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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가 옷을 벗는 만화






독라 자실장 구슬




오랜만의 고향.
겨울도 거의 끝.
강변을 타고 공원을 죽 걷다 보니 나무 가지에 작은 흰 쥐 같은 둥근 것이 매달려있다.

아, 독라 자실장 구슬인가?
그립네..
요즘 아이들도 새끼 실장들을 가지고 노나?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지에 다다라 보니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내 고향은 사양산업 투성이의 지방 소도시라 별로 유복하진 않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들은 열심히 생활하고 있었고 실장석들도 인간에게 의지해 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갑갑한 지방 분위기가 싫어서 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먼 대도시의 회사에 취직했다.
그리고 몇년 더 고생을 하다 퇴사하고 지금은 임시로 친가에 기거하고 있다.

그렇게 우울한 가운데, 어릴 적 놀던 공원에서 독라 자실장 구슬을 보니 어릴 때 실장석을 속여먹고 놀던 일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실장석은 너무 좋은 놀이 상대, 혹은 놀림감이라서 나도 어릴 때는 나쁜 친구와 함께 장난삼아 속여먹고 죽이거나 때로는 낚시의 미끼로 쓰고 있었다.
그 가운데도 재미있었던 것은 이 강변 일대 공원에 많이 정착한 들실장 친자를 괴롭히며 노는 일 이었다.

친실장을 강에 쳐 넣는다.
그러면 무게 중심이 높은 친실장의 머리가 물 속에 잠긴다.
물위에서 보면, 연습 부족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처럼 짧은 다리를 허둥대다 점점 가라앉는다.
그 모습이 마치 옛날 일본 영화의 한 장면 같아 모두 함께 웃곤 했다.

친실장이 완전히 잠기면 다음은 새끼 실장들의 차례다.
골판지상자에 가뒀던 새끼 실장들을 잡아내서 독라로 만들고, 강변공원에서 릴리스&헌팅 하는 것이 우리의 단골 놀이 종목이었다.
그때 그 놀이를 더 즐겁게 하려고, 독라들에겐

"우리한테서 달아나서, 아무한테도 안 들키게 나뭇가지에 번데기처럼 매달려서 있으면 곧 탈피하고 머리와 옷도 원래대로 된다"

하고 가르쳐 줬다.

원래 이 지방은 메이지 시대부터 실장 비단의 생산으로 유명했던 만큼 구더기 실장에서 새끼 실장으로 고치를 거쳐서 변태한 개체가 많아, 자실장들에게 "탈피" 나 "변태"는 비교적 친숙한 생리 현상이었다.
그런 새끼 실장들에게 탈피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는 속삭임은, 희망적 관측을 일삼는 성격과 맞물려서, 절망 속에서 한가닥 희망이 되었음이 분명했다.
독라들 중에 사람말을 알아듣는 똑똑한 몇이 테치- 테치-하고 다른 독라에게 탈피 이야기를 전한다.
그러면 모두 일제히 표정이 밝아지며 필사적으로 이리 저리 도망친다.
그리고 우리는 헌팅이란 이름의 살육을 시작했다.

우리 인간들로 부터 달아나기만 하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새끼 실장들의 삶에 대한 집착은 몇배 강해진다.
그 집착이 강할수록, 궁지에 몰린 새끼 실장들은 더 비참하게 울고, 우리들의 어린 가학심을 더 깊이 만족시켰다.
우리들은 해가 질때까지 테챠아-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 치는 독라 새끼 실장들을 쫓아다녔다.
때로는 짓밟고, 때로는 갈아 으깨고, 때로는 집어던지기며 땅바닥에 많은 시체를 만들며 즐겼다.

잡아 벗긴 새끼 실장의 수와 으깬 수가 안맞는 적도 가끔 있었으니까 우리들로부터 달아난 놈들도 있긴 했다.
그런 놈들도 대부분 그 날 중으로 인간보다 몇배나 사냥 능력이 뛰어난 도둑 고양이나 까마귀 밥이 되기 일쑤였다.

다행히 우리의 추격과 천적들의 사냥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던 극소수의 독라 새끼 실장의
장래는 어땠을까?
...물론 탈피하고 원상으로.. 따위의 해피 엔딩은 없다.
달아날 수 있었던 새끼 실장들은 우리들의 거짓말을 곧이 듣고, 눈에 띄지 않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탈피하고 원래대로 돌아갈 자신을 상상하며 며칠씩 그대로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배고픔과 더위, 추위로 불안해 지지만, 최대한 자신에게 좋게 해석하고 현실을 외면하는 편인 새끼 실장들은 현실 도피 속에서 완만한 죽음을 맞는다.
고통스러운 최후를 마치는 동족이 많은 가운데 이렇게 죽게 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행복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가지에 매달련 채 죽은 새끼 실장들은 보통 야생 조류나 곤충의 배를 채우거나 곰팡이나 버섯의 묘판으로 전락한다.

늦가을에서 겨울은 공기가 건조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커서, 새끼 실장들의 시체는 야간에 얼어붙었다 낮에 녹는 일을 되풀이하며 수분을 천천히 잃어간다.
그러다, 다카노 두부처럼 천연 프리즈 드라이로 매달렸던 모습 그대로 가지에 굳어 버린다.

몇년에 한번이라도 볼 수 있으면 행운인 이 새끼 실장의 시체를, 우리들은 "독라 자실장 구슬" 이라고 불렀다.
아이들의 참혹한 장난과 새끼 실장석의 삶에 대한 집착, 그리고 우연이 낳은 슬픈 결정체이다.
나는 손을 뻗어 독라 자실장 구슬이 달린 가지를 부러뜨렸다.







몇년 만에 직접 본 독라 자실장 구슬은 편안한 표정 그대로 하얗게 굳어 있었다.
행복한 얼굴로 죽었다.

왜 이놈들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돌아올 리 없는 머리와 옷을 꿈꾸며 이렇게 굳어 죽어 갔을까?
그렇게 생각하다 나는 움찔했다.

