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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를 가지는 행복 2부

 

“빠른데스! 빠른데스!”
달리는 차의 안.
조수석의 팔걸이에 올라선 치비코가 상상도 못하던 스피드로 지나가는 경치를 보며 놀라고 있
었다.
“그러냐....”
운전대를 잡은 남자, 치비코의 원래 주인인 노부부의 막내아들은 즐거워하는 치비코의 말을
무심히 받아넘겼다.
부모가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키운 이 실장석과 꽤 많이 얼굴을 접해 실장석의 뇌 용량으로도
기억할 수 있었을 정도지만 기본적으론 무관심파다.
그 실장석이 사라진지 반년정도.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서야 공원에서 우연히 마주치자 내버려 둘 수 없어 데려왔을 뿐이다.
“뎃데로...”
그때 즐거움을 이기지못하고 무심코 노래를 부르려던 치비코의 입이 딱 다물어졌다.
기쁨의 노래이자 태교의 노래.
자를 수없이 잃고 이제 다시는 부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지만.
“뎃데로게~ 젯데로게~.”
곧바로 다시 노래를 부르는 치비코의 머릿속엔 방금 전의 대화가 떠오르고 있었다.
방금 전의 공원.
“데에...작은 주인님?”
“역시 치비코구나.”
“멋대로 나가기나 하고. 어머니가 얼마나 마음이 상하셨는지 알아?”
주인님이 와타시가 없어서 마음을 상했다.
외로웠다.
와타시가 돌아가면 기뻐한다.
외로우면 자를 가득가득 낳게 해줄 것이다.
이런 단순한 생각이 치비코에게 다시 희망을 불어넣은 것이다.
그래서 치비코는 여름부터 부르지 않던 행복의, 태교의 노래를 부르며 오랜만에 가슴이 기쁨
과 행복으로 부푸는 걸 느꼈다.
그때 차가 정지하는 게 느껴졌다.
정신을 차린 치비코가 바깥을 내다보자 그리운 마당이 보인다.
사실 공원과 노부부의 집은 차로 3분도 안 걸릴 거리지만 선물할 과일상자를 사러 내려 공원
을 지나던 막내의 눈에 뜨인 것이다.
물론 노부부는 치비코가 사라진 당시 주위를 찾았다.
하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쓰레기통에서 곧바로 없어진 고급 실장푸드 봉지와 짓이겨진 실장
석 사체가 발견되어 울었던 것이다.
그건 들실장을 처리해 수거봉투에 넣던 그 청소부에게 길러지기 위해, 다리를 벌리고 총배설
구를 과시해 분노를 산 들실장이지만 애초에 실장석은 생긴 게 거기서 거기. 게다가 짓이겨져
구분이 안가는 것이다.
자신이 이미 죽었다고 생각된 것도 모르고 오랜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그리운 광경에 기뻐하
는 치비코.
옆에서 비닐봉투에서 과일상자를 꺼낸 남자가 운전석 문을 연다.
“치비코야~.”
그때.
열린 창문 너머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데스?”
치비코가 쳐다보자 마루에서 마당으로 나오는 할머니가 보였다.
“그런데스! 와타시가 돌아온데스! 주인님 와타시가 없어 외로웠던데스? 이제 와타시가 자를
가득 낳아주는 데...”
레치~
“덱?!”
입에서 침을 튀기며 기뻐하던 치비코의 표정이 얼어붙는다.
눈앞엔.
그리운 마당의 수풀 속에서 달려 나온 한 엄지실장이 양팔을 올려 만세를 부르며 주인님께 뛰
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침해당하는 것엔 극히 민감한 실장석의 머리는 순식간에 최악의 결론을 도출한
다.
레치?
'와타시의 주인님' 앞에 서서 귀엽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엄지실장.
그 모습을 본 주인의 입이 벌어지는 모습이 슬로모션처럼 보인다.
“그럴 리가 없는데스! 허락할 수 없는데스! 그만두는데스! 그건 와타시의...와타시의...”
탕탕 유리를 치며 광분하는 치비코.
그걸 눈치 챌 리도 없는 할머니가 말한다.
“거기 있었구나. 우리 치비코.”
“...그건 와타시의 이름 데샤아아아아!!!”
충혈된 눈으로 이빨을 드러내고 외치는 치비코의 팬티가 푸지직 성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데샤아아!! 덱?!”
그리고 그 순간 뒤에서 뻗어온 손에 거칠게 뒷머리를 잡아당겨져 창가에서 떨어진다.
아래에 벌려져있던 비닐봉투에 떨어지는 순간 깔고 않은 팡콘 덩어리가 사방으로 튀지만 모두
비닐에 막혀 막내아들의 차가 더러워지진 않는다.
“주인님이 안 보이게 된데샤아! 그 가짜는 어디간데스! 죽여주는데샤아아!”
“시끄럽다.”
퍼억
“데갸악!!”
입구를 틀어쥐고 봉투를 휘둘러 시트에 내리치는 막내아들.
거센 충격이 가해진 비닐 안에서 대변과 치비코가 사방으로 튕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초록색 대변 범벅이 된 치비코가 녹색 팩을 한 얼굴로 간신히 두 눈을
뜬다.
“이 분충 녀석. 너의 제멋대로인 행동 때문에 어머니가 그때 얼마나 괴로워 하셨는지 아냐?
그래도 어머니가 한때 정을 주신 생물이니 그대로 둘 수 없어 데려왔지만 이제 저기로 다시
돌아가는 건 용납할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막내아들은 린갈 기능을 꺼버렸다.
봉투 안에서 대변 투성이인 치비코가 시끄럽게 데샥데악 절규하지만 들으려하지 않는다.
봉투를 묶으려던 막내아들은 질식을 우려해 손을 멈췄다.
하지만 내버려 두면 대변을 가득 묻힌 채 기어 나올게 뻔 하기에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조수
석 창문 위의 손잡이에 걸어놓는다.
데샤악! 데데뎃?!
자신의 무게 때문에 아래로 축 쳐지는 봉투 안에서 대변에 파묻히는 치비코.
'와타시의 이름' 을 뺏긴 분노로 마음껏 빵콘한 대변의 양은 꽤 많아 순식간에 치비코를 잠기
게 했다.
데샤아악! 게보게복
그 와중에도 창밖으로 위협을 하려다가 자신의 대변을 입 가득히 들이마시고 대변에 질식사할
뻔한 치비코.
그래봤자 어차피 할머니와 엄지실장은 이미 집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지독한 냄새다...대체 어떻게된 생물인지.”
환기를 위해 창을 약간 내린 막내아들은 과일상자를 들고 내렸다.
간신히 대변의 바다에서 고개를 내민 치비코의 분노에 찬 절규는, 차 문이 닫히는 소리에 지
워졌다.
“저 왔습니다.”
“어서 오너라.”
레치? 레치레치.
집에 들어가자 어머니 옆에 있다 자신을 향해 인사하는 엄지실장, ‘치비코’ 를 본 막내아들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어머니가 과일을 깎는 동안 마루에서 티비를 켜는 막내. 자신의 옆에서 레치레치 거리며 공을
굴리는 치비코를 보다가 마당을 내다보자 차가 보였다. 아마 그쪽에서도 마루에서 노는 엄지
실장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 증거로 조수석 창에 걸린 녹색봉투가 격렬히 흔들거리는걸 보던 막내는, 무심히 시선을 돌
렸다
몇 시간이 지나고 집에서 나온 막내아들이 차문을 열자 녹색으로 탁해진 봉투 너머로 조용해
진 치비코가 보였다.
한창 날뛰고 있었을 줄 알았던 남자가 봉투를 들여다보자 치비코는 입에서 거품을 뿜으며 실
신해 있었다.
'와타시의 집' 에 돌아간다는 기쁨이, '와타시의 이름'을 빼앗겼다는 최악의 형태로 쳐 부숴진
절망에, 치비코는 끝까지, 그 '가짜'가 미도리니쥬의 자들과 함께 빼앗긴 자신의 엄지라는 사
실은 눈치채지 못했다.
막내아들은 그걸 알수도 없고 관심도 없기에, 대충 비닐봉투를 묶고는 집을 향해 운전을 할
뿐이었다.
데게!
잠시 뒤 집에 돌아온 남자가 마당에 봉투를 탈탈 털자 대변과 함께 치비코가 주르륵 떨어져
바닥에 굴렀다.
남자의 집은 마당이 딸린 좀 오래된 주택이지만 덕분에 남자는 싸게 단독주택을 구할 수 있었
다.
하지만 마당까지는 손이 모자라 마당은 잡초와 수풀이 무성하다.
데샤아아! 데샤아악!
그 마당에서 일어나 격렬히 소리치는 치비코를 내려다보던 남자가 린갈을 켰다.
“왜 그러냐. 미도리.”
“집에 데려다 주는 데스! 그 꼬맹이를 찢어 죽여주는 데....데?”
미도리라 불린 걸 뒤늦게 깨닫고 멍해지는 치비코.
“무슨 소리데스? 와타시는 치비코데스!”
“넌 더 이상 치비코가 아니다.”
“데!!”
눈앞에서 주인이 다른 실장석을 치비코라 부른걸 보고 필사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날뛰던 치
비코에게 그건 확인사살이었다.
“데샤아아아! 무슨 말데스! 치비코는 나의 이름데샤아!”
“너를 치비코라 부르기도 싫고 어머니한테 말이 헛 나올 수도 있다. 너는 미도리라 부르겠
다.”
“미도리는 흔해빠진 이름데스! 별 볼일 없는 놈들 모두 미도리라 불리는데스! 와타시는 치비
코데스!”
“싫다면 내쫓을 뿐이다. 단지 어머니 댁하고 가까운 그 공원은 안 된다. 어디 다른 먼 곳에
버리겠어.”
“데덱!....... 데에! 싫은데스! 와타시는 치비코데스! 치비코야말로 와타시의 이름 데스우! 데스
우우우우! 데스우우우!”
발버둥 치며 목을 놓아 우는 치비코를 남자는 말없이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한참동안 목이 쉴 정도로 울던 치비코는 푹 엎드린 채 힐끗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곤 별
다른 반응이 없자 천천히 일어섰다.
가을이 한창인 지금 익숙하지 않은 공원에 버려지면 월동준비는 거의 불가능하다.
월동준비를 못한 들실장은 결국 어떤 형태로든 죽음밖에 없다.
“데에... 알겠는데스. 와타시는 미도리데스.”
“좋아. ”
“...이름을 줬다는 건 길러주는데스?”
다시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미도리를 보는 남자는 여전히 무덤덤했다.
“문제를 일으키지만 않으면 돌봐는 주겠다. 한때 어머니가 정을 준 생물이니.”
“데스...”
한때라는 단어에 축 쳐지는 미도리. 남자는 그 미도리를 마당 수도꼭지 아래에 놓고 물을 틀
었다.
촤아악!
“데게아악! 게복게복...”
남자도 놀랄 정도로 거세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뒤집어쓰고 바닥에 눌린 미도리가 물이 들이차
는 입을 열어 울부짖자 남자가 수도꼭지를 조절했다.
“이런... 미안하다. 마당 수도는 별로 쓴 적이 없어서...”
딱히 학대를 할 생각은 없기에 솔직히 사과하는 남자지만 정신을 차린 미도리는 갑자기 다시
울기 시작했다.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성체 실장석에겐 치명상이 아닐 텐데도 우는 미도리를 의아해하며 보던 남자는 미도리가 어느
새 반 알몸이 되어있는걸 깨달았다. 원래 다른 들실장의 낡은 옷이었던 미도리의 실장옷은 미
도리가 크고 살이 찌며 여기저기 터져있었다.
게다가 오늘 실장석의 대변에 몇 시간 담가져 삭은 채로 거센 물줄기를 맞자 다 찢어져 흘러
간 것이다.
“데에에엥! 와타시의 옷이 사라진데스!”
울면서 몸에 걸린 넝마를 주섬주섬 당겨 원래대로 해보려하지만 더 찢어질 뿐이다.
하지만 오히려 대변범벅의 옷이 깔끔하게 사라져 다행인 남자는 수도로 남은 대변과 미도리를
씻어 내렸다.
“데에에에엥!”
결국 완전히 알몸이 된 미도리는 피둥피둥 살이 찐 몸을 그대로 드러낸 채 울고 있었다.
“데에에에엥....데?”
어느새 집안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본 미도리가 황급히 따라갔지만 남자는 그대로 문을 닫았
다.
데에에에?! 데스데스우!
문에 매달려 탕탕 두들기던 미도리는 한참이 지나도 남자가 나오지 않자 그대로 문 앞에 주저
앉았다.
데이...
그러자 오늘 하루 동안의 충격과 피로가 몰려오며 미도리는 그대로 문 앞에서 잠들었다.
얼마 뒤.
쿵!
데엑!
“응?”
문을 열고 나온 남자는 문에 묵직한 충격을 느꼈다.
“뭐하는 거냐. 미도리.”
데! 데스! 데스데스!
발아래서 팔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미도리를 보다가 린갈을 킨다.
“와타시가 아직 못 들어간걸 몰랐던데스? 비키는데스!”
그러면서 현관에 발을 들여놓는 미도리를 남자의 다리가 가로막았다.
“어딜 들어와. 네가 살 곳은 여기다.”
“데?”
남자가 안고있는 커다란 골판지상자를 본 미도리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무슨 소리데스! 그건 들 실장이나 사는 곳데스!”
처음엔 영리한 자실장이던 미도리, 당시 치비코도 결국 실장석.
오랜 공원생활과 미도리니쥬의 죽음 후 자포자기해 거칠게 살던 때 슬슬 분충의 본성이 드러
나는 걸 자신도 아직 몰랐다.
“와타시는 다시 사육실장이 된 데스! 스시와 스테이크까진 바라지 않으니 어서 집에 들여보내
고 옷을 사주는데스! 분홍색이 좋은데스!”
“...뭐 어차피 너에게 기대한건 없다. 예절교육이란 것도 하지 않겠다. 그저 내가 주는 대로
받던가, 나가든가다.
“데에...”
아직 상황을 깨닫지 못한 미도리를 두고 남자는 큰 나무아래 무성한 잡초들 사이에 골판지를
내려놨다.
“그래도 나름 최저한은 보장해주느라 시간이 걸렸다. 이게 너의 집이다.”
“데스...”
꽤 커다란 골판지는 입구를 빼곤 솜씨 좋게 몇 장의 비닐이 둘러져 방수가 되었다.
들실장에겐 꿈만 같은 집이지만 미도리는 아직 현관을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길러주겠다고 약속한데스! 사육실장은 집에서 사는데스!”
“사육실장은 말 그대로 사육되는 실장석이다. 학대파가 키우는 것도 식용실장 출산석도 사육
실장이란거지.”
“데?!”
“게다가 난 사육실장으로 기른다고 한 적 없다. 돌봐준다고 했을 뿐. 이 마당에서 지내라. 잘
곳과 먹을 거 정도는 주마.”
“데에...데에...”
이제서야 상황을 깨달은 미도리는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준비를 하려 들어가던 남자의 린갈
에 미도리의 중얼거림이 번역되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스. 와타시는 사육실장이었던 데스... 치비코 였던데스... 데! 그런데스! 치비
코가 아니라 행복하지 못한데스! 이름을 되찾는데스!”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하기 전에 남자는 다른 걸 지적했다.
“미도리.”
“와타시는 치비코데스!”
아까 들은 말도 잊고 자신이 치비코라 주장하는 실장석에게 남자가 말한다.
“넌 치비코란 이름이 소중한가?”
“그런데스! 흔한 미도리 따위와는 다르게 와타시만의 이름데스.”
“확실히 미도리나 에메랄드는 너희들의 옷 색에서 대충 생각한 흔한 이름이다.”
“알고있는데스! 그러니까 와타시는 치비코데스!”
남자는 어디까지나 무덤덤하게 진실을 알려줬다.
“하지만 엄지나 자실장에게 치비코(꼬맹이)라는건 미도리 정도로 흔해 빠진 이름이다.”
“데!!!!!”
“공원에 가봐라. 치비코라 소리치면 사육 자실장의 반은 달려올 거다.”
“그럼... 그게 나를 부르는 게 아니었던데스? 공원에서 가끔 꿈결에 들리던 목소리는...”
털썩
중얼거리다가 뒤로 쓰러지는 미도리를 본 남자가 발 끝으로 뒤집어 봤지만 파킹한게 아니라
단지 충격에 실신한 거 같았다.
“쓸데없이 섬세한 녀석이다...”
남자는 그저 그 실장석을 골판지에 밀어 넣곤 뒤돌아섰다.
그날부터 미도리의 삶이 시작 되었다.
남자는 자신이 말한 대로 학대파는 아니었고 골판지엔 낡았어도 수건을 가득 밀어 넣어뒀었
다.
물은 수도에서, 먹이는 가축용 실장푸드를 넉넉히 주자 처음엔 날뛰던 미도리는 어느 정도 마
당의 생활에 적응 하고 있었다.
“데스! 보는데스!”
“오 미도리. 오늘은 제법이구나.”
수북히 쌓인 잡초를 보이며 가슴을 펴는 미도리를 칭찬하며 남자가 콘페이도 한 알을 줬다.
“테츄웅♥ 콘페이도테츄웅~”
언젠가 미도리가 심심함을 이기지 못하고 잡초를 뽑아 휘두르고 놀던 걸 본 남자가 미도리에
게 제안을 한 것이다.
작은 상자를 마당에 두고 잡초를 뽑아 다 채우면 콘페이도를 주기로.
처음엔 반도 안채우고 콘페이도를 요구하거나 나뭇가지 위에 잡초를 덮던 미도리지만 그렇게
하면 콘페이도를 받지 못하자 결국 성실히 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걸로 남자와 교류도 늘고 시간이 지나며 미도리를 대하는 남자의 말투도 약간 부드
러워져있었다
그래도 미도리는 알몸이었고 곧 있으면 겨울이 다가올 것이다.
동사할 지경이 되면 남자가 어떤 식으로든 손을 써 주겠지만,
어느 날 미도리와 남자의 관계에 금이 가게 하는 일이 생겼다.
데...데수우...
그날도 남자가 없는 사이 잡초를 열심히 뽑던 미도리가 손을 멈췄다.
미도리의 눈에 들어온 건, 때늦은 풀꽃 한 송이였다.
“다녀왔습니다.”
그날 저녁. 남자는 빈집에 들어서면서도 습관처럼 인사를 했다.
혼자 살면서 외로움을 잊으려는 듯 생긴 버릇이다.
물론 그렇다고 구태여 미도리에게 가서 인사를 하거나 하진 않지만, 대부분은 미도리가 잡초
로 가득한 상자를 끌고 데스데스 거리며 오는 것이다.
“응?”
남자는 미도리가 안 보이는 것과 상자가 반도 안 차있는걸 깨달았지만 딱히 의무를 부과한건
아니기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집에 들어갈 뿐이었다.
“어이 미도리 집에 있는 건가?”
데이...
그 다음날에도 미도리가 보이지 않자 남자는 골판지 앞에서 미도리를 불러봤다.
그냥 안 보이는 게 아니라 고양이한테 물려가지나 않았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미도리는 입구에 몸을 반만 드러낸 채 작게 울었다.
녹색의 오른쪽 눈만 내놓은 미도리는 그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야. 일은 그만둔 건가?”
“데에...요즘 몸이 안 좋은데스. 일은 쉬는데스.”
“그래? 강요는 아니지만 약속이니 콘페이도는 주지 않겠어.”
“알겠는데스. 그보다 아플 땐 잘 먹어야 하는데스. 밥을 좀 더 주면 좋은데스.”
“그 정도는 해주지. 병원엔 안 가도되겠나?”
“데! 괘.괜찮은데스. 와타시는 쉬는데스. 주인님도 어서 들어가는데스.”
“...? 그래. 알겠다.”
잠시 뒤 남자는 평소보다 좀 더 많은 가축용 실장푸드를 밥그릇에 부었다.
데프프프프... 데스데이스데스. 뎃데로게~젯데로게~
“?”
그때 뭔가 평상시하곤 다른 울음소리가 들렸지만, 핸드폰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남자는 의아
해하면서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돌아섰다.
뎃데로게~
그리고 3주가 지났다.
남자는 꽤 오랫동안 미도리가 돌아다니지 않는 건 신경이 쓰였지만 그래도 실장푸드는 매번
사라지고 있고 가끔씩 입구에서 오른쪽 몸만 드러낸 채 주위를 살피는 모습을 보긴 했었다.
주위를 살피던 미도리는 남자가 보고 있는걸 알자 뎃! 하면서 아픈 실장석치고는 재빠르게 집
안으로 사라졌다.
물론 그동안 미도리가 잡초를 뽑는 일도 없고 콘페이도를 받지도 못해 약간 정리된 마당은 다
시 잡초가 무성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 주말 오전.
휴일이라 집에서 쉬던 남자는 갑자기 마루 유리에서 시끄러운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왔다.
데에에에에! 데스우우우우우!
쾅쾅쾅쾅
남자가 마루를 쳐다보자 마루 유리창에 미도리가 달라붙어 양 눈에서 붉은 눈물을 흘리며 유
리를 미친 듯이 두드리고 있었다.
집안에서 사는 걸 포기 한 후엔 한 번도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거에 의아해한 남자가 문을
열었다.
“뭐야 왜 그래... 응?”
미도리의 모습은 이전과 딴판이었다.
오드아이였던 두 눈이 붉은색이 되어 있다는 것과,
커다랗게 부푼 배가 알몸이라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너... 임신한거냐?”
“데에에엣! 자가 나오는데스! 필요한 물이 없는데스! 빨리 물을 준비해 주는데스!”
임신사실을 끝까지 숨기려던 미도리는 출산이 임박해서야 이 마당에선 인간의 도움 없이는 제
대로 자를 낳는 게 불가능 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물웅덩이를 찾아 수풀을 헤매거나 손이 안 닿아 주인이 열어주던 수도꼭지를 돌리려
애썼지만 헛수고였고, 한계에 달해 유리를 두들겼다.
지금이라면 인간에게 들켜도 일단 낳아버리면 어쩔 수 없이 같이 길러줄 것이란 생각을 한 것
이다.
그런 결론을 내곤 빨리 자를 낳을 준비를 해줄 것을 요구하며 남자를 올려다본 미도리는,
지금껏 지내며 처음으로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다.
“이 분충 새끼가!”
퍼억!
“데에겍!!!”
집에 온 뒤 지금껏 미도리에게 폭력을 가한 적이 없던 남자가 크게 화를 내며 처음으로 폭력
을 사용했다.
전력으로 걷어찬 남자의 발에 남산 만하게 부푼 배를 차인 미도리는 뒤룩뒤룩 살찐 몸이 뒤로
날려가 쿵 소리와 함께 등으로 떨어졌다.
“데에에엑! 안 되는데스우!! 안 되는데스!!”
고통보다도 배에서 느껴진 감촉에 경악하는 미도리.
방금 차인 때 퍼억 하는 소리와 동시에 배안에서 꾸지직거리는 소리와 파킹이라는 소리가 여
러 번 난 것이다.
“데에에엑! 데에엑! 와타시의 자가!”
“시끄러워! 그때도 새끼들 낳겠다고 우리 어머니를 마음 고생시키고 제멋대로 나가버리더니
이번에도 마음대로 굴어?”
레...레후...
그때 희미한 소리가 난 남자의 발밑에 남자와 미도리의 시선이 향했다.
아까 차인 충격으로 미도리도 모르게 밀려나왔는지 남자의 발밑, 미도리가 서있던 자리에 점
막에 쌓인 구더기실장이 한 마리 꿈틀대고 있었다.
“기다리는데스! 마마가 지금 가는데스!”
격통이 느껴지는 배를 부여잡고 간신히 일어난 미도리가 구더기에게 달려가는 동안 남자가 입
을 열었다.
“...미도리. 나는 딱히 임신을 금지하지 않았었다. 자실장 몇 마리 정도야 더 기를 수 있고 마
당을 관리할 손도 늘어나니 네가 요구한다면 아마 들어줬을 것이다.”
남자의 말은 듣지도 않는 채 구더기에게 손을 뻗는 미도리를 본 남자가 발을 들었다.
“내가 화가난건...”
쾅!
레뺘악!
남자가 발을 내려 구더기를 짓밟았다.
그러나 약간 빗나가 꼬리부분만 밟힌 구더기의 하반신만 뭉개지고, 상반신은 그 압력에 옷에
서 쏙 빠져 날아갔다.
“데에에엑!”
“마..마..레후...”
갑자기 날아든 구더기의 알몸 상반신을 엉겁결에 받아든 미도리.
절반만 남은 구더기는 미도리의 품안에서 희미하게 꿈틀대곤 곧 죽었다.
“...네가 인간하고 지내면서도 또다시 제멋대로 굴고 게다가 그걸 끝까지 숨기려 한 것에 화가
난 거다. 정말이지 자기만 좋으면 남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생물이군.”
“오로로로로! 오로로로롱!!!”
절반 구더기를 안고 오열하는 미도리 앞에서 남자는 뒤돌아섰다.
“...미리 임신을 금지시키지 않은 내 잘못도 있으니 더 혼을 내진 않겠다. 나머진 좋을 대로해
라.”
“데에에에에! 물데스! 물은 어디 있는데스! 웅덩이를 준비하는데스우우우!”
애원을 해봐도 남자가 그대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리자 미도리는 미친 듯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없는 물웅덩이가 생길 리도 없다.
미도리의 작은 물그릇은 자를 낳을 수 없었고 그것도 애초에 미도리가 물웅덩이를 만들려고
엎어버렸다. 물론 풀밭에 흐른 약간의 물은 땅에 순식간에 스며들 뿐이었다.
구더기의 상반신을 끌어안은 채 우왕좌왕 거리던 미도리에게 한계가 찾아왔다.
마치 심한 설사가 난 듯이 심한 복통이 덮쳐오자 미도리는 자신도 모르게 선채로 총배설구의
힘을 빼버렸다.
데....... 뎃데로게에에에에에~
뿌지지직!
그리고 나온 것도 설사와 별 차이는 없었다.
가혹한 한계상황에 정신이 나간 듯 붉은 두 눈이 탁해진 채 난데없이 태교의 노래를 부르는
미도리의 다리 사이에서 적록색의 고깃덩이들이 쏟아졌다.
충격에 박살난 자들.
대부분 뭉개진 구더기들이었지만 태내에서 점막이 찢겼는지 반쯤 자실장이 된 팔다리도 섞여
있었다.
젯데로게에~. 게에... 게에에에에에...
발아래 수북히 쌓인, 원래는 '와타시의 자'였을 물체들을 보고 실이 끊긴 인형처럼 뒤로 넘어
지는 미도리.
그러나 미도리에겐 실신도 허락되지 않았다.
텟테레이~. 레후?
데...데...
살아남은 자가 있었는지 적록의 기분 나쁜 덩어리 사이에서 하나둘씩 구더기가 얼굴을 내밀었
던 것이다.
