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겨울에 전국을 휩쓸었던 실장 인플루엔자의 광풍은 해가 바뀌며 점차 사그라 들었다. 하지만 추운 날씨에 구제를 피해 도망가던 들실장들은 대부분이 굶어 죽고 얼어 죽어 도시에서 실장석을 찾아보기 힘들어질 지경이었다. 이에 수 많은 실장석 애호파와 학대파들은 아쉬움에 땅을 치며 슬퍼했다. 서로를 싫어하지만 애호파와 학대파는 마치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인 것이다.
한편 바쁜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집 가까운 공원이나 고수부지까지가 실장석을 애호/학대하는 마지노 선이고, 굳이 사람 손이 별로 안닿는 산속까지 가서 실장석을 보고 싶어할 정도는 아닌 것이다. 덕분에 전국적으로 실시한 구제에서도 깊은 산속의 산실장들은 그렇게 큰 피해를 입지 않고 무사히 겨울을 날 수 있었다.
- 테훙! 오늘은 날이 따듯한 테스. 분명 마마가 말해줬던 봄이라는 것인 테스!
햇살이 내리쬐는 양지바른 사면. 커다란 바위 아래에 뚫린 굴에서 성체와 자실장의 중간정도 크기인 중실장 한마리가 기어나와 기지개를 폈다. 뒤이어서 굴에서 기어나온 커다란 성체실장 한마리가 꾀죄죄한 중실장의 얼굴을 핥아주며 대답한다.
- 마마, 햇님이 오늘은 반짝반짝한 테스! 따듯해서 기분 좋은 테스!
- 장녀챠도 이제 마마에게서 독립할 때가 된것 같은 데스우. 추운 겨울을 버텨냈으니 어엿한 실장석인 데스.
- 테에에? 와따시는 마마의 품 안에서 떠나기 싫은 테스! 아직 이모우토챠들을 돌봐줘야 하는 테스!
다산하는 것은 들실장이나 산실장이나 똑같고 생존률도 비슷하지만 자세한 내막은 극과 극이다. 인간의 음식물 쓰레기와 폐기물에 의지하는 도시 실장들은 운만 좋다면 십 수마리의 자들을 안정적으로 부양해 내서 단숨에 대가족이 될 수도 있다. 물론 그런 운이 따르는 도시 실장석은 백에 하나쯤 될까? 대개는 십여마리의 자실장들 중에서 한 두마리 정도만이 무사히 성체가 되곤 한다. 또한 반수 이상의 실장석 일가는 자들마저 남기지 못하고 일가 실각을 당한다.
반면 산실장들은 애초에 계산적으로 자들을 솎아낸다. 황조롱이, 부엉이, 오소리, 산고양이, 멧돼지 등등의 천적에 당하는 자실장들을 제외하고 분충성이 현저히 보이거나, 겨울이 닥쳐올 무렵에는 그동안 살아남은 자실장 중에서 기준에 떨어지는 녀석들을 솎아내 식량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자실장의 생존률 자체는 도시보다 높은 편이지만, 마지막으로 친실장이 솎아내어 최종적으로 개체수가 조절되는 상황. 실장석이 어찌할 수 없는 재난을 제외한다면 일가 실각의 비율은 들실장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이 중실장도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며 친실장의 훈육을 일거수일투족 배워나가 이제 독립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아직은 날씨가 완전히 따듯해진 것도 아니고, 영양이 부족해서 중실장이 되지 못한 밑의 동생이 있기에 남아있긴 하지만 곧 어미 밑을 떠나 독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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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스웅.. 데스웅..
- 장녀챠는 현명하기 때문에 험난한 산생활도 잘 버텨낼 것인 데스우. 이제 자들을 잔뜩 낳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스.
그동안의 힘겨웠던 기억이 되살아 나는지 데슷, 데슷 하고 우는 장녀와 눈가가 빨개진 친실장. 살모사에게 삼켜진 엄지실장들과 멧돼지에게 산채로 씹어먹힌 사녀와 오녀, 여름 홍수때 떠내려간 차녀 등등..
억지로 친실장에게서 몸을 돌려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장녀. 마마에게서 선물로 받은 구하기 힘든 편의점 비닐봉투를 짊어지고 살기 좋은 곳을 찾기 위해서 산 속을 헤매고 다닐 것이다.
노오란 산수유 꽃이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피워내는 산속에서 그렇게 장녀는 새로운 일가를 만들기 위해 집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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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훌륭한 데스. 마마의 집처럼 자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데스!
갓 어미로부터 독립한 이 성체실장은 운이 매우 좋은 편이었다. 산 아랫쪽으로 내려온지 사흘만에 잘 지어진 굴을 발견한 것이다. 작년 말의 구제로 인해서 인가 근처에 살던 산실장들이 구제업자들에게 의해 잡혀가버려 텅텅 비어버린 이 실장굴은 장녀가 볼때 매우 훌륭한 집이다.
굴 입구는 남향으로 나서 최대한 햇볕을 많이 쬘수 있도록 되어 있고, 아름드리 도토리 나무둥치 밑에 낙옆으로 덮여있어 얼핏 보기에는 전혀 굴이 있는지 모를 정도이다. 산자락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이곳은 바로 아래에 들어선 전원주택 마을의 뒷쪽 산자락 위에 위치해 있어서 음식물 쓰레기를 구하기도 한결 편하다. 더구나 절개 사면의 옆쪽을 따라 아래로 빗물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는데, 산에서 흘러오는 지하수와 빗물이 갈수기인 지금도 조금씩 흐르고 있어서 상하수도 문제도 걱정이 없는 것이다.
부스럭거리며 굴 안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들어가는데 어미가 잡혀가버리는 바람에 굴 안에서 굶어죽은 자실장들의 뼈를 발견해 살짝 팬티를 적시는 장녀.
- 데에에.. 이 자들은 운이 나빳던 데스. 마마가 없는 자실장들은 살아남기가 힘든 데스.
먹이 저장고는 텅텅 비어 있고, 심지어 운치굴의 운치마저도 긁어먹은 모양이라 텅텅 비어있는 굴안에서 장녀는 잠깐동안의 행복회로에 취한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태교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니 머릿속에서는 이미 임신을 해서 자들과 함께 행복한 실장 라이프를 즐기는 것 같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린 장녀는 정신을 차리고 들고온 비닐봉지를 풀어 앞으로 살아갈 집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마마가 챙겨준 도토리는 따로 굴을 파서 안에 숨겨둔 장녀. 나머지 세간들이 곧 용도에 맞게 굴 안에 정돈되고 나자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간다. 내일은 근처를 제대로 둘러보겠다고 다짐하던 장녀는 어느새 잠이 들어버린다.
개굴개굴! 꿱꿱!
우흥~ 우흥~
봄은 겨울잠에서 깨어난 많은 동물들이 활동하는 시기이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개구리 소리 사이로 얼핏 들리는 부엉이 소리에 잠이 깬 장녀는 희무끄레하게 밝아져 오는 바깥을 내다보며 주변에 포식자가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뾰족하게 날이 서있는 나뭇가지를 들고서 굴 밖을 슬금슬금 기어나온 장녀는 마침 눈앞을 기어가던 커다란 민달팽이 한마리를 보자 만면에 희색을 띄우며 덥썩 베어물었다.
- 뎃챱, 뎃챱.. 미끈미끈하고 쫄깃한게 정말로 우마우마 한 데스. 와타시도 어서 자들과 이런 진미를 같이 먹고 싶은 데스우.
쩝쩝 거리면서 먹느라 온몸이 민달팽이 체액으로 범벅이 된 녀석은 손에 침을 묻혀서 얼굴에 끈적하게 달라붙은 점액질을 떼어냈다. 아쉬운 듯이 손에 남은 점액질도 핥아 먹은 실장석은 본격적으로 주변 탐사를 위해 절개사면을 따라 산 아래로 슬금슬금 기어 내려간다.
운이 좋다면 저 아래 닝겐상들의 집에서 무언가 쓸만한 것을 얻을지도 모른다, 는 기대에 찬 장녀는 이미 어미가 해준 인간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던 충고는 잊어버린지 오래다. 등산객도 안오는 깊은 산 속에서 보는 사람이라고는 심마니 정도밖에 없기에 산실장은 의외로 인간에 대해 무지한 편이다. 다만 맛좋은 산실장은 가외소득이라서 심마니들이 재빨리 잡아가기 때문에 똑똑한 산실장들은 사람의 위험성을 깨닫고 피하는 것이다.
- 데에에에?! 닝겐들은 이런 맛난 것을 먹고 사는 데스?
주황색 플라스틱 통에서 나는 시큼한 음식물 쓰레기 냄새에 이끌린 장녀는 그 안에 잔뜩 있는 각종 음식물 쓰레기를 걸신들린 듯이 퍼먹으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린다. 먹다 남긴 생선 대가리, 사과 꼬다리 등등 산실장으로써는 상상도 못할 진미에 무심코 총배설구가 열릴뻔 했지만 분변의 처리에 철저한 산실장 답게 필사적으로 총구를 조여서 빵콘만은 어떻게 막아낸 장녀. 곧이어 주변 상황을 살펴보는 영리한 면모도 보여준다.
- 이런 진미가 담겨있는 것을 보면 이 예쁜 색깔의 상자는 분명 닝겐들의 먹이 보관통인 데스. 함부로 먹다가 들키면 꿀꿀씨나 날아다니는 우흥씨들이 하듯 닝겐들도 와타시들을 잡아 먹어버리는 데스.
재빨리 들고다니는 편의점 봉투에 음식물 쓰레기를 쑤셔넣기 시작하는 장녀. 들고다니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적당히 봉투를 채운 녀석은 그 옆에서 굉장한 물건을 발견했다.
- 데훙! 이것은 분명 악마가 들고다니는 삼지창인 데스우!
막 전원주택으로 이사와서 짐을 정리하던 집주인이 버린 포크에 장녀는 이번에는 빵콘을 참지 못하고 흰 팬티를 불룩하게 부풀렸다. 굴을 파기에도 좋고 야생의 무서운 동물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으로 보이는 스테인레스제 포크는 산실장들에게는 그야말로 전설의 아이템과 다름없는 것.
한켠에는 짐을 포장했던 골판지박스와 스티로폼 완충재가 그득하게 쌓여 있었고, 다른쪽에는 여러모로 유용한 노끈이나 비닐들이 널부러져있는 상황. 우선 집에 먹을 것을 두고 와서 이런 귀중한 물품을 다시 가지러 오기로 결정한 장녀는 한쪽 겨드랑이에 소중한 포크를 끼고 불룩한 팬티를 끌면서 풀숲으로 사라져갔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여러가지 물건을 챙겨서 굴로 돌아오던 장녀는 바람에 꺽여 떨어진 산수유 꽃 가지를 발견하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얼른 품속에 챙겨넣은 꽃가지를 굴 안에 들어와서 이리저리 관찰해보는 장녀. 곧이어 본능에 따라 총구에 꽃을 넣었다 뺏며 임신을 시도한다. 질척한 소리와 함께 불쾌한 신음소리가 굴 안에서 울리는 가운데 장녀의 눈은 어느새 녹색으로 변해있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적막한 굴 속을 울리는 태교는 아랫 마을 연못의 개구리 소리들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것은 실장석에게 있어서는 사치라는 것을 모른 채..
몇주 뒤, 장녀는 이제 어미만큼 커진 덩치를 이끌고 집 옆의 개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침 나뭇가지와 낙엽으로 인해 물 흐름이 막혀 생긴 물웅덩이에 장녀는 털퍽, 주저앉아 출산을 준비한다.