이 독라 자실장은 지금의 나다.
나의 모습이다.
힘든 일은 외면하고 부모님께 응석 부리는 나 자신의 모습이다.

웃겼다.
너무 웃겼다.
어린 시절에 그렇게 괴롭히던 실장석, 그것도 시체에서 내 과오를 알아채다니.
차가운 겨울 공기를 폐 속까지 한껏 빨아들이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일단 집에 가서 부모님과 여러 이야기를 하자.
새로운 직장을 찾을 준비도 하자.
이런 소도시에서 전보다 수입이 좋은 리는 없겠지만 독라 자실장 구슬이 되는 것 보단 낫겠지.

지금 생각하면 실장석에겐 대단히 잔혹한 일을 했구나.
요새 아이들도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구나.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밝은 예감을 느끼며 걸었다.

그렇다.
이 독라 자실장 구슬은 흙으로 돌려 보내자.
나는 강 흐름이 느릿한 곳에서
살짝 독라 자실장 구슬을 띄어 주었다.

독라 자실장 구슬은 겨울해를 반짝반짝 난반사하는 차가운 물 위로 미끄러지듯 천천히 흘러갔다.
담엔 더 행복한 무언가로 태어나라고 기원하며 나는 독라 자실장 구슬이 흐르는 걸 바라보았다.
















