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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을 위한 한국은 없다



가난한 동네는 분위기부터 남달랐다. 저녁 어스름부터 몰려든 희뿌연 안개엔 이곳 사람들의 질척한 인생사가 묻어나온 듯했고 안개 너머로 스산하게 일렁이는 네온사인의 붉은 빛은 멋모르고 흘러들어온 방문객에게 던지는 경고문 같다.

페인트가 벗겨져 칙칙한 건물들 사이를 갈라놓은 도랑은 사시사철 오, 폐수를 흘려보냈는데, 군데군데 덮개돌이 깨져 언제나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불편과 결핍에 면역이 된 주민들도 이 악취만큼은 견디기 힘든 것인지 도랑 양편 집들은 몇 년째 주인이 없었다.

주인 없는 빈터엔 부서진 수납장, 낡은 의자, 부러진 나무 조각이 수북했다. 누고도 제지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주민들에게 일탈이 아니라 일상이었다.

아이스크림을 먹은 아이들이 남은 막대를 당연하다는 듯이 내던졌다. 다른 한편엔 텅 빈 페트병, 먹고 남은 음식 찌꺼기가 나뒹굴었다.

물질적 결핍이 불러온 정신적 해이. 그저 혀를 찰 일이지만 세상엔 늘 다양한 관점과 입장이 존재하는 법. 어떤 이에겐 통탄할 일이 누군가에겐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선물이 되기도 한다.

물론 그게 꼭 사람이란 법은 없다.

빈집 사이 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 퀴퀴한 냄새가 사람의 발길을 차단하는 도랑 위에 웅크린 녹색 소인.

“뎃데로게∼뎃데로게”

작은 개 만한 그것. 실장석이라 불리는 해수.

어디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녀석은 두 눈을 녹색으로 빛내며 부푼 배를 쓰다듬는다.

“뎃데로게∼뎃데로게 자들은 듣는 데스”

음정도 박자도 엉망인 실장석 특유의 분충 태교.

나직했지만 뱃속에 소중한 자들에겐 또렷이 전달되었다.

“보에보에∼뎃데로게 자들은 듣는 데스

세상은 아름다운 데스∼아마마아와 오이시이가

넘쳐나는데스~”

보에보에 뎃데로게∼자들은 듣는데스

와타시와 와타시의 자들은 전부 특별하고 세레브한데스

뎃데로게∼현명한 마마는 준비를 마친데스

튼튼한 집을 구한데스

물도 가득 있는데스

똥센징들은 와타시의 노예인 데스∼공물을 바치는 데스

그러니 빨리 건강히 태어나는데스 뎃데로게∼“

한참을 쉬지 않고 노래를 불렀더니 목이 바짝 말랐다.

들실장은 애써 무거운 몸을 일으켜 도랑 한편 덮개돌이 사라진 곳으로 갔다.

고개를 숙이니 ‘시원한 물‘이 오늘도 힘차게 흘렀다.
어느 개구쟁이가 내던지고 갔는지 모를 페트병에 물을 양껏 담아 들이키고는 개운해진 얼굴로 다시 노래를 불렀다.

”뎃데로게∼“

자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와타시의 세레브함을 알려주자. 배가 고프면 집에 저장해 놓은 푸드를 먹고 다시 노래를 부르자.

”데프픗! 와타시는 행운아인데스“

집과 그 안에 저장해 둔 양식에 눈길이 향한 들실장은 몰려드는 행복감에 태교도 잊고 행복회로에 빠졌다.

”힘들게 풀을 모을 필요가 없었던 데스. 손 아프게 땅을 파지 않아도 되었던 데스. 비교도 안 되는 튼튼한 집인 데스.“

주머니에 돈이 미끄러져 들어오면 다음 날 술과 함께 흘려보내는 하류 인생 포주 김씨도 녹색 해수의 호사를 알았다면 서랍 부서진 책상 버리길 망설이지 않았을까.

”이런 하우스를 거저 바치는 닌겡은 타고난 노예인데스. 데프픗!“

무서운 야옹씨도, 까치씨도 침입할 수 없는 튼튼한 집에 도취 된 들실장이 태교로 돌아가기까지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


”텟테레∼“

기운찬 탄생음과 함께 물 위로 떨어지는 자들.

