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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운치싸는남자(175.213))


실장석이 버려지는 케이스는 아주 흔하다.
주인의 지겨움, 경제적사정, 집안문제, 실장석의 분충화 등..

미도리는 그런 사정으로 버려진 실장석이다.

[미도리. 나는 분명히 말했었다. 너 하나 기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데에에...하지만 와타시의 아가 실장들이 귀엽지 않은 데스?]
[...아가라, 짐승의 새끼는 새끼라고 부를 뿐이다. 방금 넌 날 굉장히 화나게 만들었어]
[데갸아아악!!!!]

미도리는 주인을 화나게 만들었다.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새끼를 가졌기 때문이다.

한두 마리면 뭐, 주인도 용서했을지 모른다.
하나 녀석은 무려 11마리나 되는 대가족을 만들어서 집안을 개좆판을 만들었다.

게다가 인간들이 가장 싫어하는 [아가 실장]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녀석은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고 새끼들과 같이 공원에 버려졌다.

그러나 주인은 마냥 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미도리를 공원에 버리면서 한 가지 목표를 주었다.

[딱 반 년. 반 년만 살아남아라. 나는 네가 죽도록 밉지만, 반 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면 다시 길러줄 거다.]
[데히이...다시...다시 길러주는 데샤...]
[미도리. 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야. 사실 너 하나 기르기도 벅차지만 그간의 정으로 길렀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주인은 숨을 골랐다.

[마지막 기회다. 반 년. 딱 반 년 동안 살아남아. 제발, 이번에는 날 실망시키지 말아줘.]
"주인사마.."

미도리는 주인의 말을 되새겼다.
벌써 한 달도 전의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마! 먹을 거, 먹을 거 내놔테챠아아아!!!"
"배고파테치 배고파테치 배고파테치 배고파테치이이이!!!!!!"

미도리의 새끼들은 배고픔을 호소했다.
풍족한 인간의 집에서 아무 걱정 없이 지내다가 갑자기 험난한 야생에 버려지자 좀체 적응하지 못했다.

미도리는 그런 새끼들을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움직였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쓰레기통을 뒤지고, 벤치나 돌의자에 버려진 음식물을 잽싸게 주워다 골판지상자로 가져왔다.

하지만 새끼들은 그런 미도리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았다.

"정말 무능한 똥마마인 테치!"
"...데에."

장녀의 말이 미도리의 가슴을 후벼팠다.
미도리는 더 이상 새끼들이 귀여워보이지 않았다.

그날 밤, 미도리는 새끼들을 버리고 도망쳤다.

***

미도리가 떠난 이후 골판지의 사정은 뻔했다.

"테쨔아아아아아!!! 팔 먹지 마는 테챠아아아!!!"
"데프프. 살코기가 아주 야들야들한데스."
"멍청한 자실장들인테치. 마마, 다리는 와타시가 먹어도 되는 테치요?"
"물론인 데스.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데승!"
"테쨔아아아!!!"
"찌이이이이--- 치이이이이이!!!!"

미도리가 떠나고 단 하루만에 전멸해버린 새끼들.
힘을 모아 덤볐다면 3마리의 들실장들을 물리칠 수 있었겠지만, 무리였다.

애초에 그게 가능했다면 이 자실장들은 어미와 같이 버려질 일도 없었다.

"데승. 주인사마는 아직도 멀은 데스까?"

미도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주인이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하지만 아직도 반 년이 오려면 한참이나 남았다.

<2달차>

버려진 날로부터 두 달이 지났다.
그동안 미도리는 새끼를 버리고, 또 새끼를 가졌다.

뭔 씨발 짐승새끼도 아니고 힘들다고 버려놓고 또 새끼를 가지는 게 이해되지 않지만..
실장석은 원래 그런 녀석들이니 넘어가자.

"마마..와타시 꼬륵꼬륵테츄..."
"여기 푸드를 가져온 데스. 조금밖에 없으니 아껴먹는데스요?"
"테에..배고픈 테치..하지만 마마 먼저 먹는 테치!"
"오로롱...정말 착한 자인 데스.."

미도리는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었다.
자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키우는 게 불가능해짐을 깨닫고 숫자를 제한시켰다.

이번에 미도리가 낳은 새끼의 숫자는 모두 여섯.
하지만 미도리는 단 둘만을 남기고 전부 먹어치웠다.

