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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과 정의 이야기

 


“봄이구나...” 
기나긴 겨울이 지나가고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한 공원의 넓은 풀밭. 
파릇파릇하게 자라나는 풀들의 한가운데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한손엔 비닐봉투, 한손엔 작은 손칼을 쥐고. 
“나 참... 쫙 빼입고 번화가에 가도 모자랄 판에 이게 뭔가요. 어머니...” 
투덜대면서도 쭈그리고 앉은 청년을 여기저기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있던 아줌마들이 보고 
친근하게 웃어보였다. 
모두 청년처럼 봄나물을 뜯으러 온 사람들이다. 
쑥에 냉이, 달래. 가끔씩 나무가 우거진 곳엔 참나물. 
“오 쑥이 마침 좋을 때네. 그대로 국을 끓이면 향이 좋겠...” 
사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봄나물을 캐고 요리를 하던 청년은 투덜대던 것과 달리 즐거 
운 듯 나물을 골라 잘라내기 시작했다. 
데스데스 
테치! 
테츄우~ 
“응...?” 
그러다가 인적이 적은 곳으로 간 청년의 눈에, 실장석 세 마리가 들어왔다. 
공원에 흔히 널린 실장석이지만 어미 같은 한 마리는 옷이 꽤 해지고 몸이 제법 큰 게 언뜻 
봐도 여러 해를 산 듯 하다. 
그리고 새끼들이 아주 작다. 아마도 겨울을 나고 봄에 갓 낳은 새끼들인 것 같았다. 
그런 세 마리가, 인적이 드문 풀밭의 위에서 몸을 숙이고 열심히 풀을 뜯고 있는 것이다. 
데...? 데데! 
그때 청년을 발견한 어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새끼들을 감쌌지만. 
“........” 
딱히 학대파도 애호파도 아닌 청년은 그저 실장석들을 내려다보다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쑥을 
캐기 시작했다.
“오. 여기 좋네.” 
데...? 
인적이 드문 만큼 많이 남아있는 쑥들의 아랫동을 잘라 계속 봉투에 담아가는 청년을 친실장 
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보고 있다가, 청년이 딱히 위험하지 않다고 깨달았는지 자신도 다시 풀 
을 뜯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서로 묵묵히 풀과 나물을 뜯어 먹거나 모으다가 어느새 정오가 되자 청년은 일 
어나서 허리를 폈다. 
“아오...! 허리야.” 
봉투를 내려다보자 제법 묵직하게 찼다. 이 정도면 국과 반찬을 만들고도 남겠으니 나머지는 
말리면 좋을 것이다. 
데... 
그때 이미 배부르게 풀을 먹은 자실장들이 뛰노는 옆에서 계속 풀을 모아 낡은 편의점 봉투에 
채우던 친실장이 일어난 청년에게 고개를 돌리더니, 인간의 커다란 몸과 발아래의 봉투에 담 
긴 나물들, 자신이 모은 풀을 번갈아 쳐다봤다. 
데... 데스우... 
“응...?” 
슬슬 돌아가려던 청년은 발 아래로 다가온 실장석에게 의아한 시선을 보냈다. 
서로 상관하지 않고 있었지만 인간이 떠날 거 같으니 뭔가를 요구하려는 건가하고 내려다 본 
청년의 앞에서. 
데스...? 
어미 실장석은, 자신의 봉투에서 풀을 한 아름 안아들고는 청년에게 내밀었다. 
“어...? ...주는 거야?” 
데스! 데스! 
자신을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눈이 마주치는 크기의 동물, 실장석의 눈이 자신과 봉투를 번갈 
아 쳐다보는걸 알아차린 청년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하... 인간은 몸이 크니까 풀이 모자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데스! 데스데스? 
린갈은 없지만 실장석은 인간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고 청년도 몸짓과 태도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가져다가 먹으라는 듯 실장석이 내민 풀들. 
사실 인간이 먹을 수 있는 나물만 캔 게 아니라 반 이상은 잡초인 그 풀들을 내려다보던 청년 
은. 
쭈그려 앉아 친실장과 눈을 맞추고는 풀들을 받았다. 
