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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 (몹딕)

 

 시린 바람이 실장석의 몸을 매만지고 지나간다.
  얼굴에 주름살이 진, 실장석 치곤 보기 드문 모습을 한 성체실장이 천천히 한숨을 내쉰다. 몸에서부터 나온 온기가 하얀 김이 되어 가닥가닥 흩어져 날아간다. 주변을 둘러보고 오늘도 별 일 없음을 확인한 실장석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겨울 치곤 청명한 하늘엔 눈구름 한점 없다. 갑작스런 폭설 걱정도 안해도 될 것임을 깨달은 실장석이 몸을 돌려 골판지 집 안으로 들어간다.

“마마, 바깥은 춥지 않은테스? 와타시가 안아드리는테스.”

“잠깐 나갔다 왔을 뿐인데스. 괜찮은데스.”

  자신을 걱정해주는 마음이 물씬 묻어나는 중실장의 얼굴을 보고 친실장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번진다. 꽃가루가 한참 날리던 따뜻한 봄날, 화변기 위에서 이 아이의 얼굴을 본 순간 직감했었다. 이 아이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자기 실생의 ‘마지막 아이’가 될 것임을. 많은 아이들을 기르고, 그보다 더 많이 자신의 입으로 먹고, 몇몇인가는 성체로 독립할 때까지 길렀던 이 친실장도 순간 복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점막에 쌓인 아이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었다. 나의 자, 나의 자. 보잘것없고, 고되고, 기대는 배신당하기만 하는 삶을 통해 실장석이 유일하게 세상에 남길 수 있는 무언가. 너의 삶은 나보다는 편했으면. 너의 삶은 나보다는 아프지 않았으면.

“이리 오는데스. 오늘은 마마가 끌어안고 이야기를 해주는데스.”

  끌어안아 준다는 얘기에 중실장이 좋은 기분을 감출 수 없는지 배시시 웃으면서도 짐짓 거절한다.

“마마도 참, 와타시도 이제 중실장인테스. 어린 자실장이 아닌테스우~”

“무슨 소리데스. 마마의 눈에 오마에는 항상 어린아이인데스. 어서 이리 오는데스.”

  못이기는척 고개를 한쪽으로 꼬고 다가온 중실장을 골판지 벽에 등을 기대고 퍼질러앉은 친실장이 등이 보이게끔 끌어안는다.

“마마는 올해가 태어나서 여덟 번째로 맞는 겨울인데스.”

“많은테스! 그렇게 많은 겨울을 나다니 대단한테스!”

“오마에도 분명 마마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겨울을 나고, 더 많은 아이를 낳아 키워낼 것인데스.”

“와타시도 아이들을 잘 길러서 마마처럼 좋은 마마가 되는테슈! 귀여운 손녀들을 낳아 마마에게 보여드리는테슈!”

  친실장의 얼굴에 순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가, 이내 다시 표정이 어두워진다.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잘 듣는데스. 마마도 오마에가 낳을 손녀들의 모습이 너무나 기대되는데스. 하지만…하지만…마마는 손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인데스.”

“테에! 어째서인테슈 마마!!”

“……마마는 너무나, 너무나도 오래 산데스. 들실장 치곤 과분할만치 오랜 삶이었던데스. 마마보다 나중에 독립했던 마마의 동생들도 이미 모두 죽은데스. 와타시가 잘 해서라기보다도 운이 좋아서겠지만 닌겐씨도, 멍멍씨도, 야옹씨도 모두 잘 피해가며 지금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데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마지막인데스.”

“어째서인테스! 그런 건 싫은테스 마마!!”

“마마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된데스. 이제는 느낄 수 있는데스. 몸속의 돌에서 오는 느낌이 순간순간 약해지고 있는 것이 느껴지는데스. 이 신호가 끊기는 순간 마마는 아마 실장석의 낙원을 향해 떠나게 될 것인데스.”

