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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정말이지 너무들 하지 않아요?”

그렇죠. 보다 보면.

“해충이니 뭐니 하지만, 결국은 서식지가 인간에게 파괴되어서 어쩔 수 없이 우리 곁을 맴도는 생물이잖아요? 인간은 그 애들한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책임 말입니까?

“그렇죠. 적어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해줘야죠. 솔직히 저 비좁은 공원 안에 먹고 잘 데가 어디 있겠어요? 우리 클럽이 그나마 매번 지원해주는…….”

아, 그 골판지 상자와 별사탕 말씀이군요.

“그렇죠. 애들이 묘하게 그걸 좋아하더라고요.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을 텐데, 당장은 그게 아니면 다 죽지 않겠어요?”

그것들은 골판지를 쓰기 전엔 어디서 살았을까요?

“아마 굴을 파거나 해서 살았을 거에요. 산에서 왔다고들 하니까.”

그럼 다시 적응할 수 있게 굴 파기 연습을 시킨다거나 하는 건 어떨까요. 요새는 곰 같은 것도 산에 다시 방류한다고 하던데요.

“아유, 그래도 그 애기들이 그 조막만한 손으로 파면 얼마나 파겠어요? 가뜩이나 못 살게 구는 사람도 많은데. 산에 풀어주면 금방 또 그 몰상식한 작자들이 와서 해코지할 지도 몰라요.”

아, 그 학대파라든가?

“그렇죠! 학대파니 학살파니 관찰파니, 도대체 그 애들 어디가 그렇게 해롭다고 기를 쓰고 괴롭히고 죽이려고 드는지! 얼마 전엔 어떤 미친놈이 한밤에 몰래 와서 골판지를 모조리 물로 적셔놨다지 뭐에요? 그 바람에 그 애들이 키우던 아가들이 여럿 익사하거나 얼어 죽었고요, 도대체 자기보다 훨씬 약한 동물을 못 살게 구는 게 뭐가 그리 잘난 줄 아는지 몰라요. 분명 전부 정신병자거나 현실부적응자인 게 분명해요.”

하긴, 어느 쪽이거나 그렇게 힘 뺄 일은 아닌 듯합니다만.

“이쪽은 힘 빼는 게 아니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 북극의 표범인지 물개인지를 구하는 거하고 마찬가지에요. 밀렵꾼들이 그것들을 죽이는 걸 보셨나요? 세상에, 모피에 구멍 안 내려고 몽둥이로 때려죽인답니다! 그런데 여기 애기들은 모피도 뭣도 얻을 게 없는 데도 온갖 흉측한 방법으로 죽인다니까요. 세상 참 흉흉해라.”

하프물범이야 워낙 수가 적다니까요. 하지만 그것들은 수가 많으니 다들 괜찮다 싶은 거겠죠.

“아니죠! 어떻게 괜찮겠어요? 그 애들은 엄연히 우리처럼 지성을 가진 생명체잖아요. 말이 동물이지 사람하고 똑같은 거라고요. 물범 같은 동물하고 똑같이 취급할 수가 없어요. 우리처럼 생각하고 사랑하고 보살필 줄 아는 애들이 그렇게 죽어서는 안 돼요. 하나하나가 모두 값진 생명인데, 다들 구더기니 벌레니 하찮게 여기다니.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구해주려 하는 거지요.”

생명을 구하신다니 보람찬 일이시겠군요.

“당연하죠. 우리 아님 누가 하겠어요?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나 쓸데없는 일이랍시고 욕하고 참견하죠. 시청 인간들도 마찬가지에요. 불법투기라니, 배고픈 애들 밥 먹이는 게 불법이면 유니세프는 뭐하러 있는지.”

하하, 분명 그 깊은 뜻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겁니다.

“아이고, 우리 사장님 말만이라도 고마우셔라. 아, 케찹은 됐어요.”

네이, 핫도그 여기 있고요, 1500원입니다.

“아, 여기요. 그럼 이만 가볼게요. 곧 회원들하고 공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오늘도 그것들한테 밥을 주시는 건가요?

“네. 벌써부터 애들이 잔뜩 몰려와서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분명 배를 곪고 있을 거에요.”

그럼 빨리 가셔야겠네요. 조심해서 가세요.

“안녕히 계세요!”



갔나.

매주 일요일마다 공원에 들르는 저 애호파 회원 아줌마는 어중간한 점심을 우리 포장마차의 핫도그로 때우곤 한다.

하여간, 손님 없을 시간에 와주니 시간 죽이기라도 되어주는 건 좋다만, 허구한 날 같은 말만 되풀이하니 지겨워 죽을 지경이다. 좀 다른 주제를 꺼내면 이쪽도 성심껏 대답할 텐데 말이지, 매번 실장석의 삶이 어쩌고 권리가 어쩌고 그 지경이니 설렁설렁 건성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카트 밑으로 숨으려들던 엄지 한 놈-아마 핫도그 냄새에 눈이 돌아간 듯한-을 꼬챙이로 찍어 쓰레기통에 처박고서 재료 재고를 점검한다. 반죽은 아직 있고, 소시지가 다 떨어졌다. 50개들이 팩을 꺼내어 뜯으려는 차에 문득 성분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실장육 60%, 닭고기 20%, 전분, 대두단백, 돼지고기향,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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