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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충의 발견 1~3 (완)




웅철이는 자신의 사육실장 선족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있었다.

"선족아 재밌는것좀 틀어봐."

"데에? 주인사마. 곧있으면 `실장의 계절`이 시작하는데스."

실장채널의 야심작. 일일드라마 `실장의 계절`은
사육실장들 가온데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있는 모양이다.

내용은 이렇다.
학대파의 습격으로 독라달마가 된 공원의 운치굴 노예가
잘생기고 돈많은 남자닝겐을 메로메로 시켜서 결국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단의 사랑을 나누고만다는 내용.

"분충화의 욕구를 이런식으로 푸는걸까..?"

웅철이는 실장석이라는 생물을 잘 알고있었다.
기본적으로 녀석들은 분충성을 본능처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절대 고쳐질 수 없는, 인간으로 치면 `원죄`같은
것이라는걸..
물론 훈육이라는 방법으로 그것들을 숨길수는 있겠지만
본심이라는건 언젠가는 들키고 만다.

"야.야 !! 선족아! 선족아! "

선족이는 이미 드라마에 빠져 주변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른 모양이다. 웅철은 문득 녀석을 최고급 실장샵에서
데려왔던 때가 생각이 났다. 프릴이 아름답게 흔들리는
분홍색 실장복을 입고 상냥한 목소리로 `주인사마 테치?`
라고 자신을 불렀던 자실장때의 녀석.
나름 귀여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웅철은 녀석을
애호목적으로 데려온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장석과 미디어의
연관성을 연구하고 있는 대학원생 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비싼녀석을 데리고 살 수 있는것이지."

"데햐아아앗 .. 대..대단한 데스우우.."

선족이는 얼굴을 붉히며 혀를 내밀고는 마치 영혼까지 빨려
들어간것처럼 화면을 응시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주인공남자가 독라달마를 공주님 안기한 상태로 격렬하게
키스 하고있었던 것이었다.

"어휴.. 이런 씨발.."

아무리 시대가 시대라지만 저런 역겨운 장면까지 송출하는
실장채널 관계자들이 웅철은 미웠다.

"데스..데스우우..레로레로"

웅철은 눈물을 글썽이며 혓바닥을 부지런히 돌려대는
선족이를 보며 핸드폰 동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

`20XX년X월X일. 선족이가 드라마 실장의 계절을
보며 혓바닥을 돌려대고 있다.`

이윽고 드라마가 끝나자 선족이는 드라마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듯 한동안 멍하게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데에에.. 독라달마가 멋진 왕자님을 만난데스우우.."

보통의 분충들이라면 드라마와 현실을 구분짓지 못하고
주인에게 발정하거나 부자가 아닌 자신의 주인을
원망하겠지만 선족이는 비싼 실장석답게 쉽사리 분충의
행동을 보이지는 않았다.

"재밌었냐? 선족아?"

"데.. 데에에.. 재미는 있었던 데스우..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인 데스. 독라가 닝겐을 남편으로 삼는건 불가능한 데스."

"오호.. 그럼 넌 저 이야기가 거짓인걸 아는거구나.."

"당연한 데스.. 하지만 다른 사육실장들은 아마 저것이
가짜 이야기라는걸 모를수도 있겠는 데스우."

`역시 다르군.. 하물며 사람조차 몇몇은
현실에 허구의 이야기를 투영시키기도 하는데 말이지..`
웅철은 선족이의 대답에 내심 감탄했다.

"근데 그런것 치고는 너무 혀를 돌려대던데 너?"

"데엣! 와타시가 그랬던 데스? 죄송한 데스 주인사마..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던 데스우.."

자기변명도, 의심도 없이 주인의 말을 수긍하는 녀석..
이 녀석도 과연 분충성이라는게 존재할까?
있다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웅철이의 순수한 호기심에 불이 붙는 순간이었다.


"다녀오신 데스우 주인사마! 청소랑 빨래는 마쳐놓은
데스! 목욕물도 받아놓은 데스우!"