그 소리를 듣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미도리가 손을 뻗어 구더기하나를 안아 올렸다.
물 없이 잔디위에 낳아져 이미 마르기 시작하고 흙투성이인 점막을 꽤 오랜 시간이 걸려 간신
히 제거해주자 그 구더기는 자실장이 되었다.
테치? 테치치!
팔다리가 신기한 듯 움직여보는 귀여운 자실장의 모습에 흐뭇해할 사이도 없이 미도리는 다른
구더기를 핥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번에도 자실장이 되었지만 그 다음엔 오랜 시간이 지난 셋째는 구더기실장인 채로
였다.
데...데스!
황급히 다음 구더기에게 손을 뻗는 미도리.
데?!
그렇지만 안아 올린 구더기는 이미 혀를 빼물고 눈동자가 탁해져있었다.
점막이 말라 질식사한 구더기를 슬퍼할 틈도 없이 내려놓고 다른 구더기를 안아든다.
데!!
그 구더기도 똑같이 죽어있었다. 물이 없는 이곳에선 세 마리의 점막을 핥아주는 동안 나머지
는 질식한 것이다.
죽은 구더기를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는 미도리. 그렇지만 더 이상 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로로로롱! 오로로롱!
출산이 끝나 원래대로 돌아온 두 눈에서 적록의 피눈물을 흘리며 고깃덩이들을 헤집는 미도
리.
그렇지만 이미 박살난 자들의 덩어리 속에 형태를 유지한 자는 하나도 없었다. 팔다리나 머리
를 세어보면 대략 열마리 정도의 자가 태어났겠지만 반은 남자의 발에 태내에서 뭉개지고, 몇
마리는 점막 안에서 질식한 것이다.
오로로로롱! 오로로로롱!
적록색의 시산혈해 한가운데서 주저앉아 통곡하는 미도리.
이번에야 말로 인간의 보살핌아래 꿈꾼, 자들과의 행복한 삶이 또다시 순식간에 짓밟혔다.
테치...?
레후!
....데이.
그때 등 뒤에서 살아남은 자식들의 소리를 듣고 미도리가 정신을 차렸다.
이 살아남은 자들만이라도 길러야한다.
다행히 인간이 죽이거나 버리진 않을 것 같으니 이 자들을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자들을 낳자.
그런 생각을 하며 억지로 미소를 지은 미도리가 돌아서며 자들을 안아주려 손을 내밀었다.
파킹.
데?
그때 미도리를 올려다보던 자실장 한 마리에게서 날카로운, 실장석에겐 본능적으로 소름이 끼
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두 눈이 탁해진 자실장이 천천히 뒤로 쓰러졌다.
데? 데에에에!
갑자기 자실장 하나가 죽은 것에 이유도 모르고 경악하는 미도리.
테치! 테치치이이!!
레후레후레후레후...
다른 자실장 하나는 어느새 마루 유리창에 달라붙어 미친 듯이 유리를 콩콩 두드리고 있었고
구더기실장은 헐떡이며 기어 멀어지고 있었다.
테치! 테치!!!
그 자실장은 유리 너머로 보이는 남자에게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구하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마주친,
온몸이 자매들의 피와 고기로 얼룩진 커다란 동족에게서 구해주기를.
그 끔찍한 모습은 자들을 파킹시키고 겁에 질려 도망치게 하기 충분했다.
막 태어난 실장석의 머리는 점막을 핥아준, 상냥한 게 당연할 마마와 무서운 피투성이의 동족
을 다른 개채로 구분해 버린 것이다.
발이 느려 아직도 기어가는 구더기도 남자를 향하고 있었다.
완전히 인간에게 기생하는 본능이 박힌 실장석들은 태어나서 마마가 '없어지고' 위험을 느끼
자 인간에게 향했다.
데에에에에! 데스!!!
레후우?!
자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이유를 이해 못한 미도리가 달려오자 필사적으로 도망가던 구더
기는 비명을 지르며 둥글게 몸을 말았다.
구더기실장의 유일한 방어수단이다.
데?! 데에에!
구더기가 자신을 보고 방어 자세를 취하는걸 보고 놀라는 미도리.
어떻게든 구더기를 달래고 안으려 하지만 미도리의 손이 닿자 구더기는 비명을 지르며 더 몸
을 움츠릴 뿐이다. 파킹을 염려한 미도리가 결국 손을 뗐을 때 자실장의 소리가 들렸다.
테! 테츄우웅~♥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온 남자를 올려다보며 입에 손을 대고 아첨을 하는 자실장.
자세도 소리도 유전자에 박힌 대로, 실장석의 본능대로 보호를 요구하는 것이다.
남자는 힐끗 자실장을 내려다봤다가 미도리를 향해 린갈을 켰다.
“셋, 아니 두마리가 살은 건가. 말한 대로 죽이진 않겠다. 하지만 집에 들어오려 하거나 시끄
럽게 굴면 죽이겠다.”
“데!”
남자의 말을 들은 미도리가 놀라며 달려와 자실장을 끌어당겼다.
“테치이이이! 무서운테치! 도와주는테치이!!”
“무슨 소리데스! 와타시는 마마데스!”
“인간상. 살려주는테치이!”
린갈을 응시하던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분충성뿐만 아니라 멍청하기까지 한 건가. 사육실장으로서 교육을 받은 어미에게 태어났어도
어쩔 수 없는 생물이다.”
남자는 갑자기 미도리를 잡아 올리더니 수돗가로 들고 갔다.
“무슨 짓데스! 놓는데스! 와타시의 자들이 저기 있는데스! 데엑?!”
촤아아아악!!!
"데에에에엑!”
수돗가에 미도리를 내려놓은 남자가 수도꼭지를 최대한 돌리자 거세게 쏟아진 물이 미도리를
짓눌렀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대량의 물에 납작해질듯이 눌리는 미도리.
몸에 묻은 적록의 얼룩과 총배설구에 남았던 고기조각들이나 대변이 눌려 나와 물을 타고 흘
러갔다.
“치프프프프!”
“데게!”
수압에 눌리던 미도리는 자실장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자실장은,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치프프프. 꼴 좋은테치. 역시 인간이 아타시를 구해준테치.”
“레후? 인간이 구해준레후! 사육실장레후!”
어느새 다가온 구더기도 미도리와 남자를 보더니 남자에게 기어가기 시작했다.
끼릭.
“데에...”
그때 남자가 물을 잠갔다.
“테치?”
적록색 얼룩이 씻겨나가 알몸이지만 깨끗해진 미도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자실장.
“테?”
아직도 피투성이의 무서운 동족과 마마의 구분이 애매한것 같았다.
“테... 마마...? 텟?!”
자실장이 간신히 마마란 말을 말한 순간 남자가 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자신을 보호해야할 인간이 떠나는 것에 놀란 자실장이 쫓아가지만 남자는 무심히 문을 닫고
사라졌다.
테...테...테치이이이!
그리고 미도리를 돌아본 자실장이 혼란해하다가 비명을 질렀다.
간신히 마마를 인식하려던 자실장은 인간이 사리진 공포에 덩달아 미도리를 무서운 존재로 다
시 인식해 버린 것이다.
레후레후!
마찬가지로 다시 공포에 떠는 구더기실장을 재빨리 껴안은 자실장은 다가오는 미도리를 피해
수풀로 도망갔다.
데! 데스우!
뒤에서 미도리가 외쳤지만 오히려 그 소리에 자실장은 비명을 지르며 더 빨리 달려갔다.
텟치! 텟치! 텟치! 텟치!
데스우...
그 모습을 본 미도리가 힘없이 손을 내렸다.
지금껏 수많은 자를 잃었지만 간신히 남은 자가 자신을 두려워하는 상황은 미도리에게 심한
충격을 줬다.
수풀에 숨어 이쪽을 지켜보는 자실장과 구더기에게 다가가도 다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뿐이
다.
그래봤자 자실장의 속도라 쉽게 따라잡을 순 있지만 잡아도 어쩔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미도리
는 힘없이 골판지 안으로 들어갔다.
오로로로롱....
그리곤, 골판지 안에선 흐느낌 같은 울음소리가 밤늦도록 들려왔다.
한밤중.
눈물자국을 남긴채 실신하듯 잠들어있던 미도리는 문득 들린 소리에 눈을 떴다.
데스?
테치...
골판지의 입구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자실장을 발견한 미도리는 자가 자신이 마마라는걸 깨
닫고 다가온 것이라 생각해 벌떡 일어났다.
데스! 데스우~
테치치!!!
하지만 미도리가 움직이자 자실장은 찢어지는듯한 비명을 지르며 바로 도망갔다.
데! 데스데스!
황급히 따라 나온 미도리의 알몸에 차가운 밤공기가 느껴졌다.
늦가을, 거의 겨울이 되가는 시기의 밤공기는 영하는 아니더라도 꽤 차가웠다.
자실장이 추위를 못 견디고 본능적으로 골판지를 향해 다가왔다는 걸 깨달은 미도리는 다시
골판지로 들어갔다.
그리곤 입구 바로 옆에 기대선 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잠시 후.
테치...
입구 바깥에서 자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도리가 안에 있는걸 알았으니 들어오진 않겠지만 미련을 못 버리는지 따듯한 골판지의 입구
로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그리고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 순간 미도리가 뛰쳐나왔다.
테?! 테치치!
기습을 당해 놀란 자실장이 뒤돌아 도망가기 전에 미도리는 자실장을 꽉 끌어안았다.
테치! 테치이!
데스! 데스데스! 데스우!
팔 안에서 버둥거리는 자실장을 향해 필사적으로 말을 거는 미도리.
하지만 공포에 질린 자실장은 팔에서 벗어나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리곤.
테! 테샤앗!
덱!
자실장이 미도리의 손을 힘껏 깨물자 갑작스런 격통에 미도리가 무의식중에 팔을 뺐다.
텟!
퍼억!
테챠아아악!!
미도리의 팔에 딸려가 내동댕이쳐진 자실장은 골판지 벽에 세게 부딪힌 후 튕겨 다리부터 바
닥에 떨어졌다.
태어난 지 하루도 안 된 연약한 몸은 그 정도 충격에도 두 다리가 좌우로 꺾여 부러지고 풀이
라도 뜯어 먹었었는지 순식간에 팬티가 녹색 빵콘으로 부풀었다.
데! 데스!
그 모습을 본 미도리가 놀라며 손을 내밀었지만 자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기어 수풀로 도망
가기 시작했다.
데스! 데스우!
테샤아! 테샤아아!
덱!
다가오는 미도리를 본 자실장이 필사적으로 위협을 하다가 팡콘한 대변을 던졌다.
대변을 얼굴에 맞은 미도리가 망연자실해 서 있는 동안 자실장은 질질 기어 수풀에 다다랐다.
레후레후!
테치...
수풀에서 고개를 내민 구더기실장을 밀어 넣은 자실장은 미도리를 돌아보지도 않고 기어 수풀
안으로 사라졌다.
데에에...
찾아온 기회가 최악의 형태로 사라지고 이젠 자에게 적으로 생각되게 된걸 깨달은 미도리가
절망해 작게 울었다.
터덜터덜 골판지로 들어간 미도리는 이불로 쓰던 낡은 수건을 들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바닥
에 다시 내려놨다.
데스! 데스우!
그리곤 바깥에 나와 자실장이 있는 수풀을 향해 큰소리로 울더니 반대쪽 수풀로 들어가 모습
을 감췄다.
그리고 한참 후.
테...테치...테치이...
부러진 다리를 질질 끌고 수풀에서 기어 나온 자실장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골판지로 향했다.
오늘 갓 만들어진 녹색 실장옷이 너덜너덜 해지고 흙투성이가 되서야 입구에 도착한 자실장이
조심스럽게 입구를 들여다보곤 수풀을 향해 울었다.
테치!
레후? 레후후!
그러자 구더기가 기어 나와 열심히 골판지를 향해 기어왔다.
테치!
레후!
잠시 뒤 골판지 안에서 수건 위를 뒹굴며 기뻐하는 자실장과 구더기의 소리를 들은 미도리가
다시 작게 울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곤 자와 같이 지내지 못하는 걸 슬퍼할 여유도 없이 다시 낙엽을 주워 침상을 만들기 시
작했다.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뎃?!
그 다음날 아침은 자실장의 울음소리로 시작되었다.
눈을 뜬 미도리는 차가운 곳에서 낙엽만 의지해서 잔 몸 여기저기가 쑤셨지만 자의 울음소리
에 몸을 일으켜 수풀사이를 내다봤다.
테에에엥!
마당에 놓인 실장푸드가 담긴 그릇 옆에서 자실장이 울고 있었다.
울다가 다시 실장푸드 하나를 집어 들고 씹으러하지만 너무나 맛있을 것 같은 냄새가 나는 그
것은 딱딱해서 자실장의 이빨론 씹기는커녕 갉을 수조차 없었다. 애초에 자실장용이 아닌 가
축용 실장푸드인데다가 제법추운 날씨에 딱딱해진 것이다.
벌써 몇 번을 시도해봤는지 흙바닥에 던져진 실장푸드가 여러 알 놓여있었고 그중 하나에 구
더기가 달라붙어 필사적으로 낼름거리고 있었다. 자실장도 핥아보지만 오히려 조금 느껴지는
맛이 먹을 수 없다는 괴로움을 부추길 뿐이다.
테에에엥!
결국 그 실장푸드도 던져버린 자실장이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태어나서 모유는커녕 잡초 밖에 먹지 못한 허기와 맛이 분명 느껴지는데도 먹지 못하는 억울
함이 밀려와 울뿐이었다.
데스...
테!
그 모습을 본 미도리가 수풀에서 나오자 기겁한 자실장이 구더기를 질질 끌고 도망쳤다. 영양
이 부족해서인지 다리는 다 회복이 안 되어 좌우로 심하게 절뚝이면서도 자신에게서 필사적으
로 도망치는 자들을 본 미도리가 슬프게 울었다.
자실장이 수풀로 도망가고 나서야 밥그릇에 다가간 미도리가 실장푸드를 먹기 시작했다. 양은
병을 핑계로 더 받기 전으로 돌아갔어도 원래 그다지 부족한 양은 아니었다. 오히려 양이 줄
거나 아예 밥을 안 주지 않는 게 신기하지만 미도리는 출산으로 지친 몸을 추스르려 정신없이
실장푸드를 먹느라 남자의 작은 자비를 신경 쓰지 않았다.
테치이...!
그래서 수풀 안에서 실장푸드를 먹는 자신을 증오스럽게 쳐다보는 자실장의 시선도 눈치 채지
못했다.
자실장은 심한 허기와 맛있을 것 같던 그것을 모두 먹어버리는 무서운 동족에 대한 공포에 시
달리며 미도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데에...
그릇안의 실장푸드를 다 먹은 미도리가 자실장이 던진 실장푸드를 주워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곤 그릇에 모은 실장푸드를 작은 돌로 내리쳤다.
데스! 데스!
쪼개진 실장푸드를 계속 내리쳐 작은 조각이 되자 미도리는 자실장이 있는 수풀을 향해 뭔가
를 외쳤다.
대답이 없는 수풀을 응시하던 미도리가 힘없이 돌아서 반대편 수풀로 사라지자 잠시 뒤 자실
장과 구더기실장이 나왔다.
테치? 테치이!
레후레후~
작게 쪼개진 실장푸드를 삼켜본 자실장과 구더기가 기뻐하며 실장푸드를 삼키기 시작했다.
데스우...
그 모습을 지켜본 미도리가 흐뭇한 듯 작게 울었다.
이대로 자들에게 자신이 위험하지 않고 도와주는 존재라고 가르치면 언젠간 자신을 마마라고
알아줄 것이다.
그런 만족감과 아직 지친 몸, 만복감이 겹치며 미도리는 기절하듯 다시 잠에 빠졌다.
테치테치!
한편 자실장은 입에 가득 느껴지는 맛있는 음식에 기뻐하고 있었다.
고급실장푸드 보단 휠씬 못한 가축용 푸드지만 태어나자마자 하루동안 굶고 생전 처음으로 뭔
가를 먹어본차실장에겐 콘페이도나 다름없었다.
한동안 정신없이 실장푸드 조각을 주워 삼키다가 다 먹어버리고 나서야 만족한 자실장이 배를
쓰다듬으며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구더기를 찾았다. 태어나자마자 ‘마마가 없는’ 상태로 자매
를 잃고 공격받아서인지 자실장과 구더기는 유난히 사이가 좋았다.
보통이라면 구더기는 어젯밤 배고픈 자실장의 뱃속으로 사라졌어도 이상할 게 없는 것이다.
레...레에에...
테치?!
그때 그릇 아래서 꿈틀대며 괴로워하는 구더기를 본 자실장이 놀라 다가갔다.
구더기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구부렸다 폈다 반복하고 있었다.
테치! 테치?
레후우...
복통을 호소하는 구더기를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실장.
자실장과 달리 구더기는 아직 모친의 젖만 소화시킬 수 있는 시기인데다가 바닥에 떨어졌던
실장푸드를 부수며 흙이나 모래가 섞인 것도 집어 삼켜 구더기의 연약한 위장에 굳어졌다는
것도 알 수 없지만, 알아도 어차피 자실장이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레...레후레후.
드러누워 푸니푸니를 요구하는 구더기를 보고 자실장도 푸니푸니를 하면 구더기의 복통이 사
라질 거라고 생각하곤 구더기의 부드러운 배에 손을 댔다.
테치테치~
레후레후~♥...레,레에엑!
생애 첫 푸니푸니에 꼬리를 흔들며 기뻐하던 구더기는 본능적으로 대변을 싸러 힘을 준 후 비
명을 질렀다.
위장에서 뭉친 흙과 모래가 대변과 섞여 시멘트처럼 굳은 것이다.
푸니푸니 되면서도 대변을 못 보는 것과 복통에 더 괴로워하는 구더기를 보며 울상이 된 자실
장이 한층 열심히 구더기를 눌러준다.
레후~ 레엑! 레후레후...
쾌감과 고통의 도가니에 빠진 구더기가 대변을 하기위해 있는 힘껏 총배설구에 힘을 준 순간.
마침 자실장도 구더기의 배를 누르는 참이었다.
푸와악!
레뺘아아악!
그리고 굳어진 대변 덩어리가 총배설구를 찢으며 뿜어지고 그와 동시에 구더기의 입에서 내장
이 밀려나왔다.
테에에에?! 테에에! 테에에엥!
자실장이 순식간에 너덜너덜한 고깃덩이가 되어 버린 구더기에 놀라며 구더기를 안아들었지만
구더기는 이미 죽은 뒤였다.
데? 데스?
그 소리에 놀란 미도리가 풀숲을 헤치고 나온 순간 자실장의 눈이 미도리를 향했다.
테....
그리곤 조각난 실장푸드의 부스러기로, 그다음엔 처참한 구더기의 시체로 향했다.
테...테샤아아아!!
데에에?
구더기가 죽은걸 보고 달려오던 미도리가 자실장의 위협에 멈춰 섰다.
어제완 달리 지금은 공포가 아닌 증오가 담긴 위협이 란걸 느낀 것이다.
피눈물을 흘리며 위협하던 자실장은 죽은 구더기를 내려놓곤 절뚝이며 수풀로 도망갔다.
오....오로로로로롱!!! 데에에엥!!!!
자실장이 사리진 뒤 미도리는 구더기의 시체를 안고 남자가 올 때까지 오열했다.
“... 그래서. 이건 어떻게 된 거지?”
저녁에 돌아온 남자는 반쯤 찢어진 구더기를 안고 울고 있는 미도리를 보고 한숨을 쉬곤 린갈
을 켰다.
“데에에... 구더기가 죽은데스...”
“보면 알아. 네가 죽인 거냐?”
“아닌데스! 그런 일 할리가 없는데스!”
“네가 자를 죽이던 말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다. 아니라면 어째서 죽은 거지?”
“모르는데스... 잠든 후 깨니 이런데스...”
“거짓말테샤아!”
“데?”
남자가 있는 것에 용기를 얻은 것인지 자실장이 수풀에서 뛰쳐나왔다.
영양을 섭취해 다리가 나은 것인지, 달려와서 남자의 바지를 부여잡은 자실장이 외쳤다.
“저 알몸이 맛있는 거에 뭔가 한테치! 그걸 먹은 후 구더기짱이 죽은테치!”
“음... 이건...”
구더기와 바닥을 천천히 살펴본 남자가 말했다.
“전쟁 중에 먹을 게 없어서 흙을 먹고 대변이 굳어져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지만...사
람이면 변비로 끝날 일이 실장석에겐 총배설구가 찢기는 수준인가...”
“데!”
남자의 말을 듣고 사정을 이해한 미도리가 놀라 외쳤다.
“와타시 때문인데스...? 와타시는 그냥 자들에게 밥을 먹게 하고 싶었던 것뿐 데스....데스우우
우....”
신파극 같은 슬픈 장면이겠지만 울고 있는 게 뒤룩뒤룩 살이 쪄 뱃살이 늘어진 알몸의 실장석
이라면 역겨운 광경일 뿐이다.
테치!
덱?!
그때 미도리의 뒤통수에 작은 돌조각이 날아와 맞았다.
남자가 혼을 냈다고 생각한 미도리가 고개를 들자 돌을 던지는 자실장이 보였다.
“네가 구더기짱을 죽인 테치! 자매들도 죽인테치!”
“아닌데스. 와타시는....”
“마마도 네가 죽였을테치!!”
“데샤아아아! 무슨 소리데스! 와타시가 너의 마마데스!”
“테!”
돌을 던지려던 팔을 움찔 멈춘 채 멍해지는 자실장. 보다 못한 남자가 말을 했다.
“사실이다. 저 실장석이 너의 어미다.”
“테...테...”
부들부들 떨며 미도리를 보는 자실장.
그 시선에 미도리가 희망을 품고 말을 꺼내려던 순간 자실장의 양 눈에서 적록의 눈물이 흘렀
다.
“너 같은거 마마가 아닌테샤아아! 아타시를 던진테치! 죽이려 한테치! 다리 아프고아픈테치
이!!!”
망연자실한 미도리를 내버려두고 남자의 다리에 매달린 자실장이 애원했다.
“인간상 도움을 요구하는테치! 길러주는테치! 저 무서운 들실장에게 살해 당하는테치!”
“길러봐도 좋지만.”
“테치!”
“데스?!”
전혀 예상도 못했던 남자의 대답에 자실장 뿐만 아니라 미도리도 놀랐다.
“단지 조건이 있다.”
“테치! 뭐든지 하는테치!”
“너의 붉은 오른쪽 눈을 의안으로 바꾼다. 물론 제대로 실장병원에 데려가서 수술로.”
“테! 그러면 자를 가질 수 없는테치!”
“그래서다. 맘대로 자식을 낳는 건 금지. 이것과 기본 예의범절만 알면 길러 봐도 좋아.”
“테...테... 안되는테치... 아타시는 자를 가득 낳는테치. 죽은 자매들 몫까지 가득 가족을 만들
어 행복해 지는테치!”
“역시 그런가.”
남자는 경멸하는 눈으로 자실장과 미도리를 내려다봤다.
“유전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생물인지... 아 미도리. 네가 온 이후 실장석에 대해 좀 알아봤
다. 실장석같이 생물 피라미드의 바닥에 있는 약한 생물은 종을 보존하기위해 다산하고 자식
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식들 간수도 못하고 동족식이 흔하다니 이해안
가는 생물인건 변함없지만.”
“데에..?”
“어차피 이해 못하나. 어쨌든 자실장. 네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니 기르진 않겠다.”
“...이름테치.”
“응?”
“자실장이 아닌 테치! 저 녀석을 미도리라는 이름으로 부른 테치! 아타시도 이름을 받는테치!”
“이름은 사육실장에게 주는 것이다. 너가 거부했으니 이름이 없는 건 당연한 거지.”
“그럼 저 녀석은 사육실장테치?”
“원 사육실장이었지. 이름은 그 흔적일 뿐이다.”
말을 끊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남자를 자실장이 뒤쫓았다.
“기르는테치! 길러주는테치!”
“조건을 받아들이는 건가?”
“그건 안 되는테치...”
“그럼 시간낭비하게 하지마라.”
“기, 기다리는데스!!”
그때 미도리가 절규하듯 소리쳤다.
“왜 그러냐. 미도리.”
“자를... 저 자를 길러주면 좋은데스.”
미도리로선 자와 헤어질 각오를 한 고통스런 결단 이었지만 남자는 냉정했다.
“계속 귀찮게 하면 내쫓는다. 저 자실장은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 자를 사육실장으로 만드는데스!”
“뭐?”
자랑스럽게 가슴을 편 미도리가 자실장을 돌아봤다.
아무리 미움 받고 부정당해도,
끊을 수없는 모정이 담긴 자애로운 눈길이었다.
“너에게 이름을 주는데스. 그러면 너도 사육실장데스.”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내놓은 결론 치곤 허무했지만 미도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실장에게
이름을 알려줬다.
“너의 이름은... 치비코데스.”
치비코.
미도리의 원래 이름.
옛 주인에게 붙여진 소중하고 소중한 이름.
비록 그게 자신만의 유일한 이름이 아닌걸 알았어도 미도리에겐 소중한 것 이었다.
그 이름을 미도리는 유일하게 남은 자에게 물려줬다.
“......”
실장석끼리 이름을 붙이면 인간의 사정은 무시하고 사육실장이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행복회로
폭발에 남자가 착각을 고쳐 주기위해 입을 열려했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그딴 이름 필요없는테치!”
“데에!”
자실장은 전력을 다해 치비코를 거부했다.
치비코의 이름을 거절했다.
미도리가 소중하게 품고 있던 치비코의 기억을 부정했다.
“너 같은 거에게 이름을 받지 않는테치! 인간상 이름을 주는테치! 이름을 받은 아타시를 기르
는테치!”
“부모는, 아니 부모라 인정 안했다지만 거부한 상대의 제안은 좋을 거 같으니 이용하는 건
가...”
“데...데...데스우우우!!”
그때 미도리가 자실장에게 달려들었다.
“테챠아?!”
자실장은 비명을 질렀지만 미도리는 자실장을 공격하려던 건 아니었다.
그저 피눈물을 흘리며, 자실장의 어깨를 잡고 설득하려고 필사적이었다.
“어째서 그런 걸 말하는데스! 마마가 너한테 이름을 준데스! 와타시가 너의 마마데스! 왜 모르
는데스!!”
“테,테,테,테,테,테,테...”
어깨를 잡혀 격렬히 헤드뱅잉을 당하던 자실장은 공격당하는 공포에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그러다가 미도리가 그 난리에 왼쪽 어깨를 놓치자 재빨리 돌아서서 도망쳤다.
우직
“테! 테챠아아아아!!!”
그러자 당연히 잡힌 오른쪽 어깨에서 이쑤시개를 부러트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자실장의 오른
팔이 축 쳐졌다.
