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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이 들꽃을 관찰한다면 이런 느낌일거 같지않냐



중소기업에서 뺑이치다 사표 쓰고 머리나 식히려 했는데 차까지 고장나버린거임.
사는 곳이 지방이라 차 없이 놀러다닐 수도 없고 수리에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몰라서 그대로 방에 박힌거지.
근데 그것도 며칠, 계속 방에 누워 있다보니 심심한건 둘째치고 사람이 우울해져. 마치 인간쓰레기가 된 기분.


기분전환이라도 할까 싶어서 가까운 공원에 가서 실장석이나 관찰하려 했는데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
나는 그냥 실장석이 평소에 어떻게 사나 보려고 했을 뿐인데 실장석들이 몰려와서 푸드 달라고 구걸하질 않나.
수풀 속에 하우스에 찾아드니 학대파라며 새끼들까지 내팽겨치고 도망치질 않나 이건 뭐 총체적 난국이야.




그래도 어찌저찌 안 들키고 관찰할 놈을 찾긴 했어. 하루종일 들꽃만 보고 있긴 한데 덩치도 크고 똘똘해 보였어.
근데 이게 사람이 직접 숨어서 관찰하려니까 지루하고 귀찮더라. 집도 잘 숨겨놔서 내부도 보이질 않아.
검색해보니 다른 관찰파들은 무슨 카메라를 쓴다느니 집음기를 쓴다느니 하는데 하나하나가 돈덩어리야.
백수놈이 돈이 얼마나 있다고 저런걸 사. 차도 고장나서 수리에 돈 들어갈 일만 남았는데.


어, 잠깐만.


생각해보니까 차량용 블랙박스가 있었네? 당장 집에가서 전선이랑 건전지써서 만지작하니 그럴싸해.
근데 막상 설치하려고 공원에 가서 보니 참 애매하더라.




하우스 안에 설치하자니 너무 눈에 띌테고 밖에 설치하자니 화질도 좋은게 아니라 촬영이 제대로 안될거 같아.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관찰하던 실장석까지 돌아와서 나를 발견해버렸어. 솔직히 좀 쪽팔리더라.
머리도 똑똑한 놈이 바로 도망가지 않는거 보니 하우스에 투자한게 많거나 자가 있는 모양이더라고.
그래서 하우스를 뭉개버리는 꼴 보기 싫으면 도망가지 말라 하니까 벌벌 떨면서 올려다보기만 했어.


녀석을 가까이서 보니 덩치가 큰 것 외엔 다른게 없더라. 굳이 꼽자면 옷이 더 더럽다는거?
그거 말고는 그냥 비닐봉투 어깨에 걸친 것 정도. 덩치가 큰 만큼 들어 있는 내용물도 많더라고.
그걸 보니 어떤 생각이 들더라. 비닐봉투를 바닥에 두라 말하고 가져온 촬영장비를 녀석의 목에 걸어봤는데,
이게 정말 딱 맞는거야. 옳다쿠나 싶어서 얼떨떨해하는 놈에게 하우스에 들어갔다가 나와보라했지.
녀석이 하우스에서 들어갔다 나오자마자 영상을 확인해보니까 생각보다도 더 잘 찍혔더라고.


하우스 안은 사람이 봐도 노력한 티가 났어. 작은 구멍을 뚫어놔서 햇빛까지 들어오도록 해놓았는걸.
당장 먹을 식량과 보존식 구분은 물론, 어떻게 했는지 천장에는 바짝 마른 저실장들이 꿰어져 있었어.
늦여름인데 보온재도 솜뭉치부터 유사시 먹을 풀까지 쌓여있었는데, 바닥에는 실장복이 잔뜩 깔려있었지.
보니까 같은 하우스에서 오래 살고 있었던거 같더라. 자들이 안 보이긴한데 혼자 사는 개체가 없진 않으니까.


녀석은 영상을 힐끔힐끔 보다 나중에는 대놓고 화면만 봤어. 들실장이 이런걸 봤을리가 없으니 신기했겠지.
나는 놈에게 제안을 했어. 장비를 목에 걸고 다른 실장석이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라는 거였지.
물론 맨입으로 그런건 아냐. 찍을때마다 실장푸드를 주고 내용에 따라서 드링크나 별사탕도 줄 수 있다 했지.
별사탕에 매료되었는지 녀석은 주저 않고 하겠다고 말했어. 그 이후로 난 녀석을 관찰석이라 불렀어.