“고마워. 잘 먹을게.” 
물론 집에 가서 골라내기야 해야겠지만 친실장의 보는 앞에서 잡초를 버리는 건 내키지 않은 
청년은 친실장이 준 풀 전부를 자신의 봉투에 넣었다. 
데스! 데스우~ 
청년이 풀을 받자 기뻐하는 친실장을 보며 자신도 미소를 짓던 청년이 몸을 일으켰다. 
“자. 그럼 난 이만 갈게.” 
데? 데스데스~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손을 흔드는 친실장에게 등을 돌렸던 청년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다시 몸을 돌리더니 주머니에서 꺼낸 사탕 한 알의 포장을 찢어 친실장에게 건네주었다. 
데! 
“답례야. 새끼들에게 줘.” 
데스데스....
의외로, 고개를 젓는 친실장의 생각을 안 청년이 다시 웃었다. 
“괜찮아. 네가 준 풀이 있으니 배부를 거야.” 
데... 데스! 데스데스! 
그제서야 사탕을 받아들고 이번엔 정말로 발걸음을 옮기는 청년에게 친실장이 손을 흔들었다. 
그걸 돌아본 청년도 생각지 못했던 경험에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실장석에 무관심해도 도시의 해충 취급 받는 들실장에 대해선 모를 수가 없는 이상 혹 
시, 
인간에게 뭔가를 주고 그 대가를 요구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마지막까지 의심을 가지고 그냥 가 
려는 척 해봤지만, 
아무런 답례 없이 떠나려는 자신을 저 실장석은 처음부터 답례는 생각도 안 했었다는 걸 증명 
하듯 그저 배웅했다. 
‘실장석이 전부 저런 녀석만 있으면 미움 받지도 않을 텐데...’ 
따듯한 봄날의, 인간과 실장석 사이의 드물게 따듯한 이야기였다. 
여름 하면 생각나는 것은 학생들의 여름방학과 바다로 가는 피서, 그리고 더위와 장마다. 
의외로 실장석들에게 있어서도 방학과 피서여행은 꽤나 인연이 있는 단어이다. 
방학을 맞아 한가해진 학생들이 시간 죽이기로 실장석들을 죽인다던가. 
방학숙제 관찰일기를 쓰기 위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자실장을 잡아다가 좁은 수조에 가두고 
관찰일기를 쓰기도 한다. 
물론 처음 며칠은 먹이를 먹는 모습이나 행동을 열심히 쓰지만 나중엔 며칠 씩 관찰일기가 건 
너뛰다가 쓰는걸, 관찰에 필요한 사육 행동을 모두 그만두거나 학대파의 고백 일기가 되는 게 
보통. 
그리고 피서 철을 맞아 애완동물에서 방해꾼으로 격하 된 사육실장을 내다 버리는 일도 흔하 
다. 
지인에게 실장석을 맡기려 하면 높은 확률로 지인 한명과 관계가 틀어지는 결과를 낳을 뿐이 
고 애초에 대부분 피서를 간다. 
그렇다고 애완동물 호텔의 경우, 개나 고양이보다 실장석의 위탁비가 몇 배가량이나 비싸다. 
그야 사육실장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힘들고 ‘호텔에 숙박’ 이라는 ‘특별한’ 상황에 흥분한 사 
육실장들이 마구 분충성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서비스 비용도 있지만. 
일단은 바가지, 라는 건 사육실장과 식용실장의 가격을 제외한 모든 실장석 관련업의 상식이 
다. 
그래서 장기간 집을 비우는 주인들의 선택은 세 가지. 
영리한 자신의 사육실장을 믿고 먹이를 계산해서 주고 간다. 
집에 돌아왔을 때 기다리는 건 말라비틀어진 사체 혹은 여러 마리를 길렀을 경우 동족상잔 끝 
에 남은 한 마리일 뿐이다. 
버린다. 
피서를 갈 정도의 더위든 한가한 아이들이든 굶주린 들실장이든 무언가가 금방 처리해 주므로 
일가 전체를 내다버린다 해도 들실장이 늘어날 걱정은 적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드물게도, 피서 여행에 데리고 가는 경우가 있다. 
