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층수의 상가들이 늘어선 도로는 날림공사를 증명하듯 쩍쩍 갈라져 있다. 차량이 지나가며 내는 바람에
철지난 포스터가 흩날린다. 다른 포스터 위에 덕지덕지 덧붙여놓은 그것들은 나이트클럽부터 만병통치약까지
다양한 것을 광고한다. 밑에 적힌 번호로 연락해봤자 받을 지도 의문일 정도로 빛이 바랜 포스터들.
골목 사이로 과일과 잡동사니가 가득 든 리어카를 끄는 노인들이 오가고, 한가한 걸음으로 걸음을 옮기는
회사원들의 모습이 드문드문 보인다. 쓸데없이 많은 플래카드와 현수막들은 헛소리에 가까운 공약을 남발하는
지역 의원들의 약속을 늘어져 있다. 한국의 전형적인 소도시.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이후 뭔가 해보겠다고 이것저것 추진한 것마다 착복과 비리로 끝나 주민들도 더 이상
기대 않는 도시. 그렇다고 인구는 줄어들지도 늘어나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무난한 성적을 내고 있다.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과 건성으로 대응하는 시 당국의 일상 속에 오늘도 흘러간다.
도로변에 서 있는 상아색 건물. 건설된 지 30년이 되어가는 건물은 어떻게 지금껏 소방안전규제를 피해왔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낡았다. 본래 흰색이었을 상아색 건물의 앞에 멈춰서는 흰색 스타렉스. 영업용으로 쓰는
차량인지 ‘해피 실장숍’ 이라는 로고가 박혀있다.
앞좌석에서 내린 부스스한 머리의 남성은 깨진 보도블록 위를 터벅터벅 걸어 차량 옆문을 연다. 제법 뻑뻑한지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힘차게 열어젖힌다. 쇠가 끌리는 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린 틈으로 상반신을 집어넣고
안쪽에서 부스럭 거리더니 잠시 후 커다란 상자를 들고 나온다.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은 남자는 차문을 잠그고, 숍의 문 앞에 서서 주머니를 더듬는다. 찾던 것을 집어든 남자는
잘그락 거리는 소리를 내는 열쇠를 돌려 문을 열고 크게 열어젖힌다. 90도로 젖혀져 고정된 문의 위아래를
훑어보고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상자와 함꼐 안으로 들어간다.
❒
‘푸우~’
유리창문 옆에 늘어진 블라인드가 조종 버튼을 꾹 누른다. 끝까지 올라가는 것을 기다리기 지루한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한쪽 다리를 굴리거나 유리창에 비친 모습을 확인하며 머릿결을 다듬는다. 머리를 감지 않고 나와서
그런지 심하게 뒤엉켰다.
유리창으로 안쪽 어금니를 확인하던 중 천장에서 들리는 긱긱거리는 소리. 블라인드가 끝까지 올라갔음을
확인시켜준다. 돌바닥을 내딛는 구두소리를 내며 문 옆에 내려놓은 상자를 질질 끌어 창고까지 가져간다.
여기저기 널려있는 물건들을 피해가며 안쪽 모서리에 박아둔다. 풀풀 날리는 먼지에 코를 킁킁거리며 안쪽
깊숙이 들어간다.
어디까지나 짐이 쌓여있어서 창고라 부르는 것 일뿐 다용도실에 가까운 이곳에는 소파나 싱크대, 심지어
침대도 있었다. 주변에 눈길을 주지 않고 잡동사니의 산을 지나 가장 깊숙한 구석으로 계속 걸어간다.
안쪽 구석에 놓여있는 커다란 골판지 상자 앞에서 멈춰선 남자는 상자 벽을 걷어찬다.
‘데뎃?’
우당탕하는 소리. 안쪽의 주인은 자신이 상자 안에 있다는 사실도 잊고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천장에 머리를
찧는다. 도로 넘어졌음에도 서둘러 나오려는 통에 네 다리로 엉거주춤 기어나오는 성체 실장석. 남자는 아무
말없이 카운터로 돌아간다.
커튼이 쳐진 진열대 안쪽에서 들리는 규칙적 숨소리와 간헐적인 부스럭 소리.
바지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엉덩이를 벅벅 긁으며 커튼 끝을 잡고 쭉 걸어간다. 길게 드리워졌던 커튼이
걷히며, 안쪽에 잠들어 있는 주민들의 모습이 햇살 아래 드러난다.
층층이 쌓인 투명아크릴의 진열장. 커튼을 걷어내며 훅 풍겨오는 실장석 특유 체취와 분뇨냄새. 어느새
자신의 체취가 될 정도로 익숙한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고 무심하게 하품을 하며 뒤쪽의 진열장의
커튼도 차례차례 걷어낸다.
사육장 안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받은 실장석들의 피부는 투명하여 한꺼풀 아래서 약동하는 적록색 핏줄이
보일 정도다. 얇은 눈꺼풀을 뚫고 들어오는 해님의 손길에 유체 성체 할 것 없이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가린다. 몇 번의 들썩거림 끝에 나름대로 최적의 수면자세를 되찾은 실장석들은 다시 깊게 잠든다.
커튼을 전부 걷은 남자는 카운터 의자에 몸을 던진다. 위에 널브러진 종이를 대충 쓸어모아 아래 서랍에
때려 박는다. 나중에 필요할 시 어떻게 도로 꺼낼지 걱정없이 쑤셔박는다. 헝클어져 여기저기 삐져나온
종이뭉치를 정리하지도 않고 그대로 쿵 닿는다.
어찌나 오래됐는지 팬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한 컴퓨터가 부팅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누런 때가 묻은
카운터 책상을 톡톡 친다. 매번 그래왔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오래 걸리는 부팅시간에 남자는 느긋하게
주머니를 뒤적여 스마트폰을 꺼낸다.
막 꺼내어 전원을 넣은 순간, 컴퓨터 부팅이 완료되며 울리는 경쾌한 윈도우 시작음에 스마트폰을 도로
내려놓고 마우스를 잡는다.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은 온라인 주문 확인.
요즘 같은 시대에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 실장용품을 구매하는 사람은 없다. 90퍼센트 이상의 매출이 온라인
주문으로 이루어진다. 업계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 듣기엔 당장 오프라인 숍을 접어야겠지만 그 온라인 매출은
오프라인에서만 판매가 가능한 실장석을 팔아야만 딸려오는 것이다.
실제 애완용 실장석 가격은 굉장히 저렴하다. 제아무리 최고급이다 브랜드종이다 어쩐다 하더라도 들어가는
비용을 듣는다면, 진열대에 적혀있는 가격들이 터무니없이 보일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미끼상품’
실장석 업계를 가장 잘 정의하는 말. 어마어마하게 먹어대고 어마어마하게 요구해대는 것이 실장석. 일단
사람들을 실장석의 세계로 유인을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기에, 진입허들을 최대한 낮추고, 재미를 붙일 수
있을 정도의 초기 용품들도 퍼준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진짜 비용회수 및 순익창출에 들어가는 것.
턱을 긁적거리며 간밤에 들어온 주문들을 엑셀로 정리한 후 인쇄버튼을 누른다.
[직-직-직-직--]
낡아빠진 인쇄기에서 찔꺽찔꺽 나오는 종이끝단을 눈으로 흘겨보고 의자에 눕듯이 축 늘어진다. 창고 문 쪽에서
자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에 눈길도 주지 않고 잠시 눈을 붙인다.
창구 입구에서 걸어 나온 것은 메이드복을 입은 성체실장석.
잠이 덜 깨어 게슴츠레한 눈빛을 하고 분주히 어디론가 달려간다. 제일 먼저 하는 것은 입구의 카펫의 정리.
‘데스...데스우...’
똑바로 정렬이 되자 작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구석으로 달려가 빗자루를 꺼낸다. 예민한 ‘상품’들을
고려하여 언제나 빗자루만 고집하는 것이 실장숍. 쓸데없는 손실은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락사락 소리를 내며 기도하듯 경건한 가짐으로 바닥을 쓰는 메이드 실장. 그냥 빗자루를 잡고 흔드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먼지를 구석으로 모으고 있다.
‘역시나 별로란 말이야...’
개인적으로 저런 매니악한 옷은 싫어한다. 허나 녹색의 본래 실장옷은 일이 있어서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벌거벗고 빗자루질 하는 꼴은 더욱 보기 흉했기에 헌옷가게에서 공짜로 받아온 것이 저 메이드복이었다.
처음 그걸 발견했을 땐 기가 차서 다른 것이 없나 최대한 뒤져봤지만 정말로 저것밖에 없어 어쩔 수 없이
가져온 것.
‘남자가 자신에게 준 최초의 선물’에 기뻐 날뛰며 그때부터 소중히 입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다른 평범한
옷을 줘도 이것만 고집하기에 손 놓고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남자.
애초 폐기처분 대상이던 저 녀석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신기할 정도. 인건비를 절약해주는
기특한 놈이기에 별다른 터치도 안 하고 먹는 것도 잘 챙겨주고 있다. 실장석으로선 드물게 요구도 별로 하지
않는다. 다른 사육실장들 같았으면 온갖 사치품들이 널려있는 실장숍에서 저렇게 제정신 유지하기 힘들었을 텐데.
혼자 망상을 이어나가고 있다 문득 자신이 하려던 일을 떠올리고, 출력된 시트지를 낚아채고 창고로 향한다.
❒
‘...츄아...츄아...’
어미의 가슴에 고개를 파고드는 세 마리의 자실장. 그녀들이 안겨 있는 것은 실장숍에서 좀처럼 취급하지 않는
성체실장석이다. 어린 개체에 비해서 인기도 없는 주제 유지비는 배로 드는 성체실장. 남자가 모녀에게 해준
유일한 배려라곤, 옆 칸의 칸막이를 제거해 2개를 합쳐준 것 뿐. 허나 그래봐야 여전히 비좁은 곳이다. 낮은
천장으로 인해 허리를 세우려면 앉거나 눕는 것만이 가능하다.
친실장은 햇볕이 들어오는 방향을 등지고 누워 자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준다. 시원해진 그늘 아래서 자실장들은
행복한 꿈을 꾸는 지 키득거리거나 입을 호물거린다.
‘데프프픗....’
목구멍 사이로 가르릉거리듯 내는 웃음소리. 비록 의도치 않았지만 자를 가진 것은 역시나 행운이었다.
사랑하는 자들의 얼굴을 매일 같이 보는 것이 실장생 최고의 행복 아니겠는가. 어쩌면 실장숍의 상품으로서
모든 불행의 시작은 그 새끼들 때문이었을지라도 본인만 행복하다면 그것도 행복일 것이다. 아니, 오히려
새끼를 낳았기에 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학대파에게 팔려 끔찍한 최후를 맞기보단, 좁더라도 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른다. 물론
악성재고는 자체적으로 푸드로 갈아버린 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지만...
본인에게 들려준다 하더라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그 미래는 친실장이 어떻게 뭘 하든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매출을 내야하는 숍에서 팔릴 가능성도 없고 오히려 유지비만 점점 높아지는 녀석을 품는다? 아무리 애완숍이라
하더라도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 얼마 남지 않은 유예기간을 만끽하는 것이 그녀에게 이득일 것이다.
어미의 젖을 찾아 꼬물거리는 삼녀의 입을 보고 전세레브실장인 어미는 팔 한쪽으로 몸을 지탱한 채로 서둘러
스커트를 가슴팍 까지 젖힌다. 약간 부산스런 소리에도 자실장들은 귀가 쫑긋거린다. 유두 끝에 찔끔 세어나온
젖을 꺼내자마자, 삼녀의 입은 마치 자석 같이 어미의 젖을 꼭 물고 쪽쪽 빤다.
‘데...데킁..데에....’
뺨을 붉히고 신음소리를 내는 친실장은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들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자신도 살포시 눈을
감는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까진 할 것이 없다. 잠을 자는 것 밖엔.
❒
‘츄아-’
최상단의 진열장에서 울리는 긴 하품소리. 실버1등급 딱지가 붙어 있는 칸의 주민은 최고급품. 골드등급에
비해서 떨어진다 하더라도 충분히 고가품이다. 절대 10만원을 넘지 않는 다른 실장석들과 달리 녀석의
가격표는 102만원에 달했다. 얼마 전 최고급품이 팔림으로 가게 내의 명실상부한 가장 비싸신 몸.
얼마나 비싼 몸이던 하는 몸짓은 일반 자실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직 관객이 도착하지 않아선가.
평소의 습관대로 녀석은 두 다리를 쭉 펴고 입을 크게 벌리며 기지개를 편다. 구린내가 나는 입맛을 짭짭
다신다. 문득 갈증을 느꼈는지 개수대로 간다.
‘테?테?테?...’
거꾸로 박혀있는 생수통의 취수구를 들락날락거리는 분홍빛 혓바닥. 작은 볼을 혓바닥으로 밀면 세어
나오는 물방울에 목을 축인 녀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는다. 입을 벌린 상태로 멍하니 정면을
바라본다. 점점 달아오르는 늦은 아침의 태양이 드리우는 긴 그림자를 바라본다.
변함없는 광경을 관망 중 변의가 올라오자 기다렸다는 듯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행여나 흘릴세라 총구에
힘을 꽉 주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화장실로 향한다. 하얀색 팬티를 내리고 길게 흘러내리는 스커트를 앞으로
잡아당겨 올린 다음, 주의 깊게 화장실 시트에 앉는다.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 엉덩이를 씰룩거릴 때마다
총구 사이로 픽픽 세어나오는 똥물. 자리가 잡혔다 판단을 하자마자 일시에 변을 쏟아낸다.
[브리리리리릿....]
질척한 죽과 같이 흘러내리는 변. 푸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간밤에 쌌던 똥 위로 새롭게 똥이 떨어지는 소리.
배설이 주는 쾌감과 오늘도 제대로 해냈다는 쾌감에 작은 최고급자실장은 몸을 부르르 떨며 간드러진
울음소릴 낸다.
‘텟츙~♪’
뿌득거리는 소리가 끊기자 최고급자실장은 옆에 손을 뻗어 티슈를 더듬는다. 녹색얼룩이 여기저기 베어 있는
두꺼운 티슈를 잘 접고선 아직 똥이 묻지 않은 부분을 잡아 자신의 총구를 닦는다.
세로로 갈라진 총구를 문질러 닦을 때마다 뽀얀 총구 사이에 숨어있는 핑크빛 속살이 잠깐씩 모습을 드러낸다.
실장석으로선 경이로운 일을 해낸 녀석은 티슈를 옆에 던지고 조심스레 팬티를 들어올리려는데....
‘테엣?!’
팬티 안쪽 번진 작은 녹색 얼룩에 깜짝 놀란다.
‘테에에? 텟! 텟!’
괴상한 울음소릴 내며 좌우를 황급히 바라본다. 샵 안에 돌아다니는 것은 구석에서 빗질 중인 메이드실장뿐.
남자가 없다는 것에 안도하며 자실장은 자신의 팬티를 들고 발을 동동 굴린다.
‘테에에...테에에...’
잘 되었는데 어째서...라는 표정을 짓는 녀석은 고민을 하는 듯 인상을 찡그리고 머리를 콩콩 내리친다.
아직 들키지 않았다, 수습할 수 있다 라고 판단한 자실장은 황급히 식수대로 달려가 살짝 볼을 누른다.
쫄쫄 흘러내리는 물방울을 팬티에 떨어뜨리자 녹색얼룩은 오히려 더욱 번진다. 허나 많이 옅어지는 색깔을
본 자실장의 입가엔 웃음이 서린다. 몇 방울 더 떨어뜨린 다음 빨래를 하듯 벅벅 문지른다. 얼핏 봐선
전혀 알 수 없을 만큼 얼룩이 사라지자 자실장은 귀여운 목소리로 한 번 울고 쿠션 위에 올라앉는다.
반쯤 누운 것 같은 자세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본다. 손님이 없는 한 할 것이 없다.
블록놀이도 공놀이도 인형놀이 질렸다.
한동안 눈을 끔뻑이던 녀석은 이내 눈을 감고 선잠에 든다.
❒
‘그리고 이건...여기’
주문상품을 몇 번씩 확인하고 영수증을 안에 넣은 후 밀봉한다. 헷갈리는 일이 없도록 포장이 완료되면
바로 고객 주소를 적는다. 완성된 소포들은 한쪽 구석에 밀어 넣는다.
‘그 다음은....로젠푸드 5봉지...프리미엄 맞나? 맞네. 그리고 엄지인형...하고 공’
매번 궁금한 것은, 대체 공을 왜 실장숍에서 사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솔직히 아무거나 집어던져줘도
잘만 갖고 노는 게 실장석인데....보아하니 외롭다고 떼쓰는 자실장의 수발을 들어주기 급급한 사육주일 것이다.
그림이 훤하다. 동생이 갖고 싶다며 우는 것을 애써 달래기 위해 최대한 맛있는 푸드를 제공해주지만 그래도
밤새도록 우는 것을 막지 못해 엄지인형이라도 사주는 것이겠지.
‘후우....얼마 뒤 소각장행 하나 늘겠네. 아니 1+n이려나?’
혼자 있을 줄 모르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자실장. 그 미래는 뻔하다. 잠시 후면 멋대로 임신을 하겠지.
자신의 귀여운 자들을 보면 분명 주인님도 기뻐할 것이라 낙관하며. 공 한 쪽도 숍에서 사는 이 성격으로
봐선 그냥 불법으로 내버리진 않을 것이다. 하나하나 신고해서 보건소로 보낼 것이다. 처분비용까지 고스란히
다 내고.
‘어차피 타 죽는 건 똑같은데 말이지....’
포장작업을 계속하며 그는 대체 실장석들이 어디서 임신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하는지 의문을 품는다. 강제로
출산시켜 나온 녀석들도, 강한 세뇌교육을 받은 놈도 결국 임신의 욕구를 억누르진 못 했다. 대학수업에도
그저 위석정보에 새겨져 있다고만 하는데 대체 무슨 원리인지....현대 수의학으로도 해석이 불가능한 존재.
이런 녀석들을 잘도 갖고 노는 인류는 또 뭔지...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한다.
교육이 잘 된 녀석도 결국엔 본성을 드러낸다. 천재적이라고 판정받은 녀석도 임신 앞에선 되먹지도 않은
낙관론을 펼치며 결국 일을 저지른다. 눈에 뭔가 쓰이면 제정신 나가는 건 사람도 심하지만...
포장작업을 마친 남자는 한쪽 구석이 가지런히 정렬을 시켜놓는다. 터벅거리는 발걸음을 디딜 때마다 피어오르는
먼지. 구석에서 포대를 하나 꺼낸다. 깔끔한 배경에 간단한 회사로고만이 박혀있는 실장푸드. 가격도 합리적이고
영양소도 고루 갖춘 상품이다. 중소기업 상품이지만 사후서비스가 확실하여 애용하는 업체.
밀봉을 찢으며 진열장으로 향한다.
[자라라락]
동봉되어있는 계량컵으로 한 컵이 자실장 기준 1인분. 남자는 일반 가판대에 있는 녀석들부터 먹여준다.
진열대마다 서랍처럼 달려있는 먹이통을 당겨 열어, 그 안에 푸드를 쏟아주고 도로 닫는다. 교도소를 가본
적은 없지만 아마 이것과 같은 구조라고 들은 적은 있다. 생각해보면 재소자나 다름없는 처지이긴 하다.
올 것이 불확실한 구원자를 기다리는 실장석 재소자.
‘그럼 죄목은 실장석으로 태어난 죄인가?’
재미도 없는 농담에 혼자 키득거린다.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미친 짓거리가 느는 모양이다.
덜컹하고 열고 닫히는 먹이통 소리와 먹이 쏟아지는 소리에 귀를 쫑긋거리는 녀석들. 이내 피어오르는 고소한
냄새에 코가 자동으로 벌름거린다. 눈을 비비며 부스스 일어나면 언제나처럼 밥이 담겨 있는 먹이통.
‘텟츄텟츄~’
아장아장 걸어가 한 알갱이를 집어 들고 막 입에 넣으려는 순간, 기억난 듯 급하게 인사를 한다. 남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자실장 또한 ‘자신에게 먹이를 준 남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이 아닌 그저 반복된
학습에 의해 먹이를 먹기 전 무조건 감사의 말을 읊는 것 뿐이다. 애초 남자를 바라보지도 않고 허공을
향해 지껄였다.
녀석이 진짜로 감사의 마음을 갖는지는 전혀 관심 없다. 아니 애초 기대해서도 안 된다. 사람도 안 하는
짓을 짐승에게 기대하다니 바보짓이다. 다만 인사를 하는 상품에 대한 만족도도 높고 더 오래 데리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실장석을 오래 데리고 있다는 것은 더 많은 파생상품을 구매한다는 뜻.
성체까지 기른다고 가정할 때 사육주는 녀석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용품과 푸드를 구입해야한다. 실장숍
입장에서 바라지 마다않는 케이스. 따라서 장기적 수익을 위해선 이렇게 시늉이라도 하도록 교육을 시켜야한다.
‘테츄테츄~쿤쿤...텟츙~♪’
옆 칸의 녀석은 물병을 향해 인사를 하고 열렬히 냄새를 맡는다. 언제나의 고소한 향기에 즐거움의 탄성을
지저귀더니 이내 갉아먹는다. 세모꼴 구강구조로 사방에 부스러기를 흘려대며 쿰척거린다. 콧김을 킁킁 내쉬며
전투적으로 푸드에 달려든다.
밥 먹는 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단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녀석들도 언젠간 반드시 현재 푸드에 질리게
되어있다. 실장석이란 놈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충족치가 한 없이 올라가는 녀석들이다. 들실장들이야
일상이 생존 그 자체라 여유가 없어 아무거나 잘 쳐먹지만, 안전이 보장되고 할 짓은 없는 사육실장들의
만족 기준치는 빠르게 올라간다.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녀석들의 간사한 측면이지만, 업계에선 실장석들이 이런 습성에 감사하고 또 감사한다.
더 비싼 푸드를 팔아치우게 해주는 고맙고 고마운 일이다. 먹는 푸드에 등급이 나뉜 것도 이와 같은 이유다.
고급 실장석의 만족 시작선이 고급푸드다. 고급 실장석을 구매하는 사람도 그것을 대충 짐직한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는 녀석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지출도 조금씩 올라간다. 초장부터 비싼 푸드만을 고집했다면 아마 사육주는
금방 사육을 포기할 것이다.
허나 텀을 두고 올라가는 만큼, 사육주는 늘어나는 지출을 크게 체감하지 못 하고 녀석이 해달라는 대로 해준다.
그때까지 데리고 있다는 것은 이미 꽤나 정을 붙였기에 들어줄 수 밖에 없는 부탁이다. 물론...이것도 어느 수준
이하까지만.
같은 법칙이 일반등급 실장석에게도 적용된다. 일반 실장석을 구매한 만큼 일반적 수준의 지출을 예상하지만
초장부터 고급 푸드를 고집하며, 사육주에게 높은 비용지출을 강요하면 그는 예상 밖의 높은 지출에 놀라
금방 사육을 포기할 것이다.
‘그래선 안돼지...안돼...’
각자의 등급에 맞는 식사를 제공하는 것은 그런 연유다. 딱히 녀석들의 가치를 우대해준다는...그런 까닭이
아니다. 고객들에게 장래 지출수준을 암시하는 일종의 지표다.
적어도 여기 있는 동안은 자신이 먹고 있는 푸드만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 여기는 근시안적 사고로 대부분
인지도 못 하지만. 푸드가 질린다고 여기는 녀석은 별로 없다. 그런 물러터진 생각이 들 정도로 오래 팔리지
않은 녀석들은 전부 갈려나갔으니깐.
‘데에...데스..데스데스...’
이 녀석들은 예외. 성체가 들어선 칸엔 5컵씩 퍼 담는다. 주로 팔리는 것은 자실장 이하지만, 오히려 나이가
있는 고객들 사이에선 점잖은 성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항상 재고를 갖춰놓는다. 아무리 천방지축이라도
숍에서 일생을 보낸다면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나름대로 최대한 자구책을 구상하기 마련.
숍에서 길러진 이 성체실장들은 선택을 받기 위해 스스로의 성품을 온순하고 얌전하게 바꾼다. 적어도 그런
시늉은 한다. 아니면 좁다란 칸막이 안에 내내 갇혀 있어 체념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에 넣으면 바스라지는 푸드. 벌어진 입 사이로 질질 흘려대며 힘없이 입을 움직인다. 태어나서 늘 똑같은
것만 먹어왔다. 질리는 것이 당연. 아무리 요구를 해봐도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싸움을 하던 애원을
하던 반응이 있어야 뭐라도 이루어지는데 애초 전혀 듣지 않는다. 아예 안 먹으며 항의를 하면 뒷문으로
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데스데스...데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성체실장 한 마리가 푸드를 한 줌 쥐고 남자를 향해 뭐라 중얼거린다. 링갈을 전혀
작동시키지 않은 남자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었다. 대충 분위기와 몸짓만으로도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지만 반응도 보여주지 않고 마저 푸드를 분배해준 다음 돌아선다.