관찰석은 하루종일 공원을 돌아다니고 나는 저녁에 녀석에게 찾아가 sd카드를 교체하고 먹을 것을 주었지.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시원찮았어. 뭘 봐야 하는지 몰라서 허둥지둥하느라 제대로 찍히지도 않았는걸.
어느날은 다른 실장이 위협해도 대응조차 안해서 걱정하기도 했어. 결국 얘도 실장석이라 이해력이 달리나봐.
그나마 푸드를 줄때 꾸준히 말해주니까 고치긴하더라.


위에서는 시원찮다고 적긴했는데, 사실 그건 어디까지나 실장석을 관찰한다는 목적으로 봤을때만 그랬어.
그야 실장석 관찰하라고 장비 줬는데 꽃구경을 하거나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영상을 기대하지 않잖아?
화면 가득히 꽃이 들어오는가하면 딱딱해보이는 거대한 언덕을 걸으니 나무의 뿌리위에 올라가 있었어.
수풀 사이를 지나갈때 틈 사이로 햇빛이 산란했고 그 너머에는 끝없이 높아보이는 공원 담벼락이 보였지.
초기 영상을 보노라면 내가 소인이 되어서 걷는 느낌이 들었어.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더 마음에 들었을지도.
관찰석이 관찰을 조금씩 익혀갈 때쯤엔 자실장과 친실장이 렌즈에 많이 잡혔어.




늦여름은 날도 풀리고 식량사정도 나쁘지 않아서 친실장이 자실장을 데리고 교육을 겸한 소풍을 다닐때거든.
물론 자실장들은 마냥 즐거워했어. 잔디의 푸르름과 색색의 들꽃을 보며 녀석들은 연신 탄성을 내질렀지.
조심스래 꽃 향기를 맡는 녀석이 있는가하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녀석도 있었어. 어떤 녀석은 풀에 붙은
애벌레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고 어떤 녀석은 친실장에게 마마의 자로 태어나서 행복하다고 말했지.
그러다 한 자실장이 테치테치 소리를 높이면 자매들은 크게 웃으며 달려나가는거야. 꼭 달리기 시합같았어.
행복한 일가의 모습이었지. 문제라면 자실장들이 뛰는 경로에 덩치가 큰 성체가 있었다는 것.


자실장들의 모습이 화면 가득 잡히는듯 하다가 비명소리와 함께 멀어졌어.
자실장들이 자신들을 보던 관찰석을 뒤늦게 발견하곤 마마를 부르며 도망친거야. 녹색줄이 바닥에 늘어졌지.
놈들의 친실장은 처음엔 씩씩대며 달려오더니 이내 자들을 안으며 샤아샤아 새된 소리로 위협을 해댔어.


그대로 달려들지 않은건 상대의 덩치가 더 크단걸 알아서였을테지. 그런 친실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실장들은 치프픗 웃으며 즐거워했어. 어떤 놈은 투분까지했지. 하지만 관찰석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았어.
아무 말도 없이 분노하는 기색도 없이 그저 일가를 보고만 있기를 몇 분, 친실장은 자들을 데리고 떠났어.


실장석 아니랄까봐 떠나면서 녀석을 모욕하는것도 잊지 않았지. 그럼에도 관찰석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어.
나중에 왜 가만 있었냐고 물어봤을때 녀석은 고개를 푹 수그리더니 안타까워서 그랬다고 말을 했지.
분위기가 묘해서 뭐가 안타깝냐고 묻지 못하겠더라. 그날은 드링크를 하나 쥐어주곤 그냥 돌아갔다.




그 이후론 가을이 될때까지 특별한 상황은 없었어. 오히려 좀 지루하기까지 했지.
실장석 일가의 화목한 모습을 보는 것도 한두번이지 매일 영상을 확인해보면 최소 한 파트씩은 끼어있는거야.
결국 녀석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어. 혹시 의도적으로 자실장들을 보는건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지 말이야.
관찰석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툭 내뱉듯 말했어.