물론 케이지에 넣든 아니면 안고 가든 장시간 여행인 이상 대변의 냄새가 차 안에 가득 차는 
건 피할 수 없다. 
사육실장의 변의를 호소할 때 운 좋게 휴게소가 가까워도 고속도로라는 하데스의 강으로 지켜 
지는 실장석 청정구역인 휴게소에선 관리인들이 실장석을 데리고 내리는 걸 막고 있다. 
휴게소 화장실에서 혹은 화단에서 일을 보게 한다는 건 어불성설. 
결국 차 안에 준비한 간이 화장실에서 썩은 시궁창의 비릿한 냄새를 풀풀 풍기며 가는 수밖에 
없어 즐거운 피서 여행을 시작부터 기분을 잡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서지에 도착하자마자 시끌벅적한 호객행위와 가득 들어선 먹거리 노점에 
흥분해서 데스데스테치테치 거리는 사육실장들의 모습이, 더 이상 귀엽게 보이지 않기 시작하 
는 건 당연할 것이다. 
거기서 버려지는 게 4분의 1. 
그리고 혼잡한 피서지에서 흥분해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미아가 되는 사육실장이 4분의 2.
간신히 나머지 4분의 1이 주인과 휴가를 마치고 돌아가 피서지가 한산해 질 때 즈음엔 버려 
지거나 미아가 된 사육실장들이 울면서 떠돌아다니는 걸, 대목을 마치고 뒷정리를 시작한 피 
서지 주민들이 처분하는 풍경이 여름의 끝을 알린다. 
바다가 있다는 건 관광과 장사에도 좋고, 헤엄을 칠 수 없는 실장석들을 처리하기에도 편하 
다. 
해수욕장의 바닷물에 녹색 대변이 둥둥 퍼져가는 건 당연히 안 되기에 개방 기간엔 실장석을 
데리고 들어가는 건 금지됐었기에, 
바다를 바라보기만 하던 실장석들은 뒤늦게나마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수욕을 지쳐 죽 
을 때까지 즐기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고속도로와 피서지에서 사욱실장들의 여행이 끝나가는 동안. 
남겨진 도시의 들실장들에겐 더위와 장마가 덮쳐온다. 
더위에 갈증이나 일사병으로 죽는 실장석들의 모습은 흔한 풍물이기에 신경 쓰는 사람은 없지 
만, 장마철엔 귀찮아지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든 항상 그렇긴 하지만, 장마란 재난을 맞이한 들실장들의 선택지는. 
죽는다. 
버틴다. 
인간에게 의지한다. 
세 가지뿐이기에. 
데쟈! 데쟈아아아-!!! 
본격적으로 장마가 시작 된 어느날. 
한 들실장이 주택가의 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탄환 같이 쏟아지는 빗방울은 영화에서 기관총에 난사 당해 벌집이 되어 쓰러지는 장면을 연 
출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들실장의 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들실장은 추위와 아픔에 울부 
짖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테치? 테치테치! 
꽉 끌어안고 있는 가슴의 옷깃에서 고개를 내밀고 걱정스럽게 우는 아이를 위해서. 
들실장이 새끼를 숨길 때 옷 아래에 넣는 행동을 하는 건 흔하지만 지금은 빗방울로부터 새끼 
를 지키기 위해 옷 아래에 넣고 있는 것 이다. 
장맛비에 떠내려간 들실장의 익사체와 골판지 등의 쓰레기들이 매년 그렇듯이 배수구를 막아 
버려 이미 침수가 시작 된 공원에서 탈출한 이 모녀는 여기저기에서 탁류가 거세게 흐르는 강 
이 된 마을 안을 정처 없이 헤매며 비를 피할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친실장의 무릎, 심하면 허리까지 물이 찬 마을에서 쉴 곳은 없었고 흐름이 
강한 곳에 잘못 갔다가는 잠시 발을 헛디디는 것만으로 떠내려가 버릴 것이다. 
테... 테... 
데... 
품에 안은 아이가 덜덜 떠는 걸 느낀 친실장이 다급히 주위를 둘러봤지만 어딜 봐도 아래는 
갈색의 물 위에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빗줄기들 뿐. 