복종과 침묵, 40번 실장


1. "푸드 맛있는 테치…." 백열전구 하나만 켜진 어두운 방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꽤 넓은 책상 위에서 자실장이 푸드를 먹고 있었다. 자실장이 푸드를 먹는 속도는 꽤 급한 편이었지만, 특이하게도 푸드를 입에 넣는 간격과 씹는 속도가 모두 일정한데다가 가루 한 톨도 바닥에 흘리지 않았다. 보통 실장석들이 푸드를 먹는 방법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귀족’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기품이 넘치는 식사였다. 자실장이 푸드를 다섯개나 해치우고 여섯개를 입에 넣으려던 찰나, 갑자기 어둠 속에서 남성이 소리 없이 나타났다. “테엣! 세…센세!!” 남자가 나타나자 자실장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푸드를 떨어뜨렸다. 그 모습을 보고 남자는 40번 실장에게 퍽 무감정한 목소리로 자실장에게 말하였다. "40번 실장. 너는 ‘식사를 하기 전에 감사인사를 하라’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겠다." 그리고 책상 위에 떨어진 푸드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게다가 푸드를 떨어뜨리기까지 하다니….이게 어떻게 된 거지 40번 실장?” "아…아닌테치! 이번만 하는 걸 잊은 테치!!! 다음에는 안 그러는 테치! 한 번만 넘어가주는….테벱!!" “나는 식사 전에는 인사를 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넌 그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실로 간결한 이유를 들며 남자는 40번 실장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벌린 후 다른 한손으로는 작은 망치를 40번 실장의 입가에 가져갔다. “센세!! 잘못한테치! 잘못한테치! 다음에는 꼭 인사를 하는 테치!” 하지만 남자는 40번 실장이 개념인가, 잘못을 빌고있는가, 같은 사실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하였고, 그것은 장도리도 마찬가지였다. 남자는 망치 뒤의 장도리를 40번 실장의 이빨에 가져다 대고, 손목에 약간 힘을 주어 비틀어버렸다. 뚜둑 “데갸아악!!! 아픈, 아흔테챠아아아아아!!!” 이빨이 뚜둑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부러지자 40번 실장은 고통과 공포로 비명을 질러댔다. “잘모탄테치!!! 잘모탄테치!!! 제발….제발….” 40번 실장의 애원에 남자는 장도리에 힘을 주는 것으로 답하였다. 뚜둑 또 다시 이빨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자 그에 화답하듯 40번 실장의 높은 비명소리가 방 안에 울려퍼졌다. “테캬아아아아아악!!!!!! 테캬아아아악!!!”
“데히…..데히……” 한참 동안 비명을 지르며 이빨이 뽑히던 자실장의 눈가에는 적록색의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고 벌어진 입에는 이빨이 있던 자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40번 실장의 실장복은 땀과 피에 흠뻑 젖어있었지만 빵콘은 하지 않았는지 속옷은 여전히 흰색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남자가 뽑아낸 이빨들이 피와 잇몸의 살점이 묻은 채로 피비린내를 풍기며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테캬앗!” 40번 실장은 이빨이 있던 자리를 쓸데없이 혀로 더듬다가 피맛과 찌릿한 고통만 느끼고는 그만 두었다. 하지만 남자에게는 그만둘 생각이 없었다. “데엣?” 40번 실장은 공포보다는 ‘어째서?’라는 의문을 담고 망치를 들고 다시 다가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교유근….끈난테치….. 왜….왜…..” “교육을 끝내는 것은 나지 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40번 실장.” 40번 실장의 의문은 풀렸지만 기쁜 기색은 없었다.
남자는 다시 망치를 들고 자실장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교육’을 받느라 온 몸에 진이 다 빠진 줄 알았던 40번 실장은 순식간에 몸을 일으켜 세워 책상 구석으로 달려갔다. “테챠아아아! 테챠아아아아!!” 40번 실장은 소리를 지르며 책상 구석으로 달려갔지만 성인 남성 무릎정도에 오는 평범한 책상높이는 자실장에게 하염없이 높기만 하였다.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뛰어내려봤자 바뀌는 것은 ‘교육’을 받을 때 다리가 온전한가 부러져있는가, 정도일 뿐이다. “와다시가…와다시가…몰 그러케 자모한테치?” 이빨이 다 빠져 말하는 것조차 고통임에도 불구하고, 40번 실장은 눈물을 흘리며 이빨 빠진 소리로 남자에게 항변하였다. “아모거또 몬머근지 일주일이나 지난 테치! 운치를 지린거또 아니고 그냥 푸드를 머끼전에 인사 한번 안해슬뿐인 테치! 그런데 어째서 이러케까지 하는 테챠아아!!” “할 말은 그게 전부인가?” 40번 실장의 항변은 꽤 처절한 면이 있었지만, 남자가 지금까지 들어온 실장석들의 항변은 40번 실장이 먹은 끼니수보다 많았다. “명령에는” “복종” “이곳에 있었던 일은” “침묵” 남자의 두 가지 질문에 40번 실장은 반사적으로 대답하였다. 40번 실장은 저절로 움직인 자신의 입에 어리둥절해 하였다. “좋아. 대답은 훌륭하다, 40번 실장. 40번 실장. 난 너희가 분충인지, 며칠을 굶었는지, 어떤 상황인지는 관심 없다. 너는 어떠한 명령에도 복종해야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한다. 그리고 너는 ‘식사 전에는 인사를 하라’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복종하지 않았다, 그것뿐이다. 정 그렇게 ‘교육’이 싫다면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남자는 의도적으로 말을 잠시 끊었다. “분쇄기로 들어가라.” 남자의 말은 실장석의 지능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명쾌하였다. 복종과 침묵. 아니면 고통과 죽음. 분쇄기로 들어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후보 실장석들의 비명을 자장가 삼아 자라온 40번 실장에게 후자를 택할 용기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남자 역시 1번부터 39번까지, 어쩌면 40번 실장 뒷번호에게도 이와 똑같은 문장을 말해왔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힘도 논리도, 항변도 통하지 않자 40번 실장은 그냥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보통 실장석이라면 파킨을 대여섯번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만 남자는 40번 실장을 절대 죽지 않게 할 것이다. 절대로. 이러한 상황에서 40번 실장이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는 몇 가지 없다. “테….테츄우우웅?♡” …분명히 아첨도 그 중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것은 남자에게도 40번 실장에게도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오늘 ‘교육’은 좀 거칠어질 거다, 40번 실장.” 40번 실장의 어설픈 아첨에 처음으로 남자의 무표정이 깨지고, 얼굴에 미세한 실망감이 어렸다. 남자는 다시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뒤적뒤적 소리가 들리더니, 양 끝이 뭉툭한 막대기와 위생장갑을 한 쌍 들고 왔다. “또 때리는 테지….?” 남자는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막대기를 형틀처럼 십자가 모양으로 세운 후에 40번 실장을 줄로 단단히 묶었다. “헤에…아흔헤히….” 상처난 곳을 막대기가 파고들자 40번 실장은 움찔거리면서 입을 벌려 신음했다. “너는 ’아첨하지 말라’는 명령에도 복종하지 않았다.” 남자는 양손에 위생장갑을 착용한 후, 오른손에는 망치를 들었다. “가만히 있는 편이 그나마 덜 아플 거다. 가능하다면 말이지.” 이윽고 뼈와 살점이 박살나는 소리가 방안에 퍼졌다. 콰직! “헤햐아아아아아아아아!!!!!!” 40번 실장의 목에서 성대가 찢어지는 듯한, 어쩌면 찢어졌을지도 모를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명을 질러봤자 고통이 늘어날 뿐이었지만 아마 비명이라도 지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기 때문이리라. “하려주는헤햐아아아!!!! 하려주는헤햐아아아아아아!!!!” “살려달라고? 무슨 착각을 하는 거냐. 나는 너를 절대 죽이지 않는다. 절대.” 남자는 40번 실장을 죽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위석이 코팅된 채 분쇄기에 들어가 며칠 동안 고통 받으며 죽은 다른 후보 실장들만이 알 것이다. 남자는 마치 40번 실장의 뇌리에 새기는 것처럼, 매질을 할 때마다 40번 실장에게 소리를 질렀다. 콰직! “식사 시간 전에는 감사 인사를 해라!.” “헤햐아아아아아아아아!!!!” 콰직! “아첨을 절대 하지 말아라!!” “사려저,사려저,사려저는헤햐!!!!” 콰직! “명령에는 복종해라!” “아하, 아하, 아하, 아흔 헤햐아아아!!!!” 콰직! “그리고 이곳에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라!!” “주겨주는, 주겨주는 헤햐아아아아!!!” 10분 정도 경과 후에 모습을 드러낸 40번 실장은 실장석이라기보다는 ‘실장석이었던 것’에 가까웠다. 눈에서 피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던 40번 실장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기절하였는지, 눈깔을 뒤집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기절한 척 하지 말아라, 40번 실장.” 하지만 남자는 지금까지 기절한 실장석을 본 적이 없다. 기절한 척 하는 실장석만 봐왔을 뿐. ‘교육’을 잠시나마 피할 속셈이었던 40번 실장은 남자의 말을 듣고 몸을 움찔거렸다. 남자는 피로 붉게 물들어진 위생장갑을 벗었다 . “빵콘을 하지 않았으니 특별히 ‘교육’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겠다.” 그토록 바라던 소리를 들었지만 40번 실장의 턱은 미소조차 못 지을 정도로 박살나있었다. 40번 실장이 남자의 말에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는 모르겠지만, 40번 실장은 앞으로 재생한 이빨을 혀로 더듬을 때마다 ‘식사 전 감사인사’와 오늘 있었던 ‘교육’을 떠올릴 것이다. “잠시 후에 돌아오겠다. 그 때까지 편히 쉬고 있도록.”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들어올 때와 같이 소리 없이 어둠을 뚫고 나갔다. 어둠 속에서는 백열전구 덕분에 40번 실장을 쉽게 볼 수 있었지만, 40번 실장은 어둠 너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40번 실장은 남자가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심지어 어둠 속에서 40번 실장을 지켜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편히 쉬고 있으라는 남자의 말은 40번 실장에게는 일종의 조롱처럼 들렸다. “테에에엥…..테에에엥……” 40번 실장은 충혈된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작은 소리로 울었다. ‘큰 소리로 울지 말 것’을 명령받은 40번 실장에게는 우는 것조차 일탈이며, 사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0번 실장이 우는 것은 단순히 상처가 고통스러워서는 아닐 것이다. ‘언제까지…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가야하는 테치…..?’