도랑 위에서 다리를 벌린 친실장은 기쁨에 몸서리쳤다.

’와타시를 꼭 닮은 자들! 와타시가 얼마나 현명한지 알아봐 줄 자들! 함께 세레브한 삶을 누릴 자들!‘

연녹색 점막에 싸여 웅크려 있던 자들을 하나하나 핥는다. 맛있는 물이 졸졸 흐르는 이상 점막이 굳을 염려는 없다.

승리자의 기분을 만끽하며 여유 있게 점막을 벗겨간다.

”테츄웅∼마마 안녕하신테치! 세상의 보배인 장녀테치.“
”와타치는 차녀인 테치. 마마, 아마아마와 오이시이는 어디있는 테치?“
”와타치는 마마의 말을 하나도 안 빼고 들은테치! 와타치와 마마의 핵주먹 앞에 노예들은 도게자하는 테치! 와타치의 자로 세상을 가득 채우는 테치!“
”마마 당장 약속했던 오이시이를 대령하는 테치! 식품위장은 용납하지 않는 테치!“

모친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하는 말들이 참 되바라졌지만 배부르고 등 따신 실장석만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이 뚝뚝 묻어나는 눈망울을 한 친의 눈엔 귀엽고 발랄할 뿐이었다.

자신의 세레브함을 찬양하고 함께 누릴 자가 생겼다는 자부심에 벅차오르는 심정을 애써 누르곤 자들을 옆에 있는 집으로 인도했다.

구석에 놓인 종이 상자로 다가간 친실장이 뭉툭한 손으로 한참 실갱이를 하더니 무언가를 꺼냈다.

”자, 자들은 모두 마마 곁에 모이는 데스“
”테치!!!!“

세상 밖에 나와서 처음 하는 식사. 배 속에 있는 동안 마마가 입이 닳도록 노래하던 아마아마에 기대에 4쌍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오마에들은 가장 처음 마마의 젖을 먹어야 하는 데스. 하지만 마마는 부자인 데스. 그래서 특별히 푸드부터 먹게 해주는 데스. 여기 하나씩 받는 데스“

친실장이 꺼낸 것은 큼지막한 바퀴벌레와 아직 꼬물거리는 파리 유충이었다.

”깜장 벌레와 꼬물이 데스. 깜장 벌레는 고소하고 오독오독 씹히는 풍미가 일품인 데스. 꼬물이는 깨물면 부드러운 육즙이 나오는 데스. 모두 맛있게 먹어 데스.“
”테에∼“

무언가를 강하게 쥐기에 부적합한 뭉툭한 손. 작은 자실장이라면 더하다.
바닥에 던져놓고 네발로 엎드려 신기한 듯 이리저리 둘러보며 냄새를 맡던 장녀가 양껏 입을 벌려 베어 물었다.

”텟츄!“

입맛에 맞는지 장녀는 콧노래를 부르며 싹싹 핥아먹는다. 그 모습에 차녀와 삼녀도 합세해 즐거운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다.

”마마.... 이게 아마아마와 오이시이인 테치? 더 없는 테치?“

점막이 벗겨지자 마자 오이시이부터 찾던 4녀가 의문을 표했다.
친실장은 4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것 말고도 세레브한 푸드가 잔뜩 있는 데스. 오늘은 이걸 먹고 다음에 먹게 해주는 데스.“
”....알겠는 테치.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는 테치“

고개를 끄덕이며 오네챠들에게 합류하는 4녀의 등뒤를 바라보며 친실장은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다행인데스. 와타시 몫의 푸드까지 달라고 할까 걱정했던데스.‘

일가는 읽을 수 없지만 종이상자에는 ’치킨‘이라고 쓰여있었다.

자실장들은 모르는 일이지만 바퀴와 구더기는 닭 뼈에 남은 살코기에 꼬인 놈들이었다.

’스테이크는 너무 기름져서 자들에겐 이른 데스. 와타시가 대신 먹고 자들에게 줄 젖을 만드는 데스.‘
자들에게 젖을 물리면 자들이 먹은 것과 같은 데스!’

정말이지 쏙 빼닮은 친자였다.


