하나둘씩 맡은 구역을 할당받고 지시사항을 복창하는 동안, 김 차장은 그저 설렁설렁 걸음을 옮겨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현장감독을 맡은 임 대리는 잠깐 김 차장을 바라보았지만, 계급이 깡패라는데 달리 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현장에서 짬밥을 있는 대로 먹고 나서야 겨우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이 차장이다. 이 구제업계에서 차장 직급을 가졌다는 것은 최소 현장 업무 경력 18년 이상의, 최고 전문가라는 소리나 진배 없었다. 어차피 알아서 잘 하실 건데, 굳이 나서서 거드름 피우며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라고 임 대리가 생각한 것이 불과 10분전이었다. 김 차장이 허겁지겁 달려와서는, 냅다 사육실장용 케이지가 있냐고 묻고는, 이유를 묻는 내 질문은 상큼하게 씹고 내달리듯 돌아간 게 바로 조금 전이었다. 물론 구제업무를 나왔다 해도 사육실장용 케이지는 항상 상비하긴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고로 구제 지역에 사육실장이 침범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그런 신고나 민원은 단 한 개도 들어온 적이 없었다. 설령 사육실장이 들어왔다고 해도, 애초에 신고나 민원 접수가 없는 상태에서의 실장 포획은 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김 차장이 그런 간단한 것을 모를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남은 것은 윗선에서 정말 긴급하게 때려박은 민원이라는 셈이지만, 정작 김 차장이 헐레벌떡 상기된 모습으로 데려온 실장석은 윗선에서 긴급하게 때려박은 민원하고는 억만년 거리가 있어보이는 들실장에 가까웠다. 물론 케이지 안의 자실장들의 옷 색깔은 청색이 하나, 노랑이 둘이긴 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고급 실장석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치장이나 청결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해진 실장복. 딱 봐도 오랜 세월 풍파에 찌들은 피부가 눈에 확 들어왔다. 게다가 친자 할거없이 페인트 특유의 톡 쏘는 악취가 물씬 풍기는 게, 도저히 사육실장으론 보이지 않았다. 결국, 임 대리는 희희낙락해서 봉고차에 케이스를 넣는 김 차장을 불러세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하는 겁니까. 차장님.”

그러자 김 차장은 환하게 웃으며 뒤로 돌아 입을 열었다.

“보면 몰라? 노다지 캐고 왔지.”

“노다지라뇨? 설마 저 늙어 빠진 노실장이랑 자실장 세마리에 우지챠 하나를 말하는 거 아니죠?”

그러자 김 차장은 살짝 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지우고 사무적인 어투로 대답했다.

“임 대리는 올해 몇 년 차지?”

“저요? 음….8년차 정도 되죠. 근데 왜요?”

“그런데도 그런 반응이라면 아직 이런건 못본 모양이네?”

“도대체 뭐가요? 알기쉽게 좀 말해주세요. 또 규율 어기면 깨지는건 현장감독인 저란 말입니다.”



김 차장은 알 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음~ 아마 임대리가 깨질 일은 없을꺼야. 왜냐하면 말이지. 이런 애들은 정말 10년에 한번 볼까 말까거든.”

그 말을 들은 임 대리는 드디어 김 차장이 휴가를 못 가서 맛이 가 버렸나 하고 불현듯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가능성을 훌훌 날려버린 임 대리는 김 차장의 이어지는 말을 끈기있게 기다렸다.



“보통은 말이야, 이렇게 나이가 든 노실장들은 대개 자들은 또 낳으면 된다면서 지 혼자 달아나기 십상이거든. 근데 이놈은 안 그랬어. 오히려 자실장들을 감쌌지.”

“그거야 흔한 경우잖아요. 혼자 도망가는 놈들도 많지만 무작정 자를 감싸고 버티는 애들도 수두룩한데요?”

“그래 그렇지. 하지만 이놈은 눈이 달라요. 눈이.”

“눈이요?”



“음. 뭐라고 할까. 인간에 대한 공포는 기억하지만,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 랄까. 무언가를 깨달은 놈의 눈이라 그거야.”



