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 오늘도 많이 나온 테칫!]
얼굴에 송골송골 맺혀있는 땀을 훔치며 장녀가 숨을 돌렸다.
최근 입이 하나 줄었다곤 하나 여전히 밥 모으기로 바쁜 친실장을 대신하여 장녀가 스스로 골판지 하우스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는 것이다.
하우스 주변을 어지러이 굴러다니는 잎사귀나 구더기쨩이 화장실에 가려다 참지 못하고 흘려버린 흔적 등 다른 평범한 들자실장이라면 질색을 할 일에도 장녀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작은 몸으로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하우스 주변을 굴러다니는 초록 잎사귀와 비슷한 크기 정도로 아직 작디작은 장녀에게 청소는 아주 고되고 피곤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마마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냈다.
[하우스 내부의 청결도 중요하지만 하우스 주변의 청결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데스.]
친실장이 자실장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을 때마다 강조하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
[하우스의 내부가 아무리 깨끗해도 하우스의 주변이 더럽다면 반드시 외적을 불러오는 데스. 동족뿐만이 아니라 더 크고 무서운, 어른 실장석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아주 무시무시한 놈들까지도 오는 데스. 그러니 항상 자기 자신과 하우스, 그리고 하우스 근처까지 청결하게 관리해야 하는 데스우.]
[테에에! 어른 말고도 더 무서운 게 있는 테치!?]
[와타치는 절대로 더럽히지 않을 테츄! 무서운 거 싫어 테챠!]
[치프프픗! 오네챠들은 겁쟁이테치! 와타치는 그런 놈들 하…하나도 무섭지 않은 테츄!]
장녀와 차녀가 친실장의 과장된 표현에 얼굴을 새파랗게 물들이며 허둥지둥 말한다. 3녀는 잔뜩 겁을 먹은 언니들을 놀리며 어깨를 피고 허세를 부렸지만 한껏 힘이 들어간 그 어깨는 자세히 보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실장 자매는 3마리로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낼 줄 알았는데.
갑자기 떠오른 3녀와의 추억에 장녀의 작은 어깨가 축 처진다. 3녀를 떠올리지 않기 위해 힘든 일을 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려 했지만 골판지 하우스 주변 이곳저곳에 서린 3녀와의 기억에 장녀는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테...테에엥...테끅...테끅...]
혹여 골판지 하우스 안에서 동생들을 돌보고 있는 차녀에게 울음소리가 들릴까 장녀는 최대한 몸을 수그려 울음이 새어나오는 입을 막았다.
안 그래도 눈치가 빠른 차녀인지라 오늘도 혼자 청소하겠다는 자신을 따라 나오려는 것을 보살핌이 필요한 엄지쨩과 구더기쨩의 핑계를 대며 떼놓은 것을 망칠 순 없는 것이다.
울음을 꾹 눌러 참고 겨우 청소를 끝마친 장녀는 적녹색의 눈물 자국을 잎사귀로 슥 닦으며 동생들이 기다리고 있을 골판지 하우스 안으로 서둘러 들어간다.
**
평소의 일과를 끝마친 후에는 자실장들에게 괴로운 시간이 다가온다. 친실장이 없는 시간 동안에는 결코 시끄럽게 테치테치 울어선 안 되고 바깥을 마음대로 돌아다녀서도 안 된다. 굶주린 공원에서 친실장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자실장이란 공원의 들실장들에게는 걸어 다니는 간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자실장들을 집에 남겨두고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친실장들은 보통 따사로운 해님의 빛 조각 하나 들어오지 않도록 골판지 하우스를 꽁꽁 닫고 자실장들에게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소란을 피우지 말고 하우스 안에서 쥐 죽은 듯이 마마를 기다리라고 당부한다.
하루 종일 풀밭을 구르며 뛰어 놀아도 성이 안찰 한창 때의 자실장들에게 그러한 친실장의 말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뿐이었다.
[텟치~! 나비상, 거기 서는 텟츄!]
친실장의 이런 애타는 마음도 헤아리지 못 하고 당장 눈앞의 나비에 홀려 제멋대로 하우스를 뛰쳐나와 즐거운 목소리로 떠드는 자실장들은 물론 아주 많다.
[테칫! 나비상 너무 빠른 텟...테쟈아아앗아아!! 와타치는 먹는 게 아닌 테베벳!]
잔혹한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골판지 하우스를 뛰쳐나온 자실장들은 방금까지 즐거움, 행복으로 높이던 목소리로 고통, 절망을 호소하며 죽어가게 된다.
[데퍄퍄퍄! 자실장을 혼자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는 분충은 대체 누구인 데스우? 덕분에 오늘은 맛있는 자실장 고기를 손에 넣게 된 데스웅~♪]
[테...마마....도...와테치이...]
그제서야 마마와의 약속을 어긴 것을 후회하고 도움을 구하는 자실장이지만 이미 몸의 절반은 성체 들실장의 입 안에 들어가 한 가닥 흘러나온 내장부위만이 애처롭게 원래 한 몸이었다는 것을 주장하듯이 자실장의 상체와 들실장의 적녹색 피로 얼룩진 입 사이에서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공원의 다른 어떤 실장석보다도 하루 일과를 일찍 시작하는 현명한 친실장은 이러한 공원의 실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찾지 않을 공원의 가장 외지고 음습한, 하지만 그 어떤 곳보다 안전할 장소에 둥지를 틀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찾아온 선물들, 비록 한 마리는 분충이었지만 들실장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리한 장녀와 차녀는 친실장의 큰 자랑이었다.
짙은 초목과 빽빽한 나무줄기들이 제공하는 은신처와 자실장들의 현명함 때문일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친실장은 자실장들이 어느 정도 자라자 하우스 주변을 청소하기 위해서나 화장실의 처리 등을 위해 하우스를 나서는 것을 허락하게 되었다. 그것이 어떤 일을 불러올지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
[테?]
다음날도 어김없이 고집을 부려 혼자 청소를 하러 나온 장녀의 귀에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아주 작고, 연약한 소리였지만 하우스 바깥으로 나와 잔뜩 긴장해있는 장녀는 이를 놓치지 않고 귀를 쫑긋 세워 방향을 파악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인 것 같은 테츄...텟! 혹시 3녀쨩 테치?!]
마마에게 솎아냄을 당한 3녀쨩이었지만 일단 목숨만은 부지하고 끌려 나갔기에 장녀는 3녀가 반성하고 돌아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기대감을 품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그것이 어떤 소리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골판지 하우스로 뛰어 들어갈 장녀였지만 소리의 주인이 3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흥분하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가 흘러나오는 방향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테에에...]
빽빽한 관목을 헤치고 찾아낸 소리의 주인은 당연하지만, 3녀가 아닌 다른 자실장의 것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잔뜩 기대했던 장녀는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땅에 엎어져 있는 자실장을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테...? 이 아이 이상한 테치...왜 초록색이 아닌 분홍색 옷을 입고 있는 테츄?]
장녀를 당황스럽게 만든 자실장은 인간이 봐도 감탄할 정도로 환한 핑크색의 프릴과 하얀색의 부드러운 실크 레이스가 잔뜩 달린, 실장석에겐 실로 분에 넘치는 호화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만든 이의 땀과 노력이 묻어 나오는 핑크색 실장복의 주인은 그 사치스러움과는 반대로 차가운 흙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약한 신음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장녀에겐 눈이 아플 정도로 부담스러운 핑크색 옷을 입고 있는 자실장을 잠시 황망하게 바라보던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쓰러져 있는 자실장을 흔들어 깨웠다.
[정신 차리는 테츄! 이런 곳에서 자면 입 돌아가는 테치! 얼른 일어나는 테칫!]
[테...주...인님...테...치..?]
핑크색 실장복을 입은 자실장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장녀의 손의 온기에 정신을 차렸는지 눈을 뜨고는 장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리고 곧 그 자실장은 눈과 입을 한계까지 벌리고 폐에 있는 공기를 몽땅 꺼내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테...테에에에에엣?! 저, 저리 가는 테챠아앗!! 와타치는 맛이 없는 테햐아-!!]
[테히!! 무슨 소리를 하는 테치까?! 그리고 조용히 하는 테츄! 시끄럽게 굴면 무서운 어른들이 오는 테챠아!]
[테갸아아!! 주인님-!!! 메리가 죽는 테브읍!! 읍읍-!!]
골판지 하우스 주위를 벗어난 수풀가이긴 하나, 친실장의 가르침대로 항상 조용조용하게 말하고 다니던 장녀에겐 충격적일 정도로 핑크색 실장복을 입은 자실장의 목청은 우렁찼다.
장녀가 허둥지둥 다가가 자실장의 입을 틀어막자 자실장은 끅끅거리면서도 무언가를 호소하려다 결국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되어서야 잠잠하게 되었다.
[테헥...테헥...테...]
[조금 진정한 테츄? 와타치는 너를 잡아먹으려고 한 게 아닌 테치. 단지 네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해서 도와주려 했던 것뿐인 테치. 그러니까 진정하는 테츄!]
[아, 친구였던 테츄까? 미안한 테치, 와타치 주인님과 떨어져서 좀 놀랐던 테치. 민망한 테츄...와타치는 메리라고 하는 테치, 구해줘서 고마운 테치!]
장녀의 침착한 말투에 안심한 듯 핑크 자실장은 볼을 붉히며 고개를 숙인다. 장녀는 자신들 자매 이외에 처음 만나는 자실장과 그 자실장이 구사하는 정중한 말투에 다시 한 번 당황했다.
마마는 자매들에게 항상 말했다.
와타시타치 이외에 다른 모든 실장석들은 적이자 분충,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다 쓰레기. 등을 돌리면 그 즉시 공격할 조금도 믿을 수 없는 종자들. 그것이 가족들을 제외한 다른 실장석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3녀가 솎아내질 때 장녀의 충격은 컸다. 분명히 가족 중 일부인 3녀가, 다른 실장석들과 같은 분충이라니.
그리고 메리를 만났을 때 장녀는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괜찮은 테치? 와타치가 너무 시끄럽게 굴어서 놀란 테츄?]
친실장이 단언한 현명하고, 선량한 실장석은 오직 와타치타치, 가족뿐 이라는 믿음이 흔들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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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와타치는 주인님과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테츄! 그렇지만 오늘은 너무 들뜬 바람에 와타치도 모르게 주인님과 떨어지게 되어버려서 떨고 있었던 테치이... 그래도 장녀쨩이 도와준 덕분에 안심인 테치. 정말 고마운 테츄!]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떠들고 있는 메리의 옆에서 장녀는 그 부드럽고 하얀 손을 잡고 우거진 풀숲 사이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메리의 이야기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주인님’이라는 단어로 장녀는 공원과는 어울리지 않는 메리의 정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육실장’
마마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단어다. 친실장 대신 인간이 보호자이자 주인이 되어 공원이 아닌 인간의 집에서 생활을 하는 실장석. 보통 들실장은 인간에게 쓰레기, 오물보다도 못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사육실장은 다르다.
그들은 인간의 생활의 동반자로 인정받은 생물로서 계절에 따른 더위, 추위는 물론 굶주림, 질병 그리고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들실장과는 달리 안정된 삶을 보장받은 실장석. 마마가 들려주는 사육실장들의 삶은 들실장들이 꿈꿀 수도 없는 사치, 호화의 연속이었다.
[대단한 테치이...와타치도 사육실장이 되고 싶은 테츄...]
[테에, 보글보글하고 따뜻한 거품으로 목욕이라니 믿기지 않는 테칫...]
[스시! 콘페이토! 스테이크! 와타치도 먹고 싶은 테체에! 테에엥!]
[와타치도 사육실장이 되고 싶은 레칫! 귀여운 구더기쨩을 본다면 닌겐상도 분명 사육실장으로 삼아주실 레츄웅~♪]
[프니후-?]
