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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 스톰프

 

날이 쌀쌀해지고 거리 바닥에 잔뜩 깔렸던 낙엽도 전부 사라질 무렵이 되면, 월동 준비가 순탄치 않음을 깨닫고 어떻게든 겨울을 나기 위해 인간에게 빌붙으려는 실장석들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한다. 꾀죄죄한 자실장 자매들이 줄지어 따라오는 가운데 그나마 자기 눈에 제일 귀여워 보이는 자를 껴안고 눈에 띄는 인간에게 접근하는 친실장들. 인간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곧장 껴안고 있던 자를 들어보이며 뎃데로게~탁아의 노래를 지껄인다. 평범한 사람들은 행여나 들실장들의 오물이라도 묻을까 서둘러 자리를 피하고, 운나쁘게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도 만난다면 일가실각 확정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실장 가족들을 절대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추위에 벌벌 떠는 실장석들을 집으로 데려가 온기와 먹이를 제공해 주는 것을 겨울의  취미로 삼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아무 실장석이나 덥석덥석 집으로 들일 수는 없으니, 내게 키워줄 것을 요청하며 접근하는 실장석 가족들에게 조건을 하나 거는 편이다. 그것은 바로 겨울 동안 사육실장의 삶을 살게 해주는 대가로 가족 구성원 중 하나를 희생할 수 있겠냐는 것.

"내가 너흴 겨울 동안 키워줄테니, 대신 너희 가족 중 아무나 내가 학대하다 죽이게 해주겠니?"

1. 

[데프픗, 자들은 바로 이럴 때를 위해 키워둔데스! 어이, 똥닝겐! 여기 장녀를 가져가 학대하는데스! 이 못된 년은 고귀한 마마가 매일 먹을 것을 몸소 구해오는데도 양이 부족하다느니 맛이 없다느니 늘 시끄러웠던데스! 이년을 찢어죽이고 고귀한 와타시에겐 스테이크와 스시를 산더미같이 진상하는데샤앗!]

[테챠앗! 똥마마가 결국 와타치를 죽이는테치! 똥닝겐! 게을러터져서 먹이도 제대로 안 구해오더니 기껏 생각해낸 게 탁아인 똥마마를 대신 죽이는테치! 그리고 와타치에겐 이렇게 된 이상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를 바치는테치!]

눈 앞에 이득이 조금이라도 보인다 싶으면 득달같이 제 가족마저 팔아먹는 더러운 분충들. 이런 놈들을 집에 들여 겨울 내내 먹이고 재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로 짓밟아 거리의 납작한 오물로 만들어버리자. 하는 김에 댄스파가 되기 위한 텝댄스 연습도 잊지 않았다.

2. 

[데뎃, 말도 안되는데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떻게 가족을 희생하겠냐는데스! 닝겐상, 이 대화는 없던 것으로 하는데스! 그만 돌아가보겠는데스.]

[텟, 마마! 안되는테치! 학대파가 집과 월동식량을 다 털어버린 이상 아타치들에게 희망은 없는테치! ...닝겐상! 아타치가 희생하겠는테치! 아타치를....학대하는 대신 아타치의 마마를 잘 보살펴주길 바라는테치!]

[뎃, 안되는데샤앗! 어떤 어미가 자식을 팔아넘겨 이익을 취하는데스! 장녀가 희생해 마마가 그 핏값을 취한들 행복할 것 같냐는데스! 그런 말은 절대 하지 마는데스!]

[마마! 테에엥...]

[오로롱...]

참으로 눈물나는 모녀지간이다. 들실장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어지간한 세레브 실장석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숭고한 가족애. 나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찔끔 흘리며 두 모녀 위로 빠르게 발을 놀려 두 실장석을 거리의 납작한 오물로 만들어버렸다. 고통도 추위도 없는 저세상 실장락원에서 행복하렴... 신발에 묻은 잔해를 털어내는 김에 문워크 연습도 빼먹지 않았다. 

3.  

[데엣, 알겠는데스... 닝겐상이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는데스. 여기 막내 구더기를 희생하는데스.]

[테엣, 마마! 구더기는 안되는테치!]

[장녀, 마마도 구더기를 희생하는 것은 슬프지만 원래 들생활에서 구더기는 언제든 희생할 수 있는 비상식량일 뿐인데스. 오히려 구더기 하나로 겨울 내내 닝겐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엄청나게 남는 장사인데스. 겨울 동안 닝겐의 하우스에서 주는 음식을 먹고 비축하면 봄이 왔을 때 다른 이웃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봄을 맞이할 수 있는데스!]

[테치...알겠는테치 마마.]

상당히 영리한 들실장이다. 가족을 아끼면서도 잘라내야 할 때를 잘 알고, 인간의 힘을 잘 알고 두려워하면서도 그 힘을 이용해먹을 계획을 짜낼 수 있다면 가히 들실장 중에서도 탑급의 지성이다. 자실장도 마마의 설명을 듣고 바로 이해하고 납득하는 것을 볼 때 역시 모전녀전이란 말이 어울린다. 이런 영악한 들실장이 겨울을 버티고 살아남아 봄에 공원으로 돌아간다면 자연의 엄준한 솎아내기로 깨끗해진 공원이 다시 실장석들로 가득 차는 것은 시간문제다. 공동체 사회의 의식 있는 일원으로서 그런 짓을 방조하고 도와줄 순 없다. 얼른 발을 들어 영리한 실장가족을 거리의 납작한 오물로 환원시켜주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해 점점 추워지는 것 같아 실장석이었던 것 위에서 추는 열정적인 코사크 댄스로 추위를 떨쳐내었다.

4. 

[데샷, 닝겐인데샤아! 자들은 모두 마마를 따라 도망치는데수!]

날 보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줄행랑을 놓는 것을 볼 때 탁아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외출한 실장석인 것 같다. 게다가 인간의 무서움을 확실히 알고 있는 듯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필사적으로 가족 전체가 도망친다. 하지만...

"사람이 말을 하는데 무시하는 분충은 용서치 않아요!"

예의를 중요시하지 않는 분충들을 모조리 거리의 납작한 오물로 환원시켜주었다. 이런 예의없고 부도덕한 실장석들의 근절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실장석들의 잔해 위에서 고대 악신을 섬기는 광신도의 춤을 따라하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붙잡혔다.

아무래도 올해 겨울에도 키워줄 실장석을 찾는 것은 무리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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