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소칼리버

"저건 짓소칼리버라고 하는 데스"

"짓소칼리버?"

"선택된 실장석만이 뽑을 수 있는 전설의 검인데스, 저 검을 가진 자는 실장석은 물론 닌겐들마저 무릎꿇리고 세상의 왕이 되는 데스"

"테햐아아아아......."

자실장은 오늘 처음으로 어미를 따라 집 밖 먼곳까지 나왔다가 돌아가는 길이다. 이들이 살고있는 두루마리 공원은 비교적 식량사정이 좋고 학대파가 출몰하는 일도 드물기에, 불과 생후 2주밖에 안되는 연약한 자실장이라도 어미를 따라 멀리까지 외출하는 일은 그다지 드물지 않다.

어미는 처음 세상구경을 하는 자실장에게 이것저것을 가르쳐 주었다. 식량을 구하는 먹이터, 닌겐이란 생물, 학대파와 애호파, 자실장의 '파파'인 꽃들, 독라노예의 비참한 삶, 호기심많은 자실장은 어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탄성을 내질렀고, 그때마다 친실장은 신이 나서 더욱 많은 것을 자실장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즐거운 친자간의 대화를 이어가며 집으로 돌아오던 중, 돌바닥에 박힌 무언가를 자실장이 발견했고, 친실장은 그것이 세상을 다스릴 전설의 검, 짓소칼리버라고 설명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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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런 것은 있을 턱이 없다.
두루마리 공원에는 원래 공원 뒤편의 두루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었다.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에서 온 등산객들도 이 등산 코스를 애용했고, 공원은 늘 활기찬 모습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5년 전 어느날, 왕년의 톱스타가 두루산에서 투신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원인은 사업 실패와 불의의 사고로 인한 자식의 죽음.

이 사건 때문에 한동안은 매스컴과 구경꾼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이 빠져나가자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자 등산객은 눈에 띄게 줄어든 대신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이 공원에 모여들었고, 두루산은 자살의 명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갖게 되었다.

공원의 운영주체인 지자체로서는 이러한 상황을 묵과할수만은 없었다, 몇번의 회의와 공청회가 열린 끝에 등산로의 폐쇄를 결정했고, 철조망을 쳐 혹여라도 들어가는 사람이 없도록 조치했다. 여기에 더해 공원을 새단장하며 아예 두루산 방향의 길을 없애버리고, 나무를 심어 공원을 두루산에서 물리적으로 분리시켜 버렸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루산 등산로 어귀에 있던 안내소와 화장실 역시 철거되었다.

"데덱. 뭐인데스???"

"먹이터가 사라진데스!"

"아이 낳는 곳도 사라진데스.....이제 어디 가서 자들을 낳는 데스우.....?"

근처에 살던 실장석들은 곤란에 빠졌다. 안내소 뒤편에는 등산로에서 발생한 쓰레기들을 모아두는 쓰레기장이 있어 훌륭한 먹이터로 사용되었고, 인적이 드문 등산로의 화장실은 출산장으로 제격이라 역시 실장석들에게 애용되었다. 그러던 것이 하룻밤 사이에 철거되어 사라졌으니 실장석들로서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저건 뭐인데스?"

그 실장석이 가리킨 곳에는 콘크리트 기단부에서 튀어나온 철근이 있었다. 그것은 공원측이 재개장을 서두르는 바람에 부실하게 진행된 철거작업의 흔적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다. 하지만 실장석들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던 모양이다.

"저건 엑ㅅ......짓소칼리버인데스!!"

공원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 않은 원사육실장이 소리를 높였다. 전설과 신화를 좋아했던 주인 밑에서 자란 그 원사육실장은 바위에 꽂힌 검, 엑스칼리버의 전설을 들은 바 있었고, 지금 콘크리트에 꽂힌 철근을 보고서는 그때의 기억에 더해 제멋대로 행복회로를 돌려 짓소칼리버라 이름지었다.

"이걸 뽑으면 왕이 되는 데스! 닌겐을 노예로 부리고 매일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데스! 당연히 이런건 선택받은 와타시만이 뽑을 수 있는 데스!"

그러나 콘크리트에 단단히 박힌 철근이 실장석 따위의 힘으로 뽑힐 리가 없다. 원사육실장의 손은 금새 철근의 우둘투둘한 표면에 쓸려나가 피투성이가 되었고, 주변 실장석들의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실장석들이 짓소칼리버의 전설 자체를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여 원사육실장을 비웃은 것은 아니었다. 단지 원사육실장이 선택되지 못한 놈이라는 것이 증명되어 비웃었을 뿐이었다.

그 후 한동안은 자신이야말로 고귀한 왕이라며 짓소칼리버를 뽑는데 도전했던 녀석들이 나왔으나, 당연히 누구도 그것을 뽑지 못했고,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저 먼 옛날의 전설로 치부되어 가끔씩 한번 눈길을 줄 뿐 누구 하나 도전하는 이 없이 방치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실장은 어미에게 짓소칼리버의 전설을 듣고는 황홀경에 빠졌다. 황금골판지로 만든 갑옷을 입고 까마귀를 타고 다니며 짓소칼리버를 휘둘러 세상을 평정하는 왕,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얼굴은 상기되고 총배설구에서는 운치가 부룩부룩 새어나온다. 어미가 길거리 빵콘을 혼내는 소리도 이미 들리지 않는다.

저 검은 내가 뽑으리라. 자실장의 마음에서 피어난 하나의 결심이 위석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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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실장에게는 확고한 신념은 있어도 그것을 뒷받침해줄 지식이 너무나도 부족했다. 저 검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 머릿속에서는 짓소칼리버를 손에 대는 순간 황금색으로 빛나며 스르륵 뽑혀나오는 장면이 매일같이 반복되고 있었지만, 위석에 박힌 강한 결심 덕분인지 자실장은 행복회로가 만들어내는 그러한 환상을 억제하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을 할 수 있었다.