웅철은 연구실에서 돌아왔다. 한창 담당교수의 발표자료
준비로 바쁜지라 집안일에 손을 댈 수 없었지만 선족이가
자신이 가능한 내로는 열심히 도와줬기 때문에 걱정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 고생이 많다.. 선족아. 푸딩 사왔으니까 꺼내먹어."

"데엣! 감사한 데스우! 하지만 나중에 주인사마랑 같이
먹고싶은 데스!"

응. 그래라. 웅철은 욕실앞에 옷을 아무렇게나 벗어놓고는
선족이가 받아놓은 목욕물에 몸을 담궜다.

"음.. 반응이 기대되는걸.."

사실 선족이의 분충성을 보고싶었던 웅철은 지인으로부터
성인물을 빌려왔다. 그것도 하드코어한 실장물.
당연히 인간X실장석 이다. 장르가 장르인지라 구하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데엣? dvd데스.. 주인사마가 영화를 빌려온 데스우.."

무심코 푸딩을 냉장고에 넣기위해 봉투를 뒤적이던
선족이는 그것을 발견했지만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가끔씩 웅철이가 혼자서 문을 걸어잠그고 영화를
본다는걸 알고있었기 때문이다.

"데에에 얼마나 재미있길래 혼자보는 데스우? 와타시도
보고싶지만 참는데스우.. "

그렇게 표지그림에는 눈길도 주지않고 어질러진
웅철이의 옷을 정리하러가는 선족이였다.





실장석에게는 분충의 원인 되는 여러 욕구들과 상황들이 있다.
웅철이 이번에 선족이에게 실험할 것은 성욕에 관련한 것.

평소에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남녀의 키스신이나
베드신등의 장면에 유난히 빠져들었던 녀석이었다.
아무리 최상급의 양충이라도 이 기획물을 보게 된다면
주인에게 발정하여 흑발의 자 드립을 치게될것이 분명하다.

"후훗.. 녀석 지금쯤이면 DVD표지에 빠져들어 버렸겠지.."

웅철은 목욕을 마친 후 욕실문을 살짝 열었다. 깨끗하게
개켜져있는 자신의 옷들. 선족이는 별다른 반응 없이
주인이 갈아입을 옷들을 들고오고 있었다.

"주인님! 아직 나오지 마는 데스우! 옷 여기에 놓고가는 데스."

"어? 그..그래 고맙다.."

일본에서 제작된 기획물답게 자극적인 표지를 자랑하는
물건이다. 이걸 무시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한다고?
일단 웅철은 자신의 가설에 물음표를 찍고는 다음 계획으로
넘어갔다.

"선족아! 선족아! 아까 그 봉투에서 DVD 좀 꺼내올래?"

"알겠는데스-"

웅철이는 방에 들어와 커다란 모니터 앞에 앉고는
선족이에게 심부름을 시켰다.

"주인사마 여기있는 데스우. 데에 ? 데에에??"

"응 ? ㅎㅎ 왜 그러니 선족아??"

"데햣! 드디어 발견한 데스우! 어디갔나 쭉 찾고 있었던 데스!"

선족이는 재빨리 컴퓨터 책상밑 구석으로 들어가
양말 한짝을 들고나왔다.

"주인사마 부탁드리는 데스! 양말은 아무렇게나 벗어놓질
말아주시는 데스. 짝이 맞지않아 걱정한 데스우!"

"어.. ? 그..그래.. 알았어.."

웅철은 순간 약간 허탈해졌다. 왜 자신은 이런 착한녀석을
분충으로 만들고자 하는가.. 그러나 연구자의 마인드로
생각해보면 한편으론 분한 마음이 들었다. 피실험체가
자신이 준비한 실험을 피해가다니..

"주인사마! `실장의 계절`이 시작할 시간인 데스우!
티브이좀 틀어도 되는 데스??"

"어. 가서 봐"

선족이는 도도도 거실로 달려나가 소파위로 힘겹게 올라갔다.
그리고는 리모컨으로 능숙하게 실장채널을 틀었다.

"데햣! 막 시작하는 데스우!"

웅철은 이 실장물을 어떻게 선족이에게 보게할지 고민했다.
대놓고 `선족아 이거 같이 볼래?`라고 할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연구라지만 자신 스스로를 변태로 만들면서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음.. 그럼 이렇게 한번 해볼까?"