창고 구석에 도로 일반푸드를 집어던진 남자가 선반에서 꺼낸 것은 알록달록한 로젠사 최고급 푸드. 몸값이
나간다는 녀석들에게 먹일 물건이다. 비싼 차에 비싼 기름을 넣게끔 유도하는 상술. 그런 속셈을 모르는
고급라인 자실장들은 그저 귀를 팔랑거리며 달달한 푸드의 맛에 푹 빠져든다.
‘텟츙~♪’
귀엽게 아첨포즈를 날린 후 밥을 맛있게 먹는다. 좋다 좋아. 붙임성이 있을수록 좋지.
‘그러고 보니 학대파놈들은 왜 이리 아첨을 싫어할까....’
딱히 뭔가 요구를 하지 않더라도 그냥 기분이 좋거나 같이 놀자는 의미에서 얼마든지 아첨포즈를 취한다.
하지만 학대파들은 거기에 유난히 반응한다. 일반인이나 애호가들은 실장석의 아첨에 열광하는데 말이다.
그것이 당연하다. 귀엽고 파고드는 맛에 기르는 건데 그것을 하지 말라니 어불성설이다. 업계에선 일부러
아첨을 잘 하고 붙임성 좋은 녀석을 전문적으로 번식시키기도 할 정도.
상품으로서 팔리기 위해 자기어필을 하는 것이 왜 잘못되었는가.
‘지들이 갑질당한게 생각나서 그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남자는 비어버린 푸드봉지를 구겨 반대쪽 구석을 쓸고 있는 메이드실장에게 집어던진다.
‘뎃!’
뒤통수에 전해지는 작은 충격에 신음을 흘리며 뒤돌아보는 녀석.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는 구겨진 봉지를
보곤 두 손으로 뻗는다.
‘덱!’
그 바람에 손에서 놓친 빗자루가 쓰러져 머리를 때린다. 자루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빗자루와 봉지를 번갈아 살피며 데에...데에...신음을 흘리는 녀석을 보곤 남자는 귀찮듯이 외친다.
‘봉지부터 버려’
‘데스우~’
그제야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들고있던 비닐봉지를 꼭 안아들고 쓰레기통이 있는 곳을 토테토테 걸어간다.
‘지 놈이 똑똑해봐야지...’
이것저것 할 줄 아는 것은 많다. 문제는 거기까지. 한 가지 일만을 집중할 때는 잘 해낸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돌발상황에도 뇌가 정지해버릴 정도로 단순하다. 두 가지 일이 충돌하면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물론 좀 기다리면 해결을 하는데 그 기간까지 좀 걸리는 게 문제.
교육할 때 심했었나?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것도 아니다. 그냥 지능의 한계인걸까...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 메이드실장은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와 땅에 떨어진 빗자루를 집어들고 바닥을 쓴다.
사락거리는 단조로운 소리와 진열장 안에서 아삭거리는 소리가 미묘하게 섞여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데스우....’
뭔가 침울한 소리에 눈길을 돌려보니 메이드실장이 진열장을 올려보고 있었다. 침이 줄줄 흐르는 입에 손을
끼워넣고 쪽쪽 빤다. 칸 안의 자실장들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자신의 밥그릇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밖에서 자신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침을 흘리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성체녀석의 모습에 간혹 비웃음을
던지는 개체를 제외하곤 하나같이 고개를 쳐박아 넣고, 숨쉬는 것조차 아쉽다는 듯 입에 쑤셔넣는다.
그제야 남자는 자신이 저 녀석에게 밥을 안 줬다는 것을 기억해낸다. 낡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요란하게
삐걱거린다. 갑작스런 소리에 메이드 실장은 흠칫 놀라며 얼른 빗자루질을 재개한다.
‘그만하고 일로와’
얼굴에 화색이 돌며 얼른 빗자루를 팽개치고 창고 안쪽으로 달려간다. 문에 도달하기도 전에 녀석의 밥그릇을
채워주고 톡톡 손을 털고 나가는 남자를 위해 살짝 옆으로 비켜주고 얼른 들어간다. 자신의 전용밥그릇엔
언제나처럼 밥이 수북이 담겨있다. 맛은 그럭저럭이지만 배가 가득 차는 느낌은 언제나 환영. 단조로운 일생
속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끼는 때다. 입에 뭔가를 쳐넣을 때.
‘데스웅~♪ 뎃승~’
코맹맹이소리로 잔뜩 애교를 넣어가며 두 손을 번갈아 놀리며 밥을 쓸어 담는다. 조각난 부스러기와 흘린
푸드 알갱이들이 주변에 흩어지며 녀석의 식사는 계속 된다.
❒
‘푸우우....결국 시행하네’
카운터에 앉아 요란하게 딸각거리는 던 남자는 한숨을 푹 내쉰다. 화면에 띄워져 있는 것은 전국실장석협회.
국내에서 가장 큰 실장석업체싸이트로 주 회원층은 실장숍 업주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동안 떠들썩했던
‘원사육실장 수거법 개정안’이 결국 통과되었고 이제 본격적 시행에 들어섰다는 안내다. 속칭 ‘실통법’.
협회에서 순번을 맞아 국회 앞에서 시위도 하고 했지만 예전처럼 끗발이 따라주지 않는 탓에 흐지부지
되었다. 시위인원도 별로 오지 않았고, 민원도 그냥저냥 무시할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협회 내에서도
거의 손을 놓은 상태다. 이미 전성기가 한참 지난 실장숍 업계는 의기소침해져 ‘될 대로 돼라...’라는 심정.
최근 들어 사회문제로 심화되고 있는 원사육실장 문제로 한층 더 두들겨 맞고 있는 중이다. 실장석의 가격을
의도적으로 하락시켜 구매를 유인하고 그에 파생되는 소비를 유인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 이상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저렴한 초기 가격에 덜컥 구매를 결정했다가 점점 금전적, 심적으로 부담할 수 없어 내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구제작업을 철저히 해도 근절되지 않는 들실장 문제의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런 상태에서 벌금도 올렸지....’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불법유기가 적발당할 경우 수백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처리비용분담을
위해 양육을 포기할 경우 사육주가 안락사 비용 및 기타 행정비용을 부담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불법유기는 오히려 늘었다.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는 들실장 개체수 증가에 결국 정부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푸우우...’
딸깍하는 마우스 클릭음과 함께 천천히 마우스 휠을 내린다. 이번부터 실시되는 원사육실장 관련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렇다 :
‘동, 구, 군단위마다 거점 실장숍을 선정, 해당 지점에서 일률적으로 원사육실장을 수거한다. 익명성의 보장을
위하여 원사육실장 수거는 대면할 필요 없는 수거통을 활용하는 방안을 채택한다. 매주 토요일 업주는 수거된
개체들을 소각장으로 전달한다‘
쉽게 말하자면, ‘이러나 저러나 몰래 버리는 거 못 잡아내니, 그냥 맘 놓고 한 곳에만 버리쇼. 관리는 업체가 하고‘
라는 식이다. 그리고 업체는 덤탱이를 쓰고.
‘지원금 얼마야 지원금....’
지원금 지급은 이미 개정안 나오기 전부터 떠들썩했지만 액수가 중요하다. 사회적 비용을 죄다 업주가 부담해야
하는 건 억울하다. 협회 쪽에선 ‘추후 사용액보고, 보상방식’을 밀어붙였지만....
‘추후 집계된 개체수x6천원....’
뭐 추후라는 것만 비슷하고 나머진 하나도 맘에 들지 않는다. 6천원이다 6천원....소각장으로 보내는 당일을
제외하면 하루에 천원으로 한 마리를 떠맡아야한다.
‘아 잠깐만. 보낼 때 기름값도 내가 맡아야하나?’
단단히 물린 듯 싶다. 한숨을 푹 쉬고 남자는 눈을 감는다. 눈꺼풀 아래의 뻑뻑한 눈알을 이리저리 굴린다.
이 구에서 실장숍은 자신밖에 없다. 이 동네 거점 실장숍이 어디인지는 볼 것도 없지. 또 다시 한숨을 내쉬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점 실장숍 리스트를 쭉 따라 내려간다. 약 올리듯 적혀있는 ‘해피 실장숍’을
확인하고 남자는 컴퓨터에서 멀어진다.
진열대 앞을 터벅거리며 돌아다닌다. 고개를 숙이고 같은 자리를 맴도는 남자를 바라보는 실장석들의 눈빛은
일시,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진열장 창에 달라붙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남자를 따라하려는
양 자신도 고개를 푹 숙이고 뱅글뱅글 도는 녀석들. 커다란 머리와 엉터리 신체비율로 금방 자빠지는 것으로
끝난다. 아픈 머리를 어루만지며 불만을 중얼거린 녀석들은 주저앉은 자세로 고개를 돌려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 입에 손을 넣어 빨며 텟츄?텟츄? 고개를 갸웃거린다.
중앙에 놓여있는 의자에 몸을 던져 눕자, 뒤편에서 들리는 부스럭거리는 소리.
남자의 시선을 받은 메이드 실장. 똑같이 한 번 힐끔 쳐다보곤 빗자루 있는 쪽으로 걸어간다. 한걸음 옮길
때마다 입 주변에 묻은 실장푸드 부스러기가 부스스 떨어진다. 녹색반죽으로 아직도 엉망인 이빨을 번들거린다.
‘빗자루 그만 쓸고 걸레질이나 해’
‘데스~’
막 집어든 빗자루를 그대로 놔버리고 아장아장 걸어간다. 당연히 빗자루는 천천히 기울더니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닥을 때린다.
[탁!]
‘뎃!’
등 뒤에서 들려온 요란한 소리에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어진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지만 엉덩이는
어떻게 할 수 없었는지 공중에 치켜든 상태 그대로. 치마가 흘러내려 드러난 팬티는 서서히 녹색으로 물들더니
이내 빵빵하게 부푼다.
멍청한 표정을 한 메이드실장은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방금 전 요란한 소리의 진원을 찾는 듯 고개를 휘휘
젓는다. 똥으로 가득 찬 팬티에 엉덩이 부분이 무거워져 슬슬 꽁무니를 내려간다. 무게중심이 평소보다 다른
느낌에 메이드 실장은 의문을 품는다.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최대한 고개를 옆으로 빼 자신의 엉덩이를 보려고
하지만 당연히 닿을 리가 없다.
‘데스우? 데스?’
꼬리를 무는 개처럼 엉금엉금 기어 한 바퀴를 빙 돌은 메이드 실장은 제풀에 지쳐 그 상태로 풀썩 주저앉는다.
[브류류륫...]
팬티에 똥이 가득 찬 상태에서 앉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 지 전혀 무지한 그녀는 의복의 틈 사이로 비집어
나오는 녹색 점액질 덩어리의 모습을 신경질적으로 바라본다. 그것도 잠시, 자신의 똥이란 사실을 깨닫자
마다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쩌억하는 소리와 함께 녹색 똥줄기가 길게 늘어졌다 끊어지며 메이드실장의 허벅지에 달라붙는다. 점액질의
녹색똥은 천천히 다리 아래로 흘러내렸고, 이미 그녀가 앉았다 일어선 자리는 똥으로 엉망이다.
‘데에..데에....’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신음을 흘리던 녀석은 발을 타고 흘러내리는 똥물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는 심산인지
다리를 번걸아 내딛으며 기괴한 춤을 춘다. 녀석의 바보짓을 흘깃 바라본 남자는 거기까지 하고 제대로 지시를
한다.
‘저기 수돗가로 가서 옷하고 몸 씻고, 그 다음 걸레로 저 자리 닦아’
얼굴을 환하게 밝힌 녀석은 데스우~하며 힘차게 대답을 한다. 똥으로 부풀어오른 팬티는 한 발을 디딜 때 마다
그 진동으로 좌우로 출렁거렸다. 기저귀를 찬 아기가 장난감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은 우스꽝스러운 광경.
창고 안쪽에 있는 수돗가로 걸어가는 녀석의 뒤로 길게 녹색 똥줄기가 따른다.
‘흐유...그나마 똑똑하다는 놈이 저 정도라니’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종의 한계는 넘을 수 없는 모양이다. 간단한 청소나 짐나르기는 시킬 수 있지만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한심한 바보짓을 이따금씩 저지른다. 문제가 2가지 이상 닥치면 그대로 멘탈이 붕괴되어
어버버거린다. 그래도 들어가는 밥값이상은 하는 녀석이니 데리고 있는 것.
창문 밖을 바라보면 쓸쓸한 거리의 모습만이 보인다. 그래도 나름 중심가라곤 하지만 너무 사람이 없다.
그래도 몇 년 전엔 이정도 까진 아니었는데.
‘장부 좀 정리해야지’
막상 컴퓨터 앞에 의자에 앉으니 귀찮은 마음이 슬그머니 파고들어, 어느새 인터넷을 켜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만이라 중얼거린 것이 벌써 20분을 훌쩍 넘겼다. 한창 웹툰에 집중하던 중 메이드녀석이
몸을 다 씻었는지 찰박거리는 소리가 난다.
정말 한심하게도, 메이드 실장은 옷을 입은 채로 씻은 모양이다.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그대로 입은
채로 자박거리며 걸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래쪽도 제대로 씻겨지지 않은 상태 그대로. 팬티를
벗지도 않은 채 물만 끼얹어 물똥으로 변해버린 똥물을 칠칠맞게 흘려대고 있었다. 연한 녹색 발자국을
길게 남기는 녀석의 얼굴은 ‘제대로 해냈다’라는 자부심으로 해맑다.
물기를 먹어 길게 늘어진 팬티를 끌고 있는 꼴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참지 못 하고 일어선다.
‘데에? 데에엣?’
아무 말 없이 수돗가로 다시 끌고가 옷을 강제로 벗긴후 거칠게 몸을 씻긴다. 거친 손길을 발버둥을 치면서도
뭔가 필사적으로 총구와 가슴팍을 가리려 한다. 실장석들의 쓸데없는 정조관념에 익숙하여 별로 감흥은 없다.
잠시 후 메이드 실장은 알몸이 되어 물기를 뚝뚝 흘린다. 두 팔로 자신의 양 어깨를 붙잡고 파들파들 떨고
있는 녀석의 입술은 시퍼렇게 얼어있다. 무심결에 메이드복에 뻗는 손을 남자는 내려친다.
‘데갹!’
욱신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왜 그러냐는 듯 남자를 올려본다.
‘옷 깨끗이 빤 다음 말려놔. 알몸상태로 걸레질해’
수치감에 몸을 떨며 메이드 실장은 잠시 입술을 앙다물지만 이내 귀를 축 늘어뜨리고 메이드복을 주물러 빨기
시작한다. 이제야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을 확인한 남자는 자신도 일에 집중한다.
❒
귀와 얼굴을 새빨갛게 상기시킨 채 천천히 걸레질을 하는 녀석. 똥물을 가득 머금은 걸레로 밀어봤자 녹색얼룩만
늘어나자 총총걸음으로 수돗가로 걸어가 걸레를 빤다.
카운터에서 들리는 종이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단조로운 타자소리가 안정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장부를
대조하고 매출을 기록하는 작업이 얼추 끝나간다. 뻑뻑한 눈을 질끈 감고 눈꺼풀 아래서 이리저리 굴린다.
‘후아아암~’
시계를 확인해보니 벌써 15시에 가까워졌다.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깜짝 놀란다. 너무 집중해버려 시간분배를
잘못 했다. 점심도 못 먹었는데 상품 배송 시간도 늦을 판이다. 서둘러 작업 중인 문서를 저장한다.
‘데이....데이....데에....’
연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구석을 닦고 있던 알몸의 메이드 실장은 어디론가 달려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힐끔
바라보고 도로 자신이 닦고 있던 구역에 집중한다.
‘텟츄? 테츄테치이~’
‘텟츙~!’
두 칸을 이어놓은 진열장 안에 들어있는 한 마리의 성체실장과 세 마리의 자실장. 출산을 해버려 ‘전세레브실장’
으로 추락한 녀석. 왕년의 스타는 좁다란 수조 안에서 비스듬히 앉아 자신의 자들과 놀아주고 있었다. 덮고
자는 수건을 제외하곤 그 어떤 장난감도 없는 수조 안에서 자실장들은 저마다 이상한 놀이를 생각해내 나름대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한 녀석이 마마의 허벅지에 고개를 쳐박으면 나머지 두 녀석들은 신나게 춤을 춘다. 고개를 쳐박은 녀석이 연신
뭐라 중얼거리다 이내 짧고 강한 기합음과 함께 뒤를 획 돌아보면 언제 춤을 췄냐는 듯 뚝 멈춘다. 웃음을
간신히 참고 있는 자매들의 입꼬리는 씰룩거린다. 봐준다는 듯이 한번 장난스레 쏘아보곤 다시 마마의 허벅지에
고개를 쳐박고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두 마리는 다시 춤을 재개한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응용한 장난.
즐겁게 놀고 있는 자실장들을 내려보는 친실장, 전세레브실장의 눈길에는 자들에 대한 애정이 줄기줄기 피어나고
있다. 사랑이 묻어나오는 눈길 뒤에는 어딘가 모를 불안과 슬픔이 섞여 있었지만, 자신들끼리의 놀이에 정신팔려
어미의 눈길조차 눈치채지 못 하는 자실장들.
술래를 맞고 있던 차녀 자실장이 또 다시 기합을 지르며 뒤를 돌아본다. 이번엔 한 마리가 무리하게 멈추려다
그만 뒤로 휘청거린다. 팔을 휘휘 저으며 일시 공포에 질린 차녀. 플라스틱 바닥에 미끌어져 뒤로 넘어지려는
순간 그녀의 뒷통수와 등을 부드럽게 감싸는 뭔가가 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과 일시 긴장이 감돌아 눈을 커다랗게 뜬 장녀와 삼녀 자실장.
‘데프프픗...’
조심하라는 염려의 말과 함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친실장. 위험하거나 슬프거나 무섭거나 기쁠 때나 언제나
뒤를 받쳐주는 그 든든하고 따듯한 모습. 그 언제나의 모습에 자실장들은 잔뜩 애교를 부려오며 안긴다.
마마의 커다란 손에 안긴 채로 아첨포즈를 날리는 차녀.
‘텟츙~♪’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운 친실장은 그대로 차녀를 들어 올려 몸 구석구석을 핥아준다. 단아했던 옷 여기저기에
질척한 침이 묻고 실장석 특유의 구린내가 구석구석 배어들고 투실투실한 살집이 어미의 혓바닥에 출렁거린다.
그 모습이 부러워진 나머지 자매들은 자신도 해달라는 듯 두 손을 뻗고 어미의 허벅지를 찰싹찰싹 쳐댄다.
‘데프프픗...’
잠시간 걱정은 접어두고 사랑스러운 자들과의 시간을 지내는 사이, 남자는 컵라면을 뜯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라면사리의 빈 공간에 밀어닥친 물에 공기방울들이 올라오며 뽀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구수하면서도 매콤한
라면냄새가 순식간에 샵 안을 가득 채운다.
‘츄우?’
중간칸에 있는 자실장. 홀로 진열장 안에서 수건을 이리접고 저리접던 녀석은 눈을 빛내며 창에 얼굴을
밀착시킨다. 각도가 잘 맞지 않아 잘 보이지 않는 듯 최대한 고개를 쭉 뻗어보지만 볼수 있는 시야는
여전히 좁다. 입김이 허옇게 서리는 것을 옷으로 북북 문지르고 다시 눈을 커다랗게 뜬다.
꼬불꼬불한 뭔가를 먹고 있는 남자. 손에는 작대기 같은 것을 잡고 빨간물에서 건져내어 먹고 있다.
먹는 방식이나 먹고 있는 것이나 처음 접하는 신선함에 놀라는 자실장. 모서리에 얼굴을 바싹 대고
중얼거려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핑크빛 혓바닥을 늘어뜨리고 입맛을 짭짭 다신다.
공기 중에 퍼져나가는 고소한 냄새를 먹을 요량인 듯 입을 크게 벌렸다 닫아보지만 맛은 느껴지지 않는 것에
어깨를 축 늘어뜨린다. 다시 얼굴을 벽에 붙여 살펴보면 남자는 어느새 식사를 마치고 국물을 입에 털어넣는다.
‘테츄! 테츄우!’
자신에게도 달라고 외치는 자실장은 팔짝팔짝 뛰어보지만 진열장 속 작은 소란이 남자에게 전해지는 일은 없다.
투명한 아크릴 판을 두들기는 자실장을 전혀 눈치 못 채고 부지런히 물품을 차에 싣는 남자의 모습을 야속하게
지켜볼 뿐이다. 제풀에 지쳐버린 자실장은 그만 속이 상한다. 저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는데.
‘테에엥...테에에엥....’
색색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오열하자 그제야 남자는 힐끔 고개를 돌아보지만 그뿐이었다. 문을 잠그고
잠시 외출중이라는 팻말을 걸고 차에 올라탄다.
❒
남자가 떠난 빌딩 화단 밑에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것이 있었다. 둥근 머리통에 쫑긋거리는 두 귀. 실장석.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존재한다는 속설은 이런 소도시에도 적용이 된다. 산에서 내려온 무리의 후손인 친실장은
주의 깊게 주변을 살피고 또 살핀다.
‘테치테치이-!’
‘테챠아-!’
순간 소란스러운 뒤쪽의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돌아선다. 자실장 두 마리이 흥분을 못 이기고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황급히 다가가 아이들에게 소리를 내선 안 된다고 말하자, 의기소침해진 아이들의 두 귀가 내려감과
함께 소리는 잦아든다. 핀잔을 줬으면서 행여나 아이들이 너무 슬퍼할까봐 어미는 자실장들의 머리를 번갈아
쓰다듬어준다. 따듯한 손길에 금세 기분이 좋아졌는지 달콤한 목소리로 애교를 부려온다.
‘텟츙~♪’
어미에게 안겨오는 자실장들의 몰골은 하나같이 험했다. 옷의 끝단은 너덜너덜했고 턱받이는 여기저기 찢겨져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김치찌꺼기와 간장이 눌어붙은 옷에는 여기저기 짙은 얼룩에는 생선비린내가 심하게
배어있어 평소의 식사를 짐작케 한다. 거친 노동과 오랜 방황으로 실장화는 우둘툴 했고 손끝 또한 그 못지않게
갈라져 있었다.
‘텟츄유~♪’
두 손을 뻗은 아기의 손바닥을 바라보면 끝이 다 갈라져 미세하게 핏물이 또 세어 나오고 있었다. 원인모를
피부병과 손이 아물기도 전에 고된 노동 혹은 음식물을 섭취하는 바람에 그 사이로 병균이 스며들어 잔뜩
곪아터졌다. 언제나 손끝이 갈라져 있는 아기들은 음식물 쓰레기를 먹을 때마다 국물이 상처에 스며들는
아픔에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도 불평할 생각도 않고 입 안에 음식을 던져 넣기 바빴다. 자신의 자로 태어나
지금껏 좋은 일 하나도 없이 생존에 급급했다.
‘...찌이....’
품 속에서 들려오는 작은 신음소리. 구린내 나는 혓바닥으로 서로를 핥기 바쁘던 일가는 일시에 조용해진다.
조심스럽게 친실장은 자신의 한 팔로 감싸고 있던 것을 내보인다. 품 안에 안겨있는 것은 엄지실장. 안 그래도
작은 엄지이건만 이 녀석은 더욱 작았다. 구더기만한 크기.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어미에게 태어났으니 당연한 것이다. 뱃속에 있던 다른 아이들은 모두 죽어서
나왔고 녀석만이 나왔다. 맛없는 식사와 힘겨운 생활을 엿들은 태중의 자들은 밖으로 나와 현실을 마주하는
것보단 죽음을 선택했다.
자매들의 포기에도 굴하지 않고 생명의 의지를 안고 태어난 작은 동생을 경이로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자실장들.
어디에도 질투나 멸시의 시선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애정만이 가득한 눈빛.
‘레치이....’
지능도 떨어지는 모양인지 작은 엄지는 제대로 된 말을 하지도 못 하고 약한 신음소리를 흘리며 몸을 비튼다.