격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벗어나려는 자실장과 반 광란이 되어 자실장의 팔을 힘껏 끌어당기는
미도리.
푸지직...
그 순간 생고기가 우그러지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자실장의 오른팔의 고기가 깨끗히 발라졌
다.
“테? 테?!”
“데...데...?”
가느다란 뼈만 남은 자신의 오른팔을 이상하게 쳐다보는 자실장.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맛있는 냄새가 나지만, 자의 팔이었던 흐물흐물한 고기를 내려다보
는 미도리.
털썩털썩
그대로 눈을 뒤집고 뒤로 쓰러진 실장석들을 본 남자는 한숨을 쉬고 뒤처리를 하기 시작했다.
미도리를 골판지에 밀어 넣은 남자는 구더기의 시체와 자실장의 팔 고기를 음식쓰레기 건조기
에 넣곤 자실장의 치료를 시작했다.
테이...
몇 시간 후 눈을 뜬 자실장이 작게 울었다.
처음 느껴진 건 난생 처음의 따듯한 물에 잠긴 몸. 따듯한 공기. 밤인데도 밝고 아름다운 방
안이었다.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인간용 자양강장제에 어깨까지 잠긴 자실장의 팔은 이미 손을 제외하곤
새살이 돋아있었다.
보는 중에도 새살이 돋아가는 손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자실장은 자양강장제의 냄새를 맡고 들
이마셔 봤다.
테! 테치! 테츄웅~테츄웅~
자양강장제는 단맛을 중시해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태어난 지 이틀째인데다가 가축용 실장푸
드와 잡초밖에 못 먹어본 자실장에겐 전율이 일 정도의 맛이었다. 그릇의 수위가 내려갈 정도
로 자양강장제를 들이마신 자실장은 피부가 반들반들해지고 힘이 넘치는 채 일어났다.
테에에에...
배가 가득해지자 이번엔 아름다운 집안의 모습에 넋을 잃는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잘 꾸미진 않았어도 마당이 세상의 전부였던 자실장에겐 신세계나 다
름없어서 따듯한 공기와 밝은 조명 아래서 기뻐하고 있었다.
실장석의 단순한 머리는 배부르고 따듯하면 할일은 하나 밖에 없다.
테치! 테치칫!
푸지직!
그나마 다행인건 반찬그릇을 넘어가지 못해 자양강장제가 담긴 그릇 안에서 가득 대변을 뿜었
다는 것이다.
드르륵! 탕!
데?
남자가 들어간 후에 깨어나 자신도 집에 들여보낼 걸 요구하며 유리창을 두들기다 지쳐 잠든
미도리는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에 깼다.
“데,데스! 주인님 드디어 와타시도 들여보내는...”
촤악!
“테챠아아악!”
대답은 남자가 뒤집은 그릇에서 쏟아진 녹색 오수였다.
달콤한 냄새와 대변의 악취가 섞인 자양강장제를 머리부터 뒤집어쓴 미도리의 머리위로 자실
장이 거꾸로 떨어져 내렸다.
“테겍!”
머리와 머리가 격돌하며 목이 이상한 각도로 꺾인 자실장이 바닥에서 자반뒤집기를 시전하고
있지만 배가 빵빵하게 부풀정도로 들이킨 자양강장제의 효과로 순식간에 재생된다.
“테! 테챠아!”
자실장의 입장에선 기분 좋게 대변을 내는 중에 갑자기 뒤에서 들린 큰 고함소리에 놀라 기절
했다가 격통에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그 무서운 동족이 다가오고 있었다.
자동으로 이 아픔도, 따듯하고 예쁜 공간이 사라진 것도 무서운 동족의 탓이라 생각한 자실장
은 실장석 기준 초스피드로 수풀에 뛰어들었다.
텟치! 텟치!
힘껏 달릴 때 내는 자실장 특유의 울음소리를 무의식중에 내며 달리는 자실장.
도망칠 때도 달릴 땐 소리를 지른다는, 인간에겐 이해안가는 본능에 충실한 자실장은 수풀에
숨고 잠시 뒤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테치이! 테치치이이~!! 치이이이이이!!!!!!
따듯하고 맛있는 게 있는 곳에서 이해할 수 없게 쫓겨난 것에 서글퍼져서 오열을 하는 자실장
쪽을 쳐다보던 미도리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주인님이 와타시의 자를 데리고 들어가자 자신
도 데리고 들어갈 거라는 기대를 부풀렸지만 헛된 희망이었다.
보통의 실장석이면 어쨌든 그 책임을 자에게 전가하겠지만 이미 광적으로 애정이 깊어진 미도
리에겐 그런 생각은 안 들었다. 그저 잠시 뒤 골판지에 들어가 어젯밤에 기뻐하던 건 잊고 골
판지와 방안을 비교해 테치! 테치! 하고 불평하며 울부짖는 자의 소리를 들으며 낙엽위에 몸
을 누일뿐이었다.
그리고 그냥저냥 한 달이 지났다.
한 달 내내 자실장은 미도리를 경계하고 도망치면서 남자가 돌아올 때마다 창에 달라붙어 들
여보낼 걸 요구하는 나날이었다.
남자가 학대파가 아니더라도 걷어차이기 딱 좋은 행동이지만 남자는 스스로 말한 대로 미도리
와 자실장에겐 어느 정도는 넘어가줬다.
그런 무미건조한 나날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데이스!
테치! 테프프!
레후? 렛훈렛훈.
어느 날 높은, 인간에겐 어깨높이도 안 되는 담 너머로 시끄러운 실장석들의 목소리가 들렸
다.
그 소리에 미도리와 자실장은 그저 데? 테? 거리며 의아해 할뿐이었다.
그리곤.
데~스웃!
렛후후후훈~
갑자기 담 너머에서 구더기실장 하나가 날아올랐다.
날아올랐달 까 담을 넘어 떨어지는 거보니 아마 친실장이 던져 넣은 것 같다.
렛!
운 좋게 덤불에 떨어진 구더기는 잠깐 기절했다가 일어났다.
레후레후~
데스! 데프프프프.
치프프프프!
그니곤 구더기의 울음소리를 듣자 담 너머에서 들실장 친자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데이스!
테치치이~
이번엔 자실장을 던지는 거 같았지만.
테치이이이~~~ 칙!!
철퍽!
담 위에 녹색의 무언가가 살짝 보였다가 바로 사라진 후 담 너머에서 생고기를 바닥에 패대기
치는 습기 찬 소리가 들렸다.
데?! 데! 데에에! 오로로로롱...
부르르르릉...
데겍!!! 케아악!!!
그리곤 상황종료.
차의 엔진소리가 들린 후 다시 조용해진 마당엔 상황을 이해 못한 구더기의 레후레후 소리만
이 작게 들리고 있었다.
레후? 레후?
데...
미도리가 구더기에게 다가가려던 순간.
테치! 테치치이~♥
어느새 달려든 자실장이 구더기를 안아 올리고 있었다.
유전일까, 그 표정과 태도는 미쳐 자를 찾아 헤매던 전 치비코의 모습 그대로였다.
자실장이 죽은 동생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다른 구더기도 돌보려는 건지 몰라도 엄
지실장이 구더기에게 보이는 정도의 애정을 보이며 안은 구더기를 어루만지며 노래를 불렀다.
텟테텟테~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구더기를 안고 쓰다듬는 자실장.
구더기는 그저 기쁜 표정으로 레후레후거리고 있었다. 자실장과 원래 가족을 구분하지도 못하
는지 바닥에 내려지자 꿈틀꿈틀 몸을 뒤집어 배를 드러내곤 꼬리를 살랑이고 있었다.
테치? 테치테치!
레후~
말랑말랑한 배를 꾹꾹 눌려 푸니푸니에 흥분해 대변을 지리는 구더기와 그 모습은 사랑스럽게
내려다보는 자실장.
마당에 새로운 멤버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텟치! 텟치!
며칠 뒤 아침. 자실장은 작은 조약돌을 들고 실장푸드를 내리쳐 부수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
다.
전 구더기의 처참한 죽음으로 학습한 건지 흙바닥이 아니라 접시위에서 흙이나 작은 돌조각이
섞이지 않게 하고 있었다.
레훗! 레뺘!
그 옆에선 구더기가 짧은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며 얼굴을 시뻘겋게 해 화를 내고 있었다.
배고픔을 알리는데도 밥을 못주는 무능한 자실장을 다그치는 그 태도에 자실장은 화를 내긴
커녕 당황해서 빨리 실장푸드를 부수려 노력했다.
테치!
마침내 푸드가 짓눌려 조각나자 구더기가 달려들어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레? 레! 레후레후!
친부모 아래선 대변을 주식으로 가끔씩만 음식쓰레기를 먹어본 구더기에겐 가축용이라도 실장
푸드의 맛은 놀라웠다.
그렇지만 자기 입보다 큰 조각을 입이 찢어져라 우겨넣고 있는 모습엔 지성의 조각도 안 보인
다.
원래 구더긴 지능이 바닥을 치는 실장석 중에서도 바닥을 뚫고 내려가지만 이 구더기는 분충
성까지 섞여있는 듯하다.
레후레후레후...렉! 레레레..!
역시나 건조한 실장푸드 조각을 가득 먹은 구더기실장은 목이 메여 괴로워 하다 자실장이 물
그릇에 올려주자 경사를 타고 미끄러져 얕은 물에 고개를 푹 처박는다.
레복레복....레에에에...
목 메임 다음엔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을 위기인 구더기실장을 자실장이 질질 끌어낸다.
푸드와 물로 빵빵해진 초록색 비엔나 소세지 같은 구더기는 자실장이 끌어내주는 순간 방금
전의 위기를 잊고 배를 드러낸다.
테치테치~
레훙♥ 레훙♥ 레... 게복!!!
구더기에겐 밥을 먹은 다음엔 푸니푸니를 요구하는 게 당연한 순서시만 과식으로 빵빵한 배에
물까지 가득마시고 배를 눌리면, 당연히 역류한다.
입-식도-위장-총배설구 라는 원시적 구조인 실장석의 내장기관은 자실장의 애정 넘치는 푸니
푸니의 압력에 내용물이 간단히 밀어내져 구더기는 죽이 된 실장푸드와 대변의 혼합물을 입에
서 왈칵 뿜어낸 것이다.
테치?! 테치치!
레에...
데스데스우...
미도리는 풀숲 안에서 며칠째 아침마다 반복되는 그 몸개그를 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자실장은 애정은 넘치지만 자부하는 것만큼 영리하지 못하다. 구더기의 교육은커녕 과식을 막
거나 몸 상태를 살피지도 못한다. 저래서야 구더기를 제대로 기를 수 없을 것이다. 구더기는
하루에 몇 번이나 밥을 요구하지만 한 번에 푸드 두 알로 만복이 되어버려 식량에 문제는 없
다. 그것보단 매번 과식을 한 후 곧바로 푸니푸니에 오바이트를 반복해 영양엔 문제가 없어도
점점 체력이 다해가고 있는 게 문제다.
그렇게 생각하는 미도리도 가장 큰 문제는 떠올리지 못하는 게 결국엔 실장석의 한계일 것이
다.
드르륵.
“응?”
저녁에 잠깐 사료그릇과 물을 채울 뿐인 남자가 간만의 휴일에 마당으로 나온 것이다.
딱히 미도리나 자실장 때문에 나온 게 아니란 건 입에 문 담배를 보면 알지만 못 보던 구더기
실장이 하나있는걸 보곤 내려다보다 린갈을 켰다.
“어이 미도리.”
“테! 나온테챠!”
수풀에서 나온 미도리를 보고 도망치려는 자실장이 질질 끌고 가는 구더기실장을 가리킨 남자
가 물었다.
“저건 뭐야? 또 낳은 건가?”
“아닌데스... 바깥에서 누가 던진데스.”
“누가? 사람이 던진건가?”
“인간이 아니라 들실장데스. 나머지 자와 들실장은 들어오려다 죽은데스.”
“며칠 전 집 앞 도로에 납작해져 있던 게 그건가. 이 집은 담이 낮아서 가끔 이런 일이 있긴
했지. 일단 돌려보내긴 했지만.”
전부 원사육실장 취급되어 린치로 죽거나 다시 이 집을 찾아오다가 차나 인간에게 죽어 전멸
했지만 남자는 모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길러봐라.”
“데! 허락해주는데스!”
“그래.”
구더기가 오고 나서도 남자가 허락할지 말지를 생각도 못하다가 이제야 긴장하고 있던 미도리
는 의외의 대답에 놀랐다.
“데에... 그럼 왜 와타시의 자들은...”
“그건 니가 내 집에 면서 멋대로 행동한 벌이다. 허락을 받는다면 낳아도 좋아.”
“그런데스! 자를 낳는데스! 허락해 주는데스!”
“뭐, 허락하지. 근데 지금은 초겨울이야? 꽃을 구할 수 없을 텐데? 꽃집에 가면 있기야 하지
만 이 계절엔 비싸. 그런 곳에 돈을 쓸 수는 없어.”
“데...데스우...”
마른 잡초뿐인 마당을 정신없이 둘러보던 미도리가 좋은 생각이 난 듯 남자를 올려다봤다.
“이러면 되는데스!”
“응? 뭔가 좋은 생각이라도 났...”
남자의 말은 팬티를 내리는 미도리를 보는 순간 딱 멈췄다.
어느새 팬티를 내리고 드러누운 미도리는 필살의 요염한 포즈로 총배설구를 과시 한다.
“주인님의 자를 낳는데스~♥ 귀엽고 귀여운 흑발의 자들을 낳아 남편님의 아내가 되고 안주인
이 되어 집에서 사는데스~.”
“.....”
필살은 필살이었다.
미도리는 그날, 학대파가 아니더라도 미소 지으며 실장석을 패는 인간이 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데에에엑!!! 남편님 그만 두는데....데스아악!!!”
데에에...
며칠 뒤.
미도리는 그날도 수풀에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남자, 남편님 과의 다른 의미의 육체의 대화로, 다른 의미로 천국에 갈 뻔한 미도리는 문자
그대로 손이 닳아 피가 나도록 빌고서야 용서받을 수 있었다.
데프프.....
언제부터인지.
남자에게 한 요구에서 드러나듯 아마 자실장에게서 마마로 인정받지 못했을 때부터 미도리는
이제 그저 분충이었다.
좋은 옷과 집을 요구하지 않아도 자를 낳고 기르는 일에 대해선 행복회로 폭주다.
그건 그토록 원했어도 미도리니쥬와의 일주일을 빼고는 한 번도 자들과의 행복을 못 느낀 모
성애의 폭주일 것이다.
그래서 남자가 자신을 때려도 남편님이라 부르며 웃을 수 있다.
흔한 부부싸움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것이다.
테치!
레후레후~. 레게에엑!!
그러기에 오늘도 오바이트 몸 개그 중인 자실장과 구더기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어느새 친자매 이상으로 친해진 구더기와 자실장은 걱정했던 것 보단 잘 지내며 구더기도 순
조롭게 커지고 있었다.
몸 개그에 의한 에너지 소비를 하루에 열 번 넘게 폭식을 하는걸 로 상쇄해 어쨌든 성장은 한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구더기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많다.
곧 보름달이 된다.
자실장은 커녕 미도리도 거기에 대한 지식은 없지만 구더기는 식사와 생활에 부족함이 없자
곧바로 보름달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성체실장이 본능적으로 자를 원한다면 구더기는 본능적으로 고치를 만들어 엄지가 되길 원하
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보름달이 뜬 날.
레후....레후....
달빛아래 드러누운 구더기는 입에서 실을 뿜어 열심히 몸에 두르기 시작했다.
레후...레프프프프...
엄지로 살아갈 행복한 나날을 상상하는지 가끔씩 웃으며 고치를 완성해가는 구더기.
미리 연습이라도 하려는지 작은 돌기수준의 팔다리를 흐뭇하게 꿈틀거려본다.
테치?
그 옆에서 뭐가 뭔지 모르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던 자실장도 동생에게 좋은 일이 있다
는 걸 알았는지 주위에서 테치테치거리며 꿈틀꿈틀 기괴한 춤을 춘다.
가끔씩 애호파들이 예능석이라 같다 붙여 우기는, 실장댄스에 능한 개체가 있다지만 이 자실
장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거 같다.
레후후~.
마침내 새하얀 고치에서 머리만 내밀고 있는 구더기가 자실장을 보며 울고는 눈을 감는다. 멀
리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미도리는 뭔가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구더기가 고치가 될 때까지 훌
륭하게 길러낸 자실장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느꼈다.
데스우...
테! 테챠아아!
그렇지만 머리를 쓰다듬고 안아주려고 다가간 것 만으로 자실장은 눈을 뒤집으며 팡콘을 한
다.
잡을 곳이 없어진 구더기의 고치를 결국 머리를 잡고 잡아 뽑을 기세로 질질 끌고 도망치는
자실장을 본 미도리는 깊은 한숨을 내쉈다.
데? 데스!
그러다가 뭔가 생각이 난 듯 기뻐하며 오랜만에 골판지 안으로 들어간다.
테?! 테샤아! 테샤아아아!!
'와타치의 집'에 무서운 동족이 들어가는걸 보고 눈물을 흘리며 한껏 위협을 하는 자실장.
그래봤자 팡콘의 크기가 커질뿐이다.
그 소리를 애써 못들은 척하며 골판지하우스 안에서 어떤 것을 찾는 미도리.
데스!
그리고 곧 찾던 물건을 찾아냈다.
포장지에 싸인 커다란 사탕.
언젠가 잡초를 뽑은 뒤 남자에게 받고 저장했다가 몰래 낳을 자들에게 먹여주려 보관한 달콤
한 것.
생각대로 자실장은 이걸 뜯지 못했는지 포장지는 이빨자국과 함께 마구 구겨져 있었다.
달콤한 냄새를 맡고 포장지를 벗기려 발악해도 포장지를 찢을 힘도, 뜯을 머리도 없는 자실장
에겐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초보 애호파들은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고 포장지에 싸인 사탕을 뿌려 다음날에 포장지에 쌓인
사탕을 꼭 움켜쥔 채 스트레스에 의한 파킹사한 시체가 널려 있는 것도 가끔 볼 수 있다.
이것에 착안한 어느 학대파는 코로리를 약하게 포장해서 뿌리는 걸 생각해냈고 영리한 들실장
도 효과적으로 없애는데 성공했다한다. 경계심이 강한 들실장이 라도 설마 코로리를 일부러
먹기 힘들게 주리라곤 상상을 못하고, 어차피 실장석. 영리한 와타시는 포장지를 열수 있다는
자부심에 주저 없이 포장지를 여는 것이다. 멍청한 개체는 파킹사 영리한 개체는 코로리에 의
한 육공토혈사라는 일석이조의 아이템이다.
그렇지만 미도리는 포장지를 벗길 수 있고 내용물도 보통의 사탕이다. 한참을 고생해 포장지
를 벗긴 미도리가 골판지 바깥으로 나와 자실장을 향해 사탕을 내밀었다.
데샤아아! ....테? 테치?
위협을 하다가 달콤한 냄새에 주춤주춤 다가오는 자실장.
어느새 실장석의 짧은 팔이 닿을 거리까지 온 자실장은 사탕을 낚아채 이젠 말라버린 수풀에
숨었다.
테! 테츄우웅~테츄웅♥
자실장이 태어나고 영양제 이후로 처음 입에 대는 달콤한 맛에 환성을 지르는걸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미도리. 숨을 생각이겠지만 마른 풀숲사이로 훤히 드러나 있는 자실장이 열심히
사탕을 빨면서 미도리를 곁눈질한다.
테츄우...테?
그 눈길엔 적의와 함께, 약간의 혼란이 보인다.
테츄웅~. 테치테치!
사탕을 열심히 빨던 자실장이 3분의 1정도 남은 사탕을 놀랍게도 고치를 향해 내밀었다.
애정이 깊은 개체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실제론 고생을 몰라서 그런 건진 몰라도 달콤한 걸
가족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테? 테?
물론 고치를 틀고 잠든 구더기가 반응할리가 없지만 고개를 갸웃거리던 자실장은 고치위에 사
탕을 올려주고 고치를 질질 끌어 골판지로 들어갔다.
데스우...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는 미도리. 자신의 자가 너무나도 착한 것에 기뻐하면서도 다른 자들
이 살아있었으면 저 자와 함께 화기애애하게 지냈을 것에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오늘 자실장에게 한발 다가섰다.
그리고 저 구더기가 엄지가 되어 나오면 셋이서, 그리고 봄이 오면 셀 수 없이 많은 자들과
지낼 희망을 가지곤 조용히 낙엽을 깔아둔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일주일 뒤.
일주일 동안 구더기가 가만히 있자 자실장은 혼자서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미도리가 다가가면 도망치지만, 그 거리는 훨씬 짧아졌고 텟치텟치 거리며
뛰놀다가 테이? 거리며 미도리를 응시할 때가 많아졌다.
다시 희미하게 희망이 보이는 걸 느끼며 기대하는 미도리.
가끔씩 햇빛이 따듯한 날엔 자실장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고치를 끌고나와 햇빛을 쪼여
줬다. 그 고치의 위엔 자실장이 남겨준 사탕이 반쯤 녹은 채 아직도 올려져있어 애정을 증명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미도리는 그걸 지켜볼 경황이 없었다.
데이...
흑발실장 발언이후 남자는 미도리를 철저히 무시했다.
실장푸드는 주지만 한번주곤 며칠을 잊고 있다가 텅 빈 밥그릇에 다시 실장푸드를 가득 쏟아
붓곤 또 방치하는 것이다.
실장석이든 인간이든 모든 비사회적 행동, 즉 분충성이나 팡콘이나 근거 없는 악플 혹은 집단
따돌림 등은 결국 타인의 관심과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가 근원이다. 그게 심해 본능수준으로
관심을 바라는 실장석에게 남자의 냉대는 커다란 스트레스 요인이 되고 게다가 식사가 불규칙
해져 굶주릴 때도 많았다.
실장푸드가 주어질 때는 산처럼 주어지지만 자실장이 며칠 내로 무계획하게 먹어치우기에 미
도리는 더더욱 먹이가 모자랐다. 그런 상태로 일주일이 지나고, 슬슬 고치가 엄지실장이 될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레치이이이! 레치이시이이이익!!
조용한 아침은 '엄지실장' 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로 엉망이 되었다.
골판지 안에서 엄지실장의 울음소리와 자실장의 당황한 목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데스..?
시끄러운 소리에 골판지에 다가가보는 미도리. 그때 입구에서 나온 자실장이 미도리를 보곤,
테치이~! 치치!
달려와서, 미도리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리곤 울면서 미도리의 손을 잡아끌고 골판지로 끌어 당긴다.
데이...
작은 엄지손가락 밖에 없는 뭉툭한 손.
하지만 그 손과 손을 맞잡으며 느껴진 체온에 미도리는 정말 오랜만에 기쁨을 느꼈다.
잘 모르겠지만 구더기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
그 문제를 성체이고 영리한 와타시가 해결해주면 이 자와 엄지는 와타시를 마마로 따를 것이
다.
희망차게 골판지로 들어간 미도리의 눈에 울부짖는 구더기, 아니 엄지실장이 보였다.
구더기는 뒷머리까지 자라 완전히 엄지실장이 되어있었다.
머리만은.
머리의 아래는, 고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레치이! 레치잇!
얼굴이 시뻘개 지도록 용을 쓰는 엄지.
그러나 고치가 찢어지지 않는다. 계속 고치를 찢으려 꿈틀대다가 다시 울부짖기 시작 한다.
레치?! 레치치이이-?!
어째서 고치에서 나올 수가 없는지.
자신은 훌륭히 엄지가 되었을 텐데.
이제부터 화려하고 고귀한 생활이 계속될게 당연한데.
레치이이익!! 치? 레치레치!
한참을 그렇게 발악을 하다가 자실장이 데려온 미도리를 보고 뭔가 사납게 레치레치 운다.
물론 그 말은 분충성 폭발의 대사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미도리는 화내지 않았다. 여기서
화를 내면 자와의 관계가 다시 엉망이 된다. 아 엄지도 잘 가르치면 좋은 자가 될 거다.
고치에서 못 나오는 건 영양이 모자란 채 고치를 만들거나 유난히 힘이 약한 엄지가 됐을 경
우 가끔 일어난다.
미도리는 그건 알지 못해도 본능적으로 고치를 찢어주면 엄지가 나올 수 있다는 건 알았다.
데이스!
고치를 잡고 엄지가 다치지 않게 적당히 힘을 주는 미도리.
고치는 쉽게 뜯기고, 그 안에서 나온 엄지가 팔다리를 움직여보다가 기쁜 듯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미도리를 보고 렛치~ 거리면서 ‘붙임성’을 한다.
그 모습을 본 자실장도, 이번의 도움으로 미도리가 마마라고 완전히 깨달았는지 테치테치 거
리며 같이 미도리의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데스우~~~~
오랜만에, 드디어 다시 찾아온 자들과의 행복.
엄지가 잘 걸을수 있게 되자 미도리는 양손에 각각 자실장과 엄지의 손을 잡고 밥을 먹으러
간다.
테치테치~
레치~
데프프... 데스데스우~
미도리의 기분을 알아주는 듯 초겨울인데도 약간은 따듯한 햇살이 내리쬐는 아침.
초록색 으로 빛나는 풀밭에 예쁜 나비들이 날아다니는 걸 보며 레치! 거리며 감탄하는 엄지의
귀여운 모습. 언니라고 철들어 보이고 싶은지, 엄지처럼 소리치진 않지만 시선은 열심히 나비
를 쫓는 자실장.
어제 잠들 때 까지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모습이다.
꿈이 아닌가 싶어 팔을 짧은 엄지 손가락으로 꼬집으면 분명이 아픔이 느껴진다.
꿈이 아니다.
데스우우우~~~~~~웅. 데스데스우우웅우웅~~~~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다시 자들의 손을 잡고 밥그릇에 다가가는 미도리.
데?
그러나, 그 밥그릇은 텅 비어있었다.
데! 데스데스!
테치이?
그러고 보면 요새 계속 굶주렸다.
남자가 불규칙하게 식사를 주며 미도리는 허기에 시달렸지만 그 고통도 자를 되찾은 기쁨에
잊고 있었던 것이다.
테치?
자실장이 킁킁대며 그릇의 아래에 떨어진 게 없나 살피는 사이 엄지는 얌전히 미도리의 손을
잡고 서 있었다. 그 체온에 미도리는 초조함을 느꼈다. 이 자들을 먹이기 위해 어서 먹이를
구해야한다.
드르륵
데!
그때 남자가 마침 실장푸드 봉투를 들고 마당으로 나왔다.
“응?”
남자의 눈이, 엄지실장을 향한다.
“별일이군. 엄지실장으로 큰 건가.”
“그런데스...”
“자실장하고도 화해했나보구나. 다행이구나. 미도리.”
“데!”
생각지도 못했던 남자의 상냥한 말에 놀란 미도리는, 굵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이봐, 왜그래?”