- 뎃데로게 뎃데로게~ 세상은 밝고 아름다운 데스~ 하지만 무서운 일들도 많은 데스~ 커다란 닝겐은 우리를 잡아가버리는 데스~ 검고 무서운 꿀꿀씨는 작은 자실장을 한입에 씹어먹는 데스~ 날아다니는 우흥씨들은 소리없이 작은 자실장을 낚아채가는 데스~ 하지만 슬픈일이 있으면 즐거운 일도 있는 데스~ 자들도 마마와 같이 행복하게 지내는 데스~
들실장들의 엉터리 태교에 비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현실적인 태교 덕분에 산실장들의 분충도는 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마지막까지 불러주던 태교가 끝나자 장녀는 총배설구에서 밀려나오는 산기를 느꼈다.
- 데에엑, 데에엑.. 자들은 빨리 나오는 데스..
- 마마인 테치? 태어나게 해주어서 정말로 감사한 테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분충들과는 달리 최대한 소리를 낮추고 출산을 하는 장녀. 제일 처음으로 총구에서 튀어나온 구더기의 점막을 핥아 주기 시작한다. 개념찬 발언과 함께 태어난 첫 자의 모습에 장녀는 한층 더 큰 기쁨으로 혓바닥을 놀린다.
- 세상은 아름다운 레후!
- 마마! 아름다운 세상에 와타시를 낳아주어 고마운 레치!
- 세레브한 와타시를 낳은 마마는 참 행복할 것인 테치! 우마우마한 것들을 빨리 가져다 주는 테치!
뒤이어 태어난 자식들은 적당한 비율로 개념과 분충들이 섞여서 나온다. 뷰루룻, 뷰루룻 하고 녹색의 건더기들이 투명하던 물속을 어지럽히자 물속에 있던 제일 먼저 나온 장녀가 동생들의 점막을 어미와 같이 핥아주기 시작했다.
- 마마를 힘껏 도우는 테치!
- 착한 장녀를 가지게 되어서 마마는 정말로 행복한 데스. 오로롱 오로롱..
붉은 피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이제 마마가 되었다는 뿌듯함으로 가득찬 장녀. 이제 자신은 마마의 장녀가 아니라, 자신의 일가를 가진 마마가 된 것이다. 첫 출산에서 친실장은 총 15마리의 자들을 얻었다. 비상식으로 쓸 엄지와 구더기를 제외하면 9마리의 자실장들이 그녀의 첫 자식이라고 할 수 있다.
밝게 빛나는 봄날의 햇살 아래 각각 한마리씩 엄지와 구더기를 품에 앉은 자실장들이 친실장의 뒤를 졸졸 따라서 굴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아직은 초록빛의 녹음이 우거지기 전이라 갈색의 산야에서 녹색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실장석들은 꽤나 눈에 잘 띄이는 편이다. 심지어 그걸 보는 상대방이 높은 하늘 위에 있다면 더더욱.
품에 엄지 두마리를 안고 있던 친실장은 연신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행여 포식자가 다가오지 않는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눈부신 태양 속에 숨어서 매서운 눈초리로 지상을 지켜보던 황조롱이 한마리가 내려 꽂히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 세상은 아름다운 테츄~ 세레브한 와타시를 반기는 듯한 테츄~ 똥마마는 와타시처럼 귀여운 자를 가져서 정말로 행복할 것인 테츄~~
태어날때부터 분충 발언을 하며 나온 차녀는 주변이 신기한지 가족 주변을 이리저리 쏘다니며 세상을 구경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어미 주변에 몰려있는 자매들과 달리 차녀는 안타깝게도 분충 기질이 너무나 다분한 개체였다.
그리고 그런 분충성은 냉혹한 자연의 법칙에 따라서..
- 테벳?!
하늘에서 내려꽂힌 죽음의 천사가 거두어 가는 것이다.
- 데갸아아악!! 차녀! 차녀가 날개씨에게 잡혀가 버린 데스!!
- 테에엥!! 마마! 차녀 오네챠가 하늘로 날아가 버린 테치!
- 무시무시한 괴물이 차녀 이모우토챠를 데려가 버린 테챠아!
파킨..!
바로 눈앞에서 싸돌아다니던 차녀에게 벌어진 참극을 본 자실장들 중 유난히 연약한 개체는 그 충격으로 파킨사를 해버렸고, 남은 녀석들은 필사적으로 친실장의 치마 밑으로 파고 들었다. 이미 손에 든 구더기나 엄지들은 주변에 내팽개쳐버려서 레에엥, 레후웅, 등등의 울음소리가 시끄럽게 울려대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끝까지 자기 품의 엄지를 지킨 것은 장녀와 삼녀 뿐. 나머지 자들은 전부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테에엥 테에엥 울부짖기만 하고 있다.
몇번의 겨울을 보내고 자들을 낳아온 친실장의 마마라면 노련한 안목으로 솎아낼 자를 걸러냈겠지만 아직 연륜이 모자란 친실장은 남아있는 자들이라도 안전히 지키려고 두 팔에 모두를 품고 허둥대며 집으로 향한다.
행복하던 기분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 한시라도 자들을 안전한 집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친실장은 종종거리며 산길을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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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아 -
거세게 내리는 봄비에 친실장은 오늘 먹이를 구하러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굴에서 자들과 같이 하루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보통의 산실장은 먹이가 부족한 봄, 여름에 가장 많이 아사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인간의 생활권에 가까운 이 일가는 친실장의 조심스러운 음식물 쓰레기 조달로 말미암아 모두들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고로 잃어버린 새끼들은 어쩔 수가 없다. 황조롱이가 낚아채간 차녀, 그걸 보고 파킨해버린 칠녀, 개울가에서 올챙이를 잡아보려다가 물구덩이에 빠져 익사한 육녀를 제외한 나머지 자들이 무럭무럭 크는 것을 보는 친실장의 위석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 오늘은 먹어도 되는 풀이 어떤건지 알려주는 데스.
- 쌉싸름한 풀은 우마우마한 테치. 와따시도 그런 풀을 찾아보는 테치!
식량 저장고를 뒤져서 쑥, 달래, 냉이, 두릅 등의 산나물을 꺼내온 친실장은 주변의 자들에게 그 모양과 특징을 알려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들은 시큰둥하게 어미의 가르침을 듣고 있고, 장녀와 삼녀만이 집중해서 보고 있을 뿐이다.
여태까지 운이 너무나 좋았던 친실장이기에 자들의 생존 의식이 희박해진 것이었다. 그리고 음식물 쓰레기로 인해 올라간 자실장의 입맛은 이런 봄나물들은 거들떠도 안보게 만들어 버렸다.
- 냄새나고 쓴 풀따위는 와타시가 먹는 것이 아닌 테치. 마마는 바보라서 먹을 수 없는 풀을 저장고에 넣는 테치.
- 테프프픗, 사녀 말이 맞는 테치. 귀여운 와타시다치들은 닝겐 노예들의 우마우마한 공물이 어울리는 테치.
구석진 곳에서 테프픗 거리면서 자기들끼리 노는 자실장들을 바라보는 친실장의 가슴은 찢어지듯이 아팠다. 지금쯤 대부분의 산실장들은 보릿고개를 넘기느라 한 두마리만 남겨놓고 모조리 잡아 먹었겠지만 운이 좋게 자실장을 여섯 마리나 키우고 있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친실장을 괴롭게 만들었다.
밖에서 무심하게 들려오는 빗소리는 그런 친실장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계속 굴 안으로 울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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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그치고 나서도 친실장은 선뜻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다. 비가 오는 동안은 꼼작 않고 있던 포식자들도 배가 고픈 만큼 평소보다 활동 범위를 넓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자신이 없는 동안 동굴에 야옹씨 같이 강한 포식자가 들이닥친다면 자신의 자들은 모조리 한끼 식사가 되버릴 테니까. 친실장이 집 밖을 나선 것은 비가 그치고서도 약 이틀정도 뒤였다.
- 데에에.. 나무 씨들이 머리카락이 난 데스. 다시 봐도 신기한 데스야.
촉촉히 대지를 적신 봄비에 나무들은 한껏 빗물을 빨아들여 잎을 움틔웠다. 초록색이 가득해진 산 속에서 실장석의 녹색 옷은 발견하기가 훨씬 어렵기에 하절기의 산실장은 그 생존률이 봄, 겨울에 비해서 조금이나마 올라간다.
젯데로게 뎃데로게 콧노래를 부르며 전원주택단지로 내려간 친실장은 조심조심 닝겐들이 사는 골판지 앞에 있는 주황색 통의 뚜껑을 열어보기 시작했다.
동네 고양이들을 막기 위해서 뚜껑은 간단한 시건장치가 달려있다. 하지만 사람처럼 능숙하게는 안되지만 어설프게나마 손을 쓰는 실장석에게 있어서 이정도 잠금장치는 손쉽게 해제할 수 있는 것. 덕분에 어제 저녁에 이집의 가족들이 먹고 남긴 북어국에서 나온 커다란 북어대가리를 발견한 친실장은 기쁨의 콧김을 내쉬며 얼른 봉지 안에 그것을 집어 넣는다.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 맛좋은 것을 발견한 친실장은 다음으로 계란 껍질과 배추 꼬다리를 찾아냈다. 아작아작 씹히는 맛이 있는 계란 껍질과 달콤한 맛이 나는 배추 역시 실장석들이 좋아하는 메뉴이다.
대충 팔이 닿는 곳까지 음식 쓰레기를 주운 친실장은 뚜껑을 닫고 걸쇠를 다시 채운다. 이런 조심성이 있기에 아직까지 친실장은 동네 주민들로부터 실장석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는 것을 들키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한편 그 옆집의 쓰레기통에서는 새우머리와 껍질, 푹 익은 무와 생선 가시 그리고 생선 대가리를 다시 얻을 수 있었다. 아마 전날 저녁 해물탕을 해먹은 모양이다.
산실장의 일생에서는 도통 접할 일이 없는 진수성찬의 향연이지만 현명한 친실장은 절대로 긴장을 놓지 않는다. 어찌 보면 산보다도 더욱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타박, 타박 아스팔트 위로 걸어가는 실장석의 걸음에 맞춰서 담장 위에서는 갈색과 흰색의 얼룩 고양이 한놈이 실장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몇 번 고양이 피해를 당한 전원주택 입주민들이 쓰레기통을 바꾼 이후로 이곳의 도둑 고양이들은 급격히 악화된 식량사정으로 굉장히 굶주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봉투를 들고 어디론가 향하는 녹색의 동물은 그 녀석에게 있어서 거부하기 힘든 기회였다.
담장이 끝나는 지점까지 따라온 고양이는 이제 마지막 공격 타이밍을 재었다. 앞으로 세 발자국만 더 간 다음에 공격을 가하기로. 한편 주택단지를 거의 벗어난 친실장은 산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습관적으로 뒤를 한번 돌아 보았다. 혹여 무서운 닌겐씨가 쫒아 오지 않을까 매번 신경쓰던 친실장은 그 덕분에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 캬아아아앙!!
- 데샤아아아!
뒤를 돌아다 본 친실장을 향해 덥쳐든 고양이는 어설프게나마 자세를 잡은 친실장이 내민 포크에 찔려서 큰 부상을 입어버린 것이다. 물론 포크를 들고 있던 오른손은 묵직한 고양이의 체중을 이기지 못하고 단숨에 부러져 버렸지만, 포크에 찔린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서 후다닥 도망쳤다.
- 데에엑, 데에엑.. 팔이 부러져 버린 데스.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데스..