언니와 어미의 소란에 잠이 방해받은 것에 짜증을 내는 지 얼굴을 찡그린다. 귀여운 동생의 모습에 자실장 중
하나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보드랍고 매끈한 머릿결에 감탄하며 조심스럽게 쓸어내린다. 종기가
우둘툴하게 난 자실장의 손은 엄지의 투명한 피부에 고름액을 길게 남긴다.
자신의 쓰다듬은 곳을 따라 길게 고름액이 묻자 자실장은 황급히 손을 뗀다. 자책감인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안절부절해 한다. 때마침 잠을 깬 엄지. 영롱한 적록색 눈이 눈꺼풀을 걷어내고 빛을 발한다. 주변의
사물을 반사시키는 눈동자엔 금방 물기로 촉촉해지더니 이내 목구멍에서 터져나오는 울음.
‘찌에에에엥.....레에에에엥....레에에엥....’
이불을 걷어내는 것처럼 두 팔과 발을 사방으로 꼬물거린다. 조그마한 입이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할 때마다
이에 맞춰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울음소리. 작은 몸뚱이론 작은 소리밖에 낼 수밖에 없어 여치 우는 소리보다
작은 엄지의 울음소리에 친실장은 울음보 아기를 품에 꼭 끌어안고 나지막이 노래를 불러준다.
‘뎃데로게에~뎃데로게에~’
뱃속에서부터 들어왔던 노래. 이 세상의 지혜를 알려주고 힘든 현실을 말하지만 동시에 희망을 노래하는 노래.
엄지가 믿기로 결심하고 따라온 마마의 말. 진정되는 목소리와 가슴과 가슴을 통해 울리는 심장박동소리에
안정이 되는 지 울음소리는 잦아든다.
‘‘텟테로게에에~텟테로게에에~’‘
엄지의 두 언니들도 노래에 동참하여 따라 부른다. 어리지만 가족의 자랑인 동생을 위해 한 마음이 되어 부르는
합창. 비록 가사의 내용은 모르지만 자신을 향한 사랑만큼은 전해지는 것일까 엄지의 입에는 미소가 걸리더니
점차 차분히 숨을 쉬며 잠에 든다.
‘데스우..데프프픗...’
모정이 피어오르는 눈빛으로 자신의 품에 꼭 안겨있는 엄지를 확인하고 비장하면서도 기대감 어린 목소리로
출발을 선언한다.
빌딩구석에서 조심스럽게 기어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실장숍의 유리문 앞으로 향하는 세 마리의 실장석은
건너편 운전자에게도 발견되었다. 운전자는 피식 콧김을 뿜고 가던 길을 간다. 실장숍이라면 어디나 겪는
흔해빠진 일이다.
아름다운 실장석들이 칸칸이 쌓인 ‘집’에 들어가 있고, 깨끗한 물이 걸려있고 뭔가를 먹고 있는 모습. 거기에
실장숍 특유의 화사한 인테리어와 겹겹이 늘어선 애호용품들. 이곳이 천국 아니라면 어디겠는가. 한번이라도
실장숍을 목격한 실장석은 그 곳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다.
그곳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누구를 위한 곳인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실장석들이 꿈에 바라는 것들이
늘어선 실장숍의 모습에 정신을 빼앗기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겠다. 꿈의 이상향에서 살기 위한 들실장
일가의 노력은 오늘도 계속 된다. 당연히 녀석은 첫 번째가 아니다.
기세좋게 정문으로 도달한 친자를 가로막은 것은 거대한 문. 언제나 인간은 이곳을 통해 드나들었다. 이렇게
밀면....
‘데즈우우...데스데스우...’
열리지 않는다. 자세가 잘못 된 것 일까하고 생각이 들어 어깨로 밀어보거나 두 손으로 밀어보거나를 해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어깨너머로 옆을 흘깃 살펴보면 자실장들은 실장숍 안의 풍경에 감탄을 하기 바빴다.
‘테햐아아아...!’
‘테치잇! 테치이잇!’
형형색색의 공과 크기별로 늘어선 콘페이토, 뭔진 모르지만 활짝 웃고 있는 캐릭터들이 박힌 상자들, 예쁜
장식을 들인 실장옷들을 가리키며 잔뜩 흥분하여 서로 재잘거린다. 저것은 뭘까 이것을 입으면 예쁘지
않겠나 등을 떠들어대며 저것들을 손에 넣은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폴짝폴짝 뛴다. 토실토실한 손바닥으로
유리창을 통통 두들기며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는 녀석들.
자들의 기대를 배신하기 두려운 친실장은 한 발짝 떨어져 유리문을 바라본다. 거대한 손잡이가 달려있다.
저것을 잡고 밀면 열리는 것인가 하고 생각이 미치자, 즉각 시도해보기로 한다.
있는 힘을 다해 키발을 딛는 어미 뒤로 다가와 춤을 추며 응원하는 자실장들. 손끝조차 닿지 않는 감질감만
맛볼 뿐 전혀 잡을 수 없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잠시 휴식을 취하는 어미를 본 자실장들은 약간 실망했지만
여전히 사랑스런 목소리로 애써 힘 낸 어미를 위로한다.
‘테츄테츄우~’
저 문을 열면 기다리고 있을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다보면 활력이 돌아온다. 친실장은 품에서 조용히 숨쉬고
있는 엄지의 얼굴을 한번 핥아준다. 머리카락이 혓바닥에 쓸려 올라갔다 도로 착 달라붙는다.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결정한 친실장은 엄지를 장녀 자실장에게 건내준다.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듯 힘찬 목소리로 텟츄~♪
지저귀곤 조심스럽게 자신의 품에 안는다.
자실장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있는 힘껏 손잡이를 향해 손을 뻗으며 점프를 해보지만,
‘데?!’
정면의 유리문에 못 생긴 얼굴을 들이받는 것을 끝난다. 멍청한 신음소리를 흘리는 친실장은 코 밑으로
흐르는 따듯한 액체에 눈을 끔뻑인다. 유리문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한 눈에도 한심해보였다. 코피를
흘리며 멍청한 표정을 짓고 엎어져 있는 들실장. 전혀 세레브하지 않는 모습이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환상을 깬지는 오래다. 눈꼬리가 축 쳐졌으면서도 마마의 팔을 어루만지며 다시 해보자
보채는 자실장들.
두 자실장과 그 품에 안겨있는 엄지실장. 자신의 보물. 자신은 별로 세레브하지 못 하다. 더 이상 귀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귀여운 시절이 있었지만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다르다.
‘테츄테츄우~테치이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 어서 다시 해봐라 등을 요구하는 귀여운 아기들. 역시나 세상에서 가장 귀엽다.
많은 동족들을 봐왔지만 자신의 자만큼 귀여운 자는 보지 못 했다. 이런 귀여운 아이들이 평생 들을 헤매며
하루하루 먹고 살기 급급한 삶을 살아가야한다는 것은 엄청난 낭비다.
어딘가 있을 ‘착한 인간들’에게 잔뜩 사랑받고 예쁜 옷을 입고 맛있는 밥을 먹는 삶을 살게 해줘야한다.
밤에는 추위에 떨고, 벌레들에게 시달리고, 수없는 천적들이 도사리는 거리를 불안하게 뛰어다니며 오늘 구하지
못 하면 꼼짝없이 굶을 수밖에 없는 먹이수집을 반복하는 삶은 싫다. 자신 또한 쭉 그렇게 살아왔고, 친실장의
어미도 그렇게 살아왔다. 제아무리 재수가 좋은 날이라도 난데없이 튀어나온 불행에 치여 순식간에 비명횡사하는
거친 들의 삶. 그것은 자신의 대에서 끝내야 한다. 이 아이들만큼은 세레브실장으로 살아야 한다. 이렇게 귀엽게
태어난 이상 자격은 주어졌다. 허나 왜 손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인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자신들의 꿈.
‘데스! 데슷! 데슷!’
감정에 복받쳐 올라 있는 힘껏 유리문을 내리치고 또 내리친다. 두 손은 퉁퉁 부어올라 문을 내리칠 때마다
주먹에 울리는 아픔에도 정신 나간 듯 연신 두들긴다.
‘테치이...테치이...테치이...’
자신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자실장의 목소리. 귀여운 자들을 볼 낯이 없다. 이 문이 열리지 않으면 자신은
최악의 마마가 된다. 자신의 약속을 믿고 여기까지 버텨왔다. 힘든 일도 슬픈 일도 마마의 말을 듣고 따른다면
행복한 삶이 있다고 약속했다.
‘테치이...테치....’
아까보다 빠르게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느낌. 장녀 뿐 아니라 차녀도 가세했는지 두 개의 손이 치맛자락을
당기는 느낌. 유리문에 머리를 쾅 들이받는다. 욱신하는 아픔이 밀려오지만 가슴 속 상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유리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콧물과 침으로 엉망이었다. 두 눈에는 절망의 눈물이 줄기를 이루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흐느낌에 떨리는 어깨를 간신히 부여잡으며 천천히 뒤를 돌아본다. 질질 흘러내리는 콧물과 눈물을
한꺼번에 닦아내리면 길게 늘어져 바닥에 떨어진다.
아직도 자신의 옷자락을 붙잡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자실장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면....인간이 있었다.
❒
‘하아...또야...’
한숨을 내쉬는 남자. 얼마나 쳐댔는지 유리문은 둥근 얼룩으로 엉망이다. 딱 녀석의 키가 닿는 부분까지만
더러워져 청소는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친의 옷자락을 잡아당기고 있는 두 마리의 자실장의 눈가에는
평소 피해왔던 인간을 이렇게 지근거리에서 본다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섞여있다. 품안에 잠들어 있는
여동생을 들키지 않게 감추며, 경계심 가득한 시선으로 조금씩 어미의 비호 아래로 들어가려 한다.
‘데에...데스! 데스데스’
자들의 손길에 남자의 존재를 깨닫게 된 어미는 숨을 헐떡이며 뭐라 지껄인다. 별 반응을 하지 않고 남자는
잠긴 문을 연다. 잘그랑 거리는 열쇠를 꺼내 구멍에 넣고 돌리자 달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진동한다. 그
모습을 행여 놓칠세라 뚫어져라본다. 주머니에 열쇠를 집어넣는 사이 친실장은 코를 벌름거리며 다시 문을
힘껏 밀어본다.
약간 밀리는 문. 확실히 방금 전 행위로 인해 문이 열린 것이라. 그 기세로 한껏 힘을 주려던 찰나 휘청하며
앞으로 넘어진다. ‘뎃!’하는 한심한 비명과 함께 앞으로 풀썩 자빠지는 친실장. 남자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닫히지 않도록 붙잡는다.
‘테치테치이’
코를 찧어 얼얼한 부위를 어루만지며 인상을 쓰는 어미에게 총총 달려와 투실투실한 볼살을 어루만지는 일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남자의 음성.
‘들어와라’
‘데에?’
남자에게 쏠리는 6개의 눈동자. 적록색으로 반짝이는 구슬엔 의문이 밀려나고 대신 기쁨이 자리 잡는다.
일어서는 어미를 뒤로 한 자실장들은 신이 나 테츄테츄 외치며 열린 문 틈으로 들어간다.
‘테에에에....’
‘데스...’
분명 더운 날임에도 시원한 내부의 공기에 놀란다. 코를 벌름거리며 시원한 공기를 폐안에 가득 집어넣는다.
그 다음은 주렁주렁 늘어진 애호용품. 통조림, 최고급 실장푸드, 젤리, 과자, 콘페이토....콘페이토를 제외하곤
어떤 물건인지도 짐작도 하지 못 할 엄청난 것들이 늘어선 광경에 두뇌는 처리용량을 넘어선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가라앉히기 위해 휘휘 고개를 떨쳐버리곤 옆으로 시선을 옮긴다. 예쁜 옷들이 늘어선 진열대.
‘테츄우....’
프릴이나 리본, 레이스 등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아름다운 색깔의 옷들. 칙칙한 빌딩벽과 말라비틀어진 낙엽
사이에서 연명해 오던 자실장들에겐 문화충격으로 다가온다. 옷이 녹색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사실을 생애 처음
확인한다. 언제나 마마에게서 듣던 노래 속 가사가 현실로 펼쳐진 것에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자자 이쪽으로’
‘데스데스데스’
‘테츄우!’
안쪽으로 손짓을 하는 남자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꿈만 같은 현실을 눈앞에 두고, 자신들의 희망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에 기뻐하며 한시라도 빨리 그것들을 누리고 싶은 생각만 가득할 뿐. 인간의 말 따위는 상관없다.
평소 인간을 극도로 경계하며 피해오던 일가답지 않게 인간의 지시를 무시하고 저 마다 가장 맘에 드는 상품에
손을 뻗으며 어떻게든 그것을 끌어내릴까 고민하고 있었다.
다행히 자실장들의 키에는 닿지 않은 곳에 진열되어 있어서 문제는 없지만, 친실장은 손에 닿는 푸드봉지
끝단을 손에 쥐고 잡아당기고 있었다. 이대론 찢어질 것 같아 남자는 물리적으로 개입하기로 했다.
‘이쪽으로’
‘데에?’
친실장의 양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끼우고 번쩍 들어올린다. 갑자기 들어 올려진 것에 당황하여 손발을 휘젓지만
이내 자신이 들어올려진 것은 자실장 이후 정말 오랜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 남자는 어쩌면 자신의 주인님
아닐까? 문을 열어주어 이곳에 들이는 것을 봐선 역시나 자신들을 기다려왔던 것이다. 마마가 말한 남편님이
바로 이 남자인걸까.
‘데에...데스우...’
대롱거리는 다리를 베베 꼬며 뺨을 붉히는 친실장. 어느새 코맹맹이 소리를 내며 애교를 부려오는 녀석의 얼굴은
연령에 맞지 않은 천진난만함과 부끄러움이 서려있었다. 자신을 들고 있는 주인님에게 제대로 안기고 싶어
이리저리 팔을 흔들어봤지만 남자는 성큼성큼 걸음을 서두를 뿐 전혀 반응해주지 않는다.
‘데스! 데스데스!’
침대시중을 든다고 착각한 녀석을 푸른색 플라스틱 통 안에 내려놓는다. 호화로운 침대에 눕혀져 사랑하는
남편님과의 사랑을 나누는 꿈에서 깨어난 친실장은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콩콩 내리친다. 쓰레기통으로도
자주 쓰는 푸른색 플라스틱 통의 벽은 높아 전혀 기어 나올 수 있을만한 게 아니었다. 자신의 자리는 이곳이
아니라 외치는 친실장을 뒤로한 채, 남자는 진열대로 돌아간다.
‘테츄우! 테츄테츄우!’
어디론가 잡혀간 어미를 신경 쓰지도 않고 진열대 아래를 뱅글뱅글 맴도는 자매. 평생 지켜주겠다고 떠벌리던
엄지가 벌써 거추장스러워졌는지 유리창 옆에 내려놓고 팔딱팔딱 뛰고 있었다. 도저히 닿을 것같이 않은
높이를 깨달은 자실장들은 그저 입맛을 짭짭 다시며 물건이 걸린 쇠기둥의 밑둥을 붙잡고 맴돌고 있었다.
마치 나무 위로 도망간 너구리를 노리는 늑대처럼 탐욕스러운 눈빛을 번들거리며.
가까워져오는 남자의 발자국 소리에도 눈길만 힐끔 줄 뿐 전혀 개의치 않는 자실장들은 계속 하던 대로 진열대
아래를 맴돈다. 문득 차녀 자실장의 머릿속으로 생각이 스쳐 남자의 앞으로 달려온다. 기스투성이의 실장화가
돌바닥을 때리며 똑똑 소리를 낸다.
‘테치이! 테치테치이!’
저것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들은 남자는 자신의 앞으로 달려온 자실장을 한 손으로 잡아든다. 순간 그것을
남자가 물건을 내려주는 대신 자신을 위로 올려주려는 것으로 착각하고 흥이 나 고개를 까닥인다. 곧 있을
엄청난 만찬에 대한 기대로 남자의 손등 위로 침줄기를 길게 흘려보낸다. 질척한 느낌에 얼굴을 찡그리며
남자는 기둥을 때리고 있던 장녀 자실장마저 손에 잡는다.
점심으론 저것이 좋다. 옷은 저것으로 하겠다. 침대로는 저것이 좋겠다 등의 말을 쏟아내는 자실장들의
기대와 달리 창고 뒤쪽으로 향하는 것에 크게 당황한다. 당연히 저 세레브한 물건들로 데려주야 하는데
왜 반대쪽으로 가는 것일까.
앞에 보이지 않는 테치? 하는 모욕적인 언사와 함께 자실장들은 손발을 휘저으며 반대쪽으로 돌아가라 찍찍
거린다. 점점 멀어지는 이상향에 자실장들은 이제 남자의 손을 공격하며 화를 낸다. 이빨을 드러내어 검지
손가락 위쪽을 있는 힘껏 물어뜯어봤지만 억센 일로 여기저기 굳은 살이 박혀있는 남자의 손에 되레 제 이빨만
아쁠 뿐이다. 시큰거리는 입을 부여잡고 엉엉 우는 차녀 자실장. 옆에 잡혀있는 장녀는 울먹이는 차녀에게 위로의
말을 조잘거리곤 남자를 노려본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르는 똥바보는 혼을 내줘야한다! 거기에 동생을 울리다니 용서할 수 없다.
나름대로 언니라고 대신 복수에 나서는 장녀. 기세 좋게 다짐한 것과 달리 팔다리도 옴싹달싹할 수 없는 녀석.
장녀는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온 몸에 힘을 준다. 입술이 파들파들 떨리며 이내 일시의 해방감이 찾아온다.
[브리리릿...]
손아귀에서 번지는 따듯한 똥의 감촉. 홍시를 손으로 쥔 듯 한 진득한 느낌에 남자는 얼굴을 찡그리며 장녀를
쏘아본다. 당장이라도 자신들을 죽일 수 있는 남자의 눈길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오히려 눈을 초승달모양으로
만들며 비웃는다. 똥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의 손을 목격한 차녀도 금방 울음을 멈추고 정신없이 남자를 비웃는다.
이것으로 이 녀석은 자신들의 노예다...라고 생각하는 모양. 허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텟!’ ‘테칫!’
‘데스우!’
어미가 갇혀있는 플라스틱 통 안에 던져넣는다. 똥으로 엉망이 된 장녀와 울음의 흔적이 역력한 차녀의 모습에
친실장은 크게 당황하여 호들갑을 떤다. 자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남자인가. 노예로서 자신들을 시중들어야할
남자인데 어째서 귀여운 자들을 이렇게 만든 것인가.
자신만의 논리에 사로잡힌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안아들고 남자에게 보이며 항의한다. 이렇게 된 것을 책임지라
뭐 이런 식으로 떠들어대는 것이겠지....하고 남자는 짐작하며 뚜껑을 닫아버린다. 갑작스러운 어둠에 파묻혀
내지른 공포의 비명도 뚜껑이 닫힘과 함께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저 녀석들은 내일 처분할 것이다. 숍 앞에서 쫓아내거나 거칠게 다뤘다 누군가 본다면 이상한 소문이 퍼진다.
‘실장숍이면 실장석을 소중히 다뤄야지!’ 하는 철저히 애호가만의 입장에서의 주장이지만 역시나 여론은
무섭다. 피할 수 있는 위험은 피하자는 생각에, 일부러 들이는 척하며 뒤에서 처분하는 것이다.
손을 씻은 남자가 카운터 앞에 쓰러지듯 앉자, 구석에서 눈치를 보던 메이드 실장이 슬금슬금 기어나와 방금 전
잡혀간 장녀 자실장이 흘린 똥을 치운다. 아직도 알몸인 녀석의 모습에 약간 거슬렸지만 배송을 하고 와 피곤해
참견하지 않기로 한다. 한숨을 내쉬며 인터넷을 켠 남자는 느긋하게 몸을 뒤로 기대어 네이버 뉴스를 뒤적인다.
❒
하교시간 쯤이 되자 삼삼오오 모여 하교를 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 또한 저런 시절이 있었지...하는
회상에 잠긴다. 인파 속에서 몇몇 학생들은 숍의 유리창에 모여들어 저희들끼리 재잘거린다. 본격적인 어필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은 진열대의 실장석들은 빈둥거리던 것을 즉시 멈추고 일어나 한껏 아첨을 부린다.
‘텟츙~텟츄웅~’
‘텟데로케에~텟테로케에~~’
자신을 바라보면 까르륵 웃는 여고생의 모습에 입이 귀에 걸린 자실장은 한껏 흥이 올라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해괴한 춤을 춘다. 짜리몽땅한 다리를 힘겹게 놀리며 투실투실한 살집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우스워
웃는 것을 자신이 귀여워 웃는 것으로 착각했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마치 호객행위를 하는 삐끼들처럼 이리저리
자신의 자랑인 신체부위 혹은 춤, 노래를 선보이며 떠들썩한 때에 아래쪽 구석에서 축 늘어진 성체실장이 하나
있었다.
‘어머어머 쟤 봐라 불쌍하다’
‘어디 어떤 애?’
‘저기 맨 밑칸에. 허리 펼 수도 없는 거 같은데?’
‘헐...불쌍하다’
‘새끼는 귀엽다 야’
여고생들이 가라키는 방향에 있는 것은 전세레브실장. 출산을 하여 식구가 늘은 탓에 두 칸을 이어줬지만 여전히
좁은 생활공간으로 인해 어미는 앉거나 눕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을 품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이 시간은 어린 세 마리의 자실장들에게 있어선 가장 고대하는 시간이다. 위 아래 좌 우 모든 곳이 막힌 곳에
있다 가족이 아닌 다른 이를 만나는 일은 정말 흥분되는 일이다.
‘텟치이~! 테치테치이!’
‘츄우? 테츄웃!’
나가고 싶다는 듯 칸막이를 낑낑 대며 미는 장녀와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 하는 여학생들이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손을 흔드는 차녀. 축 쳐져있는 어미와 밖의 인파 사이를 번갈아 왔다갔다 하며 쉴 새 없이 신난다 신난다
재잘거리는 막내. 잔뜩 흥이 난 자들의 상황과 달리 친실장은 그저 힘없이 웃음만 지을 뿐이다.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자신도 자실장이었던 때가 있었다. 작고 귀엽고 붙임성 넘치던 때. 지금과 같이 사람들이
몰려와 자신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손뼉도 쳐주던 때. 하지만 그녀는 알고 있다. 이것이 전부라는 것. 저렇게
구경을 하는 것과 선택해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정말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서성이지 않는다. 정문으로 들어와 진열대를 찬찬히 흩어보며 주인 남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고도 바로 선택이 결정되지 않는다. 몇 번의 방문 끝에 간택이 이루어진다.
지금껏 그녀가 봐온 간택은 한 달에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 다 커버린 성체를 샀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테치잇! 테치테치잇! 테츄우웃!’
‘데프프픗...데스데스우...’
잔뜩 흥분하여 마마의 턱받이를 거칠게 잡아당기며 여기를 봐라 저기를 봐라 말을 쏟아내는 막내. 지루하고
변함없는 일상 속에서 다가온 자극에 전혀 순서가 맞지도 않은 말을 연신 중얼거리는 아이들. 마마도 어서
와 손을 흔들라고 하는 것을 사양하며 그저 힘없이 웃어 보인다. 재미없는 반응에 아이들은 축 쳐져있는
마마는 무시하고 자신들끼리 즐기기로 했는지 온 신경을 앞에 모여 있는 인파로 돌린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쪼그리고 앉아 자실장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손을 흔들어주자 아이들은 너무 좋은 나머지
빵콘을 해버린다. 브리리릿하는 진득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좁다란 칸 안에는 구린내가 가득 메운다.
‘야야 저거봐 똥싼다’
‘꺄아아! 어떡해 어떡해’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입을 가리고 숨넘어갈 듯 웃어재낀다. 서로의 등을 치고 소리치고 깔깔댄다. 경멸이나
악의가 섞이지 않은 그 웃음은 오히려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어조. 똥 좀 지리면 어떠한가. 어차피 키울
것도 아닌데. 다채로운 볼거리에 더욱 신이 난 학생들.
그런 이면의 사정도 모르는 아이들은 여전히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똥으로 가득 차 부풀어 오른
속옷이 몸의 흔들림에 영향을 줄 정도로 커지고서야 자신들이 똥을 지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구린 테치. 무거운 테치...