“행복한데스... 자가 마마라고 불러주는데스... 엄지짱도 생긴데스. 그리고... 남편님이 칭찬해
주신데스우...”
“남편님....? 뭐, 그건 됐고. 그 엄지, 네가 기를 건가?”
“그런데스! 휼륭히 키우는데스!”
“아타치 마마가 너무 좋은 레치~.”
“너는 좋은 자 데스우~.”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미도리를 안아 들었다.
“데?”
남자의 품에 안긴 거에 놀랐던 미도리는 얼굴을 붉히며 콧김을 내뿜는다.
“나,남편님. 뭐 하시는데스?”
“남편님이라... 그 호칭은 좀.... 어쨌든 너희는 이제부터 집 안에서 기르겠다.”
“데! 집에서 기르는데스? 들어가는데스?”
“돌봐주겠다고 했다. 이제 겨울이고 이번 해는 폭설이 올 거란 말도 있어. 마당에서 살기는
힘들 테니 집 안에 들여 주지.”
다른 팔로 자실장과 엄지를 안아 올린 남자의 따듯하고 넓은 품에 안겨, 집안에 발을 디디는
미도리.
“데이...”
남자 혼자 사는 집 치고는 깔끔한 그 안을 멍하니 둘러본다.
자실장은 두번째로 들어오는 집안의 모습에 흥분해 엄지와 함께 테치레치 뛰어다닌다.
“이제부터 여기가 와타시의 집데스....?”
바깥에 굴러다니는 낡은 그릇이 아니라 새 그릇에 실장푸드를 부은 남자가 마루에 그릇을 놓
아준다.
“자, 먹어라.”
“자,잘먹는데스~.”
“테치~.”
“레치? 밥레치!”
자실장이 내민 실장푸드 한 알을 양손으로 꼭 움켜쥐고 먹는 엄지를 흐뭇하게 보는 미도리.
바깥이 따듯하다고 해도 집 안만은 못하다.
그 집안에서 방금 전까지, 지금까지 살아온 마당을 내려다보며 자들과 가득한 밥을 먹을 수
있다.
“데스웅~. 행복한데스우웅~~.”
“마마도 먹는 레치~.”
엄지가 내민 실장푸드를 받아드는 미도리.
“고마운데스. 역시 너는 착한 자데스~.”
한입 크게 베어 문 실장푸드는 매우 달고 맛있었다.
항성 먹던 실장푸드지만 자들과 행복하게 남편님의 집 안에서 먹어 더 맛있는 것일까.
단맛과 육즙이 흘러넘치는 고기의 맛.
굶주렸던 미도리니쥬에게 그 단맛과 고기의 맛은 그야말로 콘페이도와 스테이크의 맛 처럼 느
껴졌다.
“데스웅~ 데스웅~.”
행복의 노래를 부르며 다시 실장푸드를 입에 한껏 집어넣는다.
이런 고기의 맛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옛날, 공원에서 살기 위해라며 먹었던, 맛있었던, 동족의 고기의 맛과도 비슷하다.
마치 사탕처럼 달고.
동족의 고기맛이 난다.
치아아아아아아아!!!!!!!!!!!!!!!
데?!
미도리는 입안에 퍼지는 고기와 단맛을 음미하다가, 자실장의 비명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따듯한 집안은 축축하고 썩어가는 골판지하우스의 안으로 바뀌어있다.
자들의 행복한 모습도, 남편님의 모습도 없다.
하지만,
달고 육즙이 넘치는 맛있는 건 입안에,
손에 아직 있다.
레.....레치이........
그것.
손에 들린, 엄지실장의 머리와 죽같이 흐물흐물한 고기를 본 미도리는,
행복회로에서 깨어났다.
데.....데.....데에에에에에에에에!!!!!!!!!!!!!!
행복회로에서 깨어나는 순간, 도피하려 했던 방금 전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왠지 미도리의 힘으로도 엄지의 고치는 뜯을 수 없었다.
당황한 미도리는 모르겠지만, 그 고치는 햇빛에 녹은 사탕이 실 사이사이에 배어들어 굳어 있
었다.
인간이라도 도구 없이는 쉽게 뜯지 못하고 하물며 실장석의 힘으론 아예 엄지를 제대로 꺼내
줄 수 없었다.
그 사실을 모르고 당황해 계속 힘을 주는 미도리와 그 무능함을 욕하는 엄지의 욕소리가 섞이
는 중에, 미도리가 지나치게 힘을 준 순간 고치가, 아예 짓눌리듯 부서졌다.
레카아아아아악!!!
그리고 드디어 엄지는 고치에서 나왔다.
단지.
굳어져 크기가 변하지 못하고 통풍조차 안 되는, 이미 성장을 위한 요람이 아니라 관이 되어
있던 고치 안에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흐물흐물한 육체가 짓눌려 비어져 나오는 식으로.
머리까지는 온전하지만, 몸은 이미 죽 같은 고깃덩어리였다.
성장하려던 팔다리는 자라다가 좁은 공간에 일그러져 부분적으론 뼈와 살이 다른 방향으로 자
라기도 했고, 이미 반쯤 썩은 몸의 고기는 질척질척하게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놀라는 자실장의 앞에서,
혼란하고 굶주리고 경악한 미도리는 멍하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그 사탕이 배어들어 달콤하고 부드러운 고기를 무의식중에 입에 넣고,
행복회로를 발동시켰다.
테...테치....테치......
어차피 엄지는 미도리가 없었어도 고치 안에서 산채로 썩거나 나와도 미숙아나 다름없어 죽었
겠지만,
자실장에겐 동생을 먹어치우는 ‘마마’의 모습만이 현실이었다.
게다가 혼란을 할 때와 달리, 자실장은 요즘의 경험으로 조금씩 인식이 바뀌고 오늘 아침 동
생을 구하기 위해 도움을 청할 상대를 생각하다가 지금은 미도리를 완전히 마마라고 깨닫고
있었다.
‘무서운 동족’ 이 아니라 ‘마마’가 동생을 먹고 있다.
저건 무서운 동족이니 당연하다는 정당화도 못하게 된 자실장은 미도리를 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행복회로에서 완전히 깨어난 미도리가 입가에서 엄지의 고기를 줄줄 흘리며 멍하니
바라본다.
테...테치이이이이이!!!
그순간, 자실장이 미도리에게 달려들었다.
텟치!
데엑!!
그 손이 노린 듯 우연히 미도리의 눈에 맞으며 미도리는 눈을 감싸고 뒤로 쓰러졌다.
성체와 자실장의 힘 차이에도 눈을 맞으면 통증이 심하다.
데..데에...
텟치! 텟치!
적록의 피눈물을 흘리며 미도리를 때리는 자실장.
마마가 동생을 잡아먹는다는 상황은 들실장에게 흔하다.
그때 남은 자들의 반응은 도망치거나 아첨을 하거나,
마마를 죽이고 살아남는다.
텟치! 텟치!
그 본능대로 자실장은 동생을 잡아먹힌 분노와 살고자하는 욕망에 피눈물을 뿌리며 계속 미도
리를 때린다.
툭. 툭. 톡.
데이....
첫 공격은 눈에 맞아서 쓰러졌지만. 노린 게 아닌 마구잡이의 자실장의 주먹 따위 성체에게
데미지가 되지 않는다.
미도리는 팔이나 머리에 느껴지는 그 작은 충격을 느끼며 조용히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데스우....
모든 게 끝났다.
엄지는 죽었고. 이제 이 자가 나를 마마라 부를 일은 절대로 없을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 다시 자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고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런 의문이 끝없이 떠오르는 채 자실장의 주먹을 맞던 미도리가 문득, 웃었다.
데프프프프.....
그리고 자실장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일어서더니, 남은 엄지의 고기와 머리를 입에 우겨
넣는다.
쩝...쩝...데스웅~
테!
동생이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자실장.
그 모습에 이미 팬티가 땅에 끌릴정도로 팡콘에 늘어져 있던 팬티 사이로 결국 녹색 대변이
터져 나온다.
뿌직....뿌직....
테....테.....
데이....데스우!
테아악!!!!!!
미도리는, 주저 없이 자실장의 얼굴을 걷어찼다.
데프프프.... 데스데스우..... 데스우!
삼각형의 입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한방에 눈까지 멍들어 퍼렇게 부어오른 얼굴이 된 자실장
앞에서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미도리.
다시 자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실패했다.
그렇다면, 다시 자를 만들어 행복하게 살면 된다.
데프프프프프프!!!
그 순간, 미도리는 가장 소중한 것과 그 수단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자와 행복해진다는 꿈은, 그저 자만 있으면, 어떤 자든 있으면 이룰 수 있는 꿈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딱히, 이 자와 행복해질 필요는 없었다.
자는, 얼마든지 낳을 수 있다.
와타시를 미워하는, 분충은 필요없다.
데~~~~~프프프프프프프~~~~~!!!!!!
치악! 치아아아악!!!!
그런 결론을 내린 미도리는 자실장을 때리기 시작했다.
처음의 발길질에 부어오른 얼굴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와타시의 자’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계속 때린다.
치악!! 테챠악!!
미도리가 때릴 때마다 조금씩 모습이 바뀌는 자실장.
머리는 울혈이 일어나 여기저기 적록색으로 변해 붓고 찌그러지고,
팔다리는 관절부위가 꺾여 왼팔은 팔꿈치가 반대 방향으로 휘어져 다.
테히...테히....
한참을 그러다가 이번엔 미도리가 자실장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르락내리락 하는 배를 짓밟
는다.
테게복!!!!
쉽게 내장까지 뿜어져 나오진 않았지만, 자실장의 입에서 녹색의 걸쭉한 액체가 솟구친다.
테히...테치이....
데스우....데프프.....
미도리도 거침 숨을 몰아쉬며 잠시 멈추자, 자실장은 유일하게 무사한 오른팔로 질질 기어 골
판지를 벗어 났다.
테이...테치이.....
바닥을 기는 자실장의 눈이 향한 곳은 남자의 집.
‘마마’에게 의지 할 수 없게 된 실장석은 본능적으로 인간의 도움을 요구하며 애타게 유리창
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데샤!
테익!!!!
그것도 미도리의 고함소리와 다리에 느껴지는 격통에 멈춰졌다.
자실장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미도리의 발에 밟혀 무릎부근이 납작해진 자신의 양 다리가
보였다.
테...테...테치이이이이!!!!!
눈에 들어온 이후에야 고통이 더 심해지며 짧은 다리를 웅크리고 바닥을 뒹구는 자실장.
그 모습을 보며 미도리는 그제 데프프프 웃을 뿐이다.
그리고, 우연히 미도리의 손이 자실장의 총배설구에서 탈장을 일으켜 비어져 나온 내장에 닿
았다.
데? 데프프... 데스웃!
츄어어어어억!!!!
그것이 뭔지 안 미도리가 웃고는, 힘껏 잡아당기자 총배설구에서 각종 장기가 딸려 나오며 자
실장의 배가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홀쭉해진다.
들실장도 이렇게 까지 잔혹하게 할 필요는 못 느끼지만, 이미 미도리는 와타시가 사랑하고 와
타시를 사랑하는 자가 아니면 이 세상에선 남편님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이런 와타시를 따르지 않는 자 따위 필요 없다. 오히려 이 자가 커서 자를 낳아 행복하게 되
는 걸 허락할 수 없다.
그런 생각으로 내장을 뽑힌 자실장은 자를 낳기는커녕 얼마 못가 죽을 상태지만 지금까지의
자에 대한 집착이 광기로 변한 미도리는 다른 실장석이 자를 낳는 걸 무의식중에, 설령 그게
자신의 자라도 증오하고 있었다.
치...치....
짓밟힌 다리와 홀쭉해진 배.
상반신도 여기저기 부어오르고 피투성이인 자실장이 부들부들 떨리는 오른팔을 들어올린다.
이미 맘대로 움직이는 건 오른팔하고 성대정도뿐이다.
데스우~?
자실장의 울음소리에 고개를 가까이 댄 미도리에게 자실장이 오른팔을 움직인다.
미도리에게 최초의 공격을 한 손.
그 손은,
테...텟츄웅~♥
미도리를 올려다보며 아첨을 팔았다.
데....
그 모습을 본 미도리의 콧등에 주름이 잡힌다.
와티시를 부정해놓고 이제 와서야 '마마' 에게 '붙임성’ 을 보여도 용서 하지 않는다.
데샤아아아아!!!!
테치!!!!!
그리고, 있는 힘껏 자실장의 머리를 짓밟아, 깨진 두개골의 내용물이 사방으로 튄다.
위석은 배에 있는지 아직 움찔움찔 팔다리를 버둥이며 경련하는 자실장의 몸.
그러나 10초도 안되어 완전히 움직임이 멈춘다.
데스우~.
그 모습을 만족한 듯 지켜본 미도리는 마당을 빙 둘러봤다.
와타시를 따르지 않는 자는 정리했다.
이제 새로운 자를 낳자.
이번의 자도 와타시에게 애정이 없으면 죽이고, 또 낳으면 그만이다.
꽃을 찾아 마당을 뒤지는 미도리의 머리위에, 톡 하고 눈송이 하나가 떨어져 내렸다.
남자는 올해의 첫눈에 일찍 귀가했다.
그리곤, 박살이 난 채 눈에 덮인 자실장을 눈치 채지 못하고,
왠지 모르게 총 배설구에 잡초를 잔뜩 쑤셔 넣은 채 기절해있는 미도리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
다.
“뭘 한 거야. 이 녀석은...”
질척한 잡초들을 뽑아내 던져버린 남자는 자실장이나 ‘구더기’를 찾아 잠시 마당을 살폈지만
곧 그만두곤 미도리를 들고 마루로 들어갔다.
눈이 오기 시작하니 바깥에 내버려둘 수는 없지만 추워지면 알아서 올 거라는 생각을 하곤 낡
은 수조에 미도리를 던져 넣을 뿐.
그날 부터..
미도리의 남자의 실내생활이 시작 되었다.
회식이란 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직장인들의 풀리지 않는 명제중 하나다.
물론 같은 팀끼리 화합의 자리를 가지는 거야 좋지만 결국 상사와의 자리. 마냥 좋지만은 않
은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상사들도 그저 좋아하는 건 아니기도 하다. 부하 직원들의
띄우기에 마냥 좋아하는 사람도 많지만 배려심이 있는 상사는 부하들을 배려해 2차에선 상사
들만 빠져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사회생활 초년병이 아닌 이상 회식 자리에서 분충이 되도록 마시는 사람은 적지만,
남자는 어젯밤 오랜만의 회식 자리에서 떡이 되어 돌아왔다.
"아... 머리 아프네..."
오랜만에 느끼는 숙취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남자는 그 와중에도 살짝 미소를 지었
다. 남자가 과음을 한 이유는...
데스우우우웅~
"............"
남자의 생각은,
방문을 열고나서는 순간 눈에 들어온 ‘실장석의 펑퍼짐한 엉덩이와 총배설구’ 라는 광경에 중
단 됐다.
"...고마워. 술이 확 깨네."
...데에에에?
그리고 남자는 그대로 미도리가 올라간 탁자를 지나쳐 찬물을 찾아 부엌으로 향했다.
첫 눈이 오고 나서 한 달.
한겨울이 된 그 기간 동안 남자는 매일 미도리의 ‘유혹’을 받았다.
역겨움이 치솟는 그 모습에 남자도 당연히 기분이 나빴지만 마당에서 죽은 채 얼어있던 자실
장을 발견하곤 생각을 바꿨다. 새끼를 잃어버린 반동으로 더 새끼를 원하게 됐다고 생각한 것
이다. 그 욕구를 자신에게 돌리는 행동 자체는 역겹지만 어차피 동물. 인간만큼의 생각이 없
는 존재니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게다가 주인을 ‘유혹’ 하는 건 성체가 된 실장석에게서 가끔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철저히 인간의 교육 아래서 자란 실장석은 자를 가지고 싶은 욕구와 주인에 대한 애정을 혼동
해 주인을 사랑한다고, 주인도 와타시를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름 애정을 가진 존재에게만, 그 기준점이 상당히 제멋대로고 낮다고는 해
도 들실장이 아니라 사육실장이 유혹을 한다는 건 주인에게 애정을 가지긴 했다는 말이라 행
동의 의미를 이해한 주인들에겐 그다지 나쁘게 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반대로 들실장이 지나가는 행인에게 다리를 벌리는 건 자신의 몸을 대가로 사육실장의 자리를
손에 넣기 위해서지만 결과는 ‘와타시의 고귀한 몸에 욕정 한 인간 노예’ 가 아니라 그저 크
고 아름다운 빠루인 경우가 허다하고 실장석이란 종 자체에 대한 평가만 바닥을 치게 만든다.
그런저런 이유로 미도리의 유혹을 무심히 넘기는 남자였지만 그것에 역으로 광분한 미도리는
그 얼마 안 되는 뇌 용량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집안에 들여진 뒤로 틈만 나면 남자에게 엉덩이를 들이댔지만 남자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자 인간들은 키가 크니까 와타시를 발견하는데 애를 먹는다고 생각한 미도리는 눈에 띄도
록 가구의 위에 필사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에야 드디어 의자에 기어올라 탁
자위에서 필살의 요염함을 보였지만 결과는 역시 무시.
데에에!!
분노한 미도리는 남자를 쫒아 탁자 위를 쿵쿵 달려가다가,
발아래가 허전해지는 걸 느꼈다.
데에에! 데켁!
탁자 모서리에 그대로 달려들어 발을 허공에 디딘 미도리의 몸이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곤 달리던 자세 그대로 바닥에 얼굴을 처박은 미도리가 간신히 고개를 들자 세게 부딪힌
얼굴에서 코피가 줄줄 흘렀다.
데이....
"뭐하는 거야. 괜찮아?"
그제서야 남자가 관심을 보였다.
아무리 무시한다고 해도 다쳤으면 방치할 수 없어 말을 걸었을 뿐이지만 미도리는 드디어 남
자가 관심을 가졌다고 생각해,
데스웅~
엎드려있던 자세에서 일어나며 그대로 드러누워 대담하게 다리를 쫙 벌렸다.
“...괜찮은가보네.”
데!
그대로 남자가 일어서서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가버리자 미도리는 멍하니 텅 빈 집을 둘러봤
다. 마루의 창밖을 내다보면 아직도 새하얀 눈이 쌓여있다. 풀꽃이 필수 없는 이 날씨에 와타
시가 자를 가지려면 남편님의 자를 가지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어째서 남편님은 와타시의 유
혹에 넘어오지 않는 건지.
혹시,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남편님은 와타시를 '이제 사랑하지 않게 된' 건가?
데에에... 데에에엥! 데에에에에엥!!
슬프고 역겨운, 애초에 착각을 다시 착각한 미도리의 서글픈 울음소리만이 빈 집에 울려 퍼졌
다.
그리고 저녁.
데스우~ 데스우우우웅~
미도리는 낮에 오열하던 것도 까맣게 잊고 마루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남자의 집에
처음 온 날에 독라는 아니었어도 알몸이 되었던 미도리. 하지만 지금 그 몸은 분홍색의 화려
한 실장옷에 감싸여 있었다.
“데스웅~. 남편님이 옷을 사온데스~. 역시 와타시가 사랑스러워 어쩔 수 없는데스웅~.”
남자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분홍색 스커트를 조금씩 걷어 올려 팔랑거리는 미도리와 린갈을 교
대로 쳐다본 남자는 미도리를 내버려두고 맥주 캔을 땄다.
미도리는 또 착각을 한 모양이지만 남자는 그저 실장석이 알몸으로 들이대는 역겨움을 피하기
위해 옷을 가져온 것뿐이다. 게다가 흔한 초록색 옷이라도 살까하고 실장숍을 가다가 회사 근
처, 실장용품 회사의 쓰레기장에 멀쩡한 분홍색옷이 버려져 있는걸 보고 주워온 것뿐이다.
그 옆엔 19 라고 숫자만 써진 목걸이도 버려져있었지만 실장석 특유의 적록색 피가 묻어 있
어 그대로 버려뒀다.
“데스웅~. 오늘 와타시는 행복한 데스웅~. 특별히 와타시의 몸을 허락해 주는데스~. 오는데스
우우우~!”
역시나 미도리는 흥분상태. 인간처럼 발정기를 따로 가지지 않는 생물이라는 걸 증명하듯 오
늘도 '특별히' 엉덩이를 들이댄다. 봄과 가을에 수를 늘리는 건 번식과 육아의 용이함 때문이
고 인간에게 길러져 풍족한 환경을 보장 받으면 한 달에 한번씩 매번 7~10마리를 싸지르는
게 실장석이다.
하지만 남자의 의도대로, 옷을 입혀놓자 역겨움은 좀 덜했다.
그러기에 남자는 옆에서 미도리가 발광을 하다 스트립쇼를 할 때까지도 그저 TV를 보며 맥주
캔을 비우고 있었다.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다. 또 혼자 보내겠지만 휴일이 연속인건 고맙다. 목요일이 이브. 그러니
까 금토일 3연휴가 된다. 간만에 여유가 생겼으니 부모님 댁이나 가려고 남자가 생각한때.
뎃뎃데데데~카르멘~카르멘~
“응?”
남자는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의 화면을 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예. 아마기입니...”
“아마기군? 키사코에요.”
“! 예 부장님.”
하루미오 키사코. 남자, 아마기 츠미야가 다니는 회사의 부장이자 직속상관.
그리고.
“지금 제 정신이에요? 아리사카 상사관련 출납장부! 완전 엉망이에요!!”
“네! ...네? 아 죄,죄송합니다!”
남자의 상관이자 4살 연상의 아직 젊은 나이로 부장이 된 전무후무한 인재. 그리고 남자의 동
기들 사이에서 마녀라 불리는 사람이다.
“내일 출근하면 당장... 아니, 내일모레부터 휴일이죠. 내가 찾아가겠어요. 밤을 새서라도 고치
도록해요!”
“네? 네....네?”
“당신은 항상 그렇게 우물쭈물 거리죠! 확실히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여자 친구하고 약속이라도 있어요?”
“아뇨!!! 없습니다!”
“여자친구가? 아니면 약속이?”
“둘 다입니다! 완전 프리합니다!”
“...그래요. 그럼 금요일 저녁에 갈 테니 내일 아리사카관련 자료 다시 정리해두세요.”
“네!”
전화를 끊은, 휴일이 날아가고 상사에게 잔소리까지 들은 남자의 표정은 약간 굳어있었다.
데에...?
그리고 그 모습을 어느새 기껏 사준 팬티까지 벗어 던지고 남자를 향해 총배설구를 들이대던
미도리가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데스우! 데스우우우우!!! 오로로로롱!!!!
그리고 드디어 금요일, 크리스마스가 왔다.
크리스마스 장식과 캐롤, 그리고 새하얀 눈까지 덮여 한껏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번화가
에서 쇼핑을 마친 남자는 봉투를 들고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즐거운 분위기를 만끽할 자
격이 없는 생물, 실장석이 겨울인데도 나타났다.
의아하게 여긴 남자가 쳐다보자 아마 원사육실장인듯 주머니가 달린 실장복을 입은 그 실장석
은 쌓인 눈을 피해 벤치아래서 덜덜 떨며 울고 있었다.
치...이...
게다가 주위엔 새끼들이 도합 7마리가 달라붙어 희미해져가는 체온을 필사적으로 유지하고 있
었다.
레치! 레치이?
그 중 유일한 엄지가 똑같이 한 마리인 구더기를 안고 계속 흔들고 있다. 하지만 정확히는
‘한 마리였던’ 구더기다. 이미 얼어 죽은 채 보라색으로 변한 얼굴에 혀를 늘어트린 구더기에
게 계속 울음소리를 내며 흔드는 작은 엄지실장의 모습은 애호파가 보면 애처롭게 보였겠지만
크리스마스에 실장석에 괜히 상관했다가 높은 확률로 분위기를 망칠게 뻔하기에 지나다니는
사람, 연인들은 그 벤치를 빙 둘러서 갈 뿐이다.
어차피 그 엄지도 움직임이 천천히 느려지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다. 구더기의 사체를 꼭
안은 채 온기를 찾아 마마에게 달라붙어도 꾸역꾸역 달라붙은 5마리의 자실장들에게 밀려 내
동댕이쳐질 뿐이다.
레...치이..... 레치.........
시간으론 10초도 안 되는, 남자가 그 실장일가를 눈치 채고 얼마 안 되서 바로 엄지 또한 자
매들에게 밀려나 차가운 바닥에서 천천히 움직임을 멈췄다.
오로로로롱...! 데스우우우!! 데스우우우!!!!
친실장은 그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한 채 주위를 둘러보며 목청껏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
이 지나갈 때마다 얼굴을 보며 울음소리를 내는걸 보면 아마 주인을 찾는 것이리라.
사람들에게 있어 일 년 중 제일 행복한 날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크리스마스.
하지만 그런 즐거운 날에 일가 전원이 버려진 실장일가의 비극.
손에 선물과 케이크 상자를 들고 걸어가는 연인들이나 흥분해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
리에 친실장의 두려움에 찬 울음소리가 묻혀버린다.
"..............."
그러나 남자도 그 실장일가를 도울 생각은 전혀 없이 벤치 옆을 지나치려 했다.
이런 혹독한 겨울, 그것도 즐거운 크리스마스에 버려진 원사육실장 일가.
인간의 제멋대로인 사정에 의해 버려지는 사육실장이야 말 그대로 발에 채일 정도로 많지만
그 사육실장에게 잘못이 없는 경우도 가끔 있고 운이 좋으면 보호받아 새 주인을 만나기도 한
다.
하지만 이 원사육실장 일가에겐 아무도, 심지어 두꺼운 모피코트의 품 안에서 새하얀 세상이
신기한 듯 고개를 내밀고 테치테치 울음소리를 내는 자실장들을 안은 애호파 사모님도 도움을
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의 사육실장에게 말한다.
"잘 보세요, 저런 미천한 것들하고는 다르게 행동해야 돼요. 알겠죠?"
테치테치!
"좋아요. 착한 아이들이에요. 자, 빨리 집에 가서 케이크를 먹죠."
데스우우우.....
그 행복한 자실장들의 모습을 울부짖던 친실장이 피눈물을 흘리며 쳐다본다.
그러나 그 애호파의 차별대우의 이유, 자신들이 버려진 이유가 손에서 놓지 않고 꽉 움켜쥐고
있는,
광고 전단지.
에 있다는 사실은 죽을 때까지도 깨닫지 못 할 것이다.
인간의 보호 아래 길러지는 사육실장. 좋은날엔 그 생물들에게도 작은 선물이 주어지기도 하
지만 선물을 받든 못 받든 대부분 파멸의 길을 걷게 된다.
이 일가도 흔하디흔한 그런 경우중 하나 일뿐.
들실장과 달리 안심하고 잠들 수 있는 공간과 목숨을 걸지 않아도 먹을 게 손에 들어오는 생
활에선 자연스럽게 오락거리를 찾게 되고, 성체 사육실장의 대부분은 TV를 보면서 빈둥거리
게 된다.