  등을 보인 채 품안에 안겨 있는 중실장이 고개를 떨구고 가늘게 떨며 흐느낀다. 순간 친실장도 애처로운 표정을 짓지만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중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다.

“오마에는 와타시의 마지막 자인데스. 마마는 화장실에서 오마에를 낳은 순간 그걸 알 수 있었던데스. 사실, 그때 화장실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기대하지 못했던데스. 몸도 위석도 늙고 시들어버린 와타시가 오마에처럼 건강하고, 영리하고, 착한 자를 낳을 수 있었을줄은…구더기나 기껏해야 엄지들 정도나 낳아서 먹어버리고, 삶의 막바지를 홀로 외롭게 보낼 줄 알았던데스. 오마에는 와타시의 보잘것없던 삶 마지막에 카미사마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던데스. 태어나줘서…이렇게 ‘태어나줘서’ 고마운데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지 중실장이 오열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고 돌아앉아 친실장을 껴안는다. 한동안 그렇게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온기를, 존재를 확인하던 두 실장석이 천천히 숨을 가다듬고 서로를 바라본다. 친실장이 천천히 중실장의 볼을 매만지며 입을 연다.

“잘 듣는데스. 마마는 앞으로 며칠, 어쩌면 오늘 밤에라도 낙원을 향해 떠나가게 될 것인데스. 이게 와타시가 마마로서 오마에에게 해주는 마지막 말이라고 생각하고 듣는데스.”

“……알겠는테스.”

“…공원에서의 삶에 관한 것들은 여태껏 거의 가르쳐준데스. 다행히 오마에가 영리하게 잘 따라와서 빠뜨리는 것 없이 대부분 알려줄 수 있었던데스. 하지만…한가지 가장 중요한 것이 아직 남은데스.”

“그게 뭐인테스 마마?”

“집인데스. 먹이가 없으면 운치라도 먹으며 한동안 버틸수도 있는데스. 봉지나 페트병같은 물건은 약간 하자가 있어도 보통 아쉬운대로 쓸 수 있는데스. 하지만…괜찮은 자리에 제대로 만들어진 집이 없으면 공원에서 살아갈 수가 없는데스. 집터가 안좋으면 공원에 쳐들어온 하얀 악마에게 죽고, 밤중에 쳐들어온 학대파에게 죽고, 집에서 나오자마자 날아온 까마귀가 자들을 채가고, 밤낮없이 분충들이 쳐들어오는데스.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만한 집터는 무엇보다 중요한데스.”

“와타시 마마의 말을 잘 듣고 남부럽지 않은 집을 짓는테스!”

“와타시, 지금까지 오마에 외에도 열이 열은 너끈히 될만한 자들을 낳았던데스. 개중엔 완전히 성체까지 커서 독립한 자들도 다섯은 있었던데스. 하지만 그때는 와타시도 아직 지금처럼 경험이 많지 않았고, 와타시 앞가림하기에도 힘들어서 오마에만큼 신경써서 가르쳐주거나 챙겨주지 못한데스. 결국 그 자들은 지금 셋은 죽고, 하나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수도 없고, 딱 하나만 남은데스. 오마에가 와타시의 마지막 자라면 그 아이는 와타시의 첫 자였던데스.”

“와타시에게 오네챠가 있었던 테슈까? 멋진테스! 와타시…사실 자매가 없이 혼자라서 외로웠
던테스. 와타시도 빨리 오네챠를 보고싶은테스!”