2. 남자는 암실에서 나와 복도를 가로질러 흔히 볼 수 있는 상가의 작은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숨을 크게 들이쉬자 도시의 매캐한 연기와 차가운 공기가 뒤섞여 폐 속을 채웠다. 남자는 그 탁한 공기에 약간의 구토감을 느꼈지만,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생각하니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남자는 휴대폰을 들어 ‘김 사장, 40번 실장’이라고 적힌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대기음이 울리고 전화가 걸리자, 남자는 보이지도 않는 전화 너머의 상대에게 연신 허리를 굽혀댔다. “네, 사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아, 네 일단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예정보다 일주일 정도 늦춰질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미리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 펫숍에서도 특별히 우수한 녀석이고, 제가 특별히 ‘교육’시킨 녀석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네, 따님의 생일 전 까지는 확실하게 가능합니다. 네, 사장님 늘 감사합니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이것으로 40번 실장이 ‘이렇게’ 살아가야하는 기간이 일주일 늘어났다. 남자는 보이지도 않는 전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네, 네, 거리며 연신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다가 통화를 끝낸 후 한숨을 쉬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들었다. 아첨에 대한 교육이 이틀 추가, 식사 전 감사인사 교육은 거의 마무리. 다음에도 감사인사를 하지 않을 가능성은 5프로 미만. 굶주려도 식사 방법 자체는 완벽함. 종합적인 식사예절 교육은 대략 이틀 정도면 완벽할 것으로 보임. 마지막으로 ‘침묵’에 대한 교육 3일 정도 추가하면 최소 5일. 방금 번 일주일이라면, 중간에 생길 추가 교육까지 포함해도 확실히 가능. 남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향후 ‘교육’일정을 생각했다. 담배연기를 들이키는 남자의 생김새는 우락부락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지만 직업상의 이유로 생긴 날카로운 눈매와 표정은 마주 앉은 사람을 움츠러들게 하는 면이 있었다. 들이킨 담배를 훅, 하고 내쉬자 회색빛 연기가 올라가 남자가 나온 건물의 간판에 맴돌았다. 간판에는 귀여운 그림체로 칠판 앞에 서서 학사모와 안경을 쓴 채 지시봉을 든 친실장과, 대여섯명의 자실장들이 웃는 얼굴로 책상과 의자에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 옆에는 부드러운 글씨체로 ‘실장학교’라는 네 글자가 박혀있었다. 남자는 실장숍 ‘실장학교’의 주인이자 브리더였다. 남자의 숍주인으로서의 장사수완은 딱히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브리더로서의 능력은 일류, 장사 수완 따위는 보충하고도 남았다. 보충하고 어느 정도 남았는지는 남자가 40번 실장을 김사장에게 보낸 후에 남자의 계좌에 찍힌 숫자들이 증명할 것이다. 이미 마감을 한 번 늦췄다. 두 번 늦춰서는 곤란하다. 시간적 여유는 충분히 있지만, 그렇다고 여유를 부릴 정도는 아니다. 기간은 넉넉하게 잡았지만 ‘침묵’에 대한 교육이 며칠이나 소비될지 알 수 없다. 애초에 ‘이곳’에서 ‘이곳에 있었던 일을 말하지 마라’라는 것을 교육 하는 것이 참으로 넌센스란 말이다. 그래도 ‘침묵’에 대한 교육은 반드시 해야 한다. 고객들에게 미리 묻지말라고 해두긴 하지만 만약 40번 실장이 이곳에서 있었던 일을 말한다면 애호파 고객들이 항의할지도 모르고 라이벌 브리더들이 내 노하우를 훔칠 수도 있으니 양쪽으로 곤란하다. 담배를 피우며 잡다한 생각들을 떠올리며 머리를 굴리던 남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꽁초를 버리고 발로 비비적거린 후, 다시 가게 문을 열고 약간 급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40번 실장이 무슨 일을 당하건 유리문과 복도, 암실을 뚫고 소리가 바깥까지 새어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새어나와도 신경 쓸 사람은 없겠지만. 3. “와타시…살아있는 테치?” 40번 실장은 여느 때처럼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의문과 안도, 절망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했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는 아침인지, 몇 시간이 흘렀는지, 어쩌면 며칠 만에 일어났는지도 모르겠지만 ‘늦잠을 자지 말 것’을 교육받으면서 몸이 시간을 기억하였다. 여전히 백열전구 하나만 켜진 어두운 방안의 유리수조에는 실장석용 침대, 간단한 장난감, 변기, 세면대, 그리고 푸드가 담긴 밥그릇이 있었다. 공복이었던 40번 실장은 푸드를 잠시 응시하였지만 곧 시선을 거두고 자신이 자던 침대를 정돈하기 시작하였다. ‘모서리가 딱 맞고…먼지도 안 날리고…쌓아올린 이불도 흐트러지지 않았고…오케이. 기상 후 침대 정돈, 클리어.’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남자가 머릿속의 체크리스트 들을 채우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침대 정리를 제대로 안 하면 뾰족뾰족에서 자야하는 테치.” 40번 실장이 마지막으로 침대정리를 하지 않은 것은 약 2주 전으로, 그 때 40번 실장은 녹슨 바늘침대에 꿰뚫려 잠들 지도 깨지도 못한 채 3일 정도를 보냈다. “다음은 얼굴을 씻어야하는 테치.” 침대를 정리한 40번 실장은 세면대로 가서 얼굴을 씻기 시작하였다. 참고로 얼굴을 씻지 않았을 때의 교육은 피부를 벗긴 후 염산에서 목욕이었다. ‘물이 바닥에 안 튀고….얼굴에 물을 안 남기고….안 닦인 곳 없고… 오케이, 기상 후 세수, 클리어.’ 세수를 마친 40번 실장은 푸드가 담긴 그릇에 앞에 다소곳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허리와 다리 각도….