등을 중얼거리며 커다랗게 부풀어 올라 치마가 말려올라간 자신들의 하반신을 제대로 보기 위해 뱅글뱅글 자리를
맴돈다.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려고 시도하는 강아지들처럼. 똥으로 가득 찬 작은 요정에 손을 뻗고 제자리를
도는 장면도 퍽 귀여운지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자실장들의 신경은 밖의 인파에서 자신들의 속옷으로 쏠린다. 똥의 무게에 삼녀는 그만 그 자리에 풀석 주저
앉는다. 당연히 내용물이 쭉 짜내지며 축축한 소리를 낸다. 속옷 사이로 삐져나오는 똥무더미를 바라보며
키득거린다. 고개를 돌려 밖의 관객을 보면 자신의 모습이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손뼉을 치고
뭔가를 들어대고 있었다. 엄청난 호응에 신이 난 막내는 질척질척한 자신의 똥을 찰박팔박 쳐대며 사방에
똥물을 튀겨댄다. 투명한 아크릴 판에 똥물이 튀기며 시야를 흐린다.
바로 옆에 있던 차녀도 동생과 같은 자세로 발라당 앉아있었다. 이왕 지린 김에 전부 싸버리자는 심산인지
브리릿소리를 새롭게 쏟아지는 똥. 똥이 묻은 손을 쪽쪽 빨아대며 멍하니 옆의 동생을 바라보는 차녀. 벽에
튀겨대는 똥을 바라보던 녀석의 머리엔 아이디어가 스친다.
‘테츄!’
양쪽 귀가 쫑긋 솟아오른다. 이내 녀석이 한 일은 손에 똥을 푹 찍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갖고
싶은 멋진 사치품들을 알려주려는 생각. 커다란 콘페이토, 온갖 맛이 나는 푸드, 뒤쪽에 걸려있는 화려한 옷,
마마와 함께 춤출 수 있을 정도로 큰 집, 푹신하고 천개가 달린 침대.
제 딴에 그린다는 것이 인간의 기준에선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엉터리여서 그저 꼬불꼬불한 선의 연속이지만,
차녀는 만족스러운 울음을 귀엽게 울어대곤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본다. 이 정도로 알려줬으면
선물을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서.
여학생들은 여전히 키득거리며 동영상을 찍어대지만 물건을 바치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테츄테츄우’
그림으로 그린 이것들을 갖고 싶다. 뒤에 있는 저것들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 가져와달라. 등을 조잘거려보지만
누구도 움직이려하지 않는 모습에 그만 화가 난다. 왜 자신의 요구를 무시하는가. 이것이 갖고 싶다는데 왜
가져와주지 않는가.
‘텟츄우~텟츄우~’
똥을 갖고 노는 데 푹 빠진 삼녀가 여기저기 똥을 칠하는 사이, 옆에 있던 차녀의 얼굴의 얼굴은 점점 험악해진다.
조그마한 인내심은 금방 바닥났고 녀석은 분노의 뜻을 전하기 위해 투분을 한다.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울리는
차녀의 험한 욕설. 혼자만의 망상에 잡혀 멍하던 친실장을 현실로 되돌려놓기 충분했다.
‘데에에....데에에엣?! 데스우웃! 데스데스웃!’
정신을 차려보면 인간들을 향해 투분하는 차녀, 똥을 조물딱 거리고 있는 삼녀, 자신의 턱받이를 잡아당기며
‘마마 운치한 테치~치워주는 테치~’하고 중얼거리는 장녀. 칸막이 안은 온통 똥으로 범벅이었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몰상식한 자들에 대한 화가 아닌 공포였다. 분충스러운 행동이다. 출산을 하고도 버려지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인데, 지금의 상황은....
‘테챠아아-! 테챠아아-!’
‘텟테로게에~텟테로게에에~’
‘테츄우! 테츄테츄우우!’
머리가 아찔해지는 속에서 무심코 벌떡 일어서려다 천장에 머리를 쾅 찧는다. 질펀한 궁둥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철퍼덕 소리를 낸다. 떨어지며 내딛은 팔에 그만 장녀가 맞아 데굴데굴 구른다. 그저 넘어진 것에 불과했지만
마마에게 맞았다는 착각과 고통에 대한 전혀 면역이 없는 자실장은 금방 울음을 터트린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울음을 터트리는 장녀의 모습이 웃긴지 삼녀는 뒤로 돌아 똥을 뿌려댄다. 사방에 퍼지는 녹색의 얼룩을 보며
정신없이 깔깔대는 녀석. 눈을 끔뻑이는 장녀는 자신의 머리와 옷에 온통 똥이 뿌려졌고, 자신의 하반신 또한
자신이 싼 똥이 짓눌려 엉망이 된 것을 확인한다.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 장녀. 뭔가 복받쳐 오르는 표정을
짓고는 이내 힘차게 본격적 울음을 터트린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아픈 머리를 감싸쥐고 끙끙 거리던 친실장이 간신히 정신을 부여잡았을 무렵엔, 똥무더기 위에 앉아 온 몸에
똥을 뒤집어 쓰고 울고 있는 장녀, 그런 차녀에게 똥을 뿌려대며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교태를 부리는
삼녀, 인간에게 투분을 하는 차녀가 눈에 들어온다.
‘데에에...데에에에....’
어디부터 손을 써야할지 과부하가 걸린 뇌. 입에서 신음소리를 흘리는 것을 제외하곤 어느 것도 할 수 없어
안절부절 할 뿐이다. 일단 가장 건방진 행동을 하고 있는 차녀를 막기로 생각을 정리한다. 손을 뻗는 마마의
모습에 울고 있던 장녀는 잠시 울음을 멈추고 마마에게 안기려 팔을 뻗지만...
‘테에엣?!’
그대로 지나쳐 차녀를 집는다. 아직도 자신이 아는 욕설을, 그래봐야 똥을 연신 외쳐대는 것 뿐이지만, 퍼붓고
있는 차녀는 자신을 붙잡으려는 마마의 손길을 거칠게 밀어내며 주먹 가득 똥을 집어 든다.
‘데스...! 데스데스...!’
이러면 가족 전체가 곤란해진다라고 타이르며 부드럽게 안으려 하지만 차녀는 전혀 듣지 않는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는데 성공하여 들어 올리지만...
‘샤아아아-! 테샤아아아-! 테?!’
‘데엣!’
찌릿!하는 통증과 함께 놓쳐버린다. 차녀에게 손을 물려 놓친 그 순간에도 아이가 떨어져 다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얼른 손을 바닥에 받친다. 다행히 아기의 속옷 가득 찬 똥이 완충작용을 하여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물이 사방에 튀는 바람에 집안은 아비규환이 돼버린다. 착지할 때 오른쪽 다리를 잘못 짚은 차녀의 입은
파르르 떨리더니 울음보를 터트린다.
‘테에에엥-! 테에에엥-!’
‘테에에엥-! 테에에에에엥-!’
좌 차녀 우 장녀 듀얼로 울리는 울음보. 온통 똥을 뒤집어쓰고 피눈물을 질질 흘려대는 녀석들. 그리고 당연히
실장석의 울음과 딸려 나오는 새로운 똥. 브리릿하며 엉덩이살이 비집고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똥은 바닥에
넓게 퍼진다.
‘테치이이-! 테치이이-!’
거추장스러워진 팬티를 결국 벗어버린 삼녀는 신이 나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며 녹색 발자국을 남긴다. 소란
한 가운데서 어미는 황급히 장녀와 차녀를 그대로 끌어안아 정신없이 핥아준다. 조금 울음이 진정되면 자신의
배 위에 올려놓고 팬티를 벗겨준다. 자루가 풀리는 것처럼 안에 고여있던 똥이 일시에 흘러나와 어미의 옷을
더럽힌다. 녹은 아이스크림처럼 길게 흘러내리는 똥줄기에도 침착하게 자들의 총구를 노출시키고 열심히 핥는다.
‘텟...테텟...텟츙~♪’
황홀경에 다다라 해괴한 표정을 지으며 교성을 내지른다. 온 몸, 심지어 총구 안쪽까지 혀를 넣어 구석구석
핥아주는 어미. 새롭게 싸재끼는 똥이 보이자 그대로 자신의 입을 갖다대고 남김없이 빨아먹는다. 쭈쭈바를
빨아먹 듯 자를 양 손에 쥐고 새로 싸재끼는 똥을 꿀꺽꿀꺽 삼키는 어미의 헌신.
‘테헤에에...텟츙~♪’
자신도 해달라는 듯 성급하게 졸라대는 차녀의 성화에도 차분하게 장녀를 완전히 씻기는 것을 완료한다.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동안, 바닥에 내려진 장녀는 허전한 자신의 하반신을 바라보며 테츄테츄 중얼거린다.
팬티를 입어야하는 테치
방금 깨끗이 씻겨준 보람도 없이, 장녀는 똥무더기 앞에 꿇어앉아 이리저리 헤집어 자신의 늘어난 팬티를
찾아낸다. 해냈다는 듯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지르곤 그대로 착용에 들어간다. 벌써 차갑게 식은 똥이
자신의 허벅지와 총구 주변에 맞닿는 느낌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도 고집스럽게 팬티를 끝까지 올린다.
‘테에에에...’
엉덩이를 이리저리 흔들어보고 평소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에 만족하여 다시 관객에게 눈길을 돌린다.
허나 그 많던 관객들은 어느새 다 떠난 뒤. 아무도 없는 거리의 광경에 크게 놀란다. 양 갈래 머리가 전기
오른 듯 일시에 펄쩍 올라갔다 도로 내려온다.
온 수조가 똥범벅이 되던 그 순간부터 여고생들은 약한 비위를 견디지 못 하고 그대로 떠난 것이다. 게다가
슬슬 귀가시간도 되었고, 실장숍이 내일 당장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굳이 더 볼 필요는 없다.
잠시 마마에게 붙잡힌 사이에 관객들이 사라졌다. 어디로 걸어가는 것을 보지 않은 이상, 아기 실장석으로선
밖의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라고 받아들인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지를 눈으로 쫓는
사이 친실장은 차녀를 핥아주는 것을 마쳤다. 마지막으로 삼녀를 붙잡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도로
바닥에 발을 붙인 차녀는 방금 전 건방진 인간들을 마저 혼내주기 위해 장녀와 마찬가지로 창가에 몸을
기댔지만
‘테츄? 테츄우?’
귀여운 울음소리와 함께 고개만 까딱거릴 뿐이었다.
그 사이 친실장은 삼녀의 팬티를 벗긴다. 댐이 물을 방류하듯 터져 흘러나오는 똥. 해방감을 느끼며 다리를
허우적거리는 삼녀를 떨어뜨리지 않도록 꼭 붙들고 이곳저곳 꼼꼼히 핥아준다. 아까와 같이 총구에 입을
갖다대고 쪽쪽 빨아 안에 남아있는 잔변까지 삼켜버린다.
아이들은 전혀 변을 가리질 못 하고 있다. 몇 번씩이나 운치는 화장실에서 하는 것이라 일렀지만 그때만
고개를 끄덕일 뿐 이해 자체를 하질 못 하고 있다. 재미나거나 맛있는 것이 아닌 이상 금방 까먹는 것.
게다가 몸을 씻기는 것도 이렇게밖에 하지 못 하는 이유가 있다.
이렇게 온 몸에 똥범벅이 된 것은 하루이틀문제가 아니다. 처음 아이들이 똥을 지렸을 땐 물병의 물을 사용했다.
취수구의 볼을 꼭 누르면 물줄기가 가느다랗게 쫄쫄 흘러내렸고, 그 아래 아이를 붙잡아 놓고 샤워를 시키듯
몸을 씻겼다. 당연히 물병의 물은 아이들을 다 씻기기도 전에 다 떨어졌다. 친실장은 주인을 부르며 물의 보충을
요구했지만, 마침 이어폰을 끼고 음악 감상을 하고 있던 남자의 귀엔 전혀 들리지 않았다.
물병의 물은 먹이를 줄 때 같이 채워준다. 그러니 하루 두 번.
물없이 몇 시간을 보내자 전세레브 실장인 친실장과 세 마리 아이들에게 위생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변했다.
갈증에 시달려 물을 달라 두들겨댔지만 아무것도 오지 않았다. 아이들에겐 모유를 먹여 급한 불은 껐지만
결국 자신이 마실 물은 저녁식사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방긋거리는 삼녀의 얼굴에 묻은 똥을 샅샅이 핥아먹는 친실장의 머릿속은 착잡했다. 자들은 확실히 귀엽다.
자신이 봐왔던 그 어떤 실장석보다 귀여웠다. 허나 행동거지는 전혀 세레브하지 않다. 누누이 일러도 매번
이런 식. 이대로면 선택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인간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귀여움 뿐 아니라
행동거지도 관건이다.
‘텟츄우~텟츄우우~’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노래를 재잘거리며 손을 파닥이는 삼녀. 그 천진난만함에 그녀는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꼭 안아준다. 어쩌면 팔리지 않아도 상관없다. 가족들이
함께 이곳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밖으로 나가봤자 자신이 뭘 할 수 있겠는가. 내심 숍의 남자가
자신들을 정식으로 길러주는 것을 생각해봤지만 별로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그가 친절해지는 때는
다른 인간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때 뿐.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처분’의 문제다. 교육을 받을 시기, 귀에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 팔리지 않으면
도살당한다. 허나 남자의 실장숍에서 누군가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보지 못 했다. 어디론가 데려가서 다신
돌아오지 않는 것은 몇 번 봤지만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보지 못 했다.
실은 창고 뒤쪽에 있는 분쇄기로 갈아버려 DIY(Do It Yourself) 실장푸드를 만드는 것이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전세레브 실장의 머리에는 ‘이곳에선 팔리지 않아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다만 어디론가 보내질 뿐’
이란 공식이 완성되었다. 이미 어디론가 보내져 다신 돌아오지 않는 다는 사실에 의문과 공포를 느껴야
정상이겠지만 모든 일을 낙관하는 실장석의 습성답게 이 사실 또한 좋을 대로 왜곡하는 친실장.
마음 한 구석 불안한 파편을 애써 외면하며 ‘처분’의 걱정이 없는 실장숍에 진열되어 그나마 행복한 것이라
위안을 삼는다.
‘뎃데로게에~뎃데로게에~’
가슴팍이 울리는 진동에 차분해진 삼녀는 발버둥을 멈추고 마마의 가슴에 귀를 갖다 댄다. 안정되는 화음은
장녀와 차녀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손과 총구 주변이 다시 똥으로 엉망이 된 녀석들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자신들도 안아 달려며 손을 뻗어온다. 벽을 기대어 눕는 친실장은 팔을 굽혀 세 마리의 자들을 모두 품에
안는다. 투실투실한 살이 접혀 만드는 부드러운 쿠션감에 몸을 맡긴 아이들은 마마의 나지막한 노래소리에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규칙적 숨소리만이 들려왔다.
‘데프프픗....’
가르릉거리듯 웃으며 아이들의 잠든 모습을 바라본다. 볼살이 들려올라가 이빨을 드러내며 자는 장녀,
두 손으로 자신의 유방을 꽉 붙들고 있는 차녀, 갓난아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구석으로 파고든 삼녀.
비록 행동거지가 세레브하진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자식들....이런 곳에 쳐박히게 된 원인이지만
상관없다. 아이들과 만나기 위한 댓가가 그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영원히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더라도 별로 나쁠 것은 없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것 그것이 가장 소중하지 않겠는가.
자들의 머리를 핥아준 친실장도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칸막이 안에 꽉 찬 아이들의 똥냄새에 코를
벌름거렸지만 이내 냄새에 마취되어 편안히 잠에 든다.
❒
해는 완전히 져 암흑이 지배하는 시간. 소도시의 밤은 빠르다. 대도시처럼 조명이 많은 것도 아니고 유동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라 빠르게 어두워지고 빠르게 한산해진다. 나름대로 도로변이라는 것인지 몇몇 상가와 음식점은
한창 영업과 호객을 하는 소리로 점점 달아오르고 있었다. 한편 실장숍의 하루는 마감해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등받이에 기대어 몸을 쭉 펴는 남자. 긴장을 받아 움츠려들었던 근육과 의자부품들의 비명을 질러대는 동시
개운함을 준다. 오늘도 그저그런 하루. 전표와 온라인주문을 정리한 남자는 천장의 깜빡이는 형광등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계산을 한다. 정말 잘 나갔을 때의 수입과 비교해보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건물이 자신의
것인 이상 충분히 버틸만한 매상은 나오고 있다.
가계 수입 지출을 대조하며 한참 계산을 하던 도중 드는 의문.
‘뭐 때문에 일하는 거지....’
대도시로 가기 위해? 노후자금을 벌기 위해? 부모님에게 더 많이 송금하기 위해? 젊은 시절 오직 목표라곤
돈을 버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 우물을 정하여 파고 또 팠지만 결국 뭐가 남은 건지 전혀 모르겠다.
나도 중년이라는 건가...하며 자조적 웃음을 흘리며 책상 주변 널브러진 종이를 정리한다. 누구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라 마구잡이로 긁어모아 서랍장에 쳐박는 것이 전부.
메이드실장 녀석은 도로 옷을 입고 한가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진열대를 오가며 안에 들어있는 새끼들과
말동무를 해주던 녀석은 잠시 혼자 있고 싶었는지 인형을 안고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가끔 멍청한 짓을
해도 나름 밥값이상은 하는데다 본의아니게 지금껏 함께(?) 해온 정이 있어 꽤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다.
장난감도 있고 밥도 두둑이 주고 있다. 간간히 간식도 주기도 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간식들은 아무리 폐기상품이라 해도 진열대 안 ‘상품’들에겐 건네주지 않는다. 행여나 그
달콤한 유혹을 맛보게 되면 입맛이 상향조정되기 때문. 버리기 아까운 것은 그래서 메이드실장 녀석에게
던져주는 것이다. 주제파악은 아주 잘 하고 있는 놈이라 고작 그런 간식따위로 어긋나는 일은 없었기에
완전히 신뢰를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뭐 하나 있던데....’
손에서 잘그랑거리던 차키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남자는 스치던 기억을 더듬으며 서랍장을 들춰본다. 오늘부로
완전히 폐기기한이 지난 간식 하나가 있던 걸로 기억난다. 잡동사니들과 섞여 들어있던 분홍빛 포장지를 발견한
남자는 뒤쪽 유통기한 표기일을 뒤집어 읽는다. 그래 이게 맞다.
‘야 이거 먹어라’
‘뎃!’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인형에게 말을 건네던 메이드 실장은 난데없이 날아온 간식을 머리에 얻어맞고 짧은
신음을 흘렸지만 알록달록한 색의 포장지를 확인하곤 얼굴에 화색이 돈다.
‘데스데스우~’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메이드실장을 본체만체하며 남자는 퇴근 준비를 마친다. 제대로 정리됐음을 확인하고
야간조명으로 전환한다. 은은하게 감도는 푸른색 조명을 뒤로하고 남자는 문을 잠군다. 유리창 건너편으로
울리는 자동차 시동음을 마지막으로 실장숍은 정적이 지배한다.
해가 떨어지면 바로 잠에 드는 철저한 주행성 동물의 활동시간을 인공조명으로 무리하게 늘인 만큼 진열대 안
실장석들은 눈을 끔뻑거린다. 귀를 뒤쪽으로 쫑긋거리며 조그마한 하품을 하던 녀석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침대에
몸을 웅크린다. 규칙적 숨소리와 함께 주기적으로 오르내리는 작은 가슴팍.
마마에게 안긴 녀석들도, 자매끼리 안은 녀석, 홀로 팔짱을 낀 녀석....제각각이었지만 나름대로 하루를 마무리
하는 모습.
메이드실장은 들릴락말락한 목소리로 잘자라 중얼거린 후 창고 뒤쪽에 있는 자신의 침소로 향한다. 방금 받은
젤리 실장푸드를 행여나 떨어뜨릴세라 몇 번이나 돌아보며 히죽거리는 녀석의 모습은 취침 전 간식타임에
대한 기대로 잔뜩 들떠있었다.
‘....찌이....’
새끼 실장석의 울음소리에 귀가 쫑긋한다. 진열대 안쪽에 누군가 잠꼬대를 하는 것일거다...라고 여기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또 다시 들려오는 울음소리.
‘레치이.....’
순간 올라가는 귀. 신경을 긴장시키고 집중하여 주변을 살핀다. 방금 전 그 울음은 엄지의 목소리였다. 허나
이 매장에선 엄지를 취급하지 않는다. 누군가 몰래 출산한 것일까? 아니다 여기엔 꽃이 없다. 절대 혼자서
임신이 불가능한테 어떻게 출산이 가능하겠는가. 자신이 피곤하여 잘못 들은 것이다. 라고 결론을 내린 메이드
실장은 고개를 휘휘 젓는다. 불가능하다. 다시 한 걸음 옮긴 그때 이번엔 확실하게 들리는 울음소리.
‘레에에엥....레에에엥....레에에엥....’
본격적으로 터트리는 울음소리다. 어딘가에 엄지실장이 있다. 자신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푸드를 떨어뜨리고
허겁지겁 달려간다. 희뿌엿한 조명에 몇 번씩 넘어질 뻔하며 달려간다. 겹겹이 늘어선 상품진열대를 지난다.
늘어진 상품들의 포장지에 몸이 스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자 목소리의 주인은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존재를
인지했는지 잠시 울음을 뚝 그친다.
그것도 잠시 자신의 보호자를 찾는 듯 울음을 다시 터트린다. 무서워 울음을 터트리고 뭔가 오는 것을 듣고
들킬까봐 울음을 그치더니 그것이 무서워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멍청함. 전형적인 엄지실장의 생리. 숨을
헐떡이며 거리를 좁히던 메이드 실장은 울음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한다. 블라인드 아래쪽, 상품 가판대 사이의
틈에 앉아 울고 있는 조그마한 엄지실장. 성체를 십수배로 축소시킨 것 같은 작은 요정같은 체구.
메이드실장은 엄지를 본적이 이번이 처음이다. 전문 브리더에게서 태어나 늘 보던 것은 자실장과 성체실장이
전부였다.
푸르스름한 야간조명 불빛 아래서 조그마한 틈 사이에 주저앉아 있는 엄지실장.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줄기가
길게 늘어져 턱 끝에 고여 뚝뚝 떨어지고 조그마한 두 팔은 이곳저것에게 뻗으며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보호자를
찾는다.
‘데...데스우...’
‘레챠아아앗-!’
마마가 아닌 다른 성체의 목소리에 엄지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이미 똥을 지린 상태에서 새롭게 쏟아낸 똥은
팬티의 직조 사이로 브릿하고 세어나온다. 어둠속이라 볼 수 있는 것은 메이드 실장의 검은색 실루엣뿐. 게다가
푸르스름한 조명이 어린 실장석의 상상력을 자극시켜 더더욱 공포감을 불어넣는다.
‘레챠아앗-! 레챠아아앗-!’
가판대 아래로 더욱 기어 들아가는 엄지실장. 몇 센치도 되지 않는 틈으로 들어갔다간 영영 꺼낼 길이 없어
조급해진 메이드실장은 그만 팔을 뻗고 만다. 자신을 향해 뻗어오는 거대한 손아귀를 바라본 엄지는 당연
공포의 비명을 꽥꽥 질러댄다. 뻗은 손길이 엄지를 붙잡으려던 찰나 엄지는 모든 용기를 끌어내어 침입자의
손을 물어버린다.
‘덱!’
찌릿하는 아픔과 함께 손을 뒤로 뺀다. 엄지는 거친 숨소리를 내며 가판대 안으로 기어들어간다. 몇 년간
쌓인 끈적끈적한 바닥먼지를 온몸에 묻혀대며 안쪽으로 숨어들어간다. 생애 첫 포복전진으로 모든 기력을
소진했는지 숨을 헐떡이며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다. 침입자가 포기하고 물러나기를 바라며.
상처는 그리 깊지 않았다. 그래봐야 엄지실장. 아마 자신의 이빨이 더 아플 것이다. 예상치 못한 반격을 받아
놀란 것일 뿐 전혀 타격이 없다. 이제 관건은 이 엄지를 어떻게 밖으로 유인해내는가가 되었다. 엄지가 앉을
높이도 안 되는 낮은 높이에 메이드실장은 발을 동동 굴린다.
‘데스...데스데스...데스....’
안심하라 이르며 조심스레 손을 뻗어봤지만 어둠 안쪽에선 히스테릭한 비명소리와 함께 더욱 안쪽으로 파고드는
바스락 소리가 들렸다.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다. 한숨을 내쉬며 뭔가 도움이 될만한 것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스쳤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받아 반짝이는 알록달록한 포장지. 남자에게 받은 젤리 실장푸드가 있다. 그 어떤 실장석도
먹을 것에 대한 유혹에 약하다. 먹을 것은 실장석에게 있어 최고의 유인책이다. 안 넘어가는 녀석이 별종.
‘데에...데에에....’