“말하다보니 이야기가 다른데로 샌데스. 지금 그건 중요한 게 아닌데스. 다행히, 와타시는 처음엔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좋은 집터의 조건이 무엇인지, 공원 안에서 그런 곳이 어디인지 알아 지금의 집을 차릴 수 있었던데스. 오마에, 오마에는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 없는데스. 이 겨울에, 와타시가 낙원으로 가면…오마에는 지금 이 집을 그대로 오마에의 집으로 하는데스. 오마에도 잘 알겠지만 그간 와타시가 살면서 모아온 분충들의 옷들, 보존식용 열매나 말린 곤충들도 한가득 있는데스. 그리고 와타시가 평소에 베개로 쓰던 수건 안쪽을 찾아보면 콘페이토가 열두 개 있을 것인데스. 원래 함부로 자들에게 먹였다간 분충이 되어버리는만큼 주지 않은 것이지만, 오마에도 이제 거의 컸고 분충과는 거리가 먼 만큼 두어개 정도 먹어도 될 것인데스. 하지만 다 먹진 말고 열 개는 남겨뒀다, 급한 일이 있을 때 교환용으로 쓰는데스. 페트병이나 골판지가 급하게 필요한데 구할 수 없으면 콘페이토만큼 좋은 교환도구가 없는데스.”

  마치 지금밖에 말해줄 기회가 없으리라는 듯 쉬지않고 말을 잇던 친실장이 잠시 멈춰서 숨을 골랐다 다시 말을 꺼낸다.

“그리고…오마에도 알겠지만…운치굴에 구더기 여섯 마리. 이건…오마에가 알아서 하는데스. 공원에서 구더기는 비상식이자 교환도구인데스. 와타시도, 와타시의 마마도, 마마의 마마 때부터 항상 그랬던데스. 오해하지 마는데스. 우리가 못돼먹어서,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닌데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실상 장녀나 차녀조차도 살려서 키우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런 것 뿐인데스. 와타시는 지금까지 이미 몇 번인가 구더기들을 꺼내서 먹으려고 한 적이 있지만, 오마에는 불쌍한 동생들이라고 결사적으로 말렸던데스. 이제 그 아이들의 운명도 오마에에게 달린데스. 와타시는 여전히 그 아이들을 양분으로 새로 낳을 오마에의 자실장들을 잘 키우는 쪽이 좋으리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이제 와타시의 손을 떠난 문제인데스. 어쩌면…우리가 너무 박정했고 오마에가 맞을지도 모르는데스. 쪼들릴 땐 각자 밥 한두끼식 더 거르고, 힘들어도 보듬어서 구더기들도 제대로 키워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스. 오마에는 오마에가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사는데스. 마마는 여태 그렇게 살지 못한데스.”

  일순 말을 멈춘 친실장이 손으로 입을 막고 쿨룩쿨룩 깊은 기침을 토해낸다. 잠시 후 기침을 멈추고 핼쑥해진 얼굴을 든 친실장의 손가에 핏물이 배어있다.

“마마!”

“신경쓰지 마는데스. 낙원에 갈 때가 되니 지상의 몸이 약해졌을 뿐인데스. 계속하는데스. 마마는 여태 자유롭게 살지 못한데스. 마마의 마마는 무서운 마마였고, 필요한 것을 제대로 배워서 하지 못하는 자는 험한 공원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고 바로 솎아내는 분이었던데스. 와타시도 그런 마마에게 자라서 오마에보다 먼저 났던 자들을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데스. 항상 호통치고, 혼내고, 조금만 잘못해도 솎아냈던데스. 하지만 아무리 엄하게 가르친 자들이라 해도 운이 나쁘면 개를 마주쳐서, 못된 인간을 마주쳐서, 좋은 집터를 잡지 못해서 죽어간 데스. 만일…돌아갈 수만 있으면…다시 돌아가서 그 아이들이 죽기 전에 한번 제대로 안아줘 볼수라도 있다면…….”

  친실장의 눈가에 다시금 눈물이 글썽하고 맺힌다.

“겨울이 지날 때쯤이면 오마에도 완전한 성체가 될 것인데스. 그리고 지금 집에 있는 보존식의 양이면 구더기들을 먹지 않고도 봄까지는 너끈히 버티고 남을 것인데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금 자가 오마에 하나뿐이라 많은 식량을 모을 수 있었던데스. 만일…만일 사고로 식량이 부족해지는 일이 생기면 낙원으로 간 마마의 몸을 먹으면 되는데스.”

“그런 건 다메테슈 마마!!”

