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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에 편의점을 들르고 나오는데, 전 여친 아키에게 휴대전화가 걸려온다.
 
"--아, 쥰? 부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아파트에 두고 간 짐 중 필요한 것을 챙겨 그녀의 집에 보내라는 것.
화구, 스케치북, 포즈집,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 화집......
촌스럽게 배송료를 어떻게 할지 같은 건 묻지 않는다.
함께 살던 일년 반 동안, 아키는 생활비를 낸 적이 없었다.
 
"지금...... 집에 있어?"
 
내가 묻자, 아키는 "엣?-" 웃으며,
 
"친구집. 걱정해주는 거야? 괜찮아, 건강히 있으니까"
 
아키의 두 번째 바람을 발견한 뒤, 우리는 서로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사실 관계를 설명했을 뿐 결정은 나에게 일임했다.
 
"--그래서, 쥰은 어떻게 하고 싶어?"
 
교활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그랬다.
나는 이별을 선택했고, 아키는 지갑만 들고 방을 나갔다.
그 전날, 나는 항상 주초에 하던 것처럼 아키의 지갑에 만엔을 넣어 두었다.
아키는 무명 일러스트레이터지만 결코 수입이 제로는 아니다.
그러나 벌어들인 몫은 재료나 화집으로 사라지고, 언제든 "지금 돈없어서"가 입버릇이었다.
매주 만엔은 대졸 2년차 직장인인 나에게 큰 금액이다.
그밖에도 두 사람분의 식비와 수도, 난방비 부담도 있었다.
어쨌든 아키가 무일푼으로 나간 건 아니라는 사실에 나는 안도했다.
그런 나는 이별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가능한 빨리 짐을 보낼 것을 약속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마침 보행자 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해서, 나는 서둘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탁아"당한 것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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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후?"
 
테이블 위에 펼친 편의점 쇼핑백.
그 중 반찬 팩 위에 오도카니 저실장이 올라타 있었다.
약간 누설한 무른 녹색 변이 팩을 싼 랩을 더럽히고 있다.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저실장은 왜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나도 모른다.
들실장에게 탁아당하는 빈틈을 어떻게 만들어버린 건가.
..... 뭐, 아키의 전화에 정신이 팔려 있었기 때문이지만.
 
"...레후?"
 
드디어 나의 존재를 눈치챈 듯, 저실장은 고개를 들었다.
 
"...레후-♪"
 
생긋 친근하게 미소지어보이자, 데구르르 뒤집고 짧은 꼬리와 손발을 찰싹찰싹 흔든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하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탁아라니 어떻게 하면 좋지?
창밖으로 내던질까? 화장실에 흘려버릴까?
그런데 나중에 친이 들이닥치는 건가? 어떻게 쫓아내지?
곤란한 나는 학창시절부터 친구인 토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지난달에 결혼하기 전까지는 친가에서 실장석을 기르고 있었다.
내 주위에서 가장 실장석에 밝을 게 당연한​인간이다.
나도 몇 번인가 토시의 집에 놀러가서 그의 사육실장을 만난 적이 있다.
예의범절이 좋고 똑똑한 녀석이라 감탄했지만, 훈육은 토시가 직접 실시했다고 한다.
그가 친가를 떠났어도 실장석은 시중을 들면서 깍듯하게 행동해, 가족의 귀여움을 받고 있다던가.

"-- 하아? 구더기를 탁아당했다고? 너......"

아하하하, 토시는 전화 너머로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그런 거, 창밖으로 집어던지든지 화장실에 흘려보내라"
"그러다 나중에 친이 몰려오면? 새끼의 냄새를 따라......"
"두세방, 걷어차주면 도망가지"
"싫어. 요전에 자전거로 성체 들실장과 부딪힌 적이 있는데, 그 크기는 느낌이 생생하더라고"
"뭐, 확실히 기분나쁘려나. 코로리나 시비레 스프레이를 뿌리면 뒤처리가 깔끔하지"
"스프레이 자체가 준비 안됐어"
"정말이냐? 도시 생활의 필수품 아닌-가? 들실장 투성이인 도쿄에서"
"물론 지방보다 훨씬 많지만, 탁아당할 정도로 정줄놨던 적은 처음이야"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 대학을 졸업한 나는, 현지 기업에 취직해 그대로 현지에서 살 생각이었다.
그런데 연수 기간이 끝나고 배속된 곳은 도쿄 영업소.
뜻하지 않게 도시 생활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나는 하아하고 한숨을 쉬며,

"......정말이지 부탁이니까 지혜를 빌려달라고, 틈을 준 원인부터가 지긋지긋하다니까"
"그렇다면......"
 
쿳쿳쿳 토시는 얄밉게 웃고,
 
"친이 들이닥치기 전이라면 당장 구더기를 데리고 집을 나와 적당한 공원에 버리고 오면 되잖아?"

그러면 친실장은 내 아파트가 아닌 공원으로 향할 법이기 때문이라고 토시가 가르쳐주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해결책이다. 난 토시에게 감사를 표하고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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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봉투로 할 생각으로 놔둔 빈 편의점 봉투를 꺼내왔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반찬 팩 위에서 기분좋게 계속 우는 저실장을 집어올리려고 손을 뻗는다.
 
"프니후-프니후-프니후-♪ 프니후-프니후-프니후-♪"
 
인간의 손가락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저실장이 눈을 빛내며 더욱 격렬하게 찰싹찰싹찰싹찰싹 꼬리를 흔들었다.
프니프니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집은 저실장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레뺫!?"
 
비명이 들렸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이 정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구더기 한 마리만 넣은 편의점 봉투를 들고 아파트 방을 나왔다.
목적지는 근처 아동공원.
모래밭과 미끄럼틀이 있을 뿐인 작은 곳이라 식수대도 없으니 들실장은 살고 있지 않다.
저실장을 놓아도 친이 찾으러 오기 전에 동족에게 먹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중간에 버스가 오가는 거리를 건너는 횡단보도에 접어들었다.
보행자용 신호는 빨강. 파란색으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동안 봉투 안을 들여다본다.
 