“그리고, 보통은 도게자를 하던지 도망을 치던지, 아니면 아첨을 하게 마련이지, 그도 아니라면 자를 들고 키워달라고 하던지. 근데 이놈은 그 어떤것도 안 했다고. 그저 나를 본 순간 모든 것을 깨우친 것 마냥 그저 한숨을 뱉고는, 봉투에 담긴 자실장들이 놀래지 않도록 하나하나 살며시 꺼내서는, 자신에게 곧 닥쳐올 최후를 어린것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듯이 품에 꼭 껴안고는 그저 눈을 감고 기다렸단 말이야. 이런 놈은 정말 천에 하나 나올까 말까란 말이지.”



임 대리는 김 차장의 설명을 끈기있게 들었지만, 그게 왜 구제 대상에 속한 실장석을 가져와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게 특별하다는 건 알겠지만, 그게 뭐? 어차피 구제란 것은 톱니바퀴의 아귀가 들어맞듯이 규정에 따라 지켜져야 하는 기계적인 일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임 대리는 김 차장에게 그 점을 지적하고자 입을 열었다.



“특별한건 알겠네요.”

“그치?”

“하지만 그건 사유가 안 됩니다. 아시잖아요. 구제 대상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자 김 차장은 이를 훤히 드러내고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있어. 구제 예외 조항. 2조 11항의 특례 추가항목을 찾아봐. 규정집에 있을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임 대리는 미심쩍어 하면서도, 규정집이 포함된 수첩을 꺼내 해당 페이지를 찾아 읽기 시작했다.



“아…음…2조 11항. 특례 항목…이건가. 다만 상기의 경우에 한해 차장급 인사의 독자 판단으로 구제의 중단이나 대상의 예외를 신설할 수 있다. 대상의 조건은 최고급 사육실장이거나 그에 준하는 개체가 있을 시…..아니 이건 해당사항 아니잖아요. 저건 그냥 들실장이잖습니까?”



“겉으로는.”



“겉으로는 이라니 말장난하지 마십쇼.”



“아니 진짜로. 저정도면 최고급 사육실장에 준하는 개체거든.”

“아니 그냥 눈빛이 맘에 들고 덤덤히 최후를 맞이할 줄 아는게 뭐 대단하다고…”



“그게 중요해. 실장석이란 것들은 자기 자신만의 욕망으로 똘똘 뭉친 놈들이라고, 기본적으로 자신의 행복 추구가 1 순위이고, 그만큼 그 행복을 놓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애들이야. 하지만 간혹 가다 나이를 좀 오래 먹고, 고생을 직싸도록 한 실장석들 중에서는 아주 드물게 자기 주제파악을 하게 되는 것들이 어쩌다 생긴다고.”



“일반적인 실장석들이 위석이 가리키는 욕망을 행복이라고 믿고, 위석이 투영하는 행복회로를 행복의 바로미터인거마냥 신봉하고는 그 욕망을 위해 끝없이 탐욕을 부리면서 분충화가 되는 건 최고급 사육실장이라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아무리 훈육이 잘 된 최고급 사육실장이라고 해도, 자를 가지거나, 자신의 노쇠가 눈앞에 닥치면 늦던 빠르던 분충화가 되던지, 아니면 그냥 훈육받은 대로 따르지만 행복하지 않은 불행한 상태라고 느껴서 스스로 수명을 갉아먹던지, 둘중 하나란 말이야. 하지만 들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오랜 세월동안 경험을 쌓은 늙은 실장들 중에서 아주 드물게 위석의 거짓말을 알아차리고 실장석이 무엇인지, 인간이 무엇인지, 진짜 행복이 어떤것인지 깨닫는 애들이 진짜 희귀한 확률이지만 존재한단 말이지. 그런 놈들은 정말 어찌할 도리 없는 위기가 찾아왔을 때 전혀 발악하지 않아. 오히려 이타적인 행동을 보인단 말이지. 전혀 계산적이지 않은 순수한 그 자체의 희생 같은 거 말이야.”



