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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와 달력

 

[다녀왔다]

[어서오시는 데스~~ 수고하셨데스~~]

주인이 귀가하자 사육실장 완두가 공손히 맞이한다.



남자와 완두의 인연은 약간 특이했다.

예전에 남자는 편의점 봉투 탁아를 당한적이 있었다.

깊은 산골에서 자라온 남자는 산실장들을 통해 실장석에게 매우 많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산실장과 도시의 들실장이 다르다는걸 이제 막 상경한 남자는 아직 몰랐었다.

남자의 편의점 봉투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자실장을 봤음에도, 남자는 실장석을 키울 생각을 했다.

홀로 상경한 도시는 너무도 외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자실장은 이런 어마어마한 행운을 누릴 수 없었다.

편의점 봉투안의 핫도그를 갉아 먹다가, 케첩에 의해 강제 출산이 되버렸던 것이다.

극도의 긴장이 풀리자 마자, 너무도 황홀한 식사, 극도로 허약한 체력에 강제출산, 봉투안의 폐쇄감.

여러가지 요인이 모여 남자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파킨 해버렸다.



남자는 자실장을 키울 생각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왔다.

일단 목욕부터 시키고 밥을 줘야지. 그리고 이름을 지어 줘야지. 뭐가 좋을까?



집에 도착한 남자는 크게 놀랐다.

아까 오던중에 봤을때만 해도 게걸스레 핫도그를 먹던 자실장이 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자실장이 상할까봐 봉투도 조심스레 들고 왔다.

그런데 어째서?????




인연이 아니었다. 남자는 뒷뜰에 자실장을 묻어 주기로 했다.

시체를 만지는건 꺼림직 했기에, 봉투에 있던 내용물들을 삽으로 파낸 작은 구멍에 부웠다.


그래. 핫도그도 같이 묻어 줄테니 저세상에서 배불리 먹으려무나.




엉망이 된 편의점 봉투를 쓰레기통에 버리러 가던중, 봉투안에서 작은 움직임을 느꼈다.

봉투 안에는 아까 구멍에 부웠을때 정말 운 좋게도 비닐 내벽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구더기 실장 한마리가 있었다.

[레.....레후..]


힘없는 목소리. 하지만 태어나 처음보는 남자를 향해 간신히 웃어보인다.

원래가 미숙개체인 구더기, 그것도 허약하기 짝이 없는 자실장으로 부터 강제 출산 되어버린

구더기가 살아서 태어난 것 만으로도 기적이었다.

하지만 그 기적도 여기서 끝나려 하고 있었다.



어릴적 부터 산실장을 봐왔던 남자는 구더기가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불쌍하잖아. 태어나자 마자 엄마 얼굴도 못보고, 한번 꼬물거려 보지도 못하고 죽는다는건.



남자는 자실장대신 구더기를 키우기로 했다.

위석강화는 불가능 했기에 바카스를 직접 구더기의 입에 한두방울 떨어뜨려 먹게 했다.

몇일간의 정성어린 돌봄으로 구더기는 어느정도 건강해 질 수 있었다.

이제 남자가 마련해준 플라스틱 상자안에서 힘차게 꼬물거릴수 있게된 구더기.

동글게 몸을 말아 자는 모습에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문득 자는 모습이 완두콩을 닮았다 생각해,
구더기의 이름은 완두가 되었다.



남자는 정성껏 완두를 돌봤고, 완두역시 세상의 전부라 할수있는 주인을 따랐다.

그리고 그 정성끝에 완두는 자실장이 될 수 있었다.




자실장 완두와 주인은 꽤나 훈훈한 생활을 보낼 수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남자의 경제사정이었지만, 부모님의 유산으로 마련한 집은 작은 뒤뜰이 있어

자실장과 놀기엔 충분했다.

또한 실장샵의 고급 실장푸드가 아닌 이마트에서 파는 싸고 양많은 실장푸드였지만

완두는 충분히 좋아했다.

주말엔 가끔 스테이크 대신 편의점 햄버거의 패티를 주면, 완두는 자지러지게 좋아했다.