가판대 밑에 엎드려,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엄지실장. 숨을 들이쉬다 그만 먼지더미가 코에
붙는다. 코를 킁킁거리고 고개를 휘휘 내저어도 떼어지지 않는 먼지더미에 결국 자신의 코를 팡팡 내리친다.
얼얼한 자신의 코를 만지작거리는 사이 퍼져 나오는 달콤한 냄새.
‘츄우....’
한 번도 맡아본 적은 없다. 허나 전신을 감싸는 그 달달한 냄새에 뇌가 찌릿 거린다. 방금 내리쳐 잔뜩 예민해진
코 속을 감도는 합성착향료의 풍미.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냄새에 몸은 정직하게 반응한다. 반쯤 벌어진 입에선
침줄기가 세어나와 작은 웅덩이를 형성한다. 이내 엄지는 코를 진원지로 향하게 하곤 꼬물거리기 시작한다.
조그마한 팔다리를 헤엄치듯 허우적거리며 조금씩 땅을 밀어낸다. 계속 해서 흘러내린 침웅덩이 위로 그대로
지나가 윗옷과 턱받이는 진열대 밑의 묵은 먼지를 그대로 닦아낸다. 침과 뒤섞인 찐득한 먼지를 옷으로 문대어
엉망이 되는 것도 아랑곳 않는 엄지. 이따금 반짝이는 두 눈은 정면의 정육면체의 물건에 고정되어 있다.
‘레치...레치이....레치...’
낮은 천장이 사라지는 듯한 느낌. 짧은 팔을 받쳐 두 다리로 웃샤 일어선다 귀를 쫑긋 세우고 입맛을 다신다.
눈을 깜빡여 아직도 제 자리에 있는 젤리 푸드에 몸을 조준하고 그대로 달려 나간다. 토실토실한 엉덩이는
다리가 바닥을 내딛을 때마다 그에 따라 진동을 하며 씰룩거리고 두 손은 앞으로 뻗어 당장이라도 잡힐 듯한
푸드를 향해 꼬물거린다.
‘렛츙~♪’
경쾌한 탄성을 지르며 푸드를 집어 든다. 생각보다 말캉말캉한 감촉을 감상할 틈도 없이 그대로 크게 한입
베어문다.
‘츄우웃...!’
한계치까지 부풀어 오른 팬티는 더 이상의 무게를 버티지 못 하고 흘러내린다. 벗겨진 팬티 안에 고여있던
똥덩이들이 해방된다. 새롭게 지리는 똥은 이미 쌓여 있던 똥무더기의 높이를 높이며.
엄지는 운다. 외로움이나 공포의 눈물이 아닌 환희의 눈물. 휘발성 기억을 가진 작은 두뇌에서 이미 모든
일은 사라진다. 여기까지 온 여정, 마마, 오네챠, 힘들었던 일상, 가끔 있던 재미난 놀이. 모두 잊어버린다.
손 안에 있는 극미의 물건을 음미할 뿐.
‘츄아...츄아....’
미처 다 삼키지도 않고 또 한가득 베어무는 퉁에 호흡이 곤란할 정도. 부족한 숨을 급하게 들이쉬느라
코를 킁킁거리는 엄지. 입은 제대로 닫히지도 않아 벌어진 입술 아래론 달달한 푸드와 만난 찐득한 침이
길게 흘러내린다.
‘레히이...레히이...’
또 다시 베어 물어 볼이 빵빵해진다. 달콤하게 시작하여 뒷맛은 상큼하면서 약간 새콤한 맛. 사람이 먹어도
맛있는 그 맛은 생후 얼마 되지 않는 엄지의 입맛을 완전히 사로잡는다. 훅훅 숨을 내리쉬며 말캉거리는
건더기를 어금니로 씹으면 안에 있던 사과맛 샌드가 새어나오며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입안에 물고 있는
푸드를 한 번에 꿀꺽 삼킨다. 침과 만나 매끈거리는 표면의 푸드 건더기들은 순탄히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즐거운 ‘식사’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다. 즐거운 식사를 계속할 수 있다는 기쁨에 몸을 떨며 엄지는 귀여운
울음소리를 내며 남은 푸드로 달려든다.
‘렛츙~♪’
❒
잠시 후, 자신 몸뚱이만한 푸드를 먹어치워 놓고서도 아쉬운지 입맛을 짭짭 다시는 엄지가 있었다. 바닥에
흘러내린 자신의 침을 핥다보면 푸드의 달달한 맛이 남아있다. 쉰내가 나는 바닥에 고여있는 침을 남김없이
핥아낸다. 그것마저 다 핥아버리면 혹시라도 있을 건더기를 찾아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며 기어 다닌다.
아직도 진하게 흘러나오는 냄새를 향해 기어가던 중 뭔가에 머리를 부딪친다.
물컹하는 살의 느낌.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어 올리면, 그곳엔 성체 실장석이 자신을 내려 보고 있었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뭔가를 들고서. 엄지가 미처 반응하기 전, 메이드실장은 얼른 푸드를 한 알 꺼내어
엄지의 눈앞에서 흔든다.
‘레에에에....’
또 다시 흘러나오는 침. 엄지는 망설임없이 처음 보는 상대가 건네는 푸드에 달려든다. 이번엔 방금것보다
느리게 사라지는 푸드. 아무래도 왕성한 식욕도 신체가 허용하는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푸드를 먹어치운
엄지의 배는 산만하게 부풀어 올라 옷을 밀어내고 수줍게 인사를 한다. 만화같은 그 모습이 귀여워 어쩔 수
없는 지 메이드 실장은 엄지를 그대로 끌어안고 여기저기 핥아주기 시작한다. 들생활과 방금 전 가판대 밑을
기어다녀 엉망인 모습도 아랑곳 않고 자신의 핑크빛 혀가 더러워질 때까지 정신없이 핥는다.
이미 엄지의 머릿속에 메이드 실장은 새로운 보호자로 각인되었다. 자신에게 맛난 것을 주었다. 그러니
좋은 존재일 것이 당연하다. 뭔가 잊은 듯 한 느낌에 마음 한 구석이 껄끄러웠지만 새로운 마마의 애정공세에
금방 사그라든다. 이 마마는 좋은 마마다. 혼자 있어 무서울 때 도와주고, 배고픈 때 맛나맛나를 주고, 따듯하게
핥아주는 자신의 마마다.
‘렛츙~♪ 렛츙~♪’
마마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며 똑같이 볼을 비비대는 엄지의 모습에 메이드실장 또한 사랑한다 속삭인다.
한손으론 엄지를 품에 안고, 한 손으론 뜯어진 봉지를 질질 끌고 자신의 침대로 향한다. 무서운 것도
사라졌겠다, 들생활 최초로 포만감 들도록 먹어 기분도 좋겠다, 간사하게 하품이 나오는 엄지의 몸. 그런
태평한 모습도 사랑스러운지 나지막이 웃는 메이드 실장.
창고 구석에 마련된 골판지 박스로 도착했을 무렵엔 이미 엄지는 깊이 잠에 빠져들었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허리를 숙여 자신의 집 안으로 들어간다.
‘레휴우....레휴우...레휴우...’
쌔근거리는 솜소리. 어렴풋한 야간조명 아래 비치는 작은 체구. 꼬질꼬질 하지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옷 자체는 멀쩡했다. 게다가 살결 또한 탱글탱글하고 투명하다. 이런 예쁜 아이가 어디서 왔을까하는
의문을 품는 것도 잠시, 자신의 푹신한 침대(어디선가 주워온 넓적한 쿠션)의 감촉에 취해 곧 잠에 든다.
❒
새로운 아이를 입양한 메이드실장. 정작 그 아이의 친부모와 친자매들은 건물 뒤쪽의 통 속에 갖혀 꼬박 하루를
강제로 갇혀있다. 더 이상 애원할 힘도 울 힘도 없는 그네들은 벽에 몸을 기대고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한다.
‘데스우....’
젖을 물고 꼬물거리는 자실장들. 배고픔에 울던 것을 젖을 물리고서야 간신히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들이
잠에 들기 전까지 얼마나 울어댔는지, 눈 아래론 말라붙은 눈물자국들이 끈적거렸다. 커질 대로 커진 팬티는
녹색똥으로 넘실거려 조금씩 몸을 뒤척일 때마다 내용물이 세어나왔다.
친실장은 엄지가 걱정이다. 엄지를 어디에 뒀냐고 물어도 장녀는 그저 미안한 테치 미안한 테치 만을 중얼
거렸다. 분명 데리고 들어가는 것까진 봤다. 적어도 ‘낙원’안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분명 혼자 있을 것이다.
‘데스데스우...’
다시 생각해보면 진열장 안에 있던 동족들을 기억해낸 어미는 한가닥 희망을 잡아본다. 그 아이들은 분명
사육실장. 어쩌면 귀여운 엄지를 보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의 갑작스런 감금은 당황스럽긴 하지만 뭔가
착오가 있었을 것이다. 일단 오늘 하루를 보낸 다음 내일 인간이 오면 부탁을 하여 나가도록 하자. 그리고
사육실장들 사이에서 보호를 받고 있을 엄지와 재회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망상 속에서 위안을 얻은 그녀는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잠에 든다. 정작 그 엄지는 벽 건너편에서
빵빵한 배를 쓰다듬으며, 원래 가족 따위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도 모르며.
그나마 행복한 망상을 하며 잠들 수 있다는 것이 행운이란 사실을 얼마 안가 깨달을 것이다. 바뀐 실통법에
따라 무슨일이 있어도 토요일엔 불구덩이 속에서 최후를 맞이해야 하기에.
❒
아직까진 선선한 아침공기를 폐안 가득 들이쉬는 남자. 허름한 남방을 한 손으로 걸긴 괜히 들고 왔다라는
표정으로 열쇠를 꺼낸다. 달칵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진열대 안에서 꼬물거리는 소리와
이따금씩 중얼거리는 잠꼬대만 들려오는 적막한 가게.
평소처럼 불을 켜고 블라인드를 젖힌다.
언제나 쏟아져 들어오는 빛줄기에 진열대 안 실장석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반대편으로 돌아눕는다. 궁시렁
거리는 실장석들의 소리를 무시하며 진열대 상품을 하나씩 톡톡 건드리며 컴퓨터 부팅시간을 기다리던
남자는 특이한 것을 발견한다. 삼품 가판대 아래쪽에 누군가의 똥이 남아있는 것.
어젠 없었는데....녀석답지 않게 흘리고 치우지 않다니. 동물이 똥 좀 지리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 처음이긴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긴다. 실장숍을 운영하고 있는 남자는 실장석의 실수에 관대하다. 괜히
사소한 것에 트집잡아 훈육이랍시고 지지고 볶는 건 남자의 취향이 아니다. 나중에 나오면 닦으라고 해야겠다
생각한다.
‘어차피 손님도 안 오니깐...’
컴퓨터를 조작하는 남자는 똥무더미 사이에 파묻혀 있던 작은 속옷의 정체를 눈치 채지 못 했다.
예상대로 메이드실장은 남아있는 똥의 흔적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좀 심할 정도로 굽신거리며
허겁지겁 걸레를 가져와 닦아낸다. 어찌나 급하게 달려들던지 물을 채 짜지도 않아 축축한 걸레를 가져왔다.
남자의 눈치를 보며 걸레를 돌려놓고 평소처럼 빗자루를 쥐는 메이드실장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전혀 감지하지 못 한 남자는 언제나처럼 전일 들어온 주문을 정리한다.
종이를 이리저리 넘겨보고 상품포장을 위해 창고로 간다. 언제나와 같은 동선이지만 오늘따라 메이드실장은
화들짝 놀라며 그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뭔가 간절한 눈빛으로. 입구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 제품을
포장하는 남자를 힐끔거린다. 몸은 기계적으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지만 신경은 온통 남자에게 향해있었다.
수시로 남자와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를 번갈아 쳐다보며. 속이 타는 듯한 심정으로 그녀는 간절히 바란다.
제발 엄지가 지금 일어나지 않도록. 그 작은 생명체가 늦잠꾸러기이기를 바라며.
길고 긴 시간이었다. 평소에는 전혀 신경 쓰지도 않았던 남자의 작업이 오늘따라 영원처럼 느껴졌다. 손을
털고 프론트로 돌아가서야 한숨을 푹 내쉰다. 컴퓨터 앞에 앉는 모습까지 확인한 메이드실장은 빗자루를
질질 끌더니 곧 내팽겨치고 슬금슬금 골판지 하우스로 달려간다.
일을 시작하기 전 행여나 엄지가 깨어나 멋대로 돌아다닐까봐 일부러 닫았던 문은 그대로 닫혀있었다.
문을 열고 안을 들여보자 몇 번씩이나 뒤척거렸는지 처음 눕힌 곳과 정 반대쪽에 누워 자고 있는 엄지의
모습이 보인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침대여기저기에 달라붙었고 옷 또한 마구 주름 잡혔다.
어제는 몰랐지만 날이 밝고 나서 보니 새삼 몰골이 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 씻겨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 번 더 쓰다듬어 주려 손을 뻗은 순간, 뒤쪽에서 들리는 금속음에 모골이 곤두선다.
남자가 밥그릇에 푸드를 쏟아주는 소리. 최대한 그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제발 엄지짱을
보지 않았기를 바라며 고개만 뒤로 돌린다. 심장이 한계치까지 뛰는 긴박한 심리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녀석의 얼굴을 들여 보지도 않았다. 계량컵의 눈금과 밥그릇에 채워지는 푸드의 양만을 살펴보는 통에
메이드실장과 그녀가 비스듬히 가로막고 있는 골판지 상자 안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밥그릇을
채우자마자 자리를 뜬다.
‘....레치이....’
한시름 놓으려 하는 그때 안쪽에서 몸을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잠을 깬 것일까.
심장은 튀어나올 듯이 쿵쾅거렸지만 그 작은 목소리는 남자의 발자국소리에 묻혀버렸다. 남자가 창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뚫어져라 그 뒷모습을 주시한다. 확실하게 나간 것을 확인하자마자 허겁지겁 골판자의 양날개를
열어젖힌다.
어두컴컴한 박스 안쪽으로 들이치는 흐린 불빛은 이제 막 잠에서 일어나 퉁퉁 부은 눈을 끔뻑이고 있는
엄지실장을 비춘다.
‘레츄아...레츄우....’
길게 늘어지는 침줄기. 헝클어진 뒷머리를 아랑곳 않고 뒷통수를 긁적인다. 구린내가 나는 입안을 짭짭
다시며 몸 여기저기에 손을 집어넣고 긁는다.
‘츄아...츄아....’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엄지는 입구에서 흐믓한 미소로 자신을 내려 보는 새로운 보호자의 모습을 확인하고
안심했다는 미소를 머금는다. 어느새 메이드실장을 마마라 부르며 팔을 벌리는 엄지는 포옹을 요구한다.
‘데스우~’
기꺼이 안아준다. 토실토실한 엉덩이와 허벅지를 쓸어내리는 감촉은 물풍선을 건드리는 재밌는 느낌.
알아들을 수 없는 옹알이를 하던 엄지는 골판지 앞에 놓인 밥그릇을 보고 기운찬 반응을 보인다. 수북이
쌓인 먹을 것 앞에 잠은 금세 달아났는지 팔다리를 휘젓는다. 격렬한 반응에 메이드실장은 히죽 웃곤
살포시 내려준다.
‘츄우! 츄우!’
키가 작아 닿지 않는 밥그릇 주변을 맴돌며 요리조리 점프를 하고 메달리기도 한다. 엄지를 배려하여 한 손
가득 푸드를 집어 바닥에 떨어뜨려준다.
‘츄아아아.....!’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거리며 우렁찬 애교음과 함께 가장 가까이 굴러온 푸드를 배어 문다. 기운찬 시작과
다르게 호물거리는 입놀림은 기세를 잃어간다. 엄지의 얼굴에는 의문스런 표정이 잠시 자리 잡은 후 그것을
몰아내고 찌푸린 인상이 차지한다.
‘페에! 페페!’
쓰레기를 잘못 먹었다는 듯 입안의 내용물을 내뱉는다. 아직 침이 골고루 침투하지도 않아 푸석푸석한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푸드 부스러기가 바닥에 흩어진다. 그리고 응징을 하는 듯 조막만한 손으로 부스러기를
투닥투닥 때려댄다.
‘데스? 데스데스우? 데스?’
예상 밖의 행동에 메이드실장은 거듭 물었지만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하는 엄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거친
숨소리와 고함소리뿐이었다. 최대한 유추를 하기 위해 재차 물었지만 더 이상 질문도 이해하기 싫은 모양인지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휘젓는다.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무엇을 원하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어 쩔쩔매는
사이, 엄지는 양 볼을 크게 부풀린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오르고 눈에는 물기가 가득 차더니 잠시 후,
‘레에에엥..! 레에에에엥..! 레에에에에엥..!’
‘데엣!’
울음을 터트린다. 허기로 기운이 없어 그리 큰 목소리도 아니었음에도 메이드실장은 벌떡 일어나 허겁지겁
어디론가 달려간다. 엄지는 그런 메이드실장의 돌발행동의 목적을 살피는데 관심이 쏠려 잠시 울음소리의
음량을 한 단계 낮추지만 울음을 그치진 않는다. 멈출 듯 커질 듯 이어지는 울음소리.
메이드실장이 확인하러 간 것은 남자의 반응. 혹시나 방금 전 울음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쳐들어오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휩싸여 확인하러 간 것이다. 애초 카운터에서 창고를 가려면 진열대를 지나 있는 복도로
들어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절대 들릴 일은 없지만 그것을 생각하지 못 하는 실장석인
이상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학대용 실장석 셋트? 그딴 건 없다니깐...영빈아 여기 일반숍이야 일반숍....그러긴 한데...’
카운터에 앉아 머리를 긁적이며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남자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겁지겁
돌아온다. 메이드실장의 동선을 따라 고개가 움직이는 엄지는 자신의 보호자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고 울음소리를 다시 높인다.
‘레에에엥-! 레에에엥-!’
한심스런 신음소리를 흘리며 발을 굴리던 메이드실장은 뭔가를 생각해냈는지 손뼉을 치며 얼굴에 화색이
돈다. 뭔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감에 엄지는 그녀의 동선에 또 다시 집중하며 울음소리를 한 옥타브
낮춘다.
구석에 놓여있는 작은 박스를 열고 안에서 뭔가를 꺼내는 메이드실장. 잘 보이지 않는 그것을 보기 위해
엄지는 고개를 이리저리 뺀다. 그래도 울음은 계속해야한다는 사명감에 목구멍 깊은 곳에서 그르릉 거리는
소리는 내고 있지만 아까보단 현저히 줄어들었다.
‘데슷!’
자랑스럽게 펼친 것은 어제 먹었던 젤리형 실장푸드. 로젠사 제작의 최고급사양의 간식. 알록달록한 배경과
방긋 웃고 있는 자실장의 얼굴이 그려진 포장지. 그리고 그 안에서 풍겨오는 달달한 냄새. 안쪽으로 보이는
말캉말캉한 푸드의 모습에 엄지의 표정은 환하게 밝아진다.
‘렛츄우! 레츄레츄우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메이드실장의 종아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울어댄다. 어서 그것을 달라는 의사에 그녀는
두어 개를 꺼내어 건네준다. 푸드가 바닥에 채 닿기도 전에 낚아챈 엄지는 걸신들린 얼굴로 먹을 것에 달려든다.
쫀득거리는 식감과 상큼하면서도 달달한 풍미에 몸을 부르르 떨며 기뻐한다. 평면에 구멍을 두 개 뚫어놓은
것 같이 생긴 콧구멍에선 녹색 콧물이 하수구를 연상케 하듯 질질 흘러나오고, 잘 닫히지 않는 구강구조로
입 안 가득 푸드를 베어물 때마다 달달한 풍미가 섞인 침을 바닥에 흘린다.
‘챠아....츄우....츄우...’
보통 사육실장들도 이것의 귀중함을 알고 오래오래 맛을 음미하는 물건을, 마치 갈증에 시달리는 자가 물을
마시듯 허겁지겁 하는 그 모습에는 음식에 대한 소중함, 감사는 전혀 볼 수 없었다. 추잡하게 달려들어
쩝쩝거리는 모습도 귀여운지, 메이드실장은 무심코 엄지를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는다.
희번득거리는 눈빛을 요리조리 굴리던 엄지가 메이드실장이 뻗는 손을 발견한다. 푸드를 약탈자로부터 보호
하려는 양 거칠게 몸을 돌리는 엄지. 알록달록한 젤리형 푸드가 이빨 여기저기에 낀 입을 크게 벌리고 위협을
가한다.
‘레샤아아아-! 레샤아아앗-!’
이것은 자신의 것이라 주장하는 것일까.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는 엄지의 반응에 움찔하며 손을 뒤로 뺀다.
메이드실장이 완전 손을 거두기까지 노려보던 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 가득 찬 표정으로 말랑말랑한
풍미를 입에 쑤셔 넣는다. 밥 먹을 때는 혼자 두는 것이 좋을까...하고 생각한 메이드실장은 더 이상의 시도는
관두기로 하고, 자신도 밥그릇에 달라붙어 식사를 시작한다.
‘레푸우~’
만화의 한 장면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땅땅 두들기는 녀석. 음식이 꽉 차 숨을 쉬기도 어려운 지 거친 숨을
푹푹 쉬고 있었다. 아직도 위협을 가하는 것이 아닌지 몰라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봤지만 배가 부른 이상
공격의사는 보일 필요가 없는지 평소의 엄지였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기분좋은 듯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꽉 찬 배가 살랑살랑 움직이며 출렁인다.
메이드실장은 할 일이 있다. 엄지의 투정을 받아주고 밥을 먹는 것부터 뒷정리까지 해주느라 너무 시간을
지체했다.
골판지를 떠나지 말고 자신이 오기 전까진 조용히 집안에서 놀라고 몇 번이고 일렀지만, 엄지는 전혀 이해하는
표정이 아니다.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계속 하던 대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고개를 까딱거리기만 하였다.
언어를 몰라 상대의 언어를 이해하거나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능력이 모두 떨어지는 엄지.
오직 자신의 요구만 있을 뿐이다. 메이드실장의 간절한 부탁도 그녀에게 있어선 높낮이가 이상한 울음소리에
불과했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몇 번을 돌아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배가 부르고 폭신한 침대도 있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는 듯, 자신의 보호자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서도 여유만만이었다. 혹시나 하여
골판지 날개를 닫고 그 위에 수건을 한 장 더 덮어 안쪽에서 낮게 울리는 엄지의 울음소리가 세어 나오지
않도록 한다. 어둠 속에 혼자 놓이는 것이 무서워 발광할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의외로 얌전했다. 배가
부르니 잠이나 자야겠다는 심산인가. 어찌됐든 다행이라 여기며 메이드 실장은 걸레를 낚아채고 샵으로
달려 나간다.
❒
그날은 평소대로 흘러갔다. 괜히 캥기는 구석이 있어 스스로 켕겼던 메이드실장도 점차 일상의 업무를 진행하며
조금씩 마음을 놓는다. 언제나처럼 흘러가는 일상. 남자가 물건배송을 위해 나가자마자 걸레를 내려놓고 혼자
있을 엄지실장에게 달려간다. 집에 점점 가까워지며 들리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작은 엄지울음소리.
문을 열어보면 눈가가 촉촉해진 엄지실장이 폴삭 안겨온다. 똥과 먼지, 검댕이로 엉망이 되어 있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이번 기회에 목욕을 시키기로 한다. 그저 마마가 하는 대로 몸을 내맡긴 녀석은 쉴새없이
옹알거리며 품에 안긴다.
평소 걸레를 빨고 몸도 씻는 수돗가에 도착한 메이드실장은 조심스럽게 턱을 넘어 안쪽으로 들어간다. 약간
높은 곳에 위치해있는 수도꼭지를 조종하여 적당한 온도를 맞춘다. 시원한 물이 졸졸 흘러나오는 나오는 장면을
경이롭게 바라보는 엄지.
약간은 두려운지 여전히 메이드실장의 가슴팍을 꼭 붙들어 맨 상태에서 한 손을 뻗어 물줄기를 붙잡으려
한다. 조그맣게 투명한 손길에 튀는 시원한 물방울 감촉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렛츄~하며 탄성을 지른다.
그 나이대 실장석들이 다 그러하듯 어서 이걸로 놀고 싶으니 내려달라는 듯 팔다리를 바둥거린다.
흥분한 엄지의 옷을 간신히 벗긴 메이드실장. 예전 받았던 교육이 빛을 발한다. 물론 그때는 실제 엄지가 아닌
엄지모형으로 했지만. 엄지모형과 달리 쉴 새 없이 보채고 바둥거리는 것에 약간 곤혹스럽다.