축 늘어져 버린 팔을 신경쓸 사이도 없이 친실장은 허둥지둥 쓰레기 봉투와 포크를 챙겨들고 수풀 속으로 도망쳤다. 실장석이 살기에는 야생은 매우 가혹한 곳인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장석들은 언젠가는 행복한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그들에게 닥쳐온 온갖 역경을 감내하며 살아간다. 오늘도 힘차게 살아가는 데스웅! 하고 굴 밖으로 기어나오는 저 친실장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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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본격적으로 더워진 날씨에 자실장들은 서늘한 굴 안에서 좀처럼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나가더라도 이른 아침에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러 나갈때가 전부인 자실장들은 며칠 전 친실장이 구해온 바람빠진 테니스 공 하나를 가지고 어두운 굴 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놀고 있는 것이다.
한참을 놀다 지친 자실장들은 이내 목이 마른지 굴 한켠에 있는 페트병을 기울여 물을 마시려고 한다. 오백 밀리리터들이 생수병은 자그마한 자실장들도 무리없이 기울여서 물을 마실 수 있는 크기였기에 친실장은 안심하고 밖으로 먹이를 구하러 나갈 수 있었다.
- 테에에!
- 사녀챠! 물을 쏟으면 안돼는 테치!
하지만 자실장들이 물을 쏟아버린다는 사태는 친실장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변수임이 분명하다. 두개 더있는 페트병은 1.5리터들이 대형 페트병이 구덩이 안쪽에 있어서 자실장들은 도저히 꺼낼 수가 없는 상황. 뚜껑을 열어도 좁은 입구로는 도저히 물을 마실 수가 없다.
- 텟샤아아아! 멍청한 장녀 오네챠는 물을 가져오는 테치!
적반하장 격으로 물을 쏟아버린 사녀는 장녀에게 책임을 돌린다. 자신을 괴롭히는 목마름을 해결하고 싶은 사녀는 굴 바닥에서 발버둥 치면서 뷔릿뷔릿 운치를 흘리기까지 한다.
- 사녀차! 운치는 정해진 곳에서만 하는 테치! 함부로 하면 큰일나는 테치!
- 고귀한 와타시의 운치는 이런 똥굴이라면 아무 곳에서나 해도 괜찮은 테치! 와타시는 목이 말라 죽을거 같은 테치!
좁은 굴 안에서 풍겨나오는 운치 냄새와 테칫, 테칫 거리는 소리는 주변의 포식자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위험한 요소이다. 아직 마마로부터 그런 것을 배운 적은 없지만 똑똑한 장녀와 삼녀는 지금의 사녀의 행동이 자신들에게 있어 절대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 사녀 이모토챠! 목이 마를때면 여기 줄기를 잡고 씹으면 물이 나오는 테치.
굴 천장에 엉켜있는 잔뿌리들을 잡고 질겅질겅 씹는 장녀를 따라서 해보는 사녀. 곧이어 펫펫, 하고 입안을 파고드는 쓴맛을 뱉어낸다.
- 장녀 오네챠는 이런 똥같은 걸 와타시에게 먹으라고 하는 테치? 와타시는 밖으로 나가서 물을 찾아보는 테치!
- 테에에에!! 사녀챠 밖은 위험한 테치! 마마 없이 나가는 건 절대로 안되는 테치!
돌발적인 사녀의 행동에 화들짝 놀란 장녀였지만, 사녀와 팔녀가 바깥을 향해 나가는 것을 막지는 않았다. 어차피 저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한다면 금방 '슬픈 일'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 삼녀 이모토챠, 와타시들은 더러워진 방을 깨끗이 치우는 테치. 마마가 본다면 슬퍼하는 테치.
- 알겠는 테치. 저런 분충들은 내버려 두고 빨리 치우는 테치.
- 테에.. 그래도 동생들인 테치. 분충이라고 하면 안되는 테치.
강렬한 여름 햇발은 남향에 위치한 굴 주변을 뜨겁게 달궈대고 있었다. 기세 등등하게 굴 밖을 나온 사녀와 팔녀는 아지랑이가 올라오는 땅을 보고 깜짝 놀랐는지 한참 동안 쳐다만 보고 있다.
- 사녀 오네챠.. 너무 뜨거운 테치. 시원한 집으로 돌아가는 테치.
난생 처음 맛보는 더위에 더럭 겁이 난 팔녀가 사녀의 옷자락을 잡아 당겼지만 사녀는 워낙 기세좋게 나온지라 쉽사리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 무슨 소리인 테치? 마마가 물을 떠오는 곳은 분명 멀지 않은 곳인 테치. 나 혼자서라도 다녀오는 테치.
- 테에에에..
토테토테 숲 속을 걸어나가는 사녀의 등 뒤로 팔녀가 조심스레 뒤따라 간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주변에서 무서운 동물들이 나올까봐서 살그머니 움직였지만, 더운 여름 햇살아래를 쏘다니는 포식자는 별로 없기에 운이 좋게도 금방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개울을 찾을 수 있었다.
- 시원한 물인 테치!
태어나서 단 한번도 목욕을 해본 적은 없지만 본능적으로 시원한 물을 보자 뛰어든 자실장들. 차가운 계곡물에 부르르- 하고 몸을 떨었지만 금방 적응했는지 찰박대면서 물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 사녀 오네챠! 여기 신기하게 생긴 빨간-씨가 있는 테치!
- 테에.. 팔만 엄청나게 큰 테치.
물놀이를 하던 팔녀는 옆에 바위 밑에서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가재를 발견하고 호기심에 가득찬 눈초리로 발을 가져다 대보았다. 잠수를 못하는 실장석의 특성상 손을 대볼 수는 없기에 발을 가져다 댄 것이지만..
- 테갸아아아아아아악!!!
눈 앞에서 얼쩡거리는 것을 냅다 집게로 찝어버린 가재의 공격에 산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러대는 팔녀였다. 보통 산실장들이 그나마 쉽게 잡는 것이 가재같은 수생 곤충이다. 경험이 많이 쌓인 산실장들은 나뭇 가지를 하나 가져다 대어 가재가 물기를 유도한 뒤 물 밖으로 끄집어내서 돌로 쳐잡겠지만, 자실장들에게 그런 능력은 전혀 없었다.
사실 미숙한 중실장이나 성체들도 물 밖에 끄집어낸 가재를 돌로 치다가 물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하물며 경험없는 자실장들에게 가재잡이는 불가능 한 일인 것이다. 그렇게 개울가에 울려퍼지는 새소리에 섞여 새끼 자실장의 비명소리가 저 멀리까지 울려 퍼진다.
- 테끄윽, 테끅.. 사녀 오네챠 발씨가 이야이야 한테치..
- 팔녀는 정말 멍청한 테치!
즐거운 물놀이를 팔녀가 망쳐버린 바람에 기분이 나빠진 사녀의 뒤를 따라 팔녀도 절뚝이며 집으로 향해 가고 있다. 발목이 반이 넘게 잘려나간 큰 부상이라 영양을 풍부하게 섭취한 자실장이라고 할지라도 이틀은 자야지 완치되는 상처. 다친 곳에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피냄새와 아까 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바람에 어떤 포식자를 불러들였는지 자매는 아직 모르고 있다.
검은 점박이 얼룩 고양이는 몇달 전 봄비가 한창일때 어미로부터 버림받았다. 새끼가 대충 컷다는 판단이 들자 몸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끝냈고 곧이어 새끼가 태어나자 어미는 매몰차게 그동안 키워왔던 새끼를 공격해서 보금자리로부터 몰아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새끼 고양이는 전원주택 단지를 자신의 영역으로 하고 있는 덩치 큰 숫코양이에게 밀려 산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은 덜 자란 녀석이기에 인정사정없이 공격해오는 상대방을 피하다 보니 어느새 산 속까지 쫒겨나게 된 것이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산 속에서 개구리나 잡아먹으면서 살던 녀석에게 눈 앞에 보이는 녹색의 조그마한 쥐새끼들은 오랜만에 발견한 진수성찬이었다. 살금살금 뒤를 밟으며 공격 각도를 재보는 고양이. 그것도 모른채로 사녀와 팔녀는 집을 향해서 토테토테 발을 옮기고 있었다.
- 사녀 오네챠 조금만 천천히 가는 테치.. 발씨가 아파서 걷기가 힘든 테치.
- 발씨가 아픈건 팔녀챠가 잘못해서인 테치. 와타시는 먼저 가는 테치!
슬슬 밖에 너무 오래나와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 하던 사녀는 뒤에 점점 처져가는 팔녀를 버려두고 먼저 가버렸다.
- 테에에엥! 테에에엥! 사녀 오네챠! 어디있는 테치!!
아픈 발은 이제 퉁퉁 부어 올라서 제대로 걷기도 힘들 지경이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고통은 인내심이 약한 자실장에게 있어서는 도저히 당해내지 못할 상황인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금방이라도 마마가 따스한 품으로 안아올려 줄 것 이라고 믿으며 팔녀는 아무도 없이 적막해진 산속에서 혼자 테에엥 거리며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 귀를 쉴새없이 쫑긋거리던 어린 고양이는 주변에 아무 것도 없다는 확신이 들자마자 칭얼대던 팔녀의 등 뒤에서 덮쳐들었다.
- 마마! 마마 어디있는 테치이! 와타시의 발씨가 너무 아픈.. 테벳?!
정확히 후두부 아래의 연수에 가해진 강력한 충격에 팔녀는 빵콘을 해버릴 겨를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 날카로운 발톱에 걸린 몸뚱아리는 고양이와 같이 앞으로 딸려가버렸고, 순간적인 가속도를 이기지 못한 자실장의 연약한 목뼈는 단숨에 바스라지며 찢겨 나가는 바람에 팔녀의 머리통만 습격 현장에 떨어지게 되었다.
- 피에에에..
잠깐 동안 정신을 놓았던 팔녀는 눈을 떠보았지만 온 몸을 움직일수도, 크게 울음소리를 낼 수도 없었다. 단지 바람빠지는 소리만 몇 번 입밖으로 내던 팔녀는 잠시 뒤 회색으로 변한 눈동자를 부릅뜬 채 쓸쓸히 식어가기 시작했다.
한편 오늘도 잔뜩 부풀어오른 비닐 봉투를 들고 친실장은 산위를 허덕대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다지 높지 않은 경사였지만, 실장석에게 있어서 이정도 경사는 마치 맨손으로 암벽등반을 하는 것과 동일한 난이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집을 좀 더 인간들과 가까운 평지로 옮기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똑똑한 친실장은 전원주택 단지를 돌아다가 차에 치어 죽어버린 황색 얼룩 고양이를 발견하고 이곳이 보기와는 달리 매우 위험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손에 들린 악마의 삼지창으로도 위협해서 쫒아버리는게 고작인 강력한 야옹씨가 저렇게 처참히 죽은 걸 보면 닝겐 뿐만 아니라 더욱 강한 괴물도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친실장은 힘들더라도 조금이나마 숨을 곳이 많은 산 속에 있는 굴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로드킬 당해서 너덜너덜해진 고양이는 그날 실장 일가의 만찬이 되었긴 하지만 말이다.
- 마마가 온 데스웅~ 귀여운 와타시의 자들은 오늘 잘 지낸.. 데엑?
- 테에엥! 마마 큰일인 테치! 팔녀챠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테치!
- 사녀 이모우토챠만 혼자 돌아온 테치!