"...레에에에 ..."
 
잘 살아 있었다. 스스로 지린 똥투성이가 되어 비참한 꼴로 눈물을 글썽이고 있지만.
에벌레만한 크기인 주제에 한사람 몫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갖추고 있다.
그런 생물을 죽여버리면 내일 기분좋게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데엣!?"
 목소리가 들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길 건너편에 들 같은 성체 실장석이 있었다. 독라 자실장을 한 마리 데리고 있다.
"...데슷! 데스데스데슷!"
 
이쪽으로 뭔가를 하소연하듯 짖는다.
"네가 저실장을 탁아한 친이냐?"
 나는 외쳤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지금 구더기를 돌려줄테니"
"...데슷! 데슷!"

하지만 친실장은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인간의 말이 통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귀를 기울일 마음이 없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직 빨간불인데 친실장은 차도로 나왔다. 독라 자실장도 당황한 듯이 뒤를 쫓는다.
"...데스데스데스웃!" "...테치이이잇!"
"...... 위험하다니까! 돌아가!"

나는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마침 달려오는 트럭이 경적을 요란하게 울렸다.
"...뎃!?" "...텟...?"
 친자가 뒤돌아본 다음 순간 -- 내 눈앞을 트럭이 가로질러갔다.
그리고 트럭이 지나간 뒤 거리에는 빨간색과 녹색이 뒤섞인 얼룩이 생겼다.
트럭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나도 자동차 면허를 가지고 있으므로 알 수 있다. 급브레이크는 사고의 원인.
달리는 차 앞을 실장석이 가로질러도 브레이크는 밟지 말라고 학원에서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레후?"
 편의점 봉투를 들여다보는 내 얼굴을 어리둥절한 얼굴로 저실장이 올려다보고 있다.
 
"... 레후, 레후, 레후"
 
뭔가를 호소하기 위해 울고 있다.
지금 와타시의 마마와 오네챠의 목소리가 들린 거 같다. 마마와 오네챠는 어디 있나?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나는 저실장을 넣은 봉투를 든 채 지금 오던 길을 되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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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실장이 어떻게 구더기를 탁아했는지는 알 수 없다. 보통은 자실장을 탁아할 것이다.
그런데 차에 치일 때 데리고 있던 새끼는 독라 한 마리 뿐이었다.
다른 새끼는 어떻게 되었을까? 모두 탁아에 실패하고 한마리만 독라로 돌아왔다?
그래서 가족의 마지막 희망으로 막내딸인 구더기를 탁아한 것인가?
물론 그런 들실장 일가의 사정 따위 내 알 바 아니다.
뭐 그런 것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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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 구더기를 길러주겠다는 건가?"
 전화 너머로 토시는 웃었다. 내가 정말 어이없나보다.
변명하듯 나는 설명했다.
"눈앞에서 친이 죽어서 기분이 안좋고, 게다가 외톨이가 된 구더기를 쫓아낼 수도 없잖아......?"
"멋대로 뛰어들었지? 대체로 빨간 신호에서 도로를 건너면 위험하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다니 너무 바보스럽네"
"키우기는 해도 사는 장소와 먹이를 제공해줄 뿐이야"
 
점점 변명이 길어지며 나는 말했다.
"자력으로 살 수 있는 정도로 커지면 공원에 놓아줄 거야. 아니, 그 전에 구더기여서 멋대로 죽을지도 모르고......"
"그런 이야기는 집어치워"
 토시는 말했다.
 
"네 성격이 그래. 곧 정이 들고 귀여워하기 시작하겠지만, 들실장은 쓸만한 게 아니라고"
"아니, 귀여워할 생각따위...... 솔직히 저실장은 인면충같아서 기분나쁘다고 생각하고 있고......"
"실장석은 친의 뱃속에서 어느 정도 태교를 받고 태어나. 하지만 들의 태교는 최악이야"
 닌겐은 귀여운 와타시타치에게 메로메로된 노예인 데스우 ~ ♪
라며 토시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에 자주 등장하는 분충 실장석 개체의 말투를 흉내내고,
"그런 빌어먹을 친의 가르침을 철썩같이 믿고 태어난거야. 상냥한 얼굴을 하면 기어오른다. 은혜를 원수로 갚을 뿐이야"

"하지만...... 저실장이야"
 나는 반박했다.
"밥과 운치와 프니프니밖에 머리에 없다고 전에 토시도 말했잖아? 거만해질 머리도 없어...... 아마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길러도 돼. 글쎄, 구더기가 바보녀석인 건 네 말대로니까"
 쓴웃음을 짓는 듯 토시가 말한다.
"하나 조언해두지만, 먹이는 배설물 냄새 제거 효과가 있는 놈으로 해라. 구더기는 하루 종일 똥을 누니까"
"아, 그렇게 해둘게......"
 나는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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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시에게도 설명했듯, 나는 저실장을 기른다고는해도 귀여워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는 곳과 먹이를 제공할 뿐.
그리고 배설물의 처리도 해주겠지만, 그 외의 애호는 없음. 물론 프니프니도 해주지 않는다.
딱 말해 인면충이잖아? 보면 볼수록 징그럽다.
전에 아키와 간 디즈니랜드에서 샀던 초코크런치 빈캔을 하나 벽장에서 꺼냈다.
그녀는 초코 크런치를 무척 좋아해서 친구가 디즈니랜드에 간다고 할 때마다 선물로 사오라고 졸랐다.
물론 나와 둘이서 갈 때도 샀다. 계산은 내가 했지만.
덕분에 쌓인 깡통은 15개 정도. 머잖아 쓸 데가 있을 거라고 아키는 벽장에 넣고 있었다.
......이것도 화구와 함께 보내줄까? 그건 둘째치고.