"세상의 보물인 와타찌가테어난테쨔아아아아!!! 무슨짓인 테찌이이이!!!"
"보물 이지랄하는 분충은 필요없는데스."
"치프프! 와타시처럼 고귀하지않으니 그렇게되는테챠아아아!! 뭐인테치! 와타시는 왜 깨무는 테챠아아아!!!"
"실장석이 무슨 고귀 데스, 병신인데스까?"

...그런 사정으로 양충 두 마리를 제외하고 전부 뱃속행이 되었다.
미도리는 사육실장 출신답지 않게 공원에 잘 적응했다.

"쓰레기장을 뒤지는 건 위험한데스. 먹을 것도 별로 없고, 차라리 의자와 긴 의자를 노리는 게 나은데스."
"이 열매는 아무 맛도 없는 데스..하지만 먹을 수 있는 데스."
"최대한 깔끔하게 씻고 다니는데스. 인간사마들은 더러운 분충을 굉장히 싫어하는데스."
"...와타시는 분충이었던 데스. 주인사마가 싫어할 만 했던 데스."

미도리는 점점 자신의 분수를 깨달아갔다.
새끼를 키우고, 실패하고, 다시 새끼를 키우면서 주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공감되어 눈물을 흘렸다.

<4달차>
시간은 유수처럼 흐른다.
미도리가 새로 낳은 새끼들은 어느새 중실장으로 거듭났다.

"테스. 마마, 주인사마는 어떤 분인 테스?"
"데프프. 주인사마데스까...좋은데스. 오늘은 주인사마에 대해서 얘기해주는데스요."
"테승! 빨리, 빨리 얘기해주는테스 마마!"

장녀와 차녀의 보챔에 미도리는 웃으면서 입을 조잘거렸다.
벌써 몇십번이나 반복된 이야기지만 중실장들은 눈을 빛내면서 그것을 들었다.

미도리는 주인이 대단하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저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삶을, 때론 약간의 불만도 있는 그런 생활을 했다고 언급했다.

"..자들은 듣는데스. 평범한 삶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닌 데스. 아니, 평범한 삶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데스."

미도리는 이젠 까마득한 과거를 회상하면서 입술을 움직였다.
자실장이었던 시절에 왜 그리도 세상에 불만이 많았을까.

주인의 따스한 손가락일 밀쳐내고 게걸스럽게 음식을 탐했던 자신이 이해되지 않았다.
스테이크와 콘페이토는 먹으면 잠깐 기분은 좋지만 고작 그것뿐.

'주인사마...'

주인과의 별거 아닌 생활이 그리웠다.
티-비라고 부르는 상자를 보면서 잡담을 나누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데스.'

미도리는 숫자를 셌다.
실장석의 기준으로 반 년은 정말 멀고 먼 기간.

하나 녀석은 계절이 바뀌는 것으로 그것을 계산했다.

<6달차>

반 년.
미도리는 공원에서 반 년을 버텼다.

그간 중실장이었던 새끼들은 성체로 성장했다.

"마마. 또 공원 입구를 보는 데스까?"
"데프프. 와타시의 취미인데스요."
"장녀챠, 내버려두는데스! 와타시는 마마랑 이렇게 있는 시간이 좋은데스!"
"차녀가 참 기특한데스. 이리오는데스, 오랜만에 마마가 안아주는데스!"
"데에...부끄러운데스."
"치사한데스! 와타시도 같이 안아주는데스!"

장녀와 차녀는 독립하지 않았다.
새끼를 가지는 것은 실장석의 본능인지라 성체가 되면 자연스럽게 독립하여 자기만의 가족을 가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었다.

하나 이는 미도리의 따스한 사랑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었다.
장녀와 차녀는 미도리가 살아온 인생얘기와 부지런한 노동을 보고 새끼 키우기가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렇게 마마와 평생 같이 살고 싶은 데스."
"와타시도데스."

미도리의 눈에서 색눈물이 흐른다.
녀석은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주인사마, 죄송한데스. 그리고 고마운데스. 와타시, 행복한데스.'

주인은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다.
공원에 버려지는 무수한 실장석이 바로 그러했다.

자신이 버림받았음을 모르고, 아무런 희망도 없이 방황하다가 그렇게 죽었다.
그러나 주인은 미도리에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을 주었다.