살이 꽤나 많이 붙어있는 치킨 박스를 주워 기분이 좋은 친실장이 굴로 돌아왔을때 보인 것은 이제 다섯이 되어버린 자실장들의 모습이었다. 셋 이상의 숫자는 세기 힘든 실장석의 지능이지만, 하나, 둘, 셋 하고 한번 더 세어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 팔녀가 사라진 데스우? 마마의 말을 듣지 않은 분충인 데스!
- 테에에에엥! 목이 너무 말랐던 테치! 마마가 물을 안준 탓인 테치!
땅에서 버둥대며 투명한 눈물을 흘리는 사녀를 바라보던 친실장은 자초지종을 장녀로부터 듣고서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히 이 분충은 자신 뿐만 아니라 일가 전체를 위험하게 만들 것이다..
- 오마에..!
하지만 친실장은 선뜻 사녀를 솎아낼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자기가 배아파 낳은 자식인 것이다. 어찌 한번 잘못했다고 쉽게 내쳐버릴 수가 있을까. 한참을 멍하니 서있던 친실장은 여전히 땅바닥에서 버둥대며 울고있는 사녀를 일으켜 세웠다.
- 사녀는 오늘 마마의 말을 어긴 분충인데스. 심지어 팔녀까지 죽게 만든 데스.
- 테에엥! 아닌 테치! 팔녀는 발씨가 이야이야 하다고 하면서 안따라왔던 테치!
- 하지만 마마는 사녀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는 데스. 앞으로는 마마의 말을 반드시 지키는 데스. 지키지 않는다면 분충이 살 곳은 운치구덩이밖에 없는 데스우.
- 분충이 아닌 테치! 운치 구덩이도 싫은 테치!! 테에에엥!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은 사녀에게서 돌아선 친실장은 오늘의 수확을 자들 앞에 공개했다. 달콤하고 짭짤한 간장 소스의 냄새가 굴 안을 가득 채우자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상자를 향해 달려든 사녀를 필두로 자실장들은 정신없이 치킨 부스러기를 향해 머리를 처박았다.
- 텟챱, 텟챱.. 너무 맛있는 테치!
- 이게 스테이크인 테치? 마마 정말 감사한 테치!
- 우마우마한 밥을 가져온 마마는 정말 훌륭한 테치!
짭쪼름한 간장 소스가 배어든 튀김옷을 한입 크게 베어문 사녀가 자신도 모르게 뷰룻뷰룻하며 팬티를 부풀렸다. 인간이 먹기 힘든 목뼈와 갈비 부분을 각자 손에 쥔 장녀와 삼녀는 사이에 붙어있는 부드러운 닭고기의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오녀와 구녀는 언니들이 먹고 있는 것을 부럽게 바라만 보다가 슬쩍 끼어들어 치킨 맛을 보기 시작한다.
- 마마, 마마는 안먹는 테치?
- 마마는 아까 오면서 많이 먹은 데스. 귀여운 자들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먹는 데스우.
가슴 한켠이 따스해져 오는 느낌에 친실장은 하루종일 먹은 것은 없어도 어느새 배가 가득 부른 기분이었다. 봉투를 뒤집어 보존식과 내일 먹을 것들을 구별하던 친실장은 손에 묻은 치킨 소스를 핥짝이며 바깥에서 비쳐오는 햇빛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동안 정리를 마치기 위해 열심이었다.
이제 곧 비가 잔뜩 내리는 시간이다. 비가 많이 오면 먹이 구하러 나가기가 힘들기에 친실장은 최대한 오래 보존할 수 있을 것 같은 식량을 골라내고 남은 곰팡이 핀 빵과 썩은 토마토로 그날의 식사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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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아아아.. 쿠릉, 쾅쿠타오!
어둡고 낮게 깔린 먹구름이 폭우를 퍼붓는 장마. 먼 곳에서 울려오는 천둥소리에 겁에 질린 자실장들은 조금이라도 마마의 따듯한 품에 안기기 위해서 필사적이다.
- 테에에, 마마! 무서운 소리가 나는 테치!
- 무서운 테치! 마마가 지켜주는 테치!
- 귀여운 자들은 걱정하지 않는 데스야. 와타시다치들의 집은 차가운 물이 못들어 오는 데스.
그렇지 않아도 점점 습해지는 공기에 친실장은 어제 이미 집 주변에 얕게나마 도랑을 파서 배수로를 만들어 두었다. 맨손으로 하려면 절대 불가능한 공사였지만 튼튼한 스테인리스 포크의 도움으로 손쉽게 땅을 헤집고, 자실장들이 흙을 안쪽으로 퍼올려서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물막이로 굴 입구를 둥그렇게 감싼 것이다.
시간당 백밀리미터 이상의 굉장한 호우에도 불구하고 산아래의 주민들에게는 다행히 전원주택을 건설한 업체는 배수 문제에 있어서 철저한 대비를 해두었기에 아직 여유가 많이 있었다. 산사태를 막기 위해 절개 사면은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축조해 놓았고, 중간중간 물빼기 관도 촘촘히 박혀 있었기에 실장석 일가의 집이나 전원주택들은 산사태에 휩쓸릴 걱정없이 안전한 것이다.
작년의 친실장 일가는 물이 바위틈으로 새어들어오는 바람에 추위에 덜덜 떨며 밖으로 기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갑자기 흘러넘치는 빗물로 옆에 있던 자매를 잃은 기억이 있기에 친실장 나름대로의 대비를 해 둔 것이다.
전국적으로 수 많은 산실장들을 구제해버린 이번 태풍은 친실장 일가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못하고 점차 물러났다. 심지어 마른 풀과 수건이 잔뜩 깔려있는 굴 안에서 지낸 자실장들은 장마 기간에 수 많은 자실장들이 목숨을 잃게 되는 감기에조차 걸리지 않고 뽀송뽀송한 채로 지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이 행하는 구제를 피한다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덧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이 실장생. 친실장은 장마를 무사히 넘겼어도 이제 곧 닥쳐올 더위에 대한 대비를 멈추지 않았다.
- 딱딱한 페트병은 언제나 귀중한 물품인 데스우. 페트병이 있어야 물을 보관할 수 있고 가뭄이 들더라도 버틸 수가 있는 데스.
공원의 단수와 달리 산속의 가뭄은 더욱 혹심하다. 등산객이 버린 페트병을 운 좋게 얻은 친실장의 마마는 그 덕분에 여름 가뭄을 남들보다 적은 피해로 지나갈 수 있었다. 대개의 산실장 일가는 쩍쩍 말라버린 진흙이 깔린 개울 바닥에서 물을 찾다가 말린 실장포가 되기 일쑤인 것이다.
그나마 현명한 개체들은 이른 아침의 이슬을 핥거나, 수분이 많은 식물의 뿌리를 씹는 식으로 최소한의 수분을 보충하며 가혹한 여름을 버텨나간다. 그런 사실을 친실장에게서 배우지 못하고 독립한 개체는 겨울을 버텨내더라도 다음해의 여름 가뭄에 일가 실각하기 마련. 친실장도 가뭄이라는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페트병을 닝겐마을에서 잔뜩 구한 덕분에 걱정은 별로 하고 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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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을 녹여버릴 것만 같은 8월의 햇살. 장마가 끝난 이후로 단 한번의 비조차 오지 않은 산 속은 이미 아비규환이다. 집 옆을 흐르는 조그마한 개울물은 이미 말라붙은지 오래이고, 그나마 습기가 약간 남아 축축한 진흙을 경단처럼 그러모아 빨던 친실장은 데에에.. 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근처의 나뭇잎을 잔뜩 따서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간다. 물을 가득 담아두었던 페트병들은 며칠 전에 전부 다 마셔버리고 텅 비어있기 때문이다.
- 마마! 목이 너무 마른 테치!
- 씁쓸한 물은 이제 싫은 테치!
혹여 시원한 물을 가져왔을까 싶어 친실장이 들어오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몰려든 자실장들은 수북하게 쌓인 초록색 나뭇잎을 바라보며 칭얼댄다. 기아상태에 빠져도 실장석은 꽤나 버티는 축이지만 수분이 부족하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바삭바삭해져 버린다.
자실장들과 친실장은 잎사귀를 씹어삼키며 몸이 요구하는 최저한도의 수분을 섭취해 버텨나가고 있는 것이다. 칡이나 마 같이 땅 깊숙이 묻혀있는 즙이 많은 뿌리를 찾는 것은 실장석의 신체 구조상 매우 힘들다. 그저 씁쓸한 나뭇잎 녹즙만이 갈증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뿐. 억지로 땅굴 속에서 잠을 청하는 자실장들의 칭얼거림에 친실장은 오로롱 거리면서 속으로 울었다.
어제 출산한 하자(夏子)들은 전부 운치구덩이로 보낸 친실장은 토굴 한구석에서 쿨쩍거린다. 물을 구할 수가 없었기에 억지로 출산을 참아왔지만, 아침에 일어나보니 구더기들만이 레후거리면서 바닥에 돌아다니고 있는 걸 발견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 자들은 어서 일어나는 데스우! 햇님이 뜨면 물이 사라져 버리는 데스!
하룻밤 내내 물을 어떻게 구할지 고민을 하던 친실장은 간신히 자신의 마마가 물이 없을때 했던 행동을 생각해냈다. 다음날 새벽부터 새로운 아침 일과인 이슬 모으기를 위해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깨워 밖으로 나간다. 아직 잠기운이 덜 달아난 자실장들은 이리저리 비틀대며 굴 밖으로 나와 멍하니 있다.
- 멍청하게 있지 말고 빨리 옷을 벗는 데스!
- 테에엥.. 독라가 되는 건 싫은 테치..
몸에 걸친 옷의 면적이 큰 친실장은 두건으로 충분하지만 아직 자그마한 자실장들은 옷을 전부 벗어야지 풀잎에 맺힌 이슬을 전부 닦아낼 수 있다. 축축한 이슬을 잔뜩 머금은 옷을 장녀에게서 건네받은 친실장은 얼른 넓적한 1회용 플라스틱 대접을 받쳐놓고 옷을 짜기 시작했다. 한 방울,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장녀.
- 신기한 테치! 옷에서 물씨가 나오는 테치!
- 나중에 장녀도 물이 모자랄 때에는 이렇게 해서 구하는 데스. 하지만 빛나는 햇님이 나오면 물들이 전부 사라지기 때문에 이렇게 일찍 일어나야만 하는 데스.
- 와타시도 자들이 생기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물씨를 모으는 테치!
뒤이어 달려온 삼녀가 자신의 옷을 내밀며 칭찬해달라는 듯이 애교를 부리자 친실장은 삼녀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삼녀의 옷에서 물을 짜내기 시작한다.
해가 떠오르기까지 짧은 시간동안 열심히 이슬을 모아왔지만 고작 1회용 플라스틱 접시의 바닥에 얕게 깔릴 정도밖에 없었다. 접시를 기울여서 플라스틱 병뚜껑에 물을 따르는 친실장은 남아있는 물의 양으로는 자들에게 먹이기도 벅찰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말없이 나뭇잎 한장을 따서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시원한 물을 마시고 기운이 나는지 활발해진 자들을 보면서 친실장은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자들에게 집을 잘 지키고 있으라 한뒤 밥을 구하러 출발한다. 평상시에는 원망스럽기만 한 비지만, 이번만큼은 빨리 비가 오기를 바라며 친실장은 조심스럽게 전원주택단지로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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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친실장의 바람과는 달리 8월이 끝나가도록 비는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었다. 6월달에 올라온 5등급 태풍 '참피' 이후의 태풍들이 절묘하게 한반도를 빗겨나간 덕분에 전국의 저수지와 댐의 수위는 위험할 정도로 낮아져 있다.
