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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낙엽 청소

 


슬슬 겨울이 다가오자 반상회에서 회람판이 왔다. 
매년 하는, 공원의 낙엽 청소 당번을 알리는 공지다. 
사인을 한 후에 옆집에 건네주러 가는 길에 본 공원은, 낙엽의 갈색으로 덮여 있는 나름 운치 
가 있는 광경이었다.


- 늦가을의 낙엽 청소 - 

“이걸로 근처는 된 건가...” 
그리고 청소 날.
몇 명의 마을 사람들과 한참동안 담당 구역의 낙엽을 쓸어 모으자 꽤나 커다란 낙엽 무더기가 
이곳저곳에 생겼다. 
이제 이걸 미리 준비 해 둔 드럼통에 모아 태워버리면 끝이다. 
“데스! 데스!” 
“쳇...”
그렇지만 역시나, 낙엽 무더기 주위를 잠시 떠나 쓸고 있던 동안 들실장들이 모여들어 있었 
다. 
원래라면 한두 장씩 주워 모으며 힘들게 한참동안 돌아다녀야 했을 낙엽들이 산처럼 쌓인 광 
경은 실장석들에겐 노다지로 보였을 것이다. 
아예 비닐봉투를 가져와 양 팔 가득 끌어안은 낙엽을 허겁지겁 밀어 넣고 있는 녀석들의 뒤로 
다가간 나는 봉투를 뺏어 거꾸로 들어 전부 다시 쏟아버렸다.
“데?! 데스! 데샤아아아-!!!” 
기껏 넣었던 낙엽들을 뺏겨 헛수고가 되는 그 모습에 봉투를 뺏긴 들실장이 이빨을 드러내며 
위협을 했지만 반 정도의 무리는 내 모습을 보고 비닐봉투나 낙엽들을 던져버리곤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데엑?! 데... 데스우우우웅~.” 
목장갑을 낀 손으로 위협을 하던 녀석의 머리통을 잡아서 들어 올리자 그제서야 위험을 느꼈
는지 일변해 아첨을 하기 시작했지만, 
딱히 오늘의 목적은 들실장 구제가 아니기에 그대로 수풀에 던져버렸다. 
“데아아아악!!!!! 데 ... 데스우우...”
수풀을 몇 번 뒹군 후에 다리라도 부러졌는지 우렁찬 비명을 질렀다가 기어서 도망가는 녀석 
을 보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모인 낙엽들을 눈삽으로 외발 수레에 퍼 담아 드럼통이 준비 된 곳으로 가서 쏟아 
붓고는 종이에 불을 붙여 던져 넣자 곧 드럼통 위로 불길이 일렁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응....?” 
다른 무더기를 한 삽 퍼 올리자 갈색의 낙엽 무더기 안에 녹색의 무언가가 뭉쳐 있는 게 보였 
다.
“테?! 테치?!” 
“레후 레훙~.” 
자실장과 엄지, 구더기실장들 십여 마리가 낙엽 무더기 안에 모여 있었다. 
간간히 독라 혹은 옷만 없는 녀석이 있는걸 보면 가을에 낳았다 버려진 일명 ‘추자’ 들이다. 
버려져 의지 할 곳이 없는 추자들끼리 모여 다니는 건 늦가을엔 흔한 광경. 
아마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이불’이 가득한 모습에 추위를 피하기 위해 파고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탕 탕 
“테에에에에-!!!”
눈삽으로 바닥을 두들겨 위협을 하자 몇 마리가 낙엽 무더기를 나가 도망쳤지만 대부분은 비 
명을 지르며 낙엽 안으로 숨었다. 
“테츄웅~ 테츄웅~.” 
아첨을 하고 있는 녀석들은 친실장 대신 나를 새로운 보호자로 삼으려 기를 쓰고 있는 것인 
가. 
일부러 죽일 필요는 없지만 제 발로 도망치지 않는 녀석들을 일일이 꺼내기도 시간이 걸리고, 
게다가 아첨을 하는 녀석들에게 손이라도 내밀었다간 선택받아서 길러졌다고 착각해 계속 따 
라올 것이 뻔하다.
-드륵 
“테?!” 
“레훗?”
삽으로 바닥을 긁어 낙엽을 퍼 올려, 수레에 던져 넣자 낙엽과 함께 던져진 추자들이 수레 안 
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테! 테이이이이-!!!!” 
“레뺘아아아아아-!!!” 
-화르르르르르륵 
불이 피워진 드럼통에 수레 안의 낙엽들을 쏟아 붓자 낙엽들 사이로 간간히 녹색과 살색이 언
뜻언뜻 보이면서 비명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순식간에 목과 폐가 열기에 익어, 비명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낙엽이 타는 매캐한 냄새에 고기가 익는 듯 한 냄새가 섞이기 시작해 이 냄새에 들실장이 꼬 
여들 것이 문제긴 했지만 들실장 몇 마리로는 드럼통을 엎을 수도 없으니 상관없을 것이다. 
오히려 불타는 드럼통에 손을 댔다가 화상을 입는 결과로 끝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머지 낙엽들도 모아 태우고 모래를 쏟아 드럼통의 불을 끌 때쯤 다른 