실장전용 채널이 있을 정도로 일반화된 광경이지만, 그 만큼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특히
실장석의 끝없는 욕망을 이해하고 있는 실장용품회사들의 끝없는 광고에 실장석들의 욕망은
부풀어만 간다.
읽지는 못하지만 화려하고 탐나는 물건들이, 맛있는 것들이 가득 인쇄된 전단지를 내밀며 조
르고 떼를 쓰다가 전단지 째로 짓밟혀 그대로 전단지에 둘둘 말린 고깃덩이가 되어 쓰레기봉
투에 던져지지만, 가끔 운이 좋은 개체의 경우는 쫓겨나는 걸로 끝난다.
극히 일부만이, 원하는 물건을 선물 받지만 그 물건을 받으며 기쁘게 웃는 그 입에서 나온 소
리가 ‘데프프’ 이기에 미래가 별 다를 바 없다.
데스우..... 데? 데데?!
그때서야 엄지와 구더기가 얼어 죽은걸 알아차린 친실장이 놀라지만 그 움직임에 붙어있던 자
실장중 두 마리가 힘없이 뒤로 쓰러졌다. 웅크린 채 친실장의 옷을 움켜쥔 자세 그대로 뒤로
쓰러지는 그 모습을 보면 역시 동사다. 태어난 이후 주인의 집 안에서만 살아온 자실장들에게
눈 내리는 겨울이란 건 그만큼 치명적이었던 것이다.
오로로로롱! 오로로롱!
한 팔로 차갑게 굳은자들을 끌어안고, 다른 손엔 그 와중에도 광고전단지를 쥔 채 서글프게
울던 친실장이 울음을 그치고 일어섰다.
데스! 데스데스!
테? 테치이~
그리고 뭔가 말하자 기뻐하는 한 자실장을 안고, 마침 벤치 옆을 지나가던 참인 남자를 응시
했다.
데스우웃!
테치~
그리곤 남자가 든 봉투를 향해 힘껏 자실장을 던진다.
원사육실장인데도 봉투에 탁아를 한다는 행위를 안다는 건 이미 실장석이란 생물의 본능에 그
게 각인됐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남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그대로 걸어갔다.
어차피,
광고지를 쥐고 있어 한 팔만으로 던진 자실장이 봉투에 닿을 리가 없다.
테?! 테챠아아아아아아!!!!
의기양양하게 날아오던 자실장의 표정에 당혹감이 어린 후, 자실장은 남자에게 훨씬 못 미친
곳에서 포물선을 그리며 낙하했다.
그 아래는 푹신한 '눈밭'이라 다칠 리는 없지만, 발목까지 쌓인 눈 속에 던져진 꼴이 된 자실
장은 눈에 푹 파묻힌 후 살을 베어내는 듯한 차가움에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치! 테치이이!!
데에에?!
그 모습에 놀란 친실장이 자실장을 구하러 달려갔지만 차가운 눈에 발을 디디는 순간 움찔하
며 멈춰 섰다.
테? 테테테테!?
치아아악! 테치이!
오히려 옷깃을 부여잡고 있던, 살아남은 자실장 둘도 친실장에게 딸려갔다가 떨어지며 똑같이
차가운 눈 위를 구르는 신세가 될 뿐이었다.
테!!!
파킹!
가뜩이나 차가워진 몸이 눈에 파묻히자 그것만으로 바로 파킹해버리는 자실장들. 남자에게 던
져진 한 마리도 눈에 반쯤 묻혀 츄덜덜 거리다가, 조용히 움직임을 멈췄다.
데...데스우우우?! 오로로로롱! 오로로로롱!
모든 자들이 얼고 파킹해 죽은걸 본 친실장이 적록의 피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그렇지만, 여기저기 죽은 새끼들이 널려있는 너무나도 가혹한 비극에 땅을 치며 서글프게 우
는 친실장의 손엔, 아직도 광고지가 쥐여져 있다.
오로로...
친실장의 표정엔 슬픔과, 의문이 가득했다.
데스우우우!! 데스우우우!!!
오늘은 주인에게 새 옷과 선물을 가득 받고, 스테이크를 먹을 수 있는 날이라고 해서 요구한
것뿐인데. 왜 와타시와 자들이 이런 슬픈 일을 당해야 하는지.
데스우우우!!!
이미 슬픔의 소리가 아니라 '불합리'에 대한 분노의 외침은 남자가 걸어가 버린 후라 그 누구
에게도 전해지지 않았다.
잠시 뒤 울린, 비통함과 분노에 찬 절규에 섞인 파킹소리 또한 마찬가지로, 아무도 듣지 못하
리라.
“다녀왔다.”
데수웅~
집에 돌아온 남자는 일단 봉투에 든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고, 기껏 주워온 옷도 다 벗은 채
현관 앞에 드러누워 유혹하는 미도리를 무시하고 바로 다시 집을 나섰다.
탕.
데?!
무정하게 문이 닫히는걸 보며 망연자실한 미도리가 남자가 돌아올 기색이 없자 일어나서 짧은
팔로 닿지도 않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데? 데수우우?
TV에서 지금도 나오고 있는 크리스마스 분위기의 방송들. 거기선 오늘이 '연인들의 날' 이라
고 했다. 그런데 어째서 남편님은 와타시를 무시하는지?
분노와 억울함이 솟구쳐 본능적으로 팡콘을 하려던 걸 참은 미도리는 화장실로 향했다. 여기
는 와타시와 남편님의 행복한 '보금자리'다. 더럽히면 안 되는 것이다.
푸지지직!
데수웅~
화장실의 배수구에 쭈그려 않은 미도리의 총배설구에서 녹색의 대변이 쏟아지며 미도리가 쾌
감의 소리를 지른다. 생식기와 배설구의 구분이 없이 총배설구라는, 진화가 덜된 무척추생물
이나 가질법한 생체구조인 실장석은 배설의 행위로 쾌감을 얻는다. 팡콘에는 놀라서 반사적으
로 하는 것 외에도 쾌감을 얻어 정신적 충격을 줄이려는 기능도 있는 것이다.
데스~ 데수우우웅~
거기서 그치지 않고 기분이 오른 미도리는 작은 바가지로 대변을 흘려보낸 후 주저앉아 자위
에 열중한다. 마라라는 비정상적 돌연변이를 제외하면 여성체 뿐이라 생식행위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실장석에게도 자를 가지고 싶은 욕구가 변질되어 성욕이라는 게 존재한다. 게다가 출
산철이 아닌 겨울이긴 해도 풍족한 환경에서 한참동안 자를 가지지 못한 미도리는 그 욕구가
쉽게 성욕으로 변질되어있었다.
데! 데엣! 데~스웅~♥
그리곤, 남자가 돌아온 저녁때까지 화장실 안에선 추잡하게 헐떡이는 실장석의 울음소리가 끊
임없이 울리고 있게 됐다.
데! 데에에?!
푸지직!
그리고 저녁.
돌아온 남자의 손에 들린 물건을 본 미도리는 또다시 팡콘을 해 쾌감과 함께 기껏 세탁했던
팬티를 녹색으로 물들였다.
그 모습을 본 남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거야. 미도리. 곧 ... 니까 잘 씻어라.”
“데스우~. 알겠는데스~♥”
얼굴이 붉게 상기된 미도리가 부풀은 팬티를 어기적대며 화장실로 향한다.
“데프프... 그랬던데스. 밤이 되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연인의 날데스~. 남편님도 정말 와타시
를 애태우는데스우~.”
“?”
린갈에 잘 이해안가는 소리가 번역됐지만 미도리가 그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기에 남자는
손에든 '그것'을 마루의 코다츠 위에 두고 준비를 하러갔다.
그래서, 흥분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화장실로 가는 미도리가 듣고도 행복회로가 걸러버린 ‘...’
의 부분,
'손님이 올 거라는 걸' 다시 얘기해줄 기회를 놓쳤다.
어차피 미도리가 그걸 걸러 버렸단 걸 알지도 못하지만.
데우웅~
연인들의 밤을 위해 정성스럽게 몸을 구석구석, 특히 총배설구를 정성스럽게 씻고 나온 미도
리는 집안에 가득한 맛있는 냄새에 코를 벌름거렸다. 부엌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남자의 손에
서 차례차례 음식들이 요리되어 식탁에 늘어 놓여진다. 젊어도 혼자 사는 생활이 길었던 남자
는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미도리는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따듯한 남편님과의 보금자리에 가득한 맛있는 냄새. 그건 와타시를 위해 남편님이 직접 요리
를 하는 냄새다.
'아직' 자는 없지만 오늘밤이 지나면 인간들이 앞 다투어 귀여워하고 싶어 할 흑발의 자들이
가득해질 것이다.
데!
팔을 꼬집자 통증이 느껴진다.
꿈도, 행복회로도 아니다.
진짜 행복이다.
남편님이 와타시를 사랑해주는 행복.
그 증거는, 코다츠 위에 놓인 '꽃다발'이 증명해준다.
장미와 안개꽃이라는, 경험 없는 남자가 고민하다 꽃가게 점원이 묘하게 싱글대며 골라주는
전형적인 구성이다. 전형적이지만, 순진하고도 스트레이트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구성.
데이...
그 꽃다발을 보며 얼굴을 붉힌 미도리는 바둥거리며 코다츠 위로 올라갔다.
이미 미도리의 머릿속엔 만찬이 차려지고 촛불이 켜진 식탁에서 마주보는 남편님과 와타시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맛있는, 와타시를 위해 남편님이 정성껏 요리한 스테이크를 맘껏 먹
은 다음에 TV에서 나오던 붉은 물이 담긴 유리잔을 내미는 남편님. 뭔지는 모르지만 그 물을
마신 후 와타시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남편님이 꽃다발을 엄숙히 내민다. 와타시는 그
꽃다발을 받지만 자들은 꽃이 아니라 남편님과, 남편님의...
데...데히...데히...
거기까지 '예상'한 미도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꽃다발을 응시했다. 흑발의 자를 낳는 게 당
연하지만 약간 먼저 남편님의 선물을 즐겨도 좋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미도리는 꽃다발에서 안개꽃 줄기를 하나 뽑아냈다. 붉은 꽃은 너무 크지만 남
편님이 와타시를 생각해 적당한 크기의 꽃도 사왔다. 자는 남편님에게 임신해 받겠지만 이 계
절엔 비싸서 안 된다고 했던 꽃을 일부러 사온 성의를 무시하는 것도 불쌍하다.
데힛! 데! 데! 데스우우우!
미도리가 안개꽃 줄기를 들고 코다츠의 이불로 기어 들어가자마자 볼록 튀어나온 이불이 들썩
들썩 거렸다.
데!! 데수우우우웅~♥
점점 빨라지던 들썩임이 문득 멈추는 동시에 이불아래서 역겨운 절정의 절규가 들렸지만, 부
엌에 있는 남자는 눈치 채지 못했다.
띵동~
“!!”
오히려, 그때 들린 벨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한 남자가 허둥지둥, 벽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박
아가면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어서 오세요. 부장님.”
“실례하겠어요.”
데?
낮선 목소리에 이불에서 고개를 내민 미도리의 눈에 현관에 서 있는 인간이 들어왔다.
볼륨감 넘치는 몸을 크리스마스인데도 딱딱한 여성 정장으로 감싸고 안경을 쓴, 날카롭고 이
지적인 인상을 주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 냉정한 이미지는 집안에 가득한 맛있는 냄새를 맡는 순간 무너졌다.
차가운 표정을 살짝 무너트린 여부장, 키사코 하루미오가 다급히 물었다.
“아마기군, 요리를 해놨어요?”
“예? 아, 예. 저녁시간이라 저녁을 먹고 오류 수정을... 근데 부장님. 손에 든 그건?”
“!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손에 든, 식재료가 가득한 봉투를 뒤로 숨기려던 키사코가 성큼성큼 집안으로 들어섰다.
“내...냉장고는 어디죠? 아마기군?”
“아. 부엌은 저쪽에... 부장님?”
“시끄러워요?”
“예, 예!”
데? 데에에?
미도리는 놀란 눈으로 남편님과 와타시의 보금자리에 비집고 들어온 인간을 응시하다가 위협
을 하기 시작했다.
데에샤아아아아!
왠지 모를 불길함에 힘껏 위협을 하는 미도리의 소리에 봉투를 허둥지둥 냉장고에 우겨넣은
키사코가 돌아봤다.
“어머? 실장석? 아마기군 실장석을 길러요?”
“네. 좀 사정이 있어서... 미도리! 무슨 짓이야!”
데?!
오히려 와타시에게 고함을 지르는 남편님을 놀라서 쳐다보던 미도리가 다시 위협을 했다.
데샤아아!
“미도리!”
“괜찮아요. 나도 실장석을 기르는데, 못 보던 사람을 보면 이러기도 하더군요.”
“죄송합니다... 미도리! 얌전히 있어라!”
데이...
키사코를 노려보던 미도리는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
데? 데스우! 데프프프프...
그러다가 갑자기 웃는 미도리를 보며 의아해한 두 사람은 미도리가 TV에서 본, 주인공과 여
주인공의 식사를 시중드는 하녀의 장면을 떠올렸다는 걸 알지 못한 채 남자의 안내로 부엌으
로 향했다.
데스우~ 데프프프~
“...이거 아마기군이 만들었어요?”
“네. 요리엔 자신이 있습니다.”
“그랬...군요...”
약간 표정이 어두워지는 키사코의 표정을 본 남자가 당황하면서도 자리를 권했다.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마침 준비도 다 됐습니다.”
“그래요.”
기분을 다잡은 키사코가 남자가 오븐에서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무려 칠면조 구이를 꺼내는걸
보곤 다시 낙담하면서도 앉으려 의자를 빼냈다.
데프프~데스우!
“어머?”
그리곤, 자신이 뺀 의자에 기어오르려 버둥대는 실장석을 보고 의아해했다.
"미도리! 뭐하는 거야! 네 자리는 여기다."
데? 데스!!!
남자의 제지에 돌아본 미도리가 표정을 일그러트렸다가, 남자가 식탁아래에 놓은 작은 접시에
담긴 요리를 보고 달려들었다.
데프프프~.
하긴 와타시의 지정석은 여기였다. 저 멍청한 하녀가 잘 몰라서 의자를 빼줬지만 와타시를 위
해 한 일이니 용서하자. 그것보다 지금은, 남편님이 와타시를 위해 요리한 이 스테이크를 즐
기자.
뎃샤뎃샤뎃샤! 뎃츄와~!
쩝쩝거리며 평소의 실장푸드가 아니라 '칠면조를 오븐에 돌리는 김에 옆에서 익힌 햄 통조림'
을 입에 우겨넣는 미도리를 본 남자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경축일이니 미도리에게도
평소보다 좀 맛있는 걸 줬지만 역시 쓸데없는 짓이었다.
미도리를 내버려둔 남자는 식탁위에 늘어선 칠면조 구이를 자르기 시작했다. 메인요리는 허브
로 속을 채운 칠면조와 버터를 발라 구운 감자. 그리고 러시안 야채스튜. 거기다가 붉은 방울
토마토와 초록색 양상추가 다른 야채와 함께 크리스마스 색으로 섞인 샐러드와 몇 가지 가벼
운 음식이다.
아무리 크리스마스라 해도 평소보다 훨씬 기합이 들어간 메뉴다.
“....."
그런 음식들을 보며 아까부터 약간 표정이 어두운 키사코가 신경 쓰였지만 식사를 시작하자
키사코는 표정을 바꾸며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맛있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식사를 마친 후.
“부장님. 이거...”
남자가 긴장하며 내민 꽃다발을, 응시하던 키사코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꽃다발을 받았다.
“나는 회사일로 온 거에요. 좀 난데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그런가요?”
“...후훗. 저기, 아마기군...”
그러면서도 웃으며 꽃다발의 향기를 맡던 키사코가 눈을 가늘게 뜨며 남자에게 뭔가 말하려던
순간,
데헤샤아아아아아아악!!! 데샤아아!!!!!
철썩!
아래서 날아온, 녹색의 악취 나는 덩어리가 키사코의 옷에 질척거리며 달라붙었다.
방금 전.
데이스우~
'스테이크' 를 전부 먹어치운 미도리는 입맛을 다시며 식탁 아래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제서야, 미도리의 눈에 놀라운 게 들어왔다. 식탁위에 놓인 고급 도자기 접시와 달리 미도리
의 밥그릇은 원래 철제 개밥그릇이었다.
그 기름에 더러워진 금속에 비친 와타시의 아름다운 얼굴,
그 얼굴의 두 눈은 '녹색'이었다.
데! 데스우~
마침내 자를 가진, 어차피 갈색머리의 분충이겠지만 이미 머릿속에선 남편님과의 사이에서 생
긴 흑발의 자라고 정해진 그 자들이 생겼다는 걸 남편님께 알리러 식탁 아래서 뛰어나온 미도
리의 눈에, 식탁에 앉은 하녀와 남편님의 모습이 들어왔다.
데?! 데데?!
어째서 인간 하녀주제에 식탁에 앉아 있는 건가.
어째서 남편님이 요리한 걸 저 인간이 먹는다.
어째서 와타시의 꽃들을 저 인간에게 건넨다?
어째서.
남편님은 저렇게 행복한 미소를 와타시가 아니라 저 인간에게 향한다?
데헤샤아아아아아아악!!! 데샤아아!!!!!
미도리는 분노에 차서 가득 뿜어져 나온 팡콘에 푹 손을 담아 한껏 움켜쥔 채, 하녀의 주제에
아내의 자리를 넘본 것에 대한 벌을 내리려, 힘껏 대변을 던졌다.
“........”
“........”
방금 전까지, 좋은 분위기였던 식탁에 얼어붙은 듯한 침묵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굳어진 얼굴로 아직 꽃다발을 든 채인 키사코의 다리에서 질척이는 실장석의 대변이 뚝뚝 떨
어지고 있었다.
천천히, 손수건을 꺼내 대변을 닦아내고 일어선 키사코가 더러워진 손수건을 부엌의 쓰레기통
에 넣고는,
쾅!
마루로 통하는 문을 거세게 닫고 나가버렸다.
그 자리에 남겨진 꽃다발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남자는 침묵을 찢는 실장석의 웃음소리에
천천히 식탁아래를 내려다 봤다.
데퍄퍄퍄퍄!! 데스데스우? 데퍄퍄퍄퍗!
문을 손가락질하다가 배를 부여잡고 폭소하는 미도리.
데? 데스우. 데스데스.
한참 웃던 미도리가 남자의 시선을 눈치 채고 올려다보다가 갑자기 옷을 다 벗고 드러누워 다
리를 벌려보였다.
데수웅!
주제모르는 하녀는 내쫓아줬다. 이제부터 남편님과 둘이서 연인의 밤을 보내는 것이다. 와타
시의 부드럽고 하늘거리는, 자랑스러운 머리칼을 만지는 남편님의 손길에 흥분하며 미도리는
그 손이 몸으로 내려오기를 애타게 기대했다.
그 손은, 미도리의 머리채를 꽉 움켜쥐었다.
데?!
순간적으로 몸이 허공에 붕 뜨는 감각에 당혹하는 순간, 남자는 머리칼을 잡고 들어 올린 미
도리를, 있는 힘껏 바닥에 내리쳤다.
콰아앙!
우직! 빠지직!
케아아아아아악!!!!
등으로 바닥에 떨어진 미도리의 몸 여기서 뼈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머리카락을 잡혀 머리를 직접 바닥에 박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충격에 뒷머리가 우
지직 모두 뽑혀나가며 뒤통수도 세게 바닥에 부딪혀 별 필요도 없는 두개골이 갈라지는 소리
도 들렸다.
데! 케에엑! 데스! 뎃!
바닥에서 꿈틀대며 괴로워하던 미도리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보
고 눈을 크게 떴다.
데스우!? 데스! 데스!
머리카락을 가리키며 필사적으로 데스데스 울던 미도리는 남자가 반응을 하지 않자 계속 울부
짖으며 발을 구르다가 한참 뒤에야 부러진 팔다리를 질질 끌고 식탁 아래서 린갈을 들고 왔
다.
“.....”
남자는 말없이 린갈을 켰다.
“남편님 이게 무슨짓데스! 와타시의 아름다운 머리칼이 빠진데스!”
“......”
“오늘은 연인들의 날데스! 와타시에게 키스를 하고 자를 만들어야 하는데스! 그런데 무슨 짓
을 한데스?!”
“.......”
“그리고 어째서 하녀에게 헤롱헤롱데스? 용서하지 않는데스! 와타시가 그 천한 암컷을 내쫓은
데스. 이제 빨리 와타시와 황홀한 밤을 보내는데스우~.”
“...뭐라는 거야.”
작게 중얼거린 남자는 미도리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들어올렸다.
“데갸아아! 아픈데스! 상냥하게 하지 못하겠는데스? 데, 데악!!”
금이 간 두개골이 압박되는 격통에 부러져 움직이기 힘든 팔다리를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미
도리의 앞머리를, 남자가 뽑아버렸다.
“데? 데에에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하게 남편님의 애정이 담긴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독라
라는 최하층 계급이 돼 버린 미도리. 그 충격에 다리사이에서 푸직푸직 새어나오는 대변이 바
닥에 뚝뚝 떨어졌다.
“이게 무슨짓데스우우우우!!!”
“겨우 용기를 내봤는데... 네가 다 망쳐버렸어.”
“데! 그 노예데스? 미친데스! 남편님의 아내는 와타시인데 한눈을 파는데스? 지금 즉시 그 노
예를 끌고 오는데스. 와타시가 찢여죽여...”
“아까부터 남편님 남편님... 거기다가 아내?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연한데스! 와타시가 아내데스. 남편님은 와타시를 사랑하는데스우~. 이제라도 뉘우치고 자
를 임신시키면 용서해 주는데스. 흑발의 고귀한자를 열 마리... 아니 백 마리 낳으면 화를 풀
어주는 데...”
미도리의 말은, 또다시 느껴진 부유감에 중단됐다.
퍼억!
“데아아아앗!!!”
남자가 높이 들어 올린 미도리의 머리통을 바닥에 거세게 던져버리자 바닥에 부딪혔다가 튀어
오른 미도리가 공중에서 사방으로 피를 튀겼다. 피뿐만 아니라, 아까부터 덜렁거리던 왼팔과
양다리도 끊어져 날아가 버렸다.
“역시!”
데악!!!
“실장석따위!”
케아악!
“데려오는 게 아니었어!!”
데아아악!!
사정없이 미도리를 내리치며 외치는 남자의 주먹에 미도리의 몸통이 점점 찌그러지며 위아래
로 대변과 피를 토해냈다.
“사랑? 미쳤어?”
“데이...”
다시 머리통을 잡아 코앞에 들고 미도리를 노려보던 남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누가 실장석 따위하고 사랑을 해! 실장석주제에 무슨!”
“아닌데샤아아아! 그럴 리가 없는데샤야아아아아아!!”
남편님의 말에 입에서 한층 더 피를 토하며 울부짖는 미도리.
어째서 남편님은 저런'거짓말'을 하는지. 역시 그 노에가 유혹해 넘어간 것인가?
하지만.
미도리에겐 본처로서의 가장 큰 증거가 있었다.
“와타시는 남편님의 자를 가진데스!”
“뭐?”
남자에게 미도리는 녹색의 양눈을 자랑스럽게 가리켰다.
“와타시와 남편님의 사랑의 증거데스~. 흑발의 귀여운 자들인데스~.”
“무슨 소리야 그게.”
“남편님이 와타시를 위해 사온 꽃으로 임신한 자데스우!”
꽃으로 임신했으면 흑발일 리가 없다. 애초에 직스를 해도 서로의 애정이 없으면 흑발실장은
태어나지 않는다고 하고,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어서 흑발실장은 그저 도시전설일 뿐이지만
실장석들에겐 탁아와 함께 인간에게 길러질 또 다른 기회로 여겨져 널리 퍼진듯하다.
미도리가 가리킨, 코다츠 옆에 질척해진 채 떨어져있는 안개꽃 줄기 하나를 본 남자가 분노한
표정을 풀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데? 알아차린데스? 알았으면 어서 와타시를...”
“됐다. 어차피 그저 동물. 말해봤자 소용없겠지. 마지막으로 이것만 말해두지.”
“데?”
“저건 너를 위해 사온 것도 아니고. 나는 실장석 따위 사랑하지 않아. 역겨워.”
“그렇지 않은데...”
콰직!
....스! 데스데스! 데스우우우우!! 데?
미도리가 뭔가 말하려는 순간 남자는 린갈을 밟아 부쉈다. 그러자 미도리의 소리는, 그저 데
스데스하는 실장석의 울음소리일 뿐이었다.
"시끄러워. 실장석 같은거 하고 말을 해봤자 소용없어. 더 이상 들을 필요도 없다."
데에에에! 데샤아아아아!
뭐라고 소리를 지르는 미도리를 든 남자는 터덜터덜 마루구석의 수조로 향했다.
"......."
분노가 너무 지나쳐 오히려 머리가 냉정해 지자, 이번엔 상실감이 밀려들었다.
"...큭."
문득 눈물이 나는 걸 깨달은 남자는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자신은.
역시, 키사코에게 반해있었다.
입사 후 매일 잔소리를 들었지만 그 나이에 부장직을 훌륭하게 담당하는 유능한 그녀의 모습
은 눈이 부셨다.
어느새 자신은 그녀에게 반했고 회식자리에선 잘 못 마시는 술도 마셔가며 그녀와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 숙취까지 감수했었다. 그리고 오늘도 키사코는 그저 일 때문에 왔겠지만,
자신은 들떠서 이것저것 준비해봤다.
그걸 이 실장석이 모두 망쳤다.
“........”
남자는 말없이 미도리를 수조에 내리쳐넣었다.
데복!
우연히 벽과 바닥의 모서리에 머리부터 떨어진 미도리의 목이 직각으로 꺾이며 벽에 머리를
이상한 각도로 댄 채 바닥에 누워 덜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상관없이 남자는 수조의 뚜껑을 덮어버리곤 부엌에 튄 미도리의 피와 대변을 천천
히 닦아냈다.
그리곤 아무래도 설거지까지 할 기운은 없어서 마루의 쇼파에 깊숙히 몸을 묻고는 담배에 불
을 붙였다.
"........"
원래 집안에선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지금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후우”
"후우..."
남자가 청소를 끝내고도 한 시간이 지났다.
원래 집안에서 담배를 안 피워서 재떨이가 없었지만, 대신 가져온 미도리의 밥그릇엔 이미 담
배꽁초가 가득 쌓여 있었다.
몇 대째 일지 모르는 담배가 다 타들어가자 밥그릇에 눌러 끈 남자가 새 담배를 입에 물고 라
이터를 키려던 순간.
"아마기군. 세탁기 건조방법을 모르겠어요. 좀 해줄래요?"
"?!"
