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0년대 중반, 당시 부산포에는 왜관이라 하여 왜인들이 상주하며 조선과 무역과 외교를 하는 일종의 거주지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왜인들의 풍습이 잘 정착되어 있었는데 그중에는 왜에서 가져온 기이한 물건들도 많았다고 한다.
어느 날 인근 동래부에서 관리들이 오자 왜인들은 왜에서 흥하고 있는 취미거리를 보여주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크기의 미물로 사람처럼 겉에 녹색 의복을 두르고 이목구비가 달려있으며, 두발로 걸어 다니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허나 완전히 사람 같다 할 수 없는 것이 몸집도 몸집이지만 사람보다 훨씬 큰 귀가 달려 있는데다 그 옆에 새끼처럼 보이는 놈은 몸뚱아리가 버러지같이 길고 통통하며 사지로 보이는 돌기가 꼬물거리고 있었다. 사람의 낯짝을 달고 있지만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꼴이었다.
이게 뭔가 물으니, 왜인들은 ‘짓소오세끼라는 생물로 왜에서는 높으신 분들이 잉어나 난처럼 기르는 취미거리이외다’고 답했다. 한자로 쓰면 실장석(実装石)이며, 읽으면 직소오세기(嬂小汚崽己)라 하더라.
녹색 버러지 놈들은 끝임 없이 뭐라 지껄이며 돌아다니는데, 사지가 달린 놈은 대가리를 기울이고 한 발을 입가에 올리며 썩 듣기 좋지 않은 소리는 내는가 하면, 버러지 같은 놈은 배를 까고 꼬리를 파닥이며, 분이분이 콧김을 내뿜는 게 썩 보기가 좋지 않았다.
“이보시오, 이 사지가 달린 놈은 아까부터 ‘대치대치’거리며 다니고 저 버러지 같은 놈은 ‘분이분이’라느니 ‘례후례후’라느니 지껄이는데 뭐라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소?” 관리 한명이 물으니 왜인들은 극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 짓소오세끼라는 생물들은 유익한 말을 하는 놈들이외다. 일본의 영주들께서는 이것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마음을 바로잡고 있소이다. 가령 사지가 달린 놈이 하는 ‘대치대치’는 말 그대로 클 대(大) 자와 다스릴 치(治) 자로 크게 다스리란 뜻이며, 버리지가 ‘례후례후’거리는 것은 예(禮)를 후(煦)하게 베풀어 라는 뜻이외다. 그리고 ‘분이분이’는 이로운 것(利)을 나누라(分)는 뜻으로 이로운 것을 서로 나누며 살라는 뜻입니다.”
아주 영특한 생물이로다. 관리들은 입을 모아 이 녹색 동물들을 치하했다. 그리고 왜인들에게 한 마리씩 나눠받아 자신의 집에 데리고 가서 길렀다. 직소오세기라는 생물은 일반적인 자연의 이치에 거스르는 생물로 분명 암놈들 밖에 없었는데 꽃가루 날리는 봄이 되자 배가 불러왔다. 수놈도 없이 암놈 홀로 새끼를 배었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개처럼 많은 새끼들을 낳았고 관리들은 이 녹색생물들을 임금님이 계신 한양에 진상했다. 이로서 도성의 사대부를 비롯해 관리들과 학자들 집안에도 직오소세기들이 들어갔다. 관리들은 이 직소오새기들에게 비단옷을 입히고 쌀밥을 먹이는 등 극진히 대했다.
허나, 이 직소오새기라는 것들은 아주 영악한 생물들로 그 자체는 아둔하고 미천하지만 제 주인의 권세가 어떤 것인가는 귀신같이 잘 알았다. 또한 제 자신들을 본래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가치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한 존재라 여겼으며 그렇기에 만물을 자신의 발 치 아래에서 내려다보고 업신여기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때문에 직소오새기들은 제 주인과 가족들에게는 깍듯이 대했지만 노비들이나 저잣거리의 백성들에게는 아주 박하게 대하였다. 다짜고짜 싸지른 분변을 집어던지는가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쇠고기구이와 금평단(金平糖)을 탐하며 패악질을 일삼았다. 이러한 귀중한 먹거리를 본 적조차 없는 노비들은 그저 감내할 따름이었다. 이 버러지들에게 실력을 행사했다가 대감에게 매질을 당하는 것보단 낫다 여긴 것이었다.
허나, 이러한 행패가 시간이 흐를수록 극에 달하자 이를 성토하는 상소가 끝임 없이 조정에 올라왔다. 그러나 궁내대신들은 이에 대해 탐탁지 않게 여겼는데 마찬가지로 저마다 직소오새기를 한 마리씩 기르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대신들은 저마다 상감께 아뢰었다. “이렇게 바른말만 하는 것들이 그렇게 못된 짓을 할 일이 없다고 생각 하옵니다, 전하. 어진 마음으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노비들의 모함이 분명하옵니다. 자신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빼어난 말을 하니 이 직소오새기의 참된 가치를 모르고 저지르는 우매한 처사이옵니다.”
대신들이 입을 모아 직소오새기를 옹호하는 호소를 하니 이에 마음이 동하게 된 상감께서는 결국 이 상소를 무르셨다. 이후에도 학식을 갖춘 선비들이 직소오새기를 규탄하는 상소문을 올리곤 했지만 막강하게 버티고 서 있는 대신들에게 가로막혀 진척이 없었으니...