외로움을 강하게 느끼는 남자는 각종 기념일을 완두와 함께했다.

설과 추석엔 한복을 입히고 떡국을 나눠 먹고,
크리스마스엔 산타 복장을 입히고

스테이크(패티)를 세장이나 줬다.

식목일엔 같이 뒤뜰에 묘목을 심기도 했다.




그렇게 함깨한 시간이 꽤나 흘러, 미숙한 구더기였던 완두는 이제 성체실장이 되었다.

남자도 이제 겨우 도시의 생활에 적응 하게 되면서, 완두같은 개념실장이 거의 로또 수준으로

보기 힘들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남자의 완두 애정은 더욱 더 커져갔다.





완두는 주인이 출근하고 나면, 멍하니 누워있기도 하고, 교육 비디오에서 본 실장체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완두가 가장 좋아 하는것은 달력이다.

달력에 무었인가 써있는 날엔 틀림없이 좋은 일이 생겨난다.

붉은 숫자의 날은 주인이 하루 종일 놀아주며 행복한 날이다.

붉은 숫자 아래 뭔가 글자가 적혀있는 날은 더욱 더 좋은 날이다.

주인은 완두에게 글을 가르켜 보기도 했지만,
한글이 워낙 복잡한 조합형 언어라, 중간에 포기했다.

그래도 완두는 '완두' '실장석' '실장푸드' 정도의 단어는 읽을 수 있었다.




하염없이 달력을 바라보며 행복한 날을 꿈꾸는 완두의 눈에 갑자기 다음주 두번째날이 눈에 들어왔다.

붉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뭔가 글자가 써있다.

어쩌면 좋은 일이 생길수도 있다.



운이 좋았을까? 완두는 처음으로 달력에 쓰여있는 글자를 읽을수 있었다.

실장석의 날.

완두는 번개를 맞은듯한 격한 놀라움에 휩쌓였다.



분명 기념일마다 주인은 그날의 주인공을 가르쳐 줬다.

식목일은 나무를 위한날.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를 기념하는 날.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위한날.

주인이 직접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 놓은 어떤 날은 주인의 생일.

누가 주인공이 되었던, 완두는 기념일 마다 너무 행복했고, 기념일의 주인공이 고마웠다.




그런데 다섯밤만 자면 실장석의 날이라니!!!!

실장석이 주인공인 그날은 분명 평소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완두는 꿈에 부풀어 행복감에 몇번이고 몸을 뒹굴거리며 좋아했다.



그리고 남자가 퇴근하여 귀가했다.

완두는 당장이라도 실장석의 날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참을성 있게 주인이 씻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기다렸다.




샤워를 마친 주인이 캔맥주를 가지고 거실로 왔다.

[완두야. 다음주 둘째날은 같이 있을거야. 너떼문에 휴가 냈거든]

[데..데스?]

휴가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주인은 자신을 위해 그날 같이 있어 준다고 했다.

혼자 집을 지키는 것이 너무도 외로워서 아무리 응석을 부려도, 빨간 숫자의 날이 아니면

완두를 뒤로 하고 출근하던 주인이 빨간 숫자의 날이 아님에도 자신과 하께 있어 준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혹시나 했던 생각이 맞았다.

실장석의 날은 완두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날 일것이다.

[감사하는 데스~~! 정말 행복한 데스~~]

전에 없던 행복의 미소를 보이는 완두를 보며, 남자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했다.

[원 녀석. 그리도 좋냐?]

완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남자는 미소지었다.





완두는 다섯밤이라는 시간이 너무도 길고 지루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다가올 큰 행복앞에 참고 또 참았다.



들실장의 혈통을 이은 완두가 분충으로 자라지 않았던 이유는 몇가지가 있다.

모친인 자실장이 강제 출산중 사망하는 바람에 태교를 전혀 해주지 못했던 이유가 가장 컷다.

