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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묘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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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토록 강건하셨던 분인데 갑자기 쓰러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히 숨을 거두셨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명복을 빌어주었다. 그래도 호상이지. 그래,  살만큼 살다가 얼마 아프지도 않고 죽는 게 축복이라고. 마을 어르신들이 덤덤하게 내뱉는 말들. 하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그래, 그런 것이다. 노인의 죽음이라는 것은 말이다.

할머니의 장례식을 마치고 할머니댁에 왔다. 가재정리를 해야한다고 하더라. 부모님들이 집을 이래저래 둘러보는 사이 나는 마당을 어슬렁거렸다. 할머니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는 마당이다. 예전에 할머니댁에서 놀던 기억이 난다. 할머니가 몰래 주던 과자도. 할머니가 나 좋아하니까 만들어준 음식들도. 괜스레 눈이 시큰해진다. 장례식때도 나지 않던 눈물이 한방울 흘러내렸다. 나는 소매로 슥슥 눈물을 닦았다.

멍하니 마당을 둘러보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데스우- 하는 작은 소리. 고개를 흔들어보지만 다시 한번 들리는 소리.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간다. 빨간색 지붕이 올려져있는 개집이다. 예전 생각이 난다. 추석때 있던 개가 설날에는 없고 설날에 있던 개가 추석에는 없는. 지금이야 뭐 그러려니 하지만 어릴 때는 많이 울고 그랬지. 허리를 숙여 개집 안을 살펴본다. 안에서 적록의 빛이 슬쩍 보인다. 뭐지? 개집을 발로 슬쩍 찬다. 데갸가각!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뛰쳐나온다. 실장석이다. 할머니가 실장석을 키웠나?

도망가려던 실장석의 뒤로 작은 쇠사슬이 보인다. 이윽고 쇠사슬이 팽팽해지고 실장석은 덱!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졸리면서 넘어졌다. 슬랩스틱과 같은 코미디지만 나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서둘러 핸드폰에 있는 링갈앱을 실행시켜본다. 

“야, 너.”
<덱?! 와...와타시는 아무 잘못도 안한데스!>
“일단 알았으니 닥쳐봐.”
<와...와타시의 말을 알아들 수 있는데스우?>
“알아들으니까 이러지. 너 뭐냐?”
<와...와타시는 녹두인데스…>
“하?”

자신을 녹두라고 소개한 실장석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날이 추웠고, 배가 고팠고, 작물을 먹다가 할머니에게 걸리고, 할머니가 목에 쇠사슬을 걸어놓고 여기서 살게 했다. 밥도 잘 주고 해서 좋았는데 요 근래 갑자기 밥도 안준다. 보이지도 않는다. 도망가려고 해도 목에 걸린 쇠사슬을 끊을 수가 없어서 힘없이 여기 있었는데 너희들이 왔다. 너희야 말로 누구냐. 라는 이야기. 

“나? 나는 여기 사는 사람의 손자다. 니네 식으로 하면 할머니는 나한테 마마의 마마였지.”
<데덱?! 그런데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인데스?>
“할머니는 이제 오지 않을테니깐.”
<데스우?>
“너네 식으로 말하면… 그래, 슬픈 일이지.”
<데스?! 데에…>

고개를 푹 숙이는 녀석. 그래도 할머니가 잘 대해주신건가.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꼬질꼬질한 머리를 보고 관두기로 했다. 그러던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럼 와타시는 어찌되는데스?>
“어… 글쎄?”

나는 슬쩍 집을 바라본다. 바쁘게 집을 둘러보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녹두를 바라본다. 꼬질꼬질한 모습이다. 나는 고개를 살며시 좌우로 가로저었다.

“일단 여기서는 더 못살겠지.”
<데엑?! 왜인데스?!>
“너 밥 줄 사람도 없고, 이제 이 집은 다른 사람한테 넘길거거든.”
<데에… 주인사마가 슬픈 일을 당했다고 하지 않은데스?>
“맞아.”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녹두. 녹두의 말에 나는 어처구니가 없다라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럼 이제 이 집은 와타시의 집 아닌데스?>
“...왜?”
<그것도 모르다니, 멍청한 닌겐인데스- 와타시와 주인사마가 같이 살던 집인데스. 그런데 주인사마가 슬픈 일을 당했으니 와타시밖에 남지 않은데스까. 그러니 당연히 와타시의 집인데스- 데프프프프->

초생달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는 녹두. 나는 머리에 열이 확 오르는 느낌이었다. 창고 옆에 놓여있는 삽이 눈에 들어온다. 삽을 들어서 내려찍을까? 실장석의 머리를 옆면으로 내려찍으면 푹 하고 박힐 것이다. 뇌수가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오겠지. 넓은 면으로 후려치면 머리가 그대로 눌려버릴 것이다. 내 머리 속에서 녹두는 다양한 방법으로 머리가 터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그럴리가 있나. 너는 3년상을 안치뤘잖아.”
<그게 뭐인데스?>
“3년상이라고 집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하는 게 있어.”