“괜찮은데스. 마마의 영혼은 이미 낙원에 가서 오마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인테스. 몸이나마 오마에의 양분이 될 수 있다면 마마는 만족하는데스.”

  모녀가 말을 멈추고 애처로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동안 집 안에는 정적이 흐른다. 끝없이 계속될 것 같던 정적을 깨고 걸걸한 목소리가 밖에서부터 들려온다.

“너무 절절한 것 아닌데스? 듣는 실장 손이 추워서 오그라드는지 이야기 때문에 오그라드는지 모르겠는데스?”

“누구인데스!!”

  불청객의 목소리에 방금 전까지 핏물을 뱉으며 숨을 헐떡이던 몸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운 기세로 친실장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친다. 골판지 문을 열며 고개를 약간 숙이고 거구의 성체실장 하나가 들어온다.

“‘장녀’인데스, ‘마마’. 이미 보낸 아이 목소리는 기억할 필요도 없는데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의 모습에 친실장은 한참을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오물거리기만 한다. 안쪽으로 들어와 한참을 친실장을 응시하던 장녀가 결국 피식 웃으며 먼저 말을 꺼낸다.

“그렇게 당황하지 않아도 좋은데스.”

“……오마에는 이미 독립한 자인데스. 무엇 때문에 찾아온데스! 겨울을 나기 힘들다고 기어들어오는 성체는 자가 아니라 거지새끼일 뿐이라고 예전에 말했던데스!”

“마마, 와타시도 이제 독립한지 3년이나 된 베테랑인데스. 누구에게 구걸이나 할만큼 쪼들리게 살지는 않는데스.”

“……미안한데스우. 보통 독립한 자가 집에 찾아와서 좋은 일이 있는 경우를 못 봐서…너무 예민하게 대해서 미안한데스. 편하게 앉아서 얘기하는데스. 무슨일로 온데스?”

“괜찮은데스. 와타시 마마 얼굴 본지도 오래된 것 같아서, 날도 추운데 잘 있는지 걱정돼서 와본데스. 마마가 돌아가시면 큰일이니 와타시가 할 일도 있고…”

“…오마에….”

  항상 질타하고 엄하게 훈육하기만 하느라 모녀간의 정을 제대로 나눠보지도 못했던 장녀가 자신을 걱정해서 찾아왔다는 얘기에 친실장이 다시금 눈시울을 붉히며 바라본다. 장녀가 절레절레 손사레를 친다.

“워~ 그렇게 보지 마는데스우. 간지러운데스. 와타시가 무슨 그런 살가운 실장이 아닌건 마마가 더 잘 알것인데스. 얼굴만 보고 갈것인데스.”

“안그래도 오마에부터 해서 먼저 키웠던 자들 생각을 하던 참인데스. 오마에에게 뭐하나 제대로 줘보지도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생각하던 참인데스. 잠깐만, 기다려 보는데스.”

  친실장이 몸을 돌려 이런저런 물건들을 넣어둔 작은 골판지박스 안을 뒤적거리며 선물로 괜찮은 물건이 없나 살펴본다. 한동안 그런 친실장의 등을 응시하던 성체실장의 눈매가 점차 가늘어지며 날카로운 빛을 띤다.

“마마, 그러고보니 와타시 할 일이 있다고 한데스.”

“…무슨일인데스? 급하지 않으면 조금만 기다렸다 가는데스. 선물이라도 받고 가는데스.”

“…그건 바로….”

  순식간에 걸음을 옮겨 친실장 바로 뒤까지 다가간 성체실장이 옷 등부분에 보이지 않게 꽂아뒀던, 옷핀 하나를 빼내 친실장의 가슴팍을 뒤에서부터 찔렀다 빼낸다. 순간적으로 움직임을 멈추고 몸을 부들부들 떨던 친실장이 밭은숨을 내쉬며 천천히 돌아선다.

“…오…마에? 무…슨….”