뚜껑을 연 캔의 바닥에 적당한 크기로 찢은 신문지를 깐다.
그리고 문닫기 직전인 슈퍼에 뛰어들어가 산 냄새제거 타입 실장푸드를 세 알만 넣어준다.
반가공상태라 저실장에게 주면 수분보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우지쨩이 물 접시에 빠질 일도 없어져 안심이라고 봉투 뒷면 설명에 적혀 있었다.
 
"...레후?"
 저실장을 편의점 봉투에서 꺼내니 내 얼굴을 보고 방긋 웃으며, 찰싹찰싹 꼬리를 흔들었다.
 
"레후-♪ 레후-♪ 레후-♪"
 뭐가 그리 기쁜 걸까? 방금 전에 어미가 죽은 것을 모른다고는 하나.
일부러 가르쳐줄 생각도 없지만. 인간의 말이 통할지도 의심스럽다.
구더기를 깡통에 넣어주었다.
"...레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는 저실장.
하지만 곧 먹이를 찾자 눈이 빛난다.
 
"레후-레후-♪ 레후-레후-♪"
 기쁜 듯이 울면서 먹이를 향해 꾸물꾸물 기어간다. 그래그래, 잘됐네.
나는 저실장을 넣은 깡통을 화장실의 붙박이 선반에 두기로 했다.
탈취 효과가 있는 먹이를 주더라도 변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애호 목적의 주인이라면 참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화장실이라면 방향제도 놓여 있으니까 다소간은 괜찮지 않을까.
선반에 있다면 징그러운 인면충 모습도 평소에는 보지 않아도 되고.
 
"...레후레후♪ 레후레후♪"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머리 위 선반에서 얼빠진 소리가 들리는 건 참자.
먹이를 탐하기에 여념없는 저실장을 내버려두고 나는 화장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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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사흘간을 그 상태로 저실장을 길렀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용변보는 김에 선반에서 캔을 내려 배설물이 묻은 신문지를 갈고 먹이를 준다.
신문지를 가는 동안 저실장은 수세식 변기의 뚜껑 위에 올려놓는다.
"...레후?"

저실장은 두리번 두리번 주위를 둘러보고 꾸물꾸물 적당한 방향으로 기어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변기 뚜껑 가장자리에 도달해 바닥에 추락하기 전에 신문지의 교환은 끝난다.
캔에 돌려보내려고 저실장을 잡아올리면 찰싹찰싹 꼬리를 흔들며 웃는 얼굴로 울어보인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알았다 알았어. 하지만 프니프니라니 해줄 수 없어.
나는 말없이 저실장이 든 깡통을 선반에 되돌린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구더기는 계속 울고 있지만, 그대로 화장실을 나와 문을 닫는다.
역시 저실장은 바보 그 자체라고 실감하게 된다.
이 주인이 결코 프니프니해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이젠 깨달아야 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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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가 부탁한 짐은 전화받은 그날에 준비해서 편의점에서 택배로 발송했다.
그러나 무사히 도착했다는 연락 및 감사는 없었다.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 다음 주말에, 나는 보낸 것 말고 남은 그녀의 짐을 정리하기로 했다.
초코 크런치 빈 깡통같은 쓰레기는 버리고, 그 이외는 언제든지 집에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해둔다.
아니-- 바로 보내버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아키에 돌아와 달라고 할 생각도 없다.
어떻게 된 건지, 그녀가 집으로 보내도록 지시한 짐은 화구뿐 옷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평상복이나 속옷은 고스란히 내 방에 남아 있었다.
원래 입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성격으로, 갖고 있는 옷은 마트나 유니클로에서 구입한 싸구려뿐이었다.
그래서 다시 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변변한 돈도 없는 주제에.
옷장 서랍에서 속옷과 양말을 끄집어내고 있는 사이 실장 링갈이 나왔다.
상자에 든 채인 새것으로 아키가 어느 출판사의 신년회에서 빙고에 당첨됐다고 한 것이 떠올랐다.
"실장석따위 기를 생각도 없고, 필요 없네요. 이담에 야후 옥션에 내봐야 하나?"
 
그렇게 말한 것을 아키 자신이 잊고 옷장에 처박은 상태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잊고 있었다.
상자에서 설명서를 꺼내 대충 눈으로 훑는다.
배터리는 충전식이고 문자 로그 모드라면 전원을 켠 채로 48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항상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싱글벙글 웃고, 결코 맛볼 수 없는 프니프니를 조르는 저실장.
밥의 제공 및 배설물의 처리 외에 나는 전혀 상대해주고 있지 않다. 입도 뻥긋 않고 있는데.
항상 언제나 싱글벙글 프니프니. 도대체 머릿속이 어떻게 돼 있는 거야?
닌겐상이 자신을 전혀 상대해주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바보인가?
나는 링갈을 충전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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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에 걸쳐 아키의 짐을 정리하고 편의점에서 택배로 발송했다.
도쿄에 나올 때 사용한 이사용 박스를 일부 접어 남겨놓은 것이 도움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보니 링갈 충전이 끝나 있었다.
전원을 켜고 화장실 선반, 저실장을 넣은 캔 옆에 놓는다.
 
"...레후레후 ♪ 레후레후 ♪"
 
캔 안에서 저실장이 혼자 마음대로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홀로 방치되고 있는데, 꽤 즐거운 소리가 아닌가.
밥만 있으면 행복한 건가? 그 속내도 링갈로 알 수 있겠지.
링갈은 다음날 아침 회수하기로 하고 나는 화장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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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다음날 아침, 캔 바닥에 까는 신문지를 교환하고 먹이를 보충하는 김에 링갈을 회수했다.
아침 토스트를 씹으면서 한손으로 링갈을 조작하여 화면에 표시되는 로그를 따라간다.
"......뭐야 이건?"
 나는 무심코 입밖으로 중얼​거렸다.