나는 3년상에 대해서 대충 설명했다. 누군가 죽고 묘가 생기면 그 옆에서 묘를 지키면서 3년을 보내야한다. 그래야만 집을 받을 수 있다. 녹두는 물었다. 그렇다면 왜 닌겐들은 안하는데스? 집을 받아야하지 않는데스? 나는 대답했다. 힘드니까. 이런 멋진 집을 포기하기는 싫지만 엄청 힘들거든. 녹두는 물었다. 데에… 그러면 이 집의 주인이 되려면 3년상인가 뭔가를 해야하는데스? 

나는 대답했다. 찾아보니까 실장석은 1년만 하면 충분하다고 하네. 어때? 해볼래? 1년 버티면 이 집이 니 집이 되는거야. 녹두는 말했다. 데에… 그런데 1년이 얼마인데스? 나는 말했다. 더웠다가, 낙엽 떨어지고, 하얀색 가루가 내려오고, 그 가루가 녹으면 1년이야. 딱 지금이지. 어때, 해볼거냐? 녹두는 웃으면서 말했다. 데프프프… 그정도야 완전 쉬운데스. 나 또한 웃었다. 그래, 잘 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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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의 집은 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놔주었다. 쇠사슬도 끊어주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란히 놓여있는 묘. 집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 묘에서 마주친 사촌동생이 나에게 물었다. 무슨 짓이냐고. 나는 웃으면서 대충 설명했다. 사촌동생은 이야기를 다 듣고 박장대소를 했다. 사촌동생의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다 생각했는지 녹두는 마구 화내기 시작한다. 엉덩이쪽이 불룩해진다. 나는 재빨리 발을 들어 머리를 눌러버린다.

“여기서 똥질하지마라.”
<덹… 뎁…>
“너도 사과해 임마. 그래도 할머니 모신다는 놈인데.”

나는 한쪽 눈을 찡긋하며 사촌동생에게 사과를 부탁했다. 눈치가 빠른 사촌동생은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녹두에게 사과를 건넸다. 발을 슬쩍 머리에서 치워준다. 머리를 매만지며 일어나는 녹두. 나는 묘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에 개집을 놓았다. 괜찮은 곳이었다. 묘가 있고 그 앞에는 밭이 있었다. 뒷쪽은 밤나무가 많은 산이었다. 예전에는 여기서 밤도 따고 구워먹고 그랬는데. 

“자, 그럼 1년동안 잘 부탁한다.”
<데프프프프… 집이나 잘 지켜주고 있는데스. 1년 뒤에 찾아가는데스!>
“네네. 해야할 것들이나 잘 해두셔.”

일가친척들은 하나둘 자리를 떴다. 맨 마지막으로 떠난 건 우리가족이었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집은 어찌할거냐고. 아버지는 집은 부수고 아마 땅만 대충 나눠갖지 않을까. 라고 말씀하셨다. 하긴, 이제 여기서 농사지을 사람도 없고 살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나는 휙휙 지나가는 경치를 보며 눈을 감았다.

녹두같은 이벤트는 잠깐의 흥미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하루하루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나는 녹두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미세먼지를 먹고, 더위를 먹고,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추석에요?”
“그래. 그래도 내려가서 벌초도 하고 해야하지 않겠냐.”
“네네. 알겠어요.”

그렇게 나는 추석에 내려가게 되었다. 예초기야 아버지께서 직접 돌리신다고 하시니 나야 그저 잔풀정리만 하면 된다고 하였다. 그렇게 짐을 챙겨 묘로 가는 길에 빨간색 지붕을 보고나서야 나는 녹두를 떠올렸다. 

“아… 녹두.”
“녹두?”
“아니에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앞장서서 걸어갔다. 실장석은 생태계에서 최하위에 위치한 똥벌레다. 그런 똥벌레가 오래 살아있을리가 없지. 나는 개집을 스쳐지나가면서 슬쩍 엿보았다. 그때 개집에서 무언가가 나오더니 나와 눈이 마주쳤다. 튀어나올 정도로 커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 미친듯이 짖어댄다.