또한 남자는 브리터 처럼 능숙한 교육은 못했지만, 출근시간동안 항상 실장 교육용 비디오를

시청하게 했기때문에 완두는 큰 어려움 없이 개념실장으로 자랄 수 있었다.

비디오에는 실장석과 주인의 확고한 주종관계를 보여주었으며, 인간에게 버림받은 들실장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커녕, 다른 실장석도 거의 보지 못한 완두에게 주인은 세계 그자체였고,

비디오는 진실 그자체였다.


완두가 주인에게 응석을 부렸던것은 자실장 시절 출근하지 말라며 주인을 곤란하게 한게 전부였다.

그것도 교육을 통해 해서는 않되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런 완두에게 실장석의 날 주인이 함께 있어준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날은 주인의 출근이라는 절대적인 규칙조차 용서될수 있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 작은 혼란이 완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완두는 아직 잘 모른채,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토요일이 왔다.

오늘은 주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다.

주말에 남자는 가끔 햄버거같은 특별식을 사온다.

오늘도 완두를 위해 새우튀김을 사왔다.

간만에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였을까?

완두는 그동안 억눌려왔던 궁금증을 살짝 비치며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주인님. 세번 자고 난 일어난 날은 혹시 어디로 가는 데스?]

완두의 질문에 주인은 잠시 완두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아니. 그날은 하루종일 집에서 안나갈꺼야]



남자의 대답에 완두는 약간 놀랐다.

항상 기념일이면 어디론가 놀러갔는데, 이번엔 뭔가 이상했다.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는 완두에게 외출은 너무도 소중했다.

당연히 행복의 날에는 외출이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실망감을 억누르며 완두는 다시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럼 뭔가 선물이라도 있는데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질문이지만, 완두는 기어코 질문해버렸다.

사육실장이라면 해서는 않될 말이었지만, 남자는 개의치 않고 웃으며 대답한다.

[글쎄? 아 스테이크라도 사줄까?]

남자가 말하는 스테이크느 싸구려 햄버거의 패티.

완두가 무척 좋아하는 음식이었지만, 완두의 기대감엔 한참 못미치는 대답이었다.

스테이크는 주말에 가끔 먹는 음식. 기념일에 먹는 케익이나 푸딩같은 음식엔 한참 미치지 못했다.

실망감이 눈에 어린 완두가 다음 질문을 하려 했다.

그럼 새옷은 있냐고.




운이 좋아서 였을까? 나빠서 였을까?

질문을 하기도 전에 급하게 걸려온 전화에 남자가 서둘러 나가버렸다.



망연자실하게 혼자 남은 완두는 한동안 멍 해있었다.

마지막 질문을 하지 못했지만, 주인의 태도로 봐서 기대하긴 힘들었다.

주인은 평범한 빨간날같은, 아니 외출조차 안하는 빨간숫자의 날 만도 못한 하루를 보낼 생각이다.



그리도 기대하던 실장석의 날이었는데, 완두는 실망감을 넘어 새로운 감정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동안 자신의 세계 전부였던 주인에게 태어나 처음으로 화가 났다.

외출과 선물도 중요했지만, 그 이상으로 화가 난것은 주인의 애정이

너무도 보잘것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부처님 같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자들의 주인공인 날에도 그들을 기념하며

성대하게 선물들을 받았다.

주인이 주인공이던 주인의 생일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공인 실장석의 날을 겨우 빨간 숫자의 날 처럼 보내려는 주인의 태도가 야속했다.

완두에겐 주인이 전부였는데, 주인에겐 완두가 이정도 의미였다니.

태어나서 처음느낀 분노 뒤에, 태어나서 처음 니낀 상실감이 찾아왔다.



둘이 함께하는 얼마안되는 토요일에 훌쩍 나가버린 방금 전의 모습조차 미워지기 시작했다.



혹독한 교육과 선별된 혈통에서 얻어진 개념이 아닌, 순수한 백지와도 같은 완두의 개념은

작은 오탁에의해 순식간에 검게 물들어갔다.