옷을 벗기자마자 물줄기 아래로 달려가는 엄지. 졸졸 흐르는 그 투명한 액체 아래서 다리를 팔딱거리며 해괴한
춤을 춘다. 물줄기가 손바닥에 떨어지며 마치 투명한 막처럼 펼쳐지는 것을 넋을 잃고 쳐다본다. 아무리 놀기
좋아하는 새끼들이라 하더라도 물을 보면 몸 여기저기를 씻는 시늉이라도 곁드는데 이 아이는 그저 물줄기를
갖고 노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목욕을 모르는 데스?
물어봐도 엄지는 들은 체 만 체. 여전히 시선을 물줄기에 고정시키고 히죽거릴 뿐이다. 역시 어쩔 수 없는
아기라 중얼거리며 부드럽게 들어올려 몸 여기저기를 씻겨준다. 들생활 동안 스며든 때와 얼룩이 물에 씻겨
내려간다. 검은색과 녹색물줄기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문지른다. 더 이상의 물세척으론 기름끼와
묵은때를 벗길 수 없다고 생각되자 메이드실장은 옆에 있던 실장거품비누를 푹 누른다.
주욱하며 나오는 커다란 거품덩어리에 시선이 고정되는 엄지.
‘레치잇! 레치레치이잇!’
그 몽글몽글한 것을 달라 요동치는 녀석의 머리를 살포시 눌른다. 머리가 눌려 팔딱댈 수 없으면서도 두 팔을
위로 뻗어 그것을 잡으려 한다. 메이드실장은 요령 좋게 거품비누를 엄지의 몸 구석구석 발라준다. 꼬드러진
머리털에도, 딱딱하게 똥이 딱지가 진 고간에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겨드랑이에도, 살짝이라도 손을 댈 때마다
때가 후두둑 떨어지는 등에도 골고루 발라준다.
거품에 둘러싸여 헤실거리는 엄지. 손 안에 거품에 입김을 후 불어 비눗방울을 날리는 장난을 한다. 마마가
몸 여기저기를 부드럽게 문질러줘 기분이 좋은지 분홍빛이 감도는 입을 날름거리며 애교를 부린다.
‘챠아아....’
흘러가는 비눗방울을 잡기 위해 손을 뻗어도, 무심하게 흘러가는 모습에 약간 기분이 상한다. 투정을 부릴 새도
없이 메이드실장은 물로 헹구는 것을 마무리 짓고 부드러운 수건을 꺼내어 구석구석 물기를 닦아준다. 수건
안쪽에서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약간 커졌지만 부드러운 감촉에 놀라며 곧 쓰다듬기 정신없다.
‘데스~’
자신의 작품을 꺼내듯 만족스럽게 내려놓는다. 엄지는 코를 킁킁 거리며 놀랍도록 바뀐 자신의 모습에
감탄한다. 자신의 살이 이렇게 매끈거렸는지 몰랐다. 들생활 동안 배인 찐득한 기름기로 늘 끈적거리고
기분 나쁘게 미끌거리던 감촉은 사라지고 청량하게 뽀득거렸다. 간만에 깨끗한 물을 잔뜩 마실 수 있어
입안도 개운하였다. 무엇보다도 떡져있던 머리카락은 아름답게 흘러내린다. 고개를 흔들 때마다 거칠게
툭툭 따라오던 느낌이 아닌 비단결이 미끄러지듯 사뿐거리는 느낌에 감탄한다.
자신이 이렇게 귀여웠었다니.
‘레에에에....’
사랑하는 마마의 허벅지를 안고 이리저리 고개를 비빈다. 엄지의 옷을 세탁하고 있던 메이드실장은 그런
엄지의 애교가 기분 좋은지 마주 미소지어준다. 빨래시간이 길어져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마마에게
질린 엄지는 다른 놀이거리를 찾아 돌아다닌다. 남자로부터 하자품목 혹은 반품된 품목들을 많이 받아온
메이드실장은 웬만한 사육실장들 이상으로 장난감(및 각종 잡동사니)들이 풍부했다.
골판지 상자 뒤쪽에 끼워져 있는 상자를 발견하자마자 엄지는 반색하며 포르르 달려간다. 생각보다 큰
상자의 크기에도 전혀 주저하지 않고 끝머리를 붙잡아 끌어당긴다.
‘레엣-! 레엣-! 레엣-!’
줄다리기를 하듯 기합을 넣어가며 한 번씩 끌어당길 때마다 조금씩 끌려나오는 상자. 골판지와 벽 사이에서
빠져나오자, 뚜껑이 닫히는 것을 막아주던 장애물이 없어진 위쪽 뚜껑이 조금씩 열린다. 비스듬히 쓰러지는
상자에 슬금슬금 뒤로 물러난다. 균형을 잃은 안쪽의 내용물들이 와그르 쏟아지고 가벼운 상자는 그 무더미
위에 비스듬히 엎어진 상태가 된다. 산같이 쌓인 장난감들의 모습에 할 말을 잊는다. 너무나 많아 뭐가 뭔지도
다 눈에 들어오지 않고 심지어 어떻게 갖고 노는지 상상도 안 가는 것들도 많다.
그 중 엄지의 눈길을 가장 끌어당긴 것은 곰돌이 인형. 그녀 앞으로 데굴데굴 굴러오는 인형을 본 엄지는
감탄의 신음을 흘리며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집어든다. 부드러운 겉천에 푹신한 솜으로 안을 채운 싸구려 인형.
심지어 눈의 크기도 짝짝이로 나온 그것은 마감이 형편없었지만 엄지에게 있어선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렛츄우~렛츄우우~’
탄성을 내지르며 곰돌이 인형을 꼭 껴안는다. 안쪽에 내장된 센서가 압력을 감지하자 녹음된 소리가 흘러
나온다.
‘알라뷰!’
꼭 끌어안고 있던 엄지는 곰돌이의 음성에 깜짝 놀라 가슴팍에서 떼어 열심히 관찰한다. 배시시 퍼지는 웃음.
다시 한 번 꼭 끌어안자 아까와 같이 알라뷰! 하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섞였어도 엄지는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곰돌이라 믿는다.
‘렛츄우~렛츄우우~’
그렇게 그녀에겐 동생이 생겼다.
❒
남자가 다시 돌아올 때 즈음. 다행히 엄지는 곰돌이와 실컷 놀고 잠에 들었다. 안 그래도 간만의 샤워로
심신이 노곤해져 있었던 터. 자기 전 간식으로 젤리형 푸드까지 한 알 챙겨먹었다. 곰돌이도 먹으라고
입에 억지로 쑤셔 넣었지만, 그저 녹음된 기계음만 내뱉는 인형에게 푸드를 먹는 기능까진 없었다.
어린 아이의 순진한 모습에 메이드실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곰돌이는 살아있는 게 아니라 알려줬지만 언어를
모르는 엄지는 고개를 갸웃하고 도로 열심히 푸드를 곰돌이의 입에 밀어 넣었다. 뭐 결국엔 단념하고 자신이
먹어치웠지만.
‘레푸-레푸-’
구더기와 같은 목소리로 숨을 들이 내쉬는 엄지. 주홍빛 쿠션 위에 드러누워 구더기 쿠션을 꼭 끌어안은 상태로
잠에 들었다. 이따금 옹알이를 하며 곰돌이를 세게 끌어안으면 알라뷰!하고 울리는 울음에 반사적으로 뒤척인다.
입을 짭짭 자시며 벌어진 입술사이로 침줄기가 흘러나와 누워있는 주변을 적시는 것을 확인하고 골판지 날개를
덮는다.
진열장으로 나와 언제나처럼 청소를 마저 하고 주변정리를 하다보면 익숙한 차량 구동음이 들린다. 본래대로면
바로 문을 열고 들어와야 할 남자가 오늘만큼은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가까이 가보면 그것은
어린 인간여자. 손에 뭔가를 들어 보이며 다급하게 말하는 것에 남자는 쩔쩔 매고 있었다.
적당한 말을 대답했는지 둘러댔는지 모르겠지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온 남자는 열쇠를 꺼내어 숍으로 들어온다.
‘데스우~’
인사를 하는 메이드실장의 머리를 톡톡 쓰다듬어 준다. 뒤쪽 여자의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안녕~’
싱긋 웃으며 뒤따라 들어오는 여자. 간만의 상큼한 대응에 기분이 붕 뜬다. 평소 쓰지 않는 방으로 들어간
남자를 따라가는 여자아이. 스쳐지나가며 본 그 손바닥 위에 있던 것은 작은 독라의 자실장이 안겨있었다.
두 눈을 꼭 닫고 파들파들 떨고 있는 불쌍한 아기.
순간 메이드실장과 눈을 마주친 독라의 자실장은 히스테릭하게 울부짖으며 몸을 비틀기 시작했다.
‘테챠아아....! 테챠아아아...!’
성체의 실장석에게 당한 기억이 있는지 여기저기가 부러진 팔다리를 비틀며 울부짖는다. 당황한 메이드실장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선다. 왜 자실장이 울부짖는지 전혀 보지 못 했던 여자아이는 미간을 찡그리며 조근조근
달랜다.
‘조용~가만가만~이제 치료해 줄거야. 조금만 기달려. 아픈 거 사라진다니깐~’
메이드실장은 안쪽 방으로 들어간 두 사람의 뒤를 슬그머니 쫓아 문 뒤쪽에 몸을 반쯤 가리고 훔쳐본다.
진료대 위에 올려진 작은 독라의 자실장. 자세히 진료를 위해 탁상 위의 스탠드의 전원을 켜자 그 강렬한
빛에 부러진 팔을 굼실굼실 들어 올리며 눈을 가로막는다.
‘어우...어떡게....’
‘상처를 보니깐 실장석들끼리 린치를 당한 것 같습니다. 외상은 하루 안에 회복할 겁니다’
다리를 만지자 움찔하며 끌어당기는 모습을 바라보던 소녀는 조금 납득가지 않는 표정.
‘이렇게나 상처투성이인데다 팔도 부러진게 하루만에요?’
‘실장석에게 있어서 외상은 별로 대수롭지 않아요. 활성제 몇 방울이면 하루 만에 회복합니다. 담궈 놓으면
한 시간도 안 걸릴 거고요‘
‘그럼 활성제에 담궈 주세요’
그 말에 남자의 눈썹은 올라간다.
‘예 그럼 추가요금 발생하실 수 있습니다. 인지해주세요’
‘네! 그냥 얼른 안 아프게 해주세요’
뒤쪽 유리선반에서 꺼낸 노란색 액체를 용기에 채워 넣는다.
‘조심...조심...’
‘챠아아...테챠아....’
멀쩡한 한 쪽 팔로 남자의 손을 밀어내려 하는 것은 명백한 거부의사. 확장된 동공은 공포의 증거. 고르지
못한 숨을 헐떡이며 꼬물거리던 녀석을 실장활성제 안에 담군다.
‘테에에...! 테치이이...!’
활성제가 상처 안으로 스며들어 자극하였고 그에 따라 경련한다. 상처를 만난 활성제는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작용했고 잠시 후 입에 거품을 물고 기절한 채 연신 움찔거리는 독라를 바라보며 불안한 표정으로
여자는 말을 꺼낸다.
‘저기...괜찮은거에요?’
‘예 원래 이럽니다’
한편 문 바깥쪽에서 대화를 옅듣고 있던 메이드실장. 그 아이에 대한 처치가 잘 되어감에 감사를 한다. 역시나
좋은 사람들도 분명 있다.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끼며 치료과정을 자세히 보기 위해 문 안쪽으로 한발짝
내딛은 순간, 정문을 여는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운다. 천천히 복도를 나와 카운터를 보면 예전에 봤던 손님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주인을 부르기 위해 인기척을 내려던 찰나 구석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메이드실장을
발견한다.
손님은 익숙하게 네모난 기계를 꺼내어 메이드실장에게 향한다. 그녀는 이것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인간들과 원활하게 대화가 가능한 기계.
이 손님은 예전 최고급자실장을 구매해갔던 사람이다. 약간 도도했지만 심성은 착한 아이.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혈통에 월등한 지능을 갖고 있었던 아이다. 혹시나 선택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여기 있는 신사분이 무사히 선택을 해주셨다.
기계에 불이 켜진 것을 보자마자 메이드실장은 그 손님에게 감사를 표한다. 예전 그 아이를 선택해준 것에
대해. 인사는 거기까지. 그 이상은 자신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행복하게 세레브실장의 삶을
살고 있다고 믿는 수밖에 없다.
실상은 주인에게 냉대를 받으며 실장생 최초 고된 일을 하며 동전을 모으고 있었지만,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손님 남자는 건성으로 대답을 한다. 숍 주인의 행방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불쌍한 아이를 치료해주고 있다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비록 정식 주인님은 아니지만 자신을 거두어주고 있는 남자에 대한 자부심인걸까.
여기서 실장석 치료도 하는지 몰랐다며 중얼거리는 남자의 말은 이해하지 못 해 고개를 갸웃해보지만
손님 남자는 더 이상의 대화는 관심 없는지 커피를 가져오란 말을 마지막으로 기계에 전원을 내린다.
자신의 또 다른 자랑인 커피타기를 마치고 나선, 소리 없이 커피를 홀짝이는 손님을 내버려두고 가판대를
돌아다니며 물품을 정리한다.
‘미안해 기다렸어?’
‘아니 뭐 별로. 무슨 치료도 다루냐?’
‘내 원래 주전공이 수의학이야’
‘아 맞네’
남자는 뒤편에서 울리는 자실장 울음과 그것을 달래는 여자 목소리 쪽을 고개로 가리키며 묻는다. 방 안에
있을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춘 목소리로.
‘안에 누구 있어?’
‘아~손님. 외상입은 자실장 치료하고 있어’
‘흠’
더 이상의 흥미는 없다는 듯 짧게 끊는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실통법 통과됐잖아’
‘그 병신짓’
역시나 업계쪽 반발은 심하구나 라고 머릿속으로 혼잣말을 한 손님 남자는 말을 잇는다.
‘발생하는 비용을 전부 업체에 떠넘기게 됐지’
‘그러니깐 말이야’
‘혹시 그 원사육실장들 내가 데려가도 될까?’
너무나 괜찮은 제안에 주인 남자는 허리에 팔짱을 끼고 손님남자를 똑바로 바라본다.
‘정말이야? 근데 어디에 쓰려고?’
‘아 뭐...요즘 실험하고 있는게 있어서’
주인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뜬다. 솔직히 그깟 자신에게 돈을 가져다주지도 못 하는 실장석들이 학대당해
죽던 말던 상관은 없다. 허나 학대파에게 일부러 실장석을 공급했다는 오명을 쓰는 것은 매출에 좋지
않다.
‘학대는 아니고?’
‘요즘 학대 안 해’
말도 안 돼는 선언에 그만 웃음을 터트린다. 이 친구를 알고 지낸지가 몇 년인데!
‘아 뭐...그래 나한텐 좋지. 적어도 기름값하고 일부러 소각장까지 가는 수고 덜으니 좋지. 문제는...
우리 구역에서만 하나도 반납 안 하면서 여전히 들실장만 늘어나면 나만 의심을 산단 말이야...‘
말을 흐리는 주인의 생각을 예상했다는 듯 남자는 재빨리 받아친다.
‘걱정하지마. 이 동네 들실장들 죄다 한 쪽으로 모일 거니까. 그리고 의심하면 지들이 어쩔 건데? 자체적으로
처리했다 해도 딱히 상관없잖아. 그리고 이 법 조만간 위헌 때릴 확률 100퍼야. 애초 말이 안돼’
뭔가 하고 있는 건 맞는 모양. 학대파에 악취미를 갖고 있는 녀석이지만,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게다가
뒤에 한 말도 맞는 말이다. 실효도 없는데다 정부에서 부담해야 할 비용을 민간업체에 떠넘긴 일방적 처사는
벌써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조만간 개정 혹은 폐지될 것이 뻔하다. 그 사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할 손실을 줄일
수 있다면 뭔 들 못하랴. 생각을 마친 주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에게 손해는 없다.
‘매주 월요일에 올게. 그 외는 식당일이 바빠서’
‘알았어 준비해놓을게’
이야기에 집중하는 바람에 안쪽 방에 아직 남아있던 여자의 존재를 간신히 생각해낸다. 별로 떳떳치 못한
얘기를 계속 하는데 부담이 느껴졌는지 손님은 짤막하게 인사를 하고 문을 연다.
‘먼저 갈게’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하고 도로 안쪽 방으로 돌아온다. 독라 자실장은 가사상태에 접어든다. 몸의 활동을
제한하고 모든 신경을 회복에 집중한다. 몸 여기저기에서 부글거리며 재생을 시작하는 모습을 확인하고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이건 키우실건가요?’
‘아....그게 좀....’
이런 전개 익숙하다. 많이 쳐줘야 고등학생 언저리의 나이. 부모님의 의사가 절대적이겠지. 실장석을 몰래
키운다는 건 말이 안 돼는 거고. 제발 샵에서 키워달라는 헛소리만 나오지 않기를 빌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혹시 입양처를 구해주실 수 있나요? 숍에서 그런 것도 한다 들었는데...’
‘휴우...그건 개나 고양이들 얘기지 실장석은 해당 없습니다. 워낙 환경에 민감한 동물이라 제대로 유통과정을
거친 것들만 취급해야합니다. 들실장을 함부로 분양한다 광고하면 협회 쪽에서 제재가 들어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몇 일 돌보다 보건소로 보내는 것밖에 없습니다. 거기서도 입양되지 않으면 뭐...안락사됩니다‘
잔혹한 현실에 침을 꿀꺽 삼키는 여자. 찰랑거리는 물에 반쯤 잠켜 있는 독라의 자실장은 점차 안정적으로 숨을
내쉬고 있다. 이따금 나쁜 현실을 꿈에서도 만나는지 움찔거린다. 도로 내보낸다더라도 더 오래 고통을 받고
죽을 것이 뻔하다. 작고 연약한 생명체. 죽음이 필연인 생명체.
남자는 최대한 현실을 순화해서 말해줬다. 최근 법이 바뀌어 보건소가 아닌 직빵으로 소각장행이다. 분양이고
뭐가 할 시간도 없이 불에 타 처분된다. 실장석을 상대론 독극물주사도 아깝다는 것이 지론. 현재 소각방식에서
발생되는 대기오염도 아깝다는 여론이 나오는 현실.
‘아...알겟습니다. 더 이상 투정은 안 부릴게요. 그냥 방침대로 해주세요’
‘최대한 돌보다 보내주겠습니다’
어깨가 축 쳐지는 여자. 아마 실장석이었다면 귀가 축 내려갔을 것이다. 아직도 가사상태에 빠져 얕은 숨만을
쉬고 있는 독라 자실장의 뺨을 몇 번 어루만진다. 조그마한 입을 호물거리며 뭐라 중얼거린 거리는 것이 잠시
멈춘 것을 빼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안녕 미안해’
그것으로 마지막이었다. 여자는 계산을 하고 나갔다. 사용한 활성제 값만 받은 것은 남자의 배려인지 모르고.
여자가 떠난 것으로 다시 숍은 조용해졌다. 아니 정확히는 사람 목소리만 사라지고 매대에서 제멋대로
조잘거리는 실장석들의 소리는 이어지지만.
저런 만화 속 여주인공같은 캐릭터가 아직도 남아있다니. 괜히 감상적이 된 남자는 펜대로 책상을 톡톡 치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깨어난다.
‘외모는 별로 여주인공스럽진 않았지만’
머리를 쓸어올린 남자는 조용히 혼잣말을 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비가 올 것 같다. 수거함을 확인해야겠다.
뭐가 그리 기분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메이드실장을 지나쳐 뒷문으로 나간다. 전에 없었던 커다란
녹색 상자가 설치되어 있다. 하얀색 글씨로 유기 및 들 실장석 수거함이라 적힌 상자 안쪽으론 조그맣게
속닥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움직이며 나는 바스락소리가 들린다. 탈출을 시도하는 것인지 벽을 긁어대는
소리도 함께 들린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손잡이를 붙든 남자. 슬며시 도로 놨다가 결심을 굳혔는지 힘차게 열어젖힌다.
‘텟챠아아-!’
‘데스데스우! 데스우우웃!’
역시나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비명. 영문도 모른 채 이곳에 강제로 이동되었다. 언제나처럼 배불리 먹고
편안히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이런 곳에 갇혀있다면 얼마나 당혹스럽겠는가. 이런 반응이 정상. 허나 그런
녀석들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 동정심은 없었다. 플라스틱 재질의 통 안에서 뭉쳐있던 실장석들에게서
스며 올라오는 악취에 얼굴을 찡그리며 통의 내부 하자가 없음만을 확인하고 얼른 문을 닫는다.
‘어휴 위헌 언제 때리냐.....일단 방향제라도 잔뜩 사서 도배를 해놔야지 안 되겠다’
영빈이한테 일주일에 두 번 오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그나마 자신은 건물주라 뒤쪽 공간을 맘껏 쓸 수
있으니 다행이지 다른 숍의 상황은 처절하다 들었다. 소문으론 자체적으로 도로리 용액에 녹여 하수구에
버린다는데....조만간 신문에 나게 생겼다.
❒
쿵 하고 닫히는 수거함 뚜껑을 향해 손을 벌리며 꽥꽥 우는 자실장이 있다. 어지간한 애호파 밑에서 살았는지
장신구가 치렁치렁 달린 실장옷을 입고 있는 녀석. 언제나 향수를 뿌려 은은한 꽃향기가 나던 옷에선 역한
땀냄새와 똥냄새만이 진동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엄청난 악취에 머리가 띵할 정도. 희미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고개를 휘휘 내젖고 눈을 끔뻑인다.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옆으로 뚫린 숨구멍 사이로 희미하게 들어오는 빛줄기. 눈을 깜빡이며 그 작은 자실장은 몸을 파르르 떤다.
‘왜’와 ‘어디’를 생각하는 게 아닌 마마가 어디갔는지에 대해만 생각하고 있다.
사육실장인 메론.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즐거운 나날이었다. 장난감과 옷으로 차고 넘치는 자신의 작은 성안에서
공주님 놀이를 맘껏 했다. 최근 들어 쌀쌀맞아진 닝겐마마였지만 어제는 굉장히 친절하게 돌아왔다. 자신이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처럼 친절하게 대해줬다.
맘마를 더 먹고 싶어 식판을 집어던져도 똥을 잔뜩 싸질러 빵빵해진 팬티로 돌아다녀도, 만화영화가 보고 싶어
바닥에 드러누우며 떼를 써도 전부 받아줬다. 본래는 화를 내었을 터인데 어제는 모두 받아줬다. 정말 최고의
하루를 보낸 메론. 최고로 들뜬 기분으로 놀고 또 놀고 잔뜩 먹었다. 향락에 지친 공주님처럼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드디어 마마가 착하게 돌아왔다고. 관대한 자신이 그 동안 마마의 서툴음과 게으름을 용서해준 것이
보람이 있었다고 자축하며 잠에 들었다.
‘테츄우....’
그런데 눈을 떠보니 이 모양이다. 이런 곳 싫다. 어서 마마 곁으로 가고 싶다. 정말 오랜시간 만에 제대로
정신을 차린 마마다. 어서 가서 맘껏 놀고 맘껏 자고 맘껏 먹어야한다. 그래야 하는데 왜 이런 곳에 쳐박혀
있는가.
‘테치이~테치이이~’
주변에 돌아다니는 다른 녀석들에게 이곳에서 꺼내달라 명령을 했다. 허나 저 아둔한 것들은 들은 채도 하지
않고 머리를 벽에 쿵쿵 박거나 여기저기에서 벽을 긁어대기 바빴다. 자신을 무시하는 것은 마마 하나만으로도
족하거늘 이런 비천한 것들에게 까지 무시를 당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메론은 발을 쿵쿵 굴린다.
‘테샤아-! 테샤아아-!’
지나가던 성체 한 마리의 스커트를 붙잡고 소리를 지른다. 자신을 이곳에서 내보내라고. 그리고 주먹으로
돌아왔다. 자신도 황당한 상황에 쪼그마한 자실장 녀석의 소란에 그만 스트레스의 한계치가 넘어간 것.
‘데스웃! 데스데스웃!’
‘챠앗! 테?! 테챠아앗-!’
콧김을 씩씩 내뱉으며 주먹을 휘두르는 성체실장과 그 밑에 깔려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실장. 이빨이 깨지고
얼굴뼈가 가라앉고 들어 올린 팔이 부러진다. 그 정도로 화가 풀렸는지 성체실장은 침을 한 번 내뱉고
벽을 두드리려던 작업을 계속한다.
‘테에에...테에에....’