당면한 사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제한적 단수. 공원의 분수는 애진작에 끊겼고 이슬이라도 모으는 산실장들과 달리 공원과 골목에 사는 들실장들은 물이 끊긴 음수대에 우글우글 몰려 말라 죽어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편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이슬을 모으러 나온 친실장은 도토리나무를 슬금슬금 기어올라가는 갈색 애벌레를 눈치챘다.
- 데에에에.. 이것은 우마우마한 녀석인데스.
자들에게 맛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벌써 일주일째 나뭇잎 빼곤 아무 것도 못먹은 친실장은 참지 못하고 덥썩- 하고 매미 굼벵이를 한입 크게 베어문다. 툭, 하고 터지는 껍질 사이로 끈적하고 달콤한 체액이 흘러나와 친실장의 메마른 혓바닥을 적시자 살짝 지려버린 친실장. 모처럼 먹은 먹이에 기운을 차리고 주변의 수풀에서 이슬을 모으기 시작한다.
전국을 강타하는 불볕 더위에 질린 전원주택단지의 주민들은 해외나 바닷가로 피서를 떠났고, 평소보다 훨씬 적은 양의 음식물만 모아온 친실장은 어쩔 수 없이 기억을 되살려 자들을 이끌고 집 주변의 수풀을 포크로 헤집고 다녔다.
1년 전쯤 친실장이 자실장일 무렵에는 매일같이 땅을 헤집으며 지렁이나 풍뎅이 애벌레, 나뭇잎 뒤의 초록 애벌레등을 모으곤 했었다. 그렇게 하루종일 모아도 성체 실장이 한입에 털어넣을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에 항상 굶주렸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기에 친실장은 자들을 위해서 다시 힘을 내 땅에 깔린 낙엽을 뒤엎는다.
- 데에에.. 오늘도 힘내서 살아가는 데스..
- 마마와 함께라면 행복한 테츄!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 실장 일가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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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혹심한 가뭄동안 친실장은 부지런히 전원주택단지로 올라오는 아스팔트 길에서 사방에 널려있는 납작한 개구리 육포를 주워왔다. 자칫하다가는 차에 치여서 자신도 납작하게 눌린 육포가 될 수도 있었지만, 먹을 것이 부족해진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 바삭바삭한 개굴씨는 너무 맛이 좋은 테치!
- 와타시도 좋아하는 테츄!
오래 보존도 가능하고 맛도 있는 개구리 육포는 인적이 끊긴 전원주택단지에서 먹이를 구하기 힘들어진 친실장에게 있어서 새로운 영양 공급원이 되었다. 뜨거운 땡볕에서 개구리를 줍느라 어질어질 했지만 친실장은 자들이 맛나게 먹는 생각을 하니 몸에서 힘이 다시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혹서기 공원의 들실장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횡단보도에서 납작하게 눌린 동족의 육포이다. 밤이 밝은 도시의 특성상 밤눈이 어두운 실장석이더라도 무리없이 돌아다닐 수 있고, 낮보다는 교통량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때문에 현명한 실장들은 더운 낮에는 골판지 박스에서 자고 밤에 나와 실장석 육포를 줍는 야행성 생활을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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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보슬.. 보슬보슬..
뜨거웠던 불볕 더위를 식혀주는 가을 비가 내리자 산속의 친실장 일가에도 활력이 돌아왔다. 식수원인 작은 개울에도 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하고, 산 속은 이제 슬슬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혹심한 가뭄을 버텨낸 산속 동물들에게 있어서 가을은 그야말로 축제의 장이다. 새콤새콤한 산수유, 텁텁하지만 달콤한 밤, 도토리, 개암, 고욤 등의 열매 뿐만 아니라 살이 통통하게 찐 애벌레를 비롯해 각종 먹을 거리들이 가득한 산은 그동안 굶주렸던 동물들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것이다.
- 삼녀, 사녀! 힘껏 당기는 데스!
- 테챳! 테챳!
따사로운 가을 햇살 아래 친실장의 일가는 몇년 전 폭풍때 쓰러진 커다란 고목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친실장이 스테인리스 포크로 나무껍질을 크게 찍어서 벌리면 자실장들이 잡아 당기는 식으로 조금씩 해체해 나가자 곧이어 살이 오동통하게 찐 꽃무지 애벌레들이 후두둑 떨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 흰색 우지챠인 테치!
- 와타시가 프니프니 해주는 테치!
- 이건 굼벵씨라고 불리는 것인 데스. 이렇게 끝부분을 잡고 짜내면 쓴맛이 나는 운치가 빠져 나오고 고소한 맛만 남는 데스.
- 테에에..
익숙한 솜씨로 굼벵이를 주물럭거려 똥을 빼낸 친실장은 주변을 둘러싼 자실장중에서 장녀에게 먼저 건네주었다.
- 마마 정말 고마운 테치! 잘먹는 테치!
- 테에에엥! 장녀 오네챠에게만 주고 와타시는 왜 안주는 테치! 와타시도 먹어보고 싶은 테치!.. 테벳!
팔을 붕쯔붕쯔 흔들며 억울함을 어필하는 사녀의 머리로 친실장의 철권이 떨어졌다.
- 시끄럽게 떠드는 것은 분충인 데스. 오마에는 분충인 데스까?
- 테에에엥..!! 테흡! 테흡..
억지로 입을 다무는 사녀를 일별한 친실장은 솜씨좋게 똥을 빼낸 굼벵이 한마리를 삼녀에게 건네 주었다. 다섯마리의 자실장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남은 굼벵이는 조심스럽게 옆의 비닐봉투에 담은 친실장은 이제 산수유 나무로 향했다.
나무 아래 빨간색의 열매가 잔뜩 널려있는 걸 본 자실장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서로 줍겠다고 달려나간다. 그 모습에 친실장은 데픗, 하고 웃으며 뒤를 따라간다.
- 테겍? 아마아마한 맛이 아닌 테치!
덜익은 산수유 열매를 삼켰는지 얼굴을 찌푸리는 사녀를 달래는 장녀. 동생을 잘 챙기는 모습에 친실장은 흐뭇하게 그걸 바라본다. 하지만 곧이어 닥쳐올 겨울에 솎아낼 자들을 생각하면 친실장은 지금 이렇게 행복한 기분이 들다가도 마음이 불편해 지는 것이다. 그래도 지금껏 모아온 보존식이면 자들을 솎아낼 필요 없이 겨울을 지낼 수도 있겠다, 싶어 친실장은 잠깐 행복회로를 돌린다.
자의 자의 자들이 셀수없이 골짜기에 퍼져서 살아가는 모습.. 생각만 해도 행복한 기분인 것이다.
어찌됐든 풍요로운 가을덕분에 친실장 일가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아침 일찍 닝겐의 집에서 몰래 가져오는 음식물 쓰레기와 오후 내내 산속에서 모은 열매가 워낙 많아서 친실장은 보관용 굴을 새로 하나 팔 정도였다.
운치 냄새가 나지만 딱딱한 껍질 속에는 말랑하고 고소한 맛이 나는 노란 운치열매에, 굴 옆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가 한가득 있기에 실장석들은 매일매일 열매를 줍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 전 새로 태어난 추자들도 언니들을 따라서 부지런히 열매를 나르고 있다.
- 텟테로게~ 세상에는 먹을 것이 가득한 테치~
- 달콤달콤한 것을 먹으면 행복해지는 테치~
열심히 열매를 주워 나르는 자실장들 덕분에 친실장이 그동안 모아온 비닐 봉투는 날이 갈수록 빵빵하게 차오른다. 벌써 이렇게 가득 찬 봉투가 굴 안에 세개가 두개 넘게 있고, 지금 담은 것까지 하면 겨울은 넉넉히 버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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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녀 오네챠! 저쪽에서 뭔가 달콤달콤한 냄새가 나는 테치!
- 여기는 무서운 붕붕씨들이 사는 곳인 테치.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는 테치.
무언가 달콤한 냄새를 맡고 주변을 돌아다니던 오녀는 그 냄새가 땅속에 있는 조그만 굴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깨닫고 장녀를 불렀다. 실장석들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땅벌의 둥지였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 부지런히 수액을 모아오던 땅벌들은 주변 인가의 쓰레기통에서 달콤한 주스가 남아있는 음료수캔의 지속적인 공급으로 인해서 평소보다 훨씬 큰 무리를 형성하고 있다.
- 붕붕씨는 나비씨랑 비슷하게 생긴 테치! 전혀 무섭지 않은 테치!
날아다니는 곤충이라는 점은 같지만, 위험도는 하늘과 땅 차이인 벌과 나비를 제대로 구분하는 실장석은 굉장히 머리가 좋은 놈일 것이다. 당연히 평범한 실장석인 오녀로써는 둘의 차이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 테에에.. 오녀 이모우토챠 어서 돌아오는 테치! 마마가 여기는 함부로 오면 안된다고 한 테치!
- 그래도 달콤한 냄새가 나는 테츄! 아마아마한 먹을 것이 저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한 테치!
장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붕붕거리는 소리가 요란한 굴 입구로 다가간 오녀는 서슴없이 손에 들고있는 나뭇가지로 굴 안을 쑤셨다. 난데없는 공격에 독이 오른 가을 땅벌들이 우글우글 기어나오는 동안 오녀는 나뭇가지 끝에 묻어나온 달콤한 수액을 맛보며 눈을 초생달처럼 치켜뜨고 테프프, 하고 웃는다.
- 치프프픗, 장녀 오네챠는 바보인 테치. 아마아마하고 달콤달콤한 것이 이 안에 잔뜩 있는 테츄아아아앗?!?!
- 오녀챠!!
갑작스러운 나뭇가지의 난입으로 집이 파괴되고 애벌레들이 다치자 땅벌들은 화가 단단히 났다. 건장한 군인들도 머리를 싸쥐고 도망가는 땅벌인데 하물며 조그만 자실장은 더욱 위험한 것이다.
- 테벳! 테벳! 이야이야한 테치! 붕붕씨는 따가운 걸 그만하는 테치!
순식간에 땅벌들에게 덮힌 오녀는 온 몸을 후려치는 듯한 고통에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느려터진 실장석의 발걸음으로는 땅벌의 영역을 벗어나려면 한세월. 이미 퉁퉁 부어오른 다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 장녀 오네챠! 구해주는 테치..!
갸냘프게 울리는 오녀의 목소리는 이미 땅벌에게 머리를 몇방 쏘이고 아랫쪽 비탈로 떽데굴 굴러떨어진 장녀에게 닿을 리가 없다. 실장석 따위보다 훨씬 큰 사람도 이정도로 쏘이면 아나필락시 쇼크가 올 정도인데 실장석은 더욱 끔찍한 고통을 겪는 것이다.
노오란 색과 검정색이 얽힌 벌들이 녹색의 자실장위에 수십마리 씩 달라붙어 더듬이로 탐색을 하다가 움찔대는 즉시 푹푹, 하고 침을 찔러넣는다. 온 몸이 퉁퉁 부어오른 자실장은 숨 쉬는 것도 힘겨워지다 마침내 질식하고 만다. 푸르딩딩하게 부어오른 얼굴은 마지막으로 마마를 찾아 움직이려고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도 할 수가 없다. 파킨 하고 울리는 자그마한 소리만이 자실장의 최후를 알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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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쌀쌀해지는 공기에 친실장은 가라앉은 목을 큼큼, 하고 한번 풀고 자실장들을 깨운다. 이틀 전 무서운 붕붕씨들에게 당한 오녀가 있었더라면 맛있는 밥을 맛볼 수 있었을텐데.. 같은 생각을 하던 친실장은 자들에게 아침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오늘은 어제 닝겐의 식사박스에서 가져온 전이다. 고소한 기름에 바삭바삭하게 잘 구워진 감자, 고구마, 게맛살, 생선 등등의 진미에 자실장들은 조금이라도 더 먹기위해서 게걸스럽게 달려든다.