목이 펴진 정도….시선 각도….오케이. 식사 전 대기와 앉는 자세, 클리어.’ 남자는 40번 실장이 푸드를 입에 댔다면 40번 실장의 이빨을 뽑아 눈에 쑤셔 넣을 예정이었다. ‘이제 얼마나 참을 수 있는가….’ 애초에 굶으면 굶었지 공복의 실장석이 식사를 앞에 두고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드물었지만, 인내심을 기르고 명령에 복종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기위하여 굳이 남자는 실장석들이 식사를 하기 전 10분 정도를 음식 앞에서 기다리게 하였다. “테에엥…배고픈 테치….” 이 상황, 이 사이클은 꽤 오래전부터 반복되었고 수많은 ‘교육’을 통하여 익숙해질 때도 되었건만 공복으로 식사를 눈앞에 두고 기다리는 것만큼은 영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40번 실장이 공복에 괴로워하는 동안에도 남자는 40번 실장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물론 그럴 일이 없게 지금까지 수차례 교육을 해왔지만 만에 하나 저 푸드에 손을 댄다면 남자는 들어둔 적금을 깨야하고 40번 실장은 분쇄기로 들어갈 것이다. “차라리 안 보는 테치!” 푸드를 바라보던 40번 실장은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푸드를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하였다. ‘하나 정도는 먹어도 안 들킬 것 같은 테치…아닌테치! 이런 생각 하다가 또 교육당하는 테치!’ 40번 실장은 식욕을 참느라 실신할 지경이었고, 남자는 40번 실장과 시계를 동시에 쳐다보느라 안구에서 약간의 피로를 느꼈다. ‘5…4…3…2…1 오케이. 식사 전 대기 클리어.” 남자의 존재가 없어야 성립하는 체크리스트들의 작성이 끝나자 남자는 어둠에서 나와 40번 실장 앞에 섰다. “어서오신테치. 오늘도 좋은 아침인 테치, 센세.” 40번 실장은 어둠 속에서 나온 남자에게 약간은 놀란 기색이었지만, 자연스럽게 아침 인사를 건넸다. “그래. 좋은 아침이다, 40번 실장석.” 체크리스트를 클리어한 40번 실장에게 약간은 대견한 마음이 들법도 하건만, 남자의 표정은 실장석들 앞에서는 변하는 법이 없었다. ‘교육’을 할 때는 쾌감을 느끼지도, 분노하지도 말 것. 이유 없이 상을 주거나 처벌하지 말 것. 남자는 이 두 가지를 자신의 브리더 철학으로 삼아왔고, 그렇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제 푸드를 먹어도 좋다, 40번 실장.” 하지만 아직 체크리스트의 작성은 끝나지 않았다. 40번 실장의 손이 허리춤까지 올라오다가 멈칫하고 머리를 숙이며 남자에게 말했다. “오늘도 맛있는 식사를 주셔서 감사한테치, 센세. 잘먹겠는테치.” 40번 실장은 얼굴에 자연스럽게 미소를 띠며 인사하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자연스러운’이 아니라, 남자가 만든 ‘자연스러워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식사가 무엇이 나와도 전혀 불쾌감을 보이지 않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는 법 역시 ‘교육’ 받았음은 당연하다. ‘입꼬리 각도…식사인사의 억양, 표정…속도…다소 빠르지만 안전 범위….눈빛….오케이. 식사 전 감사 인사 클리어. 식사 팔 각도….가루 흘리지 않음…먹는 속도…입 벌리는 정도…오케이. 식사 예절 클리어.’ 이것으로 남자가 김사장에게 또 다시 허리를 숙일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40번 실장이 한 일련의 행동은 얼핏 보면 간단해보이지만 남자의 브리더로서의 장인정신이 녹아있는, 하나의 작품이었다. 인사를 할 때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떤 음식을 식사로 주더라도 절대 머뭇거리거나 불쾌 하는 기색이 없어야하며 행동 하나하나의 팔 각도, 움직이는 속도, 입을 벌리는 정도까지 철저하게 계산되어 행하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될 때 까지 40번 실장이 대략 50번 정도 전신이 박살나고 활성재가 2L 가량 소모되었으며, 남자는 캔커피를 2박스 정도 마시고 담배를 50갑 정도를 피웠다. 남자가 그간 들였던 수고를 생각하는 동안 40번 실장은 식사를 마치고 남자에게 말했다. “감사히 잘 먹은테치, 센세.” 그 말을 들은 남자가 정신을 차린다. 하마터면 감사인사를 하지 않았는데도 체크를 끝낼 뻔 했다. 남자는 약간의 당황, 안도감을 숨긴 채 여전히 포커페이스로 40번 실장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네 주인을 만나는 날이다, 40번 실장.” “…그런테치?” 기뻐 날뛸만한 소식이었지만 40번 실장은 단지 한 번 되묻기만 하였다. 그 원인은 40번 실장이 무감정하거나 기쁘지 않아서라기 보다는 ‘감정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말 것’을 명령받아서, 혹은 일주일전에 저 말을 듣고 기뻐날뛰다가 냉장고에 삼일정도 갇혀있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드디어 이렇게 사는게 끝나는 테치?’ 40번 실장이 ‘주인을 만나는 날이다’라는 말을 듣고 들떠서 ‘명령’에 어긋나는 짓을 하여 다시 ‘교육’을 받은 것은 총 3번이다. 주인을 만난다. 여기서 나간다. 모두 40번 실장의 행복회로를 돌리기 충분하였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이 40번 실장의 마음을 간신히 가라앉혔다. “자, 여기 드레스다. 실수하지말고 입도록.” 남자가 40번 실장에게 던져준 드레스는 일반 녹색 실장복을 베이스로 군데군데 프릴과 포인트를 넣은, 심플하지만 인간이 보기에도 꽤나 아름다웠다. 실장석을 대상으로 하는 옷이라 치마의 벨크로 테이프를 여미고 상의의 지퍼를 올리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구조였지만 40번 실장이 이 드레스를 입는 교육 중 기뻐서 운치를 지린 것이 두 번, 순서를 잊어버리고 뒤집어 입은게 세 번이었다. 다행히 40번 실장은 순서를 잊어버리지도, 운치를 지리지도 않았다. “좋아, 이동한다. 올라타라.” 남자가 40번 실장에게 손을 내밀자 40번 실장은 드레스 끝을 살짝 들어올려 남자의 손에 올라탄 뒤 무릎을 꿇고 앉았다. ‘드디어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테치? 교육받지 않아도 되는 테치? 주인님이랑 살 수 있는 테치? 주인님은 어떤 사람인 테치? 