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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공원


가을이 끝나가는 무렵의 공원안에서 미간을 찌푸린채 하우스의 공사를 진행중인 실장석이 있다. 그녀의 표정이 안좋은것은 월동준비의 진생상태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노동력으로 부려먹기 위해 낳았던 추자들은 복종시킬 요량으로 옷을 압수하자마자 검은 눈물을 흘리며 파킨해버렸다. 월동준비가 끝나면 자축의 의미로 먹으려 했지만 벌써 죽어버리는 바람에 보존식으로 쓸 수밖에 없어 왠지 손해보는 기분이었다. 엄지실장은 진작에 뭉개버렸다. 말 잘듣고 얌전히 있으면 언젠가 꺼내주겠다는 말만 해도 행복회로를 굴리며 조용해지는 멍청한 녀석들이건만, 이번 가을의 엄지실장은 운치굴에 들어갈때부터 이틀 내내 울어대는것이었다.

죽어도 자신의 손으로 힘든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고아녀석들이라도 속여서 데려올까 하는마음으로 화장실에 가봤었다. 봄과 가을의 화장실에는 으레 버려진 녀석들로 가득하기 마련이건만 그녀가 화장실에 도착해서 볼 수 있었던것은 썩어가는 회색눈의 고기들 뿐이었다. 그나마 청소도구함에서 기척이 느껴서 들어가보았으나 독라 자실장 한마리 뿐이었고 그마저 '테에... 오바상에게 들킨테치. 이젠 틀린테치'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파킨하였다. 결국 노동력이라고는 본인밖에 없었기 때문에 올해 모은 도토리나 나무열매는 작년의 절반도 안되었고 운치굴 정비는 시작도 못했다.

자판기라도 만들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성체독라를 물색해봐도 허탕이었다. 녀석들은 독라여도 어쨌든 성체라 겨울에 얼어죽기전까진 간간히 보여야 했으나 그녀가 가을 내내 물자를 모으러 돌아다니는동안 눈에 들어오는 법이 없었다. 다른 일가를 습격하는것은 생각에만 그쳐버렸다. 작년의 그녀라면 습격이란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른 시점에서 보검을 꼬나들고 목표를 물색했겠지만 올해의 그녀는 별의 별 걱정이 앞서면서 불안해지는 바람에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작년에 비하면 올해 가을공원은 분명 정말 좋은 조건이었다. 실장석이 과다하게 증식한것도 아니고, 도토리와 나무열매가 흉년인것도 아니었으며, 심지어 가을의 구제나 학대파의 등장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다른 실장석을 볼때마다 다들 준비가 모자라고 어깨가 축 쳐져있다. 준비가 모자란만큼 쓰레기장은 싸우는 실장들로 북적여야했으나 한숨이나 쉬면서 '와따시의 행복은 어디있는데수우' 따위를 말하며 쓰레기봉투를 풀지도 않은채 건성으로 뒤적이고있다. '오늘도 살아가는 데스'하며 의지를 다잡는 실장도, 울긋불긋한 가을 광경에 넋을 집밖으로 나와 노예나 고기가 되길 자처하는 자실장도 없다. 공원 전체가 우울함과 무기력으로 가득차있다.

계속해서 불만에 찬 말을 중얼거리며 공사를 진행하는 실장석의 눈에 눈송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녀는 이제 본격적인 겨울씨가 시작됬음을 직감하고 골판지 안으로 들어간다. 먹이가 작년에 비해 모자란것이 걱정이지만 작년과는 달리 춘자도 없기에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마음이었다.

골판지에 들어간지 1일, 보존식인 말린 자실장 하나를 먹었다. 월동을 시작하는 날이었기에 맛없는 열매나 도토리보다는 고기가 먹고 싶었다. 

골판지에 들어간지 7일, 모아놓은 보존식의 25%가 사라졌음을 확인하였다. 분명 아껴먹어야 했으나 어두운 골판지에서의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를 먹는걸로 풀었기 때문이다.

골판지에 들어간지 18일, 자실장 보존식들의 머리를 모두 씹어먹었다. 추자들의 얼굴은 절망의 검은눈물과 위석이 갈라지는 고통으로 가득한 일그러진 얼굴이었으나 실장석의 눈에는 자신을 비웃는 얼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골판지에 들어간지 25일, 단열재 및 이불로 사용하던 추자의 머리카락과 옷가지들을 골판지 밖으로 버렸다. 놈들의 냄새가 날때마다 자신이 먹어버렸던 비웃는 얼굴들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골판지에 들어간지 30일, 먹을것이 떨어졌다. 친실장의 눈에 분명 먹어버렸을 추자들이 나타나 자신을 가리키며 비웃고 있는것이 보인다. 괴성을 지르며 추자들을 뭉개버리기위해 팔을 휘둘러보지만 추자들은 어느새 골판지 반대방향에서 자신을 비웃고 있다. 한참을 난리치다 지쳐버린 실장석은 인간을 욕하기 시작한다. 실장석이 이해할 수 없는일들의 뒤에는 으레 간악한 똥닌겐들이 술수를 부리고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똥노예주제에 건방지다, 독라로 노게자하라, 스시와 스테이크를 내놓아라 따위를 탄식하듯 내뱉던 실장석은 스트레스로 인해 위석이 자괴하여 사망하였다. 

결론적으로, 실장석의 추측은 맞는것이었다. 정기적으로 구제를 해도 실장석이 좀체 줄어들지 않는다고 생각한 당국은 지속적인 구제 방안을 U 제약회사에 의뢰하였고 구제부서의 H주임연구원은 '항 행복제'를 개발해내었다. 이 약제는 인간의 세로토닌과 같이 실장석의 행복을 담당하는 호르몬 및 수용체에 이상을 일으켜 실장석들이 행복회로에 빠지거나 긍정적인 사고가 어렵도록 한다.

올해 여름 시범적으로 공원에 적용된 이것은 공원내 분수 및 화장실에 공급되는 수돗물 안에 미량으로 포함되어 실장석들의 정신을 조금씩 갉아먹어갔다. 가을이 되었을 때, 충분한 양이 실장석들에게 축적되었다. 화장실에 버려진 추자들은 대부분 버려졌다는 사실을 깨닫자 마자 파킨하였다. 나머지들은 처음으로 배고픔을 느꼈을 때 또는 잠들기 위해 누운 화장실 바닥타일의 차가움을 느꼈을 때 자신의 미래를 더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고 파킨하였다. 집으로 데려온 추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자마자 파킨하였다. 성체 독라들은 가을이 끝나가면서 기온이 쌀쌀해지기 시작하자 동사의 두려움에 죽어버렸다.

준비를 마치고 골판지 안에 틀어박히는것은 관 안으로 들어가는것과 같았다. 자가 없는 실장석은 외로움과 골판지의 어둠에 먹혀버렸고, 친실장들은 사소한 트러블로도 자신의 새끼를 가차없이 보존식으로 만들었다. '자는 또 낳으면 되는데스!'라지만 자로만든 보존식을 먹으며 생물농축으로 축적된 항 행복제는 친실장들의 정신을 잠식해나갔다.

드디어 겨울이 끝나고 실장들이 바라마지 않는 봄이 됐지만 골판지 밖으로 나오는 실장석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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