실장석들의 욕망을 총집합해놓은 것과 같은 사육실장 라이프에 자들이 흥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사육실장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입에 담는 장녀와 마마가 설명해준 거품목욕이 상상도 되지 않는 듯 계속해서 중얼거리는 차녀, 3녀에 이르러서는 사육실장들이 먹는 호화로운 음식들이 먹고 싶다며 울음을 터트려버렸지만. 평상시에는 마마의 이야기-를 가장한 훈육-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엄지쨩도 구더기쨩을 껴안고 눈을 빛내며 사육실장에 대한 동경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사육실장이라고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닌 데스.]
제각각 떠들어대는 자실장들을 진정시키지 않은 채로 친실장이 중얼거렸다. 작게 중얼거린 그 말은 사육실장에 대한 상상으로 들떠있는 자실장들에게 전해지지 않고 그대로 친실장의 목 안으로 삼켜졌다.
[...와타치가 어디에 있든 항상 주인님이 찾으러 와주신 테치. 지금도 주인님은 분명히 와타치를 찾고 있을 것인 테치! 그래도 장녀쨩이 없었다면 큰일 날 뻔 했던 테츄요? 와타치 혼자서는 분명 이 숲속에서 길을 잃었을 테츄!]
장녀는 마마로부터 말로 듣기만한, 실제로 영영 볼 리 없고 앞으로 자신과도 관계없는 존재라 생각했던 사육실장이 바로 자신의 옆에서 신나서 떠들고 있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온통 녹색으로 가득 찬 공원에서 모두의 눈에 띄는 핑크색 실장복을 입고 커다란 목소리로 떠들고 있는 이 자실장이, 장녀가 한때 꿈꾸고 동경했던 사육실장인 것이다.
메리라 불리는 장녀보다 약간 작은 체구의 자실장은 인간의 애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은 티가 났다. 들실장에게 주어지는 인간의 반응은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불쾌감으로 인한 욕설, 심하게는 학대와 같은 폭력, 구제와 같은 것들뿐이다.
그러나 메리의 벨벳 같은 우윳빛 피부는 폭력의 흔적은커녕 생채기 하나 없었으며 동그란 이마를 덮은 연한 헤이즐넛색의 머리카락은 정성껏 빗어져 마치 비단실과 같은 부드러움을 연상시켰다. 메리가 움직일 때마다 물결치는 빈틈없이 치마를 수놓은 프릴과 레이스는 물론이고 전혀 때타지 않은 핑크색 실장복은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는 것이었다.
문득 장녀는 자신의 실장복과 메리의 것을 번갈아보며 비교해보았다. 들실장 태생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의 현명함을 보이는 장녀의 실장복에도 생활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더러운 얼룩, 음식물 쓰레기를 먹을 때 흘린 국물의 흔적 같은 것이 여기저기 묻어있었다.
평생 하나밖에 얻지 못하는 실장복, 장녀는 그 소중함을 이해하기에 나름대로 깨끗이 세탁하고 조심조심 다뤘지만 사육실장의 것과 비교하면 볼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와타치와 함께 있었던 친구들은 모두 좋은 아이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누가 선택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던 테츄. 거기서 주인님이 와타치를 선택해주었을 때 와타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던 테체! 너무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와타치를 주인님이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을 때 와타치는 그만 울어버리고 만 테츄...]
장녀가 상념에 잠긴 사이에도 메리의 수다는 끝이 날줄을 몰랐다. 메리로서는 주인에 의해 입양되고 브리더의 밑을 떠나게 된 후로 처음으로 보게 된 친구다운 ‘친구’.
빨리 주인과 다시 만나 함께 공원을 산책하고 맛있는 간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존재로 흥분한 메리는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친구’와 어떻게 하면 더 친해질지, 무슨 놀이를 하면 좋을지 등을 고민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브리더와 주인님이 말한 공원은 위험으로 가득 찬 곳이었다. 실제로 메리가 겪은 바도 그러했다. 주인과 떨어진지 단 2분 만에 메리는 부드러운 사육실장 고기를 노린 들실장에게 산채로 잡아먹힐 뻔했고 주인님으로부터 받은 소중한 콘페이토를 땅바닥에 뿌려 시선을 돌린 뒤 들실장의 손아귀로부터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콘페이토를 두고 싸우는 들실장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친 메리는 위험을 피했다는 자각도 없이 패닉에 빠져 오로지 앞만 보고 내달렸다. 가팔라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온 몸이 비명을 지르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메리의 발이 꼬여 구르듯 넘어지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짙은 녹색의 관목 숲에서 넘어진 상태 그대로 기절한 메리는 자신을 깨우고 도와준 자실장이 ‘친구’이자 자신과 같은 ‘사육실장’이라고 믿게 되었다. 브리더는 사육실장이 아닌 들실장은 살아 숨 쉬는 쓰레기이자 분충, 절대로 상종해서는 안 될 열등종자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것들은 극도로 폭력적이고 위험하기 때문에 외출했을 시 사육실장은 절대로 주인의 곁에서 떨어져 마음대로 행동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들실장들로부터 린치를 당해 소중한 머리카락이나 옷을 잃어 들실장들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심하게는 ‘바꿔치기’를 당해 좋아하는 주인님까지 잃을 수 있다는 브리더의 말에 메리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공포에 떨었다.
그리고 브리더의 말은 사실이었다. 들실장들은 거칠고 포악했으며 거리낌 없이 자신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다. 천진난만한 메리의 세계에서 친절하고 믿을 수 있는 실장석은 오로지 자신과 같은 ‘사육실장’ 뿐이었으며 이는 공원에서의 경험을 통해 더욱 굳세어졌다.
자신을 무섭고도 무서운 괴물 같은 들실장들로부터 구해준 친절한 친구인 장녀쨩, 메리는 브리더와의 이별 후 처음으로 만난 친구인 장녀와의 인연을 이렇게 쉽게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장녀와 이후에도 계속 만나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하고 골똘히 고민하던 메리의 머리에 아이디어 하나가 스쳐지나갔다.
**
[그러고 보니 장녀쨩의 주인님은 어디에 있는 테츄? 와타치, 장녀쨩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되는 테칫...장녀쨩의 주인님에게도 장녀쨩에게 도움을 받은 것을 설명하고 감사를 드리고 싶은 테치!]
[테에? 갑자기 무슨 소리인 테치?]
쉴 새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조잘대던 메리가 느닷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하자 장녀는 잠시 당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질문의 요지가 ‘장녀의 주인님’을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육실장이라면 몰라도 들실장인 자신에게 ‘주인님’같은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들실장에게 주인과 비슷한 존재라면 친실장이 있지만 마마에게 메리를 데려갔다간 집을 멋대로 떠나 돌아다녔다는 이유로 자신은 호되게 볼기짝을 맞을 것이고 가족이 아닌 외부인인 메리의 목숨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장녀는 3녀를 솎아낼 때의 차가운 표정을 지은 친실장을 떠올리고는 조금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와타치...와타치는 들실장인 테치. 그러니까 주인님은 없는 테치. 그리고 메리쨩은 빨리 주인님에게로 돌아가는 게 좋은 테츄.]
[테...테에에엣에에에?! 무슨 소리인 텟츄?! 장녀쨩이 들실장일 리가 없는 텟체에!]
목소리를 죽이고 조곤조곤 말한 장녀의 노력이 무색하게 메리는 충격으로 적록색 눈을 크게 뜨며 들실장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던 순간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잠깐, 목소리가 너무 큰 테츄! 이제 곧 큰 길이니 조용히...]
[장녀쨩이 들실장이라니, 그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은 그만두는 테챠!!]
[알겠으니까 조금 조용히 하는 테치! 너무 소란을 피우면...]
[장녀쨩은 그 괴물들과 다른 테체! 와타치를 구해준 친절한 장녀쨩이 그런 들실장일리 없는 테츄웃!! 어째서 그런 거짓말을 하는 테치까!]
장녀는 화난 듯이 뺨을 부풀리고 발을 구르는 메리를 구슬리며 조용히 시키려 온갖 애를 썼다. 메리는 메리 나름대로 장녀가 초면에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인 자신과 친해지고 싶지 않아 자신이 들실장이라는 억지를 부리는 것이라 생각하여 장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큰 목소리로 성을 내고 말았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닌 테치! 메리쨩은 얼른 만나야 할 소중한 주인님이 있지 않은 테츄까? 와타치도 빨리 메리쨩을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가야 하는 테칫!]
[집! 역시 사육실장이 맞는 테치! 장녀쨩, 너무한 테치이...와타치가 당황해서 예의 없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거짓말하는 건 너무한 테츄...!]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테츄?!]
[와타치, 이곳으로 와서 친구는 처음 본 테치...! 그래서 와타치는 장녀쨩과 친해지고 싶었던 테치...장녀쨩과 더 놀고 싶었을 뿐인 테츄...! 그러니까 장녀쨩의 주인님을 만나서 허락을 구하고 싶었을 뿐이었던 테치잇!]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대화에 장녀 역시 순간 목소리를 낮춰야하는 것을 잊고 머리에 열이 올라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크고 동그란 눈에 눈물을 가득 머금고 자신에게 매달려오는 메리를 밀치려 순간 손을 들었지만 장녀는 감히 그 손을 메리에게 댈 수 없었다.
단순히 메리의 주인인 인간의 보복이 두려워서인 것만은 아니었다.
자신보다 작은 체구에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언제까지나 아기 같은 태도를 보며 장녀는 문득 3녀를 떠올렸다. 자신이 책임지겠노라 약속한 3녀쨩. 그러나 지켜주지 못했던 3녀쨩.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것도 들어주지 못했던 3녀쨩.
[어째서 메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테츄까!]
‘어째서 와타치에게 거짓말을 한 테츄, 오네챠?’
[와타치는 그저 장녀쨩과 친해지고 싶었을 뿐인 테츄!]
‘와타치는 그저 살고 싶었을 뿐인 테츄, 오네챠.’
[와...와타치가 나쁜 아이라서 들어주지 않는 테치? 그런 테치? 테끅...테에엥!]
‘와타치가 나쁜 아이라서 버린 테치? 장녀 오네챠.’
[테...테에엣...테에에엣에에에...!! 미안한 테츄...! 거짓말해서 미안한 테츄...! 나쁜 아이는 와타치인 테치...테에에엥...!!!]
울며 자신에게 매달리는 메리에 오버랩 되는 3녀의 모습에 장녀는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과 죄책감에 복받쳐 메리를 끌어안고 그 작은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3녀쨩.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해, 3녀쨩. 거짓말해서 미안해, 3녀쨩.
적록색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온전한 말로 채 할 수 없어 쉴 새 없이 떠오르는 단어들을 뇌까리며 용서를 구하는 장녀와 그런 장녀의 품에 안겨 역시 적록색 눈물로 얼굴을 적신 채인 메리의 조그만 머리통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마마가 온 데스. 모두 얌전히 잘 있었던 데스우? 오늘도 너희들이 좋아하는 아마아마를 잔뜩 구한 데스요!]
[텟, 마...마마. 어서 오시는 테츄...]
[레, 어서...오시는 레츄...]
[프니후-]
오늘도 편의점 봉투에 실한 수확을 얻어 돌아온 친실장이 함박웃음을 지은 얼굴로 하우스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평소대로 자들이 마중을 나왔다. 그러나 분위기는 평소와 달랐다.
평상시라면 친실장의 무사한 귀환과 ‘아마아마 잔뜩’ 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해서 두 손을 들고 환성을 내지르며 마중 나오는 자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차녀는 물론이고 엄지마저 침체된 분위기였다.