결국 불쌍한 백성들은 예나 지금이나 직소오새기의 패악질에 당할 수밖에 없었으니 가엾고 딱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러한 비참한 형국에서 홀로 왜에 다녀와 직소오새기에 대한 도를 터득한 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학하(虐昰) 이철웅(李鐵熊) 선생이었다. 선생은 왜의 직소오새기의 대가인 류탄(流彈)과 명지(明智)에게 직접 사사받아 직소오새기의 말뜻을 알아듣게 되었으며 놈들의 특성과 습성, 호오를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이러한 학하에 대한 명성이 조선에 알음알음 퍼질 무렵 어느 지방의 대감이 찾아와 그에게 조언을 구하였다. 그 대감 댁에는 몸집이 심히 비대한 직소오새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대감이 말하길,
“새끼 때 사온 직오소새기가 나이를 먹어 몸집이 비대해지고 어느 순간부터 새끼까지 까버렸소. 그런데다 처음에는 안그러더니 갑자기 제 대가리가 굵어졌다고 이제는 말도 듣지 않는 것이오. 한번은 새끼랑 대청에서 분변을 싸지르고 놀던 놈들에게 작작 싸라며 한소리 했더니 갑자가 ‘대사악’ ‘대추악’ 거리면서 이빨을 드러내보였소.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훈계하고자 들고 있던 곰방대로 머리통을 내리쳤는데 힘 조절을 못해서 새끼가 머리가 깨져서 죽어버린 게 아니오. 어미는 갑자기 곡소리를 내더니 ‘오로론오로론’거리던데 뭔 말을 지껄이는지 알 도리가 없지 않소. 짐승의 말을 알아 들었으면 개나 소랑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지만 서도. 어찌되었든 간에 선생은 뭔가 짚이는 것이 있소?”
대감의 말을 찬찬히 듣던 철웅은 명쾌한 해답을 주었다.
“이 직오소새기라는 것은 아주 탐욕스러운 생물로 끝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숭늉을 떠다주면 밥을 내놔라고 하는 것이 직소오새끼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제 주인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천둥벌거숭이마냥 나대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새끼 때부터 엄한 훈육과 적절한 매질이 필요한 법입니다.
처음 그놈들이 말한 ‘대사악’과 ‘대추악’은 말 그대로 대감께서 크게 극에 달할 정도로 악하며, 크게 추하고 악하다고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로론은 그릇될 오(誤), 늙은이 로(老), 논할 론(論)을 뜻하며 이 말인 즉, 그릇된 늙은이에 대해 논하라는 뜻으로 대감의 과오에 대해 공론화하여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철웅의 풀이를 들은 대감은 “이 배은망덕한 버러지가!”라며 대노했다. 그동안 먹이고 재워준 은혜도 잊고 송곳니를 세우는 게 직소오세기라고 철웅은 말했다. 자식조차 부모의 과오를 비판할 수 없는데 하물며, 미천한 동물이 주인을 비판한다는 것은 가당치 않은 일이지 않은가?
결국 대감의 직소오새기는 그날 멍석에 말린 채 몸뚱이가 곤죽이 될 때까지 매질을 당했다. 타작이 끝나고 멍석을 다시 펼쳐보니 사지가 뒤틀리고 눈알이 튀어 나왔으며, 후장에는 분변과 장기를 쏟아낸 데다 아가리에는 허파와 염통, 옥빛이 나는 돌을 물고 있는 것이 차마 눈뜨고 보기 괴로울 정도였다.
이후에도 이철웅은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며 직소오새기의 말뜻을 풀이해주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직소오새기의 감춰둔 본성을 알게 되었고 그 분노가 하늘을 찌르기에 이르렀다. 조선팔도 그 어느 지방 할 것 없이 직소오새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고을이 없을 정도였다.
성체부터 버러지까지 가릴 것 없이 효수된 대가리가 성문에 내걸린 것은 예삿일이었다. 결국 제가 누릴 수 없을 정도의 권세를 누릴 만큼 누리던 직소오새기들은 토사구팽을 당하게 되었다. 대신들과 학자들은 이 흉물스러운 것들의 꼴도 보기 싫어 하였으며 손대는 것 조차 혐오할 정도였다. 결국 노비들에게 떠넘겨져 처분이 맡겨졌다.
노비들은 뜻하지 않게 수중에 들어온 육고기니 산채로 백숙을 끓이거나 피를 빼고 내장을 걷어내고 꼬챙에 꿰어 구웠다. 생각 이상으로 명줄이 긴 직소오새기는 제 몸이 완전히 익어버리기 전까지 괴성을 질러대었다고 한다. 먹고 남은 직소오새기는 털이 뽑힌 채 모내기에 투입되거나 밭을 돌며 새를 쫒았고 힘이 축나거나 죽을 때가 된 놈들은 퇴비로 쓰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곤두박질친 신분하락에 항의했지만 매질을 몇 번 당하니 제 처지를 달관했다. 혹자는 이제야 직소오새기가 유용한 쓰임새를 찾았다고 평했다. 세간의 사람들은 권력자에게 기대어 취한 권세는 이토록 쉽게 무너진다며 혀를 찼다고 한다.
-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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