"이 공원에는 자들이 너무 많이 태어나 버린데스."


곧, 공원은 굶주리게 될 것이다. 녀석은 음울하게 말을 잇고는 자기 하우스로 들어가 버렸어.


나중에 알아보니 작년에도 올해에도 어떤 학생들이 공원의 실장석들에게 푸드를 공급했었다나봐.
그러다가 민원에 불만에 못 이기는척 공급을 중단했다고 하는데 이것조차도 그들이 의도한 거였을거야.
알사람은 알겠지만 들실장에게 먹이를 계속 주면 도태되어야 될 새끼마저도 친실장이 길러버려.


기르는 새끼의 숫자가 많으면 교육의 질 또한 나빠지지.제대로 배워서 독립한 성체는 손에 꼽을 정도.
그러다가 다음 해가 되면 교육 받지 못한 채 독립한, 소위 머리가 빈 성체들이 새끼를 마구 까기 시작해.
솎아내기도 안 해. 먹이 걱정도 안해. 노예인간이 먹을걸 그냥 막 가져다 주거든. 올해 여름까진 말야.
가을에 접어들 정도면 새끼들도 덩치가 커져서 더욱 많은 먹이를 요구할 터, 파국은 예정되어 있었던 거야.
문득 창문 밖을 보니 나뭇가지에 시들한 잎사귀가 말라가는게 보였어. 이미 가을이 된 지 몇일이 지난 때였지.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가장 먼저 어떤 것을 포기할까? 재산? 가족? 자존심? 선뜻 대답하기 힘들겠지.




공원의 실장석들은 가족을 포기했다.




식량사정이 급격히 악화되자 친실장들는 성장할 여지가 안 보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를 내치기 시작했어.
버려지는 이유를 들으며 그저 하우스 밖으로 억지로 밀려 추방되는 것은 그나마도 운 좋은 케이스.
상당수는 머리카락이 피부째 뽑히고 억지로 옷이 벗겨진 채 친실장의 화풀이 대상이 되거나 버려졌지.
어중간하게 머리 좋은 친실장들은 솎아진 자를 노예로 부리거나 양 팔을 꺽어 다른 자들의 장난감으로 주었어.
다음이 자신이 될지도 모르건만 자실장들은 희희낙락 자매를, 노예를 때리고 운치를 바르며 비웃어댔지.


한편 버려진 자들은 먹을 것을 구걸하거나 새로운 마마를 찾기 위해 온갖 곳을 돌아다녔어.
놈들은 성체는 물론 사람에게까지 달려가서는 먹을 것을 달라며 사랑도 듬뿍 받는다며 침을 튀겨댔지.
당연히 돌아온 것은 좋아야 무관심. 나쁘면 날선 모욕과 가차없는 발길질. 고아들의 눈물은 마를 날이 없었지.


그나마 동족식이 없는 공원이었기에 이정도로 끝났지만 고아가 생긴 이상 그것도 시간 문제였어.
공원의 벤치 아래 독라의 자실장이 웅크려 있어. 머리카락을 뽑힌지 얼마 되지 않은듯 핏가 눌러붙어 있고
어째선지 한쪽팔이 이상한 방향으로 꺽여 있었지.


이따금씩 차가운 바람이 들이닥치면 녀석은 챠아챠아아 비명을 내지르며 성한 팔 한쪽으로 몸을 문질러댔어.
아무리 가을이라 할지라도 독라에 자실장인 몸으론 산들바람마저도 많은 체온을 앗아 갔을거야.
연약한 피부가 군데군데 짓무르기까지 했지만 자실장은 멈추지 않았어. 멈추는 순간 남는건 죽음밖에 없었으니.
놈은 벌벌 떨면서 눈알을 굴려댔어. 차갑게 식어가는 몸뚱이와 대조되게 두 눈에는 뜨거운 열망으로 차 있었지.


잠시후 벤치 뒤쪽 수풀에서 성체 실장석이 걸어나왔어. 자실장은 순간 기뻐하며 일어나려하다가 이내 멈췄어.
성체의 손에는 비쩍 마른 엄지가 들려 있었어. 엄지는 연신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성체는 신경도 안 썼어.
성체는 엄지를 바닥에 팽개치곤 금새 수풀 안으로 사라졌지. 그 사이 엄지는 다리가 부러져 울음을 터트렸지.
독라 자실장이 그 모습을 주시하며 조심스럽게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말이야.