갑자기 등 뒤, 복도와 마루를 연결하는 문에서 들린 목소리에 남자가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
아봤다.
"부, 부장님? 가신게 아니셨..."
"무슨 말이에요. 실장석의 대변이 묻은 채 가라는 건가요? 샤워하고 세탁기, 멋대로 빌렸어요.
내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당연히 요구할 수 있을 텐데요."
"예! 그건 그렇지만 저희 집의 세탁기, 구형이라 건조기능이..."
매우 당황했던 남자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키사코의 모습을 보고는, 말을 잃었다.
키사코의 말대로 지금까지 세탁기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왔는지 키사코는 지금 목욕타월 한
장만을 몸에 두른 모습이었다.
"........"
원래 몸매가 좋은 건 남자사원들과 수군대며 알고 있었지만, 막 샤워를 마쳐 분홍색으로 상기
된 피부를 따라 물방울이 곡선을 그리며 흐르다가 살짝 드러난 가슴 사이로 흘러내리는 걸 무
심코 눈으로 쫒던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얼굴로 시선을 들었다.
항상 뒤에서 묶어 틀어 올려 움직이기 편하게 해놓던 머리도, 지금은 풀어 살짝 젖은 채 늘어
뜨려져 있다. 틀어 올렸을 땐 눈치 채지 못했지만 원래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칼 몇 가
닥이 입술에 요염하게 걸쳐진걸 보던 남자는 키사코가 안경도 벗고 있다는 걸 그제야 눈치 챘
다.
머리를 풀고, 안경을 벗은 키사코. 4살 연상이긴 해도 지금의 모습은 오히려 남자보다 어려보
일 수준이었다.
그 모습으로, 남자의 말을 들은 키사코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래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당분간 이러고 있어야겠네요."
그리고 살며시 다가오는 키사코에게서, 주로 타월에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가슴에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붉히던 남자가 외쳤다.
"그, 그렇지! 부장님! 그러면 아리사카 상사 장부 오류를!"
"장부..? ...아아....장부요... 그거요. ....하아."
왠지 한숨을 쉰 키사코는,
"설마 그것 때문에 구태여 크리스마스에 왔다고 진짜로 믿은 건지. 이 둔탱이는."
...하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그걸 못 듣고 예? 거리는 남자를 보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예에... 그 장부 말이죠. 그러면 월요일에 출근해서, 세 번째 페이지에 숫자 단위 쉼표 하나
빠트린 거 다시 쓰세요. 사실 그거뿐이니까요. 자, 이걸로 일은 끝."
"예? 예... 예?"
아직도 쇼파에 앉은 채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남자의 모습에 귀엽다는 듯이 웃은 키사코는
쇼파 뒤에서 몸을 숙이며 남자를 끌어안았다.
"부, 부장님? 부자..."
그리고,
이 눈치 없고 귀여운 남자의 당혹한 목소리를, 입술로 막아버렸다.
데...
목이 꺾여 기절해있던 미도리가, 천천히 눈을 떴다.
흐려진 시야가 돌아오며 눈에 들어오는 친숙한 마루의 모습. 와타시와 남편님의 행복의 보금
자리.
데!!!
...였을터인 그곳의 모습에 미도리가 비명을 질렀다.
쇼파에 풀어헤쳐진 옷차림으로 기대 누워있는 남편님. 그 다리 사이에 드러나 있는 '그것'의
모습에 미도리의 눈이 고정됐다. 공원에서 본 마리실장의 추악한 마라와 달리 너무나도 흥분
되는, 흑발의 자들을 가지게 해줄 그것은, 남편님의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는 그 하녀
의 머리에 가려졌다.
데에!!! 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와타시의 것을, 주인님을, 남편님을 빼앗기는 그 광경에 미도리의 두 녹색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뜨였다.
데아아! 데샤아아아아아아!!!
점점 진행 되가는, 와타시가 남편님과 이 연인들의 밤에 해야 했을 일을 그 하녀가 가로채는
모습을 보며 벌떡 일어서려고 생각한 미도리는 그저 한번 몸을 꿈틀거렸을 뿐이다. 그제서야
다리가 떨어져나가고 팔도 오른팔밖에 남지 않은걸 기억해낸 미도리는 오른팔로 질질 기어 수
조의 벽으로 향했다. 그리곤 한참 뒤에야 간신히 벽 아래 도착해, 일어설 수조차 없는 몸으로
필사적으로 오른팔을 들어 올린 후 녹색의 양 눈에 붉은 혈관을 띄운 흉칙한 모습으로 입에서
침을 튀기며 수조의 벽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면 와타시를 눈치 챈 남편님이 저 인간을 버리고 와타시에게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
며.
그렇지만.
“부장님... 읏?!”
“부르는 방법. 맘에 안 드네요.”
“하, 하루미오상.”
“.......”
“....키사코.”
“후후. 잘했어요.”
쇼파에 앉은 남자의 위로 몸을 올리는 키사코에게 가려서 남자에게 수조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설령 가려지지 않았어도, 수조안에든 더럽고 엉망진창인 독라의 실장석보다 눈앞의
키사코만이 보일뿐이다.
“......”
대신,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올라타고 있던 키사코가 허리를 약간 띄운 채로,
수조를.
미도리를 살짝 돌아봤다.
그리고, 그 입가에 비웃는 듯한 미소가 지어졌다.
! 데....데샤아아아아!! 데샤아아아아!!
그 미소를 보는 순간 미도리는 피를 토하듯 절규했다.
이미 침뿐만 아니라 눈물과 콧물이 범벅된 모습으로 미도리는 미친 듯이 수조를 두들겼다.
그래봤자 뚜껑이 덮인 수조 바깥엔 콩콩거리는 작은 소리만이 울릴 뿐이고 그 소리에 신경 쓸
사람은 없었다.
키사코만이 그 소리를 알아차리고 있었지만 그 소리를 느긋하게 즐기며,
허리를 아래로 내렸다.
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 모습을 본 미도리의, 이미 실장석의 소리 같지 않게 된 절규는 수조바깥까지 들렸겠지만
그 소리는 남자와 키사코의 신음소리에 묻혀 버릴 뿐이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미도리는, 눈앞이 어두워지는 걸 느끼며 널부러진 몸뚱이에서 필사적으로 들어 올리고
있던 오른팔과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데아아아?!
비명을 지르며 악몽을 꾼 듯이 소스라치며 일어나는 미도리.
데? 데?
그리고 눈앞의 광경, 눈이 쌓인 한낮의 마당의 모습에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악몽? 그렇다. 고약한 악몽이었다. 그 증거로 떨어져나갔던 와타시의 가냘프고 아름다운 팔과
다리가 멀쩡히 붙어있었다.
데이....
어째서 와타시가 마당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다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와타시가 없어진걸
알아차린 남편님이 지금 애타게 와타시를 찾고 있을 것이다.
뎃스~
그런 재수 없는 꿈을 꾼 건 기분이 나빴지만 어서 집에 돌아가 남편님과 따듯한 거품목욕을
하자. 그러면 기분이 풀릴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엔...
쿵!
데켁!
그때, 달려가던 미도리는 뭔가에 얼굴을 세게 부딪치며 뒤로 나뒹굴었다.
데에에?
쿵쿵쿵.
코피가 흐르는 코를 누르며 미도리는 양손으로 눈앞의 투명한 벽을 두들겼다. 익숙한 수조의
아크릴벽. 어젯밤 죽어라 두들겼던 그 벽.
어젯밤.
데...데스우우우?!
모든 걸 떠올린. 그것이 현실임을 이제서야 인정한 미도리는, 마당에 내놓아진 아크릴 수조의
벽에 달라붙어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스테이크, 라고 생각하는 그저 익혔을 뿐인 햄 통
조림의 영양으로 하룻밤 만에 재생한 팔로 벽을 부수려 때려도 부서질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벽을 치던 미도리의 움직임이 문득 멈췄다.
모두 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드르르륵.
“어머. 벌써 일어났네. 미도리.”
데사아아아아아!!
그 하녀년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남편님을 뺏겼다는 것도 진짜였다.
녹색의 대변으로 곰팡이가 핀 것처럼 뿌옇게 흐린 수조 안의 더러운 독라실장석을 내려다보며
키사코는 미소를 짓고 린갈을, 어제 남자가 부순 것과는 다른 자신의 린갈을 꺼냈다.
“고마워요. 미도리.”
“데?”
전혀 예상도 못했던 하녀의 말에 멍해지는 미도리. 뚜껑을 연 키사코가 손가락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가느다란 손가락 끝으로 미도리의 대머리를 문질문질 쓰다듬었다.
“솔직히 집에 들어와서 처음엔 도망치고 싶었어요. 나름 용기를 내서, 너무 티가 날까 걱정하
며 저녁을 만들 재료까지 사왔는데... 아마기군은 나보다도 요리가 능숙하더군요. 그야...이 나
이까지 연애 한번 못해봤고 남자에게 요리를 해줄 일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친구들은 아직
경험 없냐고 놀리면서도 걱정하고 명절에 본가라도 가면... 하아.”
“데샤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데스. 어서 와타시를 꺼내는데샤아!”
“...말이 샜군요. 어쨌든 그렇게 위축됐었는데. 당신의 모습을 보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아마기군이 실장석을 기르는 건 몰랐으니 원래는 좀 억지스럽게라도 유혹해보려고 했는데 그
실장석을 보고 생각했죠.”
미도리를 내려다보는 키사코의 눈에 비웃음이 어렸다.
“이 실장석. 실장석 주제에 아마기군을 사랑하고 있네, 써먹을 수 있겠어. 라고요.”
“무슨 소리데샤! 와타시는 아마기를 사랑하지 않는데샤아!”
“에?”
의외의 대답에 살짝 놀라는 키사코를 올려다보며 이번엔 미도리가 말했다.
“와타시의 지고지순하고 진실 된 사랑은, 남편님 뿐데샤아! 남편님을 돌려주는데샤아! 천한 하
녀는 아마기인지 뭔지 라도 가지면 되는데샤아악!!”
“.....쿡.”
“데? 뭐가 웃긴데샤!”
“아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 역시 구제불능의 바보네요. 실장석은.”
“데!”
“미도리.”
“왜 웃는데샤! 와타시를 깔보는데샤!”
“미도리.”
“데샤아아!”
“미도리.”
“닥치는데스! 아까부터 와타시의 이름을 감히 함부로 부르는데샤아!”
“그래요. 당신의 이름은 미도리죠.”
“당연한데샤아!”
한때 아직 작았을 때 치비코만이 자신의 고귀한 이름이라고 오열하던 실장석. 이미 투실투실
살이 찐 몸이 된 성체실장석에게 키사코는, 그 실장석이 2년이나 살아오면서도 몰랐던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사실을 상냥하게 가르쳐 줬다.
“그 남자. 당신이 남편님이라고 하는 인간의 '이름' 이 아마기 츠미야. 아마기군이야.”
“데? .....데에에?!”
지금까지 이름이란 건 사육실장의 증거. 사육실장이 되는, 와타시 같이 권리가 있는 실장석에
게만 주어지는 거라고 알고 있던 미도리는 경악했다.
인간에게도 이름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다.
인간에게 이름이 있다면, 실장석과 마찬가지로 자신만의 소중한 것일 거다.
그런데.
와타시는 남편님의 이름을 몰랐다.
남편님은 와타시에게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 가혹한 사실에, 키사코가 쐐기를 박았다.
“설령 위장결혼이라도 아내가 남편의 이름을 모르진 않아요. 근데 이름을 모른다는 건... 아내
가 아니란 소리죠.”
“데아아아아!!!”
듣고 싶지 않은 현실에 바닥에 웅크린 채 귀를 막는 미도리의 양 눈에서 녹색 피눈물이 흐른
다.
“물론 나도 이름이 있어요. 하루미오 키사코. 그리고 나중엔 아마기 키사코로 바뀌겠죠. 이 말
의 뜻을 알까?”
애초에 실장석은 팔이 짧아 귀를 제대로 막지 못하는데도 귀를 막으려 노력하는 미도리에게
설명이 이어진다.
“아내는 남편의 성으로 바뀌어요. 하루미오 키사코가 남편의 성을 따라 아마기 키사코로. 하
지만 실장석에겐 성이란 게 없으니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네요. 쿡쿡....”
“아닌데스! 아닌데스으으으으!!!”
성이란 게 뭔지도 이해 못하는 실장석이지만 그 말의 분위기와 불가능이란 단어에 괴로워하며
이마를 바닥에 찧는 미도리의 이마에서 배어나온 적록색 피로 수조의 바닥이 더 더러워져간
다.
“어쨌든 와타시가 남편님의 아내데스! 어서 꺼지는데샤아앗!”
분노에 찬 미도리가 일어서서 주위에 가득한 대변을 퍼들고 키사코에게 집어던졌다.
“...흥.”
그러나, 어제와 달리, 키사코는 고개를 가볍게 트는 것만으로 그 녹색의 덩어리를 피했다.
“나도 실장석을 기른다고 했죠? 실장석에 대해선 잘 알아요. 뭐, 아마기군이 같이 살자고 이
야기 해준 이상 이사 할 때 그 녀석들은 전부 처분할거지만요. 어제는 일부러 맞아준 거에요.
아마기군의 세탁기가 구형인 것도 그렇고, 생각한 대로 나에게 좋은 기회를 줬어요. 미도리.”
“데에에?!”
필살의 공격이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진걸 보고 경악하는 미도리. 거기에다, 와타시가 저 하녀
의 계산대로 놀아난걸, 도와준 꼴이 됐다는 걸 희미하게 깨달았다.
푸욱.
“데우욱?!”
키사코는 미도리의 반질반질한 대머리에 올리고 있던 손가락을 눌러 미도리의 얼굴을 아래에
가득한 대변에 처박았다.
그렇게나 위협하던 인간에게 간단히 제압당해 독라인것도 모자라 대변범벅이 되어 더 천해질
데가 없어지는 미도리.
“도움이 됐으니 죽이진 않겠어요. 당신, 그렇게나 자가 가지고 싶어서 안달이라니 원 없이 자
를 낳을 수 있는 곳으로 보내주죠.”
“데...히... 하녀주제에 건방진데스. 너에게 그럴 권리는 없는데스! 와타시의 뱃속엔 남편님의
사랑과 와타시야말로 아내라는 증거인 귀여운 자들이 있는데스. 와타시를 건들면 남편님이 널
박살내는데스!”
“자? 아아 그렇죠. 그러면... 이렇게 하죠. 3주후 태어날 자들. 그 자실장들이 흑발실장이라면
당신이 아내라는 걸 인정해주겠어요.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했으니 당연하겠죠?”
“데프프! 당연한데스! 고귀한 흑발의 자들데스!”
“그래요. 기대하고 있겠...”
삐이이이!
그때 열린 마루 유리창 너머로 울리는 전기밥솥의 소리에 키사코가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아! 밥이... 그러고 보니 국도 가스레인지 위에!!!”
우당탕거리며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다가 발이 걸려 넘어지는 키사코의 모습은 회사에서 보이
던 차갑고 날카로운 인상, 그리고 미도리 앞에서 보인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어제 사온 재료로 기껏 요리를 해봤지만 그저 탄 냄비가 만들어진 걸 앞에 두고 눈물을 글썽
이는 그 모습에, 밤새도록 시달리고 시달리게 하다가 그제서야 침대에서 일어난 남자는 미소
를 지으며 앞치마를 둘렀다.
키사코가 (절대 실패 할리가 없는 전기밥솥으로) 한 밥과 남자가 재빨리 만든 고기야채볶음과
다른 반찬이 놓인 식탁.
그 앞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다른 요리를 시작하는 남자를 뒤에서 키사코가 꼭 끌어안자 남자
가 고개만 돌려 입술을 겹치는 그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보이자, 미도리는 다시 날뛰려던 걸
필사적으로 참았다.
지금은 괴롭지만 자를 낳으면 남편님을 되찾을 수 있다. TV에서 나오는 여주인공의 시련 같
은 게 틀림없다. 이 시련을 이겨내고 흑발의 자들과 집에 당당히 돌아가는 때 저 하녀에게 자
들의 대변을 치우게 할 행복한 미래를 그리면서 미도리는 기분을 다잡고 태교의 노래를 부르
기 시작했다.
뎃데로게~ 뎃데~ 젯데로게~
키사코의 웃음소리와 미도리의 태교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집.
이 순간만큼은, 집안에 있는 모두가 행복했다.
3주후.
“하루미오 부장님. 이거입니까?”
“예. 그 안에 있어요.”
녹색의 작업복을 입은 한 남자가 키사코가 가리킨 마당 한구석으로 향했다.
“아, 이거군요. .....우왓?!”
마당구석에 처박힌 그것, 수조의 뚜껑을 연 남자가 안의 모습을 보고 놀랐다.
뎃데로게에~ 젯데로게에에에에에에~
그 안엔 딱 봐도 임신이 아닌데도 뱃살을 부여잡고 태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독라실장과,
산산조각 난 채 추운 겨울날씨에 수조 여기저기에 달라붙어있는 실장석들이 보였다. 자실장부
터 구더기까지 열 마리 정도 되는 그 실장석들은 잡아 찢긴 듯 처참하게 조각나 죽어있었지
만,
모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 받아가겠습니다.”
“네. 잘 부탁... 아, 잠시 만요.”
그때 핸드폰이 울리자 키사코가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마기군? ....뭐? 오늘은 주말이잖아요?! 왜요! 하아? 거래처 접대? 그딴 거 내가
다른 직원 보낼게요! 무조건 빨리 오세요! 네? 알겠죠? ...그래요. 아. 그리고 올 때 저녁거리
사오세요. 오늘이야말로 실패 안 할... 왜 웃는 거죠?!”
“.......”
“네. 네... 알겠어요. 빨리 와요.”
얼굴을 붉히며 전화를 하던 키사코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사랑해요~. ...대답은? ...말 돌리지 말고. 대답은? .............꺄아! 우후후...”
그리고 나서야 전화를 끊은 키사코가 약간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남자를 돌아 봤다.
“죄송해요. 그럼 잘 부탁드릴게요.”
“네....알겠습니다.....”
“...?”
왠지 묘하게 쌀쌀해진 남자의 대답에 의아해하던 키사코는 수조를 들고 지나가는 남자가 뭔가
계속 작게 중얼거리는 걸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봤다.
그리고 그대로 집을 나서는 남자가 든 수조를 응시하던 키사코가 살짝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미도리. 자들의 갈색 머리카락을 전부 뜯어 삼키고 죽여 버리면 ‘흑발이었다’ 고 우
길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어차피 당신에겐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내기였어요. 자를 아직
안 낳았고, 뱃속에 흑발실장이 있다고 행복회로를 발동해도 말이죠. 그렇지만 덕분에...”
남자가 나가며 완전히 모습이 안보이게 되는 순간, 키사코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
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 행복해요. 고마워요.”
쿵.
데!?
집을 나서 남자가 주차되어 있던 트럭의 짐칸에 거칠게 수조를 내려놓는 충격에 잠시 움찔했
던 미도리는, 다시 태교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뎃데로게~젯데에에~
곧 태어날 흑발의 귀여운 자을 가득 데리고 다시 남편님의 집으로 들어갈 그날을 기다리는 미
도리. 그러나, 현실 속에선 미도리는 빠르게 집에서 멀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덜컹.
뎃데~ ...데이?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차가 멈춘 후 수조가 흔들리다가 뚜껑이 열리자 미도리는 멍하니 위를
올려다봤다. 그러자 탁해진 눈에 후덕한 풍채의 중년남자가 보였다.
“어이구. 심하구만 이거. 하지만 뭐... 하루미오 부장 말대로 새끼는 펑펑 낳는 거 같네. 거래
처긴 해도 의외로 이런 좋은걸 넘겨받았어. 뭐, 처리해준다고 해도 되나? 그나저나 그 하루미
오 부장이 남자친구와 러브러브라니. 하하하. 곧 청첩장 날릴 분위기던데 직접 보니 어떤가.
마사키상?”
“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
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면지는
거야........”
“....마사키상?”
“부러우면지는거야부러우.......크......크흐흐흐흑....”
“...설명 고맙네.”
곧 파킹해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노총각 직원의 어깨를 힘내라며 툭툭 두드려준 중년남자가
다시 수조를 들여다봤다.
“자, 그럼... 우리 공장에선 이름 따위 안 붙이지만 기껏 이름이 있으니 불러주지. 열심히 해
다오, 미도리?”
데...
미도리는 그저 멍한 눈으로, 반쯤 벗겨진 중년남자의 머리를 올려다볼 뿐이었다.
1년 후.
“여어. 어떤가? 상태는.”
“아, 사장님. 뭐 별다른 문제는 없습니다.”
실장석들이 가득한 공장에 들어선 중년남자, 사장을 본 직원들이 하나둘씩 인사를 했다.
상당히 넓은 공장안엔 2열로 늘어선 좁은 케이지와 그 사이에 컨베이어 벨트가 있는 출산용
라인이 여러 줄 있었다. 뚜껑이 없이 위가 열린 그 좁은 케이지 안에는 반대편 벽에 연결된
줄이 달린 목걸이를 맨 독라의 출산석이 한 마리씩 들어가 남산만한 배를 안고 있었지만, 태
교의 노래는 들리지 않아 조용했다.
임신한 출산석이 태교의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기이한 모습은 멀리 떨어진 케이지에서 들린
소리로 설명이 됐다.
뎃데로게...
주위를 조심스럽게 둘러보던 약간 작은 출산석이 중얼거리듯 작은 소리로 태교의 노래를 불렀
다.
젯데....
퍼억!
케에에에엑!!!!
그러자 곧바로 고성능 집음기가 달린 린갈을 든 직원이 달려와 주저 없이 주먹으로 그 실장석
의 얼굴을 후려쳤다. 공장의 직원들은 음성번역형 린갈을 항상 가지고 있어 싫어도 실장석의
말이 번역 되곤 한다. 그 귀찮음을 감수하면, 이렇게 반항하는 출산석을 감시하기가 쉬운 것
이다.
성인 남자의 주먹이라면 실장석의 얼굴과 비슷한 크기이다. 물론 실장석의 몸에 비해 언밸런
스한 크기인 머리보다는 작지만 그렇다고 그 머리가 크기에 맞는 지능과 내구성을 가진 건 아
니라 얼굴이 함몰 된 채 입에서 부글부글 피거품을 게워내는 출산석을 보던 직원이 귀찮다는
듯 말 했다.
“태교의 노래는 금지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냐!”
“데케엑... 자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미리 가르치는데스... 마마로서의 권리데스... 그러니까....
뎁! 데헤아악!”
입에 손가락을 넣어 턱을 아래로 당기자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턱이 아래로 늘어진 출산석이
소리를 못 내게 된 걸 본 직원이 손가락을 휴지로 닦으며 돌아섰다.
“쓸데없는 소리로 귀찮게 하기는... 사장님. 시간은 이르지만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러게.”
벽에 붙은 컨트롤박스로 간 직원이 버튼 몇 개를 누르자 공장안에 낮은 벨소리가 몇번 울렸
다.
데히...데히......?
턱이 빠진 출산석과 몇몇 다른 출산석들은 그 소리에 의아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그 소
리를 들은 대부분의 출산석들이 좁은 케이지 안에서 컨베이어 벨트의 반대편 벽으로 모두 이
동했다. 그리고 대변이 흘러내리게 철망으로 된 바닥에 붙은 노즐들 중 하나에서 어떤 액체가
분사 됐다.
치이이익!
분사된 건 출산촉진제였다. 농도가 강해 강제출산약 수준인 그 촉진제를 독라인 몸에 뒤집어
쓴 출산석들의 입과 총배설구에 가차 없이 약이 스며들어가며 눈이 붉게 변했다.
데.... 데스우우우우~~~~!!!
텟테레이~
텟테레이~
텟테레이~
텟테레이~
텟테레이~
텟테레이~
텟테레이~
텟테레이~
텟테레이~
그리고 다음 순간 넓은 공장안은 수백 마리의 새끼들이 태어나며 내는 탄생의 소음으로 가득
찼다. 실장석들에겐 행복한 소리지만 인간들에겐 기분 나쁜 그 소리에 경력이 짧은 직원들이
얼굴을 찌푸렸지만 중년남자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금속의 차가운 색과 독라의 살색뿐이던
공장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녹색물체들을 지켜봤다.
저 소리, 저 모습을 반평생 듣고 보며 살아왔다.
저것들이 있어 가난했던 집안에 도움이 될 수 있었고 동생들도 모두 대학에 보냈다. 덕분에
자신과 달리 머리가 좋은 자랑스러운 동생들은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훌륭하게 브리더와 연구
원이 되었다. 아무런 자격증도 기술도 없던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준 실장석들의 모습
은 중년남자에게 더없이 사랑스러운 것이다.
출산이 시작되자 다른 노즐에서 안개처럼 물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이 물은 새끼들의 점막을
적시는 용도 외에도 물에 쉽게 녹게 만들어진 출산촉진제를 씻어내 새끼들에게 묻지 않게 하
는 효과도 있다. 그 물에 젖은 점막을 출산석들이 핥아주는 게 끝나자 테치테치테치테치테치
테치테치테치레치레치레치레치레치레치레후레후 라며 고막이 찢어질듯 시끄러워진 각 라인을
린갈을 든 직원들이 달리며 재빨리 체크했다. 분류작업은 나중이지만 2주마다 한 번씩 있는
출산에 몸이 견디지 못하고 말라죽어버리는 출산석을 골라내기 위해서다.
“열다섯인가. 뭐 평균이군.”
직원들이 눈이 탁해진 독라의 시체를 머리를 잡고 끄집어내 목걸이를 벗긴 후 회수봉투에 던
져 넣는 걸 본 중년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눈의 색이 둘 다 붉은색이면 아직 뱃속에 새끼가 남았지만 출산 중에 힘이 다해 죽은 경우.
적록의 오드아이면 새끼를 다 낳고 나서 죽은 것이다. 전자의 경우 아직 뱃속에 새끼들이 살
아있겠지만, 수천 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있기에 구태여 그걸 꺼내줄 필요는 없어서 두 눈이
탁한 적색인 시체도 그저 수거봉투에 던져질 뿐이다.
게다가 죽은 출산석의 새끼들은 직원들이 장갑을 낀 손으로 점막을 제거하지만 아무래도 시간
이 지체되니 구더기가 늘어난다. 그래서 출산 때 죽는 출산석의 수에 따라 구더기의 수도 영
향을 받지만 한 라인에 케이지가 40칸으로 두 줄. 총 라인은 11라인이라 880마리의 출산석
중 20마리정도 죽어나간다고 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각 출산석이 열 마리 정도를 낳으니
평균적인 출산 수는 8천에서 9천. 실장석을 싫어하는 사람이 보면 기절할 듯한, 9천마리의 실
장석이 우글대는 모습이 되는 것이다.
“아 이 녀석 뭐야... 두 번 만에 죽었어? 젠장.”