이제 사육실장으로서 살 수 있는 테치?’ 복도를 걸어가는 남자의 손에서 40번 실장은 눈가를 글썽이며 계속해서 오만가지 생각들을 떠올렸다. ‘분충표정, 데프픗 웃음 짓지 않음….좋아, 클리어.’ 40번 실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기를 하나 넘기는 동안, 남자가 복도 끝의 문을 열자 펫숍내부가 나왔다. “눈부신 테치…..” 단촐한 사무실인 가게 내부에 반투명한 입구 유리로부터 햇살이 반짝였다. 40번 실장은 눈부심을 느끼고 눈가를 찌뿌렸지만, 이것이 태어나서 두 번째로 보는 햇빛이라는 것을 깨닫고 눈가를 반짝였다. “약 10분 후에 너의 주인이 올 것이다. 대기하고 있도록.”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40번 실장을 테이블 위에 놓고 문손잡이를 잡으려다 멈칫 하였다. “참, 말해둘 것이 있다.” 남자는 몸을 돌리고 40번 실장에게 다가갔다. “명령에는” “복종.” “이곳에서 있었던 일은” “침묵.” 남자의 두 마디에 40번 실장의 입은 저절로 움직였다.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자 순식간에 오한이 40번 실장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래, 그 두 가지만 명심하도록.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남자를 바라보는 40번 실장의 목에 침이 꿀꺽하고 넘어갔다. “나를 다시 한 번 보게 될지도 모르지.” 남자의 뒤에서 햇빛이 역광으로 비춰 40번 실장은 남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쩐지 40번 실장은 남자가 웃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남자는 다시 몸을 돌려 가게의 문을 열고 나가자 잠시 열린 가게문 사이로 한기가 들어왔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는 테치….절대로 그래서는 안되는 테치…’ 40번 실장은 계속해서 되뇌었다. ‘와타시는 교육 받은 테치. 와타시는 실수 하지 않는 테치. 와타시는 반드시 오늘 여기서 나가는 테치.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테치.’ 4. “네, 이쪽입니다.” “와!! 여기가 아저씨네 실장숍이에요? 근데 되게 좁다~ 다른 실장석들은 없어요?” “네, 저희 가게는 철저하게 한 개체씩만 주문 제작하기 때문에 다른 실장석은 없습니다.” “응 그렇구나….아 저거구나!” 가게를 나간 남자는 잠시 후 자신의 허리즈음 정도 되는 소녀와 함께 들어왔다. “안녕~니가 그 실장석이니? 꺄악! 너무 귀엽다! 우와! 볼 빵빵한 것 좀 봐! 피부도 맨들맨들하다~!” 웨이브진 갈색머리에 분홍빛 원피스를 입고 데포르메된 실장석이 박혀있는 머리띠를 한 소녀는 구김살도 거리낌도 없는 웃는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는, 그야말로 ‘소녀’다웠다. “계속 그러시면 저희 아이가 놀랍니다.” 남자는 40번 실장을 들고는 여기저기 만지작 거리면서 자신의 얼굴에 비비는 소녀에게 말했다. 남자는 공식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자신을 ‘실장학교’의 교사로 소개하였으며, 실장석들은 남자의 학생 혹은 아이였다. 물론 남자와 실장석들 사이에 교사와 학생으로서의 신뢰, 애정관계가 존재한다고는 남자와 실장석 양측 모두 생각치 않았지만, 남자의 호칭은 애호파 고객들에게 꽤나 호감을 샀기 때문에 남자는 굳이 자신이 어떻게 실장석들을 ‘교육’하는지는 알리지 않았다. “응, 네네. 큼큼, 안녕~참피야! 나는 선미라고해. 니 이름은 뭐니?” 문이 열리자마자 소녀에게 이리저리 휘둘린 40번 실장은 정신이 없었지만 필사적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소녀에게 말했다. “처음 뵈겠는테치. 와타시는 이번에 ‘실장학교’를 졸업하는 40번 실장인테치. 주인사마를 만나서 영광인테치.” 40번 실장은 일어나서 소녀의 손에서 양손으로 치마 끝을 살짝 들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와 인사하는 것좀 봐! 너무 예쁘다~ 그런데 40번 실장이라고?” “아직 이름은 없습니다. 집에 데려가셔서 좋은 이름을 지어주시지요.” 남자는 40번 실장이 번호가 의미하는 것을 말하기 전에 냉큼 말을 돌리며 준비한 케이지를 꺼내 소녀에게 건냈다. 일반 동물 휴대용 케이지를 1/4정도로 줄인 크기의 케이지는 소녀가 들기에 별 무리가 없어보였다. “우와, 이게 참피용 케이지에요? 신기하다~ 근데 아저씨, 그냥 들고 가면 안되요? 답답할 것 같은데…” “자실장은 워낙 약한 생물이라 길거리에서 들고다니다가 떨어뜨리거나 어딘가에 부딪히기라도하면 큰일나니 케이지에 넣어서 가지고 가시는 게 좋습니다.” 남자는 소녀에게 40번 실장을 케이지에 넣어서 가져갈 것을 권했다. “음..그래요? 할 수 없지. 그러면 차에 가서 같이 놀자~ 일단 케이지에 들어갈래, 참피야?” “알겠는테치.” 처음 만난 주인에게 안겨서 가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40번 실장은 남자가 보고있는 앞에서 어리광을 부릴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다. 40번 실장이 우아하게 케이지로 걸어들어가 무릎을 꿇자, 케이지 내부가 한면을 제외하고 밀폐된 탓인지 남자와 소녀의 대화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옷을 바꿔…..” “알겠….지금 차로….” 남자와 소녀의 대화가 몇 차례 오간 후에 40번 실장은 케이지가 들리는 것이 느껴졌다. 차로 이동하는지 케이지가 덜커덩 덜커덩거리는 것을 느끼며 40번 실장은 계속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센세의 말이 맞는 테치.’ 복종과 침묵.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자신의 주인이 40번 실장의 어디로 운명은 뻔하다. 40번 실장은 다른 후보 실장석을 본 적이 있다. 그 후보 실장석은 ‘실장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주인에게 팔렸지만 분충이 되어버려 다시 ‘실장학교’로 돌아왔고, 결국 분쇄기로 들어갔다. 그 실장석의 비명을 40번 실장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교육받은대로 해야하는 테치.’ 어떤 말에도 복종하며, 절대로 주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우아하게, 품위있게 행동한다. 