놈은 순식간에 엄지를 끌어안아 벤치로 끌고가려 애썼어. 엄지는 차갑고 거친 습격에 놀라 격하게 반항했어.
짧은 팔다리로 독라의 팔을 내려치고 배를 차려고 했지. 하지만 상태가 안 좋다 하더라도 체격의 차이가 컸어.
참다못한 자실장이 엄지의 배를 걷어차자 얌전해졌지. 놈은 벤치 아래에서 엄지를 세게 끌어안은 채 계속 주변을 살펴봤어.
새로운 마마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졸지에 생체난로 신세가 되어버린 엄지는 뼈를 찌르는 냉기에 고통받으며 가는 신음만 흘려댔지.




다음날 살아 움직인 것은 자실장이 아니라 엄지였어. 엄지를 끌어 안은 것이 되려 외풍을 막아준 모양이야.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지는 초승달처럼 휘어진 눈으로 연신 자실장의 배를 뜯어먹고 있었어.
아마 자실장이 죽으면서 나온 운치를 먹다 시체를 물었을 것이고, 곧 먹을 수 있는 것이라 인식 해버렸겠지.
차라리 엄지만 그 사실을 알았다면 좋았으련만 하필 있는 장소가 공원 벤치 아래인 것이 문제였어.


성체가 길을 지나가다 엄지가 뭘 먹고 있는지 봐버렸어. 녀석은 한참을 서서 엄지의 식사를 보고만 있었지.
이윽고 성체는 언청이 입에서 녹색 침을 질질 흘리며 엄지에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갔어.
멍청한 엄지는 그제야 성체가 있는 것을 눈치채곤 고기를 빼앗으려 한다 생각했는지 되도 않게 위협을 하더라.
엄지는 고집이 대단했어. 성체의 손이 다가와도, 성체에게 붙잡혀도, 성체가 입을 쩍 벌려도 위협을 계속 했지.
결국 제 몸뚱이의 절반이 성체에게 씹혀서야 비명을 내질렀지만 그나마도 오래 버티지 못했지.





그렇게 공원은 지옥이 되었다.





동족식은 맑은 물에 잉크를 떨어뜨린 것마냥 순식간에 퍼졌어. 자실장 이하 개체는 그저 식재로 취급되었지.
이 시점부터 친실장들은 자들을 마구 솎아내지 않았어. 자신의 자 또한 유사시엔 고기로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몇일 전만해도 먹을 게 없다며 똥마마를 부르짖던 자실장들은 이제는 운치 먹은 달마처럼 입을 꾹 닫았어.
친실장에게 반항하면 솎아지는 것은 양반이고 장난감 취급을 받다 산채로 자매들의 식탁에 오를테니까.
자실장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마마를 보았고 친실장은 그 시선을 즐기며 권력욕을 채웠어.
생사여탈권을 쥔 친실장들은 점차 오만해졌지. 반면 자실장들은 스트레스를 동생에게 쏟으며 울분을 삭혔다.


관찰석은 그 모든 것을 보고 있었어. 나와 만날 때면 녀석은 이래서는 안된다고 안타깝다며 탄식했지.
언젠가는 관찰석이 하소연을 하다 자기 과거 이야기를 한 적도 있었어.


관찰석이 자실장일 때에는 닌겐의 회색하우스(아마 원룸 이야기겠지) 사이에서 살고 있었대.
원룸촌에 사는 실장석들은 다른 새끼를 찾아서 몰살시킬 정도로 호전적이지만 녀석의 마마는 아니었다나봐.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닌겐부터 호시탐탐 새끼를 노리는 동족까지. 일가의 하루하루는 공포 그 자체.