추석이 지난지도 벌써 일주일이어서 쿰쿰한 쉰내가 올라오지만 실장석들에게 이정도는 아무렇지도 않다. 맛있게 밥을 먹어치운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러 멀리 떠난 동안 굴 근처에서 도토리를 주워오기 시작한다. 아장아장 걸어가서 낙엽을 들추고 도토리를 주워오는 자실장들의 모습은 애호파가 본다면 당장 사진기를 들이대고 몇번이고 사진을 찍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실장석 일가가 있는 도토리나무 쪽으로 온 것은 그런 애호파와는 거리가 먼 일반적인 사람들인 것이다.
자매들이 모두 일하는 틈에 팔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마지막 가을 나비를 쫒아가던 사녀는 깍아지른 듯한 절벽까지 와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그만 뷰룻뷰룻 빵콘을 해버렸다. 사람이 실족해도 큰일나는 급경사의 절개사면에 막힌 사녀는 저 멀리 날아가는 나비를 노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발걸음을 돌린다.
- 에구머니나, 저게 뭐니?
- 이야.. 여기도 실장석이 있네요. 쟤는 엄마가 없나?
추석 연휴에 쉬지 못하고 근무를 했기에 대체 휴가로 내려온 아들을 데리고 산에 오른 아주머니는 그렇게 뽈뽈 기어다니는 자실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반면 아들은 익숙한 듯이 한참 뒤에서 도토리나무 굴 입구로 향하는 자실장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오늘은 연휴 마지막 날이어서 모처럼 어머니를 모시고 산에서 도토리니, 칡이니 하는 것들을 캐올까 하고 나온 사내는 금색으로 빛나는 금삽과 커다란 배낭, 등산화 등으로 완전무장을 하고 나온 것이다.
- 저것들은 뭐하는 것이니?
- 저게 일본에서 넘어온 실장석이라는 동물인데요, 워낙 번식력이 좋은데다가 말썽도 많이 피워서 유해조수로 지정이 된 녀석들이에요.
- 사람에게 해는 안끼치고..?
- 안그래도 그것때문에 말이 많아요.
실장석이 버글버글한 서울 근교 신도시에서 사는 남자는 도시인의 숙명인 탁아, 투분, 가택 침입, 아첨 등등 들실장이 사람에게 끼치는 모든 해악을 겪어온지라 산실장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은 없었다. 다만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에서 방영한 산실장 다큐멘터리를 잠깐 보고 이 녀석들의 굴 안에는 도토리나 밤 같은 열매들이 잔뜩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 테에에에?! 닌겐들이 나타난 테치! 발견돼버린 테치!
- 테챠아아앗! 커다란 닝겐상이 나타난 테치!!
- 와타시의 매력에 메로메로되어서 따라와 버린 테치! 분명히 스테이크를 공물로 바치는 테치!
커다란 도토리나무 아래에 도착한 모자는 나무 아래에서 도토리를 줍는 새끼 실장석들을 보고 감탄성을 낸다. 한편 난생 처음 보는 인간에 겁에 질린 장녀와 삼녀였지만 어찌어찌 친실장에게서 배운대로 동생들을 데리고 굴 반대편으로 피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추자로 태어나 제대로 어미에게서 교육을 받지 못한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굴을 향해 도망가기 시작했다.
- 10녀, 11녀, 12녀, 13녀 이모우토챠들은 왜 집으로 도망가버린 테치! 닝겐이 집으로 향하는 테치!
낙엽으로 가득 덮여서 얼핏 보면 도저히 찾을 수 없었지만, 자그마한 실장석들이 바둥대면서 낙엽 속으로 파고드는 모습을 본 사내는 빙긋 웃으면서 발로 낙엽을 한켠에 모두 치웠다. 그리고 도토리나무 뿌리 아래에 뚫린 굴을 바라보던 남자는 음.. 하고 잠깐 고민하더니 손에 들고있던 삽으로 굴 입구를 인정사정없이 파내기 시작했다.
- 얘야, 거기는 갑자기 왜 파고 있는 거니?
- 엄니는 그 다큐멘터리 안보셨어요? 얘네들 집에 까보면 도토리랑 밤같은게 엄청 많이 나와요.
- 우리가 그걸 가져가면 얘네들은 어쩌고?
- 에이, 야생에서 사는 녀석들이 어련히 잘 알아서 할까요. 걱정 마세요.
어차피 골목골목마다 흘러 넘치는 유해 조수들이 겨울에 얼어 뒈지던 말던 청년은 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어머니의 걱정에 대충 대답하고 주변을 넓히는데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 테샤아아앗! 테샤아아앗! 와타시들의 식량을 뺏어가지 마는 테치!
- 돌려 주는 테치이이이! 똥닝겐인 테치!!
- 테에에엥!! 집을 망가트리지 마는.. 지벳?!
- 삼녀 오네챠? 테베벳?!
무심하게 집을 파내려가는 청년을 막기위해서 주변을 콩콩대며 뛰어다니던 삼녀는 그만 청년이 내려찍는 삽날에 몸이 반쪽이 난채로 바닥에 질질 흐르는 얼룩이 되고 말았다.
- 어이쿠, 이런 저리 비키란 말이야!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 친 청년의 뒤에는 구녀가 등산화를 토닥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뿌직, 하고 무언가 밟히는 소리에 뒤이은 파킨- 하는 가벼운 소리.
- 삼녀챠아아!! 테에엥!!
- 구녀 이모우토챠도 죽어버린 테치! 닝겐이 죽여버린 테치!
울부짖는 실장석 일가의 사이에서 청년은 눈앞에 보이는 전리품에 큼지막하게 미소를 지었다.
- 우와.. 엄청나게도 쌓아 놨구만? 엄니 이거 보세요!
- 어머나 이게 웬일이니?
- 어디 보자.. 은행이랑 밤, 도토리.. 친절하게 종류별로 포장까지 다해놨구만? 흐흐.. 칡캐러 왔다가 더 좋은걸 캐가게 생겼네.
실장석 일가가 부지런히 모아둔 보존식 봉투를 번쩍번쩍 들어올린 청년은 봉투 입구를 묶어서 들고있던 등산 배낭안에 쑤셔 넣는다. 40리터는 족히 들어갈만한 큰 배낭이었지만 굴 안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봉투에 의해서 거의 다 찰 지경이다.
테엥테엥 울부짖는 자실장들을 뒤로 한채 모자는 다정하게 숲길을 헤치며 마을로 내려간다. 남겨진 것은 형편없이 파헤쳐진 굴과, 흘러내린 흙으로 메꿔져버린 운치 구덩이와 추자들, 그리고 적록의 얼룩이 된 삼녀와 구녀의 잔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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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갸아아악! 와타시의 집이! 자들은 어떻게 되버린 데스!
- 마마! 마마! 테에에에엥!!!
뒤늦게 집으로 돌아온 친실장은 엉망진창이 되버린 자들과 박살나버린 집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비릿하게 풍겨오는 자들의 냄새를 맡고 허둥지둥 돌아와 보았건만 이미 늦었던 것이다. 뭐, 어차피 친실장이 있으나 없으나 결과는 매한가지였겠지만은.
- 커다란 닝겐이 나타나서 집을 부수고 보존식을 모조리 가져가 버린 테치! 삼녀와 구녀 이모우토챠들은 닝겐을 막으려다가 죽어버린 테치! 다른 이모우토챠들은 사라져 버린 테치!
집안으로 뛰어들어간 추자들은 무자비한 삽날에 찍혀 한줌 핏물이 된지 오래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기에 실장석들은 추자들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온통 짓뭉개진 집안으로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바깥의 도토리나무 뿌리에 줄줄이 앉아서 친실장이 돌아올때까지 울기만 한것이 전부다.
- 오로롱..오로롱.. 이게 무슨 일인 데스까..
적록의 눈물을 흩뿌리며 친실장은 엉망진창으로 무너진 굴 안으로 기어들어 가본다. 가을 내내 모아두었던 보존식은 깡그리 사라져 있고, 고작해야 도토리 몇알만이 남겨져 있다. 비상식으로 쓸 엄지와 구더기들이 잔뜩 있는 운치구덩이는 무너져내린 토사에 깔려 보이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비상식으로 말릴 추자들도 전부 사라졌다. 실상은 친실장이 밟고있는 흙무더기 아래에 깔려서 질식한지 오래지만 친실장이 그것을 알 도리는 없다. 결단을 내린 친실장은 재빨리 남아있는 물건을 챙기기 시작한다.
- 자들은 어서 따라오는 데스!
- 마마! 어디로 가는 테치?
오글오글 모인 자실장들 사이로 집에 남아있던 보온재와 비닐을 챙긴 친실장이 서둘러 지나갔다. 입구는 물론 천정도 파헤쳐져서 천적을 전혀 막을 수 없는 굴은 이제 살 수가 없는 곳이다. 이런 때를 위해서 친실장은 그동안 주변에 먹이를 구하러 돌아다니며 예비로 쓸만한 거주지를 찾아보곤 했었다.
- 닝겐에게 들키는 바람에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는 데스. 여기서 계속 있다가는 분명히 닝겐이 다시 와서 와타시들의 먹을 것을 뺏아가는 데스.
- 테에엥! 와타시들의 먹이를 또 뺏어가는 테치? 무서운 테치!
- 닝겐들은 와타시의 매력에 관심도 주지 않고 사라져 버린 테치.. 테에엥!
아직은 해가 길기에 다행히 완전히 어둠이 내리기 전에 친실장은 새 거주지로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주변에 먹을 것이 가까우면 포식자가 다가온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친실장은 데이, 데이 울음을 참으며 들고온 골판지를 지붕처럼 바위 옆에 걸쳐놓는다.
- 자들은 빨리 낙엽을 모아오는 데스.
- 테치!
똑똑한 장녀을 따라서 사녀도 허둥지둥 주변에 잔뜩 떨어진 낙엽을 들고오기 시작한다. 한편 친실장은 걸쳐놓은 골판지가 날아가지 않도록 바닥에 큰 돌을 괴는 중이다.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자 간신히 마련한 아지트에 몸을 뉘이는 실장석 일가. 하루 종일 일을 한 자실장들은 맹렬한 허기에 배가 고파서 칭얼댄다.
풍성한 가을은 수확의 계절. 다만 실장석이 수확을 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오히려 수확당하는 입장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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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에에.. 햇님이 벌써 사라지는 데스우..
벌써 해가 짧아졌는지 제대로 먹이를 모으기도 전에 석양이 드리운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밤이나 도토리 같은 열매가 있을리 만무. 벌써 다람쥐나 고라니 같은 경쟁자들이 남김없이 처리했을 것이다. 차가운 공기로 입김이 새하얗게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며 친실장은 아쉽지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계절은 어느새 11월. 겨울이 코앞으로 닥쳐 온 것이다.
겨울.
차가운 흰색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계절. 수 많은 실장석들이 얼어죽곤 하는 무서운 계절이 왔다. 봄에 출산했던 자실장 아홉마리 중 살아남은 것은 겨우 장녀와 사녀 둘뿐. 그 동안 운이 좋은 편이었던 친실장이었지만 그동안 너무 무난하게 살아왔던 탓일까, 항거할수 없는 인간의 폭거 앞에 일가 실각의 위기에 몰리자 친실장도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 보존식이 충분하지 않아서 자를 둘씩이나 데리고 겨울을 나는 것은 힘든 데스. 이대로 가다가는 일가 실각인데스..