공포에 질린 메론은 그나마 멀쩡한 한쪽 팔을 열심히 놀리며 구석으로 기어간다. 벽으로 가 몸을 비스듬히
눕힐 때까지 귀신들린 듯 처량하게 울며. 너무나 아파 마마를 불렀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성체는 무서워
자신과 체구가 비슷한 자실장들에게 도와 달라 외쳤지만 저마다 경멸어린 말과 함께 발길질만 하였다.
‘테헤에에엥....테에에에엥...’
그제야 마마를 보고 싶다며 울음을 터트리는 메론. 불행 중 다행으로, 그녀의 고난은 일주일도 채 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이후 보내질 곳은 이곳보다 더한 지옥이겠지만. 길고 길게 느껴지는 하루였지만
그래도 시간은 흘러 해가 저문다.
❒
블라인드를 내리는 남자. 불을 끄고 야간조명으로 전환하자 잠을 잘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저마다 편한
자세를 취하며 드러눕는다. 셋트로 팔리는 녀석들은 자매들끼리, 어미와 있는 녀석들은 마마에게 안기고,
혼자 있는 녀석들은 침소에 대자로 뻗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잘 있어’
‘데스~’
경쾌하게 인사를 하며 배웅하는 메이드실장. 요즘 따라 기분이 좋아 보인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혹시...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한쪽 구석에 접어둔다. 실장숍은 철저히
꽃가루 방지대책을 마련해놨다. 그리고 숍에서 벗어나게 한 적도 없다. 손님과 접촉도 거의 드물다.
‘뭐 기분좋나 보지’
차에 시동을 넣으며 귀가하는 남자의 머리는 곧 실장석이 아닌 야식의 선택에 대한 고민이 대신한다.
‘레에에엥-! 레에에엥-!’
창고 한 구석에서 엉엉 우는 엄지실장. 그 옆의 성체실장은 발을 굴리고 어쩔 줄 몰른다. 그녀의 문제는
간단하다. 맛있는 것이 먹고 싶다는 것. 언제나 먹던 젤리형 푸드. 오늘 마지막 남은 한 알을 먹어치웠다.
봉지를 거꾸로 뒤집어놔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입을 벌리며 배고픔을 호소하는 엄지에게 자신이
평소 먹는 푸드를 건네줘봤지만 그것은 별로 맛이 없다고 알고 있는 엄지는 그녀의 손끝을 세게 내리친다.
데구르르 굴러가는 푸드를 얼른 주워 자신의 입에 넣는 메이드 실장.
솔직히 그녀가 먹는 것은 꽤나 괜찮은 것이다. 영양은 물론 맛도 신경 쓴 준수한 제품이다. 인건비를 아낀만큼
괜찮은 것으로 챙겨주는 남자의 배려가 보이는 밥상. 하지만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진 엄지의 입맛은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뎃스웅~♪ 뎃스웅~♪’
슈웅~여기 맛난 게 가는 데스! 어서 붙잡는 데스웅~그렇지 않으면 영영 놓치는 데스우~
아기의 재미를 북돋기 위해 어설픈 효과음을 내며 유혹을 한다. 모형 비행기를 갖고 놀 듯 푸드를 쥐고 이리저리
흔들다 엄지의 작은 입술 사이에 살며시 넣으려 했지만....
‘레샤아앗-! 레샤아앗-!’
메이드실장의 손에서 거칠게 푸드를 낚아채더니 바닥에 내던진다. 그것을 박살낼 요량으로 발을 들어올려
몇 번 내려찍지만 모서리 끝이 약간 바스라진 뿐. 경멸의 의미로 침을 뱉고 네 발로 서서 으르렁거린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 하는 이상 저것은 무능한 쓰레기다. 라고 생각하며 몇 번 짖어댄다.
‘데에에...데스우....’
고개를 휘휘 저으며 이미 수없이 많이 내보인 빈껍데기를 또 보여준다. 은색으로 반짝거리는 내부 포장지는
작은 엄지의 못생긴 얼굴만 반사시킬 뿐 아무것도 품고 있지 않다. 다른 엄지들보다도 훨씬 지능이 딸리는
녀석은 텅 빈 봉지가 뭘 뜻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 한다. 그녀의 입장에선 배고픈 자신에게 반짝거리는
예쁜 그림을 들어 올리는 영문 모를 짓거리에 불과했다.
맛나맛나가 먹고 싶다. 그림은 보고 싶지 않다. 맛나맛나를 가져와라. 저런 녹색 덩어리는 못 먹는다.
한심한 신음을 흘리던 메이드실장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자신의 구역을 뒤진다. 부스럭거리며 뭔가를 찾는
모습에 엄지는 간사하게도 울음소리 톤을 낮추어 힐끔힐끔 곁눈질한다. 드디어 맛난 것을 주는 것일까.
수색이 길어지자 엄지는 크게 울어재낀다. 맛난 것이 먹고 싶다. 그런데 왜 안 주는가. 암만 뒤져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 안쓰러운 마음으로 가슴에 안는다.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 하는 이상 나눠줄 애정도 없다는 듯
애써 밀어내는 엄지. 허나 그 힘이 미약하여 그녀는 눈치도 채지 못 하고 가슴팍에 꼭 껴안는다.
‘레챠아앗! 레치레치이잇!’
순간, 마지막 시도라 생각하고 자신의 가슴을 드러내본다. 진한 젖내가 훅 풍겨오는 것에 엄지의 작은 콧구멍은
벌름거리며 반응한다.
‘레츄우...레츄우....’
‘데스웅~’
옳다구나 싶은 메이드실장은 더욱 밀어붙인다. 자신의 유두에 얼굴을 바싹 붙인다. 그리운 냄새. 마마의 냄새.
기억 저편으로 흐릿하게 스쳐지나가는 가족들의 모습. 저게 누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지만 배고픔은 그녀를
잠식시켰다.
‘...츄아....츄아....’
??거리는 추잡한 소리를 내며 젖을 빠는 엄지. 가슴팍과 자신의 입 주변으로 걸쭉한 모유와 침줄기가 섞인
오염물을 번지게 한다. 비릿한 냄새와 섞인 구릿한 내음이 자신의 가슴팍 가득 번짐에도 흐믓하게 내려 보는
메이드실장. 한 건 했다는 듯 한도의 한숨을 푹 내쉰다. 달달한 젖내를 깊게 들어내쉬며 그녀들의 밤은 깊어갔다.
❒
출근을 하자마자 남자가 들린 곳은 진료실. 활성제 액을 전부 흡수하여 덩그렁이 남겨져 있는 독라 자실장.
차가운 트레이와 알몸의 신체로 인해 스며오는 한기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박스를
조립하여 자실장을 그쪽으로 옮긴다. 활성제가 말라붙어 찐득찐득하다. 손의 온기는 자실장을 금방 깨운다.
‘테치이...테치이....’
눈물자국이 번진 눈을 깜빡이며 뜨면 주변은 갈색 벽으로 둘러 싸여있다. 다시 몇 번 눈을 깜빡여보면
커다란 남자가 자신에게 수건을 덮어준다.
‘테치이...테치이.....’
동족들에게 학대를 받아 모든 것이 무섭게 느껴진다. 가까이 가면 아픈 일을 당한다. 태어나서 지금껏 경험한
것은 폭력밖에 없다. 어미의 품에서 강제로 떼어져 머리카락과 옷을 잃어야만 했다. 지금껏 쭉 장난감으로
살아왔다. 깨물고 때리고. 싫다 이제는 싫다.
구석에 웅크리고 도리질을 하는 자실장. 그런 마음을 읽은 남자는 말없이 자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옳지 착하지...착하지...’
‘테칫?!....테에에.....테에에에.....’
다가오는 손길에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고 손을 들어 방어자세를 취하는 자실장은 뒤로 이어지는 따듯한
손길에 혼란스러운 표정. 치켜든 손은 서서히 내리고 총구는 벌렁거리며 약간의 물똥을 뱉는다.
눈을 끔뻑이며 남자의 손에 몸을 맡기는 자실장. 이제야 자신의 몸의 상처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챈다. 새로
태어난 것처럼 말끔해진 자신의 피부에 놀란다. 뽀득거리는 피부를 문지르며 테츄테츄 감탄한다. 물그릇을
내려주고 다시 밖으로 나가는 남자.
‘테치! 테치테치잇! 챠앗!’
같이 따라 나가기 위해 나섰다 골판지 벽에 얼굴을 들이받고 뒤로 자빠진다. 코끝이 얼얼한 통증은 예전
들실장들에게 얻어 맞었던 그 느낌.
잠깐의 꿈이었을까. 다시 현실로 돌아온 것일까. 벌벌 떨며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용서를 비는 녀석. 5분간
엎드려 있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음에 살포시 고개를 든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수건과 물그릇만 놓여있을 뿐 무서운 것은 없다.
‘테치이....’
말라붙어 텁텁한 입을 다시며 물그릇으로 기어간 자실장. 그릇이 넘실거릴 정도로 많은 양의 물은 마셔본 적이
없다. 언제나 마셔왔던 것은 다른 동족들이 쓰고 버린 물이었다. 똥과 때이 섞여있는 씁쓸한 맛의 물. 그나마도
있으면 운이 좋은 날이다. 보통은 다른 동족들의 똥을 먹어 그 안에 남아있는 수분을 보충했다.
투명한 물. 그것이 온전히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언제나 그렇듯 고개를 푹 숙이고 혀로 핥으려고 하지만 코와 입, 눈으로 들어가는 것에 캑캑 기침을 한다.
뻑뻑해진 눈을 끔뻑이며 요령을 익혀 수면에서 살짝 얼굴을 띠우고 혓바닥으로 물을 튕긴다.
‘텟츄우~♪’
달콤한 환성을 지른다. 신선한 물이 주는 청량함에 몸을 부르르 떤다. 배에 가득찬 물이 묽은 똥으로 나올
때까지 들이킨다.
카운터로 돌아간 남자는 평소처럼 일과를 진행한다. 왜인지 메이드실장 녀석의 가슴팍이 젖어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한 것을 제외하곤 언제나처럼 돌아갔다. 메이드실장도 기분이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힘차게 걸레질을 하였다.
‘기분좋은 일 있냐?’
‘데스우~!’
힘찬 대답에 피식 웃고 다시 서류작업에 들어간다.
❒
독라 자실장의 외상은 모두 회복되었다. 심지어 부분적이었지만 앞머리 일부도 재생하였다. 문제는 내상이
심한지 좀처럼 고형물을 삼키지 못 한다. 들생활 시절 배를 자주 걷어차인 것이 원인으로 여겨진다. 결국
영양분을 공급하려면....
‘크응....츄아....테킁...테킁...’
젖병으로 먹이는 수밖에 없다. 코로 숨을 내쉬며 열심히 젖병을 빠는 자실장.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애교를 부리는 양 팔다리를 꼬물거린다. 고소하면서도 달달한 우유. 설탕을 탄 것에 따듯하게 덥혀
굉장히 맛있다. 배가 부르자 고개를 휘휘 내저어 젖병에서 입을 뗀다. 남자는 젖병을 내려놓고
조심스레 녀석을 내려준다.
‘테츄우! 테츄테츄우웃!’
놀아달라는 듯 두 손을 뻗어오는 자실잘에게 공을 건네준다. 골판지 안쪽에서 터져나오는 탄성과 종이박스와
살이 마찰되며 나는 바스락소리를 듣는 남자의 심정은 복잡했다. 대체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본래대로라면 당장 뒤쪽 실장석 수거함에 던져버려야 한다. 왠지 저 녀석은 살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실장석은 수십 마리나 키우고 있다. 숍에서 키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분양은 불가능하다.
‘테치이~테?!’
공을 벽에 던져 튕긴 다음 도로 잡는 자실장. 허나 미끄러운 나머지 바닥에 흘리며 머리를 찧는다.
‘...치이...’
아픈 머리를 감싸며 끙끙댄다. 눈물줄기를 달고 두리번거리던 자실장은 자신을 내려보고 있는 남자의 눈을
마주보며 방긋 웃는다.
‘텟츙~♪’
어찌 보면 실장석은 사랑스러운 존재다. 작고 체구에 귀여운 샘김새. 풍부한 감정표현은 말할 것도 없다.
슬픈 일이 있어도 주인얼굴만 보면 금새 헤실헤실 웃고, 좋은 일이 있으면 나누고. 허나 그 사랑스러운
기간은 매우 짧다. 인간의 안 좋은 모습도 같이 빼닮았는지 금방 우쭐해하고 착각한다. 죽음과 학대도
불러오는 무시무시한 착각. 기준치는 한없이 높아지는 반면 심적 성장은 거의 없어 여전히 손이 많이
가는 동물.
여도지죄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있을 때는 사랑스럽게 보이던 것들이 마음이 떠난 때에 오히려 독으로
돌아오는 것을. 사람들은 심적위안을 얻기 위해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애완동물의 심적위안을 해주기
위함이 아니라. 이기적으로 들리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하긴 커녕 스트레스를 주는
실장석들은 쫓겨날 운명을 품고 있다.
‘텟츄우~텟츄우~’
놀이를 바꿨는지 공을 자신의 새끼인 마냥 수건을 덮어주고 쓰다듬는다. 자신이 부르는 자장가에 자신이
졸음이 온 녀석은 눈을 몇 번 끔뻑이더니 그 자리에 드러눕는다. 태아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조용히 숨을
쉬는 자실장에게 눈을 뗀 남자는 말없이 등을 돌리다.
한창 지루한 서류작업을 하던 중, 귀를 의심하게 하는 소리를 듣는다.
‘레치이....! 레치이...!’
‘뭐지?’
귀를 잔뜩 긴장시켜 소리를 추적한다. 매장에서 취급하는 엄지는 없다. 들실장이 몰래 들어온 것일까. 그렇다면
잡아야 한다. 녀석이 도망가지 않도록 펜을 내려놓고 살금살금 발을 내딛는다. 뚝 그친 목소리.
메이드실장을 부를까? 이런 건 녀석이 더 잘 찾을 수 있다. 엄지는 조그마해서 지나치기 쉽다. 여러모로
그 녀석이 훨씬 수색에 유리하다. 막상 부르려고 보니 드는 생각. 저 녀석 아까부터 창고로 들어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장난감을 잃어버렸는지 골판지를 탈탈 털고 문 뒤쪽을 열어보고 온갖 곳을 뒤지고 있다.
괜히 소리내서 불렀다간 영영 놓칠 것 같고...들실장들은 꼴에 야생동물이라고 굉장히 눈치가 빠르다.
사냥하듯 조용히 움직여야 함을 알고 있는 남자는 자신이 잡기로 결정한다.
‘레치잇! 레치이잇!’
용을 쓰는 목소리. 놓치지 않고 살금살금 향한다. 그리고 발견한다.
실장석 간식들이 진열된 매대 아래서 부지런히 점프하고 있는 엄지실장의 모습을. 더 이상 모습을 감춰야할
이유가 없어 허리를 곧추 펴고 성큼성큼 다가간다. 저렇게 한 가지에 집중하여 주변 경계를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생후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일 것. 남자는 엄지의 뒤에 쭈그려 앉는다.
‘레츄우? 레치이~레치레치이~’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선 오히려 좋아하며 매대를 손짓한다. 이것이 먹을 것이라는 걸 어떻게 아는 거지?
사람을 보고도 전혀 두려워 하지도 않고. 게다가 제법 토실토실해보인다. 옷이나 피부도 누군가 씻겼는지 깨끗하다.
행동거지로 유추해보건데 실장숍에 익숙하다. 혹은 실장숍에 있는 실장석에게 길러졌던가.
천천히 창고 뒤쪽을 바라보면 다급한 숨을 헐떡이는 메이드 실장이 있었다. 충격과 공포로 떨리는 눈빛을 하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가슴에 포갠 채 뭔가를 소원하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엄지 네가 데리고 있었구나’
이제야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어쩐지 신나 보였다.
예전 젤리 푸드를 주고 난 다음날 발견한 똥의 흔적. 메이드실장은 그런 식 실수를 한적이 없다. 물론 간혹
똥은 지리지만 바로 치우지 그런 식으로 다음날까지 방치해두지 않는다. 전날 들어온 들실장 일가. 세 마리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4마리였나보다. 흘렸는지 아니면 잠시 바닥에 내려놨는지 따로 떨어졌고 그대로 밤까지
숨어있던 것을 메이드실장 녀석이 거둔 것이다.
최근 들이 신이 나 보였던 것도. 자꾸 창고로 갔던 것도. 가슴팍이 늘 젖어있던 것도. 이 엄지 때문이었다.
화는 별로 나지 않는다. 그는 메이드실장이 자를 가졌다 해도 별로 화를 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 오직 걱정만
될 뿐이다. 이 엄지의 상태는 불량했다.
‘레츄우! 레츄웃!’
자신의 요구가 들어지지 않는 것에 화를 내며 발을 걷어차고 있었다. 린갈에도 알 수 없음이라고 뜨는 것으로
보아 언어능력도 심하게 딸린다. 언어를 모르는 이상 사회성은 글러먹었다. 그녀는 인간 혹은 실장석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다. 영원히 제멋대로 투정만 부릴 것이다.
‘괜찮아 이런 걸로 화내지 않아. 널 어떡케 하진 않을 거야’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역시 자신은 귀엽다는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는 녀석. 그것도 잠시 허기가
도로 정신을 지배했는지 남자의 신발 끝을 걷어차며 젤리형 푸드를 가리키며 뭐라 울어댔다.
다른 매대를 지나쳐 이곳을 특정하여 온 것은 오직 이것만 알고 있다는 뜻이다. 오히려 아무것도 모르는
실장석들을 유혹하는 물건들은 옆의 매대에 더 많다. 투명한 비닐에 들어있는 콘페이토나 인형 혹 공 등.
현재 엄지가 이 세상에서 알고 있는 음식은 오로지 젤리 푸드 뿐. 그래서 이것을 요구하는 것.
‘다만 난 니가 걱정돼서 그런다. 이미 얘는 글렀어. 너도 알잖아. 본보기용으로도 안 돼. 들에서도 못 살아가.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말을 몰라. 부족한 곳에 있다 풍족한 곳에 오면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바랄거야. 얘는 그 정도가 더 심하고. 애초 언어에 장애가 있어 첫 길을 들이고 안 들이고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매대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콧김을 씩씩 내뱉는 녀석. 젤리푸드에 고정된 두 눈엔 실핏줄이 올라온다. 이내
네발로 기어 이빨을 드러내고 개처럼 으르렁거린다.
뭔가를 시도하려는지 아니면 다급한 마음에 아이를 안고 싶어서인지 메이드실장은 몇 걸음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멈춘다. 남자의 눈치를 보며.
‘얘가 아니라 니가 상처받아. 아무리 사랑을 쏟아도 그 당사자는 전혀 그걸 느끼지도 않아. 너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니가 가져다주는 물건들을 사랑할 뿐이야‘
두 손을 거칠게 휘두르며 타격없는 주먹질을 하던 엄지실장을 손바닥에 올린다. 높아진 시선에 젤리푸드가
눈에 들어오자 바로 히죽거리며 웃는다. 누운 상태에서 잔뜩 애교를 부리며 어서 저것을 달라는 듯 손짓한다.
이미 남자가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거라 간주하고 곧 있을 식사에 입을 호물거린다. 질척한 침이 남자의
손바닥에 흘러내린다.
‘치이-! 치이-!’
‘미안하구나. 대신 다른 걸로 보상해줄게’
‘데에...데스우....데스우...’
좀처럼 오지 않는 맛난 것에 금방 싫증이 나버렸는지 마구 화를 내며 손바닥을 걸어 나가려는 엄지. 이 정도
높이가 뭘 의미하는 줄도 모르고 자신의 배를 눌러 고정하고 있는 손가락을 쳐대며 투정을 부린다. 저항을
무시한 남자는 컵에 물을 채우고 탁자에 올린다.
앞길을 방해하는 손가락을 떨쳐내기 위해 조그마한 이빨을 내밀어 이리저리 물어뜯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엄지실장과 남자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둘을 번걸아 살피는 메이드 실장.
그리고 그것은 한 순간에 일어났다.
[퐁당]
‘게보보복....게복....레?-! 레에...레?-!’
물표면을 때리는 소리. 물컵에 떨어진 작은 엄지실장. 컵 안쪽 벽에 손을 내밀려 해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매끈한 벽의 우물에 떨어진 것같이 미끄러진다.
‘데슷! 데스데스우웃!’
다급하게 달려와 탁자 위로 손을 뻗어보지만 키가 닿지 않는다. 키발을 딛고 점프를 해봐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눈코입귀에 사정없이 들이치는 물. 물을 토하고 마시고를 반복하는 무한지옥. 총구에서 지려대는 똥은 속옷에
차오르기도 전에 사방에 흩어진다. 점점 녹빛으로 변하는 물과 얼굴이 퍼렇게 변해가는 엄지실장.
‘데스웃! 데스! 데스웃!’
탁자를 내리치고 걷어차며 어떻게든 도달하려 한다. 울음으로 남자에게 호소해 봐도 그는 고개를 내젓는다.
그녀의 힘으론 고작 수면에 파동을 더할 뿐이었다.
뭔가를 디디기 위해 다리를 아래 위로 흔들어대는 엄지의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다. 물 속에서 허우적거려봤자
디딜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점점 수면 위로 얼굴을 내미는 횟수가 줄어듦에 따라 몸으로 공급되는
산소의 양도 줄어간다.
늘 활기가 감돌던 얼굴. 방긋방긋 웃으며 애교를 부리던 얼굴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적록색 눈물줄기와
녹빛을 띈 물이 엉망으로 뒤섞인 채 헐떡인다.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귀엽게 옹알이를 하던 입에선 산소를
미처 들이쉬기 전 물이 들이닥친다. 붉게 생기가 감돌던 입술은 제 색을 잃고 시퍼렇게 뜬다.
또 한 번 물을 먹는 바람에 숨을 쉬지 못 한 엄지. 좁다란 컵 안에서 일어나는 사투에도 컵은 달그닥거리는
미동도 없었다. 그만큼 작은 생명체의 작은 발악. 고작 컵 하나도 엎을 힘이 없어 죽어가고 있다.
없는 손톱을 있는 대로 세우며 유리벽에 손을 뻗어도 뽀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미끄러지는 것으로 끝난다.
컵 안쪽의 엄지실장은 아래서 날뛰는 메이드 실장을 본다. 물을 먹어 사고와 판단도 불가능하여 그저
생존본능에 따라 허우적거리는 말초신경의 잔향에 불과한 움직임이었지만, 엄지는 자신의 보호자를 바라본다.
물속에서 흘리는 눈물은 물감을 물에 푸는 것 같이 번져나간다. 산소를 확보하기 위해 뻐끔거리는 입.
아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못 하는 무능력한 자신을. 고요한 아우성을 질러대며 자신을
죄이는 유리컵을 두들기며 도와달라 도와달라 외치고 있었다. 허나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물결의 파동은 점차 잦아들었고 물을 먹은 엄지의 움직임은 둔해진다. 간헐적인 움찔거림과 함께 몸 속에
남아있던 공기방울을 뱉어낸다. 잠시 후 움직임이 사라지고 부릅 뜬 눈에서 더 이상 적록색 물감이 새어나오지
않았다. 라면 위에 떠있는 건더기처럼 힘없이 부유하는 쓰레기.
'데에에....데에에에...!! 데스...데스우....’
끊어지는 목소리로 신음하는 메이드실장. 뭉툭한 손아귀가 새하얘질 정도로 탁자 다리를 붙잡아 쓰러질 듯한
몸을 지지한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엄지시체를 건져 비닐봉지에 담는다.
메이드실장은 급한 숨을 헐떡이며 가만히 바라볼 뿐. 밖으로 나가 길거리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올 때까지
그 자세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청소는 할 수 없었다.
❒
출근을 한 남자는 평소처럼 블라인드를 올리고 온라인 주문을 확인한다. 간단한 서류정리를 하고 포장작업을
시작한다. 메이드실장은 출근하지 않았다. 자신의 집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있다. 밥그릇은 꼬박꼬박
비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극단적 생각은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상심이 매우 커보인다.
뭘하나 하는 마음에 안쪽을 들여다보면 엄지가 아끼던 곰인형을 손이 쥐고 말없이 내려볼 뿐이다. 그 자세로
꼼짝않고 몇 시간이고 계속 있는 것. 처음에 걱정되던 심정도 될대로 되라 싶어 그냥 내버려뒀다. 실장석
따위에 그리 마음을 주다니 괜히 화가 난다. 그렇게나 자신이 할 것 없는 사람이었나.