선족이는 오늘도 눈물을 글썽이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주인공인 잘생기고 돈많은 남자닝겐이 자신의
피앙세인 독라달마와 함께 놀이공원의 회전목마를 타며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데에에.. 대단한 데스우.."

웅철은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혀를 돌리고있는 선족이를
동영상 촬영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20XX년 X월X일. 선족이가 다시 실장의 계절을 보며
혀를 돌리고 있다."

눈을 반짝이며 얼굴을 붉히고 무의식적으로 혀를 돌려대는
저 모습은 분충성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근거들이다.
저기서 조금만 더 본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다른 99.9퍼센트
실장석들처럼 분충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것이다.

본능을 억누루는 가혹한 훈육의 결과인 것인가.
아니면 선천적으로 양충의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녀석인가.

웅철은 드라마가 끝날시간대쯤 맞추어 자신의 방안에서
실장 성인물을 틀었다. 거실까지 소리가 들리도록 볼륨은
크게. 방문은 살짝 열어두고. 그리고는 소형 카메라를
설치해 두었다. 과연 선족이는 어떤 반응을 보여줄 것인가.

"선족아 드라마 끝났냐?"

"데스! 막 지금 끝난 데스우!"

"나 잠깐 나갔다올께 "

"다녀오시는 데스!"

웅철은 웃음을 참으며 밖으로 나왔다. 잠깐 편의점에가서
맥주라도 사올 생각이었다. 그것의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플레이 해놓은게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뭐 괜찮겠지.

"다녀왔다. 선족아!"

웅철은 자신도 모르게 빠른 발걸음으로 집에 맥주를 사들고
돌아왔다. 선족이의 반응이 기대되어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 다녀오신 데스우! 주인사마.."

아니나 다를까 선족이의 상태가 약간 이상해보인다.
식은땀을 흘리며 눈을 피하고 있다.

" 어 그래 ㅎㅎ 선족아 같이 푸딩 먹을까?"

"아.. 아닌데스 .. 먼저 드시는 데스.. 와타시는 지금 입맛이
별로 없는데스우.. "

자리를 피하는 선족이. 웅철은 이런 상태를 보고 슬쩍
미소지었다. 사육실장이 주인을 피하는건 이유가 있다.
잘못을 해서 숨기려고 할때나 자신이 주인에게 처음 느끼는
묘한 감정을 눈치챘을때. 아마 선족이는 난생 처음보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을 것이고 자신과 주인사마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후훗.. 이제 슬슬 시작인가.. "

웅철은 사온 맥주와 냉장고에서 꺼낸 푸딩을 집어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한창 그것이 플레이되고 있는 화면.

"엥?"

`뎃풍 뎃풍 뎃풍! 데푸푸풋.. 닝겐 .맛이 어떤데스?"

`아아.. 흑! 더.. 더 부탁해!`

웅철은 손에든것을 전부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모니터에서는 몇마리의 마라실장들이 인간여자배우 위에서
열심히 허리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씨발! 이게 뭐야??"

이건 단단히 잘못됬다! 표지에는 결코 이런 내용이
그려져있지 않았다. 마라실장들이 닝겐여성을 강간하는
기획물이라니! 내용이 다르다! 웅철은 토가 쏠리기 시작했다.

그가 바란 영상은 ..
잘생긴 남자 닝겐이 세레브한 침실에서 고급사육 실장석의
옷을 부드럽게 벗긴 후 온몸을 자극하고 애무.마라를 총구에
상냥하게 삽입하는.
보는것만으로도 사육실장석들의 애간장을 녹여버릴 그런
것이어야만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만 할것인가.영상을 빌려준 지인에게
책임을 묻자니 이상한놈이 되어버릴것만 같았다.
그보다 선족이가 이걸보고 주인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웅철은 일단 심호흡을 한 후 영상을 중지시켰다.

"선족아! 선족아! 잠깐 이리로 와볼래?"

평소같으면 도도도도 달려와 대답할 녀석이지만
지금은 쭈뼜거리며 내 방문턱을 넘으려 하지 않는다.