“이렇게 하고 싶었던데스. 꼭 이렇게 하고 싶었던데스. 예전부터 말인데스. ‘살아있어줘서’ 고마운데스, 마마.”

“무슨짓인테스 오네챠!!”

  잠시 이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멍하니 서 있던 중실장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돌격해오지만 힘으로나, 경험으로나 3년차 성체실장을 당할 수는 없다. 솜씨좋게 몸을 살짝 틀어 태클을 피한 성체실장이 발을 살짝 걸자 달려오던 힘에 못이겨 스스로 바닥에 나뒹군다. 뒤통수를 보이고 쓰러진 중실장의 등을 밟은 성체실장이 옷핀을 머리에 찔러넣자 잠시 발 밑에서 격하게 바르르 떨던 중실장의 움직임이 서서히 잦아들더니 이윽고 몸이 차갑게 굳는다. 옷핀의 일격이 나이들어 약해진 위석을 건드렸는지 무력하게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친실장의 얼굴도 보라색으로 뜨며 급격히 핏기가 빠지고 있다. 한참을 입을 오물거리던 친실장이 간신히 한마디를 꺼내는데 성공한다.

“……왜….”

“별거 아닌데스. 마마의 유산을 계승한 것 뿐인데스.”

“…계……승?”

  이제 말도 꺼내지 못하는 친실장의 얼굴에 격렬한 분노와 회한이 떠오른다.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얼굴 피부가 입을 대신해 소리없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나이든 실장석이 모아둔 물건들이 그리도 탐났냐고, 자신에게도 조금만 나눠달라 말할 용기가 없어서 이런 비겁한 짓을 했냐는 무언의 외침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나타나는데스. 하지만 아닌데스. 마마가 생각하는 그런 것이 아닌데스.”

  중실장의 머리로부터 다시 옷핀을 빼내 피를 스윽 닦은 성체실장이 그것을 다시금 옷에 솜씨좋게 꽂아 숨기며 앉는다.

“와타시가 들어오기 전에 마마도 말한데스. 마마에게는 먼저 키워낸 아이 다섯이 있었는데, 개중 셋은 죽고, 하나는 와타시고, 하나는 어디갔는지 모른다고 말인데스. 그 하나, ‘차녀챠’가 어떻게 됐는지 아는데스?”

  설마, 설마 먼저 이런짓을 당한거냐는 생각에 친실장이 분노에 찬 표정을 짓는다. 그 모습을 본 성체실장이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아닌데스. 와타시는…와타시는 차녀챠에게 손끝하나 대지 않은데스. 차녀챠를 죽인 건…마마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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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겨울은 유독 추웠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미치광이처럼 널뛰기하는 날씨는, 이 나라도 몇 개월 사이로 아열대기후처럼 만들었다 냉대기후처럼 만들었다를 반복했다. 3월도 중순이 되어갈 무렵, 가으내 모아뒀던 보존식이 이제 곧 바닥을 보이겠다 싶은 때가 오자 친실장은 이제 거의 성체가 된 중실장 둘을 곧바로 내보냈다.

“오마에들도 이제 독립할때가 된데스. 봄에 태어난 아이는 다음 봄에 독립해 나가고 그 봄에 태어난 아이가 새 자가 되는데스. 그래서 춘자를 실장석의 진정한 자라고 하는것인데스. 오마에들도 이제 곧 마마가 낳을 동생들을 위해 자리를 비워주는데스.”

“마마, 죄송한테스! 아직 날이 많이 춥고 눈도 오는테스! 조금만 더 기다렸다 눈이 멈추면 나가게 해주는테스!”

“마마의 말을 듣지 않는데스?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당장 솎아내주는데스. 공원의 삶은 원래 냉혹한데스. 쫑알쫑알 불평하지 말고 나가는데스. 세상은 오마에의 자잘한 사정을 하나도 감안해주지 않는데스.”