"배씨 비었다 레후, 밥 먹는 레후"
"맛있는 레후♪ 맛있는 레후♪"
"와- 레후♪ 배씨 빵빵한 레후♪ 우지쨩 행복해진 레후♪"
"배불러지면 운치가 나오는 레후"
"음-레후, 음-레후, 음...... 잔뜩 나온 레후♪"

"운치로 엉덩이가 더러워진 레후♪ 깨끗 깨끗 해주었으면 하는 레후♪"
"오네챠 어딨는 레후? 마마 어딨는 레후? "
"......없는 레후? "
"레에에에...... 운치 묻은 엉덩이는 싫어 싫어 레후......"
"하지만 포기하는 레후, 우지쨩은 착한 아이인 우지쨩인 레후, 제멋대로 말하지 않는 레후"
"식후에는 프니프니가 따라오는 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프니해주는 레후♪"
"......아무도 없는 레후? "
"언제나 밥을 주는 닌겐상도 없는 레후? "
"레에에에...... 누군가 프니프니해주는 레후......"
"어쩔 수 없는 레후, 제멋대로는 안 되는 레후, 혼자 프니프니 놀이하는 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프니 기분좋은 레후 ♪"
"......역시 기분좋지 않은 레후, 지친 레후, 우지쨩 자는 레후"

"안녕히 주무세요 레후♪"
"레후 ♪ 레후 ♪ 새근 새근 레후......"
"...... 아침인 레후? 밝은 레후♪ "
"이제 닌겐상이 밥 갖다주는 레후♪"
"맛있는 밥을 준비해주는 상냥한 닌겐상인 레후♪ 마마가 말한 애호파가 틀림없는 레후♪"
"부탁하면 꼭 프니프니도 해줄 것인 레후♪"
"어제는 해주지 않은 것 같은 레후...... 하지만 오늘은 모르는 레후♪"
"착한 아이인 실장석은 닌겐상이 귀여워해주는 레후♪ 마마가 말한 레후♪"
"우지쨩은 프니프니 받을 수 있게 착한 아이답게 부탁하는 레후♪"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하아아"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적당히 좀 이해해라, 너 ......"
 
저실장의 얼빠진 뇌구조에 복장이 터졌다.
매일 부탁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닌겐상이 프니프니해준다.
완고하리만치 그렇게 굳게 믿고 있다.
어디까지 호인인 건가...... 아니 호저인가?
이렇게까지 바보라면 행복할 것이다. 싱글벙글 언제나 웃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먹다 남은 빵을 접시에 놓고 링갈을 들고 화장실에 돌아왔다.
선반에서 깡통을 내려 변기 뚜껑에 두고 저실장을 내려다본다.
저실장도 나를 눈치채자 식사를 중단하고 고개를 들어,
 
"...레후-♪"
 
방긋 웃으며 기쁜 듯이 울었다.
링갈의 로그를 확인하면
 
"닌겐상, 밥 맛있는 레후♪ 감사한 레후♪"
 
나는 "......하아" 다시 크게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저으며 저실장에게 물었다.
 
"...... 혼자서 프니프니 놀이라던데 그게 뭐니?"
"...레후?"
 순간 멍해진 모습의 저실장은 곧 다시 웃는 얼굴로 천천히 배를 위로 누운 채 굴렀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링갈 로그를 살펴보면,

" 프니프니받는다는 생각으로 프니프니하는 레후♪"
 
라고 기록되어 있다.
저실장은 복근 운동을 하는 것 같이 작은 몸을 꿀렁꿀렁 오므렸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과연, 프니프니하며 배가 눌리면 몸은 그런 움직임을 할 것이다.
그러나 구더기의 덧없는 체력으로 복근 운동이 오래 갈 리 없다. 곧, 탁 몸을 펴고
 
"지친 레후 ♪ 혼자 프니프니한 레후♪"
 
그렇게 말하며 방긋 웃어보였다.
 
"............"
 
나는 저실장의 몸에 손을 뻗었다.
 
"...레후?"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의 저실장의 배룰 검지손가락으로 만지고 프니프니하듯 가볍게 눌러준다.
 
"...프니후-!?"
 
저실장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하지만 곧 그것을 받아들여 황홀하고 기분좋게 울기 시작했다.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링갈 로그를 보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와~ 레후♪ 닌겐상에게 프니프니받은 레후♪ 우지쨩 행복한 레후♪"
 
단 이만큼으로 큰 기쁨을 얻다니, 얼마나 저렴한 생물인가.
 
"프니후-♪ 프니후-♪ 프니후-... ♪"
 
뷰루루, 구더기의 하복부 - 총배설구에서 무른 변이 분출했다.
 
"......앗?"
 
깜짝 놀란 나는 손가락을 움츠린다.
 
"...레훗?"
 
구더기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지만 곧 또다시 방긋 웃고,
 
"배씨에 쌓인 운치 상쾌한 레후♪ 닌겐상의 프니프니 효과만점인 레후♪"
"그런가...... 그렇다면 다행이네"
 
나는 숨을 멈추고 얼굴을 찡그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소취 타입의 먹이를 주고 있을 터인데, 들시절부터 쌓인 숙변이 나온 것일까. 상당히 고약한 냄새다.
 
"프니프니​기분좋았던 레후♪ 닌겐상 감사한 레후♪"
 
그렇게 말하고 저실장은 천천히 엎드린 자세로 돌아왔다.
아랫배가 똥투성이인 상태이므로 간 신문지가 더러워진다. 상대는 구더기니까 어쩔 수 없지만.
저실장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우지쨩, 닌겐상에게 부탁이 있는 레후♪"
"부탁?...... 무슨?"
 