"부..부르신 데스우? 주인사마?"

멀찍이서 눈치를 보며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하는 녀석.

"...봤냐?"

확정적이지만 일단 확인부터 해보는 웅철.

".. 본 데스우... "

"..어..어떻게 생각하냐?"

미친 질문이다. 웅철 자신도 알고있다. 하지만 이것도
이것 나름대로 생각지 못한 조건이 만족된 결과이다.
선족이의 생각이 궁금하기는 한것이다.

".. 놀란데스. 무척 놀란데스.. 주인님이 가끔씩 문을
잠그고 보는것들이 저런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데스우.."

"아..아니,. 아냐 그건 .선족아"

"괜찮은데스. 와타시는 주인사마가 길러주신는 실장석데스.
주인사마의 취향을 존중하는 데스우. 와타시가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처럼 주인사마가 좋아하는것이 있는건
당연한 데스."

"씨발 아니라고!"

`퍽!`

"데갹!"

웅철은 선족이를 발로 차버렸다.
선족이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반응하지 못하고 뻥 날아가
벽에 부딫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인사마에게 당한 폭력. 자실장때
받던 훈육 이후에 느껴보는 아픔이라는 느낌.
선족이는 곧바로 일어나 다시 웅철앞에 달려가 업드렸다.

"죄송한데스! 죄송한데스! 와타시가 주제넘은 소리를
해서 죄송한데스우! 벌이라면 달게 받는 데스!"

웅철이는 자신의 돌발행동에 스스로 놀랐다.
부끄러움이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 들었다.
선족이는 자신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했을 뿐인데.
자신은 오해라는 이유로 녀석에 폭력을 휘둘렀다.

"미안하다. 미안해 선족아.. "

웅철은 엎드려 색눈물을 흘리는 녀석을 안아올렸다.

"정말 미안해... 내가 왜 그런건지 ..나도 모르겠다.."

"데스.. 데스우..."

선족이는 순간 머리속에서 드라마의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남자주인공이 독라달마를 안고 강렬하게 키스하던 그 장면.

"정말 미안해.. 선족아. ..사과의 뜻으로 범위 내에서
소원을 한가지 들어줄께. 스테이크? 스시? 자를 갖는것?
세레브한 옷? 뭐든지 이야기해봐! 들어줄 수 있어!"

"주인사마에게 잘못을 한건 와타시데스..그런데 소원이라니
말도 안되는 데스우!"

선족이의 착하디 착한 대답은 웅철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찔러댔다.



웅철은 선족이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서서 `주인사마를 돕고싶은 데스!`
라고 말하며 서툴게 집안일을 찾아서 하던 녀석.
감기몸살에 걸려 하루종일 누워있을때도 주인을 위해
죽을 끓이겠다며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던 녀석.

비록 연구를 위해 키우고 있긴 해도
웅철이에겐 가족과도 같은 사육실장 이었다.

"선족아.. 이건 명령이야. 소원을 한가지 말해.. 내가 들어줄께."

"..정말인 데스?"

"응! 당연하지!"

".....그.. 그렇다면 감히 와타시의 부탁을 말해보는 데스우.."

선족이는 웅철의 품에 안긴채 얼굴을 붉히며
조심스럽게 입을 뗏다.

" 주인사마.. 제 소원은 주인사마..."

".........."

순간 올것이 왔구나 생각했다. 녀석은 남녀간의 사랑
(그것이 실장석이든 인간이든) 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당연히 알고있는 것.
..그렇다. 웅철은 처음 선족이에게 소원이라는 말을
꺼냈을때부터 이미 녀석의 대답을 훤히 예상하고 있었다.

'주인사마와 직스하고 싶은데스'

'주인사마와 격렬히 키스하고 싶은데스'

가장 확률이 높은건 이 두가지.
물론 실장석들의 욕심을 생각해 본다면

' 격렬하게 키스한 뒤 직스하고 싶은데스.'

라는 대답을 할 가능성도 빠질 수 없다.
그 외에도 일반적인 분충들처럼

'자를 가지고 싶다.'