데! 데스! 
그때 친실장이 한 주택의 마당으로 통하는 철문이 조금 열려 있는 걸 발견했다. 
그걸 본 순간 뒤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온 몸으로 문틈을 비집어 열고 들어간 친실장의 머리 
위에서. 
문이 열린 걸 감지한 센서 등이 켜졌다. 
데스?! 
갑자기 밝아진 머리 위를 화들짝 놀라며 올려다보던 친실장의 앞에. 
귀찮은 표정으로 입에 담배를 문 한 남자가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데... 데.... 
잠시 뒤. 
데스...? 
테치테치.... 
낮은 골판지 상자 안에서 새끼에게 몇 장이고 신문지를 둘러주는 들실장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비가 쏟아지는 창 바깥을 바라보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비가 그치면 바로 나가라.” 
데스! 데스데스! 
방금 전.
자신을 보고는 바닥에 엎드려선 새끼를 들어 내미는 들실장을 보던 남자는 한숨을 내쉬곤 두 
마리 전부를 집에 들여놨다. 
그렇다고 따듯한 목욕을 시키거나 수조에 넣어 주지는 않았다. 
예전에 쓰던 수조는 있지만 조금이라도 사육실장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착각을 시키면 귀찮아지 
는걸 아는 남자는 골판지와 신문지라는, 들 생활과 별 다를 게 없는 환경만을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비만 피하게 해 줄 생각이었기에 몇 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는 들실장을 보고 
는 무심하게 TV를 켰다. 
그리고 다음날. 
“..............” 
데...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지만, 
비는 아직 그치지 않고 있었다. 
자실장을 안고 골판지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난 들실장은 아직도 비가 오는 걸 보고 마음이 무 
거워지는 걸 느꼈다. 
인간에게 잠시 신세를 질 생각이었지만 아직도 비가 그치지 않았는데 나가면 조금 체력이 돌 
아왔다고는 해도 어제와 같은 상황일 뿐이다. 
김이 오르는 따듯한 커피를 들고 빗줄기를 응시하는 남자를, 발아래에서 들실장이 아이를 안 
고 조마조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후우...” 
데스우...? 
한숨을 한 번 내쉰 남자는, 들실장을 내려다보았다. 
“...비가 아직 안 그쳤구나.” 
여름의 끝. 
들실장이 남자의 집을 떠난 건 기나긴 장마가 그치고 나서였다. 
약속대로. 
가을의 공원. 
이 공원에는 얼마 전 부터,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몸의 안전과 식량의 부족을 모르는 사육실장이 일 년 내내 한 달 간격으로 새끼를 낳을 수 있 
는 것 과 달리, 굶주리고 위험이 가득한 세계에서 사는 들실장들은 봄과 가을 두 번만 새끼를 
낳는 시기로 여긴다. 
애초에 사육실장은 평생 한번밖에 새끼를 못 낳는 경우가 많지만. 
일단 새끼를 낳으면 같이 살해당하거나, ‘사육실장이 아니게’ 되므로. 
그런 의미에선 괴발개발 해가면서도 새끼를 기르긴 하는 들실장의 경우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들실장들도 춘자와 달리 추자는 일회용의 노동력으로 취급한다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추자 중에서도 당장 일을 시킬 수 있는 자실장을 제외한 엄지와 구더기는 무용지물. 
엄지는 집 근처의 낙엽을 주워오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겨울을 대비해 실장석들이 사는 근처 
의 낙엽은 이미 모두 각자의 골판지에 꾸역꾸역 밀어 넣은 상태라 낙엽을 주우려면 멀리 갈 
수 밖에 없다. 
멀리 나가려 하면, 월동식량을 모으느라 혈안이 된 들실장들이 다른 들실장의 새끼, 그것도 
엄지가 혼자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지나칠 리가 없다. 
그렇기에 엄지도 구더기와 함께 밥벌레 신세가 되어 낳자마자 속히 구더기와 함께 말린 고기 
를 만든다. 
춘자로 태어나 구더기를 돌보는 걸로 자신의 필요성을 어필하던 엄지들도 겨울이 올 때 자실 
장이 되어 있지 않으면 가끔 돌보던 구더기와 함께 월동식량이 되는데 추자는 말 할 것도 없 
으리라. 