*

친실장은 미처 몰랐지만 4개의 군입은 인간의 일탈을 양분 삼아 나태하게 살아온 녀석의 일상에 중대한 변화를 요구했다.

”하아.....성가신 데스....“

하우스 안의 친실장은 나직한 한숨을 토했다.

일가의 보금자리는 굳건하다.

날마다 떨어지는 음식과 개천의 물도 끊기지 않았다.

문제는....

”수건이 없는 데스.“

아무리 세레브한 하우스가 있어도 밤은 춥다.

덮을 게 필요하다.

세레브 실장은 운치를 싸면 총구를 깨끗이 닦아야 한다. 그래야 닌겐 노예를 복종시켜 흑발의 자를 낳을 수 있다.

그뿐인가, 목욕 후에도 수건이 필요하다. 사방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마르기만 기다리는 건 들이나 하는 짓이다.

이 모든 걸 위해 수건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헤어진 목욕수건을 홀로 덮고 자던 녀석은 자를 낳기 전까진 수건이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 물건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다 마신 음료수 병을 슬쩍 버리고 가는 사람은 흔하지만 바닥 닦은 걸레, 땀 닦은 수건을 길에 버리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다보니 간밤에도
”자들, 마마가 온 데스요.“
”마마, 오늘도 수건은 없는 테치?“
”와타시타치 밤에 추운 테치, 낮에는 해씨가 따가워 괴로운 테치. 살 수가 없는 테치“
”귀여운 와타시가 죽어 버려도 좋은 테치? 마마의 수건이라도 주는 테치.“

몰려든 자실장들은 마마의 손에 들린 양식은 아랑곳없이 수건의 유무에만 신경을 기울였다.

”삼녀 건방진 데스! 자는 마마의 것을 넘보면 안 되는 데스!“

마마는 노고는 무시한 채 제멋대로 떼쓰는 자들을 밀어내느라 홍역을 치뤘다.
정 안되면 풀잎을 꺾어와 쌓거나 떨어진 나뭇잎을 모으지만 허름한 회색 건물의 숲 어디에도 녹색은 보이지 않았다.
사방에 풀과 나무가 있었어도 무상의 행복에 익숙해진 실장석이 세레브하지 못한 노동을 했을진 의문이지만.

”이대로는 안 되는 데스....견딜수가....“

와아아아!!!

담장 너머에서 들려온 요란한 함성이 친실장의 상념을 깨드렸다.

”닌겐이 점점 더 제 정신이 아닌데스. 도대체 뭐 하는 짓인데스.“

친실장을 괴롭게 하는 건 자들의 칭얼거림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닌겐들이 밤마다 전부 한쪽으로 몰려가 괴성을 질러댔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잠을 자다가도 몇 번씩 놀라 일어나기 일쑤였다.

”단체로 돌아버린 게 분명한.....뎃!“

순간 친의 눈이 초생달 모양으로 변했다.

”데프프... 닌겐들이 미쳐있으면 그 틈에 수건을 가져오면 되는 데스. 미처 그 생각을 못한 데스.“

행복회로가 맹렬히 가동했다.

”전부 한곳에 몰려 있으니 눈치 못 채는 게 당연한 데스. 꽥꽥 소리 지르는 틈에 몽땅 가져오는 데스.“

눈 한번 껌뻑할새 확신을 굳힌 친실장은 자들에겐 말하지 못했지만 무서워서 나가지 못했던 골목 저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탁 트인 길로 보무도 당당히 발을 내딛은 순간 가볍고 나풀거리는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데, 데샤아아아아아아!“

수건이었다. 친실장의 몸을 가볍게 덮을 만한 수건이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이렇게 빨리!! 역시 와타시가 현명했던 데스!!“

뒤뚱거리며 내달려 수건을 집었다. 이 정도 크기면 자들이 모두 덮을 수 있다. 적어도 밤에 칭얼거림을 듣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데, 데......대박 데샤아아!!“

하나가 아니었다. 똑같은 수건이 앞에, 옆에, 구석에 널려있었다.

“기적인 데스! 착한 와타시에게 카미사마가 내려준 기적데스!”

이 정도면 용도별로 나눠 실컷 써도 남는다.