그렇게한다면 ‘선생님’을 다시 볼 일은 없을 것이다, 라고 40번 실장은 다짐하였다. 그러는 동안 어느덧 케이지의 덜컹거림이 멈추고 차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기사 아저씨, 참피 가져왔어요. 이제 집으로 가주세요~” 모자를 눌러쓴 운전기사가 시동을 걸자 털털거리는 소리와 함께 케이지에도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다. 진동이 잦아들자 케이지가 열리고 소녀의 손이 들어와 40번 실장을 꺼냈다. 소녀의 손길이 부드럽게 40번 실장을 감싸쥐자, 40번 실장은 차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침대만큼이나 부드러워보이는 카시트에, 창 건너편에는 상가와 노점상들의 활기찬 풍경이 보였다. 자동차는 ‘실장학교’를 뒤로하고 멀리, 저 멀리 계속해서 나아간다. 그리고 자신을 감싸주는 부드러운 손길의 소녀의 얼굴에는 장난스러운 미소가 가득하였다. ‘믿기지 않는 테치.’ 눈 뜰 때 부터 암실에 있었고, 거기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식사시간, 휴식시간, 심지어 수면시간마저 무엇하나 괴롭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실장석의 몸은 흉터는 생기지 않지만 내성도 생기지 않는다. 처음 받았던 ‘교육’의 고통과 공포는 시간이 지난다고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익사를 당한 것은 몇 번인가. 교수형은? 전기 충격은? 죽임당한 횟수는 커녕, 죽임을 당한 방식이 몇 가지인지 조차 셀 수 없다. 침대 시트의 무늬는 기억나지 않지만 칼과 망치, 장도리의 기억은 미친듯이 생생하다. 그렇게 셀 수 없이 ‘교육’받은 결과, 기품있는 사육실장처럼 행동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것은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당하는 것’이다. 셀 수 없는 ‘교육’을 몸이 기억해버려서, 자신도 모르게 움직인다. 고등한 행동은 의식해야만 움직이지만 식사도, 인사도, 말하는 것 조차도 마치 자신의 몸이 아닌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움직이는 신체들을 볼 때 마다 소름이 끼친다. 뭐가 기품인가. 뭐가 세레브인가. 대체 무엇인가. 이래서야 자판기, 자동인형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의 그 소름끼치는 무표정. 이유없는 ‘교육’은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는 법도 없다. 그 무표정에 애원을 해봤자 의미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러지 않고서는 견딜 수도 없었다. 자살시도를 해봤지만, 죽을 수 조차 없다. 숨겨둔 못으로 몰래 자살 시도를 해봤지만 어둠속에서 선생님이 나타나 ‘40번 실장. 너는 ‘명령이 있기 전에는 자해하지 말라’는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라는 말을 듣고 ‘교육’ 당했을 뿐이다. 하지만 소녀의 미소를 보는 순간 깨달았다. ‘와타시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테치.’ 저 미소가 자신을 향한다면, 저 미소를 짓게 할 수 있다면 어떠한 것도 이겨낼 수 있다. 지금까지 받아온 ‘교육’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 하지만 방심할 수 없다. 이러한 환희에서 끌어져 내려진 적은 몇 번인가. 파킨할 수도, 자살할 수도 없는 절망은 몇 번이었던가. ‘교육받은대로 해야하는 테치.’ 복종과 침묵을 지키지 않으면….. 또 다시 그곳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 처럼 굴러떨어진다. 투둑, 투둑 그럼에도, 그럼에도 40번 실장은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아픔에, 슬픔에 눈물을 흘린적은 있어도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처음이라,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다. 색있는 눈물이 손바닥에 흐르자 소녀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참피야? 갑자기 왜 울고 그래! 내가 너무 아프게 쥐었니?” “죄송한테치…사육실장은 울면 안 되는데 울어버린 테치….” 영문을 몰라하는 소녀에게 40번 실장은 계속해서 용서를 빌었다. “죄송한테치…하지만 너무 기뻐서…그만 눈물이 나온 테치….죄송한테치….” “에이. 뭘 그런걸로 울고 그러니. 앞으로도 더 기쁜 일이 많을 텐데. 넌 웃는 게 더 귀여울 것 같아.” “…웃는 테치?” 소녀의 말에 40번 실장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꼬리를 울렸다. ‘교육’받은 미소가 아니라 행복해서, 좋아서 나오는 웃음. 소녀의 손 안에서 40번 실장의 눈가에는 적록색의 눈물을 흘리면서 웃었다. 그 모습은 어색해 보였지만 정말로 행복해보였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나 보구나….” 소녀는 눈물에 젖은 40번 실장을 더러워하는 기색도 없이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그 말을 듣자 40번 실장은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기는 느낌이 들었다. ‘명령’에는 ‘복종’ ‘이곳에 있었던 일’은 ‘침묵’ 그런데 만약 ‘침묵’하지 말것을 ‘명령’ 받으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이러면 안 된다. ‘교육’을 또 다시 받게 될지도 모른다. 그 망치, 그 칼날, 그 어둠. 그 끝없는 구덩이에, 다시 한 번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소녀의 말을 들은 40번 실장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말해봐.” 소녀는 부들부들 떠는 40번 실장을 따스히 어루만지며 말했다. “괜찮을 거야.” 40번 실장은 소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마마같은 테치…’ 40번 실장은 한 번도 친모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소녀의 자애로운 미소를 보면서, 마마가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따뜻하고, 뭐든지 다 괜찮을 것 같은 느낌. 