  이빨을 드러낸 친실장의 무서운 위협에 마지못해 나간 중실장들은 신발을 온통 적시며 눈길을 헤쳐 쓰레기장까지 갔지만, 눈에 젖어 흐물흐물해진 골판지는 어떤 베테랑 실장석이라 해도 집을 만들 수 없는 상태들이 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친실장의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와 다시 무릎꿇고 애원하던 중실장들은 분노한 친실장의 손에 피멍이 들도록 맞고 쫓겨났다.

“……오네챠.”

“이모토챠….”

  공원 화장실 담벼락에 몸을 찰싹 붙이고 기대앉아 있던 자매들 중 차녀가 장녀에게 말을 꺼낸다. 지금, 차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은 실장의학적 지식이 없는 장녀가 보기에도 명확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실장석의 재생력으로 두들겨 맞은 정도로 죽는 일은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저체온 상태에 시달리는 차녀의 몸은 제대로 된 재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교적 친실장의 구타를 덜 받은 장녀와 달리, 먼저 말을 꺼냈다 먼지나게 맞은 차녀의 생명은 이제 경각에 달해 있었다.

“와타시는 이제 죽는테스.”

“그런말 하지 마는테스 차녀챠. 조금만…조금만 버티는테스. 곧 날이 풀리고 먹을 것도 구할 수 있을 것인테스.”

“…와타시의 상태는 와타시가 아는테스. 이제 틀린테스. 하지만…이대로는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없는테스.”

  차녀의 눈빛이 분노, 증오, 원망과 같은 음의 에너지로 죽어가는 실장이라곤 믿을 수 없을만큼 섬뜩하게 번뜩인다.

“와타시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은테스. 마구 때리는것도 참은테스. 구더기쨩이 이유없이 파킨하고, 사녀챠가 도랑에 빠져 다리를 다친 것이 와타시가 언니 노릇을 못해서라고 때렸을때도 다 감내한테스. 언젠가, 언젠가 독립해 나가면 저런 마마가 아니라, 자들을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좋은 마마가 될거라고, 그때까지만 참자고 생각했던테스. 하지만…결국 이 꼴인테스. 와타시 이제 세상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테스.”

“차녀챠!”

“저런 건 제대로 된 마마가 아닌테스. 이런저런 이유로, 누구는 분충이라고 누구는 먹이가 부족하다고 이모토챠들을 하나씩 솎아내어 잡아먹고 자판기로 쓸때도 애써 어쩔 수 없는 일일 거라고 생각한데스. 하지만 이게 뭐인테스? 그래서 그렇게 이모토들을 희생시켜 남은 우리들은 제대로 독립시킨테스? 지금 이렇게 우리도 죽어가고 있는데? 결국 우리 자매는 무엇을 위해 태어난테스? 죽기 위해?”

  더는 차녀의 말을 듣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은 장녀의 눈에서도 어느새 가늘게 눈물이 흘러내린다. 차녀가 말을 잇는다.

“오네챠, 들어주는테스. 이대로라면 우리들, 저 똥애미의 거짓 태교노래를 듣고 뱃속에서 사이좋게 헤엄치던 우리 자매들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테스. 그럴수는 없는테스.”

“그렇게 되지 않는테스! 차녀챠도, 와타시도 살아남을 것인테스!”

“맞는테스. 오네챠는 살아남아야 하는테스. 그러기 위해서…와타시를 먹는테스.”

“차녀챠!!”

“부탁인테스. 이대로라면 와타시가 먼저 죽고, 오네챠도 조금 뒤이어 죽을 것인테스. 그럴 순…그런 수는 없는테스. 이대로 자매 모두 허무하게 죽어버리고 끝난다면 와타시 눈을 감을 수가 없는테스. 오네챠만이라도 살아야 하는테스. 살아서…살아서 저 똥애미의 모든 것을 빼앗는테스. 똥애미가 집안에 하나가득 쌓아두는 그 옷들에, 보온재들은 다 뭐하러 있는테스? 자들을 잘 키우러? 지금 그 자들은 다 죽어가고 있지 않은테스!! 다 거짓말인테스! 저건 그저 자들을 학대하기 위해 낳아서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괴물일 뿐인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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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차녀챠는…낙원에 간데스. 그 이후로 와타시의 목숨은 와타시 혼자만의 것이 아닌데스. 차녀챠가 와타시 속에 함께하고 있는데스.”