끝내 마마는 고심끝에 살던 터전을 버리고 공원으로 이주를 결정하게 되었어. 하지만 그게 쉬울 턱이 있나.
사람에 고양이에 차량에 각종 위기가 닥쳐왔고 결국 공원에 도착한건 마마와 자신 뿐이었다더라.
그나마도 관찰석의 마마는 큰 상처를 입어서 하우스만 겨우 만들고 녀석에게 살아남으라 말하곤 죽었다고 해.
다행히 막 건립된 공원이라 다른 실장석은 없었기에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었고 곧 귀여운 자들을 보았지.
그것도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 겉보기와 달리 녀석의 몸은 한계에 다달았는지 이번에는 자도 못 가졌어.


"첫 자의 탄생과 마지막 자의 죽음은 잊을 수가 없는데스."


관찰석은 이야기를 맺으며 답지않게 한숨을 내쉬었어. 그 옆모습엔 달관한 노인의 그것이 순간 엿보였지.


"그래서 닌겐사마가 더욱 고마운데스."


내가 무슨 의미냐 묻기도 전에 녀석은 자기 하우스로 기어들어갔어. 그땐 그냥 기분이 안 좋거니하고 말았지.
그 뒤로도 관찰석은 많은 것을 보았어. 그 중에서도 몇몇은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기억에 남았지.




자실장 하나가 음료 자판기 옆에서 울고 있는 것을 봤어. 옷과 머리가 멀쩡한걸 봐선 비교적 운이 좋았나봐.
하지만 그래봤자 버려진 이상 아무 의미 없을 뿐더러 장소도 좋지 않았어. 자판기 뒤는 항상 열풍이 나오거든.
자실장의 울음소리를 듣리자 자판기 뒤에서 살색의 덩어리들이 슬금슬금 기어나왔어. 고아 자실장무리였지.
비쩍 마른 놈들이었지만 숫자가 한둘이 아니었어. 자실장이 당황하는 사이 놈들은 자실장을 둘러싸더니
일제히 자실장에게 달려들어 닥치는대로 살을 깨물었어.


"테! 테에에! 테챠, 테찌이! 테쨔아아아! 찌이 찌이이!!"


생 살이 물어 뜯기는 통증에 자실장은 마구 팔을 휘두르고 발을 굴러댔어. 몇몇이 그것에 맞고 쓰러졌지만
놈들은 쓰러진 자들조차 씹어먹으며 자실장에게 쇄도했어. 결국 자실장은 통증에 못이겨 넘어져버렸지.
놈들의 언청이 입으론 통통한 살을 크게 베어물 수도 없는터라 살을 뜯어 먹는다기보단 포를 뜨듯 갉아먹었어.
자실장은 반항조차 못하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어. 녀석은 눈을 부릅떴지만 동공이 점점 풀려가고 있었지.
사지가 다 갉아먹히고 배가 열려 반쯤 먹히고 나서야 자실장은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어.


당장 여름만 해도 이런 일은 상상도 할 수 없건만 이제는 공원 전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지.
실장석들이 먹고 먹힘에도 공원 식량 사정은 나아질 줄 몰랐고 이내 중실장도 성체도 식재로 노려지게 되었어.
곧 굶주린 실장석들은 다른 하우스를 습격해서 식량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혼자라면 습격을 하다 되려 고기가
될 수 있었지만 위치만 알면 다른 성체들도 달려 들었기에 놈들은 소리만 들리면 거리낌 없이 뛰어갔어.


결국 피해를 본 것은 착실하게 식량을 비축해둔 일가와 가족애로 버티고 있는 일가였지.
어떤 일가는 습격당하는 와중에 자실장과 엄지를 탈출시키기 위해 제 몸을 희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은 헛수고였지만 어떤 때는 성공하기도 했어.


귀가 찢기고 한쪽 팔이 찢어진 중실장이 엄지를 안고 뛰어가고 있어. 뒤에는 귀기어린 성체가 하나.
도망가는 고기가 맘에 안들었는지 귀기어린 표정으로 들이닥치고 있었지. 중실장은 애를 썼지만 보폭의 차이
로 뒷머리를 붙잡혀 성체의 주먹질을 머리로 받아내야했지. 두개골이 함몰되고 눈이 튀어나오려하는 와중에
도 중실장은 엄지를 안아 지키고 있었어. 모든게 끝나려한 순간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갑자기 성체가 사라졌어.


