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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우페라도 (종이실장)


 공원은 정말로 한산했다. 인간의 발걸음이 닿지 않는 곳 같았다. 골판지 하우스만이 즐비하여 공원은 실장석들의 마을이었다. 공원에 사는 들실장들은 인간 사회의 부산물을 이용해 사는데, 인간은 없는 모순된 곳이다. 마치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어지길 원해서 생긴 마을처럼.

  늘어선 골판지 하우스들은 각각의 역할이 있었다. 숙소, 음료를 마시는 곳, 화장실, 장례식장, 그리고 공동으로 구더기를 돌보거나 자실장들을 가르치는 기관도 있었다. 특이하게도 이 공원의 들실장들은 산실장의 커뮤니티에 가까운 마을을 이룩하고 있었다. 공동의 적이 있어도 도무지 협동할 줄을 모르는 똥벌레들이, 평온한 상태에서 협동을 시작했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계절은 이제 초봄이 지나 따뜻하다. 빨아놓은 옷들이 골판지 뒤편 가지에 바람을 받아 말라가고, 마을 회관으로 쓰이는 가장 큰 골판지하우스의 울타리 안에서 독라노예들이 햇빛을 쬐고 있었다. 결국 실장석은 실장석, 신체적 차이에 따른 계급 발생은 어쩔수가 없었나보다. 그래도 노예들치고는 위생상태도 좋고 팔자도 좋다. 그들 앞에 데스데스 하고 몇몇 성체실장들이 잡초를 먹이로 쌓아둔다. 그들 중 하나가 마을 풍경을 돌아보다가 눈살을 찌푸린다.

  마을의 입구를 지나 마을 회관쪽으로 독라노예를 탄 실장석이 유유히 오고 있었다. 여느 실장석과는 다르게 앞치마가 검은색인 실장석이었다. 앞치마의 크기가 비정상적으로 커서 앞치마라기보다는 판초같은 형태였다. 그 실장석은 마을회관쪽으로 다가오더니, 두건을 '손가락으로' 살짝 집는 모션을 취하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처음뵙는 데스, 친구들.
  -뎃...
  보통 실장석의 손은 뭉툭한 바게트처럼 생겼거나, 벙어리장갑처럼 돌기가 하나 있는 정도다. 그런데 지금 인사하는 검은 판초를 쓴 실장석은 손가락이 있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다른 실장석보다 돌기가 하나 더 많은 정도다. 긴 돌기, 짧은 돌기.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일과 그 디테일이 엄청나게 달라진다. 가령 사육실장이었다면, 주인과 사진을 찍을 때 손가락으로 더블피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을의 실장석이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그녀가 외지실장이기 때문이다.

  -우린 외지 실장이 여기서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는 데스. 특히나...

  실장석 하나가 치마를 들어올리자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실장들도 치마를 올렸다. 치마를 올려 뒤쪽 팬티 속에 집어넣으니, 팬티 옆쪽에 걸린 리볼버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합 세 명의 실장석들이 총을 꺼내 독라노예를 탄 외지실장을 둘러싼다.

  -이렇게 독라 노예를 타고 다니면, 춤을 추게 만들고 싶은 데스.

 격발음과 함께 독라실장의 발 앞의 흙이 튀어오른다. 생명에 지장을 줄 사건임을 직감했는지 독라노예가 양 눈에서 색깔있는 눈물을 흘리며 일어선다. 덕분에 외지실장이 고삐를 놓칠 뻔 하지만, 가까스로 중심을 잡는다.

  
  탕! 타탕! 타탕!
  -데갸아아아아아!!!! 살려주는 데스, 살려주는 데스!
  -데아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

  독라노예는 똥을 줄줄 흘리면서 아무렇게나 달려 도망가기 시작한다. 총을 쏘던 실장들도 길을 터준다. 녹색 선을 그리면서 도망치는 독라노예를 보고 비웃는다. 가끔 오락거리가 부족해지는 공원에서는, 이렇게 외지인을 모욕하는 것이 꽤 좋은 엔터테인먼트였다. 협력이 외부에 배타적인 성격을 줬는지도 모른다. 