"전설의 검이라면 그냥 뽑힐리가 없는 테치.....선택받은 자만 뽑을 수 있다면 와타치도 선택받기 위해 뭔가 노력이 필요한 테치."

목적을 위해 스스로 노력을 할 결심을 한다는 점에서 이 자실장은 상당히 건실한 축에 드는 실장석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실장석은 자신은 고귀하기에 당연히 부귀영화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족속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짓소칼리버를 뽑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고, 자실장은 마마나 공원에 찾아온 애호파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본 끝에 일단 근력을 키우자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힘이 세면 검을 뽑을수 있는 테치, 지금까지 아무도 저걸 못 뽑은건 동족들이 전부 게으름뱅이라 그런 테치"

어느 의미에서 자실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실장석의 힘이 약하며 대다수가 게을러 빠진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힘이 세면 짓소칼리버를 뽑을 수 있다는 부분은 틀렸다. 인간의 문물 앞에서 실장석의 힘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지,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실장석의 한계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자실장은 근력 훈련을 계속했다. 공원에서 운동을 하는 인간들을 따라하듯이, 매일같이 공원을 달리고 짧은 손발로 팔굽혀펴기며 스쿼트, 턱걸이같은 동작들을 흉내내었다. 그런 모습이 일부의 사람들에게는 귀엽게 보였는지 실장 푸드며 콘페이토 따위를 종종 얻을 수 있었고, 자실장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월동 전의 솎아내기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이듬해 봄 성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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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우......"

그리고 마침내 성체가 되어 짓소칼리버 앞에 섰다.

육체는 완벽하다. 이날을 위해 애호파 닌겐에게 얻은 실장활성제로 도핑까지 마쳤다. 이제 짓소칼리버를 뽑고, 왕이 될것이다.

"데에에.....데하아아아아압!!!!!"

힘을 주어 짓소칼리버를 들어올리려는 실장석의 구릿빛 피부에 적록의 핏줄이 튀어올라 그로테스크한 모습이 되어간다. 하지만 짓소칼리버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데에끄아아아아아아아아!!!!!"

무리하게 힘을 준 나머지 양손이 철근에 크게 쓸려나가며 피가 뿜어져 나오고, 실장석은 고통을 견디다 못해 뒤로 벌렁 나자빠진다.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패인 상처를 보자 울음이 터져나온다. 아파서 우는 것이 아니다. 청춘을 바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기에 우는 것이다.

그때 실장석의 눈 앞에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덮쳐왔다. 인간이다.

"뭐야, 웬 실장석이야?"

남자는 눈물콧물을 질질 흘리며 볼썽사납게 누워있는 실장석을 보았다. 양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고, 그 앞에 있는 철근에 피가 흐르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철근을 뽑으려다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지만, 어째서 그런 무의미한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설마 내 일을 도와주려고 이러진 않았겠지."

남자는 공원의 직원이었다. 폐쇄된 등산로에 들어간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제보가 들어왔기에 상사로부터 등산로에 다녀와 보라는 지시를 받았고, 겸사겸사 문제시되던 안내소 터의 철근도 뽑아내기 위해 몇가지 연장을 챙겨온 참에 우연히도 자기가 하려던 일을 먼저 하고 있던 실장석을 본 것이다. 남자는 그런 우연에 살짝 묘한 재미를 느끼며, 아직도 철근 옆에서 데힝 데힝 울고 있는 실장석을 발로 툭 굴려서 치우고, 쇠망치와 정으로 콘크리트를 쪼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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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갸아아아!!!!"

걷어차인 실장석은 두어바퀴 구르다 지면에 안착했다. 몸을 옴짝달싹할수도 없어 엎어진 채로 남자의 행동을 보고있던 실장석의 눈에 믿을수 없는 광경이 비친다. 무언가 쿵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너무나도 쉽게 닌겐이 짓소칼리버를 뽑아든 것이다.

"어째서인 데스! 그건 와타시의 것 데스!!!"

강한 충격이 위석을 압박한다. 어려서부터 짓소칼리버를 뽑는 것은 자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녀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어떤가, 땅바닥을 구르는 비참한 자신과 당당하게 서서 짓소칼리버를 든 닌겐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와타시는 실패했다. 선택받은 자가 아니었다. 힘을 키워봤자 소용없었다. 닌겐은 저렇게 쉽게 뽑는다. 짓소칼리버를 든 닌겐은 세상의 왕이다. 와타시는 닌겐의 노예일 뿐이다.'

실장석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다. 이 현실을 어디서부터 받아들이고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에 봉착했다. 마침내 실장석의 마음을 이루고 있던 강한 결심은 부정할수 없는 현실 앞에서 붕괴했고. 위석은 그 상념이 깃든 부분부터 천천히 금이 가기 시작해서

'파킨!'

위석의 붕괴와 함께 실장석의 목숨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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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녀석, 데스데스 소리치더니 갑자기 죽어버리네."

콘크리트를 쪼개느라 땀을 흘린 남자는 손수건으로 그것을 닦으며 엎어져 죽은 실장석을 보았다. 실장석의 생각과는 달리, 남자도 결코 편하게 철근을 뽑은것은 아니었다.

"후우.....이게 그렇게 가지고 싶었나."

잠시 쉬기 위해 바닥에 앉은 남자는 실장석이 철근을 뽑아내려 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이유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원래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알 수 없는 생물이니까. 하지만 이 철근을 원한다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

남자는 잠시 먼곳을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실장석의 두 손에 철근을 쥐어주고, 시체를 수풀 근처에 옮겨 놓은 뒤 자리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