그러나. 
레치? 레치레치. 
레후... 
레후웅...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이 공원에선 엄지실장과 구더기실장의 울음소리가 한 쪽에서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데스우~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소문으로 들은 그 기묘한 광경을 지켜봤다. 
수풀 아래에, 수십 마리의 엄지실장과 구더기실장이 모여 있는 걸 한 성체 실장석이 돌보고 
있는 광경이었다. 
엄지와 구더기들의 크기가 전부 비슷한 걸 보면 전부 이번 가을에 태어난 추자이지만 아무리 
실장석이라도 한 마리에 너무 많은 수였다. 
식용실장 공장 중에서도 고기의 질에 신경 쓰지 않는 저급한 곳은 팔다리를 조차 자른 출산석 
을 동여매 꼼짝도 못 하게 한 상태로 약물과 호르몬제에 위석을 담근다. 
그리고 출산 수가 적은 출산석을 매번 본보기로 끌어내 출산석들의 눈앞에서 처참하게 때려죽 
이는 걸로 위기감을 심어줘 위기감에 쫓기는 출산석들은 2주마다 한번에 20마리에 달하는 새 
끼를 낳는다. 
물론 일반적인 공장의 3주에 10마리 정도의 수에 비하면 비정상적인 속도와 숫자기에 3개월 
은커녕 6주내로, 세 번 정도의 출산으로 대부분의 출산석이 사망 하지만 출산된 자실장으로 
돌려막기를 하기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면 늘었지 출산석이 모자라는 일은 없는 그런 공장 
에서도 한번에 28마리가 최고 기록이었다. 
물론 반 이상이 엄지실장이나 구더기였고 출산석은 바로 폐사했지만, 지금 공원에서 모여 있 
는 엄지실장과 구더기의 수는 그 기록을 넘어 50마리가 넘어 보이는 것이다. 
레치레치레치레치 
레후레후레후레후 
데스! 데스우우~ 
그 50여 마리의 엄지실장과 구더기 실장이 득시글거리는 무리 한 가운데에서 바쁘게 뛰어다 
니는 유일한 성체실장은 멋대로 까불고 떠들며 무리를 벗어나려 하는 엄지들을 안아 데려오거 
나 서로 뭉쳐 있다가 아래쪽에 깔린 구더기가 괴로워하는걸 보고 급히 빼주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보육원의 교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헤에... 실장석도 저런 행동을 하는건가....?” 
그 공원이 있는 동네는 그다지 실장석 구제에 적극적이지 않은 분위기였던 데다가 다른 실장 
석의 새끼를 돌본다는 행동을 드물게 여긴 사람들의 반응으로, 그 엄지와 구더기 실장의 무리 
위로 코로리 스프레이가 뿜어지는 일도 없이 하루가 저물어 간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가자 그 특이한 집단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된 이후로 계속 관찰 된 대 
로, 공원의 입구나 수풀 속에서 봉투를 들거나 멘 성체실장들과 자실장들이 한두 마리씩 보이 
기 시작했다. 
데스우! 
레치? 레치레치! 
레후웅~ 
성체가 무리에 다가가서 한 번 울자 몇 마리의 엄지실장이나 구더기가 기쁘게 뛰어나가 성체 
가 든 봉투의 내용물을 보려 발돋움을 하는 모습을, 무리 한 가운데 서있는 그 성체실장이 흐
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레치이~ 
데스우~ 
그리고 구더기를 안고 떠나는 엄지실장이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드는 것에 마주 손을 흔들어주 
는 걸 시작으로 엄지와 구더기들이 각자의 친실장을 따라 골판지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데... 
어느새 완전히 어둑어둑해진 풀밭에 한마리만 남겨져 조용한 주위를 둘러보던 성체실장도 돌 
아가려 했을 때. 
레치이... 
데? 
초록색 실장옷을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걸 깨닫고는 내려다보자 구더기 한 마리를 안은 엄지실 
장 한 마리가 그 성체실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데... 
레치... 
그리고 한밤중. 