그리고 장녀가 보이지 않는다. 엄지쨩이 안고 나와서 마중은 하지만 그저 프니프니를 조를 뿐인 막내 구더기쨩은 차치하더라도 장녀가 나오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항상 자신을 마중 나와 주었던 장녀가 보이지 않자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것인지 걱정되는 마음에 친실장은 재빨리 골판지 하우스를 훑어보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장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실장들의 이불인 낡을 대로 낡은 신문지를 들춰보아도, 나뭇잎 침대를 헤쳐보아도, 혹시 화장실에서 발을 헛디뎠나 하여 살펴본 운치굴에도 장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장녀를 찾는 것이 분명한 친실장의 모습에 차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얼굴을 굳혔다. 솎아내기 이후로 우울해하는 기색이 있던 장녀가 골판지 하우스 밖을 청소하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눈치 챈 차녀는 장녀가 혼자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었다.
결국 그 결과는 장녀의 실종. 성실하고 상냥하지만 유약한 구색이 있는 장녀 오네챠가 그런 분충 따위의 죽음에 그렇게 충격을 받은 건가. 차녀는 마음 한 구석에서 답답함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곧이어 느껴지는 친실장의 차가운 불같은 시선에 숨을 들이키며 침을 삼켰다.
[...장녀는 어디로 간 데스?]
[장녀 오네챠는...하우스 바깥을 청소한다고 나갔던 테츄. 분명 금방 끝내고 돌아온다고 했던 테치, 그러니까...]
[집을 혼자 나간 데스? 장녀가?]
[테, 그런 테치. 그렇지만 금방 돌아온다고-츄벳!]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잇던 차녀는 쇄도한 친실장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코피를 뿌리며 뒤로 화려하게 공중제비를 돌고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각오하고 있었던 듯 비틀거리며 일어나는 차녀의 피범벅인 얼굴에 충격이나 공포의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맞지도, 추궁을 당하지도 않았던 엄지쨩과 구더기쨩이 갑작스레 벌어진 친실장의 폭력에 벌벌 떨며 구석에 쳐 박혀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어째서 혼자 나가도록 내버려 둔 데슷!! 마마가 하우스 바깥 출입을 허락했을 때 항상 2마리 이상 함께 움직이라고 했던 데슷!! 왜 마마의 말을 듣지 않은 데스까!!!]
골판지 하우스 주변에서는 항상 목소리를 낮추고, 소곤소곤 말해야 한다-라고 자매들에게 귀가 떨어질 정도로 타일렀던 친실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가르침도 모두 잊은 듯, 평정을 잃고 목소리를 높여 울부짖는 친실장이었다. 차녀는 그런 이성을 잃은 듯한 친실장의 모습에 입을 꾹 닫고 말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장녀는 온후하고 현명한 아이로 그런 자가 멋대로 집을 떠나 노는 것에 정신 팔려 친실장이 돌아오는 시간보다 늦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장녀가 납치 혹은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다는 것. 친실장이 상상하고 있는 최악의 가능성을 이해한 차녀 역시 몸을 덜덜 떨며 눈시울에 어리는 뜨끈한 눈물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오네챠가 혼자 나가도록 둔 것은 죄송한 테츄, 마마...그렇지만 오네챠는 정말 금방 돌아온다고 했던 테츄...그리고 하우스 주변에서 동족의 소리나...비명소리 같은 것은...들리지 않았던 테치. 분명 장녀 오네챠는 무사할 것인 테치. 무사하다면 금방 돌아올 것인 테치잇...]
[...]
고개를 푹 떨군 채 다만 어깨를 떨며 뒤돌아선 친실장을 향해 차녀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친실장이 이정도로 동요하는 것은 자매들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모습이다.
하우스 주변에 위험해 보이는 이빨이 달린 지렁이 같은 것이 나타났을 때에도, 어찌 된 일인지 수확물을 모두 잃고 빈손으로 하우스에 돌아온 날에도, 똥벌레인 3녀를 솎아낼 때에도 친실장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마치 오래된 고목처럼 단단해보였던 마마, 항상 의지할 수 있었던 버팀목 같았던 마마, 눈물 따위는 흘리지 않을 것처럼 메마른 사막처럼 보였던 마마. 그런 마마의 발치에 어느새 적록색의 웅덩이가 고여 흐르고 있었다. 친실장은 자매들이 볼 수 없도록 뒤로 돌아선 채 숨을 죽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마마는...나가서 장녀를 찾아보는 데스...너희는 모두 하우스 안에서 기다리는 데스.]
[마마, 와타치도...!]
[차녀. 마마의 말을 듣는 데스...차녀에게는 엄지쨩과 구더기쨩을 부탁하는 데스.]
죽음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 마침내 친실장은 결단을 내렸다. 차녀의 말대로라면 장녀가 아직 살아있을 가능성도 간과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님이 벌써 머리 위로 떠올라 따사로움을 흩뿌려 많은 동족들이 활동하는 위험한 시간대였지만 장녀가 살아있는 가능성이 일말이라도 있는 만큼 친실장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따라 나서려는 차녀를 만류하며 서둘러 나갈 채비를 하는 친실장과 골판지 하우스로 위로 햇빛을 지우는 검은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데? 무슨 일인 데스?]
[테에?]
홀연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에 눈을 크게 뜨고 위를 올려다 본 친실장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곳에는 인간이 있었다. 항상 경계하고 멀리해왔던 위험하고도 위험한 인간이 자신과 자들의 소중한 터전의 장소에 기어코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평소라면 인간이 다가오는 것을 발자국 소리 등으로 미리 감지하고 지근거리까지 다다르기 전 자들과 함께 미리 마련해둔 은신처로 도주했을 터지만 장녀의 실종으로 충격을 받은 친실장의 신체는 기능이 마비된 듯 인간이 다가오는 기색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예상치 못한 외적과 맞닥트려 순간 몸이 딱딱하게 굳은 친실장을 제치고 인간이 빠르게 하우스로 접근한다.
[어머, 정말 이런 곳에 골판지 박스가 있네.]
[테에, 대단한 테칫! 와타치 골판지 하우스는 처음 본 테치이! 장녀쨩 대단한 테챠아!]
[저기 와타치의 마마가 있는 테치! 마마! 마맛! 와타치 돌아온 테츄-♪]
계절에 어울리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은 긴 머리의 여성의 손에 올라타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은 메리와 장녀였다. 부모의 근심이나 걱정은 전혀 모르는 천진한 얼굴로 열심히 손을 흔들며 친실장을 부르던 장녀는 여성이 부드럽게 땅에 내려놓아주자마자 친실장을 향해 짧은 다리로 토테토테 뛰어가 품에 안겼다. 묘하게 떨고 있는 마마의 따뜻한 품에 마음껏 안겨 장녀는 어리광을 부리듯이 들뜬 목소리로 메리와 만난 이야기, 그리고 메리의 주인님과 만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래서요 테치! 와타치가 메리쨩과 껴안고 주저앉아 있을 때 메리쨩의 주인님이 나타난 테치! 와타치에게 고맙다고 콘페이토도 주신 테츄!]
[...]
[그리고, 그리고요 테치! 메리쨩의 주인님은 와타치가 걱정 되어서 하우스에까지 데려다주신 테칫! 선물로 콘페이토도 많이, 많이 받은 테츄! 마마와 이모토챠들의 몫까지 다 받아온 테치!]
[...]
[테에...마마, 와타치 걱정 많이 한 테츄까? 집을 멋대로 떠난 것은 죄송한 테치...그래도 울음소리가 들려서...와타치는...혹시 3녀가...]
[그만. 그만 하는 데스.]
친실장이 손을 들어 장녀의 말을 막았다. 친실장의 고개는 약간 내려가 있어 흘러내린 앞머리가 그늘을 만들어 표정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친실장의 딱딱한 말투, 얼음처럼 차가운 태도에서 장녀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친실장은 장녀를 품에 안은 상태 그대로 천천히 뒤를 돌아 아직도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를 둘러보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학대파였다면 장녀를 이용하여 일가를 발견한 즉시 그 본성을 드러내 자신들을 때려죽이거나 독라로 만들어 비참하게 죽어가도록 손을 썼을 터.
그렇지만 그녀는 그런 것에는 아무 관심 없다는 듯 한쪽 손에는 사육실장으로 보이는 호화스러운 핑크색 실장복을 입은 자실장을 올려놓고 골판지 하우스를 신기하다는 듯 둘러보고 있을 뿐이었다.
애호파인가-라고 친실장은 잠시 생각했지만 그만두었다. 애호파라고 해서 실장석에게 무조건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애호파가 애호하는 것은 자신의 사육실장 뿐. 사육실장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을 가하면 학대파보다도 위험해지는 것이 바로 애호파다.
학대파가 계속해서 학대를 하기 위해 공원에 있는 실장석들을 모조리 멸절시키지 않는 것과는 다르게 애호파는 자신의 사육실장의 안위를 위해 공원에 일제구제를 신청하는 것을 조금도 꺼려하지 않는다.
깡마른 자실장이 굶주림을 호소하며 흙먼지와 운치가 묻은 손으로 사육실장의 나풀거리는 옷깃이라도 잡을라치면 애호파인 주인이 비호같이 달려와 그 머리를 축구공 마냥 날려 차버리는 광경을 이미 몇 번이나 본 친실장이었다.
신발에는 동족이 흘린 적록색의 피를 묻히고 그 손으로는 부드럽게 사육실장을 안아 올려 조심스럽게 어르며 입에는 달콤한 콘페이토를 넣어준다. 주위에서 굶주린 들실장들이 부러움으로 인한 신음성을 내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사랑스러운 사육실장만 눈에 담는 애호파 주인은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갈비뼈가 드러나 보이는 비참한 모습의 자실장을 안아 올려 구걸하는 수척한 친실장의 배에 밥 대신 로우킥을 먹이며 공원을 떠나간다. 공원의 흔한 일상이었다.
그러기에 인간은 결코 믿을 수 없는 존재. 친실장은 자들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한순간의 변덕으로 그들은 쓸개라도 내어줄 것처럼 소중하게 다루던 실장석들을 벌레처럼 짓밟아버리기도 한다. 동족, 길고양이, 까마귀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 인간. 적대적인 인간과 마주친다면 단 1초도 버틸 수 없는 것이 실장석.
때문에 인간과는 절대로 얽히지 말고 무조건 피해야 한다-라고 가르쳤던 것인데. 실장석의 최대의 천적을 집까지 이끌고 와버린 장녀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친실장의 근심은 깊어져 갔다.
[우와...무슨 미니어쳐 가든 하우스를 보는 것 같아! 너무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그치 메리?]
[그런 테치! 대단한 테치! 브리더상이 보여준 골판지 하우스와는 전혀 다른 테치이!]
[저기, 네가 장녀의 마마니? 너의 아이가 미아가 된 메리를 도와줘서 간신히 만날 수 있었어. 너한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내가 억지를 부려서...]
각종 가재도구와 식기를 늘어놓고 나름대로 집의 구색을 갖춘 골판지 하우스에 감탄을 하며 말을 걸던 여성이 친실장의 파랗게 죽은 안색에 말을 흐렸다.
‘분명 야생동물이니까 인간이 멋대로 영역에 침입해온 것을 반기지 않는 것이겠지...’
미안한 마음에 여성은 주머니에서 리본으로 포장된 콘페이토 봉투를 꺼내 친실장에게 내밀었다.
[자, 여기 아까 말했던 콘페이토야. 메리를 도와준 보답으로 주고 싶었어. 메리가 또래 자실장을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라 너의 아이를 너무 오래 붙잡고 있어서 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해...]
[정말 죄송한 테츄, 오바상!! 장녀쨩이 돌아가야 한다고 했는데도 와타치가 고집을 부리고 듣지 않았던 테치이...정말 죄송한 테칫...]