[반 년이다.]

반 년.
주인은 반 년 뒤에 온다는 약속으로 미도리에게 목표라는 것을 부여해주었다.

덕분에 미도리는 아무리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다.

"미도리!"
"..주인사마??!"

주인이다. 주인이 찾아왔다.
미도리는 깜짝 놀라 익숙한 체향과 생김새를 지닌 주인에게 달려갔다.

그러다 멈칫,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와타시를 알아보겠는데스까??"

자신은 이제 더는 귀엽지 않다.
버려졌을 때와 비교하면 너무도, 너무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험난한 공원생활에 찌들 대로 찌든 모습.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데 대체 어찌 알아보는지 그게 궁금했다.

"말했잖아 미도리, 반 년 뒤에 찾아온다고. 나는 네 몸에 IC칩을 심어뒀어."
"데? 그게 뭐인 데스?"
"네가 내 사육실장이라는 증표."
"데에에...!"

주인은 미도리를 버렸지만 녀석을 잊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장석의 생명을 매우 가볍게 여기지만, 그는 대화가 통하는 생물을 도저히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미도리가 집에 왔을 때 심어둔 IC칩을 회수하지 않았다.
아주 희박한 확률이지만 녀석이 반 년 동안 살아남는다면 다시 데려올 생각이 있었다.

'새끼를 낳아서 끝인 줄 알았는데...'

주인은 반 년 전의 일을 떠올렸다.
그는 IC칩을 통해 미도리의 위치를 파악할 수가 있다.

그래서 녀석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관찰을 했다.
처음 한 달은 녀석이 꼴도 보기 싫어 공원 근처도 오지 않았다.

이후에는 녀석을 보자 새끼를 버린 것을 보고 실망했다.

그러나, 미도리는 달라졌다.
새로 낳은 새끼를 기르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다.

미도리는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
사람도 하기 힘든 것을 고작해야 실장석이 해낸 거다.

남자는 간간히 미도리의 생활을 살펴봤다.
녀석은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발버둥을 치면서도 밑바닥까지 타락하지 않았다.

으레 실장석들이 저지르는 동족식을 하지 않았다.
쓰레기를 멋대로 뒤져 어지럽히지도, 사람을 보고 노예라며 운치를 던지지도 않았다.

"와, 와타시, 노력한데스 주인사마. 와타시, 노력한데스..."
"알고 있다. 몰랐으면 이렇게 찾아오지도 않았어."
"..."
"....미도리, 약속을 지켰으니 다시 우리집으로-"
"와, 와타시. 새끼를 가진 데스. 죄송한데스, 주인사마. 와타시는 주인사마와 같이 살지 못할 것 같은 데스..."
"마마! 그게 무슨 소리인데스까!"
"이날만을 기다리지않았던데수?? 와타시타치는 상관없으니 주인사마께 가는데스요!"
"오마에! 가족을 버리고 어딜 가란말인데스!!!"

남자는 할 말을 잃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미도리는 이제 그 싹퉁바가지 없던 자실장이 아니다.

어엿한 가정을 거느린 마마.
자식들도 이미 다 커서 성체가 됐지만 얼마나 잘 가르쳤는지 길러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남자는 잠시 고민했다.
과거 녀석이 새끼를 낳았을 때 남자는 11마리나 되는 자실장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11마리에 비하면 확연히 적지만 성체 3마리도 비슷하게 돈이 들 거다.
하지만...

"셋 다 우리집으로 와라."
"데에에에???"
"데에에에!!!!
"그, 그, 그, 그게 무슨 말인데스까 주인사마???!"
"미도리. 약속은 약속이야. 넌 반 년을 버텼고, 그리고...아 씨발 됐으니까 빨리 따라와. 네 하우스에 든 거 이제 필요없으니까 바로 가자고."

미도리는 약속을 지켰다.
남자도 약속을 지켰다.

더는 귀엽지 않게 된 미도리와 새끼들이지만, 상관없었다.
남자는 미도리가 늙어서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다고 다짐했다.

살기 팍팍한 삶이지만 실장석 하나..아니 셋조차 기르지 못해서야 무얼 하겠다고!

"미도리."
"데스. 주인사마."
"돌아가면, 네 자식들 이름도 고민해보자."
"...좋은데스요."

주인사마.
미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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