나는 약간 준비를 하고 되묻는다.
토시의 충고가 기억난다, 들실장은 상냥한 얼굴을 하면 기어오른다고, 오만한 분충이 된다.







그런데, 이 저실장의 '부탁'은 맥이 빠지는 것이었다.

"닌겐상은 언제나 우지쨩에게 맛있는 밥을 주는 레후♪ 상냥한 레후♪"
"지금 프니프니도 해준 레후♪ 마마가 말한 애호파 닌겐상이 틀림없다고 생각한 레후♪"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레후♪ 화내지 말고 들어주시는 레후♪"
"우지쨩을 닌겐상의 사육 우지쨩으로 해주는 레후♪ 우지쨩을 길러주는 레후♪"

 나는 링갈 로그에 늘어선 저실장의 대사를 바라보고 멍하니 입을 벌렷다--
그리고 저실장은, 싱글벙글 미소를 보았다.
...... 풋,하고 내뿜었다.
 
"레후...?"
 
웃는 얼굴로 내 대답을 기다리는 저실장의 머리에 검지손가락을 뻗어 쓰다듬어준다.
 
"우지쨩은 이미 나의 사육 우지쨩이야"
 
"...레훗?"
 저실장은 황홀한 듯한 미소를 짓고 찰싹 찰싹 찰싹 찰싹 꼬리를 크게 흔들며 기뻐했다.
 
"와~ 레후♪ 우지쨩은 사육 우지쨩인 레후♪ 주인님 앞으로 잘 부탁하는 레후♪"
"아, 부탁해 ......"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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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실장의 위치를 거실 창문 앞으로 바꾸었다.
레이스 커튼을 쳐서 너무 밝을 일은 없다.
 
"밝은 곳으로 이사한 레후♪ 기쁜 레후♪"
 
지금까지의 취급이 너무 나빴을 뿐인데, 저실장이 순수히 기뻐하는 것에 쓴웃음짓게 된다.
이어서 퇴근길에 유리 어항을 사다 초코 크런치 깡통에서 옮겼다.
여전히 바닥에 까는 건 자른 신문지지만 예산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애완동물 화장실용 모래를 까는 것이 보기는 좋지만, 똥을 흘려대는 구더기가 상대라면 매일 모래를 갈아야 한다.
그렇게까지 비용을 들일 순 없다.
식사 대우도 개선했다.
그렇다고해도, 지금까지 먹이는 푸드는 그대로 하고 별도로 간식인 콘페이토를 매일 한알씩 주기로 했다.
그다지 비싸지도 않고 사육실장으로서 허용된 범위의 사치인 것이다.
 
"아마아마한 콘페이토 맛있는 레후♪ 우지쨩 무척 행복한 래후♪ 주인님 정말 감사한 레후♪"
 
핥짝핥짝 열심히 콘페이토를 빨면서, 레후레후 나에게 감사를 말하는 저실장.
정말 저렴한 생물이구나 나는 쓴웃음지을 수밖에 없다.
토시가 이메일로 저실장의 근황을 물었다.
무심코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지금 콘페이토를 취한 듯이 핥고 있다"고 대답했다.
곧 토시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너, 콘페이토까지 주고...... 역시 정이 든 건가?"
"정이라고 할까...... 그, 바보처럼 솔직한 녀석이야, 이 구더기는"
 
스스로도 변명같다고 생각하면서 대답하는 나에게, 토시는 기가 막힌 듯이,
 
"바보니까 솔직하다고도 할 수는 있겠지만 쓸데없는 지혜를 짜지 않을 뿐이야"
"싱글벙글하면서 주인님 감사하다고 말한다구, 너무 심한 취급은 할 수 없어 "
"주인님 감사하다......라고, 링갈까지 사버린 거야??"
 
어처구니없어하는 모양인 토시에게 당황해서 나는 순간적으로 변명한다,
 
"전 여친-- 아키가 받아 온 거야 출판사 파티의 경품으로"
"뭐 그건 그렇고, 일단 물어보겠는데 애호 전용 모델 아냐?"
"아냐, 보통이야. 취급 설명서에는 애호 모드도 있다고 써져 있지만 어쩐지 미심쩍어서 설정하지 않았다고"
"그거 참 애쓰네. 애호 모드라는 건 실장석을 너그럽게만 대하게 하고 훈육도 되지 않으니까......"
 
하기사 구더기에게 예의범절은 필요없지만 너무 바보라서라고 하고, 토시는 덧붙여,
"......뭐, 그녀와 헤어진 마음을 채우기 위해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도 괜찮지, 일반적으로는"
"딱히......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내가 어색한 기분이 들어 말하자, 토시는 웃으며,
 
"저실장 따위로 빈 마음이 채워지는 그녀가 불쌍하지만 뭐, 그런 정도의 존재니까"
"봐준다......"
 전여친 얘기의 농담 정도는 용서된다. 큰 상처였으니까.
무도한 토시는 아하하하 목소리를 높여 웃는다,
 
"그럼 뭐, 사랑하는 우지쨩에게 안부 전해줘♪"
 
비꼬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 전화가 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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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의 옷을 보낸 지 이틀 후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짐이 도착했다는 보고와 감사 인사였다.
이전에 한 번, 아키의 친가를 방문한 적이 있어서 어머니와 안면이 있었다.
 
"-- 일부러 그래줘서 미안해요, 아키는 참, 저런 아이라"
 
어머니의 말투로 보면 우리들이 헤어진 것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원인이 딸의 두번째 바람에 있는 것까지는 모르는 것 같다.
 
"지금까지 잘 해주고, 저런 아이라도 아껴주고요"
 
아무래도-- 단순한 싸움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수준으로.
 
"아키에게도 말해서, 감사 전화를 시킬게요. 그렇게 하게 해줘요...... 참견일지도 모르지만"
"아니, 신경쓰지 마십시오. 아키 씨와는 가끔 전화 통화도 하고......"
 