다리를 풀 요량으로 천천히 주변을 거닌다. 왠지 청소는 자신이 해야할 것 같지만 별로 그럴 기분이 아니다.
‘실장석이라....’
실장석에게 보은 따위를 바라는 건 바보짓이다. 허나 흐트러진 마음의 틈으로 파고든 분노는 조금씩 끓어오른다.
여기에 자기변명까지 더 해지자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었다. 자신은 그 녀석을 위해 나쁜 일을 맡은 것이다.
왜 그렇게 새끼를 기르려고 하는 것이지 뭐 때문에. 독신주의의 남성의 신념을 정면으로 반하는 생물체들.
정신을 차려보면 얼마 전 치료한 독라 자실장의 집 앞에 서 있는 자신.
홀로 손바닥을 펼쳐 그 사이로 뭘 중얼거리던 자실장. 홀로놀기인가. 허나 남자가 온 것을 보자마자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손발을 파닥거렸다. 바닥에 드러누운 상태로 꼬물거리며 다가온다.
자신이 대체 이 녀석을 갖고 뭘 하는지 모르겠다. 실장석은 상품으로 대해야 한다. 상품. 요 근래들어 이상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시 돌아와야 한다.
녀석들의 심성을 모르는가. 멋대로 동물에 정을 주고 그 정의 보답을 기대했다 상처받는 머저리들과는 다르게
살겠다 다짐하지 않았나?
‘넌 폐품이야. 아무짝 쓸모없어’
어려운 말을 모르는 자실장답게 그저 아첨하기 바빴다. 얼른 자신과 놀아달라는 듯 손짓을 하며 배를 드러낸다.
‘텟츄우~♪ 테츄테츄우우~♪’
박스를 통째로 들고 남자는 뒷문으로 나간다.
역시나 수거함은 오늘도 시끌벅적. 안쪽에서 소곤소곤 들러오던 소음은 자신이 뚜껑을 열자 지옥의 망령들처럼
일시에 비명을 질러댔다. 남자는 자실장을 안에 내던진다.
‘텟챠아아-! 텟챠아아앗-!’
수거함 중앙에 떨어진 녀석은 팔다리가 다시 부러진 고통 속에서 있는 힘껏 비명을 지른다. 상냥한 주인님이 더
좋다. 아픈 거 싫다. 착한 주인님은 자신을 도와달라. 주변을 둘러보면 거대한 동족들이 흉악한 얼굴을 하고
발광을 하고 있었다. 성체 실장석들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독라 자실장은 히스테릭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기지만
뒤에도 있는 원사육실장들. 사방에 무서운 동족들에게 둘러싸여있다.
싫다 싫다 싫다. 주인님이 좋다. 이런 무서운 곳에서 살려달라.
오물에 묻은 더러운 실장복을 너덜거리며 벽에 내리치는 원사육실장들은 울부짖는 독라 자실장의 모습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남자를 향해 손을 벌리기 바빴다.
이곳에서 꺼내달라 주인님께 돌려달라 왜 이런 짓을 하느냐.
‘니들이 실장석으로 태어났으니깐 그렇지’
이 한 마디를 뱉어내고 닫히는 문. 다시 돌아온 어둠 속에서 원사육실장들의 비명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진다.
콩콩거리는 소리를 무시하고 남자는 뒷문을 닫는다.
큰 걸음으로 창고를 가로지르는 남자. 입구로 향하던 그는 멈칫하더니 방향을 바꿔 골판지 하우스로 간다.
거칠게 발로 걷어차자 자신만의 회상에서 벗어나 짧은 비명을 지르는 메이드실장.
‘휴가는 오늘까지야. 내일도 이러면 알아서 해’
남자를 올려보는 멍한 눈빛에서 벗어나 카운터로 향한다. 그런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메이드실장은 다시
엄지가 아끼던 곰돌이 인형으로 시선을 내린다. 그것이 엄지인양 연신 쓰다듬으며.
❒
간만에 들어오는 손님에 바쁜 남자. 놀랍게도 예전 독라의 자실장을 들고 온 여자아이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아버지와 함께 들어왔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허락을 받은 것 같다.
역시나 제일먼저 물어본 것은 예전 들어왔던 독라 자실장에 대해서. 그리고 남자는 반쪽짜리 진실을 말해줬다.
보건소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안락사처리가 되었다고.
약간 침울해하는 눈치지만 예전처럼 격한 감정은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고 예상도 하고 있었다.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한 바퀴 둘러보고 카운터로 온다.
‘어느거 데려갈 건지 고르고 있어봐’
여학생은 신이 나 진열대로 깡충깡충 뛰어간다. 이곳저것 얼굴을 들이밀 때마다 소란이 빗어진다. 매장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뭘 뜻하는지 알고 있는 실장석들에게 요란법석이 일어난다. 선택받기 위해 창을 두들기도 펄쩍펄쩍
뛰며 존재를 어필하는 실장석들의 한꺼풀 뒤의 사정도 모르고 그저 마냥 신이 나 ‘귀엽다 귀엽다’를 말하는
여자. 온 정신이 실장석 구경에 정신 팔린 것을 확인하고 아버지는 진짜 중요한 얘기를 묻는다.
초기 비용이 얼마인지. 신경써야할 것은 무엇인지. 훈육은 어떻게 하는지. 가격은 어떤 요소로 인해 차이가
나는지. 그리고 처분을 할 때의 패널티와 절차는 어떠한지.
두 남자들이 현실적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을 무렵, 여자의 기분은 한창 올라가있는 상태. 이쪽을 들여보면
귀여운 자실장 자매들의 간만의 손님에게 손을 흔들고 애교를 부린다. 뚫려있는 구멍으로 손가락을 넣으면
발바닥에 모이는 닥터피쉬마냥 모여들어 정신없이 핥아댔다.
간지러운 느낌에 키득거리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얼른 손가락을 뒤로 뺀다. 위쪽에 가만히 있는 녀석이
궁금하여 허리를 펴 시선을 그쪽으로 옮긴다. 여자에겐 똑같은 들렸겠지만, 아래쪽 자실장들은 비탄의
신음을 흘리며 다시 자신들을 봐달라 고래고래 소리지른다.
약간 고급품들이 자리잡아 있는 그 라인은 비교적 조용했다. 허나 그 뒤에 떨리는 동공은 그녀들이 내심
얼마나 긴장했나 알려준다. 마치 게임속 NPC처럼 한 쪽 칸 안을 들여 보면 지명을 받은 듯 살포시 일어나
제각각 장기를 자랑한다.
자신에게 차례가 온 것을 깨달은 최고급 자실장은 브리더에게 배운대 로 사라락 소리 없이 일어선다. 투명한
살결과 영롱한 눈빛. 마치 인형이 살아 움직이는 듯 한 정교함에 넋을 잃고 바라보는 여자. 자실장이 숨을
고르고 자신의 장기인 노래를 부르기 위해 입을 연 순간, 여자는 옆 칸으로 이동한다.
‘테엣?!’
아름다운 노래 대신 당황스런 신음을 내지른 자실장. 이대로 쫓아가 자신을 어필할 것인가 고민했지만
프라이드가 쎈 탓에 머뭇거리며 눈치만을 본다. 그렇게 빨리 차례가 돌아올 줄 몰랐던 옆 칸의 자실장은
황급히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음의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몇 바퀴 빙글빙글 돌기도 전에 그만 수건을
밟고 넘어진다.
‘테?-!’
‘어머 어떡해...’
아픈 무릎을 꽉 누르고 벌떡 일어나 빙그르 한 바퀴 돌았지만, 이미 여자는 다른 칸으로 이동한 뒤. ‘테에에’
하는 아쉬움을 절로 터트리며 유리창에 얼굴을 밀착했다. 이미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여자의 시선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선 창을 두드려야할까 아니면 노래를 불러야할까 고민하는 사이 그녀는 또 이동을 한다.
‘데즈우....’
눈을 비비는 전세레브 실장. 평소와 다른 소란스러움에 잠에서 깨자 보이는 것은 손님. 영리한 그녀는
이들이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선택의 시간이다. 어릴 적부터 숍에서 자라온 녀석 답게 자동으로
어필을 하기 위해 벌떡 일어섰지만.
‘데갹!’
천장에 머리를 쿵 찧고 도로 엉덩방이를 찧는다. 그렇다 자신은 성체다. 더 이상 귀여운 자실장이 아니다.
예전처럼 세레브실장이 아닌 출산을 하여 한물 간 재고품. 자신을 선택해줄 사람은 없다.
‘데즈우우...’
다시 제 자리에 도로 앉는다. 안 될 것이다. 알고 있다. 하지만..하지만...
‘테츄웃! 테치테치이잇!’
‘테츄웅~♪’
손님의 존재에 대흥분한 아이들. 어쩌면 주인님이 아니냐 물으며 잔뜩 들떠있다. 저 마다 춤을 보여줄지
노래를 들려줄지 이야기를 하고 있다. 하나같이 귀엽고 애교넘치는 아이들이다. 이런 곳에 붙잡아 두는
것은 자신의 욕심이다. 이들에겐 사육실장의 권리가 있다.
결심을 하고 고개를 번쩍 든 순간 칸 안을 들여보고 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길게 흘러내린 검은색
머리칼과 검은 눈.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다 중얼거린다. 앞의 아크릴 판에 몰려가 손을 두들기고 자신과
같이 놀자고 소리를 빽빽 지르는 아이들의 목소리.
‘좁아보이네’
‘텟치이! 테치테치이이!’
‘평소 놀때는 어떡게해?’
‘테에?! 테치테치이! 테츄우우~’
여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 하고 자신의 엉덩이를 보여주고나 실없이 웃으며 자신의 고간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들. 제대로 상품으로서 어필하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의 전형.
아크릴 판에 비친 가족의 모습이 들어온다. 멍청하게 생긴 성체실장. 옷은 구깃구깃하고 부스스한 머릿결.
제 멋대로 추잡한 행동을 하는 제멋대로의 세 마리 자실장.
전세레브 실장은 고개를 푹 숙인다. 드문 이벤트에 잠시 머리가 어떡게 되었나보다. 자신들은 키워질 수
없다. 그 동안 한번도 선택을 받지 못 하지 않았는가. 이번이라도 다를 리가 없다. 이렇게나 엉터리의
가족은 키워줄 리가 없다.
카운터로 돌아가는 여자를 붙잡기 위해 터져나오는 날카로운 비명소리. 과연 누가 선택의 영광을 안게
될 것인가.
아빠에게 뭔가를 속삭이는 여자. 여자의 말을 들은 두 남자는 당황스런 얼굴로 여자를 말린다.
‘한마리로 약속했잖아? 4마리라니? 그리고 성체?’
‘하지만 너무 불쌍하단 말이야...그렇게 좁은 데서. 조금 있으면 보건소로 보내지잖아요’
자신에게 한 소리인 줄 모르고 있던 남자는 여자의 시선에 뒤늦게 대답을 한다.
‘네? 아뇨. 아니 네 맞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세요. 어미가 혈통이 좋다고 애들도 똑똑한 법
없습니다. 게다가 무조건 새끼편들고 별로 교육도 못 할 가능성도 있어요‘
‘그치만...’
‘미영아 저기 쟤는 어때? 얌전하고 착해보이는데’
아버지가 가리킨 곳은 고급 실장석 매대. 누굴 특정한게 아니라 그냥 매대를 가리킨 것이지만 고급품들은
저마다 자신이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했는 지 빙글빙글 춤을 추며 기뻐한다.
‘얘들은 이미 행복해보여. 저기 맨 밑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단 말이야....구해주고 싶어’
몇 번의 설득이 더 오갔지만, 예로부터 자식 이겨먹는 부모는 없다했다. 남자도 점장으로서 주의사항만
읊을 뿐 필사적 설득에선 좀 거리를 둔다. 잘 하면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에서.
❒
잠시 후
남자는 두 부녀에게 주의사항과 각종 초기비품들의 사용법을 알려주게 됐다. 영수증과 명함을 건네주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시한다. 주의깊게 듣는 것은 아버지 뿐. 생글거리는 여자는 사육장을 톡톡 건드리기
정신없다.
‘데즈우웃! 데즈우우웃!’
요란한 울음소리. 촘촘히 난 숨구멍 안에서 움직이는 실루엣은 4개. 성체실장석과 그 품에 안긴 세 마리 자실장.
성체는 거듭 고개를 조아린다. 선택이 뭘 의미하는 진 모르고 그저 새로운 공간에 옮겨져 잔뜩 흥분하여 날뛰는
자실장들. 자신들은 사육실장이 되었다. 그것도 온 가족이. 환희에 몸을 떨는 전세레브실장의 입에선 연신
새로운 주인에 대한 감사와 앞으로의 희망의 말을 쏟아낸다.
멀어지는 차량의 뒷모습을 보는 남자의 마음은 불편했다. 불쌍하다고 동물 주워오는 타입이다 저거. 단순히
일시적으로 울컥하는 감정에 선택하는 타입. 선택도 충동적인 만큼 버리는 것도 충동적일 것이다.
‘얼마나 갈까....’
무심하게 펜을 돌리며 중얼거린다.
❒
‘데에에에...’
집에 도착한 일가. 일생동안 좁은 칸막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삶에서 벗어나 넓은 공간에 나오게 되었다. 한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32평형 아파트였지만 그녀들에겐 엄청난 도약. 탄성도 난동도 잊고 멍하니 경치를 눈에
넣는다.
‘츄아아아-!’
두 손을 번쩍 든 아이들은 곧 괴성을 지르며 사방팔방으로 내달린다. 그런 아이들을 별로 붙잡을 생각이 없는
듯 어미도 최초 충격을 떨쳐내고 주변 가구들을 둘러본다. 이곳이 제대로 살 만한 곳인지 꼼꼼히 확인하며.
길게 늘어지는 똥줄기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얼굴은 굳어졌다. 심하게 나는 체취와 분뇨냄새.
‘일단 목욕부터 시키자’
어미의 양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번쩍 올린다. 당혹스럽게 데에?데에?하더 어미도 이내 아버지의 손길에
몸을 내맡기고 뭔가를 착각한 듯 애교스럽게 울어댄다. 다 큰 녀석이 콧소리를 넣어가며 비벼오는 꼴에
몸서리를 치며 얼른 욕조 안에 넣는다.
‘데스우? 데스데스우?’
‘거기 그대로 있어’
일단 가만히 있기로 한다. 거실로 나간 아버지는 여자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붙잡아 욕조에 넣는다.
‘츄아-!’
‘테치테치잇-!’
‘데스데수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소리는 세차게 쏟아지는 일련의 물줄기에 묻힌다. 투명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는 처음
보는 물건. 물이라면 언제나 병 안에 있는 것이다. 볼을 누르면 조금씩 새어나오는 그런 물건. 언제나 부족한
것이다. 물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은 늘 있었지만 식수배분을 고려한 어미에 의해 언제나 저지되어왔다. 그런
물이 쏟아져내리고 있다.
‘테치이이이이-!’
‘챠아아아-!’
물줄기 아래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어미 또한 대흥분상태. 이미 아이들은 흥분으로 똥을 지려 그녀들
아래론 물줄기가 녹색으로 번진다. 퀴퀴한 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며 아버지는 목욕솔을 꺼낸다.
잠시 후 보다 말끔해져 나온 일가. 번들거렸던 피부에 붙어있던 때를 말끔하게 밀어내어 이제 만져보면
뽀득거리는 소리가 나온다. 옷을 말리고 있어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아이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의
질척한 총구를 만지작거리며 가구의 정글 사이를 노닌다.
집안 구석에 쳐진 팬스 안으로 넣어진 그녀들은 아버지가 놓아준 푸드무더미로 모여들어 생애 처음으로
배부를 때까지 식사를 하였다. 작은 체구를 유지시키기 위해 일부러 살짝 부족하게 주었던 숍과 달리
여자의 호의로 맘껏 먹을 수 있었다.
간사하게도 배가 부르자 고개를 꾸벅거리는 아이들. 한 귀퉁이에 놓인 침대. 귀여운 캐릭터가 웃고 있는
알록달록한 쿠션에 몸을 던진 일가. 잠시 그녀들은 잠꼬대를 흥얼거리며 잠에 푹 빠져든다. 습관적으로
어미의 옷을 들어 올리고 잠결에도 젖을 빠는 막내를 쓰다듬는 여자도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그녀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
몇 주후
언제나처럼 부스스한 머리를 한 남자. 졸린 눈을 끔뻑거리며 길게 하품을 하며 차에서 내린다. 차 옆문에
길게 난 스크레치를 관찰하며 조용히 욕설을 중얼거리고 숍을 개장하기 위해 정문으로 향한 그가 발견한
것은 작은 들자실장.
정문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녀석. 품에 뭔가를 꼭 안고 있던 녀석은 가까워진 차의 소리를 듣고
퍼뜩 일어난다. 귀를 쫑긋거리며 차에서 남자가 내리기를 기대하는 눈초리로 초롱초롱했다. 잠시 차에서
서성이던 남자가 자신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자실장은 방긋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총총 걸어 나온다.
‘또냐....’
낮게 중얼거린 남자의 말에 무지한 자실장은 귀여운 목소리로 울며 손에 들고 있던 것을 내민다.
‘텟츄우~♪’
작은 빵부스러기. 어디서 주웠는지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음식물쓰레기 봉투에서 주워왔는지 갈색과 흰색의
빵은 적색 김치국물이 묻어있었고 아래쪽엔 새우젓이 달라붙어 있었다. 다른 성체들과 경쟁을 뚫고 처음으로
얻어낸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
이끼와 토사물로 연명해오던 자실장. 언제나 이 문 안쪽에 펼쳐진 꿈만 같은 이상향을 동경해오던 녀석.
언제나 이곳을 들락거리는 남자를 천국의 중계자로 여긴 자실장이 준비한 선물은 이 빵부스러기였다.
‘테치. 테치테치이’
어서 받으라는 듯 빵부스러기를 내민다. 전혀 받으려는 기색이 없자 그녀는 남자 신발등 위에 살포시
올려놓고 한 발짝 물러선다. 선물을 줬으니 그 대가로 천국의 문이 열리길 기대하는 자실장은 두 손을
가슴에 꼭 모으고 눈을 깜빡인다. 쫑긋 선 귀와 벌름거리는 코가 증거.
선물을 주는 실장석. 정말 특이한 케이스다. 아무리 세레브실장이더라도 자신의 욕구가 우선이고 모든 것은
인간이 해줘야한다고 여기는 마인드가 지배적이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굶어죽을 위기 아니면
자신이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 하는 이기적 종족에서도 간혹 돌연변이가 나온다. 허나 그래봐야
실장석.
자실장은 어깨를 팔랑이며 어서 문을 열어달라는 듯 손짓을 한다.
이곳에서 처리하면 곤란하다. 평소처럼 대응하는 남자는 조용히 문을 열고 녀석에게 손짓한다. 그 통에
신발등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
‘텟!’
자신의 선물이 땅에 구르는 것을 본 녀석은 짧은 비명과 함께 얼른 빵을 낚아챈다. 먼지를 솔솔 털어내며
후다닥 열린 문 틈으로 들어간다.
‘테에에에....!’
언제나 같은 반응. 시원한 내부공기와 끝없이 늘어선 알록달록한 포장지들. 알수는 없지만 뭔가 가득가득
들어선 모습에 입을 쩍 벌린다. 매대로 달려가는 자실장을 남자는 붙든다.
‘테츄?’
손아귀에 잡혀 고개만 삐죽 내민 자실장은 갸웃거리며 남자의 눈을 들어본다. 먼저 가는 곳이 있는 테츄?
하며 묻지만 묵묵히 창고를 지나 건물 뒤편으로 들어간다.
거대한 상자 안에서 들리는 것은 동족들의 목소리. 어미와 자매들이 동족들에게 뜯어 먹힌 모습을 봐야만
했던 자실장은 약간 고개를 움츠린다. 성체들은 무섭다. 유체들도 싫다. 홀로 있는 약한 녀석은 언제나
괴롭힘의 대상. 몸 여기저기 있는 멍이 쿡쿡 쑤셔오는 기분.
‘테치이...테치테치...’
이곳은 싫다며 자신을 쥐고 있는 손가락을 톡톡 쳐보지만 대답은 없다.
들어 올린 뚜껑에 안쪽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실장석 지옥이 있다면 아마 이곳일 끔찍한 비명. 여기까지
오는 동안 떠오른 악몽에 자실장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거부한다. 싫다 싫다. 무섭다. 무섭다.
‘챠아아아-! 챠아아아-!’
자실장을 집어던지려는 순간, 남자는 익숙한 얼굴을 보았다. 호화스런 옷을 입고 있는 세 마리 자실장을 꼭
품고 있는 어미. 제법 똘똘해 보이는 어미와 달리 아이들은 완벽한 분충으로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찌나 기세등등하고 하도 잘 먹어서 다른 자실장에 비해 월등한 덩치의 녀석들
아래론 독라가 되버린 다른 원사육실장들이 신음하고 있었다.
‘텟츄웅~♪ 텟츄우웅~♪’
주인에게 길러질 때도 느끼지 못 했던 쾌감. 동족을 학대하는 쾌감에 푹 빠져있다. 안된다고 저항하는
녀석들의 팔다리를 박살내고 입을 옴싹거리는 녀석들의 얼굴을 마구 걷어차 이빨을 분지른 다음 머리카락과
옷을 뜯어낸다.
자신의 폭력 아래서 엉엉 우는 피해자를 볼때마다 쾌감에 젖어 어쩔 줄 몰라하는 세 마리 자실장들. 독라가
된 피해자들이 방어적으로 몸을 웅크리면 그 얼굴 위로 똥을 싸재낀다. 입과 코로 들이치는 똥에 발버둥
치는 것을 바라보며 깔깔 웃는 추악한 녀석들.
이녀석들은 전세레브실장일가. 여자에게 보내진지 한달도 되지 않아 버려진 것이다. 그 만화 속 여주인공
같은 여고생도 그네들의 막무가내식 요구와 끝없는 쾌락추구에 질려버린 것이다. 아직도 총명함을 유지하고
있는 친실장의 눈에 서린 것은 슬픔과 회한.
첫 푸딩의 달콤함에 넘어간 때로부터 쭉 이런 식이었다. 한없이 높아지는 요구치. 폐가 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아이들이 더 맛있는 것을 원하는 이상 그것을 들어주기 위해 부탁을 계속 했다. 더 예쁜 옷과
더 많은 장난감, 더 맛있는 음식. 죄송스럽지만 주인인 이상 그렇게 해줘야한다. 이 아이들은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이니깐.
‘똑똑하단 녀석이 저 정도라니....’
중얼거린 남자는 빵조각을 안고 있는 자실장을 통 안에 던져넣는다.
‘텟! 텟챠앗! 텟!’
말캉한 신체로 이리저리 튕기는 그녀는 세 마리 자실장 앞에서 멈춘다.
‘치프프픗....’
추악한 미소를 흘리며 들자실장에게 다가오는 자매들. 들자실장은 신음을 흘리며 도망가려 했지만 방금
전 충격으로 팔다리가 부러졌다. 자신의 힘으로 되지 않자 떠올린 것은 남자의 친절. 천국의 중계자인
남자는 분명 자신을 도와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선물이 필요하단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품을 살피지만
‘텟!’
빵부스러기는 저편에 떨어졌다. 꼴에 원사육실장들이라고 남자가 주는 저급푸드도 입에 대지 않는 그녀들의
발에 여기저기 차여 저 멀리 떨어져 있다.
‘테에...테에....’
아직 멀쩡한 손으로 바닥을 밀며 빵조각을 향해 기어가는 들자실장. 허나 그 도주는 오래 가지 못 했다.
‘테에...테에엣?! 텟챠아아-! 텟챠아아-!’
발목을 잡고 질질 끌고가는 세 마리 원사육실장들. 새로운 희생자를 둘러싸는 장면을 바라보면서도 무력하게
안돼는 데스...안돼는 데스...만을 중얼거리는 어미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자는 뚜껑을 닫아버린다. 안쪽에서
울리는 자실장의 비명을 뒤로 하고 가게로 돌아간다.
손을 씻고 눈물액을 넣은 남자는 물기를 대충 바지에 닦는다. 언제나처럼 돌아가는 일상.
블라인드를 젖히면 그 햇살에 상품들은 칭얼거리고 메이드실장은 빗자루질을 하고 남자는 주문지를 출력하여
포장한다.
때가 되면 밥을 주고 좁다란 칸막이 안에서 그걸 쳐먹으며 오늘은 선택받으리라 다짐하는 녀석들. 불확실한
미래가 언제나 좋을 것이라 낙관하는 미끼상품들.
그렇게 오늘도 실장숍의 하루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