중실장이 위를 올려다보니 여성용 정장을 입은 사람이 녀석을 지켜보고 있었어. 사람이 성체를 발로 찬 거야.
중실장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엄지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렸자 그는 양 손으로 엄지를 받고는 떠났지.
엄지는 울면서 중실장에게 손을 뻗었지만 중실장은 환하게 웃으며 엄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어.
이내 중실장은 제자리에 꼬구라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것도 단 한번 있었던 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장석이 다가오면 성체든 뭐든 발로 차거나 무시했지.
그럴만도 한 것이 성체들이 고작 골판지 안의 권력에 취해 오만해진 탓에 사람들에게 마구 들이대고 있었거든.
갑자기 와선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건 예사고 투분에 탁아에 음식물 봉투도 마구 헤집어 내용물을 흩뿌렸지.
사람들은 점차 실장석을 적대하기 시작했고 학대파들이 공원에 들어오기 시작했어. 관찰석도 당할뻔 했는걸.
그나마도 목에 걸린 블랙박스 때문에 살아났지 그거 아니었으면 이 관찰도 그대로 끝났을거야.


상황에 이쯤 되니 몇몇 일가가 이주를 시도하더라. 그 중에는 관찰석이 작년에 독립시킨 삼녀도 있었어.
삼녀는 인사를 하러 왔다며 관찰석에게 말했어. 뒤로는 8마리나 되는 자들이 덜덜 떨며 녀석을 보고 있었지.
관찰석은 말 없이 하우스에 들어가서는 여름때부터 비축해둔 식량을 아낌없이 꺼내어 삼녀에게 주었어.
삼녀와 자실장들은 연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머리를 숙였지만 두 마리의 자실장은 군침만 다시며 눈을 빛냈지.
관찰석은 지나가는 투로 두마리 정도는 자기가 기를 수 있다고 말했고, 삼녀는 이제 눈물까지 흘리며 수락했어.
지목된 것은 아까 군침만 다시던 자실장 둘이었어.


녀석들은 탐탁찮아 했지만 콘페이토를 준다는 말에 마마에게 작별인사조차 안하고 하우스로 뛰어들어갔지.
틀림없이 놈들은 콘페이토를 먹긴 했어. 관찰석이 직접 주지도 않았는데 달려들어서 혀부터 들이댔거든.
그게 놈들의 마지막 식사였어.


삼녀 일가가 떠나가자 관찰석이 분충은 이주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며 자실장들의 머리를 단번에 부쉈으니까.
관찰석은 내게 지쳤다고 말하며 눈물지었어. 하지만 그래도 계속 다른 자들을 봐야한다며 다시 공원을 돌았지.
그나마도 몇일. 평소처럼 관찰석을 만나러 공원에 갔을때 구제 예고장이 공원 외벽에 붙어 있는 것을 보았어.
구제를 할 때 다른 개입을 최소화하려고 촉박하게 예고장을 돌린단건 알았는데 설마 하루 전날에 그럴줄이야.
나는 녀석에게 달려가선 내일 구제가 있다고, 도망가야 한다고 했지만 관찰석은 고개를 가로저었어.
애가 타서 사육실장으로 삼아주겠다고 먹고 싶은것을 먹게 해주겠다고 하였지만 요지부동이었지.


"실장석은 들꽃이라고 어떤 닌겐상이 말해준데스."


관찰석은 부드럽게 말했어.


"들꽃은 볼품 없는 주제에 숫자만 많다며 피어나고 죽어 사라져도 그 누구도 관심을 주지 않는다고 한데스."
관찰석은 목에 걸린 블랙박스를 벗어 소중한 자를 들어올리듯 내게 주었어.


"모두는 아니겠지만 공원의 실장석들은 와타시의 자인데스. 핏줄데스."


나는 어느새 블랙박스를 건네받아 관찰석을 찍고 있었어.


"닌겐사마는 기회를 주신데스. 들꽃들의 흔적을 남기게 해준데스. 기억해준데스."


"그래서 더욱 고마운데스."


관찰석은, 친실장은 환하게 웃었어. 그 웃음이 티없이 맑아서 나는 정말로...








구제가 끝난 날, 녀석을 찾아갔지만 하우스는 간데없고 검붉은 얼룩만이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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