그 풀밭이 보이는 벤치 아래에서, 조용히 주저앉아 있는 성체실장의 옆에 기대앉은 엄지실장 
은 구더기를 안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도 가끔씩 퍼뜩 잠에서 깨어 풀밭을 바라봤다. 
레치?! 레... 레치이... 
데스우... 
음식물 쓰레기장을 심각하게 망치거나 탁아, 침입 등을 하지 않는 이상 구제에 적극적이진 않 
은 동네라고는 해도, 들실장들이 마냥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건 물론 아니다. 
도로를 건너려다가 차에 깔리거나, 음식 쓰레기장에서 까마귀에게 살해당하거나, 하다못해 발 
을 헛디뎌 계단이나 도랑에 추락하는 것만으로도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레... 레에에에에에에에엥! 레에에에에에-!!!! 
레후? 레후레후?
그렇기에. 
밤을 새고, 희미하게 밝아오는 하늘을 보고 이미 마마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걸 깨닫고 
오열하는 엄지실장의 품속에서 구더기가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우는 엄지 오네짱을 보다가 
엄지의 얼굴을 핥았다. 
다음날부터. 
그 공원의 ‘보육원’을 관찰하던 관찰파들은, 
모든 엄지와 구더기가 친실장을 따라 돌아간 후에 ‘보육실장’ 을 따라 돌아가는 엄지와 구더 
기 한 마리를 보게 되었다.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어~ 춥다!” 
겨울의 공원. 
외진 구석의 낡은 관리창고 벽 아래서 신문지를 덮고 자던 늙은 노숙자가 일어나서 하얀 입김 
을 뿜어냈다.
“어이. 일어나봐.” 
그러더니 옆에서 마찬가지로 신문지를 덮고 있는 노숙자를 툭툭 쳤다. 
“으으...” 
그러자 얼굴을 덮은 신문지를 치우고는 아직 젋은, 20대의 청년이 고개를 내밀었다. 
“....뭐.” 
“일어났나. 난 또 얼어 죽었나 했지.” 
“...........”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옆에 주저앉은 채 머리를 벅벅 긁는 청년을 바라다보던 노숙자가 품속에 
서 구깃구깃한 담뱃갑을 꺼내 달랑 세 개비가 남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한대 줘?” 
“....끊었어.” 
“언제? 여기로 올 때?” 
대답이 없는 이 신참 노숙자 청년을 보던 노숙자는 반 정도 피운 담배를 털어버리곤 불이 꺼 
진 꽁초를 다시 담뱃갑에 집어넣고는 일어섰다. 
“자... 오늘은 어디 일거리려나... 같이 가자고.” 
“오늘도 노가다판 말고는 없을 거 아냐....”
“그렇지 뭐. 낄낄낄....” 
청년의 퉁명스러운 태도에도 늙은 노숙자는 기분 나빠 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어딘가 달관한 듯 한 태도로 청년에게 말했다. 
“대학물 좀 먹었는데도 일자리 못 얻고 집에서도 나오고 자존심 때문에 노가다는 못 뛰겠지. 
....그렇다고 이런데 처박혀 있으면 번듯한 직장이 생길 것 같나?” 
“....뭘 아는 척하고 있어. 할아범.” 
“말 안 해도 보면 뻔하지.” 
자신을 내려다보는 늙은 노숙자의 눈을 응시하던 청년은 쳇 하고 혀를 차고는 고개를 숙였다. 
잠시 뒤. 
“공사장 벽돌 나르기! 8명!” 
공원 근처의 공터에서 서성이던 노숙자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의 앞에 한대의 트럭이 서더니 짐 
칸에 타고 있던 남자가 외친 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몇 명은 다른 일을 기다리거나 그날 첫 일거리는 경쟁이 세서 물러나 있었지만 늙은 노숙자도 
사람들을 헤치고 차에 올라타려 했다. 
“아, 할아버지는 내려! 공사장이라고!” 
“.........” 
“윽...?!” 
그때 인원을 모으던 남자가 늙은 노숙자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자신의 팔을 잡은 늙은 노숙자 
의 손이 쥐여지자 마치 압착기에 끼인 듯이 꽉 조여지는 팔의 통증에 놀라서 말을 멈췄다. 