어느새 땅에 내려온 메리 역시 주인의 옆에서 필사적으로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를 했다. 장녀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친실장의 대응을 기다릴 뿐이었다. 가족 이외에 처음으로 만난 착한 아이인 메리. 그러나 때때로 3녀를 연상시키는 철부지 같은 모습을 보이는 메리에 장녀 역시 마음이 이끌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을 지체하게 되었고 결국 마마를 화나게 해버린 것이다.
장녀가 힐끗힐끗 바라 본 마마의 표정은 어두운 채 그대로였다. 메리의 주인이 콘페이토로 가득 찬 봉지를 내밀어도 친실장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죄송한 데스가, 그것은 받을 수 없는 데스우.]
곧 친실장이 여성이 내민 콘페이토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대답했다.
[응? 아니, 부담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데...정말 보답하고 싶어서 주는거야.]
[그런 게 아닌 데스...들실장에게 지나친 아마아마는 독인 데스. 닌겐상이 주신 콘페이토가 떨어지면 와타시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공원 한가운데서 콘페이토를 달라고 닌겐상들에게 추하게 매달릴 것이 분명한 데스우.]
[아...]
[그러니까 콘페이토는 주시지 않아도 되는 데스. 그리고 닌겐상에게 와타시타치가 보답을 받은 이유는 없는 데스. 장녀를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한 데스. 일부러 이곳까지 와주셨는데 폐를 끼친 건 오히려 와타시타치 데스우. 정말 죄송한 데스.]
[으응...아니야...내가 미안하지...]
메리조차 특별 간식으로 주어지면 신이 나서 방방 뛰는 콘페이토를 거절하고 오히려 사과를 해오는 친실장의 모습에 여성이 크게 당황하며 손을 내젓는다.
‘정말 들실장이 맞는 건가?’
여성이 이러한 의구심을 품을 정도로 친실장의 태도는 더 할 나위 없이 정중했고 깔끔했다. 브리더의 밑에서 혹독한 훈육을 받고 어엿한 고급사육실장으로서 판매된 메리도 가끔 아기 같은 태도를 보여 주인에게 잔소리를 듣곤 하는데, 이 들실장은 뭐란 말인가.
[그럼, 닌겐상이 더 볼일이 남아있지 않으시다면 와타시는 이만 들어가 봐도 괜찮은 데스우?]
[어? 그, 그래. 들어가 보렴...]
[테? 벌써 헤어지는 테츄?!]
여성의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친실장은 허리를 한번 푹 숙이고는 장녀의 어깨를 거칠게 잡고 골판지 하우스로 뛰어 들어갔다.
탕
골판지 하우스의 입구가 실장모녀를 삼키듯 들여보내고 곧 거세게 닫혔다. 순식간에 적막해진 작은 공터에는 여성과 메리만이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는 골판지 하우스 앞에서 망연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텟, 기다리는 테치! 와타치도, 와타치도 하우스 안에 들어가 보고 싶은 테체에!]
[메리...이제 돌아가자.]
[하지만...장녀쨩과 더 놀고 싶은 테츄! 그리고 아직 감사인사를 다 하지 못한 테치이!]
[메리. 고집부리는 아이는 뭐라고 했지?]
[텟, 테에엥...테끅...알겠는 테치이...그래도 와타치 몫의 콘페이토는 두고 가고 싶은 테츄...이대로 그냥 가면 장녀쨩에게 너무 미안한 테치...]
[...알았어. 요것만 딱 두고 이제 집에 돌아가는 거야? 아참, 그리고 메리도 오늘 공원에서 나랑 함부로 떨어진 벌은 받아야지? 그러니까 금페이토 3일.]
[테에에엣에에에!!]
메리에게는 최고로 가혹한 벌로 여겨지는 [콘페이토 금지형], 그것도 무려 3일짜리를 장난스럽게 말한 여자는 곧바로 비명을 지르고 충격으로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메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을 돌렸다.
**
여성과 메리가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집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다르게 골판지 하우스 내부의 분위기는 숨 막힐 듯했다. 친실장은 하우스 내부로 돌아온 뒤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으나 그녀가 풍기는 분위기와 태도에서 흘러나오는 감정들은 자매들이 그것이 자신들의 목을 조르는 듯한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친실장이 얼어붙을 듯한 시선으로 장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장녀.]
[네 테치.]
[자실장이 집 밖으로 혼자 나가 돌아다니는 것에 대해 마마가 뭐라고 가르친 데스?]
[자살행위나 다름없다고 한 테치. 그렇지만-]
[인간과 맞닥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마마가 어떻게 가르친 데스?]
[그 자리에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라고 한 테치. 마마, 와타치는-]
[사육실장과의 만남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알려주지 않은 것은 마마의 실수 데스. 그렇지만 장녀, 너는 벌써 마마의 가르침을 2개나 어긴 데스.]
[마마...오네챠는]
[차녀는 닥치고 있는 데스!]
친실장에 의해 골판지 하우스의 구석으로 몰려 사납게 추궁당하고 있는 장녀를 보다 못해 차녀가 나섰지만 돌아온 것은 친실장의 차가운 일갈이었다. 친실장의 서슬 퍼런 기색에 기가 죽은 차녀는 다리에 힘이 풀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주저앉고 말았다.
친실장은 다시 한 번 장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친실장에 의해 거칠게 잘못을 실토할 것을 강요받고 있는 장녀의 얼굴은 혼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서글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가족 중 누구보다도 상냥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장녀. 그래서 3녀가 솎아내질 때 가장 슬퍼하고 자매들 중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어 자신을 말렸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 상냥함은 들실장에게는 필요 없는 것. 오늘 벌어진 일도 인간이 운이 좋게도 학대파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장녀가 데려온 인간이 학대파였다면 말할 것도 없이 일가실각이다.
당장 내일의 자신조차 살아남으리라 자신할 수 없는 어려운 들생활에서 남을 챙기고 보살피는 배려심과 상냥함은 들실장에게 있어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돌멩이나 쓰레기와 같다.
친실장은 장녀의 흔들림 없는 동그란 눈으로부터 외면하듯 시선을 돌리며 천천히 말했다.
[장녀...너는 이제 더 이상 와타시의 자가 아닌 데스.]
**
[흐응...그래도 뭔가 아쉽네...]
[테? 무엇이 아쉬운 테츄, 주인님?]
주인과 끈질긴 협상과 사과를 반복한 끝에 금페이토 2일로 벌을 줄여 기분이 좋은 메리는 느닷없는 주인의 한숨에 깜짝 놀라 물었다.
친실장으로부터 축객령이 내려져 골판지 하우스가 위치한 공터는 떠나야 했지만 아쉬움이 남은 메리가 근처에서 쉬이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서성이는 바람에 둘은 아직 골판지 하우스에서 크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을 거닐고 있었다.
[장녀 말이야...그 애의 엄마도 놀랍긴 했지만, 사육실장으로 해준다는 말을 거절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테에...메리도 장녀쨩이 거절할거라곤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테츄우...장녀쨩이 들실장이라는 것도 와타치는 믿지 못했었던 테치잇...]
[응. 나도 그 애의 차림새가 아니었다면 메리와 마찬가지로 길을 잃은 사육실장인가 했을 거야.]
여성이 메리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처음 봤을 때는 몸이 굳어 미동도 하지 않기에 죽은 척을 하는 걸까나-라고 생각한 순간 메리의 소개에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모습에 여성은 놀라움과 기특함을 동시에 느꼈다.
메리는 장녀를 사육실장이라 소개했지만 장녀의 격렬한 부인과 조금 해진 보통의 초록빛 실장복, 그리고 목에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다는 것까지 확인하고 여성은 장녀가 들실장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콘페이토까지 거절하다니, 대체 어떤 교육을 받은 걸까? 우리 메리는 금페이토 3일만 해도 깜짝 놀라 기절할 뻔까지 했는데 말이지.]
[테에! 주인님 짓궂은 테치!]
여성이 농담조로 꺼낸 말에 메리가 뺨을 붉히며 여성의 손가락에 매달렸다. 태어났을 때부터 바로 부모와 헤어져 브리더의 밑에서 훈육을 받고 자란 메리는 그만큼 외로움을 많이 타 어리광을 많이 부리는 성격이었다.
그것은 브리더와 있을 때에는 함께 지내는 훈육 자실장들, 즉 친구들의 존재로 많이 희석할 수 있었지만 여성의 집으로 가게 된 이후부터 메리는 외로움을 쉽사리 떨쳐낼 수 없었다.
**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여성이 집을 비우면 메리는 그때부터 여성이 돌아올 때까지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인간에 비하면 빠르게 자라는 실장석이었지만 그 당시의 메리는 고작 생후 3개월. 외로워하는 메리를 위해 여성은 다양한 장난감들을 준비해주고 자실장용 동화책, 애니메이션 등을 틀어주고 외출했으나 출근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끈질기게 매달려오는 메리의 행동으로 그것들이 전혀 소용이 없다는 것을 그녀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메리에게 친구를 만들어주자! 라는 것이었는데 지인의 소개로 거의 무료로 받다시피 한 메리의 본래 가격은 여성의 두 눈을 튀어나오게 할 만큼 놀라운 것이었다.
고급사육실장인 메리의 친구상대로서 어울리는 것은 역시 같은 고급사육실장. 그러나 그것은 여성의 지갑이 허용하지 않는 수준의 가격이었다. 여성의 설레발로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기대했던 메리 역시 여성의 설명을 듣고 풀죽은 상태로 ‘테치테치 마법의 성‘에 틀어박혀 한동안 나오지 않는 우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어울리지 않게 풀죽은 메리를 달래주기 위해 오랜만에 시간을 내 나온 공원 산책에서 장녀와 조우했을 때 여성과 메리, 둘 다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급사육실장에 필적하는 예의범절 상태와 콘페이토와 같은 사치품에 현혹되지 않는 인내심, 게다가 처음 보는 자실장에게도 도움을 베푸는 상냥한 마음씨까지!
메리의 친구 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내심 결정한 여성은 지체하지 않고 장녀에게 물었다.
[저기, 장녀라고 했지? 너 나의 사육실장이 될 생각 없니?]
[테에?]
[네가 메리를 구해주고 도와준 거에 대해서 보답도 하고 싶고, 메리도 사실 외톨이라서 외로운 차였는데 네가 함께 해주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어때?]
[...죄송한 테치. 닌겐상의 말씀은 정말 와타치의 분에 넘치는 제안 테츄. 그렇지만 와타치에겐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는 테치. 지금도 분명 와타치를 기다리고 있을 테츄.]
‘사육실장’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잠깐 눈을 빛내며 망설인 장녀였지만 곧이어 여성이 다른 말을 꺼낼 틈을 주지 않고 재빠르게 거절을 한다.
당연히 자신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기쁨의 빵콘을 하지 않을까 예상했던 여성은 장녀의 차분한 거절에 입을 떡 벌리고 ‘엥...?’ 이란 소리밖에 낼 수 없었다.
장녀의 거절에 충격을 받은 것은 여성뿐만이 아니었다. 메리 역시 겨우 울음을 그쳐 발갛게 부은 눈가에 다시 적록색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장녀에게 매달려 생각을 바꿔줄 것을 호소했으나 장녀는 난처하다는 미소만 지으며 메리의 머리만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생각을 바꾸지 않는 장녀가 못내 아쉬워 장녀를 집에까지 데려다 준다는 핑계로 장녀의 친실장에게 허락을 맡을 생각이었던 여성은 장녀보다도 강경한 태도의 친실장에 2차로 충격을 받게 되었다.
**
[정말 아쉬워...]
아이를 억지로 데려올 수는 없기에 여성은 그만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 메리의 친구가 될 만한, 그러면서도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의 자실장을 열심히 찾아보기로 했다. 찾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잠깐 고민에 빠진 사이, 여성은 장녀와 처음 만난 큰 길에 인접한 수풀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테에엥...테에에엥...테끅...테끕...]
