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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는 실장석 (ㅇㅇ(175.121))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간식 몇 개를 사고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려던 나의 시선을 노끈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고 있는 실장석이 붙잡았다. 편의점 옆에 쌓여있는 제 몸보다 큰 박스를 낑낑 거리며 빼내려는 실장석의 모습은 어디서나 볼 수 있었지만 녀석은 조금 특별했다. 허리가 다 굽어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의 뒤를 그 짧은 다리로 열심히 따라다니며 몇 년째 할머니와 같이 폐지를 줍는 실장석은 이 근방에서는 꾀나 유명했다. 평상시였다면 폐지를 줍는 할머니에게 인사라도 건네고 사무실로 들어갔겠지만 오늘은 할머니의 모습도 할머니가 끌고 다니는 리어카도 보이지 않았다.

“야 할머니는 어디 계시고 너 혼자 그러고 있냐.”

내가 말을 걸자 깜짝 놀란 녀석은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큰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나와 몇 번의 안면이 있던 녀석은 나를 알아본 듯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닝겐상 반가운 데스. 마마는 아파아파한 데스. 그래서 닝겐상타치들 하고 잠깐 병원이라는 곳에 다녀온다고 말한 데스.”

정확한 연세는 모르지만 할머니는 최소 80은 넘었을 것이다. 즉 언제 앓아누워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내 질문에 대한 완전한 대답은 아니었다.

“할머니가 아프신데 왜 너 혼자 박스에 매달려 있는데?”
“그게....마마는 박스를 좋아하는데스. 와타시가 마마에게 박스를 많이많이 모아서 돌아온 마마에게 선물하는 데스! 그러면 마마는 아파아파 사라지는 데스!”

실장석은 자신의 계획이 자랑스러운지 가슴을 내밀며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귀를 파닥였다. 녀석을 처음 보는 사람이 듣는다면 자신밖에 모르는 실장석이 그런 말을 할리 없다며 콧방귀 뀔 것이다. 하지만 몇 년간 봐온 나였기에 녀석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나는 문득 녀석이 내가 들고 있는 비닐봉지를 힐끔거린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배고프냐? 하긴 할머니도 없으니 밥 먹었을 것 같지는 않네. 하나 줘?”

간식으로 먹으려 했던 소시지 하나를 꺼내 포장을 벗기고는 흔들었다. 녀석은 침을 흘리며 연신 귀를 파닥이며 다가왔지만 이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닝겐상의 호의는 감사한데스. 하지만 마마도 없는데 와타시 혼자 그런 맛나맛나를 먹을 수는 없는 데스. 마마가 알려준 데스. 그런 맛나맛나를 먹으려면 상자씨의 산을 만들어야 한다고 들은 데스. 그런 귀한 걸 그냥 받을 수 없는 데스.”
“그러냐?.... 그러면 뭐 어쩔 수 없지. 수고해라”

1kg에 100원도 안하는 폐지를 모아 소시지를 살려면 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걸까. 할머니는 내가 권하는 음료나 간식을 항상 거절했었다. 그런데 실장석한테도 거절당하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확실한 거절의 의사를 듣고 사무실로 들어가려할 때 녀석의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녀석은 소리에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발만 동동 굴렀다. 나는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는 마치 실수를 한 것처럼 소시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 이거 떨어뜨려버렸네. 어쩔 수 없지. 이 소시지는 알아서 버려 줄래? 인간은 떨어진 것을 먹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럼 나는 들어간다.”

실장석은 땅에 떨어진 소시지와 나를 번갈아보는 녀석의 눈에 눈알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나에 대한 감사함일까 아니면 무언가 다른 감정이었을까. 나는 알 길이 없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갈 때까지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점심시간에 편의점에 가는 것이 내 일과가 되었다. 며칠이 지나도 녀석은 내가 주는 음식은 받지 않고 내가 먹다가 버리거나 흘린 음식만을 먹었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녀석의 모습은 초라해져갔다. 옷은 찢겨나갔고 머리도 듬성듬성해졌다. 내가 줄 때 말고는 음식도 못 먹는지 점점 말라갔다. 목에 걸린 노끈이 아니었다면 녀석을 알아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나는 녀석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만약 녀석이 내게 도움의 손길을 뻗는다면 잡아줄 의향도 있었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내가 녀석에게 처음으로 먹을 것은 주고 나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무렵 녀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출근길에 봤던 아스팔트 위를 장식한 적록색얼룩이 녀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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