“.....쳇. 아직 펄펄하다 이거시구먼. 알았어요, 타요!” 
그리곤 그대로 올라타서 짐칸에 앉는 노인을 보다가 고개를 흔들고는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하듯 재촉을 했다. 
“..........” 
그러거나 말거나, 늙은 노숙자는 짐칸에 걸터앉은 채 아직 공터 뒤쪽에서 서성이는 노숙자를 
바라다보고 있었다. 
결국 차가 떠날 때까지, 두 대의 트럭이나 봉고차가 더 왔지만 청년은 아무런 차에도 다가가 
지 않았다.
그날 저녁. 
일을 마치고 돌아와 공원을 걷는 늙은 노숙자의 손엔 입구를 꽉 묶은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 
었다. 
그리고 자신의 구역인 관리창고 벽에 도착해서는, 그 봉투를 벽 아래서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 
던 청년의 머리 위에 툭 올려놨다. 
“.....뭔데.” 
“먹어라. 오늘은 교회 사람들도 안 왔을 텐데.” 
“할아범은?” 
“공사장 가면 밥 주잖아.” 
“.............” 
그건 점심밥이잖아, 라는 말이 목까지 치미는 걸 억누른 청년은 조용히 봉투를 받아 들었다. 
“....그럼 담배나 사지 그랬어.” 
늙은 노숙자는 대답 없이 빈 것처럼 보이는 담뱃갑을 거꾸로 들어서 흔들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떨어진, 아침의 반 개피 남은 꽁초를 주워 불을 붙이고는 말없이 웃었다. 
“할아범.” 
“뭐냐.” 
“나... 내일부터 일 나가볼까하는데.” 
“.......” 
빈 편의점 도시락 껍데기에 필터까지 타들어간 담배를 눌러 끈 늙은 노숙자는, 잠시 말이 없 
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가지마라.” 
“뭐? 계속 가라더니 왜.” 
“...이렇게 사는 것도 잠시뿐이라고 생각한지... 벌써 40년이 넘었다.” 
“...........” 
“너는 일 나가지마라. 나처럼 이런 삶에 익숙해지지 마라. ...그냥 여기서 쉬다가, 각오가 생기 
면 다시 나가봐라.” 
“..........” 
그 뒤로 며칠 동안. 
공터에 청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그저 청년은 창고 벽에 기대앉은 채 하늘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날 새벽. 
청년은 한기를 느끼고 잠에서 깼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에 신문지뿐만 아니라 골판지를 가져다가 깔고 덮었지만, 왠지 골판지가 
어깨 아래로 내려가 있어서 추웠던 것이다. 
데스데스.... 
“응...?” 
그때 청년의 눈에 골판지를 잡고 있는 실장석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 창고는 들실장들이 몰려 살고 있는 곳 하고는 좀 떨어져 있어서 들실장이 오는 일은 드물 
었지만 노숙자들에게 신문지나 골판지를 훔쳐가는 들실장은 골칫거리 혹은 좋은 화풀이 도구 
였다. 
청년도 들실장이 골판지를 가져가려 한다고 생각하곤 화를 내며 일어나려했지만. 
데스우.... 
“.........!” 
청년이 일어난 걸 모르고 있는 듯 한 그 들실장은. 
골판지를 끌어 청년의 어깨 위로 덮어주었다. 
그리고 들실장의 고개가 이쪽으로 돌아가는걸 보고 왠지 모르게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은 척 
을 하는 청년의 귀에, 작은 발소리가 멀어져가는게 들렸다. 
“.................” 
아침이 되어 늙은 노숙자가 일어났을 때는, 청년의 모습은 사라져있었다. 
단지 청년이 덮었던 골판지만이, 늙은 노숙자의 골판지 위에 덮여있었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왔다. 
“따듯해졌구나...” 
따듯해지는 날씨를 느끼며 늙은 노숙자는 홀로 창고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늦었잖아. 할아범.” 
창고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청년과 마주쳤다. 
“......허허. 그 꼴을 보니 이번엔 잘 버티고 있나보네.” 