헤어져도 친구로서의 관계는 계속하고 있다고, 그녀의 어머니가 생각하게 하기로 했다.
사실 아키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것은 화구를 보내달라고 요청한 한번 뿐인데.
거듭 인사하는 어머니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대충 맞장구를 친다.
경우 통화를 끝내고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애인의 부모와 만나지 않는 편이 좋았다고 절실하게 생각했다.
함부로 안면을 트면 연인과 헤어진 후가 괴롭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기도 했을 때에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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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어항 속 저실장의 모습이 이상했다.
평상시라면 내 모습이 눈에 보이자마자, 찰싹찰싹 꼬리를 흔들며,
 
"레후-♪ 레후-♪ (주인님 안녕한 레후-♪)"
 
힘차게 인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어항 구석에서 웅크린 모습 그대로 고개도 숙인 채로,
 
"...레후..."
 
힘없는 신음 소리를 올릴 뿐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링갈 스위치를 켜고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우지쨩?"
"......우지쨩, 가슴씨가 따끔따끔한 레후,  앞발씨 사이에 있는 게 가슴씨라고 하는 거 맞는 레후...? "
 
나는 더욱 놀랐다. 부상? 질병?
어항에서 저실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눕혀준다.
 
"...프니후...?"
 
축 늘어져 힘이 빠진 저실장. 링갈 표시는
 
"프니프니인 레후? 하지만 가슴씨가 따끔따끔해서 기분 좋아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레후...... "
 
프니프니를 요구할 기력마저 잃은 걸까.
하지만 겉보기에 몸에 뭔가 박혀 있다거나 다친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장의 질병인가?
난 토시에게 전화했다.
출근 전이다. 민폐인 건 안다.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전화니까, 토시는 그것을 거부할 정도로 매정한 녀석도 아닐 것이다.
자신도 실장석을 기른 적이 있으니까.
전화를 받은 토시에게, 지금 저실장의 모습을 전하자 그는 "흠 ......" 깊게 신음했다.
 
"탁아로 기르기 시작한 구더기라. 그 녀석이 태어나서 몇달 동안, 어떤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모르겠군......"
"......무슨 말이야?"
 
되묻는 나에게, 토시는 낮춘 목소리로
 
"수명이 다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앗?"
 
나는 언성이 높아졌다.
 
"수명이라니, 하지만 저실장이잖아!?"
"구더기라서 그런 거다, 넌 모양때문에 착각하나 본데, 저실장은 실장석의 아기인 것만은 아냐"
 
토시는 말한다.
 
"고치를 만들어 엄지나 자실장으로 변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구더기 모습이다"
"하지만......그건 그렇고"
"원래 저실장은 미숙아......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형아야. 태아의 모습 그대로 어미 뱃속에서 나온 거다"
"아냐......"
"수명이 짧은 것도 당연해. 체질이 허약하고, 위석도 여려. 가끔 행복회로가 고성능이고 튼튼한 녀석도 있지만"
"그런 ......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아니라고!"
 
나는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곧 정신을 차리고, 토시에게 사과했다.
 
"...... 미안, 소리지르다니......"
"아냐"
 
토시는 어조를 바꾸지 않고,
"나도 경험이 있어. 실장석이 아니라 개였지만. 초등학교 때 처음 기른 녀석이 사실 타고난 병약 체질이었어"
"그렇구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토시도 애완 동물과의 이별 경험이 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기르고 있는 저실장은 아직 살아있다.
토시가 말했다.
 
"네 구더기지만, 수의사에게 데려가는 방법은 있어. 하지만 솔직히 실장석은 미움받고 있고, 구더기는 더욱 외면당한다"
"의사가 실장석에 대해 냉담하단 이야기는 전에 들었어. 구더기와 엄지는 너무 허약하고 성체와 자실장은 아무렇지않게 꾀병을 부린다고"
 
내가 말하자, 토시는 전화 저편에서 쓴웃음을 짓는 것같다.
 
"정말 나쁜 건 주인인데. 들은 타고난 분충도 있지만, 사육실장이 분충이 되는 건 주인 탓이야"
"의사에게 데려가겠어"
 
나는 말했다.
 
"회사는 쉬고, 전화번호부에 있는 근처 수의사에게 닥치는대로 전화해서 구더기를 진료봐주는지 물어볼거야"
"하나 말해두지만...... 기대는 하지 마라"
"아...... 그러고 있어"
"그리고, 또 하나. 너...... 정말 대단한 호인이다"
"나쁜놈"
 
내가 조금 발끈해서 말하자, 토시는 웃으며,
 
"아니네, 적어도 나만은 싫어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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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실장을 진찰해주는 수의사는 다섯 번째 집에서 발견했다.
그 전에 전화한 동물병원은 단칼에 거절당한 곳이 한곳.
뒤의 세 집도 환자가 저실장이라고 전했을 때 반응이 너무 나빠서 이쪽에서 사양했다.
초코 크런치 깡통 바닥에 탈지면을 깔아, 저실장을 어항에서 옮긴다.
탈지면은 아키의 친가에 보내려다 까먹은 화장품에서 빌렸다.
 
"우지쨩...... 괜찮아? 지금 의사에게 데려갈게"
"...레후..."
 
구더기는 힘없이 웅크린 채이다.
캔 뚜껑 대신 랩을 씌우고, 몇 군데 공기 구멍을 뚫어준다.
그것을 어깨에 메는 가방에 (옆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신중하게 넣어 운반한다.
동물병원은 자전거로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저실장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생각해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갔다.
가끔 가방을 열고 안 구더기의 모습을 보지만 늘어진 채 변화는 없다.
악화도 아니라고 스스로 납득시킨다.
동물병원에 도착해 접수를 끝낸다. 아침 일찍이었기 때문에 즉시 진찰을 받을 수 있었다.
젊은 수의사는 저실장을 검사대에 눕히고 위석 서쳐를 댔다.
스캔된 위석의 모습이 연동된 PC 모니터에 표시되었다.
하지만 영상은 X선 사진과 비슷해서 초보자는 환자의 위석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기 힘들다.
 