'스테이크와 스시를 매일 먹고싶다'

등등의 요구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었다.
웅철의 카메라와 녹음기는 이미 작동중이다.
이제, 녀석이 분충이 되는 순간을 담기만 하면 되는것이다.

하지만 선족이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웅철을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주인사마.. 와타시의 소원은 주인사마가 행복해 지는것인 데스우.. "

꾸밈없는 눈동자를 반짝반짝 빛내며 대답하는 선족이.
그 모습에는 분충들의 가식이나 거짓따윈 없다.
혹시 녀석이 거짓을 말한다 해도 속을 웅철이 아니지만
거짓이 아님을 알기에 화가났다.

" 야! 너 바보냐? 너가 바라는걸 말하라고! 니가 지금 가장
하고싶은걸 말하라고! "

녀석이 사상최악의 분충이 된다 하더라고 웅철은
선족이를 학대하거나 버리거나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귀중한 실험대상일 뿐만아니라 이제는 가족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녀석이 이렇게 이야기해서는 안되었다.
솔직해 져야 하는 것이다. 좀 더 위석에 새겨진 원초적인
욕구들의 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와타시는 매일 매일 감사하며 살고있는데스. 매일매일
와타시에게 주어진 행복에 놀라고 있는데스우. 대체 무슨
소원이 필요한 데스?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데스.. "

"말만 하면 맛있는 음식. 세레브한 생활. 귀여운 자들을
낳을수 있는 행복. 이 모든게 가능한거라구!"

웅철은 아직 선족이가 자신의 본심을 최대한으로 숨기고
거짓으로 주인님의 행복을 바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겪어본 실장석중에선 결코 이런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아니 앞으로도 없을것이다. 이렇게 용의주도한
녀석은.

" 오로롱..또 와타시가 주제넘는 말을 한것같은 데스..
주인사마.. 용서해 주시는 데스우. 하지만 정말 와타시의
소원은 주인사마가 행복해지는것인 데스..."

이 녀석은 연구대상이 확실했다. 실장석이 자신의 행복을
마다하고 주인의 행복을 바란다고? 그것도 진심으로 말인가.
만약 녀석의 존재가 발표된다면 기존의 학설을 뒤집을만한
엄청난 증거자료가 될것이다. 정말 실장석의 분충성은
선천적인가? 혹시 후천적인 원인은 아닌걸까.

".. 선족아 너의 그 소원은 이루어진것 같아. 지금 난 너의
대답에 지금 매우 행복하다구. 굳이 여자닝겐을 만나지
않는데도 말야."

"..정말인 데스? 잘된데스.. 주인사마가 행복하니
와타시도 행복한데스. 소원이 이루어진 데스."

오로롱 거리며 활짝웃는 선족이. 착해도 너무 착한녀석.
그렇기에 녀석에게 이질감이 든다. 착한 닝겐보다 더
착한 실장석이라니.

웅철은 수화기를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선족이는 가만히 앉아 냉장고에서 꺼낸 푸딩을
먹으며 맘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많은것이 있었던 오늘 하루였다.
주인사마로부터 받은 폭력. 미안하다며 소원을 들어주겠다던
주인사마. 주인사마에게 안겼을때 느꼈던 뜨거운 감정들.

"..와타시는 실장석인 데스..드라마는 거짓인데스."

선족이는 중얼거렸다.그리곤 방금전까지의
대화를 곱씹어 본다. 아무래도 자신의 대답이 주인사마를
당황하게 한것은 틀림 없었다. 그리고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다. 어떤 대답을 했어야 주인사마를 행복하게
만들수 있었을까.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 졌다고는 했지만
선족이는 알고 있었다. 웅철은 사실 행복하지 않았다는걸.

".. 교수님 아무래도 351번 녀석은 다릅니다. 도저히
제 수준의 실험으로는 분충성이 발생하는 기준점을
찾기 힘듭니다.랩으로 데려가서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웅철은 곧 전화를 끊고는 멍하게 앉아 푸딩을 입에 넣고있는
선족이를 바라보았다.