원래 몸이 약한지 아니면 출산 직전에 몸에 데미지가 가서 그런지 눈이 탁한 적색인채 죽어있
는, 아까 태교의 노래를 부르다가 턱이 뽑힌 실장석을 본 직원이 얼굴을 찌푸리곤 머리통을
잡고 케이지에서 꺼냈다. 그리고 그 순간, 아직 부풀은 배가 희미하게 꿈틀거리는 걸 봤지만,
상관하지 않고 수거봉투가 펼쳐진 카트에 던져버린 후 점막에 싸여 있는 구더기들을 집어 점
막을 벗기기 시작했다.
“테츄웅~. 커다란 마마테치! 잘 부탁하는테치. 와타시 착한 자가 되는 테치~.”
자실장이 된 한 새끼가 직원의 손 위에서 ‘붙임성’을 보이며 직원을 올려다봤다. 어차피 아첨
이겠지만 말하는 투를 보면 분충성은 적은게 이 공장에서 태어난 자실장치고는 영리한 편이
다. 아마 낮에 직원들의 눈을 피해서 작게 태교의 음악을 들려줬었던 것 같다. 교육되지 않은
태교의 노래는 분충성만 키우지만 이 실장석은 버려진 원사육실장. 나름 자의 미래를 위해 이
것저것 가르쳤을 것이다.
구태여 낮이라고 생각한건, 직원들이 퇴근한 밤에는 집음 센서와 연동된 전기충격기가 바닥의
철망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케이지마다 달려 태교의 노래를 감지한 센서는 치사량에 가까운
전류를 흘려보내 태교의 노래를 멈추게 한다. 하지만 몇 번이나 계속되면 결국 죽게 되는지라
낮에도 24시간 이 장치를 가동하던 시기엔 매일 몇 마리씩 감전사해서 죽어나가자 결국 낮에
는 직원들이 감시하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다.
그 눈을 피해서 자들을 가르치려 했지만 호의호식하고 살아온 원사육실장의 몸이 2주 간격으
로 반복된 출산을 이기지 못하고 체력이 다해 죽은 것이다. 자를 가르쳐 잘 키우면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그저 자들을 가르치고 싶었던 건지 모르지만, 이걸로
다 끝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새끼들의 점막을 벗기던 직원은 잡생각이 끼어들어서인지 드물게 실수를 했
다.
“마마 점막 핥아주는레후? 구더기 기쁜레후. 구더기 오네짱들처럼 팔다리가 생기는레... 레캬
아악!!!”
“아...”
무심코 힘을 조금 더 준 마지막 구더기는 점막이 아니라 몸이 뭉개지며 납작해져 버렸다. 신
기한 정도로 물러터진 몸이지만 아직 경험이 적은 신입 시절에 질리도록 본 모습이라 지금은
오히려 자신의 실수에 대한 약간의 자괴감만이 든다.
“이런... 나도 아직 미숙하구나...”
태어난 행복함에 모여서 테치테치 떠들다가 난데없이 동생이 터져 죽는 장면을 봐버린 자실장
과 엄지들이 눈을 크게 뜬 채 올려다보고 있었지만 직원은 터진 구더기를 수거봉투에 던지곤
다른 케이지로 서둘렀다. 구더기 한둘 정도 죽는다고 잔소리를 듣진 않는다.
테치이.....?
‘마마’가 사라진 그 케이지에선 아직 상황을 이해 못한 새끼들만의 얼빠진 울음소리만이 들렸
다.
“후우... 죽은 출산석의 회수와 점막제거 끝났습니다.”
“응. 수고했어.”
부하의 보고를 들은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곤 공장 안을 한번 둘러봤다. 아무래도 문제는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는 경험 없는 출산석들에게 일어난다.
“데스우~. 마마는 너희들이 태어나기를 기쁘게 기다린데스~. 어서 젖을 먹는데스. 먹고 무럭
무럭 크는데스~.”
8마리의 자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해 하는 저 출산석처럼 말이다. 독라이기에 옷을 걷을 것도
없이 양팔에 한 마리씩 자실장은 안은 출산석은 자들의 입에 가슴을 대준다.
하지만.
“데?”
“테치? 마마 아무것도 안 나오는테치!”
“배고픈테챠아! 감히 와타시를 굶기는테치! 이 독라테치!”
“데에에?”
어차피 공장에 온 첫날에 수면제가 먹여진 후 전기인두로 지져진 가슴에서 젖이 나올 리가 없
다는 것도 모른 채, 젖이 나오지 않는 것에 당황한 출산석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다른 출산
석들은 자들을 내버려두고 모두 벽 위를 손으로 잡고 있는 게 보였다. 자들을 한 번씩 꽉 끌
어안아주고 있던 한 출산석도 자를 내려주곤 벽으로 가 짧은 팔로 벽을 잡는다.
“데? 무슨 일데스? 어째서 모두들 자들에게 젖을 주지 않는데스? 이상한데스!”
“뭐... 상관없겠지.”
그 모습을 보고도, 직원은 레버를 당겼다.
덜커덩!!!
테치이?!
테챠아아아~~~
테치?!
레치?!
그러자 케이지 자체가 일제히 컨베이어 벨트 쪽으로 기울었다. 컨베이어 벨트 쪽엔 벽이 없기
에, 8천여마리의 실장석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굴러 내려간다. 그래봤자 거리론 길어봐야
50cm. 낙차는 25cm 밖에 안 되고 게다가 경사로를 구르는 것이기에 무른 새끼들의 몸으로
도 대부분 다치지 않는다.
하지만 불행만이 약속된 생물답게, 그중에서도 특히 운이 없는 녀석들은 가끔 있다.
치아아아아?!
테,테테테텟?!
수천마리가 굴러 내려와도 각자 케이지의 아래로 내려오고, 좌우와 반대편의 조금 떨어진 곳
에 다른 출산석의 자들이 굴러 내려오는 거라 압사 같은 일은 없다. 하지만 기세 좋게 구른
한 자실장이 바닥에 튕겨 컨베이어 벨트 가운데에 떨어졌다.
그래도 보통은 특수 제작해 푹신한 벨트 위라 다치진 않지만, 반대쪽 케이지에서도 똑같이 자
실장이 한 마리 튕겨 날아온 것이다.
빠아악!
테게테치아보오캬아악!!!
두 마리의 단말마가 섞인 이상한 소리와 서로 부딪힌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같이 울렸다. 그
다지 단단하지 않은 자실장의 두개골이라도, 상대도 똑같은 자실장의 두개골. 날계란을 던져
날계란을 맞히면 둘 다 깨지듯이 머리가 깨진 자실장 두 마리가 벨트 위에서 움찔움찔 경련하
고 있었다.
이건 공장에서 2주마다 8천여 마리씩 쏟아지는 새끼들 중에서도 희귀한 경우다.
“오! 저기 당첨입니다! 보세요. 사장님.”
“그렇군. 참 운도 없어. 적어도 둘 중 하나만 튕겼으면 무사했을 텐데. 뭐 두 마리가 부딪히는
것도 어렵지만.”
“그럼 오늘 회식? 회식이죠?”
“그래. 간만에 거하게 먹자고 모두들.”
“앗싸! 오늘 일 끝나고 회식이다!”
“와아아아!!!”
그러기에 이런 일이 생기면 오히려 길조라 여기게 되서 이 공장에선 새끼들이 벨트에 굴러 내
려갈 때 충돌해 죽을 경우 직원들 전부를 모아 회식을 한다는 훈훈한 풍습이 생겨 있었다. 그
풍습대로 회식이 정해진 걸 작업반장이 알리자 공장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울렸다.
데이이이....
데,데스웃! 데스웃!
그 기쁨의 환호성 속에서 두 마리의 친실장들은 자신들의 자실장이 머리가 깨져 죽은 것도,
그런 일이 생겼는데 기뻐하는 인간들의 모습도 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경사로에서 굴러 떨어
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벽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여기서 손에 힘이 빠지거나 처음부터
벽을 잡고 있지 않았을 경우...
케에에에엑..... 데.......데케에에에...
벽에 묶인 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경사로 위에서 목이 졸리고 있는, 아까 자들에게 젖을 먹이
려던 저 경험 없는 출산석처럼 되버린다.
자들에게 젖을 먹이려 하던 이 출산석은 갑자기 기우는 바닥과, 그 경사를 굴러 내려가 멀어
지는 자들을 보고 놀라며 손을 뻗었었다.
데!? 데스데스우케에에에에엑!!!!!
하지만 자신의 몸도 미끄러지다가 목걸이의 줄이 팽팽해지며 졸지에 교수형을 당하는 모습으
로 목걸이를 양손으로 잡고 버둥대기 시작했다. 이 줄은 벽이 낮은데다가 한쪽 벽은 뚫린 케
이지에서 출산석이 탈출하지 못하게 하는 것 외에도, 출산된 새끼들을 컨베이어 벨트로 옮길
때 출산석이 같이 굴러 내려오지 않게 하는 기능도 있었다. 그걸 몇 번의 출산과정과 다른 출
산석의 모습을 보고 학습한 출산석들은 미리 벽을 잡고 구르지 않게 버티는 게 할 수 있는 전
부인 것이다.
단지, 그런 경험이 없는 온지 얼마 안 된 출산석이나 기력이 다해 벽을 잡고 있을 힘이 없는
오래된 출산석들은 굴러 떨어져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
인간에게 가해지는 형벌로서의 교수형은 발에 무게추를 달은 뒤 순간적인 낙하 충격으로 목뼈
가 부러져 즉사하게 되는 형벌이다. 잔인하지만, 전기의자나 총살에 비하면 사형수가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기에 어떻게 보면 오히려 마지막 자비일수도 있다.
그리고 고통을 느낄 겨를이 없다는 똑같은 이유로, 실장석을 학대할 때는 추를 달지 않고 그
저 자신의 체중만을 이용한 질식사를 시킨다. 학대파나 연구원의 실험의 결과론 일반적인 성
체실장이 버티는 시간은 평균 40초 정도.
그 40초 내에 케이지가 원래대로 올라가면 지금도 여기저기서 목이 졸리는 소리를 내는 수십
여 마리의 출산석은 살아날 수 있겠지만 직원은 레버를 올리지 않았다.
“데! 장녀짱! 마마를 꽉 잡는데스우!!! 이번엔 절대로 헤어지지 않는데스!!!”
“테! 마마!! 마마!!!”
한손으로 벽을 잡은 채 다른 손에 자실장 한 마리의 손을 잡고 버티는 저런 출산석 때문이다.
십여 마리의 자들 중 잡을 수 있는 건 한 마리 뿐. 그래서 자와 헤어지기를 거부하는 출산석
들은 보통 이렇게 장녀를 잡고 버티기도 한다.
그래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버티는 출산석의 손을, 다가온 직원이 툭 치자
벽을 놓친 출산석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케헥!!!
그리고 자신의 체중과 자실장의 체중 까지 합쳐 목이 졸리기 시작했다. 머리칼과 옷이 없어
살색의 뚱뚱한 인형 같은 생물이 질식사의 위기에 처해 눈코입에서 각종 액체를 줄줄 흘리며
눈을 까뒤집고 있는, 그 와중에도 새끼의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은 혐오감을 일으키기에 직원은
상관없이 다른 출산석을 처리하러 갔다. 이렇게 반항하는 녀석들 때문에 작업이 늦어져 시간
이 지체되는 것이다.
이미 1분이나 지났다.
자들이 인간에게 간다고 가르쳐져도 매번 출산 때마다 역시 수십여 마리가 이렇게 반항을 한
다. 무능한 독라가 어떻게 새끼를 기르겠다는 건지 물어보고 싶지만, 어차피 공장에서 주어지
는 밥을 새끼의 것까지 더 달라는 것일 거다.
다른 곳에서도 버티는 새끼들을 컨베이어벨트로 내려 보낸 후 라인을 따라 돌아오던 직원은
아까 그 케이지에 눈길을 향했다.
테치! 테치!
테치이이이!!!
항상 그렇듯이 8천 마리의 새끼들은 마마를 요구해 다시 케이지에 기어오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경사로 위를 두 걸음도 못 가서 굴러버린다.
하지만 그 케이지의 자들은 아까 출산석이 잡고 있던 자실장까지 아래에서 조용히 위를 올려
다보고 있었다.
목이 졸려 질식사 한 채, 이젠 눈코입 뿐만 아니라 총배설구에서 까지 각종 액체를 질질 흘리
며 혀를 늘어트린 ‘마마’의 모습을.
“쓸데없이 손이 많이 가는 녀석들이다... 전부 내려갔습니다.”
“오케이...”
덜컹. 위이이이이이잉...
“테?! 마마? 마마아!!!”
“작별데스우... 인간들에게 가서 행복해지는데스우우!!!”
작업이 끝나자 케이지가 원래대로 올라가고 컨베이어 벨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8천마리의
실장석을 실은 컨베이어가 움직이자 공장안은 다시 테치테치테치테치테치테치테치테치레치레
치레치레치레치레치레후레후데스데스데스우 시끄러워진다. 새끼들은 멀어지는 마마의 모습에
놀라 짧은 다리로 마마를 향해 달리지만 모여 있다가 흩어진 새끼들로 가득한 컨베이어 위에
선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고 어차피, 실장석의 달리는 속도로는 컨베이어 벨트를 거
스를 수 없다.
“마마! 와타치들 행복해지는 테치!!! 절대로인테치!!! 그러니까 울지마는테치. 마....”
그 말을 마지막으로 가장 앞에 있던 자실장의 모습이 벽에 뚫린 구멍과 위에 드리워진 비닐에
의해 가려졌다. 벽 너머까지 이어진 컨베이어 벨트에 의해 이동되는 그 녹색 무리들이 완전히
사라지자 출산석들은 주저앉아 데이... 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경험이 많고 2주마다 반복되는 일이라도 슬픈 것이다.
“데스?! 자들이 사라진데스!!! 어디로 간데스!!! 어서 데려오는데샤아아아!!!! 오로로로롱!!!”
경험이 적지만 출산에 몸이 버티고, 목도 졸리지 않은 운 좋은 신참 출산석 몇 마리만이 우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걸 마지막으로, 직원은 린갈을 닫았다.
한시간 뒤.
“자. 오늘은 특식이다. 수고했다고 다들.”
“데스우~. 스테이크데스우~.”
“더 먹는데스! 더 가져오는데스우~.”
“그래그래. 잔뜩 있다고. 더 먹고 싶은 녀석은 말해라.”
출산일은 출산석들에게 여러 가지 보상이 주어진다. 우선 싸구려 가축용 실장푸드와 물 뿐인
식사가 그날만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고기가 잔뜩 주어진다. 고기의 맛에 알몸이 기름투성
이가 되어도 상관없이 허겁지겁 입에 우겨넣던 출산석들중 마지막 한마리가 배를 두들기며 데
억 트림을 하자 이번엔 샤워가 시작 된다.
쏴아아아아아아....
뎃스웅~~~
데스~ 데데스우~~~
철망 아래서 뿜어져 나오는 따듯한 물에 흠뻑 적셔지는 출산석들은 모두, 그때조차 줄이 연결
된 목걸이를 걸고 있지만, 기분 좋은 듯한 소리를 내며 몸을 문질렀다. 개중엔 머리를 감는
흉내를 내는 출산석도 있었지만 반들반들한 대머리를 문지르고 있을 뿐이다.
보통 샤워는 위에서 아래로 물이 떨어지지만 그러려면 샤워기처럼 설치를 해야 하는데다가,
아래의 노즐에서 뿜어지는 것엔 설비 비용절감 외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데우웅~. 따듯하고 깨끗하고 기분 좋았던 데스우~.”
지금도 어느 방안에서 팔다리가 잘린 채 기계가 주는 자극과 약물에 말라죽을 때까지 정액을
뽑히고 있을 마라실장들의 정액이 희석된 물로 샤워를 마친 모든 출산석들의 양 눈은, 녹색이
었다.
그 모습을 만족하게 둘러본 중년남자는 옆의 구역, 지금 새끼들이 이동한 곳으로 가려다가 문
득 한 케이지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데이....데이.....”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푸근한 미소를 짓는다.
“안녕. 미도리.”
이 공장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진 실장석에게.
“데스우.... 인간상.....”
“오늘은 몇 마리나 자가 생겼지?”
“열...잘 모르지만 많은데스. 와타시의 자들... 인간상들에게 가버린데스....”
“음. 모두들 좋아라하며 사갈... 아니, 데려갈거야.”
“그건 다행인데스.... 그 자들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는데스... 하지만 인간상. 그 3개월이란 건
아직 안 지난데스?”
“아아. 그거말이지....”
‘미도리’ 가 이 공장에 보내졌을 땐 가관이었다.
독라 처리를 할 것도 없이, 이미 독라인 성체실장이 눈물과 콧물을 뿌리며 발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곳에서 자를 가득 낳을 수 있다는 설명에, 이미 자를 가지고 있다며 늘어진 뱃살을
보이는 그 실장석에게 너는 임신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려준 순간 그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때 이 중년남자가 제안한 것이 3개월이라는 기간. 3개월 동안 이 공장에서 지내며 자를 낳
으면 그 자들은 인간에게 보내고 3개월 뒤엔 풀어준다는 조건이었다.
물론, 이 공장에선 3개월 이상 버티는 실장석이 없기에 한 말이고, 풀어준다고 해도 주인에게
돌려보낸다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미도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멍하던 정신이 돌아오며 제정신을 찾았다. 그리고 공장에
서의 첫 출산 때 자들의 갈색 머리칼을 보고 데이... 거리며 작게 실망한 것 말고는,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다 원래 자에 대한 욕구가 강하고 ‘3개월’ 이란 희망이
주어져서인지 2주마다 열 마리가 넘는 자를 낳으면서도 벌써 1년 가깝게 살아 있는 것이다.
보통이 3개월, 길어봤자 반년인 다른 실장석에 비해 이상할정도로 긴 기록이다. 낳은 새끼들
은 대략 300마리에 달할 정도. 치비코라 불릴 때부터 그렇게나 가지고 싶어 하던 자들을, 실
장석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수를 낳은 것이다.
낳기만, 한 것이지만.
“아직 한참 남았어. 긴 시간이란건 너도 알겠지?”
“데이... 알겠는데스. 남편님을 다시 보기 위해 참는데스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무리 그 미도리라도 슬슬 기력이 다해 가는 게 보였다.
실장석의 수명은 5년 정도. 물론 1년을 넘기는 개체가 드물지만 태어나자마자 격리되어 실험
을 한 결과론 5년이었다. 처음엔 한마리만 격리했더니 충분한 먹이와 안전이 보장되어도 고독
함에 발광하다가 파킹사 했기에 자매들과 함께 넣었을 경우 가장 오래 산 실장석의 나이다.
미도리는 3년 정도지만 공장에서의 연이은 출산으로 쇠약해지고 있었다. 수십 년간 실장석을
본 중년남자의 예상으론,
다음 출산이 한계였다.
그 이후엔 아마 출산과 함께 죽을 가능성이 크고, 새끼도 그다지 좋은 상태는 아닐 것이다.
문득 마음을 고친 중년남자가 말했다.
“사실 미도리. 다음번에 자를 낳고 나면 3개월이 된다.”
“데?! 그런데스?!”
갑자기 말을 바꿨지만 그것도 눈치 못 차리고 눈을 크게 뜨며 놀라는 미도리의 머리를, 중년
남자가 한번 쓰다듬었다.
“그래. 다음번에 자들을 낳으면 널 풀어주마.”
“오...오로로롱.... 드디어...드디어 남편님께 돌아가는 데스우우....”
적록색 눈물을 흘리며 울면서도 미소를 짓는 미도리의 머리를, 중년남자가 다시 한 번 쓰다듬
었다.
그리고 미도리에게 천년같이 느껴지던 2주가 드디어 지났다.
“아오... 2주만에 새끼를 낳다니 웃기는 생물이야... 어제 한 거 같은데 바로 또 고생이군.”
투덜거리는 인간을 보면서도 미도리는 그대로 미소를 지은 채였다. 뱃속의 자들에게 남편님에
대해 태교의 노래를 불러주지 못한 게 걱정되지만, 그런 거야 남편님에게 돌아가 살면서 가르
치면 된다. 드디어, 실장석에겐 아득한 기간을 견뎌내고, 아내의 자리를 되찾는 기쁨에 미도리
는 건강마저 되찾아 활기가 넘치는 채로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고 있었다.
텟테레이~
텟테레이~
데스우우웅~
그리고 항상 하던 순서대로 출산 된, 왠지 열 마리가 안 되는 자들의 점막을 핥아주자 전부
자실장이 되었다. 몸이 한계에 다다라 자의 수가 줄었다는 것. 그렇지만 매번 식사에 섞이는
영양제와 호르몬제의 영향으로 태어나는 자들 중 자실장의 비율이 높다는 건 알지 못하지만,
전부 훌륭하게 자실장이 된 자들을 끌어안으며 미도리는 행복해 했다.
“데스웅~. 이제 모두 함께 남편님께 돌아가는데스웅~.”
“테? 남편님이 무엇테치?”
“마마를 사랑하는 인간상데스. 너희들의 아빠데스.”
“아빠는 무엇테치?”
1년 전의 비참한 꼴을 잊은 채 와타시에게 유리한 가짜 기억만을 떠올린 미도리가 세상에 막
태어나 궁금한 게 많은, 유난히 영리한 장녀에게 그 기억을 전해 주려한 순간.
덜컹!
“테이이익?!”
“데?!”
발아래가 허전해지는, 익숙해진 감각이 갑자기 느껴지며 자들이 전부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데! 어째서데스! 이 자들하곤 헤어지지 않는.... 케에에엑!!!”
마지막 출산. 이것이 끝나면 풀어준다고 했지만, 돌아갈 때는 자들하고 간다고 멋대로 정해놨
던 미도리는 벽을 잡고 있지 않다가 경사로를 미끄러져 내려가 목이 졸렸다.
보통의 출산석은 그 순간 죽음이 확정이지만, 미도리는 죽을 수 없었다.
남편님을 만나 아내의 자리를 되찾고 흑발의 자를 낳기 전 까지는 죽을 수 없었다.
얼굴을 추악하게 일그러트리고, 기적적으로 경사로를 기어올라 벽을 잡고 일어선 미도리가 있
는 힘껏 외쳤다.
“약속이 다른데스!!!!! 와타시를 남편님께 돌려보낸다고 한 데스우우우!!!!! 어서 약속을 지키는
데스!!!!!!”
“응? 뭐라는 거야... 바빠 죽겠는데.”
드물게 사람에게 뭔가를 외치는 출산석을 본 직원은 새끼를 붙잡은 출산석들을 때리다가 그
모습을 보고 주먹을 치켜들었다.
“아아! 잠깐! 그 녀석은 내버려두게. 내가 얘기 하겠네.”
“데이.....”
시야를 가득 메우는 주먹을 보며 미도리의 눈이 크게 떠진 순간, 중년남자가 직원을 제지하곤
린갈을 꺼냈다.
“왜 그래. 미도리.”
“이번에 자를 낳으면 남편님께 돌려보내준다고 한데스! 약속을 지키는데스!”
“그래. 작업이 끝나면 넌 해방시켜줄게, 미도리. 좀만 기다려.”
“데데!!! 그러면 왜 자를 데려간데스!! 돌려주는데스!! 자와 함께 남편님께 가는데스!”
“응.....? 새끼들도 같이 라고 한 적은 없는데?”
“데이?”
멍해지는 미도리를 본 중년남자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째 너희들은 항상 최상의 조건이 당연히 올 거라 생각하고 사냐... 자들은 같이 안 간다.
다른 인간에게 갈 거야.”
“안되는데샤아아아아!!!!! 빨리 와타치들을 남편님께 돌려보내는데샤아아!!!!”
“어이구. 장난한번 칠까 했더니 귀찮게도 하네...”
“데?”
중년남자의 말을 이해 못하고 데데 거리는 미도리를 본 남자가 말했다.
“그럼 선택해라. 자들과 계속 이 공장에 있던가. 아니면 새끼들을 보내고 혼자 풀려나던가.”
“데!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해야 하는데스! 자들 모두를 데리고, 한 마리도 빠트리지 않고 남편
님께 가는데스!”
“그건 안 돼. 어째서, 라고 질문하거나 토를 달면 새끼들도 보내버리고 너도 공장에 남기겠
어.”
“데이....!”
중년남자, 인간의 말을 거스를 수 없는 걸 깨달은 미도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컨베이어벨트 위
의 자들과 중년남자를 번갈아서 쳐다봤다.
“테치! 마마와 떨어진테치!”
“올라가는테치! 마마!”
아래서 올라오려 바동거리는 열 마리의 자실장을 보던 미도리가 고개를 끄덕이곤 남자에게 고
개를 돌렸다.
“저 자들을 보내는데스. 와타시를 남편님께 데려다 주는데스.”
“테이?! 마마?”
“와타치들을 버리는테치이?!”
“역시 그러냐.”
“자들은 또 낳으면 되는데스. 지금까지도 가득 낳은데스. 흑발의 자가 아닌 이상 새로 낳으면
되는데스. 하지만... 마지막으로 자들과 밥을 먹는데스. 지금까지 보낸 자들은 같이 밥 한번
못 먹고 보낸데스...”
자들을 버리겠다고 정했으면서도 모정을 보이려는 듯, 게다가 ‘밥을 먹었으면 좋겠다’ 가 아
닌, 마치 미리 정해지거나 권리가 있다는 듯이 ‘먹는다’ 라고 일방적으로 말하는 미도리의 모
습을 보고도 중년남자는 그다지 기분 나쁜 기색이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해주지. 어이, 사료 좀 가져와. 물에 좀 불려서.”
“엥? 사장님. 하지만 그러면....”
“뭐 별로 상관없잖아. 해달라는 대로 해줘봐.”
“테치이....”
작업이 끝났지만 컨베이어가 움직이지 않아서 8천 마리의 새끼와 출산석들의 울음소리가 시끄
러운 공장의 안. 직원이 가져다 준, 자실장이 먹기 좋게 물에 불린 실장푸드를 앞에 두고 열
한마리의 실장석이 모여 있었다. 막 태어나 배가 텅 빈 상태인데도 먹이에 달려들지 않는다는
건 영리하다는 걸 수도 있지만, 방금 전 ‘마마’가 와타시를 버린다고 들은 것 때문이기도 했
다.
자신들은 인간에게 간다는 걸 아직 모르는 자실장들은 본능에 따라 ‘보호자’를 잃으면 안 된
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자실장 혼자선, 설령 자매가 있어도 살아갈 수 없다. 독라이긴 해
도 저 친실장에게 버려지면 얼마 못가 죽거나 인간에게 와타시를 기르라고 요구하는 수밖에
없지만 그건 힘들다는 걸 아는 것이다.
“테치...마마 와타치를 버리는테치? 어째서테치?”
그중 약간 몸집이 큰, 장녀인 자실장이 물어봤다.