<데?! 데스우!! 데스!!>
“어… 설마…”

나는 재빨리 링갈 앱을 켰다. 녹두는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여, 오랫만이다. 잘 지냈어?”
<벌써 1년이 지난데스! 이제 끝인데스! 어서 집을 내놓는데스!>
“무슨 1년이 지났어. 지금 겨우 반년이 지났는데.”
<데갸아아아!!! 거짓말인데스!!! 오마에는 거짓말을 말하고 있는데스!!>
“하, 요즘은 링갈 앱이 좋아서 말이지. 이런 것도 된단다.”

나는 링갈 앱에서 전에 나누었던 대화를 검색했다. 무료어플이라 저장하는 로그에는 한계가 있지만 원래 잘 안쓰는 앱이었으니깐. 내 핸드폰에서 나와 나누었던 대화가 재생되는 것을 듣던 녹두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설마 녹음이 되어있을줄은 몰랐겠지. 녹음된 내용은 아주 명료했다. 나는 녹두에게 1년을 설명하고 녹두는 납득하는 대화. 나는 녹음을 끄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도 좋아. 대신 1년은 못했으니까 집은 없는걸로 해야지.”
<데갸아아아!! 아닌데스!! 이제 조금만 더 지내면 되는데스!! 와타시가 포기할 거 같은데스까!!>
“지금도 포기하려고 했잖아?”

나는 놀리듯 빙글빙글 웃으며 녹두를 바라보았다. 녹두의 얼굴이 시뻘개졌다. 그런 녹두의 옆에 조그마한 것들이 보였다. 크기를 보아하니 자실장이다. 녹두의 자식인가? 나는 피식 웃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말이지. 너 지금 아슬아슬한 거 아냐?”
<뭐가 말인데스까.>
“네가 제대로 1년상을 지내면서 묫자리를 정리 했어야지. 정리 안했으니까 우리가 와서 정리하는 거 아냐. 예전에 얘기 해줬는데 기억 안나?”

나는 아까 전 로그에서 다시 그 전의 대화를 찾아 들려주었다. 녹두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나는 피식 웃었다. 웃기는 녀석. 니가 화내봐야 내가 눈 하나 깜짝할 거 같냐? 오히려 지금까지 살려주고 있는 내가 자비로운 거 아냐? 하지만 이런 말은 입밖에 내지 않는다.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해서 판을 깰 필요도 없지.

“지금 많이 봐주고 있는거거든? 네가 똑바로 해야 내가 약속을 지킬 거 아냐?”
<데그...데그그… 알...겠는데스.>
“자식을 생각해서라도 참으라고. 응?”

나는 개집 지붕을 힘차게 탕탕 두들겼다. 테챠아! 라는 소리나 테에에엥! 거리는 소리가 안에서 울려퍼졌다. 당황한 녹두가 재빨리 개집에 들어가서 자식들을 달랜다. 나는 피식 웃으며 땅에 놓인 갈고리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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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설주의보가 내린 설날이었다. 나는 눈이 쌓인 산길을 힘겹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정도 눈이 내리면 아무리 그래도 성묘는 무리 아닌가. 그래도 아버지는 꿋꿋이 앞장서서 산을 올라갔다. 아, 피곤해. 나는 아버지가 먼저 올라간 흔적을 따라 밟으며 힘겹게 아버지를 따라 갔다. 두텁게 쌓인 눈은 발목을 넘어 종아리까지 올라왔다. 올라가는 아버지는 장화를 신고 있었다. 제발, 그럴거면 나도 주던가. 젖어오는 바지에 시린 종아리를 억지로 털어내며 힘겹게 걸어간다.

하얗게 쌓인, 그렇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조부모님들의 묘는 꽤나 운치있는 장면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남겨놓고서, 아버지와 나는 성묘를 했다. 가져오신 대비로 무덤에 쌓인 눈을 털어내시는 아버지. 그래봐야 또 쌓이지 않을까요.

할 일이 없어진 내 눈에 볼록 솟아나온 무언가가 보인다. 작은 지붕 모양으로 쌓인 눈.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이제 거의 1년이 되어가는구나. 뭐 내가 말했던 건 이 눈이 다 녹고난 후이지만. 나는 슬금슬금 다가가 개집 주변에 쌓인 눈을 치웠다. 입구에 핸드폰 플래시를 들이댄다. 데갸아아각! 이라든가 테챠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슬금슬금 기어나오는 녹색대가리. 

“여, 반갑다. 잘 지냈어?”
<데뎃… 오마에인데스까…>

털썩 주저앉는 녹두. 가을에 봤을 때보다 비쩍 말라있었다. 뭔가 좀 안쓰러운걸. 나는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보았다. 녀석은 대답해주었다. 봄과 여름, 가을까지는 별 무리없이 먹을 것은 잘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울이 오고나서부터는 먹을 것을 구할 수도 없었다. 물도 얼어서 먹기가 힘들다. 차라리 눈이 이렇게 오면 조금씩 녹여먹을 수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보존식이 줄어들었다. 아이들도 먹지 못해서 하나둘 굶어죽었다. 이제 남은 건 장녀와 삼녀정도다. 녹두는 힘겹게 고개를 들더니 나에게 제안을 했다.