아마 연구실에 가게되면 여러단계의 실험을 받게될것이다.
기본적으로 위석적출 후 위석의 파동을 체크, 비교.
식사의 올리기와 분충화되는 속도의 상관관계
임신, 태교를 통해 분충화되는 속도와 자들의 분충도 체크.
독라가 되었을때의 반응과 분충성의 체크.
닝겐의 노예를 얻게됬을시의 반응체크 등등등..
당연히 실장석의 몸으로는 견디지 못할 실험들이 가득했다.

웅철은 자신이 맡은 분야인 미디어와 분충화의 상관관계에선
더 이상 선족이를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사실 본심을 말하자면 랩따위 절대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집에서 오래오래 키우고 싶었다.
하지만 선족이는 재산으로 따지자면 학교의 소유이다.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주인사마 피곤해 보이는 데스우. 잠시 기다리시는 데스."

선족이는 짧은 다리로 침실로 달려가 웅철의 침구를 정리했다.
웅철은 곧 머리를 붙잡고는 끌리듯 침대로 쓰러졌다.

다음날.

"다녀오시는 데스우! 오늘 하루도 힘내시는 데스!"

밝은 목소리로 배웅하는 선족이.

"응 . 그래 다녀올께. 밥 잘 챙겨먹고 냉장고에 간식 있으니까
꺼내먹고. 그리고 집안일은 적당히 해. 누가 뭐라고 안하니까."

"감사한 데스우! 신경써주셔서 기쁜데스 주인사마!!"

웅철은 배웅하는 선족이를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마도 오늘중이나 내일이면 연구실에서 선족이를 데리러
올것이다. 연구전용케이지가 아니면 안되기에 미리 동료에게
집대문 번호를 알려주었다.
집에서 녀석을 보는건 마지막이 될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학교 연구실에서 마주치는건 껄끄러울수도 있다. 내가 녀석을
배신하고 학교로 보내버렸다고 착각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데에에.. 데스..데스우.."

선족이는 철웅이 닫고나간 문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곧 평소보다 두배는 신경써서 온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번씩하는 화장실 청소도 다시 했다.
냉장고에 있는 것들을 전부 꺼내 냉장고 청소도 했다.
베란다도. 거실도. 안방도. 자신이 평소에 하지않던 곳까지
꼼꼼하게 정성을 다해 청소했다. 청소를 마치자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선족이는 자신의 밥그릇을 들고
베란다로 나가 빨갛게 지고있는 해를 보며 밥을 먹었다.
그리고는 창틀의 한쪽 구석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웅철은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냈다. 교수님의 새로운 자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내용이 전면 폐기됬기에 집에
늦을수 밖에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집에가서 선족이를
살펴보고 싶었다. 실장폰을 사주지 않은것을 새삼스레
후회했다.

밤 늦은시간 웅철은 자신의 집 도어락앞에서 손을 망설였다.
언제나처럼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갑게 맞아주던 녀석.
나와 함께 실장채널을 보는걸 누구보다 좋아하던 녀석.
그 녀석이 지금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있을까.

거실의 불은 꺼져있었다.
욕조에는 식어버린 목욕물이 담겨져 있었다.
거실의 티비 앞에는 선족이에게 사준 목걸이형 링갈이 놓여져
있었다.

"데려갔나...."

집에 돌아오면 즐겁게 데스데스 조잘거리던 녀석의 목소리가
귀에 맴돌았다. 그런데 낯선이가 집에 들어와서 다짜고짜
데려간다고 한다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신의 죄책감을
덜고자 녀석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배려심 없는 주인인가. 웅철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학교의 연구실로 달려가려고 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같은 연구실 동료. 내가 녀석을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던
그 동료였다.

'야 이 녀석 좀 이상한데?'

"...뭐? 뭐가? "

사실..이상하긴 하지 그 녀석.

'너 분충실험 실패했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이녀석 이거
엄청난 분충인데? 왠만한 놈들 명함도 못내밀 정도야.
일단 등록번호상으론 선족이가 맞는데 말이지."

"...............?"

선족이는 사육실장등록법에 의해 당연히 등록번호가 귀에
새겨져 있었다. 그런데 분충? 그럴리가 없다. 내가 그렇게
만들려 해도 만들 수 없었던 녀석이었던 것이다.