김 차장은 멍하니 그것을 듣고 있는 임 대리에게 마무리짓듯 마저 말을 이었다.



“이 놈이 그래. 척 보기에도 5~6년은 넘은 늙은 놈이야. 그정도 된 녀석이면 최소한 여기서 구제를 두세번은 겪었을 거란 말이야. 당연히 우리들이 어떤 놈들인지 뻔히 알거고, 그런데 이놈은 마치 앞으로 일어날 모든 것을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두려워하며 도게자하지도 않을 뿐더러, 아첨하거나 사정하지도 않았단 말이야. 문자 그대로 모든 것에 초연한 듯이 굴었다는 거지. 피할 수 없는 죽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조차도 발광하며 발악하기 마련인데, 이놈은 그저 한숨만 내쉬고는, 자기 자식들을 봉투에서 꺼내서, 앞으로 일어날 비극에서 단 일초라도 보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품에 꼬옥 포개어 눈을 가리는 모습으로 안고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단 말이야. 이런건 애초에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과 성찰이 있어야 가능한 행동이걸랑. 안 그래도 최고급 사육실장을 원하는 주요 덕목이 바로 그런거지만, 알다시피 유효기간이 길지가 않지. 훈육을 지키면 불행하다고 여겨서 빨리죽고, 훈육을 어기고 자를 가지거나 조금이라도 몸이 나이들게 되면 자기 자리를 다른놈에게 뺏길까봐 빠르게 분충화되던지, 둘 중 하나란 말이지. 당연히 최고급 실장석으로서 가장 높게 보는건 들이냐 아니냐가 아니야. 자기 주제파악을 얼마나 잘 하고, 분수에 맞는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애완동물이거든. 기어오르지 않지만, 기어오르지 못하게 했다는 것 때문에 지 수명을 갉아 먹지 않는 실장석이라면, 그건 그 자체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지. 하물며 자를 까고서도 전혀 분충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보라고. 아마 그것만으로도 눈이 뒤집혀 돌아갈걸?”



“어어. 듣고보니 진짜 그러네요. 하지만 이게 정말로 그런 실장석이라니.. 설령 잘못되면 어쩌려구요?”



“아 그땐 그때고. 하지만 내 18년 경험은 이게 당첨이라고 확신이 드는걸.”



“뭡니까 그게. 결국 로또잖아요?”



“아냐 아냐. 걱정 말래도. 어차피 오늘 부장에게 깨질 거리도 있으니까 나 먼저 조퇴좀 할께. 그럼 간다~잉”



“아니 이보쇼! 그걸 지금 말이라고….차장님! 야! 김차장!!! 야이 시밤….”



저 멀리 점이 되어버린 임 대리. 아니 현장감독의 찢어지는 욕설 소리가 운전대를 잡은 김 차장의 귓가에 들어왔다. 하지만 김 차장은 임 대리를 충분히 이해했다. 이제 와서 무얼 속이랴. 나의 전 선임이었던 지금은 부장 자리에 올라가 있는 전 차장님도 현장감독이던 나를 내팽겨치듯 내버려 둔 채 룰루랄라 떠났을 때, 그의 손에 들린 것은 모든 것을 달관한 듯한 눈빛을 지닌, 노실장 한마리였다. 그 때는 그저 말도 안되는 개소리로 일감이나 미루고 튀었다고 열받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정말로 노다지였던 것이었다. 전 차장이었던 오 차장이 부장으로 올라가는 데는 최고급 사육실장에 준하는 개체를 찾아낸 공로가 컸었다. 하지만 이번에 자신이 찾아낸 것은, 그 희귀하다는 최고급 실장석 중에서도 자를 가졌음에도 분충성 개화는 커녕 도리어 삶에 달관하고 자신이 무엇인지 스스로 구분할 줄 아는 실장석이었다. 나이가 상당히 많이 먹긴 했지만, 그 정도는 단점 축에도 들지 않으리라. 김 차장은 자신이 달게 될 직급을 떠올리며, 갈짓자로 춤을 추듯 자동차를 몰아 나갔다. 자신에게 주어진 행복에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외전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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