  한편 독라노예가 싫어싫어를 하며 도망친 곳은 마을 회관에서 조금 떨어진 숙소 하우스였다. 외지실장은 그 앞에 있는 빨래줄을 잡아 매달렸다. 독라노예는 그대로 몇 걸음인가를 더 도망쳐, 그자리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빨래줄에서 땅으로 가볍게 착지하는 외지실장. 그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린다. 얼굴에 주름이 지자 꽤 흉악한 얼굴이었다. 이윽고 외지실장은 무언가 결심한 듯이 마을회관쪽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텟테로게ㅡ 골판지는 우리의 집인 데스.
   텟테로게ㅡ 살아서도 죽어서도 우리의 집인 데스.

  걷다보니 길 옆쪽 골판지하우스에서 즐거운 듯 노래를 부르며 골판지를 세공하는 실장이 있었다. 상당한 나이를 먹었는지, 이제는 아마색 머리가 희끗희끗한 성체실장이었다. 마을에서의 역할은 아무래도 장의사인 것 같았다. 외지실장과 눈이 마주치자 손을 들어 인사한다. 이 개체는 오래 살아서인지 외부의 손님을 싫어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외지실장은 인사를 무시하고 지나간다.

  (요즘 젊은이는 예의가 없는 데스)
  
  생각을 읽히기라도 했는지 외지실장이 갑자기 홱 그녀를 돌아봤다. 장의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했다. 

  -관 세 짝을 준비해두는 데스. 

  목소리는 평온했으나 기세에서 위압감이 느껴져 장의실장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외지실장은 큰 걸음으로 마을회관을 향해 걸어갔다. 아까 독라노예를 '춤추게' 만든 실장석들은 마을회관의 울타리에 기대거나 앉아서 데스데스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방금 나온 한 마리에게 아까 이야기를 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그들의 시야에 외지실장이 들어왔다. 

  -안녕인 데스. 친구들.
  -아까 말한 데스. 우리는 외지 실장이 돌아다니는 걸 싫어하는 데스. 독라 노예를 데리고 꺼지는 데스.
   아니면, 우리가 독라 노예가 도망치게 만들어주는 데스? 
  말을 마치자 주변 실장들도 눈을 아치 모양으로 하며 데퍄퍄퍄퍄퍄 하고 웃기 시작한다. 한방 먹였다는 듯이 동료를 쿡 찌르는 실장까지 있었다. 외지실장은 실장석들이 다 웃을 수 있게 기다려준다.

  -그것 때문에 여기 온 데스. 
  -무슨 말인 데스까.
  -독라 노예 말인데스. 아까 총질때문에 발이 다 까지고 흙이며 잡초가 튀어서 더러워진 데스.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착한 자인 데스. 지금 막 울고있는 데스. 
  마을회관 앞의 실장석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외지실장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아까의 총성 이후로 마을의 골판지 하우스들의 창문으로 적록의 눈들이 마을회관 쪽을 보고 있었다. 대담하게 창 밖으로 고개를 빼는 사람도 있었고, 몇몇은 아예 밖으로 나와 구경하고도 있었다. 이런 실랑이가 일어나는 일 자체가 적었으므로, 일종의 여흥인 모양이었다.

  -거기, 무슨 농담이라도 하는 데스까?
  -아니 데스. 오마에들이 춤을 좋아하는 걸 와타시는 이해하는 데스. 하지만 독라노예는...감정이 섬세한 아이데스. 그러니 오마에들이 잘 사과한다면...

  -데아아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퍄!!
  독라노예에게 사과를 하라는 말에 모든 실장석들이 소리높여 웃기 시작한다. 퍽 재밌는 말을 들었다는 듯이, 빵콘하는 놈도 있을 정도였다. 

  -거기서 웃는 건 현명하지 못한 것 같은 데스.
  하지만 외지실장은 그걸 보고 판초를 어깨 뒤로 밀어넘긴다. 그녀의 원피스에는 허리띠가 둘러져 있고, 오른쪽에 리볼버가 한 정 걸려있다. 총이 보이자 웃음 소리가 잦아든다. 공원실장들의 시선이 외지실장에 몰린다. 그녀는 적록의 눈을 찡그린 채로, A자 모양의 입을 거의 다물 것처럼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 않아도 충분히 위압적인 생김새였다.

  -지금이라도 가서 사과하는 데스. 나는 몰라도, 그 아이가 화나면 정말 그때는 끝인 데스요. 진심으로 사과하면, 나도 잘 말해줄 것인 데스.
  이미 외지실장의 말은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치마를 올린 그들은 맨 앞에 서 있던 리더격인 실장석이 땅에 침을 뱉는 것을 신호로 일제히 총을 뽑아 사격하려고 했다. 