"야 너 어디야!! 그 녀석 데리고 와봐!"

웅철은 근처 공원에 차를 세우고는 동료를 만났다.
그리고는 들고있던 케이지를 빼앗듯 안을 확인했다.

"데샤아앗! 똥노예는 뭐인데샷! 어서 고귀하고 아름다운
와타시를 꺼내서 섬기지않고 뭘 멀뚱멀뚱 보고 있는
데샤아아!"

웅철은 다짜고짜 소리지르는 녀석을 안아 올린 후 가로등
불빛으로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데프프픗.. 와타시의 미모에 흠뻑 빠진데스.. 오마에는
제법 쓸만한 노예가 될 수 있을 것같은 데스우 데프프프픗.."

"이게 우리집 안에 있었다고?"

"응. 들어가니까 베란다에서 두리번 거리고 있더라고."

분충녀석은 웅철을 노예로 삼기위해 똥을 듬뿍 쌌다.
그리고는 팬티로 손을 넣곤 잔뜩 그것을 퍼내었다.

"영광으로 아는 데스우 데퍄퍄퍗...지벳!!!!"

웅철은 녀석을 바닥에 집어던지며 말했다

"..이건 선족이가 아냐"

하지만 그 분충은 등록상으로는 선족이가 분명했다.
귀에 번호도 제대로 박혀있다. 하지만 선족이가 아니다.
그럼 대체 여태까지 웅철이 키워온것은 무엇이었던가.
머리가 뒤죽박죽이다. 거실 소파에 앉아 실장채널을
틀었다. 마침 시작하는 '실장의 계절' .

"아..마지막회 구나.."

독라달마의 주인공 실장과 돈많은 잘생긴 남자닝겐이
모든 닝겐과 질투어린 모습의 들실장, 사육실장들에게 축하
받으며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서약을 마치고 뜨겁게 혀를 섞어대는 독라와 닝겐.
아마 독라달마역의 실장석은 이게 드라마인줄 모르겠지?
웅철은 연기가 아닌 진심으로 행복한 표정을 짓는 티브이속
실장석을 보며 선족이를 생각했다.

배우조차도 알 수 없는 드라마의 허구. 하지만 선족이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진심으로 행복해하는 드라마속
독라를 보며 자신도 행복함을 함께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엔딩 스크롤에 올라가는 수많은 독라달마역의 실장석들을
보며 웅철은 마치 옆에서 선족이가 함께 드라마를
보고 있는것 처럼 느껴졌다.

"..선족아.."

"부르신 데스우??"

"으악 씨발! !"

어느새 내옆에 앉아있던 선족이가 웅철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맙소사 언제부터?

"너..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데스.."

"아까! 그 집안에 있던 그 분충은 뭐야? 대체 누가
진짜 선족이인 거야?"

"..... 데스우.."

눈 앞에있던 선족이는 다시 연기처럼 사라졌다.
웅철은 눈을 비비고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안돼.. 물어볼게 산더미란 말이다! 왜 ? 왜 ?
베란다로 나가보았다. 선족이의 밥그릇이 놓여있다.

"......!"

그 안에는 이미 금이가 색이 바래진 위석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웅철은 왠진 몰라도 그것이 선족이의 위석이라는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을 집어들자 창 틈으로 바람이 불어들어온다.
마치 웅철의 입술을 감싸듯이 지나가는 따뜻한 바람.

그리고 위석은 웅철의 손에서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왜 ..내가 녀석을 연구실로 보낸다고 했을까?"

웅철은 주저앉아 오열했다. 후회가 가득한 눈물이었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 정도의 녀석이 그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눈치 못챌리는 없었다. 마지막까지 알면서도
평소처럼 주인을 배려했던 녀석. 그렇게까지 연구실에 가기
싫어할줄은 멍청한 주인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웅철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

'웅철아! 너 위석이 두개인 실장석에 대해 들어봤냐?
아까 그 분충녀석 위석적출하는데 그 옆에 위석이 있던
자리가 하나 더 있더라구. 그게 지금 어디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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