전원주택단지의 음식물 쓰레기도 추워진 날씨에 꽝꽝 얼어붙어 쉽사리 가져올 수도 없다. 필사적으로 죽은 곤충들이나 다람쥐가 미처 못본 열매를 모으고는 있지만 성체 실장석이 혼자서 겨울을 나기에도 부족한 상태. 힘없이 거처로 들어가는 친실장의 등 뒤로 올해의 첫 눈이 사락사락 내리기 시작한다.
- 테에에에엥!! 똥마마는 이런 맛없는 것들만 가져오는 테치!! 배가 고픈 테치!!
- 사녀챠..
삐쩍 야윈 자들을 보는 친실장은 잠자코 말라붙은 나방 한마리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가로등 아래에서 모처럼 발견한 먹을 것이지만 중실장이 되어갈때라서 한창 식용이 왕성한 자들에게 나눠주기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내일 제대로 먹이를 구하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슬픈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친실장은 속으로 생각하며 자들을 껴안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다음 날 아침 집 밖으로 고개를 내민 친실장은 온통 은색으로 변한 산속의 풍경에 그만 빵콘을 하고 만다.
- 데에엑? 벌써 차갑고 하얀 것이 온 데스?
- 치프프픗, 아무데서나 빵콘한 마마는 분충인 테치!
뒤에서 몰래 비웃는 사녀를 눈치챌 겨를이 없는 친실장은 다급하게 보존식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해 본다. 남아있는 보존식이라곤 고작 도토리 열 몇알에 말라빠진 곤충 사체가 몇마리. 도저히 겨울을 날 수 없는 양이다.
- 오늘은 먹이를 구하러 갈수 없는 데스.
- 테에에? 마마가 밥을 안주면 와타시다치들은 배가 고픈 테치!
- 어쩔수 없는 데스. 함부로 밖에 나갔다가는 무서운 것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데스.
부주의하게 눈위에 흔적을 남겼다가는 겨울에 굶주린 포식자들이 그 흔적을 따라오기 마련. 고라니같이 재빠른 동물이 아닌 이상 산실장들은 함부로 눈이 내리고 나서 밖으로 나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비축된 보존식이 넉넉한 실장석들이나 그렇고, 식량이 없는 실장석들은 그야말로 지옥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눈은 많이 쌓이지 않아서 며칠 안으로 금방 녹을 것 같아 보였다. 친실장은 최대한 보존식을 아끼고, 오늘 저녁은 사녀를 솎아내서 먹어치우기로 결심한다.
- 시끄럽게 떠들지 않는 데스우. 울거나 움직이면 힘이 빠지니 자들은 얌전히 잠을 자는 데스.
- 전혀 졸립지 않은 테치! 배가 고파서 잠도 안오는 테치!
시끄럽게 떠드는 사녀와 달리 장녀는 가만히 한쪽 구석으로 가서 눕는다. 조금이라도 에너지 소비를 줄이려는 그 모습과 달리 사녀는 시끄럽게 울고 버둥거리면서 밥을 조르고 있다.
- 자꾸 떠드는 자는 분충인데스. 사녀는 얌전히 있는 데스.
- 테에엥..
친실장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눈치챘는지 사녀는 얌전히 자리에 눕는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계산을 머릿속에서 하고 있는지라 곧 잠에 빠진 친실장과 장녀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 똥마마는 장녀 오네챠만 귀여워하는 눈이 삐어버린 마마인 테츄. 세레브한 와타시는 이런 똥마마 밑에서 있을 때가 아닌 테치. 닝겐상에게 가면 와타시의 귀여움을 보고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칠 것이 분명한 테츄.
끝에 가서는 속마음이 입밖으로 나와서 깜짝 놀란 사녀였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실장은 잠을 자느라 못들은 모양이다. 보존식을 모조리 쓸어간 인간에 대한 기억은 이미 잊어버렸는지 한시바삐 닝겐 노예에게서 맛난 것을 받고싶은 사녀는 슬금슬금 초라한 거처 밖으로 기어나간다.
- 테엣?! 콘페이토 같지만 차가운 테치!
흰 눈이 반짝반짝 햇살을 반사하는 것을 보고 혹시 이것이 말로만 듣던 콘페이토인가 싶어서 한입 머금어본 사녀는 입안에 퍼지는 차가움에 깜짝 놀라 뷰루룻 하고 빵콘을 해버렸다. 잔뜩 부풀은 팬티를 질질 끌면서 산 아래쪽으로 향하는 사녀의 뒤로 초록색의 운치가 눈 위에 길게 늘어지며 자국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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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월, 월월월!
- 크르릉! 멍멍!
사녀가 전원주택단지로 향할 무렵, 친실장 일가가 사는 골짜기 건너편 사면에서는 한 무리의 사내들이 준비가 한창이다. 뒷 좌석을 떼어내 개조한 갤로퍼, 무쏘 등의 사륜구동 차량에서 사냥개가 들어있는 케이지를 내리고 엽총을 점검하는 등 사냥 전의 점검에 열심인 사내들은 곧 준비가 끝났는지 담배 한대씩 나눠피면서 오늘 갈 루트를 확인해 본다.
- 김형은 오늘 이쪽 능선을 타고 정상쪽으로 가면 되겠네.
- 야, 왜 나만 뺑이쳐야 하는건데..!
- 그러니까 누가 가위바위보를 지라고 했나? 열심히 몰아 오쇼!
- 카악, 퉷! 치사한 새끼들 같으니라고!
투덜거리는 사내는 피던 담배를 툭툭 튀겨서 불을 끄고 꽁초를 던진다. 오늘 하루종일 산을 타야하는 역할이기에 짜증이 잔뜩 서린 표정으로 케이지 안에서 흥분해있는 개들을 꺼내 풀어놓기 시작한다.
- 그럼 수고하십쇼!
- 이따 봐요!
- 포인트 잘 잡고 있어라. 내가 콜하는거 잘 듣고.
- 장사 한 두번 하나. 이따가 쏘주에 멧돼지고기나 구워 먹읍시다.
동절기에는 산에 먹을 것이 없어서 멧돼지,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이 마을로 자주 내려오곤 한다. 그래서 산골 마을은 미리 구제를 의뢰해서 야생동물의 수를 줄인다. 그렇기에 사냥이 끝나는 저녁이면 사내들이 타고 온 자동차에는 피투성이가 된 고라니, 멧돼지는 물론 오로롱거리며 색눈물을 흘려대는 산실장들이 그득하게 차있곤 하는 것이다.
타앙.. 타아앙...
고요한 산속을 헤집는 천둥같은 총성에 거처에서 곤히 자고 있던 친자도 눈을 떳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굉음에 장녀는 와들와들 떨며 친실장을 향해 말했다.
- 마마, 커다란 소리가 나는 테치! 그리고 사녀챠도 사라진 테치!
- 데에엥.. 사녀는 확실히 분충인 데스. 돌아오는 대로 슬픈 일을 하는 수밖에 없는 데스우.
- 테에엣? 슬픈 일이라니 너무 무서운 테치! 사녀챠가 불쌍한 테치!
골판지로 얼기설기 얽어둔 거처에서 서로 껴안은채로 오들오들 떨고있는 친자. 갑자기 들린 개짖는 소리에 사이좋게 팬티를 녹색으로 지렸다.
으르렁! 컹컹! 그르르륵!
올해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사냥에 참가한 흰점박이 로트 와일러는 곳곳에서 나는 야생동물의 체취에 흥분해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느라 몰이꾼 사내와의 거리가 한참 떨어진 것도 몰랐다. 그러던 차에 마침 눈 위로 길게 늘어진 초록색의 악취를 따라가보니 바위 옆에서 고약한 냄새와 함께 무언가 부스럭 대는 소리까지 듣자 한층 더 기가 살아서 큰 소리로 짖으며 주인을 부른다. 안타깝게도 그 소리를 들을 사냥꾼은 한참 먼 곳에 있어서 제대로 못들었지만 말이다.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와 심상찮은 분위기에 친실장은 여지껏 애용해온 포크를 움켜쥔다. 그렇게 주변을 불안한듯 둘러보던 친실장의 눈과 커다란 사냥개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덜컥하고 굳어버린 친실장은 곧이어 덥쳐온 커다란 사냥개에 의해 집이 박살나버리자 바위를 등진채로 필사적으로 위협을 해본다.
- 데샤아아아아앗!
마치 산속을 걷다 갑자기 호랑이를 만난 나그네의 심정으로 친실장은 포크를 휘두르며 덧없이 저항을 해보려 하지만, 순식간에 좌우로 뛰어다니며 공격 시점을 노리는 사냥개의 움직임에 손발이 어지러워지며 눈 앞이 핑핑 돌아버리는 바람에 제대로된 움직임을 하기 어려워진다.
- 마마아아!!!
- 데갸아악!!
무시무시하게 으르렁대는 로트와일러를 본 장녀는 자기도 모르게 친실장을 부르며 뷰룻뷰룻 빵콘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품 안에 있던 장녀의 비명소리가 들리는 바람에 잠깐 시선이 쏠린 친실장. 그때를 놓치지 않은 로트와일러는 포크를 들고있던 오른팔을 덥썩 물어뜯는다. 짧은 비명과 함께 오른팔이 뜯겨져 나간 친실장은 본능적으로 엄청나게 빵콘을 해버린다. 항상 든든해 보였던 친실장의 팔이 찢기는 것을 보고 품 안의 장녀도 미친듯이 운치를 뿜어내며 녹색의 팬티를 한층 더 크게 부풀린다.
그르르릉..
버둥버둥 움직이는 것이 신기해서 주둥이로 친자를 툭툭 건드려 보던 로트와일러는 녀석들에게서 나는 고약한 냄새에 자기도 모르게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 테샤아아앗! 마마를 아프게 하지 마는 테챠!!
깨개갱!!
기절해버린 친실장의 품에서 빠져나온 장녀는 필사적으로 사냥개에게 투분을 했다. 대부분은 사냥개까지 가지도 못하고 주변에 툭툭 떨어졌지만, 운좋게도 마지막으로 던진 운치덩어리가 사냥개의 콧등에 직격하고 말았다. 예민한 코에 들이차는 끔찍한 악취에 기겁을 한 로트와일러. 자기도 모르게 깨갱거리면서 꼬리를 말고 도망가고 만다.
투분으로 사냥개를 쫒아내는데 성공한 장녀였지만 기뻐할 새도 없이 바닥에 기절해있는 친실장을 어떻게든 깨워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대로 가다가는 차가운 겨울 바람에 꼼짝없이 얼어죽고 말 것이다.
한편 인간들이 사는 따듯하고 안락한 곳을 찾아나선 사녀. 난생 처음보는 흰색의 예쁜 눈송이도 이젠 지겹다. 아까 전에는 무시무시한 소리도 들려오더니, 지금은 한 걸음 걸을때마다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다리를 난도질 하는 것 같아 사녀는 걸을때마다 테엥, 테엥 하고 울음소리를 낸다. 다행히 이쪽 골짜기로 왔던 로트와일러 덕분에 고양이를 비롯한 포식자들은 전부다 도망가거나 숨어있어서 자실장 한마리가 움직이는 것을 신경쓰는 시선은 없다.