이제야 숲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생각에 여성은 잠시 한눈을 팔다가 발치에서 들려오는 자실장의 울음소리에 눈을 돌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울음소리는 너무나 희미하고 약해서 금방이라도 끊길 것만 같았다.
시야를 방해하는 빽빽하게 자란 관목들의 가지를 헤치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향한 그곳에는 알몸에 타박상과 생채기가 몸에 가득한 채로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장녀가 있었다.
**
그것은 희미한 의식 사이에서 떠올린 어렴풋한 첫 번째 기억이었다.
[텟테레-♪]
점점 비좁아져오는 친실장의 배 안에서 드디어 넓디넓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 너무나도 기뻐 자실장은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힘껏 외쳤다.
한껏 들뜬 자실장이 곧이어 느낀 것은 코끝을 마비시키는 찌릿한 암모니아 냄새, 점멸하는 형광등의 침침한 빛이 비추는 초록색 대변으로 도장된, 여기저기 금이 간 타일 벽과 화변기의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염된 물. 그것이 갓 태어난 자실장을 반겨주는 세상이었다.
실망감을 느끼면서도 사지를 옥죄어오는 끈끈한 점막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실장은 열심히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얼굴을 덮어 호흡을 방해하는 점막을 열심히 혀로 핥아 떼어내자 자실장의 시야는 훨씬 넓어졌다. 그러나 자실장이 이렇게 열심히 꿈틀거리고 있음에도 친실장의 도움의 손은 오지 않았다.
[마마는 어디 테츄...?]
자실장은 한결 자유로워진 고개를 뒤로 돌려 자신을 낳아준 친실장을 보려 했지만 몸이 점막 안에 갇힌 상태에서 그것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곧 힘이 빠진 자실장이 축 늘어지자 전면에서 따뜻한 손이 슬며시 다가와 변기에서 그녀를 건지고 정성껏 점막을 핥아주었다.
몸을 간질이는 듯한 감각에 자실장이 작은 몸을 배배 꼬며 웃음을 터트리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할 일을 하던 성체실장은 곧 깔끔해진 자실장을 확인하고 그녀를 화장실 칸 밖으로 밀어냈다.
[마마? 마마인 테치? 마마, 와타치도 돕고 싶은 테츄! 들여보내주는 테츄!]
[데슷!! 너는 거기 가만히 있는 데스!]
고대하던 친실장과의 만남이 너무나도 짧게 끝나버린 것이 아쉬웠던 자실장은 마마를 부르며 다시 칸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성체실장의 예상외로 거친 반응에 놀라 그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성체실장은 자실장이 넘어진 것은 신경도 쓰지 않고 허겁지겁 남은 자실장들의 점막을 떼어 칸 밖으로 밀어내는 일에만 집중했다. 자실장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차가운 타일바닥에 밀쳐져 울음을 터트리는 동생들을 안아 달래며 세상이 마마가 들려준 것과는 너무 많이 다른 것에 당황스러움을 느꼈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물들여진 넓은 초원 대신 우중충한 녹색 일색인 좁디좁은 화장실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달콤한 꽃들의 향기 대신 코를 찌르는 듯이 시큼한 소변의 냄새.
게다가 뱃속에 있었을 때에는 그토록 부드럽게 노래를 불러주던 친실장 마저도 지금은 찬바람이 쌩쌩 부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한 것이 있는지 고민하던 자실장의 눈앞에서 화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성체실장이 고개를 떨어뜨린 채로 슬그머니 나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살짝 열린 문의 사이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자실장은 깜박-하고 형광등의 빛이 들어온 찰나 아직 화장실 칸의 안쪽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무언가의 실루엣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성체실장의 손에 의해 순식간에 문이 닫히며 안쪽은 그대로 어둠에 묻혔다.
[테에?! 마마, 아직 안에 이모토챠가 남아있는 테츄! 다시 들어가서-]
[무슨 소리를 하는 데스? 남아있는 자는 없는 데스! 자, 다들 모이는 데스우.]
분명히 안쪽에서 굼실거리는 무언가를 본 것인데 성체실장은 냉랭하게 자실장의 말을 끊고 3마리의 자실장과 1마리의 엄지실장, 1마리의 구더기 실장의 주의를 끌었다. 자신의 앞에 얌전히 모여든 아이들의 얼굴을 주의 깊게 하나하나 관찰하듯 뜯어본 후 심호흡을 한 성체실장이 말을 이었다.
[...인사가 늦은 데스. 와타시가 너희들의 마마인 데스우. 만나서 반가운 데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성체실장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 중 가장 큰 자실장을 안아 올려 자신과 눈높이를 맞췄다. 자실장은 이전 쌀쌀맞은 성체실장의 태도를 떠올려 불안한 듯 떨고 있었으나 곧 성체실장이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안심한 듯 손에 매달려 얼굴을 비볐다.
[너는 ‘장녀’인 데스...마마가 신경을 못 써줬는데도 이모토챠들을 돌보느라 수고한 데스. 장녀는 정말 좋은 아이인 데스우.]
[감사한 테츄, 마마! 와타치는 당연한 일을 한 것뿐인 테츄...]
‘장녀’라는 이름을 받은 자실장은 겨우 마음을 놓은 듯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대답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지는 성체실장과 화장실 안쪽에서 흘깃 보였던 정체불명의 실루엣으로 인한 불안감 따위는 이름이 명명된 순간 연기처럼 흩어졌다.
나머지 자매들의 이름도 하나하나 다 불러주며 안심시켜준 성체실장은 막내 구더기쨩을 품에 안고 자매들을 인솔하여 좁고 어두컴컴한 화장실 밖으로 인도했다. 성체실장이 바깥을 살피는 새에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햇빛이 스며들어와 장녀는 무심코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잡으려 했다. 깜빡이는 형광등이 내리는 보잘 것 없는 빛에 익숙해져 있던 자매들에게 자그마하지만 눈부신 햇빛 한 조각은 너무나도 신기한 것이었다.
고개만을 내밀고 바깥 동태를 살피던 성체실장은 안전하다는 판단이 섰는지 문을 활짝 열고 서둘러 자매들을 내보냈다. 순간 눈이 멀어버릴 듯 쏟아지는 햇빛에 자매들은 저마다 눈을 잔뜩 찌푸리고 비틀거리며 서로의 몸에 달라붙었다.
자매들의 눈이 차츰 빛에 익숙해져 천천히 눈을 끔벅거릴 때 즈음 장녀는 제일 먼저 눈을 떴다. 눈앞에는 마마가 노래를 통해 이야기해준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화장실에서 본 흐물거리는 미역 같은 칙칙한 초록색이 아닌 밝은 에메랄드빛으로 가득 채워진 들판 위에는 가지각색의 꽃들이 잔뜩 피어있는 모습이 마치 하나의 점묘화를 이루고 있는 듯 했다.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들은 서로 경쟁하듯이 저마다의 색깔을 있는 힘껏 뽐내고 있었다. 맑은 하늘을 그대로 따온 듯한 연푸른색의 꽃, 황금을 녹여 발라놓은 듯한 진한 노란색의 꽃, 피처럼 붉은 루비 빛의 심홍색 꽃, 진주를 연상시키는 우아한 흰색을 지닌 꽃까지, 꽃들이 지닌 온갖 색이 모여 서로 조화를 이루고 어우러지는 모습이 흡사 색채들의 축제를 연상시켰다.
장녀는 범람하는 색채의 파도에 눈이 어지러운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황급히 떴다. 눈을 감으면 혹시나 그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기우에 그쳤다. 장녀를 비롯한 차녀, 삼녀, 엄지쨩 역시 모두 적록색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의 광경을 모조리 눈에 담으려고 했다.
자매들의 눈이 겨우 새로운 풍경에 익숙해졌나 싶더니 이제는 코끝을 달큰한 향기가 간지럽힌다. 나비와 벌들을 유혹하는 꽃의 감밀의 향기다. 꿀에 취한 건지 갈지자를 그리며 날아다니는 나비의 날개는 햇빛을 잔뜩 머금고 영롱한 색을 발하고 있었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감미로운 향기의 근원을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자매들의 모습을 성체실장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마마의 말대로인 테츄! 너무 아름다운 테츄! 마마, 보고 있는 테츄?]
장녀 역시 다른 자매들처럼 잔뜩 들떠 목소리를 높여 성체실장을 찾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성체실장을 돌아본 장녀는 흥분하여 까불며 뛰노는 자매들의 뒤에서 조용히 적록색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성체실장을 발견했다.
[...보고 있는 데스. 네 말대로 몹시 아름다운 데스우.]
성체실장은 자신의 눈물에 일순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짓는 장녀를 안아주며 속삭이듯이 대답했다.
[마마도, 너희들에게 이곳을 보여줄 수 있어서 분명 행복한 데스. 반드시 데스.]
[마마...?]
[마마 걱정은 하지 마는 데스우...마마는 지금 너무 행복한 데스.]
어느새 눈물을 지우고 웃음을 띤 얼굴을 한 성체실장은 자실장의 불안을 달래주듯 가만히 안은 상태 그대로 노래를 불러주었다.
[뎃데로게~♪]
‘바깥 세상은 아름다운 데스~♪’
[뎃데로~보에~보에~♪]
‘사랑스러운 자들은 어서 태어나서~♪’
[뎃데로게~뎃데로게로~♪]
‘마마와 함께 세상을 구경하는 데스우~♪’
아직 마마의 뱃속에 있었을 때 항상 마마가 조곤조곤 불러주던 노래다. 배를 쓰다듬는 상냥한 손길을 느끼며 자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듬뿍 느껴지는 나긋나긋한 노랫소리에 장녀는 태어나기 전부터 친실장을 만나는 날을 고대하며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만을 기다려왔다.
장녀는 눈을 감고 성체실장의 팔에 기대어 그녀가 부르는 노래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눈을 감았음에도 오색찬란한 꽃들의 향연은 여전히 장녀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여린 잎사귀, 가냘픈 꽃잎을 장난스럽게 스쳐지나 장녀의 코끝을 간질이며 부는 바람은 입가에 저절로 미소를 띠게 만들었다. 성체실장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안겨있는 장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준 후 금방이라도 초원으로 뛰쳐나갈 태세인 자매들을 진정시키려 자리를 비켰다.
어느새 혼자 남겨진 장녀가 문득 뒤를 돌아보자 그곳엔 자신이 태어난 화장실로 향하는 문이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 장녀는 잠시 잊고 있었던 불안감을 다시 떠올렸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장녀는 분명히 보았다. 화장실 칸의 안쪽에서 움직이고 있던 것은 대체 뭐였을까.
불현듯 솟구치는 궁금증에 장녀는 한 발짝, 화장실의 문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거기까지였다. 장녀가 잠시 화장실을 살펴보는 사이 성체실장은 이미 자매들을 챙기고 골판지 하우스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끈다면 장녀는 분명 낙오될 터,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순 없었다.
그러나 목구멍에 달라붙은 가래처럼 쉽사리 떨쳐지지 않는 불안감에 장녀는 쉽사리 발을 뗄 수 없었다. 지금 이곳을 벗어난다면 다시는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도 같은 예감이 장녀의 머리를 맴돌았다.
앞을 바라보면 실장석들의 대변으로 뒤덮여 원래의 색을 잃은, 죽은 이끼로 감싸인 듯한 거대한 화장실의 문이 실낱같은 틈을 남기고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는 한 줌의 빛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장녀의 생각대로 무언가가 남아있는 것이 확실하다면 숨 쉬는 소리라도 들려야하건만 살짝 열린 틈 사이에서 들을 수 있는 건 긴장한 듯 살짝 떨리고 있는 자신의 숨소리뿐이었다.