구역의 사람들도 끝나 모두 함께 모여 저녁을 먹으러 가는걸로, 늦가을의 낙엽 청소는 끝 이 
었다. 
며칠 뒤.
낙엽이 거의 사라진 공원을 걷는 중에, 꽤 많은 들실장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들실장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 평소엔 실장석들이 잘 오지 않던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 까지 나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들실장들이 품 안에 끌어안고 있는 몇 장의 낙엽과 초조해 하는 듯 한 표정을 보 
면 명백하다.
이제 늦가을을 넘어 초겨울이라고 할 만한 시기. 
그러나 월동에 필요한 낙엽이 모자란 것이다. 
사람들이 버린 수건이나 걸레를 이불로 삼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것조차 풍족한 게 아니고 폭 
설과 혹한을 견디려면 골판지 안에 낙엽이라도 채워 넣는 게 필수. 
낙엽이 온도를 크게 올려주진 않아도, 적으면 적을수록 생존 가능성도 급격히 0에 가까워진 
다. 
실장석의 생존율이란 게 애초에 그다지 높지 않다는 걸 생각해 보면 겨울의 낙엽은 실장석들 
에겐 그야말로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것.
그걸, 나와 마을 사람들이 전부 치워버렸다. 
“데... 데스우우우웅~.” 
마침 가까이에 있던 들실장 한 마리가 날 보더니 아첨을 했다.
아첨을 하느라 손을 입에 대며 그 품 안에서 두세 장의 낙엽이 다시 바닥에 떨어진다. 
딴에는 동사의 위기에세 마지막 희망을 담아 인간에게 길러질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내가 학 
대파였으면 바로 처분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리고 같이 낙엽을 치우러 나온 사람들은 딱히 실장석이 미운 게 아니다.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지만.
낙엽을 치우는 행동을 한 건, 실장석들을 미워하게 되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추자들이 버려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낙엽을 치운 시기는. 
영리한 들실장들이라면 일찍 월동준비를 마쳤을 때인 것이다. 
그렇다고 월동에 성공해 살아남는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한계가 느껴질 때까지 게으르게 늘어져 월동준비를 서두르지 않았던, 저런 저능한 개 
체들 보다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영리한 개체들이 낳을 새끼들의 영리함도. 
쓰레기장을 헤집거나 공중 화장실을 더럽히고, 세균과 기생충의 온상인 해충. 
그렇다고 일단은 생물인 이상, 전부 때려죽이기는 거부감이 든다.
학대나 학살을 하는 사람들을 제지 할 것 까진 없지만, 공식적으로 대규모 사형판정을 내리기 
엔 꺼려지기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다 내린 결론이 이 낙엽 청소다. 
영리한 개체들이 서둘러서 준비를 마칠 시기에 낙엽을 전부 청소해 버리면, 보통 이하의 개체 
들이 월동에 실패할 확률은 한없이 높아진다.
실장석들이 새끼들에게 하는 솎아내기를, 인간이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한 다고 할 수 있는 것 
이다. 
이 방법을 시행한지 3년.
조금씩 들실장의 ‘질’이 오르는 듯 한 통계가 나오고 있는걸 보면 효과는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장을 망치는 정도나 탁아, 주택에의 침입은 점점 줄어가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에서야 낙엽이 없는 것에 우왕좌왕 거리는 녀석들은 모두 탈락. 
인간의 손에 솎아내져 겨울이란 자연의 힘에 도태되어 버려라. 
그래야, 남은 실장석이란 종을 미워하지 않는 게 쉬워질 테니까.
“데스웅~ 데스우우웅~~~.” 
그때까지도 아첨을 하고 있던 들실장의 녹색 두건에, 어느새 내리기 시작한 새하얀 눈송이 하 
나가 내려앉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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