  다시 천천히 다가온 장녀가 쓰러져서 위를 올려다보는 친실장의 몸을 발로 밟는다.

“하지만…아무리 차녀챠의 목소리가 계속 귓가를 울려도 마마는 마마였던데스. 와타시 결단을 내릴수가 없어서 여태까지 계속 번뇌하고 번뇌하고 또 번뇌한데스. 밤중에 홀로 집을 나와 여기까지 와서 골판지 문 앞에서 오도카니 서있다 새벽에 돌아간적도 이미 여러번인데스.”

  그렇다면 왜-하는 친실장의 표정에 장녀가 말을 잇는다.

“오늘…오늘 오마에가 하는 말을 듣고서야 드디어 결단을 내린데스. 와타시, 오마에가 하는 말을 밖에서 처음부터 다 듣고 있었던데스. 들으면서 기도 차지 않았던데스. 봄까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라? 구더기쨩도 기르고 싶으면 길러봐라? 차녀챠와 우리 자매의 목숨은 그런 꼬리밖에 없는 버러지들만도 못했던데스? 뭘 이제와서 형편좋게 천사같은 실장이고 마마인 척 하고있는데스까!!”

  분노, 증오, 원망 등 만가지 감정과 만가지 말을 담은 친실장의 동공이 장녀를 똑바로 노려본채로 움직임을 멈춘다. 드디어 숨이 끊어진 것이다. 죽어가며 자신을 보던 차녀와 똑같은 빛을 띤 그 눈을 보며 장녀는 한참을 아래를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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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뺘-! 밥빼기 싫은레후~ 싫은레훗! 그런것보다 어서 프니프니! 프니프니후~!”

“조용히 하는테스. 곧 마마가 돌아오실 것인테스.”

  파킨사를 막기 위해 이날의 프니프니를 해주려고 구더기들을 운치굴에서 빼낸 엄지들이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졸라대는 구더기들을 달래려고 진땀빼는 모습을 보고 장녀가 입을 연다. 평소에 기율이 잘 잡힌 집이었는지 장녀가 한마디 얘기하자 엄지들에겐 꼬리를 파닥거리며 때를 쓰던 구더기들도 일순 조용해진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험한 꼴을 본다는 것을 반복적인 경험으로 저능한 구더기들조차도 아는 것이다.

  드디어 잠잠해진 구더기들을 엄지들이 하나씩 다시 운치굴에 넣고 있을 무렵, 골판지 문이 열리고 친실장이 돌아온다. 큰 종량제 봉투에 담아온 먹을 것을 친실장이 바닥의 수건 두 장이 깔린 부분에 쏟아낸다. 큼직큼직하게 해체된 상태의 실장석 시체다. 일견 섬뜩할 수 있는 광경이지만 간혹 분충과 싸움이 붙을 경우 친실장이 이렇게 그 고기를 식량으로 가져오기도 한다는 것을 아는 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각 살점마다 붙은 옷조각들을 솜씨좋게 벗겨낸다.

“마마, 이 실장석은….”

  친실장이 벽에 기대앉아 쉬며 한숨 돌리는동안 동생들을 지휘해 작업을 주도하던 장녀가 그 가운데 섞인 머리통 하나를 보고 말을 꺼낸다. 무슨 한이 남았는지 상상하기 힘든 원망과 증오를 담은 눈빛을 하고 죽어 있는 머리통의 모습에 담대한 장녀도 순간 움찔한 것이다. 벽에 기댄 채로 허공을 멍하니 올려다보고 있던 친실장이 눈길을 흘깃 돌려서 바라보곤 말한다.

“자기가 자들을 잘 길러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어느 실장석인데스. 하지만 그건 그 실장석의 착각이었던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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