뒤를 돌아보면 성체실장이 아직 더 놀고 싶다고 칭얼대는 동생들을 어르며 집으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다. 성체실장의 팔 한쪽에는 구더기쨩이 느긋하게 안겨 한가로이 하품을 하고 있었고 다른 팔에는 3녀와 엄지가 매달려 꽃밭에서 더 놀게 해달라고 투정을 부리는 중이었다. 긴장한 것처럼 보이는 차녀는 성체실장의 치맛자락을 꼭 붙잡고 옆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 하는 모습이었다.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자매들을 달래는 성체실장의 자애로운 표정에는 단 한 점의 그늘도 보이지 않았다. 성체실장은 그토록 기다리고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들을 만난 기쁨으로 잘 익은 사과처럼 뺨을 붉히고 있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꿈꿔왔던 모든 것이 자신의 등 뒤에 놓여있었다. 그렇지만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따라붙은 불안감은 장녀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장녀는 눈을 질끈 감고 결심을 내렸다.
[...분명 별 일 아닐 테츄. 잊는 테츄.]
눈앞의 이상적인 행복을 위해 장녀는 정체모를 불안감을 기억의 무저갱 너머로 던져 지워버리기로 결정했다. 그것을 끝으로 장녀의 얼굴에는 고심의 흔적은 깨끗이 사라지고 개운함만이 남았다.
[마마-! 와타치도 가는 테츄웃! 같이 가는 테츄!]
투정부리는 아이들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는 친실장의 등을 장녀가 황급히 쫓는다. 겨우 가족들을 따라잡은 장녀의 얼굴에 흥건한 땀을 친실장이 닦아주며 천천히 들판의 너머로 향하여 점차 일가의 그림자는 시야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단란해 보이는 일가의 뒤로 알몸의 상처투성이의 자실장이 수풀의 그림자 속에 뉘어져있던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자신이 버려버린 기억에 대한 실마리를 얻은 장녀는 음울한 표정으로 기억의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발걸음을 옮겼다.
**
마마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너희와 꼭 그 아름다운 세계를 함께 보고 싶다고 속삭이던 마마는 자매들의 옆에서 그 말을 지키고 있었다. 자신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다정한 말을 해준 부드럽고 상냥한 마마.
훌륭한 어른으로 크기 위한 이야기들을 조곤조곤 이야기해주던 마마. 자매들을 항상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준 마마. 매일매일 목숨의 위험을 감수해가며 자매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구해와 준 마마. 자매들을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있노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마마.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자매들을 지켜주겠다고 했던 마마.
하지만 그 마마는 3녀를 버리고, 또 자신을 버렸다.
마마는 3녀를 분충이라고 불렀다. 3녀의 이름을 빼앗고 소중한 옷과 머리카락까지 빼앗았다. 반항하는 3녀를 찍어 누르는 친실장의 폭력은 아직도 뇌리에 선하다. 마마의 사정없는 폭행에도 팔다리까지 꺾이면서도 끝까지 의식을 잃지 않았던 3녀쨩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결국 외면당하고 모든 것을 잃은 채로 쫓겨났다.
동생을 저버린 대가를 치르는 것일까. 어둠 속을 정처 없이 걷던 장녀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가 흘러나왔다. 3녀와 다르게 자신은 사지도 멀쩡하고 머리카락도 잃지 않았으나 가족으로부터 쫓겨난 그 순간, 3녀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굶주린 들실장들이 장악한 공원에서 알몸의 자실장이 홀로 나돌아 다니는 것은 발이 달린 간식거리가 나 잡아 잡수쇼 라고 외치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고 자구책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장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한 순간, 오랫동안 묻혀있던 궁금증 하나가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었다.
검은 베일을 뒤집어쓴 것 같이 흐리멍덩한 시계 속에서 시간감각도 잊은 채 헤매던 장녀는 자신이 버린 기억을 발견했다. 그것은 죽은 이끼의 색을 한 커다란 화장실 문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도 그랬듯이 문은 아주 조금의 틈을 남겨놓고 간신히 열려 있었다. 작은 자실장이 지나가기엔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 안은 조금의 빛도 허용치 않는 칠흑 같은 암흑이었다. 문의 안쪽에서는 어떠한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적막만이 흐르는 기억의 심연의 사이에서 장녀는 망설였다. 안쪽을 들여다보는 것을 제지할 친실장은 이제 없다.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든 결과는 온전히 자신의 몫이 될 터.
태어나자마자 품었던 의문. 화장실 칸 너머의 꿈틀거리던 실루엣은 무엇이었을까.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정적을 깨듯이 장녀는 깊은 심연 속으로 휘청거리는 몸을 내던졌다.
**
[어라, 이 녀석 또 울고 있네요.]
[엄마한테 버림받은 충격이 컸나 봐요...다 내 잘못인데, 어쩌지...]
백의를 입은 의사가 상처투성이의 자실장의 몸을 진찰대로부터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상처를 자극하지 않도록 푹신한 침대에 뉘이고 솜이불을 살짝 덮어주었다. 거칠거칠한 부분이라곤 조금도 없는, 아기의 솜털처럼 부드러운 이불이었지만 그것이 몸에 닿는 것조차도 힘겨운지 움찔거리는 자실장의 이마에 흥건한 땀을 여성이 천천히 닦아주었다.
길을 잃은 메리와 장녀를 발견한 큰길 근처의 낮은 관목의 숲에서 발견된 장녀는 무자비한 구타 흔적을 몸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끊임없이 울고만 있던 장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는 여성의 말에 제대로 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 다급하게 실장 전문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실장 전문의의 응급 처치를 받은 장녀의 크고 작은 타박상은 대체로 수습이 되었으나 쉽사리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장녀의 모습에 여성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생채기가 남은 장녀의 여린 얼굴 위로 계속해서 적록색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실장석은 보통 신체적인 타격보다는 정신적 충격에서 더 큰 고통을 느끼니까요. 어느 정도의 상처야 잘 먹고 잘 쉰다면 하룻밤만 지나도 금방 낫지만, 이 아이의 경우엔...글쎄요. 어미에게 가족의 구성원인 것을 부정당하고 폭행당하며 쫓겨난 것은 확실히 어린 자실장에겐 너무 큰 시련이었겠죠.]
여성에게서 장녀의 전후 상황을 전해들은 의사가 차트를 툭툭 치며 무심하게 말했다. 그런 의사의 말을 들은 여성은 더욱 깊은 죄책감을 품게 되었다. 자신이 억지를 부려 장녀의 집에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이 아이는 지금도 가족의 곁에서 사랑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는 장녀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결정을 내린 여성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이 아이를 저의 사육실장으로 등록해주세요.]
[네? 하지만 이 녀석은 공원에서 주워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네. 그렇지만 들실장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에요. 애초에...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원인도 제가 이 아이를 사육실장으로 데려오려다가 벌어진 일이니까요.]
대담한 여성의 요청에 의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을 찾기 위해 장녀의 차트를 괜히 뒤적이며 들여다보던 의사는 곧 침착을 되찾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게...또 이미 메리쨩을 기르고 계시잖아요? 집에 먼저 기르는 아이가 있으니 둘째를 들이시는 건 조금 더 생각해보시는 게...]
[바로 그 메리가 먼저 데려오자고 한 게 이 아이에요. 이 아이가 아니었더라면 메리는 지금 살아있지도 않았을 테고요.]
[으음...]
또 다시 할 말을 잃은 의사는 억지로 할 말을 찾는 대신 진지하고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여성을 바라봤다. 여성 역시 그에 굴하지 않고 의사의 눈을 마주했다. 여성이 고집을 꺾지 않자 의사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진찰대 밑 서랍에서 사육실장 등록 서류를 찾아 내밀었다.
[이런 말을 한다고 제가 들실장들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기다렸다는 듯이 서류를 낚아채가는 여성의 모습을 바라보며 의사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알아요. 그냥 저와 메리가 걱정되셨던 거겠죠.]
[들실장은, 사육실장의 사고방식과는 아예 다른 사고를 가지고 있어요. 사육실장이 되기 위해 길러진 아이들의 경우엔 태어나자마자 인간의 기준치에 맞게 살아가는 법을 주입받지만 들실장은...]
[저도 알고 있어요. 이기적이고, 자만심으로 똘똘 뭉친 것들이라고 들었죠. 하지만 이 아이는 정말 달라요. 메리보다도 의젓해 보이기도 할 정도니까요.]
의사가 힘겹게 한 단어 한 단어를 조심스럽게 골라 대화를 이어나가려 했지만 여성은 의사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그의 말을 끊으며 재빨리 서류의 필수항목을 휘갈겨 써내려갔다.
[저는 단지 필요 이상으로 이 아이에 대해 책임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은 거예요. 지금이야 나 때문에 이 아이가 이렇게 됐다-라는 생각에 이끌려 우발적으로 사육실장으로 삼으려 하는 것이겠지만, 나중에 그 감정들이 둔해졌을 때는요?]
시종일관 변함없는 여성의 태도에 의사가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시간이 흐르면 잊힐 죄책감과 의무감 때문에 괜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서 당신과 이 녀석, 둘 다에게 불행한 결과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해보지 않으셨나요?]
[비약이 좀 심한 것 아닌가요? 저 역시 그 정도쯤은 다 각오하고 이 아이를 데려오겠다고 한 거예요!]
여성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자 순식간에 작은 진찰실 안의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여성과 의사 사이에는 잠시 동안 어색한 정적이 맴돌았다. 그것을 먼저 깬 것은 의사였다.
[언성을 높인 것은 죄송했습니다. 제가 잠시 흥분했어요. 그렇지만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해주세요. 실장석을 기른다는 것은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것과는 달라도 한참 달라요. 아시잖아요? 저는 그저 당신이 이 문제를 조금 더 심각하게 고려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하는 말이에요.]
[...알겠어요. 그럼 일단 일주일 동안은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있을게요. 저도 메리와 생각을 더 해보고 결정을 내려서 선생님께 다시 이야기 드리는 걸로 하죠.]
겨우 찾은 타협안에 의사는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메리의 사육주는 정말이지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의사는 이정도만으로도 여성이 크게 양보해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쉽다는 눈초리로 거의 다 작성한 사육실장 등록 서류를 다시 의사에게 돌려준 여성은 조금도 뒤척이지 않고 조용히 잠들어 있는 장녀의 수척한 뺨을 한번 쓸어주고 진찰실을 떠났다.
여성이 떠난 뒤 혼자 남겨진 의사는 여성이 건네주고 간 사육실장 등록 서류를 넘겨보았다.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는지 제멋대로 휘갈겨 쓴 글씨는 눈을 잔뜩 찌푸리고 집중해서 보아야 겨우 독해할 수 있었다. 힘이 들어가 한껏 찡그려진 의사의 눈썹은 서류의 어느 칸에 도달하자 힘없이 탁 풀어지고 말았다.
여자의 인적사항과 기타 항목들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듯 마구잡이로 쓴 단정치 못한 글씨가 유일하게 단 한 항목에서만 정성을 다해 쓴 듯 깔끔하고 동글동글하게 바뀌어 있었다.
‘사육실장의 이름: 릴리(Lily)’
[이미 이름까지 정해놨으면서 생각은 무슨...]
의사는 맥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는 곧이어 펜을 들어 여성이 작성하다 만 서류의 빈 칸을 채워 넣었다. 일주일 뒤에 찾아올 여성의 등쌀을 줄이기 위해선 자신이 미리 사육실장 등록 절차를 마치는 것이 나을 것이다.
**
[다녀오는 데스.]
[다녀오시는 레치...]
[벌써 프니프니의 시간 레후?]
장녀가 버려지고 난 후에도 들실장 일가의 일상은 계속되었다. 친실장은 여전히 먹이를 구하기 위해 매일매일 별빛 하나 없는 어두운 밤을 틈타 쓰레기장으로 분주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매들도 여전히 자신들을 위해 수고하는 친실장의 배웅을 빼먹지 않았다.