하지만 꽝꽝 얼어버린 팬티속의 묵직한 운치 덩어리를 끌고 다니다보니 체력도 이제 형편없이 떨어져서 더 이상 움직이기도 귀찮아진 사녀. 닝겐 노예는 다음 기회에 찾기로 결심하고 일단 친실장에게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다. 여지껏 많이 걸은 것 같지만 실상은 좁은 골짜기 안을 지그재그로 돌아다니는 바람에 실상 집에서는 얼마 떨어지지도 못했다.
한참을 다시 골짜기 위로 향하던 사녀는 자신이 아까 내려오면서 질질 흘린 운치 자국을 보고 그제서야 그 자국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집으로 향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되자 으쓱해진 사녀. 하지만 엉망진창이 되버린 친실장의 모습을 보자 무언가 잘못된 것을 알아챈다.
- 테에? 똥마마가 죽어버린 테치?
- 사녀챠! 마마가 나가지 말랬는데 왜 나간 테치!
- 닝겐 노예에게서 공물을 받아오려고 한 테치. 귀여운 와타시의 매력에 메로메로 되어서 사육실장이 되면 똥마마와 장녀 오네챠를 키워주려고 한 테치!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는 사녀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은 장녀. 나가지 말라던 마마의 당부도 무시하고 멋대로 나가버리는 바람에 무서운 멍멍씨가 들이닥친 것이 아닐까? 장녀의 시선은 사녀가 어기적대고 걸어온 뒷편으로 향한다. 초록색의 진한 점선과 멍멍씨의 발자국이 새하얀 눈 위에서 집으로 향하는 것을 본 장녀는 이를 꽉 깨물었다.
- 계속 걸었지만 닝겐 노예가 보이지 않아서 다시 돌아온 테치. 배가 너무 고픈 테치.
바닥에 드러누워서 데히, 데히 하고 거친 숨소리를 내뱉는 마마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보존식 창고를 마구 뒤지는 사녀. 추위와 배고픔 앞에서 그동안 숨겨왔던 분충성이 마구마구 발현되었던 것이다.
- 사녀 이모우토챠?
- 왜 부르는 테치? 맛이 없지만 배가 고프니 용서해 주는 테..테베베벳?!
한쪽 구석에 나뒹굴고 있던 포크를 쥐어든 장녀. 양 손에 곱등이를 들고 우걱거리다 자신을 쳐다보는 사녀에게 망설임없이 포크를 찔러넣었다. 푸확, 하고 터져나오는 적록의 핏줄기는 사녀의 몸뚱아리에 포크를 박아넣을때마다 계속 뿜어져나와 바위를 물들인다.
- 사녀챠는 정말로 분충인 테치. 이대로 가다가는 마마는 물론이고 와타시까지도 죽는 테치. 그 전에 사녀를 솎아내서 밥으로 삼는 테치.
- 테갸아악! 장녀 오네챠!! 미친 테치? 이야이야 한 테치이이!!
- 분충은 솎아내는 테샤아앗!
포크에 찔린 상처에서 뿜어져나오는 피가 눈에 튀었는지 빨간색으로 변한 양 눈을 깜박이며 필사적으로 허우적대던 사녀는 곧이어 느껴지는 기운에 한층 더 필사적으로 애원을 한다.
- 테에엥!! 오네챠 와타시가 잘못한 테치! 이대로 가다가는 와타시의 자들이 죽어버리는 테챠아아!!
- 사녀 이모우토챠의 자들은 맛있게 먹어주는 테치. 마마도 분명 맛있게 먹고 기운을 차릴 것인 테치.
사녀의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장녀는 무표정하게 포크를 들어 사녀의 어깨에 힘껏 꽂는다. 마치 두부를 뚫는 듯한 감촉과 함께 땅에 박혀버린 포크에 꿰인 사녀는 총구에 힘을 줘서 출산을 막아보려고 하지만..
- 텟테레~
- 텟테레~
- 텟테레~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구더기들을 도저히 막을 도리가 없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사녀는 어떻게든 총구를 틀어막으려고 발버둥을 친다.
- 안돼는 테치! 와타시의 자들은 지금 나오면 안되는 테치!!
- 레벳?!
- 차가운 레후! 마마는 어디있는 레후?
- 콘페이토가 없는 레후! 파-킨!
딱딱하게 얼어붙은 맨땅에 그대로 튀어나온 구더기들은 추운 날씨와 추락의 충격에 나오는 족족 위석이 깨져나가며 죽어나간다. 가랑이 사이로 구더기 무더기가 쌓일 수록 말라 비틀어지는 사녀.
- 테에에.. 똥마마 밑에서 태어난 와타시가 불행한 테치..
- 레훙! 마마가 꼼짝도 안하는 레후? 프니프니 해주는 레후!
- 추운 레후! 프니프니가 필요한 레후!
구더기에게 강제로 양분을 빼앗겨 말라붙은 채 마지막 말을 내뱉은 사녀는 파킨, 하고 울리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런 사녀를 차가운 눈초리로 쳐다보던 장녀는 서둘러 플라스틱 접시를 꺼내와서 구더기들을 안에 넣고 반죽을 시작한다.
- 프니프니가 너무 센 레후! 조금 부드럽게 해주는 레벳?!
운 좋게 먼저 태어난 구더기들을 쿠션삼아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던 구더기들은 프니프니를 해주는 줄 알고 장녀에게 꼬리를 흔들며 기쁨을 표시했지만 곧이어 이어지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입으로 내장을 토해내다가 그대로 으깨진다.
구더기 반죽이 적당히 되자 장녀는 조금씩 반죽을 떼어서 경단으로 만든 뒤 정신을 잃은 친실장에게 먹여주기 시작했다. 의식은 없지만 입에 무언가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꿀떡대면서 삼키는 친실장. 영양분이 보급되자 회복력도 한층 더 빨라져서 대충 끼워맞춘 오른팔도 다시 달라붙는다.
- 데에에.. 무슨 일이 벌어진 데스? 장녀는 무사한 데스우?
- 마마! 일어난 테치? 테에에엥!
- 마마는 괜찮아진 데스. 아팠던 팔도 다시 나온 데스.
정신을 차린 친실장에게 달라붙어서 테에엥 테에엥 울기 시작한 장녀. 그리고 강제 출산으로 인해 말라죽은 사녀를 발견한 친실장.
- 데덱? 저 자는 사녀가 아닌 데스우?
- 그런 테치. 사녀챠가 마마를 위해서 구더기를 잔뜩 낳고 죽은 테치.
- 데에에..
평소 분충끼가 다분하던 사녀가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친실장이었지만, 장녀의 말에 별달리 반응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장녀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주는 친실장.
- 잘한 데스우. 훌륭한 장녀를 두어서 마마는 정말 기쁜 데스우. 하지만 여기도 이제 안전한 곳이 아닌 데스.
서둘러 세간을 챙긴 친실장은 허둥지둥 장녀를 이끌고 무턱대고 밖으로 나선다. 스티로폼과 보존식이 들은 봉투를 한쪽 팔에 걸치고, 찢겨졌지만 아직 큼지막한 골판지는 나머지 손에 들고 눈이 녹아있는 곳을 골라서 걸어가는 친실장과 장녀는 제일 처음 살았던 굴에 다시 도착하게 되었다.
- 데에.. 눈이 녹아있는 곳이 여기 밖에 없는 데스. 어쩔수 없는 데스..
형편없이 뭉개진 굴이었지만 위에 골판지를 덮고 축축한 낙옆을 올려놓자 대충 숨어지낼 만한 곳이 완성되었다. 장녀가 낙엽을 덮는 동안 굴 안에서 포크로 흙을 파내려가던 친실장은 굴 한쪽에 뿌려진 개사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 장녀, 이리 와 보는 데스! 밥인 데스!
- 큼큼.. 너무 아마아마한 향기가 나는 테치!
보존식이 털린 뒤 곧바로 이사를 간 친실장은 몰랐지만, 사실 밤과 은행, 도토리 등의 보존식을 가져간 사내의 어머니가 그래도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 며칠 전 집에 있는 개 사료를 한바가지 가져와서 굴 안에 부어준 것이다.
- 이정도 푸드는 아껴 먹으면 세밤을 세밤자는걸 세번 해도 되는 데스. 마마도 힘내서 먹이를 구해오는 데스!
- 마마 얼른 밥 먹고 힘을 내는 테치!
- 오로로롱.. 장녀도 얼른 먹는 데스우.
아까 먹었던 사녀의 구더기 경단은 팔을 재생하느라 벌써 다 소모한지 오래. 행여 한알이라도 놓칠까 꼼꼼히 굴 속을 뒤져서 개사료를 모은 친실장은 장녀 몫으로 세알, 자신의 몫으로 다섯알을 꺼내서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웠다. 행여라도 부스러기가 떨어질세라 아예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먹는 친자. 고 열량에 기름진 개사료가 뱃속에 들어가자 한결 몸도 따듯해진다.
- 데에에.. 힘든 하루였던 데스우.
- 그랬던 테치! 하지만 힘을 내서 내일도 살아가는 테치!
바위 옆의 거처보다는 외풍이 덜 들이치는 굴 속에서 스티로폼 보온재에 파묻힌 채로 친자는 도로롱 코를 골며 잔다. 아직 혹독한 겨울은 시작도 안했지만, 실장석 모녀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금 살아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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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되자 산 속의 동물들도 활기를 되찾고 돌아다닌다. 커다란 도토리 나무 아래의 실장석 일가도 점점 따스해지는 날씨에 부지런히 장녀의 독립 준비를 한다. 작년 이맘때 쯤 독립했던 친실장 처럼 이제 장녀도 독립을 하려는 것이다.
- 다 챙긴 데스우?
- 그런 데스. 마마가 물건을 너무 많이 줘서 걱정인 데스.
- 아닌 데스. 장녀도 자들이 태어나면 오히려 모자랄 것인 데스.
- 데프픗.. 와타시의 자들.. 데프픗..
자를 갖는다는 생각에 행복회로가 돌아가는 장녀. 그래도 곧 정신을 차리고 비닐 봉투며 보온재, 물병 등의 세간을 챙긴다. 꼼꼼히 점검을 끝낸 친실장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장녀를 꼭 껴안는다. 이미 덩치도 어미만큼 커진 장녀여서 폭 안기지는 못했지만, 마주 친실장을 껴안고 오로롱 거린다.
- 이제 어디로 갈지는 결정한 데스우?
- 와타시는 저 닝겐상들의 마을 아래 계곡으로 가보는 데스. 개굴씨도 많고 물도 있으니 괜찮을 것인 데스.
- 반드시 조심하는 데스. 닝겐들은 정말로 무서운 존재인 데스.
- 알겠는 데스. 마마는 걱정하지 말라는 데스.
장녀의 독립을 앞둔 친실장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몇번이라도 다시 반복해서 주의를 준다. 첫 자가 이렇게 커서 독립을 하는 것이 친실장은 뿌듯하면서도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걱정이 되지만 어쩔 수 없다. 실장생은 뜻밖의 사고로 손쉽게 목숨을 잃기 십상인 것이다.
하지만 현명한 친실장 아래에서 태어난 장녀라면 안전하게 자신만의 일가를 꾸려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으며 친실장은 장녀를 배웅했다.
- 내일도 살아가는 데스!!
完
분충사녀가 솎아지고 살아남는 친자를 보는게 너무 좋았던데스...
답글삭제사녀분충 진작 솎아냈으면 개념삼녀가 대신 죽을일은 없었을것인데스..(그리고 저 모자는 인간으로서의 존심도 없는건가 나같으면 똥벌레 식량 축내는 참밑닝 되기 싫어서라도 그냥 냅두고 갔을것 같은데..)
답글삭제자가 참으로 인분충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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