<데에… 와타시의 자를 보는데스. 귀엽지 않은데스…?>
“나보고 키워달라고?”
<그런데스. 틀림없이 오마에에게 행복을 줄 것인데스.>
“그럼 너는?”
<자들이 사육실장이면… 당연히 와타시도 사육실장 아닌데스까?>
“와… 이제 진짜 얼마 안남았는데 포기하는거야?”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1년상을 되새겨주었다.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네가 그동안 참고 살아온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조금만 더 있으면 커다란 집이 너의 것이 된다. 지금 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따뜻하고 넓은 집이다. 그 곳에서 너의 자를 가득가득 채워야하지 않겠느냐. 나의 말에 점점 동하는 녀석이 보인다. 하지만 고개를 흔들고 말한다. 그렇다면 자신의 자실장만이라도 데려가라고. 나는 다시 말했다. 자식은 부모와 같이 있는 게 더 좋을 것이라고. 

아버지께서 이제 그만 가자고 소리치신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녹두에게 말해둔다. 이제 30번만 햇님을 보면 되니까 잘 참아보라고 전해준다. 주머니에 있던 사탕 하나도 던져준다. 녀석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개집 안으로 들어갔다.

순식간에 한달이 지나갔다. 많은 가족들이 모여 무덤 앞에서 절을 했다. 내 차례가 되어 절을 마친 후 친척들을 뒤로하고 개집으로 향했다. 예전에 이야기해줬던 사촌동생이 슬쩍 나를 바라보다 졸졸 따라온다. 나는 신경쓰지 않고 개집 지붕을 두들겼다. 어기적어기적 녀석이 나왔다. 

“여. 드디어 1년이야.”
<그...런데스까.>

힘없이 나오는 녀석. 개집 안은 조용했다. 아마 자실장들은 다 죽었겠지.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어본다. 역시나 그 한달 사이에 다 죽고 말았다고 한다. 하나는 굶어서, 하나는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뭐 흔한 일이다. 그래도 나는 위로한다. 이제 1년이 끝났으니 거대한 집이 너의 것이라고. 뒤에서 사촌동생이 비식비식 웃어댄다. 녹두는 힘에 겨운듯 말한다.

<와타시를… 와타시를 어서 와타시의 집에 데려가는데스…>

나는 조심스럽게 녹두를 들었다. 더러운 게 묻지 않도록, 그래도 겨우내 살이 빠져서 그런지 억지로 잡고 들어도 무겁지는 않다. 나는 조심스럽게 산길을 내려갔다. 그 뒤를 사촌동생이 따라왔다. 뭔가 찍고 있는 느낌이다. 내 얼굴만 나오지 않게 해달라 부탁한다. 사촌동생은 알았다고 대답한다.

한 공터에 다다른 나는 녹두를 내려놓았다. 녹두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어깨를 으쓱한다. 사촌동생은 터지는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다. 쪼그려앉은 나에게 녹두가 말한다.

<데에… 집은 어디있는데스?>
“여기 있었는데, 없어졌어.”
<데...데데데데데데데!!!!!>
“나도 몰랐는데 1년상은 옛날에나 했던거고 요즘은 그냥 받는거래. 안받으면 부수는거고.”
<데그르르르르륵…>

녹두의 눈이 점점 뒤집히며 부들거린다.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진다. 한참을 그렇게 부들거리던 녀석은 나를 바라본다. 녹두의 표정은 기괴함 그 자체였다. 

<왜… 왜 말하지 않은데스…>
“몰랐지. 미안. 쏘리. 스미마셍.”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준다. 녹두의 눈에서 분노가 보인다. 나는 무릎에 힘을 줘 일어났다. 녹두가 외친다.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자신의 사랑스러운 자들이 얼마나 덧없이 죽어갔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틴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나는 그런 녹두에게 피식 웃으며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녹두의 눈이 커졌다. 검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나는 몸을 돌려 녹두에게서 멀어진다. 카메라를 멈춘 사촌동생이 허둥지둥 나를 쫒아온다. 뒤에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친척들에게 돌아가면서 사촌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형.”
“왜?”
“마지막에, 뭐라고 한거야?”
“끝까지 자기 주제도 모르는 병신이라고. 실장석주제에 인간의 집을 탐하다니.”
“...형, 형은 진짜 쓰레기다.”
“흥. 그러는 너도 겁나게 좋아하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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