“데스우...너희들은 인간에게 가는데스. 가면 맛있는 걸 가득 먹고 행복하게 사는데스. 그렇지
만 마마는 여기에 계속 있었던데스... 많은 자들을 인간에게 보낸데스. 너희들도 보내야만 드
디어 마마도 남편님께 돌아갈 수 있는데스.”
“테치... 인간에게 가는테치? 맛있는 거 있는테치?”
“이것도 맛있는 듯한 냄새가 나는테치!”
“테치?! 와타치도 먹는테치!”“츄워~ 츄와~.”
한마리가 실장푸드에 손을 대자 모두 달려들어 불은 실장푸드를 먹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뭔가
를 먹는 행복함에 울음소리를 내는 자실장들. 단지, 장녀만이 아직 미도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시점에서 보면 자실장, 그것도 공장제의 교육받지 않은 실장석치고는 비정상적일정도
의 영리함을 가진 개체다.
“그 남편님에게 가면 마마 행복해지는테치?”
“그런데스우... 와타시에겐 그것만이 중요한데스.”
“테치이...”
그 자각 없는 잔혹한 말에 귀를 늘어트렸던 장녀는 잠시 뒤 다시 귀를 펼쳤다.
“알겠는테치. 마마가 행복하면 와타치도 좋은테치!”
“미안한데스우... 너는 정말 좋은자데스. 분명 인간들도 네가 가면 행복해지는데스....”
“마마....”
“자, 밥을 먹는데스. 마마와 먹는데스. 서로 멀리 떨어지고, 무슨 일이 있어도 와타시는 너의
마마데스. 가족의 추억을 남기는데스...”
“.......”
아직 눈에 슬픈 기색이 어린 장녀는 조용히 실장푸드를 집어 들었다.
“...마마는 먹지 않는테치?”
“마마는 괜찮은데스~. 남편님을 생각하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른데스~. 이것이 사랑이란
것데스우~.”
“.............”
장녀는, 처음으로 먹은 실장푸드의 희미한 단맛이 전혀 즐겁지 않았지만, 기뻐하고 있는 마마
를 위해, 필사적으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인간상! 다 먹은데스. 어서 와타시를 남편님께 데려다 주는데스웅~.”
“그래. 갈까?”
얼마 안 걸려 ‘가족’의 처음이자 마지막 식사가 끝나자 작은 상자에 미도리를 담은 중년 남자
의 뒤를 열 마리의 자실장을 담은 상자를 든 직원이 따라 걷기 시작했다.
“데...?”
그리고 처음으로 컨베이어벨트가 향하는 옆방으로 들어간 미도리와 자실장들은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러 줄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샤워기 같은 게 줄지어 달린 것 외에도,
옆방보다 한층 넓은 공간에는 여러 가지 기계들과 위생복을 입은 직원들이 가득했다.
위이이이이잉.
그때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도리와 자들에게 밥을 먹을 시간을 주느라 평소
보다 약간 늦었기에 작업을 서두르는 직원들을 향해 벽 너머에서 온 8천 마리의 새끼들이 모
습을 드러냈다.
테치테치테치!!!
테치!테치이이!!!!
테치이?
레치! 레칫!!
레후레후레후레후.....
순식간에 실장석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차는 방. 그리고 그때, 벨트가 움직이면서 녹색의 덩어
리들이 우글거리는 맨 앞부분이 샤워기 같은 게 줄지은 곳에 다다르는 순간, 샤워기에서 안개
같이 뭔가가 뿜어지기 시작했다.
촤아아아아아아!
“테치? 테치? 젖은테치? 이게 샤워라는것테치?”
“기분좋은레치~.”
그 액체에 젖은 새끼들이 두리번거리다가, 이변을 알아차렸다.
“테!!!! 테에에?! 와타시의 옷이 이상한테치이!!!!”
“옷이 없어지는테치!!!”
“레...와타치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빠지는레치이!!!!”
기본적으로 구성 성분은 비슷한 실장석의 머리카락과 실장옷을 녹이는 약품을 뒤집어쓴 새끼
들이 옷과 머리카락이라는, 실장석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재산이 사라지는 것에 비명을 지른
다.
“테? 테테?”
“도망치는테치! 큰일난테치!”
뒤에 있던 아직 약품을 맞지 않은 새끼들이 그걸 보고 놀라 뒤돌아 뛰려고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의 움직임에 비하면 턱없이 느린 속도다. 결국 8천 마리 모두가 약품의 샤워를 받아 태어
난 지 몇 분 만에 독라가 되어 울부짖으며 계속 벨트 위에서 이동했다. 이번엔 약품을 씻기
위해 물로 샤워를 당한 그 행렬은 마침내 위생복을 입은 직원들이 늘어선 벨트의 끝에 도착했
다.
“츄?!”
독라가 된 슬픔에 멍하니 쓰러져 있던 맨 앞의 자실장을 집은 직원이 한번 쓱 훑어보더니 뒤
에 있는 여러 개의 상자 중, ‘자실장(중)’ 이라고 쓰인 상자에 담는다. 그리곤 수십 명의 직원
들이 연이어 오는 새끼들을 능숙하게 분류해 각각의 상자에 담아갔다.
“테칫?!”
“테! 오네짱!”
“레치이! 오네짱하고 떨어지는레치! 싫은레치이!”
“엄지쨔아아앙!!!”
“음....”
그때 한 자실장을 집어든 직원이 약간 자세히 자실장을 살펴봤다. 언뜻 보면 ‘자실장(소)’로
분류됐겠지만 다리의 굵기가 약간 달랐다.
시험 삼아 유난히 굵은 다리를 잡고 무릎을 구부려 보자 관절이 굽혀지는 게 아니라 뚝 하는
소리와 함께 부러진 뼈가 살을 찢고 나왔다.
“츄아아아악!!!! 와타치의 다리! 다리가 아픈테치이!!!!”
그걸 본 직원은 기형으로 태어나 어차피 쓰지도 못했을 다리를 잡고 비명을 지르는 자실장을,
어떤 상자에 던져버렸다. 다른 상자에 넣을 때는 다치면 안 되기에 다치지 않게 살짝 내려놓
지만, 이 ‘불량’ 이라 쓰인 상자에 던질 때는 상관없는 것이다.
그렇게 분류가 끝나자 각 상자 안에는 크기별로 나누어진 자실장, 엄지실장, 구더기들이 살색
덩어리가 되듯 모여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본 미도리는 떨리는 눈동자를 중년남자에게 향했다.
“데... 이게 어떻게 된데스? 어째서 다 독라가 된 데스?”
“응? 그거야... 먹으려면 머리카락하고 옷을 벗겨야 하잖아. 손님들의 수고를 덜기 위해 아예
독라로 만들어 출하하는 거야”
“데?”
태연하게 말하는 중년남자의 얼굴에, 싱글거리는 웃음이 지어진 걸 본 미도리는 불길함을 느
꼈다.
“무슨소리데스!!!”
“그러니까. 여기는 식용실장 공장이라고.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아도 어느 정도 눈치는 챘을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로 모르다니. 하하하... 뭐, 사람이라면 딱 보면 눈치 채지만.”
“식용...? 자를... 먹는데스? 저 많은 자들을... 그리고 와타시의 자들도.... 먹은데스?”
“그래. 고기로 먹는거지. 번식력은 뛰어나고 맛도 나쁘지 않으니 잘 팔린다고. 혐오파들 때문
에 학교 급식 같은 곳엔 못 나가지만 그래도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데선 잘 나가. 고급 요리
점엔 특별하게 키운 식용실장이나 야생 산실장이 들어가지만.”
“데....데.... 데아아아아아!!!!!!”
그떄서야.
와타시가 지금까지 낳아온 자들의 운명을.
와타시가 무슨 일을 해 왔는지를 깨달은 미도리가 목이 찢어질듯 비명을 질렀다.
“데..데샤아아아아아!!!! 와타시의 자들을 먹은데샤아아!!!! 죽여버리는데샤아아아!!!!!”
“무슨 소리야. 너도 먹어 놓고.”
“데....?!”
중년남자의 말에 놀란 미도리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미도리의 자들이 들어있는 상자를 든
직원이 한 기계로 향했다. 그리곤 커다란 원통의 위에 갈색 유리로 된 뚜껑이 달린 기계를 열
고 미도리의 영리한 자, 장녀를 꺼내들었다.
“테....테테.....”
동족, 같은 자실장들이 독라가 되는 모습과 중년남자의 말로 상황을 이해한 장녀는 직원의 손
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장녀의 옷과 머리를 뜯어버린
직원이 손가락의 끝을 장녀의 통통한 배에 세게 찔렀다.
푹!
“치아아악!!!!”
그것만으로 간단하게 배가 뚫린 장녀의 내장을 끄집어낸 직원이 고개를 흔들었다.
“역시 그 짧은 시간에 다 대변으로 만들어 버렸네요. 이래서 밥 주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그냥 내장 발라내. 어차피 내장에 대변 채웠으면 출하도 못해.”
“치... 치.....”
“데에에에에!!! 장녀어어!!!!”
실장석으로선 매우 우수한 개체인 장녀의 어이없는 최후에 미도리가 비명을 질렀다. 아직 살
아있긴 했지만 그대로 원통 안에 던져진 장녀를 따라, 미도리의 자들이 차례로 내장이 뽑히고
안으로 던져졌다.
“치! 테치아아아악!!!”
“마마! 살려주는테....테쥬억!!!!”
“치아아악!!! 뱃속이 딸려 나가는테....치아아아아!!!!!!”
그리고 다른 직원이 끌고 온 ‘불량’ 상자에 가득한 자실장들을, 바닥에서 내장이 뽑힌 열 마리
의 자실장이 꿈틀대는 원통 안에 쏟아 부었다. 그 열 마리의 모습은, 비명을 지르며 폭포처럼
쏟아지는 불량 판정 독라실장들의 모습에 덮여 안보이게 되었다.
“데이이이!!! 와타시의 자를 돌려주는데샤아아아!!!”
우우우우우우웅.
미도리가 소리를 지르던 말든, 직원이 뚜껑을 닫고 버튼을 누르자 원통의 안이 웅웅거리는 소
리와 함께 회전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특수 제작된 대형 전자레인지였다.
.......?
...............!!!
!!!!!!!!!!!!!!!!!!
두꺼운 갈색 유리 뚜껑에 막혀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안에 서로 짓눌려 죽을 정도로 바닥
부터 천장까지 가득 찬 새끼들 중 운 좋게 맨 위에 있는 자실장과 엄지들의 모습이 바뀌기 시
작했다. 전자파에 의해 진동하는 몸의 분자들이 열을 일으키며 가뜩이나 열에 약한, 거기다가
더 약한 새끼들의 피부가 순식간에 화상을 입어 짓무르더니 여기저기가 짓무르기 시작했다.
!!!!!!!!!!!!!!!!
!!!!!!!!!!!!
?!?!
지금 안에선, 지옥과도 같이 실장석의 처참한 비명과 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가득 하겠지만,
유리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한 게 오히려 약간 섬뜩한 그 모습은 위쪽에
있던 자실장과 엄지들이 결국 견디지 못하고 부풀어 오르다가 터져 팔다리와 머리가 여기저기
로 날려가며 끝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아래에서 산채로 터지는 실장석이 있는지 움찔움찔 거리던 그 고기조각들의 움직임이 완
전히 멈추고 나서야 작게 울리는 땡~ 하는 알림음만이 유일한 소리였다.
직원이 뚜껑을 열고 회전식 레버를 열심히 돌려 대형 레인지를 기울이자 아래 가져다둔 커다
란 다라이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실장석 파편 고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전자레인지에 터져
원형이 사라져 실장석의, 동족의 고기인줄 모르게 하지만 가끔씩 남아있는 머리같은걸 조그만
절구에서 부순 후 영양제를 넣으면 끝이다.
“이제 알겠냐? 네가 출산날 때마다 먹은 그 ‘스테이크’는 사실 저거라고. 뭐 동족식 하는 생물
이니 맛있게 잘 먹겠.....”
상자를 내려다 본 중년남자는, 어느새 미도리가 눈을 뒤집은 채 쓰러져 있는 걸 깨달았다.
지금까지 낳은 300여 마리나 되는 새끼들이 모두 고기로 팔린걸 알았을 때인지.
자실장의 내장이 뽑힐 때인지.
자신이 먹은 특식이 동족의 고기, 그것도 자신의 새끼의 고기일수도 있다고 알았을 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기절한 미도리를 보고 머리를 긁적인 중년남자는 상자를 돌고
돌아섰다.
“뭐... ‘풀어준다고’ 약속은 했으니 어디 공원에라도 버릴까. 이제 출산을 하면 죽을 테니 들실
장이 늘어날 걱정도 없고....”
“근데, 사장님. 왜 안하던 짓을 하시고 그래요? 실장석은 단순한 고기 그이상도 이하도 아니
라 시더니 번거로운 일을 하시고.”
“아니, 이번에 고등학교 들어가는 딸이 실장석 학대에 맛을 들인 모양이야. 그게 재밌나 싶어
해봤는데... 뭐, 이 멍청한 생물이 기뻐하고 울고불고 하는 모습이 웃기긴 하네. ‘올렸다 떨어
트리기’ 방법을 딸아이에게 물어보며 간만에 부녀지간에 대화도 좀 했고. 어느새 쑥 커서 아
가씨가 되더니 서먹서먹해 지더라고.”
“딸 키우는게 다 그렇죠. 저도 한동안 고생했는걸요.”
“뭐, 좋은 대화 거리도 생겼고. 노력해야지.”
그날 퇴근 시간.
중년남자는 안고 있던 골판지를 무단 투기된 쓰레기가 쌓인 전봇대 아래에 내려놓곤 발걸음을
돌렸다.
데스~ 데스우~
테치~
테츄우웅~~
“응?”
그때 전봇대 뒤에서 뛰쳐나온 들실장과 자실장 두 마리가 남자에게 아첨을 하는걸 보곤 남자
는 린갈을 켰다.
“안녕하신데스. 인간상. 와타시들을 기르는데스~.”
“와타치들은 행복을 가져오는테치~. 기르는 인간상은 분명 행복해지는테치~.”
“흠... 행복이라. 뭐,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데?! 진짜데스?”
“그래. 너희들도 데려가주마.”
중년남자의 손에 들린 들실장의 좌우에 달라붙어 같이 들어 올려지는 자실장들은 코를 벌름거
리며 흥분해선 콧김을 내뿜었다.
“테치! 성공한테치! 사육실장테치!”
“오네짱들이 인간에게 짓밟힐 때마다 걱정한테치! 하지만 와타치들은 달랐던테치~.”
중년남자의 전에도 몇 명에게 들이댔던 일가는 그때마다 자실장의 수를 줄여갔다. 그리고 마
침내 단 두 마리만 남았지만, 포기하지 않은 대가를 드디어 받는 것이다.
부스럭.
“데! 살살하는데스!”
그때 중년남자가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투에 던져 넣어진 세 마리의 실장석들은 난폭한 취급
에 분개하면서 불만을 말하려 고개를 들었다.
“치이....”
“데?!”
그러나, 그 봉투 안에 들어있던, 독라인채 얼굴에 눈물자국을 남긴 자실장 여러 마리를 보고
말을 멈췄다. 그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던 들실장이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데!!! 속은데스!!! 이 인간은 학대파데스!!! 어서 나가는데스!!!”
“테치이?!”
서둘러 봉투에서 나가려 하는 일가지만 봉투 안에선 안에 있던 독라자실장, 중년남자가 딸의
학대용으로 출하품에서 집어온 그 자실장들과 얽히고 축 처지는 바닥 때문에 제대로 설수도
없었다.
“데....데스우우우?!”
들실장의 공포에 찬 비명은, 중년남자가 봉투의 입구를 틀어쥐며 들리지 않게 됐다. 그대로
꿈틀꿈틀 움직이는 봉투를 쥔 중년남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지금쯤 봉투 안은 식용실장으로 태어난 자실장들과 달리 뱃속에 대변을 가득 채운 들실장의
팡콘이나 투분으로 난리겠지만 집에 도착해 마당에서 봉투에 물을 채우고 몇 번 흔들면 끝날
일이다. 그 뒤에 옷을 벗기곤 딸에게 주면 된다. 보통, 아가씨가 되가는 딸에게 실장석을 선물
하는 아버지는 없겠지만 학대를 좋아하기 시작한 딸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게다가, 딸에게 줄 수 있는 실장석은 수천마리씩 쏟아져 나온다.
“과연. 너희들의 말대로 행복해지기는 하는구나.”
중년남자는, 아직 어색하지만 이 기회로 딸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거라는 기쁨에, 콧노래
를 부르며 걷기 시작했다.
덜컥.
데....데스우.......
중년남자가 사라지고 나서 한참 뒤, 해가 지기 시작했을 때야 희미하게 흔들린 골판지 상자가
열리고 독라 성체실장이 고개를 내밀었다.
데...데.......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신히 바닥에 내려온 그 실장석은, 잠시 뒤 걷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곳에 혼자 남겨지고 아무런 근거도 없지만, ‘너무나도 사랑하는 남편님’ 을 만나기
위해, 그 와타시들의 행복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가망 없는 귀갓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
다.
어느 실장숍의 뒷방, 출산실에서 태어난 한 작은 자실장.
치비코란 이름을 받고 노부부의 아래서 행복하게 자라 무사히 성체실장이 되고,
그럼에도 자를 가지고 싶은 실장석의 벗어날 수 없는 욕망에 집을 나서는 그 실장석.
그 결단에도 불구하고 불합리하게, 그리고 어느 인간의 악의에 휘둘리며, 자를 계속 잃었다.
그렇지만 기적처럼 노부부의 아들에게 주워져, 미도리란 이름을 새로 받았다.
거기에서, 자에 대한 욕구를 인간에게서 풀려던 그 시도가 변질되어, 미도리는 자에 대한 욕
구가 변형되어 인간에게의 사랑이라고 스스로도 착각해버렸다.
그리고 끝없이 인간, 남편님의 사랑을 요구하다가, 오히려 다른 여자와 남편님을 맺어 주는
꼴이 되었다.
그 절망을 더 깊게 만든 공장에서의 나날과 300여 마리의 자들의 죽음.
그 모든 걸 딛고 일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남편님을 찾아 가망 없는 길을 떠
나는 그 모습은, 설령 그게 변질 된 욕구와 착각에 의한 것이라도 그 실장석에겐 생명의 모든
걸 걸은 마지막 몸부림 이였다.
데스우......
비틀거리면서 주택들 사이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은, 해가 완전히 지며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그로부터 5일 뒤.
1월 1일, 신년을 맞아 남자, 아마기 츠미야의 집에선 집안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원래 부모님의 집에 모든 형제자매들과 가족이 모이지만, 이번 해에는 남자가 결혼을 한 후
처음 맞는 명절이라 남자의 집에서 모이기로 한 것이다.
남자와 아내, 남자의 형과 누나의 가족, 그리고 부모님. 거기다가 부모님이 노년에 소중하게
돌보는 실장석 한 마리. 그리고, 오랜만에 집안이 이렇게 사람들로 가득해져 시끌벅적했기에,
남자는 마당의 말라붙은 수풀 속에서 그 모습을 쳐다보는 적록색 눈동자를 눈치 채지 못했다.
데히....데히....데히............!
그 눈동자.
미도리는.
눈에 핏줄을 세운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집안의 행복한 모습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신이 저주를 한 듯, 악마가 이끌어 준 듯, 남자의 집에 도착하는데 성공한 미도리.
그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나, 남자의 집이 보였을 때는 그 기쁨에 5일 동안 필사적으
로 배에 채운 자신의 대변을 다시 뿜으면서 달려가, 문 아래로 기어들어 오랜만에 보는 그리
운 마당에 들어섰다.
그리고, 집안의 모습에 우뚝 멈춰 섰다.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어째서 저 하녀년이 아직 남편님의 곁에 있다?
저기는 와타시의 자리다.
데히.....데히.......
어째서 너무나도 그리운, 너무나도 오랜만에 보는 ‘주인님’의 곁에 아직 저 가짜 치비코가 같
이 있다?
저기도 원래 와타시가 있어야한다.
데히.....데히.......
어째서 저 행복한 광경 안에 와타시의 자리가 없다?
저 모든 게 원래 와타시의 것인데!!!!
데히....데히.....데..........!!!
마침내, 거친 호흡을 몰아쉬다가, 절망과 분노의 절규를 지르려던 미도리의 눈에, 어떤 광경이
들어왔다.
.........데힉!
그 모습에 급히 숨을 들이키는 미도리.
미도리의 눈은, 남편님을 뺏은 그 하녀가 방안에 들어갔다가 품에 꼭 끌어안고 나온,
검은머리가 살짝 자란 갓난아기.
에게 고정되어있었다.
숨을 쉬는 것도 잊고.
그저 그 갓난아기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못한 채로.
그 갓난아기의 모습을 끝없이 망막에 새기고 있었다.
가족모임이 끝나고, 배웅을 위해 남편이 집을 나선 사이 아마기 키사코는 뒷정리를 하고 있었
다. 집안 막내인 남편과 연상인 자신이 결혼하는 것에 처음엔 걱정을 했지만 걱정과 달리 오
히려 처가 사람들은 키사코를 환영했다. 귀여운 막내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시부
모나 시누이도 굉장히 잘 대해줬고 얼마 전에 아들이 태어나자 더 잘해주지 못해 다들 안달이
었다.
시부모님의 귀여움을 받다가 마루에 깔린 이불에 눕혀져 잠든 아기의 얼굴을 보며 행복감에
젖은 키사코는 환기를 위해 약간 마루 유리창을 열고 설거지를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났어도 음식은 남편이 하지만 설거지는 분담해서 하고 있었다. 겨울이라도 오늘은
날이 따듯해서 창문을 잠시 열어놔도 아기가 감기가 걸리지 않을 테니 마음을 놓은 키사코가
부엌으로 사라진 후.
데스우....
그 열린 창문 틈으로, 아기를 쳐다보는 눈동자가 있었다.
조용한 마루에 슬그머니 들어선 미도리는 천천히 이불위의 갓난아기에게 다가갔다.
와타시가 그렇게나 원했던 흑발의 자.
남편님의 자.
그렇지만 와타시가 아니라 남편님을 뺏은 인간의 자.
데스우우....
자신보다 별로 크지도 않은 인간의 작은 자를 내려다보던 미도리는,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손으로, 아기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한번 쓰다듬었다.
데스..........
손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흑발의 감촉.
'귀여운 흑발의 자' 를 쓰다듬은 미도리는.
온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은 채.
그대로 허물어지듯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데.....데스우.........
몸속의 위석은, 여기저기 작은 금이 가 있었지만, 그때까지도 깨지지 않았었다.
그저 모든 힘을 소모하고 단 하나의 소망만으로 버티던 위석이, 그 소망을 이루자 조용히 마
지막 빛을 잃어버린 것뿐이다.
그렇기에.
집. 어디까지나 ‘남편님과 와타시의 보금자리’ 라고 생각한 그 익숙한, 그리웠던 집의 마루에
서 기나긴 여정을 마치고 생명을 다한 미도리의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
잠시뒤.
난데없이 마루에서 죽어있는 더러운 독라실장의 시체를 발견한 키사코는 말없이 그 시체를 내
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적어도 마지막엔 행복했던 모양이네요. 미도리.”
키사코는, 그 실장석이 미도리라는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어떻게 당신이 여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 말했듯이 내가 지금 이렇게 행복한건 당
신의 덕분도 있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행복한 듯이 죽은 게 나로서도 나쁘진 않죠. 설령 그것
이...”
유아용 물티슈를 하나 뽑아, 아기의 머리에 살짝 묻은 자국을 깨끗이 닦아낸 키사코는 그 물
티슈를 미도리의 시체에 덮었다.
“...나와 아마기군의 아기를 자신의 자라고 행복회로를 폭발시킨, 최후의 발악으로 만든 망상
이었다고 뻔히 알 수 있어도 말이에요. 후후후....정말이지 실장석이란 건 참 불쌍한 생물이네
요. 그나마 ‘행복하게 죽는’ 게 가능했던 당신도...”
물티슈를 대고 미도리의 시체를 집어 올린 키사코는, 뒷문으로 나가 실장수거봉투에 그 시체
를 던져 넣었다.
“...인간이 보면 그저 멍청한 자기만족 속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삶을 끝낸 거니까요.”
겨울이라 주택가로 침입하는 들실장이 많아 가득 찬 들실장의 시체더미 위에 하얗게 변한 눈
을 보이며 나뒹군 미도리의 시체를 내려다 보다가 수거봉투를 묶은 키사코는 손목시계를 보곤
서둘러 봉투를 들고 나갔다. 그리고 마침 도착한 실장석 수거차와 수거원에게 봉투를 건네곤,
그 봉투가 압축판에 밀려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압축판에 다른 수거봉투와 함께 눌려가던 봉투에서, 퍽하는 소리와 함께 적록색 고기조각들이
튀어 안에 달라붙는 걸 마지막으로,
그 봉투는 밀려들어가 보이지 않게 됐다.
“....잘가요. 미도리.”
그걸로 미도리, 치비코의 모든 건 끝을 맞이했다.
단하나, 미도리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존재만을 남기고.
“저 왔습니다. 어머니.”
“어서오너라.”
시간이 흘러 완연한 봄이 된 어느 따스한 날.
출산 후 육아휴직이 끝나자 바로 복귀한 아내와 승진해 바빠진 자신을 대신해 아기를 돌봐주
시는 부모님 댁에 들른 남자는 맨 먼저 안방에 놓인 아기 침대로 달려갔다. 하루 종일 못 돌
봐준 이런 부모라도 자신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매번 좋아하며 웃는 아기의 모습은 남자에게도
삶의 이유이자 활력이었다.
잠시 뒤, 부모님께 드릴 과일을 사러가서 잠시 뒤에 올 아내를 기다리며 남자는 잠시 부모님
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할머니가 걱정스럽게 말했
다.
“그러고 보니 요즘 치비코가 영 기운이 없는 거 같아서 걱정이야. 불러도 잘 안 오고 매일 집
안에만 있는 게 어디 아픈 거 같구나....”
“.....네?”
그 말에 기시감과 함께, 불쾌한 기억을 떠올린 남자는 부모님의 린갈을 들고 마루에 놓인 ‘치
비코의 집’ 이라 쓰인 팻말이 붙은 실장하우스 앞에 쭈그려 앉았다.
“어이. 치비코. 나와봐라.”
“........”
집안에서 희미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은 없었다.
예상대로인 그 행동에, 남자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우지직!!!
“데!! 데스우우우우?!”
순식간에 실장하우스의 지붕을 뜯어버리듯 연 남자가, 놀라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안에 웅크
리고 있던 실장석의 머리통을 잡고 들어 올려 억지로 자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데....데스우..........”
당황해서 크게 뜨인 채 남자를 응시하는 그 두 눈은,
양쪽 모두 녹색이었다.
-자를 가지는 행복 2부 미도리의 이야기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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