"위석의 피로파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오늘 내일이 고비일 겁니다"
 
먼저 토시와 이야기하지 않았다면, 나는 수의사의 말에 냉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까지 건강했습니다만......"
 
내가 말하자, 수의사는 고개를 저으며,
 
"실장석이니까요. 그것들은 질병이나 부상에 대한 자각이 둔합니다"
"수명이 다한...... 건가요, 우리 구더기의 경우는?"
"그것은 판단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정신적이나 신체적인 스트레스의 축적으로도 위석 손상이 일어나니까요"
 
그 모두가 주인의 책임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선천적으로 취약한 저실장의 경우는--
수의사는 이렇게 말을 덧붙이지만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스트레스라고 한다면, 저실장이 탁아된 당초에 홀로 방치한 것도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물론 애당초 탁아로 만난 구더기이다. 내가 어떻게 다루었어도 책임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넘어갈 수 없는 게 나란 호인인 것이다.
수의사는 시럽약을 처방해주었지만 그 효과는 저실장의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것뿐.
회복은 기대하지 말아달라고 수의사가 말했다. 그의 진지한 태도에 나는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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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저실장을 테이블 위에 눕히고 동물병원에서 받은 스포이드를 사용하여 시럽을 먹인다.
 
"...레후...♪"
 
저실장이 오늘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희미했지만.
링갈 로그에 눈길을 옮긴다.
 
"아마아마한 레후... 맛있는 레후...♪"

나는 저실장에게 물었다.
 
"우지쨩...... 프니프니​할래?"
 
환자가 요구하는 경우에는 프니프니해줘도 된다고 수의사가 말했다.
이 저실장은 가슴에 위석이 있는 개체이므로 원래라면 프니프니는 피로파괴가 진행 중인 위석에 부담이 된다.
그러나 프니프니를 받는 것으로 행복회로가 자극되고, 정신적 및 신체적 고통은 차감 및 완화한다고 한다.
"모처럼인 레후, 하지만 사양하는 레후, 주인님의 마음만 받겠는 레후......"
 
저실장은 대답하여 희미하게 웃는다.
나는 구더기를 창가 어항 안으로 돌려보냈다. 양지 바른 거기가 저실장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햇님 따뜻한 레후...... 우지쨩 일광욕 좋은 레후...... 밥과 프니프니 다음으로 좋아하는 레후......"
"공원에서 마마와 오네쨩과 함께 일광욕을 하고 있었던거니?"
 
내가 묻자 저실장은 느릿느릿 고개를 저으며,
 
"공원에서는 집씨 밖으로 내보내주지 않은 레후, 공원은 무섭무섭이 가득한 레후......"
"그렇구나......"
 
동족식하는 들실장, 까마귀, 길고양이, 학대파, 악의 없이 실장석을 장난감 취급하는 아이들......
공원에 사는 실장석은 --특히 무력한 자실장과 엄지, 구더기는 일상 생활이 위험 투성이다.
그것을 나는 생각했어야 했다. 부주의한 질문이었다.
 
"주인님의 집씨에서 살 수 있어서 행복한 레후...... 무섭무섭이 없는 레후...... 밥이 매일 있는 레후......"
"......우지쨩"
 내가 말했다.
 
"우지쨩은 내 사육실장이야. 그래서 사육실장다운 이름을 붙여줄게"
"...레후...?"
 
저실장은 느릿 느릿 고개를 들고 방긋 웃으며
"우지쨩은 우지쨩인 레후, 어엿한 주인님의 사육 우지쨩인 레후......"
"그렇지만 우지쨩이라는 말은 우지쨩 모두를 부르는 거잖아? 그거 말고 너만의 이름이다"
"하지만 우지쨩은 우지쨩인 레후...... 주인님의 사육 우지쨩인 레후...... 우지쨩은 주인님에게 길러져서 행복한 레후......"
"......알았어"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방에 넣어져서 내가 걸을 때마다 흔들리고, 피곤했지? 좀 자고 쉬려무나"
"하이 레후...... 아마아마를 마셨더니 졸린 레후...... 안녕히 주무세요 레후......"
 
저실장은 잠이 들었다. 숨소리가 부드러워 나는 안도한다.
미뤄뒀던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세탁이나 청소 등 집안일을 한다.
그 후는 창가에 의자를 끌어와 책을 읽으며 저실장의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저실장은 저녁까지 눈을 떴다가 다시 자고의 반복으로 상태는 좋지도 나쁘지도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밤이 되어 저실장에게 수의사가 처방한 시럽을 마시게 한다.
잠들어 있던 저실장이 들어간 어항을 내 침대 옆 바닥으로 이동시켰다.
침대 옆에 어항을 놓을 장소가 바닥밖에 없었다.
전기를 끄고 나도 잠을 청한다. 한밤중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날 때 어항을 걷어차지 않도록 조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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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내 앞에 서있는 여자아이가 말했다.
몸집이 작아서- 라기보다는, 그냥 아이였다. 얼굴도 앳되고 체구도 겨우 십사에서 오세.
그에 비해 부분적인 발육은 꽤 양호했다.
흰 원피스를 두른 몸매는 날씬한데, 정말 일부분만 눈길을 끌 정도로 자라 있다.
내가 아는 그 누구와 닮았지만, 그래도 그럴 리 없었다.
그녀는 검은 머리였고,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의 머리는 밝은 갈색- 아마색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눈은 갈색인데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빨간색과 녹색의 좌우 다른 색 눈동자.
그녀는 움직이는 데 편하다는 이유로 스커트는 좀처럼 입지 않지만, 앞에있는 여자는 원피스 차림.
앞에 있는 여자아이는 본대로 아이이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녀는 속은 어린애일지라도 외모는 나이에 맞다.
나보다 두살 위인 스물여섯, 아니-- 겉보기엔 더 젊은 느낌일까, 오히려 화장기가 없어서.
 