행복만을 알던 완두는 불행이란 감정을 다스릴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너무도 힘들고 불행한 현실에 행복회로를 돌려 버리는 들실장들관 반대로

완두는 행복한 현실에 불행회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순수했던만큼 분충화는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어갔다.

자신은 불행하다고. 그동안의 행복은 보잘것 앖었다고. 자신은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완두의 불행회로가 빠르게 작동해 5분이란 시간동안, 개념있는 사육실장 완두는 분충이 되버렸다.




이제 그동안 유일한 진실이었던 교육 비디오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주인이 보여준 비디오는 자신을 속이고 하루종일 집안에만 가둬놓기 위함이었다.

주인이 외출때 데려간 공원에는 모두 완두와 같이 애정을 담아 길러지는 사육실장들 뿐이었다.

비디오 속의 들실장이란 자신을 말잘듣게 위협하기 위한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처럼 절대적이던 주인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사라졌다.

이 집안에 홀로 구속되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하늘의 뜻이었을까?

주인이 너무 서둘러 나가는 바람에 문이 열려있었다.


[데프프프프......]

완두는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문쪽으로 걸어나갔다.









드디어 실장석의 날이 찾아왔다.

남자는 무력함에 한숨을 쉬며 괴로워 했다.

토요일에 회사로 부터 급한 호출을 받아 나갈때 문을 잘 닫아두지 않은것이 화근이었다.

중간에 그 사실을 기억해냈지만, 그동안 함부로 집밖에 나가선 안된다 교육받았던 완두를 믿고

발걸음을 돌리지 않은채 회사에 갔던것이 문제였다.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렸을 완두에게 미안함을 담아 오는길에 푸딩을 사왔다.

그러나 집에 돌아 왔을때, 자신을 반겨주는 완두가 보이지 안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안을 샅샅히 뒤졌지만, 완두는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침대 뒤에 완두처럼 보이는 초록빛 무었인가를 보고 흥분해서, 침대를 뒤엎은게 문제였다.

침대를 들어내는데 엄청난 시간이 걸렸고,
그 안에서 찾아낸건 완두가 아닌 완두 크기의



케로로 인형이었다.




남자는 주말내내 한숨도 자지 못한채 완두를 찾아 나섯지만, 완두는 보이지 않았다.



그동안 몇벌의 옷을 사줬지만, 다들 코스프레 수준의 옷이기 때문에

일상복은 태어날때부터 입고 있는 실장석옷이었다.

사육실장옷도 입지 않은 실장석을 찾은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조차 청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개처럼 종에따라 다른 외모도 아닌, 다 똑같이 생긴 실장석을 뭐라 설명하면서 봤냐고 물어볼 것인가?




결국 아무런 소득없이 실장석의 날을 맞이하게 되버렸다.

깊은 후회와 절망이 몸을 뒤덮었다.

사실 그날 전화를 받고 다급하게 회사에 간 이유도 실장석의 날 때문이었다.

    



실장석의 날.

거리에 넘치는 들실장들의 폐혜를 줄이기 위해,
시민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구제의 날이다.

남자의 회사에서도 지역주민에게의 이미지 마케팅 차원에서 전직원 휴근 시키고 행사에 참여하게 했다.

남자는 혹시라도 집에 있을 완두에게 피해가 갈까봐 너무 걱정되 휴가를 냈다.

사회 초년생인 남자가 봉사활동에 쏙 빠지는 모습은 상사에게 미움을 샀고, 토요일엔 해명을 위해 회사에 가게 된 것이다.

상사는 어이없었지만, 그동안 성실하게 일한 남자의 사정을 봐서 한번만 허락해 주었고,

남자는 겨우 기분좋게 귀가했던 것이었다.



구제 행사를 알리는 싸이렌이 울린다.

시민들이 집게와 봉투, 스프레이등을 들고 거리로 몰려든다.


이 구제 행사에서 살아남는 실장석도 꽤 있긴 하지만, 온실속 화초로 길러진 완두에겐 무리였다.

남자는 깊은 절망을 뒤로한채, 구제행사를 보지 않기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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