다만 그것이 예전에는 친실장의 노고에 대한 고마움,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행한 것이었다면 현재 자매들의 모습은 누가 보아도 마지못해서, 떨떠름한 태도로 정해진 말들을 툭툭 내뱉는 것에 불과했다.
차녀는 집 밖을 나서는 친실장에게 배웅의 한 마디도 꺼내지 않고 냉랭한 얼굴로 고개만 까딱 숙이고 보란 듯이 침상으로 돌아가 버렸다. 엄지실장은 3녀에 이어 장녀까지 솎아 내버린 친실장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최소한 배웅의 형태는 갖추고 있었으나 그저 벌벌 떨면서 인사를 하는 모습은 배웅을 받는 입장에서도 불유쾌한 것이었다.
평상시라면 자매들의 버릇없는 모습을 꾸짖어 타일렀을 친실장이었지만 지금은 말없이 뒤돌아 골판지 하우스를 나설 뿐이었다. 친실장이 집을 비우자 엄지실장이 철없이 프니프니를 조르는 구더기쨩을 껴안고 조용히 침대로 되돌아온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3마리의 자실장, 1마리의 엄지실장과 1마리의 구더기쨩이 모두 엉켜 체온을 나누며 행복한 꿈을 꾸던 포근한 침대. 잠버릇이 고약한 3녀가 있었을 때에는 침대가 비좁다고 느낀 적도 있었으나 현재는 차녀와 엄지가 양껏 팔을 벌리고 자도 남을 만큼 공간이 남아버렸다.
게다가 마마가 집을 비운 사이 어린 동생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자장가를 불러주던 장녀마저도 없다. 하우스의 입구 틈 사이로 차가운 밤바람이 새어 들어올 때에도 장녀는 자신의 품을 동생들에게 내주어 그네들이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배려해주곤 했다.
차녀의 옆자리였던 장녀는 가끔 잠들기 전까지 차녀와 성체실장이 되면 하고 싶은 일, 마마가 말해준 사육실장 이야기와 같은 실없는 것들을 떠들곤 했다. 옆으로 빙글 돌아누워 보았지만 항상 따뜻하게 데워져 있던 자신의 옆자리는 차갑게 비어있다. 유달리 크게 느껴지는 장녀의 빈 공간에 차녀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 물었다.
똥벌레인 3녀 따위는 어찌 되든 상관없었다. 오히려 3녀가 솎아내졌을 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던 차녀였다. 마마가 말한 대로, 분충은 가족에게 재앙을 불러온다. 제 언니를 자신의 하인인 것 마냥 부리고 운치조차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병신은 일찍 죽는 것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유익한 일인 것이다.
하지만 장녀는 달랐다. 장녀는 절대로 분충이 아니었다. 분충을 감싸줄 정도로 바보같이 착했던 자신의 언니는 결코 솎아내질 정도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인간을 하우스로 데려오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인간은 애호파였고 자매들이 본 적도 없는 콘페이토가 가득 든 주머니를 선물이라고 내밀기도 했다.
친실장이 장녀에게 손을 대려 할 때에도 차녀는 그녀로서는 드물게 친실장의 앞을 가로막고 반항했다. 머릿속에선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괜히 나서면 자신까지 엮여 솎아내질 수 있다고 격렬하게 외치고 있었으나 몸은 그것에 상관없이 움직였다. 후들거리는 양 팔을 넓게 펼쳐 장녀와 친실장의 사이를 가로막은 차녀는 친실장의 사나운 눈길을 마주하고 이성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지 않은 것을 후회했으나 결코 비키려 하지 않았다.
잠시 잠잠해진 친실장을 만류하기 위해 입을 연 차녀였지만 제대로 된 말 대신 튀어나온 것은 처절한 비명소리였다.
[테햐아아앗아아아!!!]
친실장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차녀를 향해 가차 없이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몸집이 배 이상 차이나는 성체실장이 전력으로 휘두른 주먹을 안면에 맞은 차녀의 몸은 공중으로 붕 떴다가 골판지 하우스의 구석까지 날려져 벽면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마마! 그만두는 테챠!]
당황한 장녀가 황급히 친실장을 막아섰다.
[때리려면 와타치를 때리는 테치! 차녀쨩은 아무 잘못 없는 테치! 그러니까- 테베벳!]
항변하는 장녀의 안면에도 똑같이 친실장의 주먹이 박힌다. 순식간에 발갛게 부풀어 오른 뺨을 붙잡고 장녀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골판지 바닥에 내던져진 장녀의 작은 몸에 친실장이 마운트 자세로 올라탔다. 성체실장과 자실장의 엄청난 체격차이로 인하여 친실장이 올라타기만 한 것만으로도 장녀는 흉부에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며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그, 그만...그만하는 테ㅊ...마마아...테짓! 테벳! 츄아아아!!]
장녀의 고통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친실장은 올라탄 자세 그대로 장녀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얼굴에 국한되지 않고 가슴, 배까지 온 몸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폭력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에 장녀는 감히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테히이...테...]
장녀의 반응이 약해짐을 알아챈 친실장은 거친 숨을 고르며 다시 한 번 주먹을 치켜 올렸다. 전신을 골고루 두들겨 맞은 장녀는 호흡조차 간신히, 숨을 붙여놓을 정도로만 미약하게 이어가고 있었다.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눈조차 뜨지 못하고 입에서는 신음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한껏 힘이 들어간 친실장의 주먹이 떨렸다. 지금 이 한 방을 맞는다면, 장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친실장의 발에 무언가 축축한 것이 닿았다. 뒤돌아본 곳에는 차녀가 있었다. 코에서는 코피를 흘리고, 눈에서는 적록색 눈물을 흘리며 차녀는 안간힘을 쏟으며 친실장을 장녀로부터 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맨 처음 맞은 주먹 하나로도 차녀는 이미 움직일 수 없을 만큼 큰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골판지 벽에 기대어 축 늘어져 있던 차녀의 눈에 장녀를 죽일 기세로 두들겨 패는 친실장의 모습이 들어왔다. 말려야 했다. 누군가가 말리지 않으면 마마는 장녀 오네챠를 죽일 것이다.
장녀 오네챠가 죽는다-라는 섬뜩한 생각에 차녀는 허리에 힘을 주고 몸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몸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일어서려고 시도만 해도 머리가 쥐어 짜이는 듯한 고통에 차녀는 풀썩 쓰러지는 것을 반복할 뿐이었다.
[누군가...아무나 도와 테치...! 장녀 오네챠를 돕는 테챠아!!]
있는 힘껏 목소리를 내어 외쳤지만 공기방울에 갇힌 것 마냥 소리는 밖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그나마 운신이 자유로운 머리를 돌려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으려 했으나 하우스 안에 있는 것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구석에 처박혀 덜덜 떨고 있는 엄지와 구더기쨩 뿐.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장녀를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차녀는 말을 듣지 않는 다리를 포기하고 기어서라도 움직이기로 했다. 뜨거운 바늘로 뇌를 헤집는 듯한 두통과 친실장에게 맞은 뺨이 불타는 듯 쑤시고 찌릿찌릿했으나 차녀는 찬 바닥에 머리와 몸을 바싹 밀착시켜 조금씩 전진했다. 구더기쨩이 보았다면 ‘차녀 오네챠도 구더기쨩이 된 레후?’라고 꼬리를 흔들며 재밌어 할 광경이었지만 구더기쨩과 엄지 둘 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오로지 벽으로만 파고들고 있었기 때문에 차녀의 모습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차녀 스스로조차도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차녀의 이성은 친실장의 화를 괜히 자극하지 말고 얌전히 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친실장에게 가까이 다가갈수록 두려움은 커졌다. 항상 듬직하게만 보였던, 널찍한 친실장의 등이 오늘은 결코 넘을 수 없는, 그러나 넘어야 하는 거대한 벽처럼 보였다.
친실장이 장녀의 목숨을 두고 고민하던 짧은 순간, 차녀의 손이 기적적으로 친실장의 발에 닿았다. 온 힘을 다해 친실장을 밀어내려고 한 차녀였지만 그녀에게 친실장은 태산만큼이나 무겁게 느껴졌다.
[어째서인 테치...! 장녀 오네챠는...오네챠는 분충이 아닌 데 어째서인 테치!!]
결국 차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울며 친실장에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이제 그만하는 테챠! 오네챠는 단지...지나치게 상냥한 것뿐인 테치이! 분충인 3녀와는 다른 테치! 오네챠는 절대 분충이 아닌 테챠아!]
기어오느라 골판지 하우스의 바닥에 굴러다니는 작은 자갈, 돌덩이에 긁혀 소중하게 다루는 옷에도 흠집이 나고, 얼굴에도 여기저기 찰과상을 입은 차녀가 울부짖었다. 차녀를 바라보는 친실장의 탁해진 눈빛에 순간 빛이 스쳐 지나갔다.
[오네챠를 죽이면 마마를 절대 용서하지 않는 테쟈아! 절대, 절대로-]
악을 쓰던 차녀가 순간 눈앞에서 사라진 친실장의 그림자에 의아해하며 고개를 들었다. 다음 순간, 뒷목에 내리쳐진 친실장의 주먹으로 차녀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
그렇게 정신을 잃은 차녀는 모든 일이 마무리된 후에야 의식을 되찾고 일어날 수 있었다. 자초지종은 결코 말하려들지 않는 엄지를 협박조로 애원하여 들을 수 있었다.
엄지의 말에 의하면 장녀의 숨은 붙어있었다고는 하나 옷은 3녀 때와 마찬가지로 벗겨져 있었고 의식이 없는 장녀를 친실장이 둘러메어 하우스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올 때는 홀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마지막 말을 들은 차녀는 온 몸에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입은 자실장이-게다가 알몸으로-홀로 공원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끝낸 엄지는 온몸을 떨며 울고 있었다. 차녀 역시 주저앉은 그대로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차녀는 친실장에게 장녀 오네챠를 죽이지 말라고 호소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것 때문일까, 친실장은 자신의 손으로 장녀를 직접 끝장내기보다는 공원의 게걸스러운 들실장들이 처리하도록, 더욱 잔혹한 수를 낸 것이다.
장녀는 자매 모두에게 사랑받는 언니였다. 항상 의젓하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으며 궂은일에도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솔선수범했던, 모범적인 자실장이었다. 친실장 역시 그런 장녀를 가장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티가 날 정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친실장의 잔혹함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친실장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땔감삼아 차녀의 분노는 나날이 깊어져만 갔다. 장녀가 버려진 이후로 가족은 분열되었다. 친실장에 대한 자매들의 태도는 그날을 기점으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친실장을 제대로 배웅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사소한 것에서부터 친실장의 가르침과 반대로 행동하는 차녀와 소심하게나마 차녀를 따라하는 엄지, 그리고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구더기쨩. 친실장은 의도가 뻔히 보이는 자매들의 반항을 눈치 채고도 별다른 말도, 체벌도 하지 않았다.
[그럼 다녀오는 데스우...]
[레하암-...다녀오시는 레치이...]
[레후...zzz]
엄지가 졸린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찢어지게 하품을 하며 설렁설렁 배웅을 했다. 품에 안겨있는 구더기쨩은 잠에서 깨지도 않은 채로 구색을 맞추기 위해 강제로 들려나온 모습이다. 차녀는 이제 배웅을 나오지도 않는다. 침대에 누운 채 아예 등을 돌리고 친실장이 나가는 모습을 쳐다보지도 않는 차녀를 보며 친실장은 말없이 돌아섰다.