  탕! 탕! 타타탕!
  
  풀썩.

  다섯 발의 총성과 함께 총에 손을 올린 채로 네 명의 공원실장이 위석이 부서져 사망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외지실장이 리볼버를 들고 서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손가락이 하나인 것과 두개인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한다. 한손으로 자유롭게 총을 쓸 수 있다는 점 덕분에 상대적으로 빨리뽑기에 유리하고, 한 손이 자유롭기 때문에 패닝도 구사할 수 있다. 손가락으로 리볼버를 빙글빙글 돌려 홀스터에 넣자, 마을회관에서 마라실장이 뛰쳐나온다.

  -거기 너, 이 넷을 쏴죽이는 걸 본 데스아! 
  대답 대신 외지실장이 다시 리볼버를 뽑아 겨누자, 마라실장이 양 손과 마라를 위로 들어올린다. 전투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넌 누구인데스?
  -쏘지 말아 데스. 나는 이 곳의 보안관데스!
  -...그러면 보안관이 시체를 처리하면 되는 데스.
  총을 집어넣고 판초를 다시 뒤집어 쓰고 돌아가는 외지실장을 바라만 보는 보안관 마라실장, 위석이 부서졌다는 점을 빼면 깔끔한 시체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장의실장은 아까부터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외지실장이 그녀에게 다가오자 자기도 모르게 싱긋 웃어보인다. 외지실장도 그녀를 보고 살짝 입꼬리를 올리더니, 양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 네 개를 보인다.

  -실수한 데스. 관 네 짝이었던 데스.





 -컷, 컷, 컷! 
 저 멀리 책상에 앉아서 모든 사태를 관찰하고 있던 인간이 소리를 질렀다. 기쁨에 겨운 소리로 메가폰을 빙빙 돌리면서 공원, 아니 공원 모양으로 꾸며진 세트장으로 다가온다. 외지실장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팡팡 친다. 

  -잘했어, 대단해, 히가시모리(東森). 넌 정말 실장영화계의 보물이야!
  -닌겐상 덕택인 데스...

  아까까지의 위압적인 모습을 상상도 못할 만큼 외지실장, 아니 배우실장석 히가시모리는 볼을 만지며 얼굴을 붉혔다. 장의실장 역을 맡은 단역실장도 다가와서 히가시모리 앞에 고개를 숙인다.
  -선배상 수고한 데스.
  -오마에도 잘한 데스요. 콘페이토 같이 먹는 데스까?
  판초 아래 홀스터 반대쪽에는 작은 실장가방이 있었다. 거기 비상식량이나 간식으로 콘페이토가 들어있었다. 다정하게 둘은 세트장에서 나와 배우실장들을 위해 준비된 의자에 앉아 콘페이토를 나눠먹는다. 

  -그나저나 오마에. 저 모습을 어떻게 생각하는 데스까?
  콘페이토의 단 맛에 자기도 모르게 데스웅~하는 소리를 내는 후배에게 히가시모리가 말을 건다. 그녀의 턱이 가리킨 쪽은, 아까 총격전에서 사망한 실장들이었다. 인간 스탭들이 나와서 그들을 봉투에 담고 있었다. 
  -뎃, 메소드 연기가 아니었던 데스까.
  -...총은 진짜데스요. 물론 죽음도 진짜데스.
  -데에.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는 후배실장. 히가시모리의 표정도 심각하다.

  -아무리 리얼리티를 위해서라지만 영화를 위해 닌겐을 진짜로 죽이는 닌겐은 없는 데스. 하지만 우리 실장석들은 얼마든지 소모되는 데스. 닌겐의 눈에 우리는 다 비슷하기 때문인 데스. 
  -데! 선배상처럼 대체가 불가능한 실장배우가 되면 되는 데스.
  -그렇지도 않은 데스. 지금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것인 데스. 하지만 기억해두는 데스요. 우리 실장석은, 절대 닌겐의 위에 설수 없는 데스요.

  깊이 한숨을 쉬는 히가시모리, 이내 다 잊었다는 듯이 후배실장과 콘페이토를 나눠먹으며 웃는다. 그 뒤에서 모든 것을 듣고 있던 감독도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둘의 미소가 같은 의미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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