싸구려지만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들고 있는 청년의 모습에, 늙은 노숙자는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쳇. 아버지 같은 말 하기는...” 
머리를 긁던 청년이 고개를 들었다. 
“......나. 얼마 전에 취직했어. 대기업 같은 덴 아니고 작은 회사 경리직원이지만.”
“그래... 잘했구나.” 
“할아범 아직 일 할 기운 있지? ...내가 있는 회사 물류창고 경비원 구하는데, 내가 소개하면 
잘 될 거야, 아마. 숙식 제공이니까... 이런 추운데 있지 말고 가자...” 
“춥긴 뭐가 춥냐. 이렇게 날이 좋은데...” 
“............” 
“좋은 날이구나...”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두 사람이 천천히 걸어서 떠난 창고 벽 바닥에는, 이제 사용할 사람을 잃은 신문지만이 남겨 
졌다. 
그리고. 
불어온 따듯한 봄바람에 신문지가 날리는 순간. 
그 아래에 보라색으로 변한 얼굴에서 적록색의 양 눈이 튀어나올 듯이 부어있는 실장석의 시 
체가 드러났다. 
그 실장석의 모습은... 
실장석으론 기적같이 수명을 다해가는 4년째의 봄에 낳은 두 마리의 새끼와 살다가. 
인간에게 보인 호의의 답례로 사탕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굶주린 마라실장에게 습격을 당해 도망치다가, 
떨어트린 사탕을 주우려 자실장 한마리가 발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잡혀 마라에 꿰여 거의 몸 
이 세로로 찢어지고 나서 죽어가는 동시에 산 채로 잡아먹히는걸 보고도 울면서 남은 한 마리 
의 새끼를 데리고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나. 
인간의 호의로 여름의 장맛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비를 피하게 해주는 정도의 작은 도움만을 주고, 
절대로 먹을 것을 주거나 해서 들실장이 달라붙는 걸 방지하려던 인간의 철저하게 태도에 결 
국. 
며칠 동안 계속된 비에 나갈 수도 없이 남은 한 마리의 새끼도 굶어죽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 
던 것. 
그렇게 두 마리의 새끼를 잃고, 수명이 다해가는 노화된 몸으로는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 
어서 홀로 지내다가 다른 들실장들의 엄지와 구더기를 돌보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찾고 그 
중에서 친실장을 잃은 엄지와 구더기를 또 다시 가족으로 맞이했어도. 
단지 골판지에 두면 다른 들실장에게 뺏길 가능성이 있고 데리고 다니기도 번거로운 추자를 
맡아서 지키는, 편리하게 이용해 먹을 수 있는 멍청한 동족이라고 비웃던 다른 들실장들이 결 
국 가을이 끝날 때 그 엄지와 구더기들을 전부 잡아먹거나 죽여서 월동식량으로 삼는 걸 말리 
려다가 입양해서 돌보던 그 엄지실장과 구더기마저 살해당한 것. 
그리고. 
한번 밀려난 가혹한 경쟁사회로 돌아갈 각오를 다지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한 청년에게. 
‘실장석 따위에게 까지 동정을 받는 한심한 지금의 자신.’ 
이란 생각을 들게 만들어 각오를 다지게 했었다는 것. 
...이 모든 이야기의 끝이었다. 
그 과거의 굴욕을 잊지 못하던 청년의 손에 의해 죽은 이 들실장이 조금만 덜 정이 많고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리며 살았더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흔하지 않게도 정이라는 감정이 깊어 다른 동족들과는 이질적인 삶을 살았던 실장석이 있었다 
는 이야기. 
그러나 실장석이란 존재에게는 사치와 같은 감정인 정이, 불행을 겪게 하고 동족에게 비웃음 
을 사며 이용당하고 결국엔 생명까지 뺏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젠 그런 이야기조차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는 끝난 이야기가 되었다. 
계속 불어온 봄바람에 한두 장씩 신문지들이 날려간 자리에 남겨진 실장석의 사체는, 공원에 
선 매우 흔한 모습이었다. 
최후의 최후에는, 다른 실장석들과 이질적이지 않은 모습이 된 그 실장석의 사체. 
결국엔 그 모습은, 그저 한마리의 실장석일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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