"주인님이 길러준 덕분에 우지쨩 고치를 만들고 자랄 수 있었던 레후"

여자는 말했다.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여자는 내 사육 저실장인가.
 
"주인님 덕분인 레후, 사육 우지쨩이 되어서 우지쨩은 행복했던 레후"
"앞으로도 행복한 사육실장이야......"
 
내가 말하자, 여자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젓는다.
 
"우지쨩은 이제 가야하는 레후, 정말 감사합니다 레후, 하지만 어떻게 감사해야할지 모르는 레후"
 
여자아이는 곧장 나에게 다가왔다.
내려다보던 상대의 얼굴이 어느새 내 눈앞에 있었다.
굽 높은 펌프스를 신었을 때, 내가 알고 있는 그녀처럼.
실제로 여자아이는 펌프스를 신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키는 그녀 - 아키와 같다.
그럴 리는 없는데, 아무튼 그랬다.
여자아이의 좌우 손이 내 좌우 팔꿈치에 걸린다.
부둥켜안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몸을 붙인다-- 아키가 잘 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보기좋게 자란 부분-- 슬렌더가 아닌 풍만한, 아키의 것과 흡사한 상반신이 내 가슴에 닿는다.
여자아이의 머리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샴푸 향기도 아키가 사용하던 것과 똑같았다.
 
".....아키"
 
얼굴이 바싹 가까워진 순간 무심코 말하자 여자아이는 몸을 살짝 떼어내고 미소지었다.
 
"그 이름은 우지쨩의 이름이 아닌 레후"
"물론, 나도 너에게 그런 이름을 붙일 생각은 없었어"
 
나는 쓴웃음지으며 말한다.
 
"내가 붙이려 한 것은 ......"
"우지쨩은 우지쨩인 레후"
 
여자는 웃는 얼굴로 단호히 말했다.
 
"그렇지만 이미 정한 이름이 있다면 받아두는 레후"
"아...... 내가 지으려고 한 너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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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떴다.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밖의 햇살이 밝다.
몸을 일으켜 침대를 내려왔다. 어항 속 저실장은 아직 자고 있는 듯 움직이지 않는다.
주저앉아 어항을 들여다본다. 저실장의 살짝 열린 눈은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떠났구나--
나는 손가락으로 저실장의 얼굴을 쓰다듬어 눈을 감겨주었다.
저실장은 정말 행복했던 것일까. 꿈속에서 여자아이가 말한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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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실장의 시신은 티슈에 싸서 아파트 부지 구석에 묻었다.
나름대로 깊이 묻었으므로 부지에 침입한 들실장이 파낼 일은 없을 것이다.
눈을 뜬 시간이 일렀기 때문에 저실장을 묻은 뒤에도 충분히 출근 시간을 맞췄다.
일을 마치고 귀가하자 아파트의 방 앞에 아키가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색하게 내가 묻자, 아키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짐...... 내 옷이 집에 도착한 걸 보고, 여기에 더 이상 내가 있을 곳이 없어서 슬퍼졌어"
"아키가 그렇게 만든 거잖아?"
"......그렇지만......"
 아키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젠장, 그녀는 늘 그런 식이다. 내가 고르게 한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용건이야?"
"열쇠"
 아키는 일어나서 청바지 주머니에서 아파트 열쇠를 꺼냈다.
 
"돌려주지 않았으니까"
"아......"
 
그녀는 열쇠를 내밀면서 다시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빌어먹을.
나는 그것을 받지 않은 채로 물었다.
 
"......또 할말 있어?"
"아니......그냥"
"알았어"
 
나는 열쇠를 받았다.
 
"화장품 보내는 거 잊어버렸어. 가지고 갈래?"
"필요한 건 또 샀어. 하지만 돌려받을 수 있다면......"
 
그렇게 말하는 아키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기다려"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문에 열쇠를 꽂아 돌리려한다.
 
"......나."
 아키가 말했다.

"나, 니지우라씨랑 안 잤어"
"............"
 나는 아키에게 몸을 돌려 다시 고개를 숙이고있는 그녀에게 되묻는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호텔까지 갔다, 사실이야, 왜냐하면 니지우라씨는 차기 편집장으로 내정됐고, 나는 일이 필요했으니까"
"그건 들었어"
"하지만 섹스는 안했어, 여러가지로 무서워져서 도망쳤어, 하지만 호텔은 갔어, 그래서 쥰에게서도 도망간 거야"
"이제 와서......"
 
나는 웃는다. 웃을 수밖에 없다.
 
"이제 와서 그런 걸 말해서 어떡하라고?"
"니지우라씨의 출판사 일은 취소되고, 쥰과 헤어지고, 그러면 나,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그래서?"
"그래서 집에 도착한 짐을 보고, 부탁한 화구 말고 옷도 있는 걸 보고, 그래서 정말......"
"정말..... 뭐?"
".....내가 있을 곳이 여기 더 이상 없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
 
아키는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실장석으로 말한다면 투명한 눈물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하는 일은 모두 임기응변에, 급히 생각한 거짓말을 태연하게 말한다.
웃기지 마!
이렇게 호통치고 싶다.
하지만-- 그 대신에 나는, 열쇠를 아키에게 내밀었다.
 
"......이거 아키가 가지고 있어도 돼"
 이렇듯 나는 어쩔 수 없는 호인이다.
"들어와"
 
나는 그렇게 말하고, 아키를 위해 방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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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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