친실장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힘이 없었다. 뭍으로 끌려나온 물고기같이, 왠지 죽어가는 듯한 그 음성은 차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장녀를 그런 식으로 끝장내놓고 어째서 약한 척을 하는 걸까. 돌덩이라도 짊어진 듯 축 쳐져 있는 어깨, 평상시보다 한 톤 낮은 적록색 눈,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어딘가 묘하게 힘이 빠져 기운 없는 목소리까지 친실장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친실장이 문을 닫고 집을 나서자 엄지는 졸린 눈을 비비며 다시 한 번 하품을 하고 구더기쨩과 함께 침대로 돌아왔다.
[와타치도 내일부터는 차녀 오네챠처럼 배웅 안 나갈 레치...졸려서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잘 된 레칫♪ 레하암-]
차녀의 옆에 누워 종알거리는 엄지를 무시한 차녀는 친실장이 나간 골판지 하우스의 문을 뚫어져라 노려봤다. 친실장은 대체 무슨 속셈인가. 차녀와 엄지의 태도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량해진 것은 친실장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친실장은 자매들에게 그 어떠한 쓴 소리도 하지 않고 있다. 되려 친실장 스스로가 주눅이 든 것처럼 보여 친실장을 두려워하던 엄지까지도 건방진 소리를 하게 될 정도로 분위기가 풀어져 있었다.
차녀는 오늘따라 더욱 힘이 빠진 것처럼 느껴지던 친실장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친실장이 와타치타치를 그냥 내버려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에 빠진 차녀는 곧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옆에 누워 뒹굴거리던 엄지가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깜짝 놀라 자신의 옆에 있던 구더기쨩의 배를 짓눌러버렸지만 그런 것은 차녀의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프니후-?! 레뺘아-!!]
[구...구더기쨩!!!]
패닉에 빠진 엄지를 뒤로 하고 골판지 하우스의 문 앞에선 차녀는 결심을 굳히고 문을 열어젖히고 밖으로 향했다. 먼발치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친실장의 그림자가 시선에 들어왔다. 장녀의 일 이후로 자매들은 혼자서든, 여럿이든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친실장의 엄중한 경고를 들었다. 그렇지만 차녀는 그것을 깔끔히 무시하고 친실장을 목표로 뛰었다.
차녀의 소리를 먼저 들은 것은 친실장이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인간이나 동족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온 감각을 예리하게 곤두세운 친실장은 후방으로부터 텟치-텟치-하는 자실장의 뛰는 소리를 캐치했다. 뒤를 돌아보면 차녀가 혼자 집을 나와 자신에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인 데스? 마마는 분명 집 밖으로 혼자 나오지 말라고 한 데스. 계속해서 마음대로 굴었다간-]
[마마.]
걸음을 멈춘 친실장의 앞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차녀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째서인 테치?]
[갑자기 무슨 말인 데스?]
차녀가 물으며 친실장에게로 한 발짝 다가갔다.
[어째서 화를 낸 테치?]
차녀가 재차 물었지만 친실장은 대답이 없었다.
[어째서 화를 내지 않는 테치?]
차녀가 친실장에게 또 한 발짝 다가서며 물었다. 순간 친실장은 주춤했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얼른 하우스로 돌아가는 데스. 마마는 바쁜 데스우.]
불꽃이 번뜩이는 듯한 차녀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돌린 친실장이 대답했다.
[입이 2개나 줄었는데 매일매일 밥을 구하러 나갈 필요가 있는 테치?]
[차녀!]
마침내 폭발하듯 언성을 높인 친실장을 차녀가 피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차녀는 이 불쾌한 문답을 끝낼 의지가 없는 듯 했다. 친실장이 억눌러 참은 숨을 강제로 내뱉듯 쉬었다.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미룰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미루고 싶었던 순간이다.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자실장 때로 되돌아간 것처럼 울면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자신의 눈을 붙잡는 아이의 형형하게 빛나는 적록색 눈이 놔주지 않는다.
[차녀는...할 수 있는 데스?]
[무엇을 테치?]
[차녀는 엄지쨩과 구더기쨩을 죽일 수 있는 데스?]
갑작스러운 친실장의 물음에 차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다. 대체 무슨 의도란 말인가. 정작 그런 끔찍한 질문을 던진 친실장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 없이 차녀의 얼굴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마마가 없어졌을 때, 밥이 떨어졌을 때, 목숨이 위험할 때. 차녀는 엄지쨩과 구더기쨩의 목숨을 이용하거나 빼앗아서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는 데스?]
친실장이 친절하게 덧붙인 설명에 차녀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친실장의 말은 꼭 분충의 행동을 묘사하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그것은 친실장이 항상 지양해야 하는 행동으로 가르친 것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정답이 하나뿐인 문제를 묻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마마가 어째서 엄지쨩과 구더기쨩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는지 궁금해 한 적은 없는 데스우?]
친실장이 다시 평이한 어조로 물었고 차녀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아무도 제기하지 않은 의문이다. 어째서 엄지와 구더기는 같은 자매이면서도 이름을 받지 못했을까?
[간단히 말하자면, 엄지쨩과 구더기쨩은 비상식량이기 때문인 데스.]
[테...테에?]
[엄지쨩과 구더기쨩은, 자매가 아닌 데스. 식량이기 때문에 이름을 주지 않은 데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냄새나는 화변기 안에서 함께 태어나 여태까지 같이 살아온 피가 이어진 자매를 친실장이 무덤덤하게 식량이라고 선을 그어버린 것이다. 차녀는 친실장의 충격적인 발언에 이제껏 준비해왔던 말들을 모두 혀끝에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하지만 엄지쨩과 구더기쨩은 이모토챠인 테치! 이모토챠를 먹는다니 그건...분충인 테치...! 마마도 동족식을 하는 것은 쓰레기 중의 쓰레기만이 하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은 테치? 그런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테챠!]
[물론 동족식을 하는 것은 분충이 하는 짓인 데스.]
차녀의 격렬한 저항에 친실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렇지만 차녀, 들실장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분충처럼 사는 것과도 비슷한 데스우.]
[테엣?!]
이어지는 친실장의 말은 또 한 번 차녀의 머리를 뒤흔들었다. 자매들은 태어나서부터 계속해서 분충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친실장의 분부를 귀에 진물이 날 때까지 들으며 자랐다. 항상 좋은 아이로, 착한 아이로 자라야 한다는 친실장의 말을 따르기 위해 누구보다도 노력한 것이 장녀와 차녀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마마는 3녀를 솎아낸 테치?]
분노를 가라앉히며 차녀가 캐물었다.
[들실장으로 사는 것이 분충처럼 사는 것이라면, 분충인 3녀도 죽을 이유는 없지 않은 테치?]
[핵심은 분충‘처럼’ 사는 것이지 완전히 분충이 되는 것이 아닌 데스. 들실장의 삶은, 치열한 데스우. 적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요소는 굶주린 공원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필수인 데스. 보통의 분충은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닌겐상들에게 접근하다 처참하게 죽는 것이 일상인 데스. 그렇지만 선량한 실장석 역시 자신의 분수를 헤아리지 못하고 분충들과 마찬가지로 무참하게 죽어나가는 데스.]
차녀의 송곳 같은 질문에 친실장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똑똑하고 상냥하고, 친절한 실장석...그것은 듣기엔 좋지만 들실장에겐 거추장스러운 것인 데스우. 남에게 호의를 베풀어도 그것이 적의로 되돌아오는 마당에 다른 실장석들을 도우며 산다고 누가 알아주는 데스? 가족조차도 안심할 수 없는 데스. 분충 한 마리를 솎아낼 용기가 없다면 남은 자들의 목숨도 다 같이 시궁창에 처박히는 것과 다름없는 데스.]
친실장이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차녀는 친실장의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 듯 그저 입을 헤 벌리고 듣고만 있었다.
[그래서...다시 한 번 묻는 데스. 차녀는 엄지쨩과 구더기쨩을 죽일 수 있는 데스?]
[...못하는 테치.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테챠아! 소중한 이모토챠들을, 어떻게, 와타치는 절대로, 절대로 못하는 테체!]
[마마가 보기에, 차녀는 할 수 있는 데스우.]
친실장의 단언에 차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친실장은 차녀가 분충이라는 것을 돌려 말한 것과 다름없었던 것이었다. 차녀가 항의하려 입을 여는 것을 친실장이 손을 들어 막았다.
[그리고 장녀는 절대로, 설령 죽더라도 할 수 없는 데스.]
[...]
자신은 할 수 있고 장녀는 죽더라도 할 수 없다. 거기까지 들은 차녀는 친실장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리고 그것이 왜 친실장에게 그런 선택을 내리게 했는지도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차녀 네 말이 맞는 데스우. 장녀는 분충이 아닌 데스. 그렇지만 장녀는 결코 제대로 된 들실장이 될 수 없는 데스. 장녀는 너무 상냥한 데스. 그 아이는 분명 커서 자신의 자 중에 분충이 있다면, 솎아내지 못할게 분명한 데스.]
[그렇다고 장녀 오네챠를 죽인 건...그것만은 납득이 되지 않는 테치. 마마가 말한대로, 와타치가 ‘할 수 있다면’...와타치가 도움을 주면 되는 것 아닌 테치?]
[차녀도 알다시피 마마는 장녀를 제일 아끼고 사랑했던 데스.]
느닷없는 친실장의 고백에 차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우스에 닌겐상이 침입했을 때, 와타시는 그 닌겐상의 의도를 파악하려했던 데스. 그리고 알아챈 데스. 그 닌겐상은 장녀를 사육실장으로 데려가려고 일부러 하우스까지 찾아온 것이었던 데스우.]
[사, 사육실장 테치이?!]
[와타시가 장녀와 집으로 돌아갔을 때에도 그 닌겐상은 함께 있던 사육실장과 같이 한참동안 하우스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던 데스. 분명 장녀를 데려가지 못한 아쉬움에 돌아가지 않고 있었던 게 확실한 데스.]
[그렇지만 그것이 장녀 오네챠와 무슨 상관인 테치? 오네챠는...마마가 때리고 옷을 뺏어서 공원에 버렸는데 이제 와서 사육실장이 다 무슨 소용인 테치?]
[닌겐상의 의도를 파악했기 때문에 그렇게 한 데스.]
[테에?]
몹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차녀는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눈가를 찌푸리며 친실장을 바라보았다.
[마마는 그 닌겐상에게 장녀를 ‘탁아’한 데스.]
[테? 공원에 버린 게 아니라 탁아를 하러 간 것이었던 테츄?]
[버린 건 공원에 버린 데스. 하지만 닌겐상이 확인할 수 있는 장소에 버리고 주워가는 것까지 확실히 보고 온 데스우.]
친실장의 말을 되새겨보던 차녀는 곧 친실장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닫고 얼굴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그것은 거짓말이자 치졸한 연극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자의 목숨을 걸고 한, 위험천만한 극이었다.
[마마가 말했던 대로, 닌겐들은 변덕스러운 데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줄 정도로 애정을 주다가도 질리면 쓰레기처럼 내던져버리는 것이 닌겐인 데스. 마마는...장녀가 그렇게 버림받는 것을 원하지 않은 데스. 자신 때문에 장녀가 솎아내졌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어쩌면 장녀는 그 닌겐상에게 버림받지 않을 수도 있는 데스...]
[그건 그냥 가정일 뿐인 테치! 장녀 오네챠는, 또 버림받을 수도 있다는 말인 테챠아!]
[그것에 대해선 할 말이 없는 데스. 하지만 마마는 이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 데스우...]
친실장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중얼거렸다. 스스로 생각해도 비겁한 변명이었다. 차녀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고개를 이리저리 저으며 눈을 감은 채 그저 흐느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친실장과 그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인 차녀 사이로 정적만이 흘렀다.
[마마는...어떻게 아는 테치?]
얼음처럼 차가운 정적을 깨고 마침내 입을 연 차녀가 조용히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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