“위에만 아니라 바닥에 깔 이불이 생긴 데스
목욕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닦는 데스
집에 들어올 땐 세레브하게 발을 닦는 데스
용변 후 엉덩이도 닦는 데스”

자들의 투정? 현명하고 유능한 마마를 칭송하느라 바쁘겠지.

윤택한 삶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졌음을 확신하며 저도 모르게 몸이 가벼워져 한참을 방방 뛰었다.

흐르는 땀? 발에 묻은 먼지? 수건으로 닦으면 그만 아닌가. 이렇게.....

“데, 뎃!?”

친실장의 눈에 눈부신 조명 빛에 받고 늘어진 그림자들이 들어왔다.

자신만의 세계에 푹 빠져있던 녀석은 자신을 괴롭히던 소음이 가까워졌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데......닌겐상?”

고개를 들어 돌아본 곳엔 짐작도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인영이 몰려와 있었다.

‘거....걱정할 것 하나 없는 데스. 와타시의 매력은 모두를 한방에 매료시키는 데스!’

천천히 양팔을 들어올리고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닌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순간 왼손은 허리에, 오른손은 입가로 가져갔다.

“데∼츙!!”

짧은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거대한 노성이 밀어닥쳤다.

“X∼※&%$@!!!!”

무슨 말인진 알아듣진 못 하지만 사방에서 터져 나온 고함에 담긴 적의는 똑똑히 전달되었다.

뿌득, 뿌지직

공포에 질린 친은 본능에 따라 거하게 빵콘했다.

녹색 운치가 팬티를 찢을 듯 흘러나와 깔고 있는 수건에 떨어졌다.

성난 발길질이 친실장의 배로 날아든 것과 거의 동시였다.

고통을 호소할 시간조차 없었다. 군중의 발길질이 나가떨어진 친실장을 그대로 짓밟아버렸으니까.

*


“태극전사들의 8강 진출로 기뻐하고 계실 국민 여러분께 안 좋은 소식을 들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실장석. 과거 우리 민족의 정기를 짓밟았던 일본산 해수가 서울시 한복판에서 태극기를 배설물로 더럽히는 충격적인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자세한 소식 이XX 기자입니다.”

“실장석. 이완용의 애완동물이자 일제강점기 일제가 한민족과 한반도에 비유하며 민족 정기말살에 사용해 잘 알려진 유해조수입니다. 군사 정권 시기 대대적인 퇴치 운동으로 오랫동안 보기 힘들었던 실장석이 서울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서울시 영등포구 모처. 한국과 이탈리아의 16강 전을 감상하고 귀가하던 주민이 제보한 영상입니다.

녹색에 뚱뚱한 실장석이 태극기를 밟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뒤늦게 주민들의 존재를 알아차린 실장석은 자신의 배설물로 태극기를 뒤덮습니다.

이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주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노인들의 분노는 더합니다.”

김xx(72세)

“옛날 왜정 때 일본놈들이 맨날 그럽디다. 조선사람은 짓소새끼라고. 조선 반도는 새끼들고 아첨하는 짓소 형상이라고. 그것들이....”

“서울시는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주민들의 심경에 통감하며 곧바로 대책을 수립해 남아있을 실장석을 박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KBS 뉴스 이XX입니다.”

*


“사실 이 사건은 당장 크게 이슈가 되진 않았습니다.”

(주)HTB 실장석부서 박웅철 대리는 견학차 찾아온 학생들의 면면히 찬찬히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월드컵은 4강 신화로 계속 이어졌고 다들 아시겠지만 3-4위전이 열릴 무렵 2차 연평해전이라는 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북한과 교전이 벌어진 상황에서 신경 쓰기엔 너무 작은 일이었죠.”

“일본에 항의하진 않았나요?”

집중해서 듣고 있던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양국간 화합의 축제를 진행하고 있는데 일본이 실장석을 보냈다는 증거가 있는 게 아닌 다음에야 어깃장을 놓을 순 없죠.”

“그럼 그대로 묻힌 거에요?”

“그렇진 않아요. 나라에서 신경 쓸 일까진 아니지만 지자체에선 간과할수 없었죠. 이 사건은 막 취임한 이명박 신임 서울 시장이 추진한 실장석 퇴치 프로젝트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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