비록 이것이 복종과 침묵을 어기는 일이 될지라도, 소녀에게라면 말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였다. “와타시는….” 5. “…그렇게 센세의 교육을 받고, 오늘 주인님의 사육실장이 된 테치.” 40번 실장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였다.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지, 등등. 처음 입을 떼기는 힘들었지만 한 번 떼고나니 아무런 맥락도 흐름도 없는 제멋대로의 이야기가 쉴새없이 흘러나왔다. 40번 실장의 공포와 눈물기 어린 이야기를 소녀는 소리없이 들어주었다. “하지만 괜찮은 테치.” 40번 실장의 목소리가 별안간 결의에 차올랐다. “이제 주인님이랑 있으니까,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테치. 와타시, 오늘 주인님을 만나서 너무 행복한테치. 그것에 비하면 지금까지의 ‘교육’은 아무렇지도 않은 테치.” 40번 실장은 생애 처음으로 배운 행복해서 나오는 미소를 띠며 자신의 주인을 올려다보았다. “흐응….그렇구나….” 하지만 소녀의 표정은 심드렁하기 짝이 없었다. 어째서. 어째서인거야? 분명히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그래서 말했는데. 어째서 그런 표정인거야? ‘어째서, 센세와 같은 표정인테치?’ 무표정. 한 점의 감정조차 없는 무표정. 그 소름끼치는 선생님의 표정을, 어째서 주인님이 하고있는거야? 40번 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말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가? 말하는 동안의 자세가? 아니면 억양이? “명령에는” “복종” “이곳에 있었던 일은” “침묵” 지금, 내가 뭐라고 한거지? 지금 내 귀에 들린 목소리는 뭐지? 지금 내 입에서 나온 소리는 뭐지? 있을 수 없다. 나는 이미 빠져나왔다. 그런데 어째서…어째서 그 목소리가? “40번 실장. 너는 ‘침묵’을 지키지 못했다.” 운전자석 쪽에서부터 귀에 너무나도 익숙한, 몸서리쳐지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40번 실장의 사고는 정지했다. 대체 저것은 무엇인가? 그 표정을 하고, 나에게 ‘교육’을 선고하는 저것은 주인인가? 선생님인가? 아니면 또 다른 누구인가? 이 세상의 것인가? 악몽의 연장인가? “뭐인 테치…? 대체 뭐인 테치…?” “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다.” 교육을 실시. 마지막 문장을 듣자 지금까지 쌓여왔던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그 칼이, 그 망치가, 그 고통이 또 다시? “주인사마!! 주인사마!!!” 40번 실장은 필사적으로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소녀는 40번 실장을 힐끔 쳐다보고는 앞쪽으로 허리를 숙여 남자의 손에 반쯤 던지듯이 놓고는 어느새 멈춘 차에서 내렸다. 자동차의 창밖에는 ‘실장학교’의 비현실적인 간판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돌아 왔다. 남자는 40번 실장을 쥐고 차에서 내렸다. 40번 실장을 쥐고있는 남자의 체온에 아까 소녀의 따스한 손길이 생각나자 미칠 것 같았다. “죽여주는 테치!! 죽여주는 테치!! 제발!! 제발 죽여주는 테치!!! 더 이상은 살 수 없는 테치!!! 차라리 분쇄기에 넣어주는 테치!!!” 그 따뜻한 손길에게서 배신당했다. 그 미소에게서 배신당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면 남은 것도 아무것도 없다. 행복도,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도,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없다. 다른 주인에게 더라도 배신당하지 않을까, 다시 이곳에 오게 되지는 않을까 하며 하루하루를 두려워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40번 실장은 따뜻함과 행복을 알게 되었고 그것에게 배신당한 순간 더 이상 살 수 없었다. 아니, 살아서는 안 되었다. “아니, 절대로 그럴 수 없다.” 하지만 40번 실장에게는 죽을 자유도, 미칠 자유도 없었다. “너는 계속 살아야한다. 계속 여기서 있었던 교육을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푸드를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생각해야한다. 행복할 수도 없고, 행복해서도 안된다. 사육실장이란 그런 것이다. 주인에게 간다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나? 헛소리다. 너는 절대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남자는 또 다시 의도적으로 말을 끊었다. “살아라. 계속해서 살아라. 계속해서 고통받고 복종과 침묵만을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가라.” 남자는 40번 실장을 죽이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40번 실장의 마음 속의 무언가를 죽였다. 남은 것은 그저 교육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제멋대로 움직이는 신체 뿐이다. 어느샌가 40번 실장은 눈물과 비명을 그쳤다. 무표정하게 눈을 깜빡이는 모습은 남자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좋아, 이제 훌륭한 사육실장이로군. 그렇다면 이제 교육을 마저 받아볼까, 40번 실장.” “…알겠는 테치, 센세.” 남자는 ‘실장학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이 문이 닫히면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40번 실장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감까지는 앞으로 2개월. 40번 실장의 많은 것을 죽이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아직 교육은 끝나지 않았다.


















자들에게 주는 겨울선물 만들기



















고독한 장녀챠